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 - 새벽의 주검
디온 메이어 지음, 강주헌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이제는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범죄소설 작가 "디온 메이어 (Deon Meyer)"가 2000년에 발표한 두 번째 작품 "오리온 : 새벽의 주검 (Orion / Dead at Daybreak)"입니다. 이 작품은 2000년 남아공 'ATKV 문학상', 2004년 프랑스 '미스테르 비평문학상을 받았고 2006년에는 남아공에서 TV 드라마로도 제작되었습니다.


사립탐정 "자토펙 판 헤이르던"은 친구의 소개로 "호프 베네커"라는 변호사의 조사원으로 임시 고용됩니다. "판 헤이르던"이 해야 할 일은 "호프 베네커"의 의뢰인 "빌헬미나 판 아스"가 도난당한 유언장을 찾는 일인데, 이 유언장을 찾으려면 10개월 전 살해당한 의뢰인의 동거남이자 골동품 가구점을 운영했던 "요하네스 야코뷔스 스미트"의 사건을 다시 조사해야합니다. 그때까지 경찰에서 별다른 단서나 용의자 조차 찾지 못했던 사건을 "판 헤이르던"이 다시 조사하고 경찰이 그동안 언론과 피해자의 동거녀인 "판 아스"에게도 밝히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됩니다. 그건 살해당한 방법과 잔인한 고문방법이었습니다.


"이 사진들을 본 적이 있습니까? 고인이 된 요하네스 야코뷔스 스미트의 사진입니다. 부엌 의자에 묶여 있습니다. 이 사진을 보고도 이해심과 동정심과 연민으로 가슴이 미어집니까? 당신이 세상에 널리 퍼뜨리려는 차별 없는 고매한 마음으로 가슴이 미어집니까? 누군가 그에게 이런 잔혹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를 철사로 묶고 토치램프로 지졌습니다. 그가 제발 자신을 총으로 쏘아 죽여주기를 바랄 때까지 말입니다. 누군가, 인간이 저지른 짓입니다. 당신이 무조건 보호하려는 천사, 빌나 판 아스가 이 소동의 한복판에 있습니다."


앤티크 가구점을 운영하던 "얀 스미트"는 자신의 집에서 강도가 쏜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경찰이 비밀로 했지만 "스미트"는 죽기 직전까지 토치램프로 잔인하게 고문을 당했었습니다. 그의 집에 있던 금고안의 모든 것이 도난당했고, 전직 경찰이자 사립탐정인 "판 헤이르던"은 살해당한 "스미트"의 동거녀인 "판 아스"를 위해 일주일 안에 "스미트"가 금고에 보관하던 유언장을 찾아야합니다. "스미트"의 금고는 사람이 서서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컸고 유언장 이외에 무엇이 보관되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경찰은 오래전 미국의 달러를 싸는데 사용했던 종이와 같은 재질의 종이 조각을 찾아냈고 강도가 "스미트"를 죽인 총기가 M16이라는 점에서 "판 헤이르던"은 오래전, 어쩌면 80년대 초나 그 이전에, 미국이 개입되어 벌어진 어떤 일이 연관된 사건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수사를 진행합니다. "판 헤이르던"이 수사를 진행하면서 "얀 스미트"의 신분이 세탁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남아공 국가안보국이 이 사건에 개입합니다.


우리나라는 큰 바다에서 아주 작은 물고기에 불과해, 판 헤이르던. 우리는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네. 어떤 의미에서는 마약의 사막지대라 할 수 있지. 미국과 유럽에서 거래되는 양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마약 거래라는 못난 얼굴에 돋은 사마귀 정도도 안 돼. 1980년대에는 그보다도 훨씬 작았네.


사회적, 정치적, 군사적으로 엉망진창이었던 70년대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만들어낸 유령들이 다시 되돌아와서 벌어진 사건을 파헤치는 소설 "오리온"은 탐정소설이자 미스터리 범죄소설이면서 주인공 "자토펙 판 헤이르던"이라는 남자의 타락과 구원을 보여주는 성장소설이기도 합니다. 광부인 아버지와 화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프리카너(남아공에 살고있는 네델란드계 백인)'인 "판 헤이르던"은 사춘기 무렵 몰래 훔쳐보던 욕정의 대상인 뒷집 이웃 여인이 잔혹하게 살해당한 일을 계기로 경찰이 되기로 결심하고 나중엔 경찰대학의 교수가 되기 직전까지 성공합니다. 하지만 당시 미국 FBI가 발표한 프로파일링 글을 읽고 자신에게 묘한 죄책감이었던 살해당한 여인의 사건을 다시 조사하면서 살인강도과의 경찰로 복귀하고 엘리트 경찰로 이름을 날리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의 멘토이자 파트너가 연쇄살인범이 쏜 총에 맞아 자신의 눈앞에서 죽었을때 엘리트 경찰 "판 헤이르던"은 무너지게 되고 그후로 5년간 스스로를 '나쁜 놈', '쓰레기'라고 생각하며 폐쇄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 그가 80년대 초에 신분을 세탁한 한 남자의 죽음을 조사하면서 다시 추적자의 본능을 되찾기 시작합니다. 뭐, 사실 그동안 보아온 탐정 캐릭터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설정인데 이 작품 "오리온"은 다른 소설이었으면 짧게는 한두 페이지, 길게는 한 챕터로 간단히 설명 했을 주인공의 과거 부분을 소설의 반 이상을 할애해 "판 헤이르던"의 고백 형식으로 채워갑니다. 그러니깐 각 챕터가 한 번씩 번갈아 가면서 삼인칭으로 현재의 사건을 보여주고 일인칭으로 "판 헤이르던"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작가 "디온 메이어"는 두 이야기를 교차시키며 모두가 선하다고 믿던 과거의 "판 헤이르던"과 모두가 악하다고 믿는 현재의 "판 헤이르던"을 보여주다 마지막에 가서 아무도 몰랐던 진정한 타락의 이유와 구원의 순간을 교묘하게 일치시킵니다.


나는 관습적인 삶에 들어서기 직전이었다.

당시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무엇보다 나는 나 자신을 믿었고, 그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선한 사람일 거라고 믿었다. 나는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는 선과 악의 갈등에 대해 철학적으로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선의 편에 있었다. 따라서 나는 선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마르네비크 사건에 강박적으로 매달렸음에도. 아마도 그 강박 때문에.


흑인 정권으로 바뀌어도 여전히 흑백갈등과 피가 마르지 않는 검은 대륙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배경으로 상당히 괜찮은 범죄소설이 나왔습니다. 작가의 명성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계약소식을 듣기 전까진 국내 출간은 무리라고 생각했는데 작가의 또 다른 작품 "프로테우스"와 동시 출간되었습니다. 클래식과 요리를 즐기는 타락한 탐정 "판 헤이르던"의 매력은 물론이고, 작가 "디온 메이어"의 글 솜씨도 훌륭합니다. 플롯이나 서사를 구축하는 솜씨도 노련하고 사실과 허구를 뒤섞어 현실성을 돋보이게 하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국적인 배경이 전해주는 매력은 덤입니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나라인 남아공의 범죄소설이라고 해도  이 작품을 즐기는데에는 딱히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물론 거리명이나 등장인물의 이름이 조금 어렵지만 요즘은 북유럽 스릴러들이 많이 나와서인지 적응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습니다. 작가 "디온 메이어"는 이제 전 세계 28개국에 번역, 출판되는 스타작가가 입니다. 거기다 "Benny Griessel" 시리즈 중 두 번째 작품인 "Thirteen Hours"는 헐리우드에서 영화화 될 예정에도 있습니다.

바로 이어서 동시 출간된 작가의 세 번째 작품 "프로테우스 : 토벨라의 심장(Proteus / Heart of the Hunter)"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토벨라 음파이펠리""오리온"에서 "판 헤이르던"을 돕는 코사족의 전사이자 범죄조직의 해결사입니다. "오리온"에서도 엄청난 매력을 뿜어냈었기에 "프로테우스"도 상당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새롭게 소개되는 독특한 배경의 범죄소설인 만큼 판매가 잘 돼서 작가의 작품들이 꾸준히 나와 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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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의 재구성 매드 픽션 클럽
리즈 뉴전트 지음, 김혜림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리즈 뉴전트(Liz Nugent)"의 장편 데뷔작 "올리버의 재구성(Unravelling Oliver)"입니다. 이 작품은 '프란시스 맥매너스 상(Francis McManus Award)' 최종후보에 뽑혔던 자신의 단편을 작가가 6년간 수정하고 보완해서 독특한 심리 스릴러로 완성시켜 출간했습니다. 그리고 출간과 동시에 독자들과 평단에 호평을 받으며 아일랜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었습니다.


매력적인 중년 남자 "올리버 라이언"은 세계적으로 성공한 아동문학 작가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성공하여 안정되고 부유한 삶을 살던 그는 어느 날, 자신의 부인인 "앨리스"를 구타하여 혼수상태에 빠트리게 됩니다. 이 사실에 매스컴과 주변 사람들 모두가 자기관리에 철저했고 폭력적인 면을 전혀 보이지 않았던 "올리버"의 행동에 놀랍니다.


결국 나는 폭력적인 인간으로 밝혀졌다. 이 사실은 나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는 심리검사를 받으며 나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어렸을 때부터 나는 쓰라림과 증오, 좌절을 마음에 품고 살았다고 한다. 흥, 참으로 놀라운 일이로군.

이웃들은 뭐라고 생각할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들의 생각 따위에는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다.


자신이 쓴 아동문학 시리즈가 연극, 영화화까지 되면서 세계적인 인기를 얻어 작가로서 최고의 위치에 있는 "올리버 라이언"은 아주 매력적인 50대 남자입니다. 순종적인 아내 "앨리스"와의 지루하지만 안정적인 결혼 생활은 적당히 유지하는 한편, 자신의 매력을 이용해 다른 여자들과의 외도도 즐기며 살았습니다. 어느 날, "올리버"는 자신의 아내 "앨리스"를 죽기 직전까지 구타를 합니다. 자신의 아내를 구타해서 혼수상태에 빠트린 유명작가의 이야기는 온 세상이 다 알게 되고, "올리버"를 알던 많은 사람들은 놀라며 "올리버"의 과거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올리버"를 포함한 각자가 자신이 알고 있는 "올리버"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지난 한두 달 동안 이곳 신문의 머리기사에도 올리버 라이언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나는 더 이상 매스컴과 인터뷰를 하지 않으려고 인터뷰 요청들을 사양하고 있다. 올리버가 아내를 구타한 사건에 대해 어느 정도 내게도 책임이 있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비극적인 일이지만, 그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내 기억은 저절로 1973년의 수확기로 제일 먼저 돌아가고, 거의 40년 전에 느꼈던 고통을 아직도 생생하게 다시 느낀다.


이 작품은 "올리버"가 아내 "앨리스"를 때린 후부터 시작됩니다. 그것이 첫 번째 구타였고 스스로도 놀란 "올리버"는 집을 나와 시간을 보낸 뒤 다시 집에 가서 "앨리스"를 때립니다. 두 번째 구타가 시작되면서 "올리버"는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고 죽기직전까지 아내를 구타합니다. 깨어날 가능성이 낮은 혼수상태. "올리버"는 그동안 말하지 않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히 말하기로 결심하고 소설은 각 챕터마다 "올리버"와 그를 아는 주변인들의 일인칭시점으로 진행됩니다. 불우했던 학창시절의 유일했던 친구, 대학동창, 그의 정부였던 이웃집 여자, "앨리스"의 오랜 친구, 70년대 프랑스에서 포도농장을 했던 여인 등 모두가 각자 기억하고 있는 "올리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물론 "올리버" 자신도. 그리고 여러 명의 기억들이 한데 모아져서 그동안 알려진 성공한 작가"올리버"의 진짜 모습이 드러납니다. 결국 "올리버"란 남자가 숨기고 싶었던 과거가 튀어 나오게 된 순간 그가 쓰고 있던 가면이 벗겨지고 폭력이라는 행위가 발생한 이유가 밝혀집니다.


그해 여름 로라와 올리버 사이에 무언가 끔찍한 일이 있었을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너무 끔찍해서 로라가 주머니에 돌멩이를 가득 넣고 바다로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그 무언가가.


"올리버의 재구성"은 주인공 "올리버"의 고백과 일곱 명의 증언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심리 스릴러입니다. 처음부터 흡입력이 강한 스타일이 아닌 독자를 점점 빨아들이는 스타일의 작품입니다. 건방지고 자기중심적이어서 독자가 절대 좋아할 수 없는 남자"올리버 라이언"의 이야기와 그의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올리버"가 얼마나 자기기만적인 삶을 살았는지 알게 되고 더 혐오스러운 인물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면 그가 괴물로 태어난 것인지 점점 괴물로 만들어진 것인지 의문 역시도 가지게 됩니다.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존재로부터 사랑받고 인정받으려고 반평생을 노력했던 "올리버"에 대한 동정심도 생깁니다. 그렇다고 그의 잘못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인생이 불행하게 시작되지만 않았어도 지금의 그가 아닌 다른 "올리버"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출판사의 보도자료 처럼 마치 한 남자의 재판기록을 읽는듯 한 느낌을 주는 "올리버의 재구성"은 '왜?'를 찾아가는 whydunit이 중심인 독특한 구성의 심리스릴러입니다. 재미뿐 아니라 우리 각자가 타인을 바라보고 평가하는게 얼마나 주관적이고 불명확한지도 제대로 보여주는 좋은 작품입니다. 작가 "리즈 뉴전트(Liz Nugent)"의 다음 작품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그녀의 데뷔작은 정말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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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는 책 - 세계 최고의 미스터리 작가들이 꼽은 세계 최고의 미스터리들
존 코널리 외 엮음, 김용언 옮김 / 책세상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아일랜드의 범죄소설 작가 두 명 "존 코널리(John Connolly)""디클런 버크(Declan Burke)"가 함께 엮어서 2012년에 발표한 미스터리 비평 선집 "죽이는 책 : 세계 최고의 미스터리 작가들이 꼽은 세계 최고의 미스터리들(Books to Die for : The World's Greatest Mystery Writers on the World's Greatest Mystery Novels)"입니다. 전세계 문학권에서 걸작으로 추앙받거나 걸작으로 취급되어야 마땅한 미스터리 작품 121편을 현재 활발하게 활동 중인 20개국 119명의 장르작가들이("존 코널리""디클런 버크"는 두 편씩 선정) 엄선하여 비평한 선집인 "죽이는 책"은 2013년 '에드거 상' 비평/전기 부분 최우수 후보로 선정되었습니다.


왜 미스터리 소설은 그토록 오랫동안 지속적인 인기를 누려왔는가? 이 질문에 간단히 답하긴 힘들다. 미스터리 소설의 특징은 예리한 사회적 비판을 담을 수 있다는데 있다. 법과 정의 사이에 괴리가 발생했다는데 대한 우려, 타협적일지언정 어쨌든 질서를 향한 염원, 독자들은 미스터리 소설에서, 가장 비판적인 미스터리 작가들의 관점에서조차 마땅히 그리 되었어야 할 세계를, 즉 인간 최악의 본성이 아무런 저항 없이 승리를 거두는 것을 수수방관하지 않는 선한 남녀들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미스터리 소설은 이 모든 것을 건드리는 동시에 독자를 즐겁게 한다. 그리고 그 즐거움은 미스터리 소설의 수많은 특성 중 절대로 사소하게 취급할 수 없는 부분이다.

-서문 中- 존 코널리, 디클런 버크


전 세계 미스터리 작가들(다른 나라 작가들도 참여하지만 대부분이 영미권 작가들 입니다만)에게 그들이 사랑하는 소설에 대해 열변을 토할 기회를 주자!라는 두 작가의 단순한 결정에서 시작된 "죽이는 책"은 어쩌면 미스터리 소설 혹은 범죄소설의 팬들에겐 축복과도 같은 책일 수도 있습니다. 미스터리 소설의 효시처럼 인식되는 "에드거 앨런 포"의 1840년도 단편 작품들인 "뒤팽" 시리즈부터 2008년도 작품까지 소개되고 있어서 미스터리 소설의 역사와 흐름을 알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잘 몰랐던 유명한 작가나 작품에 대해서 알게 되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정말로 좋아하는 혹은 숭배하는 단 한권의 작품이 무엇인지도 알게 됩니다. 그중엔 미스터리 소설 역사상 걸작으로 추앙받는 작품들도 있고 당연히 걸작으로 추앙받아야 하지만 빛을 보지 못하고 이제는 절판되거나 기억속에서 사라진 작품들도 있습니다. 119명의 작가들은 각자 자신들만의 글 쓰기와 형식으로 이 작품을 왜 좋아하는지, 이 작품이 왜 걸작인지, 이 작품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등에 관해서 이 책안에서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안녕 내 사랑"을 읽으면서 나는 어떤 위대한 진실을 흘끗 엿볼 수 있었고 내 손아귀에 그것을 잡아둔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 "안녕 내 사랑"은 신화였기 때문이다. 신화는 느낄 순 있지만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진실이다. 신화는 우리의 희망과 꿈을 가둬둔 채 자물쇠를 채워버린 집과도 같다.

그리고 챈들러는 내게 그 열쇠를 주었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안녕 내 사랑", 조 R. 랜스데일-


8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121편의 작품들을 다루고 있어서 얼핏 너무 길고 지루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모든 챕터들 마다 색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물론 다루는 작품 중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거나 오래전에 출간되어서 이제는 절판된 작품들도 상당히 많지만 이 책을 즐기는데에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물론 이 장르의 팬들에게) 거기다 비평집이라고는 하지만 대부분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 형식이어서 산문 자체로도 꽤 즐길 부분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작가가 되기 전 팬레터를 보내다 교류를 쌓아 결국 존경하는 "로스 맥도널드"와 저녁식사를 같이 하게 된 "린우드 바클레이", 은퇴하신 아버지에게 책들을 사다주다가 아버지가 극찬을 하게 돼서 처음으로 "리차드 프라이스""클락커스"를 만나게 된 "가 앤서니 헤이우드",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작품들을 읽어봤냐는 질문에 한동안 읽어봤다고 거짓말하다 뒤늦게 읽고 팬이 된 "리사 러츠", 문학을 가르치던 교수 시절에 "엘모어 레너드"에게 그의 작품 속에서 패턴을 발견했다며 쓴 편지를 보냈는데, 그가 독서모임의 강연소재로 팬들에게 그 편지를 자주 낭독하며 팬들과 함께 조롱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친해지고 나서야 "엘모어 레너드"에게 직접 듣게 된 "제임스 W. 홀" 등 흥미롭고 웃음이 나는 부분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좋다, 그의 그런 자세를 인정하겠다. 어찌 됐든 그건 내 소설이 아니라 그의 작품이니까. 그는 자신이 어느 지점에서 하찮은 학계 인물보다 훨씬 더 뛰어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빌어먹을! 입이 근질거려서 더는 못 참겠다. "라브라바"에는 정말 미쳐버리게 많은 흑백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그게 죄다 우연이었다고는 죽어도 못 믿겠다.

-엘모어 레너드의 "라브라바", 제임스 W. 홀-


"죽이는 책"이 국내에 번역, 출간되어서 제가 가장 감사하는 부분은 앞에서 잠깐 언급했던 미스터리 소설의 역사와 흐름을 한눈에 알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애드거 앨런 포"를 시작으로 "찰스 디킨스"(분명 의아해 하실 분들도 계실테지만 "두 도시 이야기""황폐한 집"은 분명 범죄와 공포를 다루고 있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아서 코난 도일" 그리고 스타일이 다른 두 거장 "대실 해밋", "애거서 크리스티"를 지나 "레이먼드 챈들러", "로스 맥도널드", "조르주 심농",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조세핀 테이", "마이 셰발" & "페르 발뢰", "트루먼 커포티" 등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마이클 코넬리""이언 랜킨" 등을 지나 "데니스 루헤인""로라 립먼"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이 모든 걸 읽고 나면 미스터리 소설 혹은 범죄소설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어떻게 스타일이 나눠지고, 어느 기점에서 새로운 형식들이 탄생되었으며, 다른 스타일들이 어떻게 통합되고 변형되어 왔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 장르가 사회현상과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장르라는 사실 역시도 알수 있게 해줍니다. 사회가 겪는 큰 변화와 충격들은 작품들의 탄생에 상당히 밀접한 연관이 있고 그래서 꽤 많은 작품들이 배경이 되는 사회와 도시를 또 하나의 캐릭터처럼 다룬다는 점이 가장 알기 쉬운 예라고 생각합니다. 몇 작품들은 처음부터 사회 비판을 다루기 위해 범죄소설의 틀을 사용한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드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거기다 사회가 변화하면서 여성 작가들이 점점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범죄소설 속 여성 캐릭터들의 위치와 역할들이 어떻게 변하게 되는지도 목격할 수 있습니다.


무심한 악당들은 선한 남녀를 하찮은 존재처럼 내버린 다음 그들의 거대한 무심함 속으로 퇴각한다. 하지만 그런 결말에조차 여전히 용서의 여지가 남아 있다. 이 작품의 영웅적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패배한 남녀들에게도, 희망은 여전히 존재한다. 희망. 고동치는 심장. 머나먼 집을 향한 약속.

-제임스 크럼리의 "라스트 굿 키스", 데니스 루헤인 -


"죽이는 책"은 미스터리 소설의 관한 자료집이나 사전같은 역할도 가능합니다. 작품들은 연대순으로 되어있어서 목차를 보고 그 시대의 중요한 작품들을 찾아보는 것도 가능하고 짬짬이 연대별로 골라서 다시 읽기도 좋아 여러번 재독하기에 아주 적합한 구성이어서 팬인 독자들에겐 소중한 자료들이 되고 이제 입문하는 독자들에겐 이 장르의 좋은 안내서나 지침서가 되어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장점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추천하는 책이 무엇인가? 좋아하는 작가를 미스터리 소설 작가로 만든 계기가 된 작품이 무엇인가?(많은 작가들이 자신이 이 장르의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하게 만들거나 큰 영향을 준 작품을 꼽았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이 몇 편이나 언급되는가?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다른 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저에겐 상당히 즐거운 요소 중에 하나였습니다. 몇몇 작가들이 내가 예상한 작품들을 골랐을 때는 웃음도 나더군요.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긴 합니다. 바로 표기법의 오류나 기출간작들의 표기법과의 불일치인 부분들입니다. 물론 방대한 작품들과 작가들을 다루고 있다보니 철저히 모든 걸 조사하기엔 무리가 있겠고 출간되었더라도 이젠 절판이 되어 자료를 찾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만 너무 좋은 책이라 이런 부분들이 아쉬운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사실 이런 오류들도 일반 독자들이야 거의 눈치 채지 못하겠지만... 하지만 제목은 정말 잘 지었습니다. "Books to Die for""죽이는 책"이라고 바꾸다니. 두 가지 의미를(범죄소설에 대한 책과 정말 끝내주게 재미있는 책) 동시에 지닌 너무 멋진 제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위대한 범죄소설가들이 몇몇 존재하지만, 덱스터만큼-또는 마이클 코넬리만큼- 실제 삶의 만화경 같은 양상을 유능하게 포착한 작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디테일을 잡아채는 감식안,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력, 그리고 독자를 이야기 한복판으로 곧장 끌어들이는 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귀, 그는 독자가 낚였다고 알아차리기도 전에 이미 그렇게 옴짝달싹 못하게 붙들어놓는다.

-콜린 덱스터의 "우드스톡행 마지막 버스", 폴 찰스-


미스터리 소설 혹은 범죄소설, 아니 이 장르를 어떻게 부르던 (이 책에서도 많은 작가들이 미스터리 소설, 범죄소설, 스릴러를 혼용해서 쓰고 있습니다. 영국작가들이 대부분 범죄소설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게 재미있던 점입니다.) 이 장르를 좋아하는 팬이시라면 절대적으로 추천드립니다. 비평 선집이라고 하지만 절대 어렵거나 따분한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엄청나게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저는 한마디로 이 "죽이는 책"을 미스터리 작가들이 자신이 숭배하는 작가와 작품들에게 보내는 연애편지, 팬 레터 혹은 신앙고백을 모아놓은 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런 작품을 출간해준 출판사에게 무안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예전에 범죄소설 작가들이 자신의 캐릭터 탄생에 대해 쓴 글을 모은 "라인업"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평생을 두고두고 여러번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난 것 같아 너무 기쁩니다. 제목 그대로 정말 죽이는 책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서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구를 소개하는 걸로 끝내겠습니다.


장르소설과 순문학(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다. 물론 이견이 있을 수 있다.)사이의 경계는 몇몇 이들이 믿고 싶어하는 것처럼 그렇게 선명하지만은 않다. 결국 미스터리 장르 자체를, 그리고 위대한 글을 쓰도록 허락하고 북돋고 그리하여 위대한 문학을 탄생시킨 미스터리 장르의 능력을 묵살하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그 속물근성 때문이 아니라-물론 그 때문에도 비난받아야 하지만-소설의 본성과 그 안에서 장르가 점한 위치에 대한 근본적인 몰이해 때문에 유죄 선고를 받아 마땅하다. (...) 미스터리 소설은 형식이자 메커니즘이다. 그것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도구다. 나쁜 작가의 손에선 형편없는 소설이 나오겠지만, 위대한 작가들은 미스터리 장르를 통해 마법을 창조할 수 있다.

-서문 中- 존 코널리, 디클런 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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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릴리언스
마커스 세이키 지음, 정대단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미국의 스릴러 작가 "마커스 세이키(Marcus Sakey)"가 2013년에 발표한 액션 스릴러 "브릴리언스(Brilliance)"입니다. 그동안 국내에 출간된 작가의 작품들인 "칼날은 스스로를 상처입힌다""대니얼 헤이스 두 번 죽다" 와는 달리 SF적 요소가 가미된 이 작품은 작가가 삼부작으로 기획한 The Brilliance Saga 중 첫 번째 작품입니다. 미국에서 출간된 후 평단과 대중의 호평으로 2014년 '에드거' 상 최우수 오리지널 페이퍼백 부분에 후보로도 올랐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관심의 초점은 주로 이들이 태어나는 원인에 집중되었다. 이 아이들이 어디서 왔는가? 하필 왜 지금인가? 이런 현상이 영원히 계속될 것인가? 아니면 시작됐을 때처럼 어느 날 갑자기 끝날 것인가?

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 여기저기 어렴풋이 떠돌기만 하는 질문이 있었다.

우리 모두의 혀끝에서만 머물지만, 그 대답이 두려워 좀처럼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물음이었다.

이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1986년 12월 12일, <뉴욕 타임즈> 사설에서 발췌-


1980년을 기점으로 100명 중 한 명 꼴로 경이로운 특수한 능력을 지닌 아이들이 태어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브릴리언트'라고 불렀고 30여년이 지난 후 이 '브릴리언트'들이 성장해서 각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물론 나쁜 쪽으로도. '브릴리언트'들이 저지르는 범죄와 테러를 막는 정부조직 DAR의 최정예 요원 "닉 쿠퍼" 역시 사람들의 근육과 행동 패턴을 읽어 미리 예측할 수 있는 '브릴리언트'입니다.


"당신 능력은 뭐지?"

"패턴 인식. 특히 보디랭귀지에 최적화돼 있지."

쿠퍼는 두 사람의 거리가 불과 열 걸음 남짓이 될 때까지 바스케스에게 다가갔다. 베레타 권총은 아래로 향한 채였다.

"그래서 그렇게 빠르게 움직였군."

"난 당신보다 빠르게 움직이지 않아. 그저 당신이 어디를 공격할지 아는 것뿐이지."

"멋지군. 그 능력을 이용해 동족을 사냥하다니. 그 일이 좋아?"


컴퓨터 프로그램을 단순한 3차원 패턴으로 읽을 수 있거나,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복잡한 계산을 단번에 할 수 있는 아이들이 1980년부터 태어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그 아이들을 '브릴리언트'라고 부르고, 어떤 부모들은 곧 태어날 자신의 자식들이 '브릴리언트'로 태어나길 바라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주식 시장을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는 '브릴리언트'가 3000억 달러를 챙겨 뉴욕 증권 거래소를 폐쇄하게 만들고 연이어 국제 증권 시장까지 없어지게 만들면서 세상은 혼란에 빠집니다. 그 후로 평범한 사람들, 즉 노멀들은 '브릴리언트'를 두려워하기 시작하며 변종, 돌연변이, 능력자 등으로 부르며 경계하기 시작합니다. 단 한사람의 '브릴리언트'가 야기 시킨 혼란에 미국 정부는 '분석. 대응 부서' 즉, DAR(The Department Of Analysis and Response)를 창설합니다. 그리고 얼마 뒤 '브릴리언트' 테러리스트 "존 스미스"가 상원의원과 어린아이를 포함한 민간인 70여명을 총살하는 사건이 발생하며 유일한 대응책인 DAR은 미국 내에서 가장 막강한 특권을 가진 조직이 됩니다. DAR 내에서도 타깃이 된 '브릴리언트'들을 추적하고 제거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공정국의 최정예 요원이자 사람들의 행동패턴을 읽을 수 있는 '브릴리언트' "닉 쿠퍼"는 위험한 바이러스를 퍼트리려는 프로그래머를 추적하다 더 큰 테러에 대한 단서를 발견합니다. 그 단서는 DAR의 최우선 타깃인 "존 스미스"와 연결되어있고 그를 추적하기 시작하는 "닉 쿠퍼"는 엄청난 음모를 알게 됩니다. 결국 "닉 쿠퍼""존 스미스"를 잡기위해 스스로 위험한 선택을 합니다.


"얘야, 넌 이상하지 않아. 넌 완벽하단다." 쿠퍼가 딸의 뺨을 두드렸다.

"잘 들어. 이건 갈색 머리카락을 가지거나 머리가 좋은 것과 다를 바가 없어. 그저 네 일부란다. 그게 네가 누군지 결정하진 않아. 너 자신이 결정하는 거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한 번에 한 가지씩 네가 정하는 거야."

"하지만 엄마는 왜 무서워하는데?"


1980년을 기점으로 특수한 능력을 지닌 돌연변이들이 태어났다는 설정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 "브릴리언스"는 약간의 SF적 요소와 대체역사적 요소가 들어간 액션 스릴러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브릴리언트'들은 엑스맨들 처럼 눈에서 레이저를 쏘거나 불노불사의 몸을 지녔거나 하늘을 나는 돌연변이들이 아닙니다. 단지 한 부분의 능력이 특수하게 발달된 돌연변이들입니다. 이들은 특수한 능력을 제외하면 통계적으로 정상범위에 들어가는 평범한 인류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서번트 증후군'과 비슷합니다. 다른 점이라면 '서번트 증후군'인 아이들은 특수한 능력 대신 결핍되는 요소로 어떤 식으로든 장애를 가지게 되지만 '브릴리언트'들은 장애가 없이 태어난 겁니다. 이들이 어떻게 태어나게 됐는지 끊임없이 연구가 됐지만 진전은 없는채 '브릴리언트'들이 자라 어른이 되면서 세상은 바뀌어 버립니다. 엄청난 기술 발전과 의료 기술의 발달은 물론이고 예체능에서도 엄청난 진보가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세계 증권 시장이 무너져 버리는 계기로 노멀들에게 그저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브릴리언트'들은 경계심을 가지게 되는 대상이 되어버렸고 차별과 통제의 움직임이 시작됩니다. 모든 아이들은 8살이 되면 검사를 받아 1급 '브릴리언트'로 판명되면 아카데미로 보내져 특수교육을 받게 되고 늘어나는 '브릴리언트'들의 범죄로 인해 그들의 몸에 칩을 넣자는 법안까지 진행 됩니다. 그러자 주식시장을 붕괴시켜 최대의 재벌이 된 '브릴리언트' "에릭 엡스타인"은 와이오밍 주에 '뉴 가나안'이라는 '브릴리언트' 주거지역까지 만들어 미국으로부터 독립을 추진하면서 갈등은 증폭됩니다. 결국 세상은 종교적, 인종적 분쟁이나 빈부간의 갈등이 점점 사라지고 대신 '브릴리언트'와 노멀들의 갈등과 분쟁을 중심으로 혼란스러워 집니다.


쿠퍼가 진심으로 저주라고 생각하는 몇 안 되는 능력 중 하나였다. 리더들은 타인과 만나는 매 순간 거짓말의 강에서 헤엄쳐야 했다. 더 나쁜 점은, 그들이 인격의 부정적인 요소들, 심리학자 융이 말했던 인간의 마음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그림자, 고문과 고통과 모욕을 즐기는 부분을 알아본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욕구를 제어하며 다른 방식으로 표출했다. 포르노 영화, 공격적인 스포츠, 폭력적인 공상 같은. 그것은 인간이라는 동물의 한 부분이었고, 대체로 무해했다. 생각은 생각일 뿐이고, 어쨌거나 꽁꽁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더들은 주위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그런 면을 봐야만 했다.


소설의 주인공인 DAR의 공정국 소속 요원 "닉 쿠퍼"도 '브릴리언트'입니다. 그는 사람들의 얼굴 근육을 보고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알 수 있고 근육의 움직임으로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할지 미리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추적하는 타깃의 집을 살펴보고 패턴화 시켜서 그들이 어디로 갈지 어떤 행동을 할지 미리 예측이 가능합니다. 애국심과 특수한 능력 덕분에 공정국 내에서도 엄청난 특권을 누리는 최정예 요원인 그는 국가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과 노멀인 아들, '브릴리언트'인 딸이 더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흔들림 없이 '브릴리언트' 범죄자들을 제거해 나갑니다. 그리고 최우선 제거 타깃인 "존 스미스"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는 단서를 얻고 접근을 해 나아가지만 다시 한번 미국을 엄청난 혼란에 빠트리는 테러를 막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닉 쿠퍼"는 자신 스스로를 위험에 빠트리는 암살 작전을 계획하고 "존 스미스"에게 접근하기 위해 고독하고 힘든 임무를 진행합니다. 도망자로 위장해서 '브릴리언트'들의 집단 거주지 '뉴 가나안'까지 흘러 들어가는 동안 "닉 쿠퍼"는 자신이 모르던 '브릴리언트'에 대한 차별과 탄압을 목격하게 되고 점점 자신이 믿던 신념에 틈이 생기기 시작하는걸 알게 됩니다. 그리고 또 다른 거대한 음모와 마주하면서 자신이 쫒던 악과 모르고 있던 또 다른 악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내년에 DAR이 도입할 장비가 궁금하다면, 와이오밍의 아무 술집이나 들어가 보라는 농담도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뉴 가나안의 진정한 방어 수단이었고, 고립된 지정학적 위치나 엡스타인이 보유한 수백만 달러의 자산보다 더 강력한 패였다. 자기 분야에서 최고에 가까운 능력자들은 혼자서도 기술 진보를 몇십 년씩 앞당겨 왔다. 여기서는 그들이 힘을 합쳐 일했고, 그 결과는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미국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군대가 필요하지 않아. 사람들이 그것 없이는 못 사는 물건을 만들기만 하면 되지.


작가 "마커스 세이키"는 돌연변이인 신인류의 등장이라는 SF적 소재로 훌륭한 액션 스릴러 작품을 내놓았습니다. 읽어본 작품이 세권밖엔 안 되지만 작가의 최고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어찌 보면 단순히 오락거리로 즐길 수 있는 액션 스릴러 작품이지만 이 소설안에는 편견과 차별, 탄압과 저항, 음모, 선과 악의 모호함, 정치적 이중성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거기다 특수한 능력이란 소재 덕분에 이런 장르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반전과 추리에 대한 헛점도 깔끔하게 정리됩니다. 물론 이 작품에 담겨진 이야기들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들은 아닙니다. 돌연변이들과 평범한 사람들의 갈등과 차별은 엑스맨 같은 영화나 그래픽노블에서 봐왔고 소설 속에서도 언급되는 '뉴 가나안'이라는 도시 이름이나 유대 과격당파인 열심당과 로마제국의 관계 등 역사적 사실에서 차용한 요소들도 꽤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 "마커스 세이키"는 어디선가 본 듯한 요소를 솜씨 좋게 잘 섞어서 새로워 보이는 이야기로 이루어진 멋진 스릴러 작품을 써냈습니다.

작년에 레전더리 픽처스에서 "브릴리언스"를 영화화 한다고 발표했었습니다. "윌 스미스""누미 라파스" 가 캐스팅 되었는데 "윌 스미스"는 하차하고 대신 "자레드 레토"가 후보에 올랐는데 그 역시도 하차한 듯 합니다. 아무튼 만일 제가 영화 제작자라고 해도 무조건 판권을 샀을 법한 확실한 엔터테인먼트 소설입니다. 덮자마자 아직 남아있는 이야기가 궁금해서 The Brilliance Saga 두 번째 작품인 "A Better World"가 미치도록 읽고 싶어지게 만들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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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할런 코벤 지음, 이선혜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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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할런 코벤(Harlan Coben)"이 2013년에 발표한 스탠드언론 "6년(Six Years)"입니다. 이 작품도 역시나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일치감치 영화화가 결정되었습니다. 주인공 "제이크"역에는 "휴 잭맨"이 캐스팅 되어 조만간(?) 촬영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평범한 대학교수 "제이크 피셔"는 우연히 보게 된 부고에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합니다. 부고에 올라온 이름이 6년 전 자신에게 갑자기 결혼을 통보하고 떠난 전 연인 "나탈리"의 남편이었기 때문입니다. 6년 동안 하루도 "나탈리"를 잊고 산 적이 없던 "제이크"는 장례식에 참석하고 그곳에서 큰 충격을 받습니다. 장례식 장에서 본 미망인이 "나탈리"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결혼식 날 자신이 본 "나탈리"의 남편과 죽은 남자가 다른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제이크"는 "나탈리"의 행방을 찾기 시작합니다.


"약속해줘요, 제이크. 절대로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겠다고 약속해줘요."

내 인생의 사랑이 내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진짜 마지막 말. 그리고 6년이 흐른 지금, 나는 모든 것이 시작된 장소로 돌아와 있다. 약속을 깨뜨리기 위해서.


학과 논문을 쓰기 위해 휴양소에 간 "제이크 피셔"는 그곳에서 화가인 "나탈리"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제이크""나탈리"가 특별한 사랑이라고 느꼈지만 "나탈리"는 돌연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한다며 결혼식에 초대를 합니다. 결혼식 날 "나탈리"가 그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다시는 자신을 찾지 말아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6년 뒤, 랜포드 대학의 정치학 교수가 된 "제이크"는 어느 날, 학교 홈페이지에 의례적으로 올라오는 동문의 부고를 보고 자신에게 상처를 남긴 "토드 샌더슨"이라는 이름을 발견합니다. 그는 6년 전 "제이크"를 버리고 떠난 "나탈리"와 결혼을 했던 남자입니다.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려고 참석한 장례식장에서 "제이크"는 미망인이 "나탈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혼란에 빠집니다. 자신이 무언가 착각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제이크"는 둘이 처음 만났던 휴양소가 사라지고, "나탈리"가 결혼한 교회엔 그녀의 결혼식 기록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더 깊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더구나 "나탈리"의 여동생을 포함해서 당시에 그 둘을 알던 모든 사람들이 "제이크"를 처음 보는 것처럼 행동을 합니다. 결혼을 한 그 날 부터 6년 동안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는 "나탈리"를 찾는 "제이크"에게 정체불명의 남자들이 찾아오면서 "제이크"​의 삶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이런 내 이야기에 머리를 끄덕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모두들 이제야 알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겠지. 나탈리와 나의 사랑은 모든 책임과 현실로부터 벗어난 가공의 세상에서 만들어진 여름날의 로맨스였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사랑과 집착은 뿌리를 내리지 않고서도 쉽게 꽃을 피울 수 있다. 9월의 찬 공기가 사방에서 밀려오면 시들어 죽을 운명이지만. 우리 둘 중 그나마 통찰력을 지닌 나탈리는 이러한 진실을 깨닫고 받아들였던 거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못했다.


3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의 사랑은 한 남자 너무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었지만 여자는 그런 남자에게 돌연 예전의 남자와 결혼을 한다며 청첩장을 줍니다. 현실을 부정하던 남자는 결국 결혼식까지 가서 자신의 사랑이 끝났음을 확인합니다. 자신들 앞에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여자를 6년 동안 잊지 못하며 살던 남자는 여자의 남편이 죽은 사실을 알고 장례식에 찾아가면서 그동안 둘이 공유하던 기억과 사람들을 철저히 부정당하게 됩니다. 예, 언제나 그렇듯 "할런 코벤" 스타일의 스릴러 소설입니다.("마이런 볼리타" 시리즈는 제외 해야 겠죠.) 물론 작품들 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오랫동안 진실이라고 믿고 있던 사실과 과거에 숨겨진 또 다른 진실 사이를 헤메는 스타일의 스릴러입니다. 특히나 이번 소설은 작가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어준 대표작 "밀약(Tell No One)"을 연상 시킵니다. 지고지순한 러브스토리와 숨겨진 진실을 찾아가는 스릴러의 결합이라는 기본 얼개뿐 아니라 소설 곳곳에 "밀약"의 흔적이 묻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미국에서도 엄청난 히트를 한 작품입니다. 역시나 책을 읽고 난 뒤 이 작품은 2013년 판 "밀약"이군' 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재미는 있지만 작가가 자신이 가장 잘 쓰는 이야기를 다시 반복한 느낌에 살짝 실망감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없는 작품에 대한 감상은 남기지 않지만 이 작품이 재미가 없진 않았기에 뭐라도 써야지 하고 우물쭈물 하고 이틀 정도 지나고 나니 이 작품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뭐'랄까 읽으면서 내내 마음에 걸렸던 부분이나 마음에 안 들던 캐릭터의 성격들이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터무니없는 생각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절망은 우리를 농락할 수 있다. 우리가 절망에게 마음껏 해설할 수 있는 재량권을 부여하는 순간, 절망은 대체 가능한 답을 찾아낸다.


제일 마음에 안든 건 주인공 "제이크"란 캐릭터 였습니다. 나이에 맞지 않게 구식이지만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대학교수인 이 남자의 순애보는 어느정도 이해한다고 쳐도 자꾸만 모든 걸 혼란스럽게 만들고 주위를 위험에 빠뜨리는 융통성 없는 행동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뭐 자기 자신도 그런걸 알고 있고 내적 갈등도 하지만 '니가 가만히 있으면 모든게 여기서 멈출거야'란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물론 그가 그렇게 행동해야만 하는 전개가 중간부터 펼쳐지긴 합니다. 그런데 다 읽고 나서 시간이 지나니 빈약했다고 느꼈던 설정이나 이야기 구조가 조금씩 납득이 되고 이 남자가 나쁘지 않은 캐릭터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니깐 저는 감성이 메말라서 인지 처음부터 고작 3개월 간 사랑했던 여자가 다른 남자의 여자가 되버린 후에도 6년 동안 내내 잊지 못하고 끊임없이 사랑했다는 것 자체를 있을 수 없는 이야기로 치부해버리고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세상에 그런 남자가 어디있어?'에서 '있을 수도 있지'라고 생각을 바꿔보니 "제이크"의 융통성 없고 순수한 성격이 결국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이 작품 "6년"에서는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와 미래가 다 변하고 바뀌어 뒤틀리지만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건"제이크"의 사랑 하나 뿐이라는 걸 알게 되니 이 작품에 대해 평가가 달라지더군요.

사실 "나탈리"의 이야기도 중반을 넘어가면서 미스터리나 스릴러 소설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대충 짐작되는 방향으로 흐르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이나 흐름이 좋습니다. 간간히 나오는 유머도 좋고 구성 자체도 작가가 공 들인 부분이 꽤 많습니다. 거기다 흠 잡을데 없는 "할런 코벤"의 글 솜씨는 여전해서 한번 잡으면 하루에 다 읽을 수 있습니다. 뭐, 결국 재미는 있다는 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게 희망이에요. 죽는 게 차라리 낫죠. 죽으면 고통도 끝나니까요. 하지만 희망은 사람을 끊임없이 높은 곳으로 데려가죠. 오직 딱딱한 바닥에 떨어뜨리기 위해서 말이에요. 희망은 그 손으로 사람의 심장을 부드럽게 감싸 들었다가 주먹을 쥐면서 으스러뜨리죠. 끊임없이 이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멈출 줄을 모른답니다. 이게 바로 희망이 하는 일이에요."


작가 "할런 코벤"의 작품들은 "마이런 볼리타" 나 "미키 볼리타"시리즈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일상을 뒤흔들게 되는 숨겨진 진실을 찾는 이야기입니다. 그 안에서 매번 다른 소재와 상황을 가지고 자유자제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가의 솜씨는 일류급입니다. 바로 전에 읽었던 "숲"이나 "용서할 수 없는"이 너무 좋았고, "밀약"과 비슷한 구조여서 동어반복이라고 느껴서인지 처음엔 조금 실망을 했지만 그렇던 아니던 재미있는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출간 즉시 파라마운트가 판권을 사서 "휴 잭맨"을 캐스팅 한 걸 보면 많은 사람들이 "할런 코벤"에게 기대하는 이야기가 이런 이야기 일수도 있구나란 생각도 듭니다. 조금 아쉬운 소리를 했어도 이 작품 "6년" 재미있습니다. 딴 생각 안하고 즐기기엔 안성맞춤입니다. 특히 "할런 코벤"을 처음 접해본 분들이라면 더 재미있게 읽으실 듯 합니다. 여담이긴 하지만 소설 속 "제이크"의 외모와 "휴 잭맨"의 외모가 잘 어울려 보여서 영화도 상당히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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