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스뜨라
여행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해.
이건 나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해. 그리고 어디까지나 내 이야기라는 전제를 미리 할게. 같은 곳을 같이 다닌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은 또 그들만의 이야길 가지고 있을 거야. 그건 분명해. 모든 사람은 각자의 세계를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야. 비슷한 것이 있다 해도 그건 다른 거야. 가까우면서도 멀게 느껴지는 게 사람의 마음이더라고. 아무리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있다 해도 한순간 엄청난 거리감에 놀란 경험이 있을 거야. 부모 형제간이라도 그건 마찬가지야. 같을 곳을 보거나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은 있어도 그걸 느끼는 마음은 같지가 않아.
참, 내 말이 삭막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네. 하지만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야. 말이란 이렇다니까. 뜻을 참되게 전달하기엔 참 부족한 도구라니까. 내가 문자로 작업을 하는 사람이지만 늘 한계를 느끼곤 해. 마음은 한순간에 엄청 많은 것을 동시에 깨닫지만 그걸 글로 옮길라치면 얼마나 너절해지는지 몰라. 새삼 마음의 무한성을 느끼는 동시에 문자의 한계에 의기소침해져. 그래서 결국 생략과 간결을 선택하게 되지. 표현을 많이 하려고 하면 할수록 뜻하곤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경우도 있더라고. 너무 할 말이 많을 땐 차라리 한 문장으로 끝내버리는 방법을 택하게 돼. 여백을 주는 거지. 마음의 여백 말이야. 아니 여운이라고 해야 하나? 내 마음을 알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의 마음을 기다리는 것인지도 몰라. 내가 표현하지 않은 마음은 다른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알아들을 거라는 기대를 하는 편이 나을 때도 있어.
이심전심이란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마음의 본바탕이 한마음이란 걸 부정하는 건 아니야. 종교적 차원이 아니더라도 경험하고 감동하며 살아가니까 말이야. 하지만 마음의 무한한 힘과 능력은 너무 거대해서 내가 설명하고 판단할 존재가 아니란 거지. 한계가 없는 존재에 한계를 둘 수는 없잖아. 설명하고 판단한다는 것 자체가 어떤 한계를 지우는 거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내가 말하는 개인의 마음이란 것은, 마음의 본바탕인 무한함 속에서, 내가 보고 느낄 수 있는 한계 속의 마음인 거지.
‘씨스뜨라’는 러시아말인데 ‘자매’란 뜻을 가지고 있어.
러시아 여행기이니 러시아 이름으로 의미를 더해 보았지. 하지만 깊은 고민 없이 얻은 이름이야. 본격적인 여행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름 짓는 고민으로 지치고 싶지 않았고 깊이 고민할 건덕지가 사실 없었어. 아는 러시아 단어라곤 아마 서른 개도 안 될 거야. 알파벳이라도 익히고 간다며 2주 동안 속성으로 공부했는데 정말 알파벳만 겨우 익힌 수준이었으니까. 그래도 알파벳은 단어가 아니라고 단어 개수에 넣진 않았어. 양심적으로 말이야.
하여튼 순식간에 결론이 났어. 후보가 적으니까 편한 점도 있더라고. 아는 것이 힘이 되는 세상보다 모르는 것이 약이 되는 세상이 나을 지도 모르겠어. 나이차가 나는 여자 4명을 지칭하는 단어로 이보다 더 적당한 이름이 있을까? 혼자 질문하고 얼른 만족해버렸어.
이 이름은 순전히 여행기를 편리하게 쓰기 위해 멋대로 만들어낸 이름이야.
여행 중에는 물론이고 다녀와서도 이 이름을 우리들이 사용한 적은 없어. 나중에 책을 보고야 알게 될 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아직도 난 결심이 서지 않았어. 완성된 후에 이 글을 그들에게 미리 보여주고 허락을 받아야 할지, 멋대로 출간을 해버리고 말지를. 어찌하였든 그들의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으니 밝히고 싶지 않은 개인의 사생활이 침해될 수도 있고 기분이 상할 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까지 여러 편의 책을 출간했지만 누구에게도 미리 보여준 적이 없었어. 완성되기 전에 작품이 드러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느껴지거든. 목욕하는 모습이나 화장하는 과정을 사랑하는 사람한테 들키고 싶지 않은 여자의 심리와 같은 건지도 모르겠어.
물론 여행기와 소설은 달라. 소설은 그야말로 나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그리는 것이라 홀로 쓰고 홀로 그만두고 홀로 결정할 수 있었지. 그 차이를 모르진 않아. 하지만 아는 것과 습관이 통일되는 것이 엄청 어렵거든. 습관은 버리기가 쉽지 않아. 그래서, 완성된 작품을 짜잔! 하고 보여주고 싶은 개인적 욕심과 도덕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중이야. 사실 정말 두려운 것은 기분이 나빠진 누군가가 자신의 출연을 거부하거나 수정을 요구하는 일이 생길 경우야. 완성된 글을 고치는 것은 다 된 새집을 다시 뜯고 수리해야 하는 것만큼이나 맥 빠지고 힘든 작업이기 때문이지. 어쩌면 그들을 믿는 마음이 불안한 마음보다 더 큰지도 모르겠어. 길게 변명을 하는 것은 미리 용서를 구해보려는 수작인지도 몰라.
그 고민은 밀쳐두고 앞으로 나아가려 해.
모든 일은 가장 알맞은 때가 있는 법이고 여행기도 더 이상 미뤄두면 때를 놓친 수확기 들판처럼 시들해져 버린 것들로 채워질 것 같기 때문이야. 갑자기 마음이 무지 바빠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