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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릴리언스
마커스 세이키 지음, 정대단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미국의 스릴러 작가 "마커스 세이키(Marcus Sakey)"가 2013년에 발표한 액션 스릴러 "브릴리언스(Brilliance)"입니다. 그동안 국내에 출간된 작가의 작품들인 "칼날은 스스로를 상처입힌다" 나 "대니얼 헤이스 두 번 죽다" 와는 달리 SF적 요소가 가미된 이 작품은 작가가 삼부작으로 기획한 The Brilliance Saga 중 첫 번째 작품입니다. 미국에서 출간된 후 평단과 대중의 호평으로 2014년 '에드거' 상 최우수 오리지널 페이퍼백 부분에 후보로도 올랐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관심의 초점은 주로 이들이 태어나는 원인에 집중되었다. 이 아이들이 어디서 왔는가? 하필 왜 지금인가? 이런 현상이 영원히 계속될 것인가? 아니면 시작됐을 때처럼 어느 날 갑자기 끝날 것인가?
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 여기저기 어렴풋이 떠돌기만 하는 질문이 있었다.
우리 모두의 혀끝에서만 머물지만, 그 대답이 두려워 좀처럼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물음이었다.
이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1986년 12월 12일, <뉴욕 타임즈> 사설에서 발췌-
1980년을 기점으로 100명 중 한 명 꼴로 경이로운 특수한 능력을 지닌 아이들이 태어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브릴리언트'라고 불렀고 30여년이 지난 후 이 '브릴리언트'들이 성장해서 각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물론 나쁜 쪽으로도. '브릴리언트'들이 저지르는 범죄와 테러를 막는 정부조직 DAR의 최정예 요원 "닉 쿠퍼" 역시 사람들의 근육과 행동 패턴을 읽어 미리 예측할 수 있는 '브릴리언트'입니다.
"당신 능력은 뭐지?"
"패턴 인식. 특히 보디랭귀지에 최적화돼 있지."
쿠퍼는 두 사람의 거리가 불과 열 걸음 남짓이 될 때까지 바스케스에게 다가갔다. 베레타 권총은 아래로 향한 채였다.
"그래서 그렇게 빠르게 움직였군."
"난 당신보다 빠르게 움직이지 않아. 그저 당신이 어디를 공격할지 아는 것뿐이지."
"멋지군. 그 능력을 이용해 동족을 사냥하다니. 그 일이 좋아?"
컴퓨터 프로그램을 단순한 3차원 패턴으로 읽을 수 있거나,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복잡한 계산을 단번에 할 수 있는 아이들이 1980년부터 태어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그 아이들을 '브릴리언트'라고 부르고, 어떤 부모들은 곧 태어날 자신의 자식들이 '브릴리언트'로 태어나길 바라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주식 시장을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는 '브릴리언트'가 3000억 달러를 챙겨 뉴욕 증권 거래소를 폐쇄하게 만들고 연이어 국제 증권 시장까지 없어지게 만들면서 세상은 혼란에 빠집니다. 그 후로 평범한 사람들, 즉 노멀들은 '브릴리언트'를 두려워하기 시작하며 변종, 돌연변이, 능력자 등으로 부르며 경계하기 시작합니다. 단 한사람의 '브릴리언트'가 야기 시킨 혼란에 미국 정부는 '분석. 대응 부서' 즉, DAR(The Department Of Analysis and Response)를 창설합니다. 그리고 얼마 뒤 '브릴리언트' 테러리스트 "존 스미스"가 상원의원과 어린아이를 포함한 민간인 70여명을 총살하는 사건이 발생하며 유일한 대응책인 DAR은 미국 내에서 가장 막강한 특권을 가진 조직이 됩니다. DAR 내에서도 타깃이 된 '브릴리언트'들을 추적하고 제거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공정국의 최정예 요원이자 사람들의 행동패턴을 읽을 수 있는 '브릴리언트' "닉 쿠퍼"는 위험한 바이러스를 퍼트리려는 프로그래머를 추적하다 더 큰 테러에 대한 단서를 발견합니다. 그 단서는 DAR의 최우선 타깃인 "존 스미스"와 연결되어있고 그를 추적하기 시작하는 "닉 쿠퍼"는 엄청난 음모를 알게 됩니다. 결국 "닉 쿠퍼"는 "존 스미스"를 잡기위해 스스로 위험한 선택을 합니다.
"얘야, 넌 이상하지 않아. 넌 완벽하단다." 쿠퍼가 딸의 뺨을 두드렸다.
"잘 들어. 이건 갈색 머리카락을 가지거나 머리가 좋은 것과 다를 바가 없어. 그저 네 일부란다. 그게 네가 누군지 결정하진 않아. 너 자신이 결정하는 거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한 번에 한 가지씩 네가 정하는 거야."
"하지만 엄마는 왜 무서워하는데?"
1980년을 기점으로 특수한 능력을 지닌 돌연변이들이 태어났다는 설정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 "브릴리언스"는 약간의 SF적 요소와 대체역사적 요소가 들어간 액션 스릴러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브릴리언트'들은 엑스맨들 처럼 눈에서 레이저를 쏘거나 불노불사의 몸을 지녔거나 하늘을 나는 돌연변이들이 아닙니다. 단지 한 부분의 능력이 특수하게 발달된 돌연변이들입니다. 이들은 특수한 능력을 제외하면 통계적으로 정상범위에 들어가는 평범한 인류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서번트 증후군'과 비슷합니다. 다른 점이라면 '서번트 증후군'인 아이들은 특수한 능력 대신 결핍되는 요소로 어떤 식으로든 장애를 가지게 되지만 '브릴리언트'들은 장애가 없이 태어난 겁니다. 이들이 어떻게 태어나게 됐는지 끊임없이 연구가 됐지만 진전은 없는채 '브릴리언트'들이 자라 어른이 되면서 세상은 바뀌어 버립니다. 엄청난 기술 발전과 의료 기술의 발달은 물론이고 예체능에서도 엄청난 진보가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세계 증권 시장이 무너져 버리는 계기로 노멀들에게 그저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브릴리언트'들은 경계심을 가지게 되는 대상이 되어버렸고 차별과 통제의 움직임이 시작됩니다. 모든 아이들은 8살이 되면 검사를 받아 1급 '브릴리언트'로 판명되면 아카데미로 보내져 특수교육을 받게 되고 늘어나는 '브릴리언트'들의 범죄로 인해 그들의 몸에 칩을 넣자는 법안까지 진행 됩니다. 그러자 주식시장을 붕괴시켜 최대의 재벌이 된 '브릴리언트' "에릭 엡스타인"은 와이오밍 주에 '뉴 가나안'이라는 '브릴리언트' 주거지역까지 만들어 미국으로부터 독립을 추진하면서 갈등은 증폭됩니다. 결국 세상은 종교적, 인종적 분쟁이나 빈부간의 갈등이 점점 사라지고 대신 '브릴리언트'와 노멀들의 갈등과 분쟁을 중심으로 혼란스러워 집니다.
쿠퍼가 진심으로 저주라고 생각하는 몇 안 되는 능력 중 하나였다. 리더들은 타인과 만나는 매 순간 거짓말의 강에서 헤엄쳐야 했다. 더 나쁜 점은, 그들이 인격의 부정적인 요소들, 심리학자 융이 말했던 인간의 마음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그림자, 고문과 고통과 모욕을 즐기는 부분을 알아본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욕구를 제어하며 다른 방식으로 표출했다. 포르노 영화, 공격적인 스포츠, 폭력적인 공상 같은. 그것은 인간이라는 동물의 한 부분이었고, 대체로 무해했다. 생각은 생각일 뿐이고, 어쨌거나 꽁꽁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더들은 주위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그런 면을 봐야만 했다.
소설의 주인공인 DAR의 공정국 소속 요원 "닉 쿠퍼"도 '브릴리언트'입니다. 그는 사람들의 얼굴 근육을 보고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알 수 있고 근육의 움직임으로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할지 미리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추적하는 타깃의 집을 살펴보고 패턴화 시켜서 그들이 어디로 갈지 어떤 행동을 할지 미리 예측이 가능합니다. 애국심과 특수한 능력 덕분에 공정국 내에서도 엄청난 특권을 누리는 최정예 요원인 그는 국가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과 노멀인 아들, '브릴리언트'인 딸이 더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흔들림 없이 '브릴리언트' 범죄자들을 제거해 나갑니다. 그리고 최우선 제거 타깃인 "존 스미스"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는 단서를 얻고 접근을 해 나아가지만 다시 한번 미국을 엄청난 혼란에 빠트리는 테러를 막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닉 쿠퍼"는 자신 스스로를 위험에 빠트리는 암살 작전을 계획하고 "존 스미스"에게 접근하기 위해 고독하고 힘든 임무를 진행합니다. 도망자로 위장해서 '브릴리언트'들의 집단 거주지 '뉴 가나안'까지 흘러 들어가는 동안 "닉 쿠퍼"는 자신이 모르던 '브릴리언트'에 대한 차별과 탄압을 목격하게 되고 점점 자신이 믿던 신념에 틈이 생기기 시작하는걸 알게 됩니다. 그리고 또 다른 거대한 음모와 마주하면서 자신이 쫒던 악과 모르고 있던 또 다른 악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내년에 DAR이 도입할 장비가 궁금하다면, 와이오밍의 아무 술집이나 들어가 보라는 농담도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뉴 가나안의 진정한 방어 수단이었고, 고립된 지정학적 위치나 엡스타인이 보유한 수백만 달러의 자산보다 더 강력한 패였다. 자기 분야에서 최고에 가까운 능력자들은 혼자서도 기술 진보를 몇십 년씩 앞당겨 왔다. 여기서는 그들이 힘을 합쳐 일했고, 그 결과는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미국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군대가 필요하지 않아. 사람들이 그것 없이는 못 사는 물건을 만들기만 하면 되지.
작가 "마커스 세이키"는 돌연변이인 신인류의 등장이라는 SF적 소재로 훌륭한 액션 스릴러 작품을 내놓았습니다. 읽어본 작품이 세권밖엔 안 되지만 작가의 최고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어찌 보면 단순히 오락거리로 즐길 수 있는 액션 스릴러 작품이지만 이 소설안에는 편견과 차별, 탄압과 저항, 음모, 선과 악의 모호함, 정치적 이중성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거기다 특수한 능력이란 소재 덕분에 이런 장르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반전과 추리에 대한 헛점도 깔끔하게 정리됩니다. 물론 이 작품에 담겨진 이야기들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들은 아닙니다. 돌연변이들과 평범한 사람들의 갈등과 차별은 엑스맨 같은 영화나 그래픽노블에서 봐왔고 소설 속에서도 언급되는 '뉴 가나안'이라는 도시 이름이나 유대 과격당파인 열심당과 로마제국의 관계 등 역사적 사실에서 차용한 요소들도 꽤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 "마커스 세이키"는 어디선가 본 듯한 요소를 솜씨 좋게 잘 섞어서 새로워 보이는 이야기로 이루어진 멋진 스릴러 작품을 써냈습니다.
작년에 레전더리 픽처스에서 "브릴리언스"를 영화화 한다고 발표했었습니다. "윌 스미스"와 "누미 라파스" 가 캐스팅 되었는데 "윌 스미스"는 하차하고 대신 "자레드 레토"가 후보에 올랐는데 그 역시도 하차한 듯 합니다. 아무튼 만일 제가 영화 제작자라고 해도 무조건 판권을 샀을 법한 확실한 엔터테인먼트 소설입니다. 덮자마자 아직 남아있는 이야기가 궁금해서 The Brilliance Saga 두 번째 작품인 "A Better World"가 미치도록 읽고 싶어지게 만들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