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 - 새벽의 주검
디온 메이어 지음, 강주헌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이제는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범죄소설 작가 "디온 메이어 (Deon Meyer)"가 2000년에 발표한 두 번째 작품 "오리온 : 새벽의 주검 (Orion / Dead at Daybreak)"입니다. 이 작품은 2000년 남아공 'ATKV 문학상', 2004년 프랑스 '미스테르 비평문학상을 받았고 2006년에는 남아공에서 TV 드라마로도 제작되었습니다.


사립탐정 "자토펙 판 헤이르던"은 친구의 소개로 "호프 베네커"라는 변호사의 조사원으로 임시 고용됩니다. "판 헤이르던"이 해야 할 일은 "호프 베네커"의 의뢰인 "빌헬미나 판 아스"가 도난당한 유언장을 찾는 일인데, 이 유언장을 찾으려면 10개월 전 살해당한 의뢰인의 동거남이자 골동품 가구점을 운영했던 "요하네스 야코뷔스 스미트"의 사건을 다시 조사해야합니다. 그때까지 경찰에서 별다른 단서나 용의자 조차 찾지 못했던 사건을 "판 헤이르던"이 다시 조사하고 경찰이 그동안 언론과 피해자의 동거녀인 "판 아스"에게도 밝히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됩니다. 그건 살해당한 방법과 잔인한 고문방법이었습니다.


"이 사진들을 본 적이 있습니까? 고인이 된 요하네스 야코뷔스 스미트의 사진입니다. 부엌 의자에 묶여 있습니다. 이 사진을 보고도 이해심과 동정심과 연민으로 가슴이 미어집니까? 당신이 세상에 널리 퍼뜨리려는 차별 없는 고매한 마음으로 가슴이 미어집니까? 누군가 그에게 이런 잔혹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를 철사로 묶고 토치램프로 지졌습니다. 그가 제발 자신을 총으로 쏘아 죽여주기를 바랄 때까지 말입니다. 누군가, 인간이 저지른 짓입니다. 당신이 무조건 보호하려는 천사, 빌나 판 아스가 이 소동의 한복판에 있습니다."


앤티크 가구점을 운영하던 "얀 스미트"는 자신의 집에서 강도가 쏜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경찰이 비밀로 했지만 "스미트"는 죽기 직전까지 토치램프로 잔인하게 고문을 당했었습니다. 그의 집에 있던 금고안의 모든 것이 도난당했고, 전직 경찰이자 사립탐정인 "판 헤이르던"은 살해당한 "스미트"의 동거녀인 "판 아스"를 위해 일주일 안에 "스미트"가 금고에 보관하던 유언장을 찾아야합니다. "스미트"의 금고는 사람이 서서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컸고 유언장 이외에 무엇이 보관되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경찰은 오래전 미국의 달러를 싸는데 사용했던 종이와 같은 재질의 종이 조각을 찾아냈고 강도가 "스미트"를 죽인 총기가 M16이라는 점에서 "판 헤이르던"은 오래전, 어쩌면 80년대 초나 그 이전에, 미국이 개입되어 벌어진 어떤 일이 연관된 사건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수사를 진행합니다. "판 헤이르던"이 수사를 진행하면서 "얀 스미트"의 신분이 세탁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남아공 국가안보국이 이 사건에 개입합니다.


우리나라는 큰 바다에서 아주 작은 물고기에 불과해, 판 헤이르던. 우리는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네. 어떤 의미에서는 마약의 사막지대라 할 수 있지. 미국과 유럽에서 거래되는 양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마약 거래라는 못난 얼굴에 돋은 사마귀 정도도 안 돼. 1980년대에는 그보다도 훨씬 작았네.


사회적, 정치적, 군사적으로 엉망진창이었던 70년대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만들어낸 유령들이 다시 되돌아와서 벌어진 사건을 파헤치는 소설 "오리온"은 탐정소설이자 미스터리 범죄소설이면서 주인공 "자토펙 판 헤이르던"이라는 남자의 타락과 구원을 보여주는 성장소설이기도 합니다. 광부인 아버지와 화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프리카너(남아공에 살고있는 네델란드계 백인)'인 "판 헤이르던"은 사춘기 무렵 몰래 훔쳐보던 욕정의 대상인 뒷집 이웃 여인이 잔혹하게 살해당한 일을 계기로 경찰이 되기로 결심하고 나중엔 경찰대학의 교수가 되기 직전까지 성공합니다. 하지만 당시 미국 FBI가 발표한 프로파일링 글을 읽고 자신에게 묘한 죄책감이었던 살해당한 여인의 사건을 다시 조사하면서 살인강도과의 경찰로 복귀하고 엘리트 경찰로 이름을 날리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의 멘토이자 파트너가 연쇄살인범이 쏜 총에 맞아 자신의 눈앞에서 죽었을때 엘리트 경찰 "판 헤이르던"은 무너지게 되고 그후로 5년간 스스로를 '나쁜 놈', '쓰레기'라고 생각하며 폐쇄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 그가 80년대 초에 신분을 세탁한 한 남자의 죽음을 조사하면서 다시 추적자의 본능을 되찾기 시작합니다. 뭐, 사실 그동안 보아온 탐정 캐릭터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설정인데 이 작품 "오리온"은 다른 소설이었으면 짧게는 한두 페이지, 길게는 한 챕터로 간단히 설명 했을 주인공의 과거 부분을 소설의 반 이상을 할애해 "판 헤이르던"의 고백 형식으로 채워갑니다. 그러니깐 각 챕터가 한 번씩 번갈아 가면서 삼인칭으로 현재의 사건을 보여주고 일인칭으로 "판 헤이르던"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작가 "디온 메이어"는 두 이야기를 교차시키며 모두가 선하다고 믿던 과거의 "판 헤이르던"과 모두가 악하다고 믿는 현재의 "판 헤이르던"을 보여주다 마지막에 가서 아무도 몰랐던 진정한 타락의 이유와 구원의 순간을 교묘하게 일치시킵니다.


나는 관습적인 삶에 들어서기 직전이었다.

당시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무엇보다 나는 나 자신을 믿었고, 그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선한 사람일 거라고 믿었다. 나는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는 선과 악의 갈등에 대해 철학적으로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선의 편에 있었다. 따라서 나는 선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마르네비크 사건에 강박적으로 매달렸음에도. 아마도 그 강박 때문에.


흑인 정권으로 바뀌어도 여전히 흑백갈등과 피가 마르지 않는 검은 대륙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배경으로 상당히 괜찮은 범죄소설이 나왔습니다. 작가의 명성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계약소식을 듣기 전까진 국내 출간은 무리라고 생각했는데 작가의 또 다른 작품 "프로테우스"와 동시 출간되었습니다. 클래식과 요리를 즐기는 타락한 탐정 "판 헤이르던"의 매력은 물론이고, 작가 "디온 메이어"의 글 솜씨도 훌륭합니다. 플롯이나 서사를 구축하는 솜씨도 노련하고 사실과 허구를 뒤섞어 현실성을 돋보이게 하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국적인 배경이 전해주는 매력은 덤입니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나라인 남아공의 범죄소설이라고 해도  이 작품을 즐기는데에는 딱히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물론 거리명이나 등장인물의 이름이 조금 어렵지만 요즘은 북유럽 스릴러들이 많이 나와서인지 적응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습니다. 작가 "디온 메이어"는 이제 전 세계 28개국에 번역, 출판되는 스타작가가 입니다. 거기다 "Benny Griessel" 시리즈 중 두 번째 작품인 "Thirteen Hours"는 헐리우드에서 영화화 될 예정에도 있습니다.

바로 이어서 동시 출간된 작가의 세 번째 작품 "프로테우스 : 토벨라의 심장(Proteus / Heart of the Hunter)"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토벨라 음파이펠리""오리온"에서 "판 헤이르던"을 돕는 코사족의 전사이자 범죄조직의 해결사입니다. "오리온"에서도 엄청난 매력을 뿜어냈었기에 "프로테우스"도 상당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새롭게 소개되는 독특한 배경의 범죄소설인 만큼 판매가 잘 돼서 작가의 작품들이 꾸준히 나와 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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