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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감 -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김찬호 지음, 유주환 작곡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평점 :
모멸 (侮蔑)
[모ː멸]
[명사] 업신여기고 얕잡아 봄.
[유의어] 모욕, 굴욕, 멸시
모욕과 멸시를 동시에 당하것.
네이버 사전을 검색해보니
모멸이란 업신여기고 얕잡아 봄을 말한다.
십년도 더 지난 일인데 아직도 기억속에 아니 가슴속에 상처로 기억되는 일이 있다.
그때 당시 나는 투잡을 하고 있었다.
아침에는 청소 그 후에는 웨이트레스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나이가 삼십대 초반이였고, 내가 웨이트레스 일을 하고 있는 가게의
부사장은 나와 한동갑이였다.
적지 않은 나이에 서빙일을 해야하는것이 스스로도 그리 자랑스러운 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어느날 바텐더와 부사장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다.
바텐더가 매상을 중간에서 상습적으로 가로챈것을 부사장이 알게된것인데
당시 나는 홀매니저였고 어떻게든 싸움을 중재해야 하는 입장이여서
어쩔수 없이 사건에 관여하게 되었고
이 바텐더의 부인이(이십대 중반) 가게로 전화를 해서 다짜고짜 욕설과 폭언을 퍼부었다.
심지어 나와 친분이 있는 여자였는데
그 여자는 이 일과 아무 상관없는 내게
"너가 그러니까 그 나이 먹도록 그런데서 써빙이나 보고 있는거야!" 라며 인신공격을 하였다.
그 말을 들었던 순간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가슴과 머리에서 각자 다른 무언가가 '펑'하고 터지면서
말 그대로 그 '모멸감'이란것을 느꼈다.
분한 마음에 손발이 덜덜 떨리고 심장이 터질듯 방망이질 하고
눈물이...고였지만, 울지는 않았다.
당신의
동의없이는 누구도 당신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할 수 없다.- 엘리너 루스벨트 -
만약 나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스스로 열등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면
그 여자의 그런 말따위가 내게 그토록 큰 모멸감을 불러 일으킬수 있었을까?
나는 상처 받을 준비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이 쉽게 모멸감을 느끼거나 모멸감을 느끼게 만들수 있는 이유는
타인의 평가에 쉽게 좌지우지 되는 낮은 자존감.
문제는 그것이다.
타인에게 하는 말은 곧 자기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 자기를 혐오하기에 남을 함부로 대한다는 것을 알면, 연민이 싹튼다. 부당하게 악감정을 퍼붓는 사람은 자존감이 파괴되었기 때문임을 이해하면서 측은지심에 이를 수 있다. 그 모습을 거울 삼아, 과연 나는 스스로를 정당하게 사랑하고 있는지를 질문할 수 있다. 자존감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나를 귀하게 여겨야지 하고 결심한다고 곧바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땅에 작물을 재배하듯이, 오랫동안 꾸준하게 마음의 밭을 일구어야 한다. 거기에 어떤 씨았을 심고 가꾸는가에 따라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p290< 모멸감>
'소심하다' 는 평을 많이 듣는다. 다시말해 쉽게 상처 받는 인간인데,
그건 바로 낮은 자존감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받은 상처 그 이상으로
주변인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더 큰 모멸감을 주는 나를 알고 있다.
상대방의 약점, 어디를 찌르면 헉 소리 나게 아프겠구나 하는 것들이 쉽게 보인다.
그리고 나에게 조금만 상처를 주어도
나는 가차없이 그 약점을 후벼파고 난도질한다.
말을 잘한다, 말빨이 세다 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대부분 남들을 갈굴(?)때 나의 말빨이 세어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아...이 찌질하고 못난 인간....
이미 낮아질 대로 낮아진 자존감을 도대체 어떻게 회복시킬수 있는것인지.
그런 방법이 있기는 있는 것인지, 이 책을 읽는 내내 무언가 답이 나오길 바랬지만,
'오랫동안 꾸준하게 마음의 밭을 일구어야 한다.' 가 끝이다. 아쉽다.
*저자의 맺음말 요약*
어떻게 하면 모멸감을 덜 느끼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인간으로서 당당함을 좀더 누리고 살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사회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있고, 개인적으로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 그것을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정리해보고자 한다.
첫째, 구조적인 차원에서 접근이 요청된다. (...)경제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보다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제도를 수립하고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날로 심화되는 불평등 지수가 개선되도록 분배의 틀을 리모델링 하고,(...)이는 궁극적으로 정치의 몫으로 수렴되고, 그것을 촉진하기 위한 사회운동의 과제가 제기 된다.
둘째, 문화적인 차원의 접근을 생각해야 한다. (...)인간의 격을 위아래로 나누는 서열 관념은 학력 이외에도 여러 가지 기준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경제력, 거주지, 가정환경, 피부색 외모, 나이 등 외형적인 차이를 절대화하면서 차별하고 멸시한다. (...)모멸감을 줄이려면 이러한 문화와 사회 풍토를 바꿔가야 한다. 가치의 다원화가 핵심이다.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시야를 여러 차원으로 틔워야 한다. 그럼으로써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 평범함과 비범함을 나누는 기준 자체를 상대화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나를 있는 그대로 승인해주면서 도전과 성취를 붇돋아주는 관계와 공동체가 다양하게 형성되어야 한다.
셋째, 개인의 내면적을 힘을 키워야 한다. 삶의 자리에 모멸이 만연하는 까닭은 스스로의 품위를 잃었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너그러운 성품에서 격조 있는 삶이 가능하다. 높은 것에 사로잡혀 삶을 창조하기에 자기를 돌볼 줄 안다.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자신을 자각하며 스스로 채워진 마음이 타인에게 스며들기에 품위있는 관계가 형성된다. 그러한 위엄과 기품이 사회적 풍토로 자리 잡을 때, 모멸감의 악순환도 줄어든다. 그 길은 자존의 각성과 결단에서 열린다.
백화점 모녀의 주차요원 폭행사건이나 땅콩회항 같은 갑들의 횡포에서
그 주차요원이나 사무장이 느꼈던것이 바로 이 '모멸감'이었을 것이다.
모멸감은 인간의 자존감을 박살내면서 그 삶을 파괴시킨다.
상처받은 그 사람은 그 상처로 인해 날이 바짝 선 폭력의 칼을
타인에게 휘두룰수도 있고
자신에게 휘둘러 자살에 이르기도 한다.
돈 자체가 목적이며 사람이 그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버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목적을 위해 수단은 아무렇게나 취급당하수 있고, 언제든 버려질수 있기때문이다.
툭하면 갑질하는 그리고 갑질 당하는 한국 사회에서(슈퍼 갑이 아닌 이상, 우리는 누구에게나 갑질 할수 있고 갑질 당할수 있다.) 개인의 마음 수양만으로는 이 모멸의 시대를 벗어날수 없다.
정치적, 문화적인 변화 없이 사람이 목적이 되고,
돈은 그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수단이 될수 있는 사회로의 변모는 불가능하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라"는
공자의 말씀도 구조의 문제를 개인에게 떠넘기는 힐링서나 자기계발서의 간사한 속삭임이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