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 노잉
체비 스티븐스 지음, 노지양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캐나다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 "체비 스티븐스(Chevy Stevens)"가 2011년에 발표한 두 번째 작품 "네버 노잉(Never Knowing)"입니다. 작가의 후속작들이 "스틸 미싱"이라는 충격적인 데뷔작을 넘어설 수가 있을까 궁금했었는데 드디어 두 번째 작품이 출간 되었습니다. 이 작품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주인공이 정신과 의사와 상담하는 장면으로 매 챕터가 진행됩니다. 어떻게 보면 "스틸 미싱"과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평생을 입양아로 살아온 "세라 갤러거"는 결혼을 앞두고 그동안 궁금했었던 자신의 친부모를 찾기로 결심하고 자신을 낳아준 여자의 소재를 알아 냅니다. 그저 자신이 잘 살고 있었다는 걸 알려 주고, 친부모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던 "세라"는 자신과 대면하는 순간 친모가 보인 당혹감과 공포심에 충격을 받습니다. 하지만 "세라"는 자신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고 싶다는 생각에 사설탐정을 고용합니다.

그런데 그 여자, 날 낳아 준 생모가 저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제 친아버지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고요. 그건 마치 앨리가 배 속에 있을 때 갑자기 내 배를 안에서 발로 뻥 차서 순간 숨이 멎는 것과 비슷했어요. 하지만 저를 더 꼼짝 못하게 했던 건 친어머니의 알 수 없는 공포였어요. 그 여자는 나를 두려워했어요. 진심으로. 왜 그랬던 걸까요? 대체 왜?

목재 가구 기술자인 "세라 갤러거"는 태어나자 마자 부모에게 버려져 지금의 가족에게 입양된 후 30여년을 살았습니다. 딸 "앨리"를 홀로 키우는 미혼모였던 "세라"는 약혼자인 "에번"과 결혼을 앞두고 자신의 친부모에 대해 알아보기로 합니다. 곧 자신의 친모가 대학교수인 "줄리아 라로슈"라는 걸 알게된 "세라""줄리아"를 찾아가지만 그녀가 보인 반응은 두려움과 당혹감 그리고 공포감이었습니다. 충격을 받은 "세라"는 약혼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 사립탐정을 고용하고 곧 자신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인물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됩니다. "세라"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인물은 1970년대 초반부터 캠프장에서 여자들을 강간하고 살해한 '캠프장 살인마'로, "줄리아"는 35년 전 그 캠프장 살인마가 죽이기 직전에 도망친 유일한 여자인 "캐런 크리스티안스"였습니다. 이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된 "세라"는 모든 걸 덮으려고 하지만 언론을 통해 "줄리아"가 살인마에게서 유일하게 도망쳐 살아남은 피해자 "캐런"이며 그녀가 낳은 "세라"는 캠프장 살인마의 딸이라는 사실이 세상에 밝혀집니다.

"헛소리 아니야. 캐런 사진을 보니 알 수 있었어. 내 세 번째 여자였지."
"세상 사람 모두 캐런이 세 번째 희생자라는 거 알거든, 이 자식아."
"하지만 난 아직 그녀의 귀걸이를 갖고 있는데."
내 위장이 바로 목으로 넘어오는 것 같았다. 이놈은 대체 뭐길래 진짜 살인마 행세를 하지?
"당신 이게 재밌어? 이딴 저질 장난 전화나 하는 게? 그따위로 살아서 인생이 즐거워?"
"널 겁주려는 게 아니다."
"그럼 뭘 원하는데?"
"널 알고 지내고 싶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Curiosity killed the cat).' 발단은 호기심때문 입니다. "세라"는 우연한 기회에 자신이 그동안 궁금해 하던 친부모를 찾기로 합니다. 약혼자는 "세라"가 혹시 받을 상처를 걱정해서 동의하지 않았지만 충동적으로 결정한 "세라"의 결심은 그녀의 인생을 뒤흔들어 놓습니다. 어쩌면 친모가 보인 반응을 보고 멈추었다면 별일 없이 끝났을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친부까지 수소문 하고 결국 알고 싶지 않은 끔찍한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제야 후회를 하며 모든 걸 잊고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려고 해봐야 상황은 이미 자신의 손을 떠나 버린 후입니다. 신문과 인터넷에 그녀에 관한 이야기들이 올라와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자신이 "세라"의 친아버지라고 떠드는 장난전화까지 계속 옵니다. 그러던 중에 진짜 '캠퍼스 살인마'임이 확실한 남자와 통화를 하게 됩니다. 그 전화통화는 더욱 "세라"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리지만 몇 십 년 동안 잡히지 않았던 연쇄 살인마를 잡기 위해 경찰들은 그녀에게 협조를 요청합니다. '캠프장 살인마'와 지속적으로 통화를 하면서 "세라"는 그동안 느꼈던 자신의 문제점들이 입양 가정에서 자라서 후천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유전적인 문제가 아닌지에 대해 의심을 까지 더해져, 그렇지 않아도 불안정한 그녀의 정신 상태는 더욱 심각해집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세라"와 그녀의 가족들은 점점 더 위험해지지만 그녀가 친부의 전화를 거부하면 '캠프장 살인마'를 잡을 수 있는 기적과 같은 기회는 영영 사라지게 됩니다.

앨리를 임신 했을 때 선생님은 엄마가 안정이 되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기가 엄마에게서 부정적인 기운을 받을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저는 죽을 만큼 두려움에 떨던 엄마의 배에서 아홉 달 동안이나 자랐어요. 엄마의 불안함이 내 피로, 내 세포 속으로 들어온 거예요. 전 배 속에서부터 공포를 안고 태어난 거예요.

입양아로 자라면서 느꼈던 불안과 소외감 그리고 차별로 인해 심리적으로 안정이 필요한 한 여인이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하는 횟수로 챕터가 구분되어 진행되는 "네버 노잉"은 진행 구성 면에서 전작 "스틸 미싱"과 거의 동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정신과 의사도 동일 인물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스틸 미싱"은 납치되어 1여 년간 감금되었던 과거를 회상하지만 "네버 노잉"은 매번 바뀌는 상황들을 겪으며 상담을 받습니다. 이런 진행 구성은 이 책들이 표방하는 심리 스릴러란 장르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어울립니다. 거기다 클라이막스 부분이 되기 전까지 친부인 살인마와 주인공의 전화통화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단순해 보이는 저 상황들만으로도 작가는 매 챕터마다 독자들을 쫄깃쫄깃한 긴장상태로 몰아넣습니다. 살인자의 핏줄이 흐른다는 죄의식, 친부를 멈추게 해야 한다는 죄책감과 모든 걸 그만두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주인공 "세라"의 갈등은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게 해줍니다. 사실 저는 소설이 끝날 때 까지 이쯤에서 그만두길 바라며 "세라"의 결정에 짜증이 나기도 하다가, 그녀의 행동이 공감이 가기도 하는 상태를 오락가락 거리며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으면서 감정 이입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물론 심리 스릴러 소설로서의 완성도 자체도 훌륭합니다.

선생님이 몇 년 전에 이야기하셨죠. 우리에게 찾아오는 이 감정까지 우리가 선택할 수는 없다고. 다만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는 선택할 수 있다고. 하지만 가끔은요. 그 선택권이 저에게 있다고 해도, 이 무수한 것 중에 어떤 걸 선택한다고 해도 전부 다 너무도 끔찍한 나머지 차마 선택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일도 분명히 있답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걸출한 데뷔작이었던 "스틸 미싱"이 조금 더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 되지만 긴장감을 조성하는 솜씨나 플롯에 있어서는 "네버 노잉"이 한수 위였습니다. 그러니까 두 작품 다 아주 좋았다는 말입니다. 덕분에 빨리 세 번째 작품 "Always Watching"도 읽어 보고 싶어졌습니다. 초반 세 작품들은 "~ing" 시리즈로 불리우기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세 작품 모두 정신과 의사 "나딘"이라는 연결고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작품에선 "나딘"이 주인공인 것 같으니 전작 두 편과는 조금 다른 구성이 되겠지만 기대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심리 스릴러를 좋아하시거나 전작 "스틸 미싱"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이 작품 "네버 노잉"이 아주 훌륭한 선택이 될 겁니다. 어쩌면 저 처럼 너무 몰입한 나머지 읽는 내내 주인공을 응원하다가 '그만 좀 해라! 이 X야!'라고 짜증 내기를 반복하며 작가 "체비 스티븐스"가 만들어내는 서스펜스와 예상치 못한 전개에 휩쓸린채 완독후 피로감을 느낄지실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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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폴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5-3 존 코리 시리즈 3
넬슨 드밀 지음, 정경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베스트셀러 작가 "넬슨 드밀(Nelson DeMille)"이 2004년에 발표한 "존 코리"시리즈 세 번째 작품 "나이트 폴(Night Fall)"입니다. 국내엔 네 번째 작품인 "와일드 파이어"가 먼저 나왔었는데 이 작품이 "라이언스 게임""와일드 파이어" 사이의 작품입니다.

뉴욕발 파리행 TWA 800가 이륙하고 얼마 안되어 폭발하는 사건이 발생 했었습니다. 이 사건은 미국을 충격에 빠트리며 수많은 의혹들을 양산했고 미국 정부는 기체의 연료탱크 이상으로 인한 폭발 사고로 사건을 종결 시켰습니다. 5년 후, 아내이자 당시 TWA 800 사건에 투입되었던 FBI요원 "케이트"와 함께 추도식에 참석한 "존 코리"는 당시의 사건 수사에 많은 오류들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폭발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목격한 빛줄기의 정체가 그대로 무시된 사실도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1996년 7월 17일 20시 31분. 뉴욕 JFK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파리로 향하던 TWA 800 보잉 747-131기는 이륙한 지 12분 만에 대서양 상공에서 폭발합니다. 승무원 포함 탑승자 230명 전원 사망한 이 사건(특히 수학여행 중이던 학생들이 많이 탔던)은 폭발에 대한 여러 가지 추측을 만들어냈지만 확실한 원인이 밝혀 지지 않은채 연료탱크 이상으로 인한 폭발 사건이 종결되었습니다. 5년 뒤인 2001년 7월 17일, FBI 대테러 특별 기동대의 "존 코리"는 아내이자 같은 FBI 동료 "케이트"의 손에 이끌려 TWA 800 추도식에 참석하게 됩니다. "케이트"는 당시 이 사건에 투입되었던 요원들 중 한 명으로 5년이 지나서도 사건에 대한 의구심을 감추지 못하고 죄책감을 느끼며 매년 추도식에 참석했었습니다. "존 코리"는 추도식에서 아내 "케이트"에게 이 사건이 종결되는 과정과 수많은 의혹들에 대해 들으며 그동안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됩니다. 조금씩 사건에 흥미를 느끼는 "존 코리"에게 같은 FBI 요원인 "리암 그리피스"는 이 사건에 흥미를 갖지 말라는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이것은 반골 기질이 다분한 "존 코리"의 수사본능에 불을 지피게 됩니다. 아내 "케이트"와 함께 다시 사건을 되집어 보는 "존 코리"는 무언가 의도적으로 은폐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무언가의 실체에 다가 가지만 FBI는 "존 코리""케이트" 부부를 각각 중동과 아프리카로 보내버립니다.

230명의 남자와 여자, 그리고 어린아이를 위해 치른 이 행사에서는 그들의 주검을 덮는 장막 말고도 또 하나의 장막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것은 의혹의 장막이었다. 5년 전 그 비행기가 추락한 실제 원인이 무엇인지 드러내놓고 묻지도 못하는 답답하고 억울한 분위기가 텐트 주변에 장막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연료탱크의 가스에 스파크가 일어나서 폭파 되었다는 발표로 종결된 TWA 800 폭파 사건은 아직까지도 미국에서 여러 음모론들이 끊이지 않고 있는 사건입니다. 같은 시각 진행되었던 군사 훈련 중 미사일 오작동으로 인한 격추, 적대국들의 테러, 기체 노후로 인한 결함 등 많은 의혹들이 있었지만, 가장 큰 의혹의 중심은 20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목격한 미사일이 날아가며 생긴 듯한 빛줄기의 존재였습니다. CIA는 비디오 까지 제작해서 그 사람들이 본 빛줄기는 수면에 반사된 비행기 연료액체였다고 주장했었습니다. 이 작품 "나이트 폴"은 처음부터 미사일에 의한 격추설에 힘을 실으며 시작합니다. 아예 두 명의 불륜 남녀가 해안가에서 자신들의 섹스를 비디오로 찍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비디오에 비행기가 폭발하는 순간이 찍히게 됩니다. 독자들은 이미 비디오 테이프만 찾으면 모든 의혹이 풀린다는 걸 알면서 반골 기질과 또라이 기질로 똘똘 뭉친 주인공 "존 코리"가 이 사건을 다시 수사하는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존 코리"가 시시껄렁한 농담들을 하며 예리한 추리력으로 사건을 재구성하는 모습과 예측불허의 행동으로 뒤가 구린듯한 FBI와 CIA의 방해를 피하는 모습을 즐기다 보면 비디오 테이프의 존재를 아는게 "존 코리" 뿐이 아님을 알게 되고, 어쩌면 그 비디오 테이프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상황으로 전개 됩니다. 

나 자신이나 케이트의 안녕을 위해서라면 오늘 밤, 내가 보고 들은 것을 모두 잊어버려야 한다고 내 본능이 나를 채근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나와 케이트, 혹은 정부 안팎의 몇몇 사람들에 대한 일이 아니었다.
이건 ‘그들’에 대한 문제였다. 230명의 희생자. 그리고 그들의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 비행기의 빈 좌석 위에 장미꽃을 얹은 사람들, 촛불을 띄우며 하염없이 바닷속으로 걸어 들어가던 사람들, 그리고 추도식엔 참석하지 못했지만 집에서 오늘 밤을 눈물로 지새우는 사람들.

FBI 대테러 특수요원인 "존 코리"가 주인공이지만 이 시리즈들은 단순히 미국만세를 외치는 시리즈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미국을 까는 내용들이 더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나 고지식하고 겉 멋만 듣 FBI와 속을 알 수 없는 음흉한 CIA는 대차게 까여 너덜너덜 해질 정도 입니다. 반면 대테러 요원이지만 뉴욕 경찰 출신의 "존 코리"는 FBI내에서도 겉도는 인물입니다. 계약직이지만 이미 경찰 연금의 70%를 타먹기에 짤려도 별로 아쉬울것 없고 누군가 곁으로 끌어 당기면 더 멀리 달려가는 반골기질, 그리고 주위 사람들 엿먹이기가 취미인 캐릭터입니다. 그런 그가 미국내에서 아직도 논란이 많은 TWA 800 폭발 사건을 다시 파헤칩니다. 애국심 따위는 이미 오래전에 버린 "존 코리"는 처음엔 자신의 수사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사건을 조사하지만 점점 이 사건을 은폐하려는 조직들에 분노를 느끼며 자신이 유가족을 위해 꼭 해야할 일임을 자각하며 사건을 파헤칩니다.

사고든 범죄든 어떤 사회가 그 구성원들의 예기치 않은 죽음에 대응하는 방법은 그 사회를 평가하는 하나의 잣대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그런 죽음을 규명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돈, 그리고 노력을 기울이는 사회라고 대내외적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살인 범죄도 처벌 없이 묵과되지 않으며 어떤 사고도 불가피했다는 변명 아래 간과되지 않는 것이 최소한 내가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문화였다. 하지만 TWA 800편 사건은 아니었다.

이 작품 "나이트 폴"은 작가 "넬슨 드밀"이 100% 지어낸 이야기 입니다. 그러니 그냥 흥미위주로 읽고 넘겨 버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음모론을 소재로 쓴 소설로 치부해 버리기엔 읽고 난후 느끼는 감정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당황스러운 엔딩까지 읽고 나서 제가 느낀 허탈함과 분노는 어쩌면 요근래 비슷한 사건 사고들을 직접 뉴스로 봐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실의 은폐나 조작은 그 어떤 이유로_비록 그것이 사회 안정이라는 미명하에 벌어진 일이라도_정당화 되지 못하지만 권력을 가진 조직이 진실을 은폐하고 조작하는게 얼마나 쉬운 일인지 그리고 거기에 대항하는 개인의 싸움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갑자기 우리가 이미 그저 뉴스나 신문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그대로 믿을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음이 너무 슬퍼집니다.

이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나머지 모두로부터 지켜야 할 비밀이야.
너랑 나랑만 알아야 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그래도 읽는 내내 낄낄거리며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존 코리" 시리즈를 읽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존 코리" 이양반의 유머가 수준급입니다. 여성분들은 싫어하실 종류의 농담들이 많다는게 좀 흠이긴 합니다만... 아무튼 이 작품 "나이트 폴"은 참 많은걸 생각하게 해준 작품이었습니다. 특히나 1996년에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을 2001년도에 다시 조사한다는 시대적 설정까지 작가 "넬슨 드밀"의 의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멋진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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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 고 백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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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리 차일드(Lee Child)"의 미 육군 헌병 출신의 방랑자 "잭 리처" 시리즈 열여덟 번째 작품 "네버 고 백(Never Go Back)"입니다. 드디어 이 작품에서 "잭 리처""61시간"에서부터 시작됐던 버지니아를 향한 여정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버지니아에 도착한 "잭 리처""수잔 터너" 소령을 만나러 예전 자신이 이끌었던 110특수부대로 갑니다. 하지만 그녀는 부대에 없고, 대신 16년 전 사건으로 인해 "잭 리처"는 그 자리에서 강제로 재입대를 당합니다. 거기다 기억도 못하는 여자가  양육소송을 걸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됩니다. 다시 군인신분이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잭 리처"에게 정체불명의 남자 두 명이 찾아와서 지금 당장 버지니아를 떠나라고 협박합니다.

"수잔 터너"를 만나기 위해 시작한 여정의 목적지인 버지니아에 도착한 "잭 리처"는 예전에 자신이 지휘했고 지금은 "터너"가 지휘하는 110 특수부대로 갑니다. 하지만 그녀 대신 "모건" 중령이 임시 지휘관으로 앉아있고 그는 "잭 리처"에게 16년 전 "잭 리처"가 폭행한 남자가 후유증으로 죽은 사건으로 인해 살인피의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 자리에서 즉시 제대 당시 직급인 소령으로 강제로 복직을 당한 "잭 리처"는 오래전 한국에서 근무할 당시 만났던 여인이 자신의 아이를 임신해서 소송을 걸었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위수지역을 이탈할 수 없는 "잭 리처"는 근처 모텔을 숙소로 정하고 상황파악을 해보려 하지만 두 건 모두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곧 정체불명의 남자들이 모텔로 찾아와 당장 버지니아를 떠나라고 협박을 하고, 자신이 도착하기 하루 전날 "수잔 터너"가 뇌물 수수혐의로 영창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보던 "잭 리처"는 설상가상으로 또 다른 누명을 쓰고 영창에 갇히게 되면서 군부대를 둘러싼 어떤 음모로 인해 이 모든 상황이 벌어졌음을 직감합니다.

"잭 리처, 오늘 이 시간부로 당신은 공식적으로 군대에 복귀했소."
리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제 자네는 군인이다, 소령."

고생 끝에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잭 리처"는 남자라면 치를 떨 만큼 끔찍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군대 재입대와 기억도 나는 않는 여자의 양육소송. 단지 전화 통화로 호감을 느낀 여자를 만나러 왔건만. 거기다 만나려고 했던 여자는 영창에 가서 만날 수도 없습니다. 이쯤 되면 그냥 떠나버릴 법도 하건만 근성의 사나이 "잭 리처"는 결국 여자를 만나서 자신의 상상보다 훨씬 더 미인임을 확인하고야 맙니다. 그리고 그 여자와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 기나긴 여정을 떠나 전혀 상관도 없어 보이는 상황들을 해결해 나갑니다. 평상시의 "잭 리처"였다면 가는 길 마다 피바다로 만들었겠지만 고생 끝에 보람을 느끼듯 만나고 싶었던 여자가 엄청난 미인임을 확인해서 인지 나름 자제를 하며 상황을 해결해 나갑니다. 심지어 이번 작품에선 "잭 리처"의 손에 죽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습니다. 물론 팔이나 손가락이나 코 등을 부러트리기는 합니다만...

"당신은 원시적인 존재 같아요. 그것도 문명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야생으로 돌아간 존재." 리처는 묵묵히 터너의 얘기를 듣고만 있었다. 상처까지는 아니었지만 잠시 자신의 삶을 생각하게 만드는 지적이었다.

2013년에 출간된 "네버 고 백"은 그해 '뉴욕 타임스'에서 뽑은 '올해의 책 Best10'에 꼽히며 대히트를 쳤습니다. 뭐, 언제나 대히트를 하는 시리즈 이지만. 이번에도 작가 "리 차일드"는 자신이 창조하고 오래동안 구축한 슈퍼 캐릭터 "잭 리처"의 매력과 자신의 이야기 솜씨를 충분히 활용합니다. 사실 전화 통화만 했던 여자에게 매력을 느껴서 '사우스다코타'에서 '네브라스카'를 거쳐 '미주리', '캔사스시티', '펜실베이니아', '볼티모어' 통과하는 긴 여정을 한다는 설정 자체는 다른 소설에서는 쓰지도 못할 현실성 없는 설정이 될테지만 거주하는 곳도 내일 당장 해야 할 일도 없는 "잭 리처"가 하면 이제는 이해가 되면서 흥미로운 설정이 되어버립니다. 독자들은 시작부터 당황스러운 사건들의 연속으로 책 속에 빠져 버리고 도대체 어떻게 되어가는 상황인지 추측하며 헤매다 보면, 어느 순간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을 것 같고 별로 연관성도 없어 보이는 사건들이 기발한 설정과 아이디어들로 인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플롯이 스스로 완성되는 걸 목격합니다. 그렇게 또 작가 "리 차일드"의 황당하지만 기발하고 통쾌한 이야기에 납득 당하고 나면 다음 작품은 언제 나오는지 기다리게 됩니다. 엔터테인먼트 적인 면에서 소설을 바라본다면 "잭 리처" 시리즈와 견줄 시리즈들을 찾기 힘들지 않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인류 역사상 남성들이 겪는 가장 일반적인 경험이다. 하지만 리처로서는 평생 남의 일일 것 같았다. 노벨상을 받는 것, 월드시리즈 무대에서 뛰는 것, 혹은 음정과 박자를 맞춰 노래를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항상 생각 하지만 "잭 리처"란 캐릭터는 모든 남자들의 로망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부양할 가족도 없고, 매일 나가야하는 직장도 없고,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떠돌아 다니며 여러명의 새로운 여자들과 만나는 천하무적의 남자... 챗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과 항상 느껴야 하는 책임감 속에서 누구나 한번쯤은 꿈 꿔본 적 있는 캐릭터가 아닐까 합니다. 거기다 구닥다리라고 생각됐던 서부극과 무협소설의 설정을 적절히 변형시킨 것도 시리즈의 인기 요인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쨌든 "잭 리처" 시리즈는 재미 면에선 절대 실망 시키지 않습니다. 최소한 아직까지는. 이 작품 "네버 고 백"은 영화 "잭 리처"의 후속 작품으로 각색될 작품으로 결정 됐습니다. 영화가 소설 제목으로 나올지 "잭 리처 2"로 나올지는 아직 모르지만 이번엔 더 흥행이 잘되서 "톰 크루즈" 형님이 새로운 프렌차이즈로 키워 줬으면 좋겠습니다.
국내 다음 출간작은 시리즈 열아홉 번째 작품 "Personal"이랍니다. 이 작품에서 "잭 리처"는 저격범을 찾기 위해 미국을 벗어나서 프랑스, 영국을 누비고 다닌다고 합니다. 아마도 국내엔 내년에나 출간될 듯 하니 이 작품이 올해 마지막 "잭 리처" 시리즈 작품입니다. 그러니 지루한 기다림은 "네버 고 백"을 읽으시면서 달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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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일격 밀리언셀러 클럽 136
로렌스 블록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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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대표하는 하드보일드 소설 작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로렌스 블록(Lawrence Block)"의 대표작인 "매튜 스커더"시리즈 네 번째 작품 "어둠 속의 일격(A Stab in the Dark)"입니다. 이 작품 바로 다음 작품이 몇 년 전에 출간된 "800만 가지 죽는 방법"이니 이로써 시리즈 첫 다섯 권이 모두 다 나오게 됐습니다.

9년 전 얼음송곳으로 여덟 명의 여성을 살해한 연쇄살인사건은 범인을 잡지 못한 채 미결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로 잡힌 "루이스 피넬"이 송곳살인범으로 밝혀 집니다. "루이스"는 자신의 범죄를 모두 털어 놓지만 자신이 죽인 건 일곱 명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루이스"가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여자 "바버라"의 아버지는 "매튜 스커더"를 찾아오고 딸의 죽음을 다시 조사해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미해결 사건으로 남겨질 뻔 했던 얼음송곳 살인사건의 범인이 우연히 붙잡히게 됩니다. 송곳 살인범은 자신의 범행을 모두 털어 놓지만 자신이 죽인 피해자로 알려진 "바버라 에팅거"만은 자신이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송곳 살인자가 주장하던 정황들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바버라"의 아버지인 "찰스 런던"이 경찰의 소개를 받고 "매튜 스커더"를 찾아 옵니다. "찰스"는 딸 "바버라"를 죽인 범인이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괴로워 하다가 "매튜"를 찾아 왔고 딸의 죽음에 대해 조사를 해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매튜"는 연쇄살인 사건으로 위장한 "바버라"의 죽음을 조사하지만 이미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사건이라 수사가 쉽지 않습니다.

선반에 봉헌된 초들이 있기에 거기 멈춰 서서 두어 자루에 불을 밝혔다. 한 자루는 바버라 런던 에팅거를 위해, 죽은 지 오래됐지만 코넬리우스 히니만큼 오래되진 않은 그녀를 위해. 또 한 자루는 에스트렐리아 리베라를 위해, 바버라 에팅거만큼이나 죽은 지 오래된 어린 소녀를 위해. 기도는 하지 않았다. 난 기도는 안 한다.

9년이나 지난 한 여인의 죽음을 조사하게 된 "매튜 스커더"의 수사는 시작부터 순조롭지 못합니다. 이미 경찰도 더 이상 수사를 진행할 의사가 없다고 하는 마당에 탐정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심지어 당시 피해자의 주변인들도 대부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거나 소재파악이 안됩니다. 당시 경찰들 조차 사건 당초 얼음송곳 살인자의 소행이 분명해 보였기에 제대로 된 탐문 수사나 심문도 건너 뛴 상태였고. 하지만 "찰스 런던"에게 "매튜 스커더"를 소개시켜준 형사 "피츠로이"가 말했듯 "매튜"는 사건을 한번 물면 절대 놓는 법이 없습니다. 물론 "피츠로이" 형사가 친구인 "매튜"를 피해자 아버지에게 소개한 의도는 대충 수사를 하는 척만 해도 쉽게 돈을 벌수 있기 때문입니다만. "매튜"는 9년 전 당시 사람들 중 소재를 알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며 과거를 깨기 시작합니다. 물론 거기엔 피해자인 "바버라"의 과거도 포함됩니다.

사람들은 이사를 다니고 그들의 삶은 변한다. 하버메이어는 캐시미어 스웨터를 지키는 일을 하게 됐다. 나는 지금 하는 일이 뭐든 그걸 하게 됐고. 안토넬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탄광에서 검은 고양이를 찾고 있는거지. 거기에 있지도 않은 고양이를.

이번 작품 "어둠 속의 일격"도 상당히 훌륭합니다. 매일 말도 안되는 이유로 죽는 뉴욕 사람들 속에서 9년 전 연쇄살인으로 위장된 한 여인의 죽음을 파헤치는 "매튜"의 이야기도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지만 그 안쪽 더 깊은 곳에 담겨진 이야기들은 허무하고 비정하기만 도시 속 삶을 보여줍니다. 그럴수록 "매튜"가 마시는 술의 양 역시 늘어만 가고, "매튜"가 맺게 되는 인간관계도 불안해져 갑니다. 마치 그의 삶 처럼. 사실 다음 작품인 "800만 가지 죽는 방법"으로 작가 "로렌스 블록"은 이 시리즈를 끝내려고 했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을 읽고 나니 정말로 "로렌스 블록"이 다음 작품에서 시리즈를 끝내려고 했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간단히 한 두 줄로 쉽게 설명하긴 힘들지만 읽어 보시면 아마 무슨 뜻인지 알게 되실 겁니다.

가슴이 꼭 막힌 것같이 답답한 기분은 여전했다.
브랜디 때문이라고 난 스스로를 타일렀다. 아무래도 브랜디는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좋겠어. 익숙한 걸 고수하자. 버번으로 쭉 가는 거야.

"매튜 스커더" 시리즈도 이제 여덟 권 정도를 읽은 것 같은데 이 시리즈의 매권 모든 엔딩이 너무나도 좋습니다. 그중 최고는 "800만 가지 죽는 방법""백정들의 미사"였지만 이 작품 "어둠 속의 일격"을 포함한 나머지 작품들도 모두 엔딩의 여운이 깊게 남습니다. 사실 이런 엔딩을 기대하고 "매튜 스커더" 시리즈를 읽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엔딩들 때문에 더욱 이 시리즈를 애정하는 건 확실합니다.
시리즈 다음 작품이 언제 또 출간될지 모르겠지만, 스크린으로 "매튜 스커더"를 보게 되었습니다. 10년 전 "매튜 스커더" 역을 맡기로 했었던 배우 "해리슨 포드"가 하차를 하게 된 이후로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작가 "로렌스 블록""리암 니슨""매튜 스커더" 역을 해주길 바랬었다고 합니다. "마이클 콜린스"를 본 순간부터 그런 생각을 쭉 해왔다고 하니 드디어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영화 "툼스톤(A Walk Among the Tombstones)"이 잘되서 (아 진짜 영화 제목 마음에 들지 않아 짜증 납니다. 소설 제목인 "무덤으로 향하다"가 훨씬 좋은 선택인거 같아 보이는데...) 시리즈가 중단되는 일 없이 쭉 출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영화도 속편이 나오면 더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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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과 창조의 시간 밀리언셀러 클럽 135
로렌스 블록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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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추리작가 협회에서 '그랜드 마스터'칭호를 수여 받은 베스트셀러 작가 "로렌스 블록(Lawrence Block)"의 작품들 중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매튜 스커더"시리즈 세 번째 작품 "살인과 창조의 시간(Time to Murder and Create)"입니다. 간간히 다른 외국 사이트에서 이 작품을 두 번째 작품이라고 하는데 작가 측에서 이 "살인과 창조의 시간"이 세 번째 작품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뭐, 사실 어느 작품이 먼저인지는 내용상 그다지 차이가 없긴 합니다.

오랫동안 경찰의 끄나풀이었던 "제이크 자블런""매튜 스커더"를 찾아옵니다. "스피너"로 불리우던 그는 어떤 정보들이 담긴 봉투를 "매튜 스커더"에게 맡아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봉투를 열어서 자신의 부탁을 들어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 뒤 "제이크 '스피너' 자블린"은 둔기에 맞아 죽은 채로 강에서 발견이 됩니다. 하지만 경찰 끄나풀이자 사기꾼에 협잡꾼의 죽음은 그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합니다. 전직 경찰 출신 무면허 탐정 "매튜"를 제외하면 말입니다.

부자인 사람들에게 돈을 뜯어낼 수 있는 정보를 얻게 된 "제이크 '스피너' 자블런"은 전직 경찰인 "매튜 스커더"를 찾아와 정보가 들어있는 봉투를 건네주고 대신 맡아 줄 것을 부탁합니다. 매주 금요일 자신이 무사하다는 연락을 주기로 했던 "스피너"의 연락은 7주 뒤인 4월 둘째 주 부터 끊기고, 결국 시체가 되어 강에서 발견 됩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자신 이외엔 아무도 "스피너"의 죽음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매튜"는 봉투를 열고 내용을 확인합니다. 그 봉투에는 자신을 죽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세 사람의 정보와 함께 자신이 죽게 되면 대신 복수를 해달라는 "스피너"의 메시지 그리고 의뢰금이 들어 있습니다. "매튜""스피너"가 맡긴 봉투 속에 언급된 세 사람에게 접근을 합니다.

자네가 그냥 그 돈만 챙기고 입 닦아 버릴 수도 있겠지.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난 죽었을 테니까 모를꺼야. 왜 자네가 이 일을 끝낼 거라고 생각했냐면 자네에 대해 아주 오래전에 눈치 챈 점이 있어서야. 자네가 살인과 다른 범죄들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됐어.

마약에 취해 운전을 하다 어린 아이를 죽인 딸을 위해 뇌물을 쓴 사업가, 창녀이자 사기꾼, 포느로 배우였던 과거를 숨기고 부잣집 아들과 결혼한 여인, 그리고 어린 소년들과 섹스를 즐기는 유력한 차기 뉴욕 주지사 후보. 이들 세 명에게 차례로 접근하는 "매튜"는 다른 때와 달리 자신을 탐정이 아닌 "스피너"의 동업자로 소개합니다. 동업자가 죽었으니 거래를 자신이 이어가겠다고 연기를 하며 "매튜"는 수사를 진행합니다. 만일 자신의 수사가 진전이 없다고 하더라도 "스피너"를 죽인 사람이 자신의 목숨도 위협할 것이라는 것을 노린 겁니다. 세 사람 모두 "스피너"가 가진 정보가 공개되면 인생이 망가지게 되니 그를 죽일 동기는 충분합니다. 물론 사람들을 협박해 돈을 갈취하는 "스피너" 자신이 자초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냥 돈만 챙기고 모른 척 해도 되는 "매튜 스커더"는 "스피너"의 살인범을 찾기로 결심합니다. 아무리 "스피너"가 범죄로 생계를 꾸려갔다고 해도 살인이란 "매튜"가 생각하는 최고의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매튜" 역시 이미 엄청난 죄악을 저지른 죄인이기도 합니다.

움직이는 손가락이 쓴 글은 영원히 존재한다.
너의 모든 독실함과 기지를 모아도
한 행의 절반도 지우지 못하며,
너의 모든 눈물로도 단어 하나 씻어 낼 수 없다.

강도들을 잡던 도중 한 소녀를 죽게 만들어 경찰을 그만두고 무면허 탐정으로 활동하는 "매튜 스커더"가 이번에는 평생 나쁜 짓만 하고 살아왔던 한 남자의 죽음을 조사합니다. 그러면서 "매튜"는 뉴욕에 살고 있는 여러 인간 군상들과 조우하게 되고 그들의 주위를 멤돌면서 느리지만 자신만의 방법으로 수사를 진행합니다. 아시다시피 이 시리즈의 주인공 "매튜 스커더"는 경찰 시절에도 청렴한 경찰이 아니었습니다. 뒷돈도 받고 뇌물도 주고 창녀와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나쁜 짓의 기준은 있었고 그저 쓰레기의 허무한 죽음으로 치부할 수도 있는 "스피너"의 죽음에 책임을 지어야 하는 사람을 찾아냅니다. 뉴욕이란 도시에서는 단 하루도 맨 정신으로 버티기 힘들다는 듯 "매튜"는 내내 커피에 버번을 타서 마시며 사건을 조사해 나아가고 원치 않았던 죽음과도 마주하게 됩니다. 결국 그렇게 "매튜"가 성당에서 죽은 자들을 위해 키는 촛불의 개수가 늘어나고, "매튜"는 죄의식을 잊기 위해 또 다시 술잔을 듭니다.

다른 방법이 있었어야 했다. 총알이 튕겨 나가서 그 어린 소녀의 눈에 들어가지 말아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 모든 사실을 움직이는 손가락에 말해 보라. 아직 예배를 하는 도중에 성당에서 나와 버렸다. 아무 생각 없이 몇 블록을 걷다가 블라니 스톤에 멈춰 술의 성찬식에 참석했다.

1976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는 "매튜 스커더" 시리즈는 하드보일드 소설이 갖추어야할 모든 요소들이 다들어 있습니다. 단지 문체와 스타일 뿐만이 아닙니다. 알콜과 허무의 냄새가 진동을 하고 도시의 비정함과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매튜의 냉소적이지만 동정적인 태도, 그리고 죄의식으로 고뇌하는 모습 등. 어쩌면 남자들을 위한 시리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결국 시리즈를 오랫동안 이어가기 위해선 캐릭터의 힘이 가장 커야하는데 "매튜 스커더"라는 남자 그리고 또 다른 주인공 뉴욕이 뿜어내는 매력은 책이 나올 때 마다 사야하는 이유로 충분하다고 봅니다. "매튜 스커더" 시리즈 두 번째 영화 "툼스톤(A Walk Among the Tombstones)" 곧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시리즈 3, 4권이 동시에 나왔습니다. 초창기 작품들이라 분량은 그리 많지 않지만 이 시리즈들의 매력들은 여전합니다. 하드보일드 소설을 좋아하신다면 그냥 넘기면 안 될 작품들이니 꼭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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