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는 책 - 세계 최고의 미스터리 작가들이 꼽은 세계 최고의 미스터리들
존 코널리 외 엮음, 김용언 옮김 / 책세상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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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의 범죄소설 작가 두 명 "존 코널리(John Connolly)""디클런 버크(Declan Burke)"가 함께 엮어서 2012년에 발표한 미스터리 비평 선집 "죽이는 책 : 세계 최고의 미스터리 작가들이 꼽은 세계 최고의 미스터리들(Books to Die for : The World's Greatest Mystery Writers on the World's Greatest Mystery Novels)"입니다. 전세계 문학권에서 걸작으로 추앙받거나 걸작으로 취급되어야 마땅한 미스터리 작품 121편을 현재 활발하게 활동 중인 20개국 119명의 장르작가들이("존 코널리""디클런 버크"는 두 편씩 선정) 엄선하여 비평한 선집인 "죽이는 책"은 2013년 '에드거 상' 비평/전기 부분 최우수 후보로 선정되었습니다.


왜 미스터리 소설은 그토록 오랫동안 지속적인 인기를 누려왔는가? 이 질문에 간단히 답하긴 힘들다. 미스터리 소설의 특징은 예리한 사회적 비판을 담을 수 있다는데 있다. 법과 정의 사이에 괴리가 발생했다는데 대한 우려, 타협적일지언정 어쨌든 질서를 향한 염원, 독자들은 미스터리 소설에서, 가장 비판적인 미스터리 작가들의 관점에서조차 마땅히 그리 되었어야 할 세계를, 즉 인간 최악의 본성이 아무런 저항 없이 승리를 거두는 것을 수수방관하지 않는 선한 남녀들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미스터리 소설은 이 모든 것을 건드리는 동시에 독자를 즐겁게 한다. 그리고 그 즐거움은 미스터리 소설의 수많은 특성 중 절대로 사소하게 취급할 수 없는 부분이다.

-서문 中- 존 코널리, 디클런 버크


전 세계 미스터리 작가들(다른 나라 작가들도 참여하지만 대부분이 영미권 작가들 입니다만)에게 그들이 사랑하는 소설에 대해 열변을 토할 기회를 주자!라는 두 작가의 단순한 결정에서 시작된 "죽이는 책"은 어쩌면 미스터리 소설 혹은 범죄소설의 팬들에겐 축복과도 같은 책일 수도 있습니다. 미스터리 소설의 효시처럼 인식되는 "에드거 앨런 포"의 1840년도 단편 작품들인 "뒤팽" 시리즈부터 2008년도 작품까지 소개되고 있어서 미스터리 소설의 역사와 흐름을 알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잘 몰랐던 유명한 작가나 작품에 대해서 알게 되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정말로 좋아하는 혹은 숭배하는 단 한권의 작품이 무엇인지도 알게 됩니다. 그중엔 미스터리 소설 역사상 걸작으로 추앙받는 작품들도 있고 당연히 걸작으로 추앙받아야 하지만 빛을 보지 못하고 이제는 절판되거나 기억속에서 사라진 작품들도 있습니다. 119명의 작가들은 각자 자신들만의 글 쓰기와 형식으로 이 작품을 왜 좋아하는지, 이 작품이 왜 걸작인지, 이 작품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등에 관해서 이 책안에서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안녕 내 사랑"을 읽으면서 나는 어떤 위대한 진실을 흘끗 엿볼 수 있었고 내 손아귀에 그것을 잡아둔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 "안녕 내 사랑"은 신화였기 때문이다. 신화는 느낄 순 있지만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진실이다. 신화는 우리의 희망과 꿈을 가둬둔 채 자물쇠를 채워버린 집과도 같다.

그리고 챈들러는 내게 그 열쇠를 주었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안녕 내 사랑", 조 R. 랜스데일-


8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121편의 작품들을 다루고 있어서 얼핏 너무 길고 지루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모든 챕터들 마다 색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물론 다루는 작품 중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거나 오래전에 출간되어서 이제는 절판된 작품들도 상당히 많지만 이 책을 즐기는데에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물론 이 장르의 팬들에게) 거기다 비평집이라고는 하지만 대부분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 형식이어서 산문 자체로도 꽤 즐길 부분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작가가 되기 전 팬레터를 보내다 교류를 쌓아 결국 존경하는 "로스 맥도널드"와 저녁식사를 같이 하게 된 "린우드 바클레이", 은퇴하신 아버지에게 책들을 사다주다가 아버지가 극찬을 하게 돼서 처음으로 "리차드 프라이스""클락커스"를 만나게 된 "가 앤서니 헤이우드",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작품들을 읽어봤냐는 질문에 한동안 읽어봤다고 거짓말하다 뒤늦게 읽고 팬이 된 "리사 러츠", 문학을 가르치던 교수 시절에 "엘모어 레너드"에게 그의 작품 속에서 패턴을 발견했다며 쓴 편지를 보냈는데, 그가 독서모임의 강연소재로 팬들에게 그 편지를 자주 낭독하며 팬들과 함께 조롱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친해지고 나서야 "엘모어 레너드"에게 직접 듣게 된 "제임스 W. 홀" 등 흥미롭고 웃음이 나는 부분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좋다, 그의 그런 자세를 인정하겠다. 어찌 됐든 그건 내 소설이 아니라 그의 작품이니까. 그는 자신이 어느 지점에서 하찮은 학계 인물보다 훨씬 더 뛰어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빌어먹을! 입이 근질거려서 더는 못 참겠다. "라브라바"에는 정말 미쳐버리게 많은 흑백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그게 죄다 우연이었다고는 죽어도 못 믿겠다.

-엘모어 레너드의 "라브라바", 제임스 W. 홀-


"죽이는 책"이 국내에 번역, 출간되어서 제가 가장 감사하는 부분은 앞에서 잠깐 언급했던 미스터리 소설의 역사와 흐름을 한눈에 알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애드거 앨런 포"를 시작으로 "찰스 디킨스"(분명 의아해 하실 분들도 계실테지만 "두 도시 이야기""황폐한 집"은 분명 범죄와 공포를 다루고 있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아서 코난 도일" 그리고 스타일이 다른 두 거장 "대실 해밋", "애거서 크리스티"를 지나 "레이먼드 챈들러", "로스 맥도널드", "조르주 심농",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조세핀 테이", "마이 셰발" & "페르 발뢰", "트루먼 커포티" 등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마이클 코넬리""이언 랜킨" 등을 지나 "데니스 루헤인""로라 립먼"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이 모든 걸 읽고 나면 미스터리 소설 혹은 범죄소설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어떻게 스타일이 나눠지고, 어느 기점에서 새로운 형식들이 탄생되었으며, 다른 스타일들이 어떻게 통합되고 변형되어 왔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 장르가 사회현상과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장르라는 사실 역시도 알수 있게 해줍니다. 사회가 겪는 큰 변화와 충격들은 작품들의 탄생에 상당히 밀접한 연관이 있고 그래서 꽤 많은 작품들이 배경이 되는 사회와 도시를 또 하나의 캐릭터처럼 다룬다는 점이 가장 알기 쉬운 예라고 생각합니다. 몇 작품들은 처음부터 사회 비판을 다루기 위해 범죄소설의 틀을 사용한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드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거기다 사회가 변화하면서 여성 작가들이 점점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범죄소설 속 여성 캐릭터들의 위치와 역할들이 어떻게 변하게 되는지도 목격할 수 있습니다.


무심한 악당들은 선한 남녀를 하찮은 존재처럼 내버린 다음 그들의 거대한 무심함 속으로 퇴각한다. 하지만 그런 결말에조차 여전히 용서의 여지가 남아 있다. 이 작품의 영웅적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패배한 남녀들에게도, 희망은 여전히 존재한다. 희망. 고동치는 심장. 머나먼 집을 향한 약속.

-제임스 크럼리의 "라스트 굿 키스", 데니스 루헤인 -


"죽이는 책"은 미스터리 소설의 관한 자료집이나 사전같은 역할도 가능합니다. 작품들은 연대순으로 되어있어서 목차를 보고 그 시대의 중요한 작품들을 찾아보는 것도 가능하고 짬짬이 연대별로 골라서 다시 읽기도 좋아 여러번 재독하기에 아주 적합한 구성이어서 팬인 독자들에겐 소중한 자료들이 되고 이제 입문하는 독자들에겐 이 장르의 좋은 안내서나 지침서가 되어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장점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추천하는 책이 무엇인가? 좋아하는 작가를 미스터리 소설 작가로 만든 계기가 된 작품이 무엇인가?(많은 작가들이 자신이 이 장르의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하게 만들거나 큰 영향을 준 작품을 꼽았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이 몇 편이나 언급되는가?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다른 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저에겐 상당히 즐거운 요소 중에 하나였습니다. 몇몇 작가들이 내가 예상한 작품들을 골랐을 때는 웃음도 나더군요.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긴 합니다. 바로 표기법의 오류나 기출간작들의 표기법과의 불일치인 부분들입니다. 물론 방대한 작품들과 작가들을 다루고 있다보니 철저히 모든 걸 조사하기엔 무리가 있겠고 출간되었더라도 이젠 절판이 되어 자료를 찾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만 너무 좋은 책이라 이런 부분들이 아쉬운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사실 이런 오류들도 일반 독자들이야 거의 눈치 채지 못하겠지만... 하지만 제목은 정말 잘 지었습니다. "Books to Die for""죽이는 책"이라고 바꾸다니. 두 가지 의미를(범죄소설에 대한 책과 정말 끝내주게 재미있는 책) 동시에 지닌 너무 멋진 제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위대한 범죄소설가들이 몇몇 존재하지만, 덱스터만큼-또는 마이클 코넬리만큼- 실제 삶의 만화경 같은 양상을 유능하게 포착한 작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디테일을 잡아채는 감식안,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력, 그리고 독자를 이야기 한복판으로 곧장 끌어들이는 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귀, 그는 독자가 낚였다고 알아차리기도 전에 이미 그렇게 옴짝달싹 못하게 붙들어놓는다.

-콜린 덱스터의 "우드스톡행 마지막 버스", 폴 찰스-


미스터리 소설 혹은 범죄소설, 아니 이 장르를 어떻게 부르던 (이 책에서도 많은 작가들이 미스터리 소설, 범죄소설, 스릴러를 혼용해서 쓰고 있습니다. 영국작가들이 대부분 범죄소설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게 재미있던 점입니다.) 이 장르를 좋아하는 팬이시라면 절대적으로 추천드립니다. 비평 선집이라고 하지만 절대 어렵거나 따분한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엄청나게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저는 한마디로 이 "죽이는 책"을 미스터리 작가들이 자신이 숭배하는 작가와 작품들에게 보내는 연애편지, 팬 레터 혹은 신앙고백을 모아놓은 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런 작품을 출간해준 출판사에게 무안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예전에 범죄소설 작가들이 자신의 캐릭터 탄생에 대해 쓴 글을 모은 "라인업"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평생을 두고두고 여러번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난 것 같아 너무 기쁩니다. 제목 그대로 정말 죽이는 책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서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구를 소개하는 걸로 끝내겠습니다.


장르소설과 순문학(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다. 물론 이견이 있을 수 있다.)사이의 경계는 몇몇 이들이 믿고 싶어하는 것처럼 그렇게 선명하지만은 않다. 결국 미스터리 장르 자체를, 그리고 위대한 글을 쓰도록 허락하고 북돋고 그리하여 위대한 문학을 탄생시킨 미스터리 장르의 능력을 묵살하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그 속물근성 때문이 아니라-물론 그 때문에도 비난받아야 하지만-소설의 본성과 그 안에서 장르가 점한 위치에 대한 근본적인 몰이해 때문에 유죄 선고를 받아 마땅하다. (...) 미스터리 소설은 형식이자 메커니즘이다. 그것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도구다. 나쁜 작가의 손에선 형편없는 소설이 나오겠지만, 위대한 작가들은 미스터리 장르를 통해 마법을 창조할 수 있다.

-서문 中- 존 코널리, 디클런 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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