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아직도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모르겠다.
나는 평생 혼자 살고 싶은 건가? 혼자 살 수 밖에 없는 건가?
어느정도의 경제적 여유를 바라는가? 진심으로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고 싶은가?
아직도 바라는 삶의 모습은 잘 모르겠지만, 원하지 않는 모습은 확실히 알고 있다.
가난하고 병들어도 죽지 않고 꾸역꾸역 연명하는 노년의 삶.
어떤 상태여야 안락사를 시행하는 것이 옳을까?
치매에 걸려서 정신이 혼미해지면? 아니면 정신은 온전치만 스스로 똥오줌을 못가리면?
아니면 아무것도 생산해 내지 못하고 오로지 소비만 하는 존재가 되어 버리면?
안락사와 자살은 다른 것인가? 마음의 고통과 몸의 고통 중 어느 것이 더 우선일까?
자살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엄청나게 강력한 삶의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너무나도 원하는 삶이지만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죽음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살지 않는 것을 택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더 이상 내가 원하는 모습의 내가 아니기 때문에 안락사를 원한다면 그것도 자살인가?
물론 당장 내일 어찌 될지 모르는 삶이라는것 요근래에 더 크게 느끼게 됐다.
직장 동료가 지네에 물려서 2주째 혼수상태이다. 2주전 금요일 다음 주 월요일에 보자고 인사하고 헤어졌는데
그는 지금 중환자실에서 의식불명의 상태이다. 정말...참...그렇다.....
한치 앞도 모르는 인간의 삶.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 걸까?
평생 친구 한 명 없이 홀로 지냈다는 철학자.
그러나 정작 본인은 꽤나 삶의 만족도가 높았던 듯 싶다.
그는 부친으로부터 많은 주식을 상속 받아 평생
노동을 하지 않고 행복하게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철학만 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을 수 있게 하는 경제력은 중요하다.
나의 작고 소중한 주식들이 내게 그런 힘을 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막대한 재산을 상속 받아 평생 노동 없이 철학만 하고 살 수는 없으니
혼자 살아도 느슨한 연대는 필요하다.
서로 그럭저럭 참아주며 도와주고 돌봐줄 수 있는 성글성글하지만 질긴 관계망.
어떻게 하면 나와 같은 비혼여성일인가구들의 삶의 안정망을 만들 수 있을까.
우선은 일주일에 한번 정도 저녁식사를 함께 할 사람이 있으면 참 좋겠다 싶다.
아래의 밑줄들은 이 책에서 했다.
게다가 비혼모를 ‘인생의 가장 깊은 가치‘를 마침내 알게 된 온전한 성인으로 대우하기는커녕 비난하고 멸시하는 한국 사회를 생각하면, 성숙의 정도와 인생의 가치를 출산과 연결해 바라보는 시각은 위선적인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 P69
아이를 낳으려면 남녀가 필요한데 왜 여성만 비난하는가 하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저출생의 주요 원인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은 채 혼자 사는 여성의 증가에서 찾는 것은 진단이 잘못되었다. 예컨데 프랑스는 1인 가구 비율이 37.8%, 스웨덴은 45.4%로 한국보다 훨씬 높다. 그러나 같은 기간 합계출산율도 프랑스의 경우 1.8명 스웨덴은 1.66명으로 한국 보다 훨씬 높다.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나기 때문에 저출산 현상이 가속화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 P72
한국의 기록적인 저출생 현상의 구조적 원인은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들의 이기심과 페미니즘이 아니라, 뿌리 깊은 성차별과 가부장 문화에 있다. (...)특히 남성의 적극적 가사,육아 노동 참여가 관건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정부 차원의 유급 출산 유가도 없는 나라지만, 2020년 미국의 합계출산율(1.64)은 OECD 평균(1.59)보다 높았다. 미국 남성의 높은 가사,육아 노동 참여율 덕분이다. (...)여성이 혼자 버는데도 남성의 가사 노동시간은 1시간 59분, 여성은 2시간 36분으로 여전히 여성이 1.3배 더 많은 시간을 집안일에 썼다. 경제활동을 누가 하든 관계없이 여성이 집안일을 전담하다시피 하는 상황은 여전하다. 한국 여성의 대학 졸업 비율은 76%로 OECD최고 수준임에도 "세계에서 가장 교육을 많이 받은 여성이 가사 노동과 육아를 전적으로 책임지고 ‘여성이라면 힘든 삶을 다 받아들여야 한다‘ 라고 강요하는 성차별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 P74
에이징 솔로가 친밀감을 추구하는 방식은 "식욕이 사람마다 다르듯" 저마다 달랐다. 원가족과 긴밀한 사람도 있고, 친구, 공동체, 스스로 만든 모임 등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구성하여 친밀감을 충족하는 사람들도 있다. ‘ 가장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이 없어도 ‘사랑하는 사람들‘ 을 만들며 살아간다. 솔로도 친밀한 관계를 원한다. 다만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인 관계를 원치 않을 뿐이다. - P122
혼자 사는 것은 가능하지만 역설적으로 혼자서만 살아가기란 불가능하다. 관계 속에서 살아가려면 비비 구성원들의 말마따나 "서로 꼴을 봐주고", "폐 끼침을 주고받는"연습이 필요하다. 내가 잘하지 못하는 일이지만 꼭 연습해야 한다고, 비비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노후 계획 1번으로 마음에 새긴 일이다. - P171
돌봄이 이렇게 ‘젠더화, 시장화‘ 되고, 장기요양제도가 있어도 여전히 미흡한 상황에서 존엄한 돌봄과 인생의 마무리는 돈이 얼마나 많은가와 어떤 간병인을 만나는가 하는 운에 좌우된다. 송영기는 이를 각자도생에 빗대어 ‘각자도사‘라 불렀다. 삶의 마지막까지 자기 능력껏 알아서 잘 죽을 방법을 찾아내지 않으면 비참을 피할 수 없는 현실. 이는 단지 1인 가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오늘날 한국 사회의 죽음의 풍경이다. - P248
해외 사례들을 살펴보다가 문득, 현재의 결혼은 전적으로 배타적인 성행위를 한다고 간주하는 합의에 기반한 제도인데, 성행위보다는 사람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돌봄이 가족을 이루는 결합의 요건으로 더 합리적인 기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산이 제도의 틀 안팎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든 상관없이 서로 돌보는 사이라면 가족을 구성할 수 있다는 개념이 가족의 기능에 비추어 볼 때 더 타당하지 않은가. - P307
협소하게 정의된 가족의 중요도가 커질수록, 가족의 역할이 확대될수록 가족을 구성하고자 하는 의지도 꺽이기 마련이다. 원가족의 풍부한 지원이 없는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가족이 사회보장과 복지의 기본 단위인 한, 이미 부유한 가족은 점점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가족은 점점 더 가난해질 것이다. 그렇게 가족 계급사회가 가속화할수록 한국 사회의 양극화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해 질 것이다.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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