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사의 어머니는 테레사가 자신의 인생에 출현함으로써 9명의 무릎 꿇은 구애자들을

선택할수 있는 삶을 박탈당했다고 생각한다. 모성애 따위란없었다. 


고등학교1학년때 교복이 입기 싫어서 늘 전교일등으로 등교를 했다.(전교일등으로 이런것을 하다니....)

특히나 겨울엔 수위실을 제외하고는 우리반에 불이 가장 먼저 켜지고, 난로가 가장 먼저 따뜻해졌다.(그래서 반 친구들이 겨울에는 나를 좋아해줬다......)

한겨울 새벽 깜깜한 운동장을 가로질러 입김을 펄펄 쏟아내며 빈 교실문을 털컥 열고 들어가

양동이에 있는 땔감을 난로에 넣고 신문지에 불을 붙여서 난로를 땠다. 그렇게 학기초가 며칠쯤 지났는데 그때부터 나와 같은 이유로 새벽등교를 하는 것으로 보이는 한 아이가 나와 거의 비슷한 시간에 등교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나는 국민학교 시절까진 꽤 풍요롭게 살았지만 부모님의 이혼과 아버지의 사업 부진으로 고등학교때에는 집안 사정이 그리 좋지 못한 편이였고, 그 친구는....태어날때부터 늘 가난했다고 한다. 자신의 작은키는 분유대신 보릿물을 마시고 자랐기때문이라고...다 같이 가난했는데 이상하게 형제들 중에 자신만 작다고했다. 친구의 아버지는 고물상을 어머니는 집에서 하우스를 운영하며 사채를 했다. 이미 10살 이전에 집안 살림을 맡아했고, 두살 터울의 여동생을 돌보았다. 그 친구의 점심 도시락 반찬은 늘 차가운 양철 도시락에 맨밥과 커피병에 담긴 깍뚜기였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언제나 똑같았다. 나는 그래도 엄마가 꽤나 도시락 반찬은 신경써주는 편이라 점심시간에 이 친구 앞으로 슬쩍 내 찬을 밀어 놓거나 아예 그녀석 밥위에 장조림이나 햄따위를 푹 올려 놓은 적도 있었다. 우리집에서 엄마가 차려준 밥과 된장찌개를 땀을 뻘뻘 흘리며 먹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참....순수한 녀석이였다. 나는 순수하고는 거리가 아주 많이 꽤 심하게 멀어서, 이렇게 힘든 상황에 어떻게 저렇게 착할수 있는지 그 녀석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늘 뒤도 안돌아 보고 고물상으로 직행해서 일을 돕고 가사일을 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친구와 나는 같은 지방대를 가게 되었고, 나는 고삐풀린 망아지마냥 술퍼마시고 놀기 바뻐 한달에 한번도 집에 연락조차 하질 않았는데, 그녀석은 일주일에 한번씩 꼬박꼬박 우리 엄마에게 안부전화를 하고 인천에 올때마다 우리 집에 들어 엄마와 동생의 안부를 챙겼다.


그러던 어느날....갑자기 학교에서 그 녀석이 보이질 않았다.

하루, 이틀,,삼일..그리고 그렇게 또 며칠.

한달쯤 후에야, 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했다가 다행히도(?)다시 깨어났다는 것을 알게 됐다.

워낙에 말이 없던 녀석, 난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또 몇년이 지난 어느날, 밤 10시가 다 되어 근처 근린공원에서 소주나 한잔 하자고 전화가 왔다.

소주랑 새우깡을 앞에두고 긴 한숨과 함께 말없던 녀석이 말문을 열었다.

"내가 우리 아부지 딸이 아니래."

"엉?"

"우리 아부지가 내 아부지가 아니라고...."

"아 젠장 그게 뭔 거지 같은 말이야?"

"아버지 지금 병원에 계시잖아, 수혈해야 해서 피검사를 했는데....

뭐가 이상하더라구, 엄마 한테 물어보니까 .....

나를 가진채로 울 아버지랑 재혼한거였데......"


친구는 대학생이 되었을때 까지 어머니에게 혁대로 맞았다,

세탁소 옷걸이로도 맞고 뭐든 뭐로든 어떤 이유로 무엇으로든 맞았다.

배다른 언니 오빠들은 각자 지들 노느라 집엔, 고물상엔 일절 관심도 없었고,

씨다른 동생은 그저 어리광 부리기에 바빴다.

고등학생 여자이이의 손마디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 친구의 노동강도는 엄청났다.

그 친구는 "내겐 아부지 뿐이야....그래서 내가 이 집에서 버티고 사는거야....."

말도 많지 않던 녀석이 간혹 술에 취하면 제일 많이 하던 이야기 였다.


그런데 그 아부지가 내 아부지가 아니였다니,

어머니의 그 밑도 끝도 없는 구박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였다.

그 친구의 어머니는 "너만 생기지 않았어도, 지금 네 아버지 같은 가난뱅이와 결혼하지 않았고,

그랬다면 내가 이렇게 힘들게 살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했단다.

오! 어머니........


아, 물론 나도 저와 상당히 비슷한 이야기를 내 어머니에게 듣긴 했다. 

그렇지만 내 어머니는 자식들에겐 매우 헌신적이다. 지금까지도 물론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암 투병중이던 아버지의 병상을 끝까지 홀로 지킨것은

내 친구였다.

배다른 두 형제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재산을 챙기러 왔다.

오! 형제들이여.......


테레사와 테레사 어머니 이야기를 읽다가

그 녀석이 떠올랐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늘 힘들었던 녀석.

그래도 남 탓할줄 모르고 늘 제가 모자라 그렇다던 녀석.

함께 술잔을 부딪힐때마다

우리는 늘 같은 이야기를 했다.

"설마, 지금 보다 더 나빠지기야 하겠어?

우리는 한번도, 더 좋아지길 꿈꾸어 본적이 없었다.

그때 친구와 나는 스무살이였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이였다.

그저 지금 보다는 조금만 덜 불행하거나, 지금처럼 유지만 되도

그렇게만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친구는 나에게"너는 전생에 가정 파괴범이였을꺼야, ..."

가족때문에 너무 힘들어 하는 내게 하는 친구의 말이였다.

"븅신...너는 그럼 뭐였길래 그러고 사냐?"

늘 하던 나의 대답이다.


우리는 서로 참 많은 부분이 비슷하게 불행하여서

서로가 참 딱했다. 그래서 아마도 서로를 더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위로를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왠지 저 녀석 보다는 내가 좀 덜 힘든거 같으니, 힘내야지, 뭐 이런 위로 말이다.

주변에서 보면 누가 더하고 말고 할 상황도 아니였는데 말이다.


책을 덮고 뭐라도 끄적이지 않을수가 없었다.

잘 지내고 있니 내가 유일하게 친구라 부를수 있던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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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6 1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무개 2013-11-06 11:09   좋아요 0 | URL
제가 그 친구를 어떻게 기만하고 버렸는지 아시면
이런 따뜻한 선물 안 보내셨을텐데
저한테 낚이신겁니다. 다락방님.....

하지만
책이 도착하기도 전에
전 이미 위로 받고 따듯해졌다는거 이야기 하고 싶었어요.
감사합니다. 따듯한 갈색눈의 다락방님^^

곰곰생각하는발 2013-11-06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묘하게 감동적입니다. 다들 지겹게 사는거죠. 지겨운 게 인생 아닌가 싶어요.

아무개 2013-11-07 09:10   좋아요 0 | URL
곰발님이 인생을 지겹다라고 생각하시는건 쫌 의외인걸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제 인생도 꽤 나름 스펙타클해서
가끔 지겨울 정도로 아무일도 안 일어 나면 불안합니다 ^^::::::

마녀고양이 2013-11-08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개님, 쪼옥~~~

페이퍼를 읽고, 드릴 말씀이 그다지 없이 마음만 뭉클하여 뽀뽀만 날리고 갑니다.
치킨 맛나게 드시고 계실까요.

아무개 2013-11-08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그레~~~~*^^*

양철나무꾼 2013-11-10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쓸쓸하기만 한 가을날 오후였는데,
님의 이 글을 보고 어머나~...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뜨거운 눈물은 별개로 해야겠지만요, ㅋ~.
좋습니다.

근데 조 위 곰발 님의 댓글의 덧글을 보고,
나 또 한명의 동지를 만난거야? 싶어...
다시 따뜻 모드로 돌아섰습니다, ㅋ~.

아무개 2013-11-11 08:52   좋아요 0 | URL
아무 일도 안 일어나면 지겨운 인생.

어떤 일이 일어나면 짜증나는 인생.

지겹고 짜증나는 날들의 반복...

그 사이 잠깐의 위로와 따뜻함...

그래서 더 귀한 행복한 시간들....이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