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꽃 - 개정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오랫만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한국 소설 파트에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신권이 쭉 꼽혀있다. 저번에 전경린 작가의 작품을 읽었는데 이번에는 김영하 작가의 작품이 눈에 띄였다. 김영하 작가는 글도 좋지만, 목소리도 참 좋다.

멀리 여행 갈때는 반드시 김영하 작가의 "책읽는 시간"을 다운 받아가서 무료함을 달랜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을 읽으면 그의 목소리가 음성지원 되어서 마치 그가 읽어주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오로지 김영하 작가 덕분이었지 책에 대한 아무런 예비 지식이 없었다.

검은 꽃이라니... 검은 색의 꽃이 존재할 수 있나? 라는 의문을 갖고 책을 펼쳤다.

책을 펼치자 마자 만난 것은 멕시코 지도였다. 앗~ 이거 뭐야? 멕시코 이야기야?

내가 가고 싶은 휴향지 칸쿤도 보이네. 무슨 이야기일까?

"물풀들로 흐느적거리는 늪에 고개를 처박은 이정의 눈앞엔 너무나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오래전에 잊었다고 생각한 제물포의 풍경이었다."

책은 이정의 죽음을 묘사하면서 시작된다. 이정. 그는 1905년 4월 4일. 외교관은 커녕 교민 하나 없는 멕시코로 가는 1033명의 조선인중의 한명이었다. 피리부는 내시, 신앙으로부터 도망중인 신부, 무당, 노루피 풍기는 소녀, 굶주린 제대 군인 등 조선 땅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는 무리들이 새로운 땅 멕시코를 향해 가기 위해 화물선 일포드호를 타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이질 등 죽을 고비를 여러차례 넘긴 조선인들은 멕시코에 내려 에네켄을 재배하는 4년간의 노예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빌어먹을...조국이 힘을 잃으니 어디 가도 제대로 된 삶을 살 수가 없구나 싶었다. 극한의 상황에 몰린 조선인들의 모습에서 여러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된다. 굶주린 황족은 일하지 않으면 당장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논어를 읽고, 비굴한 통역은 같은 민족이 굴욕과 고통을 당해도 몇 마디 먼저 배운 외국어로 자신의 이익만 챙기고, 불길한 주술에서 벗어나고 싶어 머나먼 곳까지 가서 세례받은 신부는 다시 주술의 세계에 발을 들여다 놓는 무기력함을 보인다. 싸움에 익숙한 군인들은 끓는 피를 다스리기 위해 멕시코 혁명에 뛰어들고, 대한 제국의 관리는 동포가 억울한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도 눈감아 버린다. 힘없는 국가의 서러운 동포들의 생활에 또 한 번 마음이 쓰라린다.

멕시코 혁명에 뛰어든 이정은 이렇게 말한다.

"어쩌면 우리모두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어. 왜놈이나 되놈으로 죽고 싶은 사람 있어?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 ~ 죽은 자는 무국적을 선택할 수 없어. 우리는 모두 어떤 국가의 국민으로 죽는거야. 그러니 우리만의 나라가 필요해. 우리가 만든 나라의 국민으로 죽을 수는 없다해도 적어도 일본인이나 중국인으로 죽지 않을 수는 있어"(p367)

검은 꽃.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꽃.

절대 받아서는 안되는 부정한 대접을 받고 살아야 했을 우리 민족에게 조국이라는 것이 검은 꽃과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조국. 어떠한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조국. 그 조국을 그리워하다 이국땅에서 삶을 마무리했을 우리 동포들의 아픔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조정래 선생님의 아리랑처럼 나의 머리속에 우리나라 역사 장면을 정교하게 새겨 준 책. 검은 꽃.

고마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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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99 2015-09-29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어요! 제목에 대한 생각 잘 얻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