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5일 부터 현재까지 큰 어려움 없이 금주중이다. 그동안 책과 여러 매체들에서 보고 들었던 금단증상은 딱히 없다. 물론 가끔씩 짜증이 폭발하긴 하지만 오히려 전보다 내 감정을 알아채고 다루는 것에 더 능숙해 진 듯 하다. 

 술을 안마시는 사람. 매일 운동하는 사람, 몸에 좋은 음식을 먹는 사람. 잠을 잘 자는 사람으로 내 정체성을 정립했다.

 사실 나의 현실 상황은 달라진 딱히 것이 없다. 내가 술을 마시던 모든 이유들, 사실은 핑계일 뿐 이였던 상황들은 모두 그대로 이지만, 그 모든 것들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를 다르게 선택 한 것 뿐인데, 나는 많은 부분 달라졌다. 


 아마도 그런 나였지만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읽고 쓰고, 시도해보고 실패하고 그래도 또 다시 시도해보고 했던 시간들이 쌓인 결과인 듯 하다.


 인간은 최후에 최후까지 선택이란 것을 할 수 있고, 책은 인간이 그나마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중요한 도구라는 것. 새삼 깨닫고 있다. 

 나는 느리지만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비혼중년여성인 나는 사회적으로 소수자의 입장 일 수밖에 없다. 몇몇 남류작가들의 책을 읽다가 느낀 그 괴리감들.....


 대단하지 않은 것을 엄청나게 대단한 깨우침의 발견처럼 써 내는 능력은 여성작가들이 좀 본 받을 만한 면이라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책들은 이제 더 접하고 싶지는 않다. 스피커로써의 역할을 해주는 남류작가의 책이면 충분할 듯 싶다. 읽을 필요가 없는 책도 읽어 봐야,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니 시간낭비라기 보다는 피할 수 없는 경험으로 생각한다.



장애란 어떤 본래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교육이든, 취업이든, 사랑이든, 생활하면서 겪게 되는 어떤 불가능의 체험이며, 그때 자신에게 생겨나는 '무능'과 '포기'의 정서이다, 어떤 불가능성의 체험, 그리고 그와 함께 일어나는 자기 무능과 자기 포기의 정서를 겪을 때 어떤 사람은 장애인이 된다. 그리고 불가능의 체험과 포기의 정서가 커질수록 그는 중증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불가능의 체험과 포기의 정서를 사실상 방치해 왔다.

그런데 수십 년 간 집이나 시설 , 그리고 작업장에만 갇혀 있던 어느 장애인이 야학 사람들과 모닥불을 피우고 밤하늘을 함께 보았다.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그는 어떤 불가능이 가능으로, 어떤 무능이 능력으로 바뀌는 체험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마음속에서는 정서들의 대변혁이 일어났을 것이다. 모닥불이 있는 밤하늘이 그에게 무언가를 일깨운 것이다. 이 일깨움, 이 깨달음, 이 배움은 분명 앞으로 그가 만날 지식과 정보의 성격을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배움 이전에 일어나는 배움'이다. p 82


그런데 눈여겨볼 대목은 니체가 '위대함' 을 어디서 찾는가 하는 점이다. 그는 자기의 혈통, 자신이 앓았던 병과 치유법, 사람을 대하는 태도 등에 대해 적었다.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먹었는지 꼼꼼하게 적었다. (...)" 이 사소한 사항들은 이제껏 중요하다고 받아 들여졌던 것보다 상상을 추월할 정도로 중요합니다. 여기서 바로 다시 배우는 일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런 게 바로 니체가 말한 '신의 죽음'이고 '가치의 전환'이다, 따로 갈음하는 말없이, 니체의 마지막 말을 다시 한 번 강조해두고 싶다. 여러분, "사소한 것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중요합니다." p 104


구원이든 처벌이든, 축복이든, 나는 신체를 떠나서 이루어지는 그런 것들에는 관심이 없다. 중요한 것은 신체가 존재하는 동안에, 신체와 더불어 일어나는 우리의 일상이다. 거기서 일어나는 구원과 축복, 즉 신체와 더불어 신체를 통해서 겪는 우리의 좋은 삶이 내게는 철학하는 이유로 충분하다. p 112


지은 죄를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는 함석헌의 말에 참 많이 웃었다. 그러면서 또 깊이 감동했다. 그건 그대로 결산하고, 안 되면 나중에 신에게 벌 받기로 하고, 지금 '살아있는 마음', 지금 보잘것없지만 '옳은 생각'하나 들거든, 그것을 힘써서 할 밖에, 지금 이대로라도 말이다. 지금 이대로라도, 지금 이대로라도... 참 여러 번 되뇌게 되는 말이다.  p 122


주류 질서에서 쫓겨나 불안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한편으로 자기를 쫓아낸 이들에 반감을 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누구보다 그런 권력을 가진 이들로서 살고 싶어 하고 안정된 질서에 편입되기를 원한다. 불안한 삶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 하이네에서 카프카, 그리고 어쩌면 찰리 채플린까지, '무례해 보일 정도로' 진실을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추방되었기에 더 출세하려 하고 내 것에 더 집착하는데, 소수의 사람은 추방되었기에 그 추방의 진실을 증언하는 운명을 택한다. 다수는 저 자신이 추방된 자들이었으면서도 다른 추방된 자들로부터 자신을 분리하고 주류가 되려 했지만, 소수는 추방된 자들로 기꺼이 남아 진실을 증언하고 다른 추방된 자들과 연대하려 했다. p 138-139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이를 '해석 노동'이라고 불렀다. 그는 '해석 노동'의 기본 내용을 남녀의 비대칭적 권력관계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가령, 남성에 대한 여성의 이해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이해 사이에는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남녀에게 성별을 바꾸어 서로의 일상에 관해 기술해보라고 하면 여성은 대체로 남성의 일상을 자세히 적는데 비해 남성은 여성이 하는 일 자체에 대해 별 개념이 없는 답변을 한다. 이는 여성이 남성의 관점에서 사태가 어떻게 보일지를 자주 상상하며 남성의 시각을 자기 사각으로 만드는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가부장제 사회일수록 크다고 한다.  p 161


복지원에서는 '이유 없는'폭력도 자주 휘둘러졌는데(어떤 때는 단순히 날씨를 이유로, 또 어떤 때는 말 그대로 '그냥'), 이는 권력이 그 순수성이나 절대성에 다가갈 때 드러나는 권력의 참 모습이다. 권력은 절대적으로 되어갈수록 그 이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권력 자체가 이유이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시설에서 자의적인 폭력, 이유 없는 폭력이 행사되는 것은 권력을 확인하는 것 이상이 아니다.(...)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병영사회에서 권력자들의 이념형이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광주학살 이후 철권통치 체제를 구축하려 했던 전두환 정부는 '정의 사회 구현' 이라는 미명 아래 유신체제에 이루어진 이런 조치들을 계승하고 강화해 갔다. p 187-188


앞서 말한 것처럼, 시설은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사회적 관계로부터 배제된 공간이지만 음각화의 방식으로 사회를 그대로 비추는 공간이다. 그것은 전체 사회를 대칭적으로 비추는 거울 이미지다. 따라서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설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거울 이미지는 사회에 대한 우리의 인식의 유용한 출발점일 수 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거울 이미지를 바꾸어서 사회를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실은, 거울에 비친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서 라도 그 거울이 비추고 있는 곳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 사회 말이다. p 190


그러니 예수를 믿는 사람, 그 믿음을 과시하는 사람은 많아도 예수처럼 사는 사람은 드물다. 니체가 예수만이 유일한 기독교도였다고 한 것은 그런 뜻에서 였다. 천국은 예수의 실천 속에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것이 예수에 대한 믿음에 달렸다고 착각한다. 물론 이는 기독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좋은 말씀을 듣고 읽은 우리 모두의 문제다, 우리는 무소유 정신을 갈파한 어느 스님의 책을 백만 권 넘게 사지만 정작 무소유를 실천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좋은 말을, 박물관이나 명승지를관람하듯 그저 듣고 구경하면서 입장료로 책값을 내는 것이다. p 248


누군가에게 좋은 말을 들었다면 최소한 한 번은 내 목소리로 그것을 다시 들어야 한다. 그때만이 그것은 내 피가 된다. "높이 오를 생각이라면, 그대들 자신의 발로 오르도록 하라!" 차라투스트라가 자신을 구원해 달라며 찾아오는 이들에게 던진 말이다. 확실히 그렇다. 내 발로 오르지 않은 산은 풍문과 구경거리로만 존재하는 산이다. 그러니 산에 오르려면 스스로 오르는 수밖에 없다.  p 252




 





바보는 능력이 없는 자가 아니다. 바보는 다만 ‘욕구가 멈춰버린 자들‘, ‘의지가 꺾인 자들‘이다. 의지가 꺽인 곳에서 지능은 발휘 되지 않는다.불평등의 현실을 본래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일 때, 또 현실사회에서 우월한 자들이 실제로 자신보다 우월한 자들이라고 생각해 보릴 때, 우리는 정말 ‘바보‘가 되고 만다. 그러니까 ‘바보‘는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겸손한 사람이 아니라, 현실적 차별을 그래도 인정하고 심리적으로 수긍하기 위해 자기 능력을 부인하고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이다. - P69

이해당사자도 아닌 사람들이 어떤 불이익조차 감수하고 나서게 되는 순간이 있다. 아니 행동에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맘속에서 어떤 변화를 겪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내 일이 아니지만 그것을 지켜보며 맘속에 공감이 일어날 때, 우리는 ‘개인‘이 아니라 ‘인류‘ 를 느끼는 것이다. 그때만이 우리는 ‘개인‘이 아니라 ‘인류‘가 ‘나아지고 있는지‘에 대해 뭔가를 말할 수 있다. (...) 요즘 들어 ‘외부세력‘ 이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왜 이해당사자도 아닌데 끼어드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칸트 식으로 답하자면, 구경꾼들의 맘속에서 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개인‘을 넘어 ‘인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내일이 아닌데도 아파하고 고통을 무릅쓰는‘ 그것 때문이다.

- P74

나는 이 고대적 금욕주의에 중요한 메세지가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월스트리트의 탐욕은 비난 받아 마땅하지만, 그것의 극복은 세금의 증대와 일자리 창출로 환원되는 차원 너머의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욕망 구조를 그대로 둔다면 월스트리트에 않은 인물이나 기업을 바꿀 수는 있어도 월스트리트의 존재를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증세나 일자리 창출, 복지 증대가 시급하지 않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당장 굶어 죽게 생겼는데 금욕하라고 말하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른다. 내가 고대 금욕주의를 끌어들인 것은 욕망을 줄이라는 뜻에서가 아니라 다른 삶을 욕망하라는 것이었다. 현재의 삶에서 더 많은 것을 욕망하는 것 못지않게, 현재와는 다른 삶을 욕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 P117

교양을 쌓는 호기심이 아니라 ‘나를 나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호기심,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길을 잃고 방황하도록 도와주는‘그런 지식욕,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정당화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지, 우리가 어디까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지 시험하는 비판적 사유, 푸코는 그것을 철학이라 불렀다. - P133

물론 이것이 쓸데없이 제 고집을 세우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아집이야말로 내 습관과 편견(그것을 심어준 사회아 문화)에 굴복하는 것이다. 내게 낯선 존재,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에게 기꺼이 나 자신을 개방하고 거기에 귀를 기울이는 용기를 낼 때, 우리는 뭔가를 깨우칠 수 있다. 그래서 기꺼이 동의 할 때도 자유로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삐딱하게 고집을 세울 때도 노예인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노예란, 저 자신이 옳고 그름을 따져볼 능력이 없는 존재 혹은 그런것에 무관심한 존재를 가리킨다. 그래서 노예는 습관에 의탁하고 언론에 의탁하고 권력자에 의탁하고 다수에 의탁하는 것이다, 쉽게 굴복한다는 것은 스스로 따져볼 능력과 의지가 없는 것이니 그에게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 바탕이 없는 것과 같다. - P149

신자유주의와 수형인구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의아해 할 수도 있지만 신자유주의 정책의 기본 골격을 생각해보면 이해될 만한 대목이 있다. 신자유주의 정부들은 대체로 탈규제를 통한 시장의 자유화, 공적인 부문의 대규모 민영화 등을 추진한다. 다만 정부의 역할을 최소로 한정하는 고전적 자유주의 이념과 달리 신자유주의 정보는 매우 강력한 힘을 행사한다. 시장에 대한 개입은 최소화하지만, 시장을 위한 개입은 매우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이다. 이때 정부가 빈번히 표방하는 것이 법치주의다. 정부가 법질서를 지키자고 말하는 게 무슨 문제일까 싶지만, 문제는 법질서에 대한 강조가 시장 자체의 실패(사회적 양극화, 빈곤층의 확대)에서 파생하는 여러 사회적 문제를 공안의 시각에서 해결하려고 한다는 데 있다. - P180

인간이 인간을 상품으로 사고판 것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고대의 노예들은 그 인격이 통째로 팔렸다. 그들은 사실상 살아 있는 물건이었다. 근대 자본주의도 인격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일정 시간 동안 자기 생체 능력의 일부를 상품으로 판다. 그것이 바로 노동력의 상품화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본주의 정신이 극단화 된 곳에서 새로운 사태를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인간을 가두어두는 것, 인간의 부자유에서 어떤 수익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즉 수익모델로서 인간 수용소를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해 할까? - P183

소수자들의 경우에는 여기에 약간의 어긋남이 있다. 프로이트가 말하듯 떠나간 ‘대상‘과 ‘나‘ 를 동일시하긴 하지만, ‘떠나간 대상‘ 을 원망하기보다 ‘그렇게‘떠나갈 자기 운명을 미리 본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는 죽었고 나는 살아있다‘는 거리감보다는 ‘나 역시 그처럼 죽을 것이다‘는 동질감이 크고, 단순히 ‘떠났다‘는 사실보다는 ‘그런 모습으로, ‘그렇게 힘들게 살다가‘떠났다는 사실에 더 크게 반응한다. 떠나간 대상과 거리감이 없으니 대상에 투여된 리비도를 좀처럼 회수할 수가 없다. ‘그렇게‘살다 죽는 것이 사실은 내 운명일 수 있다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대상의 죽음을 인정하고 ‘현실의 나‘, ‘살아 있는 나‘로 돌아와야 하지만, 나는 그 현실 속에서 ‘산송장‘ 으로 살아갈 것임을 예감한다. (...)당연히 자기 비하가 일어나기 쉽다. 회복의 과정이 무력화의 과정인 셈이다.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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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궁극적인 목표와 그에 따르는 행동들은 인생을 편하고 쉽게 살고 싶다는 욕망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돈이 많으면 많은 부분 삶이 편해지는 것이 사실이고, 건강한 육체(매력적인 육체) 역시 삶을 덜 힘들게 덜 어렵게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부자가 되고 싶고 건강하고 싶은 것일텐데, 문제는 부자가 되고 건강한 육체와 정신은 갖게 되는 과정이 편하고 쉽지만은 않다는 사실이다. 종자돈이 모여서 돈이 돈을 벌어 들일 때 까지 꽤 오랜 시간을 아끼고 인내하며 살아야 하고, 요요현상 없이 살을 빼고 건강을 유지하려면 매일매일 좋은 것을 먹고, 잘 자고, 운동을 하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과 돈이 필요하고 훌륭한 인성과 지성 역시 한순간에 쉽게 얻을 수 있는 가치들이 아니다. 가치 있는 것들이 가치 있는 이유는 아마도 갖기 어렵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 욕망을 내가 성취해 낼 수 없어서 불행하다면, 욕망을 크기를 줄이거나 노력의 크기를 늘려야 한다. 선택하지 않으면 아마도 일생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 할 껄, 누구 누구 때문이야, 뭐 뭐 때문이야 하고 후회와 원망만 하면서 살아내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이만 후회와 원망의 삶은 좀 멀리 두고 욕망은 조금 줄이고 노력은 조금 더 늘리기로 선택했다.

다른 사람에 대한 기대는 내려 놓고, 나의 내일에 대한 기대만 가지고 갈 것.

어느 누구도 타인을 이해할 수 없고, 바꿀 수 없다. 나만이 나를 알고 나를 바꿀 수 있을 뿐이다.

외부로부터의 것들은 잘되면 땡큐고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것.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에만 집중.





실패의 원인이 노력을 다하지 않아서 라고 치부하기보다 각 개인의 능력에 맞는 분야를 찾아 최선의 노력을 다하면 얼마든지 스스로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p 131


실패도 두렵지만 사실 정말로 두려운 것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무엇을 잘 하는지를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조차 모르고 산다는 것 아닐까.

이책은 꽃밭과 진흙탕을 오락가락한다.

아..또 뻔한 소리들이네.....였다가 아!!! 이 뻔한게 이런 소리구나!!! 싶다가 한다.







접근 동기는 성장에 집중하고, 긍정적인 결과에 민감하며, 성공과 획득에 큰 관심을 갖고, 잘되면 즐거움을 느끼고 잘못되면 우울감을 느끼게 한다. 회피 동기는 거꾸로 성장보다 안정에 집중하고, 긍정적인 결과보다 부정적인 결과에 민감하며, 성공과 획득에 대한 관심보다 손실과 실패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잘되면 즐거움보다 편안함을 느끼고 잘못되면 우울감보다 초조함을 느끼게 한다.

왜 한국인과 동양인들은 접근 동기보다 회피 동기에 집중할 까? 꼭 성공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실패해서는 절대 안 되기 때문이다. 꼭 존경 받을 필요는 없지만 무시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을 필요까지는 없지만 멍청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도 않고, 꼭 예쁠 필요는 없지만 못생겼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도 않으며, 꼭 행복할 필요는 없지만 불행해서는 안된다 고 생각한다. 이런 경향은 타인의 시선과 깊은 관련이 있다. 

'나는 다름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까'라는 체면에 대한 우려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과 관계가 깊다. '체면을 얻었다'는 표현은 안 해도 '체면을 잃었다'는 표현은 자주 한다. 타인의 시선을 생각할 때는 나쁜 일로 체면을 잃지 않는 것이 좋은 일로 체면을 얻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한번 잃어버린 체면은 다시 회복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체면을 잃는 것은 한 개인에게 치명적이다. 직장에서 일을 잘하면 칭찬을 받아 체면이 서지만 칭찬을 못 받았다고 해서 직장생활에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직장에서 일을 제대로 못하거나 잘못해서 체면을 구기면 직장생활은 힘들어진다. 

그래서 타인의 시선과 평판이 강조되는 사회에서는 남들에게 잘 보이는 것보다 찍히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p 158

내가 타인을 그렇게 까지 의식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나는 접근 동기보다는 절대적으로 회피 동기가 강한 사람이다.

남의 이목보다는 한번 실패하면 끝짱이라는 생각때문에 그런것 같다. '꽝~다음 기회에~' 이런건 없다고 생각하니까 도전도 실패도 두려워서 술로 도망친 것이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사실은 타인은 당신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당신이 그토록 신경 쓰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힘이 세거나 무서운 존재가 아니다. 아무도 관심이 없는데 괜스래 당신 혼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지도 모른다. 당신이 당신에게만 관심이 있듯이 다른 사람도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음을 기억하라. p 165




사람은 감정의 동물인 만큼 바른 말이나 꾸중을 들으면 설령 그것이 정확한 피드백이라 할지라도 기분이 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고 궁극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보라면 순간 기분이 나빠도 바른 말을 해준 사람을 더욱 신뢰하게 된다, 더군다나 사람들은 위험을 감수 하고서 라도 (때로는 상처가 될 수 있을지라도)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알고 싶은 동기가 높다. 정확한 자기인식이 생존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사람은 바른 말을 해줄 사람을 찾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과장된 꾸중은 관계를 멀어지게 할 수 있지만 정확한 꾸중은 오히려 신뢰를 두텁게 할 수 있다. p 207

상대방이 의견을 요청하면 그때 의견을 말해 줄 수 있고, 그가 내 의견대로 하는지 안하는지 까지 신경을 쓰는건 간섭이다.

묻지 않는 말은 해줄 필요가 없고, 이미 내게서 떠난 말은 내것이 아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두 가지다. 첫째는 각 개인의 행동과 결과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 개인이 소유한 유전적 특성과 성격적 기질, 그리고 그 개인이 속한 사회적 상황과 다른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는 부분이 상상 이상으로 크다는 것이다. 둘째는 이런것들은 각 개인이 자율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고 선천적으로 부모에게 물려받았거나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살면서 주어지는 것이라는 점이다. (...)어떤 유전자를 갖고 태어날지, 어떤 환경에서 태어날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사회의 자원과 부에 대한 분배 원칙을 만들어야 한다면 당신은 어떤 원칙을 만들겠는가? 존 롤스는 이 원칙이 가장 정의로울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장 안 좋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분배 원칙을 정할 것이라는 것이다. 안 좋은 조건과 환경에서 태어난다 할지라도 큰 불편 없이 잘살 수 있는 분배 원칙을 만들 것이다. 당신이 안 좋은 조건과 환경에서 태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원칙이 없다면 당신의 삶은 처참할 것이다. p 252

유전, 성격적 기질 그리고 환경등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요건들이 자신의 거의 전부라면, 인간의 자유의지와 인간의 노력과 인간의 선택은 인간에게 무엇인거지?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인건가?


나는 이런 상황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좋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분배 원칙을 정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은 안 좋은 조건과 환경에서 태어나지 않을꺼라고 믿고 싶어 할테니까. 

내가 이해하는 인간의 선택은 그런것이다.  아직까지는....

위계질서 사회에서 구성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 즉 스트레스다. 암이나 병원균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어서 어떤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얼마나 고약한 병인지 실감하지 못하지만, 많은 연구에서는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으로 정신적 건강과 신체적 건강에 치명적인 해를 끼친다고 한다. (...)그러면 이 스트레스와 위계질서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스트레스는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하지만 가장 강력한 원인 중 하나는 ‘통제감 상실‘이다. 통제감이라는 것은 각 개인이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권을 갖는 것으로,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스스로의 삶을 지휘하며 사는 것을 의미한다. - P93

문제는 사회적 위치가 낮은 사람들을 직급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까지도 낮다고 여기는 풍토다. 위계질서의 문제는 운영 체계로서의 위계가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가치에 대한 위계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위계질서가 강한 사회에 살면 그 위계에 맞게 인간의 가치도 변한다. 위계가 낮은 사람은 위계가 놓은 사람을 모시는 ‘부하‘가 된다. 지위가 낮은 사람은 상사를 소개할 때 "제가 뫼고 있는 분입니다"라고 말하며 상사를 더욱 높이고, 지위기 높은 사람은 "제 밑에서 일하는 직원입니다"라고 말하며 부하의 신분을 더욱 낮춘다. - P99

김경일 교수는 1999년에 발표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라는 책에서 유교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공자의 도덕은 ‘사람을 위한 도덕이 아닌 ‘정치‘를 위한 도덕이었고, ‘남성‘을 위한 도덕이었고, ‘어른‘을 위한 도덕이었고, ‘기득권자‘를 위한 도덕이었고, 심지어 ‘주검‘을 위한 도덕이었다"라고 말한다, 특히 우리나라에 편만해 있는 신분 사회 가부장 의식, 여성 차별, 권위 의식 등을 유교 문화의 폐단으로 보며 위계질서가 특정한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고 보호한다고 비판했다. - P100

이미 세상은 변했고, 우리는 아무리 위계를 강조해도 위계가 세워질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합리성이라는 대전제 앞에서 위계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위계는 사람들은 서로 힘들게 할 뿐이고, 궁극적으로는 해야 할 일을 하기 싫게 만든다. 기업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모든 곳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물론 조식의 이사 결정과 운영을 위해 위계와 직급은 반드시 필요하다.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예의 역시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이외의 상황에서는 위계는 약하면 약할수록 좋다. - P119

반면 자신의 실력을 현실적으로 직시하고 정확하게 평가하는 부류가 있다. 장점과 단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인지하는 것이야 말로 성장과 발전의 기초다, 단점을 회피하고 장점에 마음을 두려는 태도도, 장점은 제처두고 단점에 집중하는 태도도 모두 이해할 수 있다.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삶의 방식이니 말이다. ‘단점을 생각해서 뭐해? 장점에 집중하는 게 옳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반대로 ‘잘하는 거에 집중할 필요가 뭐 있어? 잘못하는 부분에 마을을 쓰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해 할 수 있다, 하지만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들은 성장을 위한 바른 판단을 방해하고, 필요한 노력을 저지 시킨다. 긍정적인 부분이든 부정적인 부분이든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이야 말로 성장을 위한 가장 중요한 밑거름이다 - P176

자기 자신을 현실적인 관점으로 정확하게 평가하는 사람, 즉 실력이 없을 때 실력이 없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불행하고 우울증을 많이 경험할까? 흥미롭게도 이런 사람들은 실력이 있을 때 실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비슷하게 행복을 많이 느끼고 우울증을 적게 경험했다. 신기하게도 가장 행복한 사람은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인정하는 사람들이었다. (...)
과도한 긍정적 자아를 지키려는 사람들은 현실에서 힘든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 단점이 드러나는 것을 최대한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와 전략들은 당사자의 정신 건강을 취약하게 할 수밖에 없다. - P185

개인의 삶을 결정하는 유전적 요인, 성격적 요인 그리고 환경적 요인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기초가 될 수 있다. 이런 이해 없이는 사회적 갈등과 계층 간의 갈등만 증폭될 뿐이다. 나의 인생도 내가 전적으로 택한 것이 아니고, 타인의 인생도 그들이 전적으로 택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성패와 타인의 성패를 바라보는 시각은 달라져야 할 것이다. - P255

우리는 남들이 어떤 상황에서 얼마의 노력을 했는지 절대 알지 못한다.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든 상황과 처지를 직접 보더라도 그 노력을 평가절하한다. 직접 해보지 않고 눈으로만 보아서는 절대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그래서 남의 기여도에 대해서는 과소평가 할 수밖에 없다. - P280

남들 다 뛰는데 나만 안 뛸 수도 없지만 무조건 다 같이 달리다 보면 낭떠러지로 내몰릴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이 하는 행동이라고 해서 항상 우리에게 유익한 것은 아닐 수 있다는 뜻이다. 어쩔 수 없이 달렸더라도 잠시 멈추고 왜 달리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P296

다른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며 우리는 자율적으로 특정한 전통에 동조하기도 하지만 사회 구성원들에 의해 동조하도록 압박을 받기도 한다. 이 압박을 통해 전통이 강화되는 것이다. 어떤 전통이 유지 될 때는 그 전통으로 항상 이익을 보는 집단이 있다 .아무도 이익을 보지 않는다면 전통이 유지되기 힘들다. 또한 이런 이익은 주로 나이 많은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 지위가 높은 사람이 취하기 때문에 더욱 쉽게 유지되고 강화된다. - P302

목숨을 희생하거나 퇴사를 불사하며(남들과 다른 것처럼 느껴졌던) 본인의 생각을 외친 사람들도 많았지만 우리 모두가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사람인 당신이(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처럼 느껴지는) 비합리적인 전통과 관습에 "아니오"라고 작게나마 의견을 표명할 때 당신은 두가지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첫째는 당신의 의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천천만만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둘쨰는 당신으로 인해 세상이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보게 딜 것이다. 엄청난 희생과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표현 하나면 충분하다. 이 작은 표현이 많은 사람들의 오해와 착각을 일깨울 것이다. -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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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은 건강한 체력에서 나온다.

내 몸과 마음이 아프면 나에게도 남에게도 다정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되겠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건강한 상태여야 남에게도 친절하기가 더 쉽다.






마음과 몸의 체력을 위해 매일은 아니어도

책을 읽고 운동을 한다.

물론 아직 술도 마신다. 그래도 언젠가는 끊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내가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나는 소설을 못(안) 읽는 편이다. SF영화는...반지의 제왕인가 하는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자다가 나왔고, 해리포터도 제대로 본 적 없고 뭐 그런데 책 제목이 나를 SF소설을 읽게 만들었다.

인간이란 무엇일까?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인가?

나는 어떤 인간인가?

기발한 설정으로 무거운 주제들을 기가 막히게 잘 다뤘다.

오랫만에 아니 처음으로 읽은 SF소설, 읽고 생각하고 하는 것이 즐거운 독서였다.


만약 인간이 죽지 않는 생명체가 된다면, 그것이 과연 인간일까?

그럼 죽지 않으면 신인가?

나는 끝이 없는 삶을 원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 끝으로 가는 길이 좀 덜 힘들기를 바랄 뿐이다.




어제 운동가는 길에 갑자기" 아...나는 정말 습관적인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팍 들었다.

알람 끄고, 인공눈물 넣고, 기지개를 켜고, 핸드폰 챙기면서 안방에 고양이 물그릇을 싱크대로 가져간다. 화장실 가서 가글하고 볼일 보고 손 씻고 나와서 미온수에 유산균을 먹는다. 스트레칭을 간단하게 하고 고양이 화장실을 치우고 바닥의 모래를 쓸어낸다. 고양이 1과 2의 췌장약, 변비약을 먹인다. 씻고 화장품을 바르고 머리를 말리고 나온다. 커피 물을 끓이는 동안 지난밤의 주식과 코인 시세, 오늘의 날씨를 확인한다. 커피를 마시면서 고양이들과 아이 이뻐라~오구오구 사랑해요~ 타임을 갖는다. 옷 갈아입고 출근한다. 점심을(마녀스프, 닭가슴살, 햇반 늘 똑같다. 가끔 닭가슴살 대신 삼치나 고등어 아니면 계란찜을 먹는다) 먹고 바로 30분간 걷는다. 퇴근하고 고양이 약 먹이고, 고양이 화장실 치우고 청소하고 술을 마시거나, 운동을 가거나 정신과 약을 먹고 일찍 뻗어 버린다. 토요일은 조금 늦게 일어나서 오전 루틴을 그대로 하고 대체로 해장으로 라면을 먹고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듣고 운동을 간다. 다녀와서 씻고 술을 마신다. 일요일도 오전은 똑같고 해장후에 주중에 먹을  마녀스프를 만들고 대청소를 하고 씻고 고양이 챙기고 일찍 약 먹고 자거나 술을 마신다.


내가 술을 끊기 힘든 이유는 나처럼 거의 모든 일을 습관적으로 하는 인간이, 술 마시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오늘 먹을 안주와 술을 떠올리는 순간이 사실 실제로 술을 마실 때 보다 더 도파민이 팡팡 나온다.

여행 갔을 때보다 여행 가기 전이 더 행복한 것 처럼. 실제로 사귈 때 보다 사귀기 전에 밀당 할 때 더 신나는 것 처럼.


도파민은 도파민으로 이겨야 하는데 내가 무엇을 그렇게 까지 좋아하는지를 잘 모르겠다.


계속 기름진 안주에 술을 마셔댔더니 깔짝깔짝 운동을 해도 체중이 슬금슬금 늘기 시작하더니

이제 내 스스로 힘들어지는 몸무게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러저러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식단 변화 없이 술도 마셨는데 살이....빠지고 있다.

퐁퐁 도파민이 나오는 걸 느꼈다. 오호...그렇다면 술을 안마시면 더 빠지겠네. 

도파민이 '퐁퐁' 하는 일요일 오후.....

아래의 밑줄은 이 책에서 발췌헸다.

사랑이 식는 이유는 뭘까? 수 세기 동안 인류가 풀지 못했던 이 미스터리를 도파민은 간단명료하게 설명한다. 애초에 인간의 노는 예측 불가능한 일들을 갈망하도록 빚어졌다. 그래서 인간은 갖가지 가능성을 자양분 삼아 미래를 꿈꾼다. 반면 익숙해진 것에는 흥분과 기대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 때 인간은 다른 새로운 것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이 현상을 과학자들은 ‘보상예측오류"라고 부른다. 뜻을 말 그대로다, 우리는 다음 순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매순간 끊임없이 예측한다. 그런 가운데 실제로 일어난 일이 내 예상보다 좋았을 때 우리는 미래 예측에 오류가 있었다고 말한다. 오늘 예상보다 일찍 퇴근하거나, 통장에 10만원이 더 들어 있다면? 이 행복한 오류는 도파민을 작동 시킨다. 도파민 발화에 시동을 거는 것은 이렇듯 예상치 못한 좋은 소식이 선사하는 짜릿함이다. 아낀 시간이나 돈 자체가 아니라는 뜻이다. - P29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과 아끼며 좋아하는 마음은 뇌의 기전 자체가 다르다. 그렇지 않다면 고대하던 것을 막상 손에 넣고서 다들 그렇게 시큰둥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 P75

중독성 있는 약물은 골치 아픈 ‘예측-예측 오류 회로‘를 아예 우회해 버린다. 그러고는 도파민 회로를 인위적으로 점화시킨다. 그렇게 모든것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린다. 결과적으로 남는 것은 온 몸의 세포가 타들어가는 듯한 갈증 뿐이다. 약물은 정교하게 유지되던 몸의 균형을 너무나 쉽게 무너뜨린다. 이 균형이 무너지면 뇌는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없다. 약물은 몸의 사정을 아랑곳 않고 무조건 도파민 분비를 재촉한다. 뇌는 잠시 우왕좌왕 하다가 곧 만사를 약물과 연관 시켜 처리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의 해결책이 약물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축하할 일이 있어? 약을 해. 친구를 만나러 가? 약을 해. 스트레스 받아? 지루해? 편안해? 긴장돼? 화가 나? 자신감이 넘쳐? 후회돼? 피곤해? 의욕이 충만해? 그렇다면 약을 해!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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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건 그냥 당신 일기장이나 블로그에 써라.

라고 생각이 들었다. 










세계 유수의 석학 또는 전문가가가 그러더라 라고 심리학, 자기계발 이것저것 얼기설기 짜집기 해놓고는, 

뭐 엄청난 깨닫음을 얻었다고 착각하는 글쓴이는 유튜버이다.

역시 이런쪽 방송하는 사람들은 꼭 책을 하나쯤 써야 하는 걸까. 

전문가나 석학에 말을 전하려면 참고문헌이라도 좀....


내가 중독된 대상에 대한 감정과 애착을 끊어내야 한다. 중독에 빠지는 이유는 중독을 통해 엄마 배 속에 있는 것 같은 포근함과 따스함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 전문가는 말했다. 중독을 효과적으로 끊어내려면 중독 대상을 통해 엄마의 감정을 느끼는 것을 끊어내야 한다. p191


술 마시고 마약하고 도박 하면 엄마 뱃속 처럼 편해 져서 하는 사람이 중독자라고 생각 하는거야?

하고 싶지 않은데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사람들이 중독자인거야. 그리고 저 한 전문가가 누구????


베스트셀러 작가나 대부호, 그리고 박사들을 만나게 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만나는 순간을 간절하게 원했고 실제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내 삶을 바꾸려면 주체성을 기반으로 몰입해야 한다고 강하게 생각했다. 그 결과 10배의 법칙을 쓴 10조 사업가 그랜드 카돈과 인터뷰하게 되었다.p188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을 간절이 원하고 믿는게 가능해? 그렇게 해서 그랜드 카돈을 인터뷰 했다고? 이게 무슨말이냐고 도대체.


핸리 포드도 자동차를 만들기 전 사람들에게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으면, 그들은 더 빠른 말 또는 마차를 원한다고 밖에 말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현실에 없는 것을 상상하는 일은 어렵거나 불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p208


핸리 포드의 말은 보통사람들은 현실에 없는 것을 상상하는게 어렵다는 말 아닌가?  이게 또 무슨 말이냐고 도대체.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험한 것만' 멘탈 무비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수준 높은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거나 부담스러워하지 않길 바란다. 어쨌든 성공도 아직 경험하지 않은 세계가 아닌가? 성공의 세계를 당신의 경험만으로 상상하면 한계를 발견하게 된다

경험하지 않은 세계, 새로운 제품이나 기가 막힌 서비스를 만드는 과정이나 소비자들과 소통하는 순간 등을 멘탈 무비로 만들어보자.p212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더 수준 높은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건데? 어떻게 해야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울트라 셀프가 될 수 있는지 를 알려줘 제발.


한마디로 '자기 자신과 거리가 너무 먼 상태' 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울트라셀트 모드에 진입하는게 힘들다. 진짜 자신과의 소통이 어려워 내면의 감옥에 갇힌 자신을 구원할 여력이 부족하다.

해결책은 단 하나다. 스스로 깨고 나와야 한다. 집 나간 탕자가 다시 돌아오는 개념이 아니라,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집을 만들어야 한다. p281


여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스스로 깨고 나와야 한다고 말하는 게 무슨 큰 깨달음 인거냐고 도대체.


이런 그림을 넣으려면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어떤 참고자료가 있는지 밝혀야지.

그림만 떨렁 넣어 놓는게 뭐냐고 도대체.


아...이 버린 시간과 상처 받은 마음과 흐려진 눈을 치유할 책을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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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아직도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모르겠다.

나는 평생 혼자 살고 싶은 건가? 혼자 살 수 밖에 없는 건가?

어느정도의 경제적 여유를 바라는가? 진심으로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고 싶은가?

아직도 바라는 삶의 모습은 잘 모르겠지만, 원하지 않는 모습은 확실히 알고 있다.

가난하고 병들어도 죽지 않고 꾸역꾸역 연명하는 노년의 삶.


어떤 상태여야 안락사를 시행하는 것이 옳을까?

치매에 걸려서 정신이 혼미해지면? 아니면 정신은 온전치만 스스로 똥오줌을 못가리면?

아니면 아무것도 생산해 내지 못하고 오로지 소비만 하는 존재가 되어 버리면?

안락사와 자살은 다른 것인가? 마음의 고통과 몸의 고통 중 어느 것이 더 우선일까?

자살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엄청나게 강력한 삶의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너무나도 원하는 삶이지만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죽음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살지 않는 것을 택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더 이상 내가 원하는 모습의 내가 아니기 때문에 안락사를 원한다면 그것도 자살인가?


물론 당장 내일 어찌 될지 모르는 삶이라는것 요근래에 더 크게 느끼게 됐다.

직장 동료가 지네에 물려서 2주째 혼수상태이다. 2주전 금요일 다음 주 월요일에 보자고 인사하고 헤어졌는데

그는 지금 중환자실에서 의식불명의 상태이다. 정말...참...그렇다.....


한치 앞도 모르는 인간의 삶.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 걸까?


평생 친구 한 명 없이 홀로 지냈다는 철학자.

그러나 정작 본인은 꽤나 삶의 만족도가 높았던 듯 싶다.

그는 부친으로부터 많은 주식을 상속 받아 평생

노동을 하지 않고 행복하게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철학만 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을 수 있게 하는 경제력은 중요하다.

나의 작고 소중한 주식들이 내게 그런 힘을 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막대한 재산을 상속 받아 평생 노동 없이 철학만 하고 살 수는 없으니

혼자 살아도 느슨한 연대는 필요하다. 

서로 그럭저럭 참아주며 도와주고 돌봐줄 수 있는 성글성글하지만 질긴 관계망.

어떻게 하면 나와 같은 비혼여성일인가구들의 삶의 안정망을 만들 수 있을까.

우선은 일주일에 한번 정도 저녁식사를 함께 할 사람이 있으면 참 좋겠다 싶다.

아래의 밑줄들은 이 책에서 했다.






게다가 비혼모를 ‘인생의 가장 깊은 가치‘를 마침내 알게 된 온전한 성인으로 대우하기는커녕 비난하고 멸시하는 한국 사회를 생각하면, 성숙의 정도와 인생의 가치를 출산과 연결해 바라보는 시각은 위선적인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 P69

아이를 낳으려면 남녀가 필요한데 왜 여성만 비난하는가 하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저출생의 주요 원인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은 채 혼자 사는 여성의 증가에서 찾는 것은 진단이 잘못되었다. 예컨데 프랑스는 1인 가구 비율이 37.8%, 스웨덴은 45.4%로 한국보다 훨씬 높다. 그러나 같은 기간 합계출산율도 프랑스의 경우 1.8명 스웨덴은 1.66명으로 한국 보다 훨씬 높다.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나기 때문에 저출산 현상이 가속화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 P72

한국의 기록적인 저출생 현상의 구조적 원인은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들의 이기심과 페미니즘이 아니라, 뿌리 깊은 성차별과 가부장 문화에 있다. (...)특히 남성의 적극적 가사,육아 노동 참여가 관건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정부 차원의 유급 출산 유가도 없는 나라지만, 2020년 미국의 합계출산율(1.64)은 OECD 평균(1.59)보다 높았다. 미국 남성의 높은 가사,육아 노동 참여율 덕분이다.
(...)여성이 혼자 버는데도 남성의 가사 노동시간은 1시간 59분, 여성은 2시간 36분으로 여전히 여성이 1.3배 더 많은 시간을 집안일에 썼다. 경제활동을 누가 하든 관계없이 여성이 집안일을 전담하다시피 하는 상황은 여전하다. 한국 여성의 대학 졸업 비율은 76%로 OECD최고 수준임에도 "세계에서 가장 교육을 많이 받은 여성이 가사 노동과 육아를 전적으로 책임지고 ‘여성이라면 힘든 삶을 다 받아들여야 한다‘ 라고 강요하는 성차별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 P74

에이징 솔로가 친밀감을 추구하는 방식은 "식욕이 사람마다 다르듯" 저마다 달랐다. 원가족과 긴밀한 사람도 있고, 친구, 공동체, 스스로 만든 모임 등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구성하여 친밀감을 충족하는 사람들도 있다. ‘ 가장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이 없어도 ‘사랑하는 사람들‘ 을 만들며 살아간다. 솔로도 친밀한 관계를 원한다. 다만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인 관계를 원치 않을 뿐이다. - P122

혼자 사는 것은 가능하지만 역설적으로 혼자서만 살아가기란 불가능하다. 관계 속에서 살아가려면 비비 구성원들의 말마따나 "서로 꼴을 봐주고", "폐 끼침을 주고받는"연습이 필요하다. 내가 잘하지 못하는 일이지만 꼭 연습해야 한다고, 비비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노후 계획 1번으로 마음에 새긴 일이다. - P171

돌봄이 이렇게 ‘젠더화, 시장화‘ 되고, 장기요양제도가 있어도 여전히 미흡한 상황에서 존엄한 돌봄과 인생의 마무리는 돈이 얼마나 많은가와 어떤 간병인을 만나는가 하는 운에 좌우된다. 송영기는 이를 각자도생에 빗대어 ‘각자도사‘라 불렀다. 삶의 마지막까지 자기 능력껏 알아서 잘 죽을 방법을 찾아내지 않으면 비참을 피할 수 없는 현실. 이는 단지 1인 가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오늘날 한국 사회의 죽음의 풍경이다. - P248

해외 사례들을 살펴보다가 문득, 현재의 결혼은 전적으로 배타적인 성행위를 한다고 간주하는 합의에 기반한 제도인데, 성행위보다는 사람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돌봄이 가족을 이루는 결합의 요건으로 더 합리적인 기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산이 제도의 틀 안팎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든 상관없이 서로 돌보는 사이라면 가족을 구성할 수 있다는 개념이 가족의 기능에 비추어 볼 때 더 타당하지 않은가. - P307

협소하게 정의된 가족의 중요도가 커질수록, 가족의 역할이 확대될수록 가족을 구성하고자 하는 의지도 꺽이기 마련이다. 원가족의 풍부한 지원이 없는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가족이 사회보장과 복지의 기본 단위인 한, 이미 부유한 가족은 점점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가족은 점점 더 가난해질 것이다. 그렇게 가족 계급사회가 가속화할수록 한국 사회의 양극화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해 질 것이다.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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