에필로그 - 달리기 시작하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학창 시절.
달리기가 정말 싫었어.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100m 빨리 달리기’가 싫었지.
항상 꼴찌를 맡아 놓고 하기 때문에?
그건 아니야. 믿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꼴찌는 상관없었어.
꼴찌를 했다는 건 달리기가 끝났다는 말과 같은 거잖아.
달리기를 끝낼 수만 있다면 등수는 정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지.
달리지 않을 수만 있다면 맡아 놓고 꼴찌를 주어도 괜찮았어.
정말이야. 내가 공개적으로 쓰는 글에서 왜 거짓말을 하겠어.
거짓말은 언젠가는 엉키고 꼬이게 마련이란 걸 잘 알고 있는데 말이야.
이제 막 시작한 글에서 거짓을 쓰면 어떡해?
어디서 어떻게 거짓을 들통 낼 실마리가 조용히 촉수를 흔들고 있을 진 아무도 몰라.
그 촉수는 너무 작고 너무 기척이 없어서 글을 쓰고 있는 주인도 눈치를 채기 힘들어.
그러니 아예 그런 꼼수를 둘 생각은 하지도 않는 거지.
100m나 이어진 여러 줄의 흰 선.
흰 선들을 가로지르는 한 줄의 출발선.
출발선에 섰을 때의 긴장과 불안을 견디기가 싫었어.
심장이 너무 뛰어 터질 것 같은 느낌도 싫었고 그런 긴장 속에 있는 나 자신도 미웠어.
어떤 일을 앞두고 긴장하는 건 못난 짓이라고 배웠던 지도 모르겠어.
어쩌면 자신감과 활달함을 강조했던 교육의 희생자인지도 몰라.
꼴찌를 도맡아 해도 괜찮다면서 무엇이 불안했냐고 하면 할 말은 없어.
하지만 정말 꼴찌를 하는 건 아무렇지도 않았어.
거의 꼴찌를 하다 보니 면역이 되어서 그랬는지, 포기를 하게 되었는지는.
그런데도 불안했어. 마냥 불안했다고.
너무 심할 때는 그 자리에서 돌아서서 반대로 뛰어가는 상상을 하곤 했어.
뛰기도 전에 숨이 턱까지 차고, 정신이 몽롱해질 때쯤 출발신호가 터지지.
땅!
심장이 내려앉을 만큼 놀라면서 내 몸은 뛰어나가.
바로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져.
달리기 시작하면 내 몸에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거야.
불안과 긴장은 어디로 사라져버린 걸까.
달리는 일 외엔 아무 것도 없어.
오직 달리고 있는 몸만 있어.
그저 달리고 있을 뿐이라고.
불안을 지고 달리는 것도 아니고 긴장으로 몸이 굳는 것도 아니야.
그렇다고 속도가 붙진 않아. 말했지만 난 빨리 달리는 덴 소질이 없어.
하지만 달리고 있는 나는 아주 편안해.
앞서 뛰어가는 학생들의 뒤통수나 등을 바라보는 것도 편안하지.
아마 뛸 때마다 보던 상황이라 그랬던 지도 모르겠어.
내가 결승선을 보며 앞서 뛰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반 정도 뛰면 다리가 무거워지는 건 느껴져. 심장박동도 아주 빨라지지.
하지만 출발선에서 느꼈던 심장이 터질 듯한 감각하곤 달라.
그냥 급하게 움직이고 있는 몸이 느껴질 뿐인 거지.
그 몸에서 쾌감도 느껴.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이 그런 쾌감을 느낀다는 말은 들었지.
운동중독자들이 그런 쾌감을 추구하는 지도 모르겠어.
드디어 발이 결승선을 밟고 나면 거친 호흡만이 남아.
꼴찌도 숨은 차니까.
그리고 환희가 찾아와.
아니 후련함을 환희로 느끼는 지도 모르겠어.
사실, 좀 허탈하기도 해.
불과 몇 십초 전의 극도의 긴장과 불안이 떠올라서 그런 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싫어했던 달리기가 드디어 끝났어.
포기하지 않고 해냈다는 잔잔한 기쁨이 나를 찾아오는 순간이기도 해.
정말 싫었지만 꾀를 부려 빠진 적은 없었어.
어쩌면 한 번 면제를 받고 나면 다신 달리지 못할 것만 같은 두려움이 있었던 지도 모르겠어.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날 위로하며 살았는지도 모르겠어.
그러니까 꼴찌는 나를 흔들 만큼 위력 있는 가치의 잣대가 될 수 없었을 거야.
결과를 셈할만한 여유가 달리기 전엔 전혀 없었던 거지.
그래서 끝까지 달리기만 해도 만족하는 지도 모르겠어.
아니, 난 오직 달릴 때의 평온을 위해 출발선에 다시 섰던 지도 몰라.
그 무중력과 같은 평화의 시간에 끌려서 말이야.
나에게 여행은 그런 것인지도 모르지.
다른 일의 무게가 온전히 사라져버리는,
오직 한 가지 일만 있는 무중력과 같은 시간의 세계에 있게 되는 것.
체력으로만 본다면 일상에선 엄두도 못 낼 일이야.
하루에 10㎞를 넘게 걷다니.
단 하루가 아니라 여행하는 내내 말이야. 일주일을 넘기는 건 예사였어.
물론 여행이 길면 사나흘에 한 번 정도 느슨한 시간을 가지긴 하지.
그렇지만 여행지에선 느슨한 시간이라 해도 마냥 하루 종일 퍼져있긴 힘들어.
집을 떠나는 순간 사람은 변하는 것 같아.
먹는 건 아끼지 말자던 신조가 어느새, 그 돈으로 그걸 먹어?로 바뀌어 있어.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게 사치처럼 느껴지는 거지.
본다고 다 기억하니? 라며 친구를 놀려먹던 나도 여행지에선 하루 종일 방을 지고 있을 수는 없게 되고 말아. 그리고 정말 중요한 사실은 혼자가 아니라 같이 온 거니까.
그래서 아무래도 일정은 호락호락하지 않아.
신기한 건 그런 일정에 몸이 따라가 준다는 거지.
과로하면 감기가 와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아.
그렇다고 모든 여행에서 몸이 완벽히 따라주었단 뜻은 아니야.
아픈 적도 있었지.
그래도 아플 땐 그럴 만한 필연적 이유가 반드시 있었어.
같은 차에 타고 있었던 사람이 감기로 기침을 계속 했다거나, 먹지 말라는 현지 물을 마셨거나, 하는.
집에 있을 때처럼 이유도 없이 몸살이 나거나 편도선이 붓거나 하진 않더라고.
여행지에선 몸이 내내 날아갈 것 같았단 얘긴 아니야.
발목이 시큰거리고 매순간 앉을 자리를 찾곤 해.
그렇지만 숙소로 돌아와 자고 나면 또 나갈 수 있는 몸으로 변해 있어.
아침엔 제법 가벼운 몸으로 일정을 시작 하게 되는 거지.
하지만.
여행지에서 돌아오는 순간 중력이 돌아오고 몸이 무거워져.
마치 떠나기 전의 불안이 다시 살아나 실체를 보여주는 것 같아.
여행을 떠나기 전엔 상당히 불안해.
아프지 않을까.
아파서 고생하지 않을까.
그게 가장 큰 고민인 모양이야.
어릴 때부터 감기를 달고 살았던 일상이 만든 불안인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막상 여행이 시작되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마치 달리기 시작하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야.
한 가지만 할 수밖에 없어서 그런 지도 모르겠어.
오직 한 곳에만 에너지가 모이니까.
가장 효율적으로 에너지가 쓰이는 지도 모르지.
일상에선,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너무 많아서, 그래서 온통 신경이 분산되어 에너지가 과하게 쓰이는 지도 모르겠어.
일상을 여행처럼 할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야.
그런데 그건 불가능이었어.
정신을 한 곳에 모으면 이루지 못하는 일이 없다고 하지만, 정신을 한 곳에 모으는 자체가 불가능이었어.
잠깐은 어떻게 가능할지 모르지만 필요한 만큼 지속한다는 건 너무 어려운 숙제야.
나에겐 그랬어.
의지가 아니라 환경의 문제로 느껴진 거지.
여행지라서 가능했던 무중력의 시간이었다고.
여행이 인류에게 필요하다면 그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여행을 휴식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거라고.
잡다한 분산의 더듬이를 거두어들여 한 곳에 조용히 쉬게 하는 의식의 휴식.
의지의 강제 종료.
신경줄이 잡스러운 나에게 여행은 바로 그런 선물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