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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할런 코벤 지음, 이선혜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할런 코벤(Harlan Coben)"이 2013년에 발표한 스탠드언론 "6년(Six Years)"입니다. 이 작품도 역시나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일치감치 영화화가 결정되었습니다. 주인공 "제이크"역에는 "휴 잭맨"이 캐스팅 되어 조만간(?) 촬영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평범한 대학교수 "제이크 피셔"는 우연히 보게 된 부고에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합니다. 부고에 올라온 이름이 6년 전 자신에게 갑자기 결혼을 통보하고 떠난 전 연인 "나탈리"의 남편이었기 때문입니다. 6년 동안 하루도 "나탈리"를 잊고 산 적이 없던 "제이크"는 장례식에 참석하고 그곳에서 큰 충격을 받습니다. 장례식 장에서 본 미망인이 "나탈리"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결혼식 날 자신이 본 "나탈리"의 남편과 죽은 남자가 다른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제이크"는 "나탈리"의 행방을 찾기 시작합니다.
"약속해줘요, 제이크. 절대로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겠다고 약속해줘요."
내 인생의 사랑이 내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진짜 마지막 말. 그리고 6년이 흐른 지금, 나는 모든 것이 시작된 장소로 돌아와 있다. 약속을 깨뜨리기 위해서.
학과 논문을 쓰기 위해 휴양소에 간 "제이크 피셔"는 그곳에서 화가인 "나탈리"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제이크"는"나탈리"가 특별한 사랑이라고 느꼈지만 "나탈리"는 돌연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한다며 결혼식에 초대를 합니다. 결혼식 날 "나탈리"가 그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다시는 자신을 찾지 말아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6년 뒤, 랜포드 대학의 정치학 교수가 된 "제이크"는 어느 날, 학교 홈페이지에 의례적으로 올라오는 동문의 부고를 보고 자신에게 상처를 남긴 "토드 샌더슨"이라는 이름을 발견합니다. 그는 6년 전 "제이크"를 버리고 떠난 "나탈리"와 결혼을 했던 남자입니다.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려고 참석한 장례식장에서 "제이크"는 미망인이 "나탈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혼란에 빠집니다. 자신이 무언가 착각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제이크"는 둘이 처음 만났던 휴양소가 사라지고, "나탈리"가 결혼한 교회엔 그녀의 결혼식 기록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더 깊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더구나 "나탈리"의 여동생을 포함해서 당시에 그 둘을 알던 모든 사람들이 "제이크"를 처음 보는 것처럼 행동을 합니다. 결혼을 한 그 날 부터 6년 동안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는 "나탈리"를 찾는 "제이크"에게 정체불명의 남자들이 찾아오면서 "제이크"의 삶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이런 내 이야기에 머리를 끄덕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모두들 이제야 알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겠지. 나탈리와 나의 사랑은 모든 책임과 현실로부터 벗어난 가공의 세상에서 만들어진 여름날의 로맨스였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사랑과 집착은 뿌리를 내리지 않고서도 쉽게 꽃을 피울 수 있다. 9월의 찬 공기가 사방에서 밀려오면 시들어 죽을 운명이지만. 우리 둘 중 그나마 통찰력을 지닌 나탈리는 이러한 진실을 깨닫고 받아들였던 거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못했다.
3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의 사랑은 한 남자 너무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었지만 여자는 그런 남자에게 돌연 예전의 남자와 결혼을 한다며 청첩장을 줍니다. 현실을 부정하던 남자는 결국 결혼식까지 가서 자신의 사랑이 끝났음을 확인합니다. 자신들 앞에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여자를 6년 동안 잊지 못하며 살던 남자는 여자의 남편이 죽은 사실을 알고 장례식에 찾아가면서 그동안 둘이 공유하던 기억과 사람들을 철저히 부정당하게 됩니다. 예, 언제나 그렇듯 "할런 코벤" 스타일의 스릴러 소설입니다.("마이런 볼리타" 시리즈는 제외 해야 겠죠.) 물론 작품들 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오랫동안 진실이라고 믿고 있던 사실과 과거에 숨겨진 또 다른 진실 사이를 헤메는 스타일의 스릴러입니다. 특히나 이번 소설은 작가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어준 대표작 "밀약(Tell No One)"을 연상 시킵니다. 지고지순한 러브스토리와 숨겨진 진실을 찾아가는 스릴러의 결합이라는 기본 얼개뿐 아니라 소설 곳곳에 "밀약"의 흔적이 묻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미국에서도 엄청난 히트를 한 작품입니다. 역시나 책을 읽고 난 뒤 이 작품은 2013년 판 "밀약"이군' 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재미는 있지만 작가가 자신이 가장 잘 쓰는 이야기를 다시 반복한 느낌에 살짝 실망감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없는 작품에 대한 감상은 남기지 않지만 이 작품이 재미가 없진 않았기에 뭐라도 써야지 하고 우물쭈물 하고 이틀 정도 지나고 나니 이 작품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뭐'랄까 읽으면서 내내 마음에 걸렸던 부분이나 마음에 안 들던 캐릭터의 성격들이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터무니없는 생각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절망은 우리를 농락할 수 있다. 우리가 절망에게 마음껏 해설할 수 있는 재량권을 부여하는 순간, 절망은 대체 가능한 답을 찾아낸다.
제일 마음에 안든 건 주인공 "제이크"란 캐릭터 였습니다. 나이에 맞지 않게 구식이지만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대학교수인 이 남자의 순애보는 어느정도 이해한다고 쳐도 자꾸만 모든 걸 혼란스럽게 만들고 주위를 위험에 빠뜨리는 융통성 없는 행동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뭐 자기 자신도 그런걸 알고 있고 내적 갈등도 하지만 '니가 가만히 있으면 모든게 여기서 멈출거야'란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물론 그가 그렇게 행동해야만 하는 전개가 중간부터 펼쳐지긴 합니다. 그런데 다 읽고 나서 시간이 지나니 빈약했다고 느꼈던 설정이나 이야기 구조가 조금씩 납득이 되고 이 남자가 나쁘지 않은 캐릭터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니깐 저는 감성이 메말라서 인지 처음부터 고작 3개월 간 사랑했던 여자가 다른 남자의 여자가 되버린 후에도 6년 동안 내내 잊지 못하고 끊임없이 사랑했다는 것 자체를 있을 수 없는 이야기로 치부해버리고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세상에 그런 남자가 어디있어?'에서 '있을 수도 있지'라고 생각을 바꿔보니 "제이크"의 융통성 없고 순수한 성격이 결국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이 작품 "6년"에서는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와 미래가 다 변하고 바뀌어 뒤틀리지만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건"제이크"의 사랑 하나 뿐이라는 걸 알게 되니 이 작품에 대해 평가가 달라지더군요.
사실 "나탈리"의 이야기도 중반을 넘어가면서 미스터리나 스릴러 소설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대충 짐작되는 방향으로 흐르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이나 흐름이 좋습니다. 간간히 나오는 유머도 좋고 구성 자체도 작가가 공 들인 부분이 꽤 많습니다. 거기다 흠 잡을데 없는 "할런 코벤"의 글 솜씨는 여전해서 한번 잡으면 하루에 다 읽을 수 있습니다. 뭐, 결국 재미는 있다는 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게 희망이에요. 죽는 게 차라리 낫죠. 죽으면 고통도 끝나니까요. 하지만 희망은 사람을 끊임없이 높은 곳으로 데려가죠. 오직 딱딱한 바닥에 떨어뜨리기 위해서 말이에요. 희망은 그 손으로 사람의 심장을 부드럽게 감싸 들었다가 주먹을 쥐면서 으스러뜨리죠. 끊임없이 이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멈출 줄을 모른답니다. 이게 바로 희망이 하는 일이에요."
작가 "할런 코벤"의 작품들은 "마이런 볼리타" 나 "미키 볼리타"시리즈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일상을 뒤흔들게 되는 숨겨진 진실을 찾는 이야기입니다. 그 안에서 매번 다른 소재와 상황을 가지고 자유자제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가의 솜씨는 일류급입니다. 바로 전에 읽었던 "숲"이나 "용서할 수 없는"이 너무 좋았고, "밀약"과 비슷한 구조여서 동어반복이라고 느껴서인지 처음엔 조금 실망을 했지만 그렇던 아니던 재미있는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출간 즉시 파라마운트가 판권을 사서 "휴 잭맨"을 캐스팅 한 걸 보면 많은 사람들이 "할런 코벤"에게 기대하는 이야기가 이런 이야기 일수도 있구나란 생각도 듭니다. 조금 아쉬운 소리를 했어도 이 작품 "6년" 재미있습니다. 딴 생각 안하고 즐기기엔 안성맞춤입니다. 특히 "할런 코벤"을 처음 접해본 분들이라면 더 재미있게 읽으실 듯 합니다. 여담이긴 하지만 소설 속 "제이크"의 외모와 "휴 잭맨"의 외모가 잘 어울려 보여서 영화도 상당히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