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무소유 - 법정스님 이야기
정찬주 지음 / 열림원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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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법정 스님이 입적하셨다.
연세가 많으심을 알았지만, 늘 그렇게 우리들 곁에 계실거라고 믿었었다. 작년 초에 "아름다운 마무리"를 읽으면서도 스님의 인생 마무리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스님께서 서서히 준비하신 인생의 마무리를 나는 눈치도 못챘었다. 그래서 스님의 입적소식을 들었을 때 무척이나 놀랐고 서운했다. 스님의 죽비와 같던 글이 생각났다. 정신 바짝 차리게 해 주던 글들이 많이 그리웠다.
이젠 더이상 스님의 새로운 말씀을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참 많이 아쉬웠다. 그러던 차에 소설 무소유를 만나게 되었다. 스님의 글을 10년이상 출간해 온 출판사 편집인이었던 정찬주님께서 스님과의 오랜 인연을 바탕으로 스님의 일대기를 소설 형태로 썼다고 했다. 얼른 책을 펴들었다.

 전지적 작가 시점을 가진 소설이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은 내가 카메라맨이 되고, 스님이 주인공이 되어 삶의 다큐멘터리를 찍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부분의 스님들이 출가 전의 상황에 대해서는 언급을 잘 하시지 않으셔서 나도 법정스님이 어떤 과정을 통해 출가를 하셨는지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스님이 왜 출가를 하셨는가를 알게 해 주고, 어떤 스승을 만나 무소유라는 화두를 가지게 되셨고, 왜 맑기 향기로운 삶을 살기를 갈구하셨는지를 알게되었다.
  법정. 법의 정수리에 서라는 뜻에서 효봉스님께서 지어주신 법명처럼 스님은 늘 인간과 생명을 소중히 여기시고, 세상 사람들이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참으로 열심히 구하시면서 살아오신 분이다.   30년전에 시주받은 비누조각만 사용하는 효봉스님에게 새로 하나 구입하겠다고 했다가 
  "중이 하나만 있으면 됐지 왜 두 개를 가지겠느냐. 두 개는 군더더기이니 무소유라 할 수 없느니라"라는 말씀을 듣게 되었다.
무소유. 두 개를 갖지 않는 청빈, 나에게 필요하지 않으면 소유하지 않는 마음을 이때부터 가지시게 되셨다. 항상 이웃과 나누는 삶을 즐기셨다. 아버지 없이 혼자 살림을 맡으셔야했던 부모님때문에 등록금 걱정을 하면서 살아야했던 설움을 너무나 잘 아셨기때문에 남모르게 대학생들을 돕기도 하셨다.
 
효봉스님의 시자노릇을 하던 상계사 탑전사,
'본질적으로 내 소유란 없다. 어떤 인연으로 해서 내게 왔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가버린다. 나의 실체도 없는데, 그 밖에 내 소유가 어디 있겟는가. 그저 한동안 내가 맡아가지고 있을 뿐이다'의 무소유를 완성한 다래헌,
다람쥐, 꿩들과 한식구가 되었던 불일암,
오두막처럼 맑은 가난속에서 살 것을 발원했던 강원도 오두막 수류산방,
맑고 향기로운 삶을 나눠 주시고자 했던 길상사에서의 발자국들이 오롯이 남아 있다.
스님은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일을 실행하라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  하나는 자신을 속속들이 지켜보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관리, 감시하며 행여라도 욕심냄이 없도록 산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콩 반쪽이라도 나눠 갖는 실천행이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어 있어야합니다."

  스님이 계시지 않는 곳에서 울려퍼지는 스님의 음성이 욕심과 자만으로 가득찬 나를 일깨워주시는 듯 하다.
무염 정찬주 거사께서 마련하신 스님의 흔적.
고이 고이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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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언젠가 - 개정판
츠지 히토나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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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츠지 히토나리의 작품으로는 '냉정과 열정 사이' 이후로 2번째 만나는 작품이다.  딸아이가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간호하면서 읽었던 책이니 벌써 8년전이었나 보다. 그동안 많은 작품을 썼을테지만 나와 인연이 닿지 않았는데, 이번에 츠지 히토나리의 부인 나카야마 미호 주인공으로 영화화 된다고 해서 읽어보기로 마음 먹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원작을 봐야한다는 나름의 철칙이 책을 가까이 당겼다고 볼 수 있다.
 

가정을 꾸미기에 적당한 좋은 여자가 있어 결혼하려 계획을 세우고 있는 중에, 눈앞에 지극히 아름답고 매혹적인 여인이 나타나버렸다. 우유부단한 유타카는 결혼은 결혼대로 추진하면서 매혹적인 토우코와의 만남도 진행한다. 즉, 인류 사회에 결혼 제도가 유지되는 한 결코 마르지 않을 소재 "불륜"에 관한 이야기이다.

  법적인 관계,혹은 도의적으로 책임이 있는 관계의 연인이외에 또 다른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떤 사랑을 선택하는지에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대부분 어느 한 쪽을 선택하면 이야기를 마무리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렇지 않다.

먼저 손가락질 받아 마땅한 관계, 불륜 관계를 서슴없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어느 사랑이 먼저이기때문에 옳고, 올바른 사랑 뒤에 왔기때문에 그르다고 말하지 않는다.

한 사랑이 어느 한 사랑을 나쁘다고 불법이라고 머리채를 잡고 흔들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이 최선을 다해 사랑했고, 사랑한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다.

 

인간은 늘 이별을 준비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야

고독이란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 친구라고 생각하는 게 좋아

사랑 앞에서 몸을 떨기 전에, 우산을 사야 해

아무리 뜨거운 사랑 앞이라도 행복을 믿어서는 안 돼

죽을 만큼 사랑해도 절대로 너무 사랑한다고 해서는 안 되는 거야.

 

사랑은 계절과도 같은 것

그냥 찾아와서 인생을 지겹지 않게 치장할 뿐인것

사랑이라고 부르는 순간, 스르르 녹아버리는 얼음 조각

 

안녕, 언젠가

 

영원한 행복이 없듯

영원한 불행도 없는 거야

언젠가 이별이 찾아오고, 또 언젠가 만남이 찾아오니

인간은 죽을 때, 사랑받는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과

사랑한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는거야

 

난 사랑한 기억을 떠올리고 싶어.

 

주인공 유타카의 정혼녀 미츠코가 유타카에게 지어 준 시이다.

처음엔 사랑받는 기억을 떠올리겠다던 토우코도 진정한 사랑을 하고 난 뒤에는 사랑한 기억을 떠올리고 싶다고 고백한다.

언젠가 헤어지고, 언젠가 만나는 인생에서 순서에 관계 없는 사랑, 깊이에 관계 없는 사랑,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준 의미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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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 노희경 원작소설
노희경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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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노희경. 그녀는 드라마 작가이다. 드라마를 안 보는 편은 아닌데 한 번도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는 본 적이 없다.  시청률과 상관없이 항상 마니아를 형성하는 드라마로 유명하다고 한다. 소설가가 드라마와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도 하고, 시나리오 작가가 소설을 쓰기도 하는 시대이다. 그러나 노희경은 늘 자신이 드라마 작가임을 주장하고 소설 쓰는 것을 꺼려왔다고 한다. 그러던 그녀가 제 3세계와 북한 어린이를 돕기위해 인세를 이용하기로 했단다. 그래서 써 낸 책들, 거짓말, 그들이 사는 세상,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 바로 그런 책이다. 그녀의 드라마는 보지 않았지만, 세상의 불행한 어린이를 돕기 위해 인세까지 기부하는 그녀의 선행에 도움이 되고 싶어 그녀의 작품을 골라 읽기로 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노희경 작가의 삶이 녹아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한참 아빠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영화가 한참이더니, 요즘은 또 엄마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영화가 자주 눈에 띈다. 엄마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은 대체적으로 눈물을 요구한다. 우리들의 엄마란 그런 존재이다. '나'는 없어도 '자식'은 있는 그런 분이다. 엄마라고 불리는 나는, 요즘의 젊은 엄마들은 그렇게 살지 않는다. '나는 아이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라는 책 제목도 있듯이, 자식도 중요하지만 내 삶도 어느 정도 챙기면서 산다. 하지만 우리들의 어머니는 이 세상 무엇보다 가정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가정을 위해선 내 한몸 산산히 부서져도 좋다고 생각하시며 살아오셨다.
  이 책의 '엄마'역시 그러하다. 50대 후반의 아내이자 엄마이자 며느리인 인희에게는

사고로 개인병원을 날려먹고, 월급 의사로 젊은 원장 눈치보느라 힘겨워하는 남편,

하면 안 되는 사랑에 빠져 삶과 사랑의 무게를 못 이기는 딸, 연수,

삼수 생활 하느라 집안의 대왕 노릇을 하며 안하무인인 아들 ,정수,

젊었을 때는 며느리를 구박하다가 나이 들어서는 치매에 걸려 며느리를 너무나 힘들게 하는 시어머니가 가족이다.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는 이 가족 구성원에게 구심점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엄마인 인희이다. 엄마는 늘 그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으로 내가 어떤 자리에 있든, 어디에 있든 나를 믿어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 구성원들에게 청천벽력은 엄마의 자궁암 말기 소식이다.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던 엄마를 최우선 순위를 매길 수 밖에 없는 순간이 되어서야 엄마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최후의 순간까지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 애쓰는 엄마를 보면서 얼마나 눈물이 났는지 모른다.

그렇게 소중한 부모님이라는 걸 알면서도  평상시는 고마움을 모르는 우리들의 무지함이 더욱 슬펐다. 나에게는 아직 친정부모, 시부모가 살아계시다. 가끔씩 친구, 동료들의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것을 보면서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을 먹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그 결심이 어느덧 사라진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들의 행복을 손모아 기도하시는 부모님!

자식들의 무지함까지 사랑해 주시는 부모님!

늘 건강하시고 감사하다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노희경 작가!

당신의 드라마는 보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당신의 맑은 영혼을 느낄 수 있는 드라마, 책을 즐겨읽어야겠다 다짐해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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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바람을 걷는 소년
나디파 모하메드 지음, 문영혜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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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라고 하면 먼저 해적이란 단어가 연상된다.  얼마전 우리나라 삼호 드림호가 해적에 의해 피납되었을 때 딸 아이가 "소말리아는 대통령이 없어? 우리 나라 대통령이 소말리아 대통령한테 말해서 얼른 풀어줘라고 하면 되잖아"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소말리아는 대통령도 없고, 아예 정부라는 것도 없고, 그 나라 백성들이 해적질 해서 얻는 인질의 몸값이 그들의 주소득원이라는 것을 딸아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영국과 이탈리아의 식민지였으며 독립후 많은 세력들의 다툼으로 오랫동안 내전을 겪은 나라. 여행자들의 안전조차 보장되지 않아 여행금지국이 된 나라. 그 나라의 어린 아이의 이야기라했다. 사실은 아이들이 고통받는 이야기는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이가 주인공인 이야기는 거의 다 슬프기 짝이 없다.
특히 6.25와 오래된 가난이 배경으로 등장할 때면 아이들이 지나치게 고통받는 장면이 정말 싫다. 다른 서양의 어린이 책은 그야말로 희망과 창의, 호기심, 발랄함으로 가득차 있는데 이렇게 마음 아픈 이야기를 읽어내는 것은 인내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아프리카, 흑인 수탈의 근원지, 아프리카인의 삶, 특히 어린이의 삶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에 꾹 참고 읽어보기로 했다.

  큰 결심을 하고 책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아빠없이 엄마랑 친척집에 얹혀 지내는 주인공 자마의 비참한 삶에 가슴이 아렸다. 아빠 없는 아이들은 대부분 버려지고, 그런 여성들은 몸을 팔아 생활하는 소말리아의 도시, 아덴. 그래도 자마의 엄마는 '이 아이는 모든 성인들의 가호를 받아 천운을 지니고 태어날 것이다. 이 아이는 세상의 네 귀퉁이를 모두 볼 것이다'라는 출산 예언을 믿으며 키워냈다.
  서서히 다가오는 고난의 그림자가 있었으니 엄마의 죽음이다. 자마를 싫어하는 사람들 속에 남기고 엄마는 돌아가셨다. 의지할 곳 없고, 갈 곳 없던 자마가 생각해 낸 것은 아버지를 찾아 가자는 것이었다. 평온한 세상이었어도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곳을 어린 아이가 혼자 간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닌데, 식민지 시대 전쟁이 끊이지 않는 무더위의 아프리카를 가로질러간다니 그 어려움이란 말로 하지 않아도 뻔한 것이다.
  그러나 출산의 예언대로 자마가 힘들어할 때는 반드시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다.  야자수 아래 쓰러진 자마를 데리고와서 먹여주고 재워주며 가족이 되길 원하는 사람도 있었고, 트럭에 태워주는 사람도 있었으며, 애스카리라 불리는 아프리카인 용병들도 지속적으로 도움을 준다.
  모래 위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헤어지고, 그들의 나라를 무력으로 탈취한 유럽인들에게 말로 못할 수모를 받았으며 친구의 잔혹한 죽음도 경험해야만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떨 때 엎드려야 할지, 일어나야할지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던 자마는 사막위에서 아버지를 잃고, 그 자신이 아버지가 되어 다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 그들의 조국, 아프리카로 돌아간다.
  떠날 때는 어린 아이였지만, 돌아올 때는 아버지가 된 자마, 유럽 제국들에 의해 강탈당했던 아프리카의 정신을 되살려 조국의 지키고, 자식도 지키는 훌륭한 어른이 되길 빈다.

처녀작이라 그럴까? 아니면 번역의 문제일까? 장면 장면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고, 구성이 다소 산만하며, 제대로 연결되지 않은 에피소드들로 인해 읽는 작업이 다소 피로했었다.
하지만, 지금도 세계최빈국가로서 국민들의 행복을 보장할 수 없는 수많은 아프리카의 나라들이 제국주의에 의한 피해를 어서 줄여갔으면 좋겠다. 더불어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월드컵 성공이 아프리카 자주 정신을 드높이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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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노니는 집 - 제9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30
이영서 지음, 김동성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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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어린이 책이 나오면 눈여겨 보는 편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때문에 아이들과 같이 느낄 수 있는 책에 항상 목마르기때문이다. 기회가 닿으면 한 번 읽어봐야지 했었는데, 학교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는 것을 봤다.
  책과 노니는 집.

  올망똘망하게 생긴 한 사내아이가 소중한 보물을 안은 듯 책을 안고 있으며 그 아이 뒷편으로는 굉장히 많은 책들이 책꽂이에 꽂혀 있는 장면이 이 책의 표지이다. 아! 현대 이야기는 아니구나. 이렇게 책을 소중하게 들고 있는 아이에겐 어떤 사연이 있을까 싶어 조심스럽게 책을 넘겨본다.

  이 아이의 이름은 '장이'이다. 시대적 배경은 조선 말기. 천주교 박해가 있던 시절, 피붙이라곤 아버지 밖에 없었던 장이에게 큰 시련이 닥쳤으니 아버지의 죽음이다. 천주교 관련 서적을 필사했다는 이유만으로 잡혀서 고초를 당하다 결국 목숨을 잃게 된다. 이 세상 천지에 아무도 없는 외로운 신세가 된 장이가 어렵사리 삶을 꾸려갈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살아 생전에 같이 일하던 책방어른 최서쾌 덕분이다. 그 어른 밑에서 책 심부름을 하며 필사를 배우며 삶을 이어가던 중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났으니 홍문관 홍교리 어른이다. 천한 신분의 장이의 질문을 귀담아 들어주고, 솔직하고 자상하게 대답을 해 주는 홍교리 덕분에 숨통이 틔여간다. 홍교리 어른의 사랑채 이름이 "서유당"이었으니 바로 책과 노니는 집이다.

  홍교리는 장이의 다 읽지도 못할 책을 왜 이렇게 사 모으냐는 질문에

  "책은 읽는 재미도 좋지만, 모아 두고 아껴 두는 재미도 그만이다. 재미있다, 유익하다 주변에서 권해 주는 책을 한 권, 두권 사모 마아서 서가에 꽂아 놓으면 드나들 때마다 그 책들이 안부라도 건네는 양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지. 어느 책을 먼저 읽을까 고민하는 것도 설레고, 이 책을 읽으면서 저 책이 궁금해 자꾸 마음이 가는 것도 난 좋다. 다람쥐가 겨우내 먹을 도토리를 가을부터 준비하듯 나도 책을 차곡차곡 모아 놓으면 당장 다 읽을 수는 없어도 겨울 양식이라도 마련해 놓은 양 뿌듯하고 행복하다."

라고 대답해 준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이 잘 나타난 이 구절이 나는 참 좋았다. 세상에 피붙이 한 명 없지만, 외롭고 힘들게 살아가는 장이를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해 주는 많은 사람들, 최서쾌 어른, 지물포 오씨 아저씨, 도리원의  미적 아씨, 낙심이가 있어 다행이다 싶고, 수많은 고난속에서도 영리하고 바르게 행동하는 장이의 굳은 의지를 우리 아이들도 보고 배웠으면 좋겠다 싶다.

  동화이지만 역사적 사실을 잘 녹여 아이들에게도 "천주교 박해"라는 역사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게 만드는 훌륭한 요소가 있다.

이 책이 강한 흡입력을 가진 이유는 재미난 내용 뿐 아니라 섬세하고 그려진 삽화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름다운 삽화와 더불어 조선 말기 "책과 노니는 집"을 한 번 구경해 보라고 어린이들에게 빨리 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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