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1에 연재 중인 정재승의 글이다. 바람둥이를 말한다.

 

바람둥이 가려내는 법



‘훌륭한’ 결혼상대자와 정확히 일치하는 조건, 그들을 한눈에 알아보는 비법이 있다!

▣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인간은 어떻게 서로에게 매혹되는 걸까? 오랫동안 사랑이 ‘인류의 숙제’로 자리잡고 있는 이유는 우리가 아직 이 질문에 정확한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이면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파트릭 르무안은 자신의 매혹적인 저서 <유혹의 심리학>(북폴리오, 2005)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누군가를 유혹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 단언한다. 사람들은 온갖 감각기관을 자극하며 상대를 유혹하기 위해 때론 변신하고 때론 속임수를 쓰면서 일탈을 꿈꾼다. 이런 유혹의 심리는 결혼을 하고 나이가 들어서도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르무안의 주장이다.



△ 바람둥이들은 ‘터치’가 주는 효과를 본능적으로 잘 알고 있다.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의 조원은 숙부인을 유혹하기 위해 ‘터치’ 기회를 호시탐탐 엿본다.

 

 

 

 

 

“씻지 말고 기다리시라”

그의 관점에서 보자면, 카사노바나 돈 주앙 같은 바람둥이는 누군가를 유혹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도 하지만, 타고난 매력을 주체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타고난 매력을 갖춘데다, 여성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원하는 걸 들어줄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었으니 어떤 여성이 그의 앞에서 무너지지 않을 수 있으랴!
남자들이 한눈에 반하는 여성들의 매력은 아름다운 외모에 크게 의존한다. 적당한 키와 적당한 크기의 가슴, 좌우대칭이 잘 이루어진 얼굴과 몸매, 매끈하고 환한 피부, 동공이 큰 눈과 붉고 도톰한 입술, 윤기 나는 머리카락, 그리고 가는 허리와 풍만한 엉덩이. 이것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매력적인 여성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남성들이 줄기차게 반복해 적어낸 답들이었다.
그러나 <유혹의 심리학>은 주변에 남성이 끊이지 않는 여성은 ‘향기 전략’을 사용한다는 데 주목했다. 후각을 자극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 같지만, 여성이 내뿜는 향기가 남성들을 유혹하는 데 생각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역사적인 일례로,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이 아내 조세핀에게 보낸 편지들을 후대 역사학자들이 분석하다가 나폴레옹이 그 편지들을 쓰게 된 동기를 알게 돼 크게 놀란 적이 있다고 한다. 적들과 전쟁을 치르느라 몇 달 동안 아내와 떨어져 지내야 했던 용맹하고 혈기왕성한 나폴레옹은 요새로 돌아와 사랑하는 아내에게 종종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이제 두 주 후면 도착할 테니 몸을 씻지 말고 기다리고 있으라’는 명령을 전하기 위해서!(우리나라에선 주로 씻고 기다리라고 했던 것 같은데.) 한번 상상해보시라, ‘적들을 향해 전진!’을 외치던 장수가 요새로 돌아와 씻지 말고 기다리라는 편지를 쓰고 있는 모습을. ‘암컷의 성적 향기는 남성에겐 거부할 수 없는 최면적인 매혹’이라는 프로이트의 표현대로, 나폴레옹도 죽음의 전장에서 조세핀의 향기가 가장 그리웠던 모양이다.
매력적인 남성이 가져야 할 조건 역시 많은 여성들의 입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것이 많다. 건강해야 하며, 키가 커야 하며, 어깨가 넓고 허리는 날씬해야 한다. 지적이어야 하며, 사회적 성공과 자기실현에 대한 야심이 있어야 한다. 물론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 성실함 또한 중요한 조건이다. 또 정서적으로 안정돼 있어 여성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이런 걸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은 뭘 해도 성공하겠다!). 관대함과 배려는 남성의 매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덕목인데, 바람둥이들이 늘 밥을 사고 자주 선물 공세를 하는 것도 이를 드러내기 위한 전략 중 하나다. 사회적 지위와 은행 잔고 역시 매력남의 필수적인 조건이다.
이런 조건은 여성들이 보편적으로 꼽는 ‘결혼상대자의 조건’인데, 바람둥이들은 이 모든 요소를 실제로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가지고 있다는 인상’은 주어야 한다. 그러한 가능성이 바로 여성들에게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 된다.

욕은 먹어도 실속은 챙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조건들 중에 ‘미모의 여성과 함께했던 과거’가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왜 미모의 여성과 교제했던 과거 경험이 여성들에게 오히려 매력적인 남성의 조건으로 받아들여질까? 매력적인 여성을 대해본 경험이 있는 남성이 여성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알고 있으며(학습이론이랄까?), 다른 여성에게도 매력적으로 보였다는 사실이 그를 선택하는 데 대한 확신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래서 바람둥이들이 욕은 먹을지언정 실속은 챙기는 모양이다!
몇 해 전, 미국의 어느 진화심리학자가 내게 ‘바람둥이 남성을 가려내는 방법’으로 알려준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남성 혹은 여성이 무의식적으로 ‘터치’를 얼마나 자주 하는가를 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성의 터치에 민감하다. 모두가 경험했다시피, 스킨십은 남녀 사이의 친밀감을 빠르게 증폭시킨다.
남녀의 유혹적인 행동을 연구한 결과들을 보면, 여성은 최초의 데이트에서 남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주로 목선을 드러내고 환하게 웃으며 1분 이상 눈맞춤을 지속한다. 반면 남성들은 유머를 구사하려고 노력하며 눈맞춤을 지속하며,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유도하려고 노력한다.
이때 주의할 사항은 나라마다 민족마다 스킨십에 대한 태도가 제각기 다르다는 사실이다. 한 행동심리학자가 카페에서 손님들이 보이는 행동양상을 몰래카메라로 촬영해 분석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나라마다 스킨십의 정도가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차이가 크더라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한 시간 동안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은 평균 180회 정도, 파리 사람들은 110회 정도 신체적 접촉을 한 반면, 미국 플로리다주 게인즈빌 사람들은 2회 정도에 불과하더라는 것이다(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의 신체 접촉은 미국 사람들보다는 많겠지만 파리 사람들보다는 훨씬 적을 것이다). 더욱 심한 것은 영국 사람들인데, 특히 런던내기들은 상대방과 카페에서 대화를 하는 동안 절대 접촉을 안 한다는 것이 실험 결과였다. 그러니 영국에 가서 아무 여성에게나 친한 척 접촉하지 마시길!

사랑은 사랑하게 만드네

바람둥이는 원래 타고난 것인지, 스스로 학습하고 터득한 것인지에 각별히 관심을 두는 이유는 그들의 행동적 특징이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전형적으로 보이는 행동들의 기원을 설명해줄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근사한 답을 가지고 있진 못하다. 그들이 생물학적으로 이성을 끄는 매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전략적으로도 매력적인 행동들을 학습해 적용하더라는 것이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쩌면 당연한) 결론이다.

 

 

 

 

 



끝으로, 남자들이 알아두면 좋을 만한 바람둥이의 중요한 전략 한 가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카사노바의 자서전 <불멸의 유혹>을 보면 그가 여성을 대하는 태도와 철학을 언급한 대목이 간간이 나오는데, 여기에 주목할 만한 메시지가 있다. 카사노바는 여성이 자신을 사랑하도록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고 말하면서 “여성은 자신이 매우 사랑받고 있으며 매우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그저 여성을 (매번!)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 여성이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지 일깨워주고 소중하게 대해주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면 놀랍게도 여성들은 (원래 그렇지 않던 여성들도) 실제로 아름다운 존재로, 사랑받는 존재로 변하고 그렇게 행동하며,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성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이다.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하듯, 사랑은 여성을 사랑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 중 하나로 그가 제안하는 것은 이성과 대화할 때 내가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상대방이 관심 있어 하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라는 것이다. 때로는 이를 위해 공부를 할 필요도 있다. 상대방이 관심 갖고 있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을 함께 나누는 것만큼 사랑스런 순간은 없다는 것이 희대의 바람둥이가 우리에게 전하는 조언이다. 아,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혐오감·공포·분노에 신음하는 10대 성소수자들, 가출·자퇴·자살 시도 비율 높아


▣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인권 OTL-30개의 시선 ④]

많은 10대 레즈비언들이 성정체성 고민과 ‘아우팅’(남들에 의해 자신의 성정체성이 폭로되는 것)의 공포, 학교와 가정의 압박 속에 괴로워한다. 학교와 가정처럼 폐쇄적이고 10대에게 무한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조직 안에서의 폭력은 10대 레즈비언들에게 큰 공포일 수밖에 없다. 탈출구가 없는 아이들은 마침내 자신을 해치는 길을 택한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가 10대 레즈비언 166명을 대상으로 2007년 벌인 조사를 보면, 58.5%가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고, 심층 면담 때도 많은 아이들이 자해와 자살 시도 경험을 털어놓았다. 숨어서 하는 자해는 오히려 이들의 절박함을 바깥세상에 드러낸다.



△ ‘이만큼 아파요.’ 학교와 집에서 ‘탈주’한 10대 성소수자는 공원 화장실 등에서 노숙을 했다고 털어놨다. 사진은 지하철역 계단에 앉아 있는 가출 청소년(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하자센터 제공)





칼로 긋고 약을 삼킨 수많은 사연들

최근엔 온라인에 이른바 ‘자해 커뮤니티’까지 등장했다. 이미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는 일에 몰입하게 된 아이들이 모여 자해 이야기와 고민을 나누는 공간이다. 회원 수가 100여 명에 이르는 곳부터 이제 막 만들어진 곳까지 여러 개다. 이곳에 들어가봐도 성정체성을 고민하고 학교 생활의 어려움을 털어놓는 10대들과 마주칠 수 있다. 게시판에는 칼로, 수십 알의 약으로 자신을 해쳤다는 사연들이 가득하다.
부모의 손에 이끌려 정신병원에 갔다 온 17살의 글이 올라왔다. ‘여자이기 싫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는 아이였다. “병원에 갔어요. 성동일성 장애, 성정체성 장애란 진단을 받았습니다. 어머니가 우셨습니다.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나루토>와 <블리치>란 일본 만화를 좋아한다며 올린 사진 속에는 짧은 머리의 앳된 얼굴이 웃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끔찍하다. “혹시 이성에게, 남자에게 연애 감정을 가진 적은 없어요?”란 의사의 질문에 그는 자신을 정신병자 취급하는 병원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자해는 계속됐다.
“더 이상 의지할 수 있는 약도 없고, 팔목엔 자해를 할 수 있는 자리도 없다. 살 의미조차 모두 잃었다.” 이 글을 남긴 아이는 이 커뮤니티 안에서 커밍아웃을 한 16살 여고생이다. 그는 가슴에 압박붕대를 하고 다닌다. ‘압박붕대가 조여 숨을 쉴 수 없다. 호흡곤란으로 죽는가’란 말도 서슴지 않는다. 최근 여자친구를 소개받았지만 ‘그녀’를 잊을 수 없어 괴롭다. “사랑은 될 수 없었지만- 그 아이도 나도- 내가 그 애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 알았”기에 더이상 살 의미가 없다는 독백은 위태롭다.
그의 글에 공감의 댓글이 달렸다. “저 역시 그런 사람이 있어요. 그 아이가 저에게 ‘그런 짓(자해) 하지 마’라고 해서 잠시나마 자살 시도를 하지 않았지요. 한데 고백했다가 그 아이도 떠나고 주위의 모든 것이 사라졌어요.” 사랑의 좌절은 냉혹한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레즈비언으로 살아갈 날들에 누구도 조언을 해주지 않는다.
자신은 ‘바이호모섹슈얼’(양성애를 자신들 나름대로 일컫는 표현)이며 결국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냉소에 가득 찬 게시물도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사랑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다’ ‘사랑 같은 건 차라리 처음부터 모르는 게 더 속편하다’는 댓글이 이어진다. 글쓴이는 후에 ‘저 같은 분들이 많다는 건 정말 슬프면서도 강한 동료애를 느낀다’는 답글을 올렸다. 서로 자해를 끊을 수 있도록 다독이지만, 자해할 수밖에 없는 마음도 서로 끔찍이 이해한다.
학교에서 동성애자(이반)를 가려내 괴롭히는 현실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이반겸열1>에서 시뻘겋게 부푼 자신의 팔을 화면 속에 들이밀었던 10대 레즈비언 ‘천재’는 “(학교 쪽의 ‘이반검열’에) 분한데 아무 데에도 말할 수 없으니 자해는 유일한 화풀이 수단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혼자 숨어서 자해를 했는데 알고 보니 학교에서 ‘레즈’로 걸린 아이 8~9명 중에 6명 정도가 자해를 하고 있었다. ‘일차’(일일찻집)에 가봐도 팔목에 아대를 하고 다니는 애들은 상처를 가리기 위해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요즘의 ‘띵’(10대 동성애자)들은 대부분 중학교 시절에 다른 ‘띵’들을 만난다. 강병철 삼육보건대학 교수(보건사회복지과)와 김지혜 전 대진대 교수(사회복지학과)가 청소년 성소수자 135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논문 ‘청소년 성소수자 생활실태 조사’(2006)를 보면, 성정체성을 인지하기 시작한 평균 연령은 13.8살. 그리고 평균 17.2살에 첫 번째 성경험을 했다. 이렇게 일찍이 성정체성을 깨닫지만 일찌감치 절망감도 찾아든다. 같은 논문에서 10대 성소수자 중 51.5%가 성정체성과 관련한 욕설 등 언어적 모욕을 당한 적이 있고, 13.8%는 주먹질이나 발길질 등의 신체적 구타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여성 성소수자 중에서 아우팅을 당한 경험은 38.8%로 남성(16.9%)에 견줘 높았다.



△ 한 ‘자해 커뮤니티’에는 ‘아파’라는 제목으로 피가 솟는 가슴을 부여잡고 있는 그림이 올라왔다.




센터 활동가 유성(18)이도 중학교 시절에 교사가 작성한 ‘이반 리스트’에 올라 특별관리를 받았다. 중학교 때 부모가 이혼한 유성이는 아버지와 살았지만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 고등학교 1학년에 학교를 나왔다. 그는 “돈이 없어서 사흘을 굶은 적도 있고 한 달 내내 라면을 먹은 경험도 있다”고 돌이켰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가긴 싫었다. 이들의 가출에는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가정과 사회로부터 탈주하는 면도 있다. 그래서 남들은 가출이라 부르지만, 이들은 독립이라 생각한다.

가출 6개월간 공원 화장실서 노숙


부모도 어르다가 화내다가 정신병원에 끌고 가다 어찌할 바를 모른다. 부모와 아이의 충돌은 그래서 가출로 이어진다. 10대 여성 성소수자 166명(가출 경험 있는 107명, 없는 59명)을 대상으로 한 센터의 ‘물보라 작전’(2007) 조사를 봐도 ‘가족들이 나의 옷차림이나 외모를 바꾸라고 강요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절반을 넘었다. 가출 청소년 중 15%는 ‘가족들이 나의 동성애를 치료하겠다며 강제로 상담이나 치료를 받게 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고, 7.5%는 ‘가족에게 구타를 당했다’고 응답했다. 혐오를 넘어서 폭력에 노출된 경우도 있는 것이다. 물보라 작전이 심층 인터뷰한 지현(19)이의 증언이다. “아빠가 가둬놓고 때리고… 맞다가 굴러다니면서 맞는 게 이런 거구나. 발로 얼굴 차고 머리 누르고, 진짜 4시간 동안 맞다가….”
강병철 교수 등의 논문을 보면, 가출 경험이 있는 성소수자 청소년의 비율도 29.6%이다. 같은해 청소년위원회가 성정체성 구분 없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9.9%가 가출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것에 견줘 매우 높은 수치다. 처음 가출할 때의 나이는 15.52살(물보라 작전). 성정체성을 인지하고 한두 살이 지나서 가출한 결과다. 미국의 청소년 기관은 대략 가출 청소년 4명 중 1명을 성소수자 청소년으로 파악한다. 성소수자가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 이하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비율이다.
물보라 작전 조사에서 가출을 해본 경험이 있는 아이들 중 21명은 놀이터와 공원을 포함한 길거리에서 지냈다고 해 이들에 대한 지원이 시급함을 드러냈다. 물보라 작전이 심층 인터뷰한 정현(18)이는 공원에서 장기간 단체로 노숙을 했다. 10대 노숙인인 셈이다. 잠은 공원의 화장실에서 자면서 6개월을 버텼다. 노숙을 했던 친구들은 공원에서 자다가 이성애자 남성들에게 성추행을 당해도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다. 그는 “경찰에 가면 우리도 가출 사실이 드러나니까 신고도 못하고 참았다”고 말했다.

“가출 청소년 쉼터는 성소수자 꺼려”

그는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서 거리로 나왔다. 어머니는 정현이가 여덟 살 때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지 못해 집을 나갔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가출하자 정현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정현이가 레즈비언이란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딸의 성정체성을 욕하며 구타했다. 폭력을 못 이긴 딸이 가출을 시작하자 “아예 들어오지 말라”고 폭언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가출을 시작한 정현이는 가출 생활이 너무 힘들어 집에 가려고 일부러 사고를 치고 경찰을 부른 적도 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가 오시지 않았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이후 약도 먹고 목을 매기도 하는 등 자살 시도를 자주 했지만 끝내 살아남았다.
가출한 이후엔 돈벌이 문제가 생긴다. 물보라 작전 조사 결과를 보면, 가출한 이후에 가장 많이 한 일은 편의점과 PC방 아르바이트(69.8%)였다. 이른바 ‘부치’로 불리는 남성스런 외모의 레즈비언은 일자리에서도 차별을 당한다. 외모 때문에 서빙 같은 여성적 일자리에서 배제되고, 성별 때문에 배달일 같은 남성의 일자리도 얻기 힘들다.
10대 띵들의 일부는 가출 청소년 쉼터에 들어가려 하지만 여기서도 차별은 계속된다. 센터 활동가 ‘잘해보지’씨는 “대부분의 가출 청소년 쉼터는 여전히 성소수자 청소년을 받기 꺼린다”고 전했다. 서울의 가출 청소년 쉼터란 쉼터는 모조리 전전했다는 정현이는 ‘XX쉼터’가 가장 좋았다고 말한다. 그곳엔 서로를 이해하는 ‘띵’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강병철 교수 등의 논문을 보면, 미국 가출 성소수자 청소년의 56%는 기관에 있을 때가 더 위험하다고 느껴져 거리에서 지냈다고 응답했다. 그래서 미국에선 성소수자 청소년을 위한 특성화된 상담과 독립적인 쉼터를 운영한다. 물보라 작전의 조사를 보면, 가출 경험이 있는 청소년의 82.2%가 10대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전문적인 쉼터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최초의 성소수자 국회의원 후보였던 최현숙씨는 카페, 도서관, 문화작업실, 숙소 등이 갖춰진 성소수자 청소년을 위한 공간 ‘무지개 등대’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는데 이것은 상당수 성소수자 청소년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이를 악물고 가족과 학교 안에서 버티는 아이들도 있다. 5월10일 청소년 성소수자 커뮤니티 ‘라틴’의 봄소풍에 체 게바라 목걸이를 걸고 나온 유진(17)이는 씩씩한 외모에 깊은 슬픔을 감추고 있었다. 유진이는 ‘커밍아우팅’이라는 말로 자신의 상처를 설명했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믿었던 친구에게 비밀을 약속하고 커밍아웃했다. 하지만 한 번의 커밍아웃은 영원한 아우팅으로 이어졌다. 커밍아웃 사실도 잊고 있던 중학교 2학년 때, 어디선가 자신이 동성애자란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다른 반에서 나를 구경 오는 아이들도 있었다”며 “졸지에 나는 동물원의 귀여운 원숭이도 아니고 징그러운 동물이 되었다”고 돌이켰다. 학교의 상담교사는 “네가 조심했어야 한다”고 말했고, 학교 바깥의 상담자는 “남자를 좋아해보라”고 충고했다. 유진은 “따뜻하게 손이라도 잡아주면서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길 바랐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한두 해가 지나니 어느새 경계성 성격장애까지 생겼다.
유진이는 “알고 지내던 게이 친구 한 명이 아우팅에 시달리다 결국 ‘내가 잘못했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자살했다”고 전했다. 강병철 교수의 논문을 보면, 미국에서 전체 자살 청소년 중에 성정체성 고민으로 목숨을 끊는 비율은 30%에 이른다. 하지만 한국에선 여고생 두 명이 손 잡고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도 성적 비관 자살이지 성정체성 비관 자살이 아니다. 이렇게 묘비명 없는 무덤이 쌓여왔다.

전문적 지원기관과 상담인력 부족해

위기에 처한 청소년은 있지만 도움의 손길은 찾기 힘들다. 물보라 작전의 조사를 보면, 10대 여성 성소수자가 ‘학교 상담실’을 이용한 비율은 2% 미만으로 극히 낮았다. 상담의 욕구는 크지만 신분 노출의 위험이 크고 상담 결과가 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청소년 성상담 기관의 교사도 고충을 느낀다. 내일여성센터 성교육팀 정한경씨는 “아무래도 동성애 경험을 모르니까 깊이 있는 상담을 하기가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YMCA 쉼터 거리이동상담 담당 심효진씨는 “성소수자 활동가의 성정체성 강의를 들은 뒤에는 성소수자에 대해 가졌던 두려움이 사라지고 상담에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현재의 성교육은 사실상 이성애 교육에 그친다는 지적도 있었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 인권정책팀 활동가 ‘고리’씨는 “레즈비언 등 10대 성소수자들의 경우 자신에 대한 혐오감, 나는 어떤 존재일까 하는 두려움, 날 받아주지 않는 세상을 향한 분노 등을 표현할 길이 없어 자해를 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현재 이들을 위한 전문적인 지원기관이나 교육된 상담인력은 많지 않다. 고리씨는 “자해는 자기를 봐달라는 최후의 방식이며, 이만큼 아프다고 도움을 청하는 손길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자해 커뮤니티에 오른 ‘아파’라는 제목의 게시물 안에는 ‘난 언제나 혼자 울어야 한단 말야’란 글과 함께 그림이 올라와 있었다. 피가 나는 가슴을 부여잡고 있는 손수제작물이다. 또 다른 게시물 말미에는 “어쩌면 누군가가 내 팔에 있는 상처를 보고 위로해주길 바라는 걸지도 모르겠어요”란 말이 있었다. 10대 성소수자들은 지금 우리에게 위태롭게 신호를 보내고 있다.


 



혐오 범죄에 노출된 ‘공원’




해방구도 안전하지 않다

해방구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10대 레즈비언들이 모이는 서울의 한 공원은 행인이 적잖은 도심에 위치한 탓에 각종 폭력에 쉽사리 노출된다. 5월11일 이 공원에서 시비가 붙을 뻔했다. 소주를 마시던 노숙인이 화장실에서 짧은 치마를 입은 10대 여성에게 다가가 시비를 걸며 추행하려 했다. 다행히 이곳에서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던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이하 센터) 활동가들이 말려서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공원의 청소년 중에서 위기를 겪은 사람은 많다. 센터 활동가 유성(18)이는 전한다. “어떤 아저씨가 친구를 모텔로 끌고 가기에 우리가 몰려가서 구해왔어요. 마침 공원을 지나가던 경찰에게 이런 사실을 알렸죠. 하지만 경찰은 밤늦게 다니지 말라고 타이를 뿐이었어요.” 또래 남자애들은 “호모”라고 욕하다가 폭력까지 휘두른다. 10대 ‘띵’(동성애자) 성준이는 지난해 11월에 험한 일을 겪었다. “저녁에 남자애 5명이 몰려와 ‘나 게이야, 너 예쁘다’ 하면서 머리를 만지고 그랬어요. 힘으로 당하긴 힘들죠. 그날 아팠던 제 애인이 홧김에 병을 깨 피가 나고 결국엔 응급실에 갔어요.”
강병철 삼육보건대학 교수(보건사회복지과) 등의 논문을 보면, 미국에서 동성애 혐오 범죄의 가해자 다수는 청소년인데 가해자의 90%가 남성이고 50%가 20대 초반 이하다. 어쩌면 이 공원은 한국에서 동성애 혐오 범죄에 가장 위험하게 노출된 공간인 셈이다. 그래서 보호가 필요하지만 경찰도, 주민도 편견이 심하다. 공원 주변 주차장 관리인은 “쟤들은 동성연애해서 100% 성병 걸린 아이들”이라며 혐오감을 드러냈다.
미래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10대가 지나면 ‘탈반’을 시도한다. 탈반이란 ‘이반(동성애자)에서 탈퇴한다’는 뜻의 10대 레즈비언 용어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20대가 넘어서도 동성애자로 살려면 넘어야 할 장애물이 적잖다. 성인 레즈비언 커뮤니티와 단절된 탓에 삶의 모델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스무 살 즈음이 되면 ‘탈반한다’는 단체문자를 보내고 공원을 떠난다. 공원 출신인 리인(19)씨는 “탈반한 이후에 여전히 10대의 추억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 오히려 더욱 공원 ‘띵’들을 욕하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공원을 거쳐간 10대 여성들은 많아야 20대 중반을 넘지 않았다. 이들이 앞으로도 동성애자의 삶을 살아갈지 아니면 이성애로 편입될지 아직은 모른다. 10대의 경험은 기억의 상자에 괄호로 남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대구 초등생 집단 성폭력은 누구의 죄인가…빈곤으로 인한 오랜 방임, 피해자들이 가해자로


▣ 글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대구=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이덕수(15·가명)·영수(12·가명) 형제는 경기 ㅈ군에서 착실히 학교를 다니던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아버지와의 성격 차이로 3년 전 가출한 뒤부터 엇나가기 시작했다. 퀵서비스 배달을 하는 아버지는 아침마다 오토바이로 형제를 학교에 데려다줬다. 하지만 둘은 매번 교문 앞에서 PC방으로 곧장 발길을 돌렸다. 그러다 불량한 중학생 형들을 만나 절도를 배웠다. 손이 작은 영수가 자판기에서 컵이 나오는 틈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돈을 훔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심한 매질을 하기 시작했고 “이러다 내가 아이들을 때려 죽일지도 모르겠다”며 아동학대 신고전화(1577-1391)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

대구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



△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방임되는 어린이 문제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학대와 방임 속에 멍들고 상처 입고 납치되고 죽어간 아이들의 이야기가 고장난 레코드판처럼 숱하게 되풀이돼 왔다(그럼에도 정부가 미동도 않고 있다는 점은 뒤에 지적하기로 하자). 그렇게 ‘당하기만 하는’ 존재였던 방임 아동들이 이젠 ‘가해자’로 등장하고 있다. 덕수·영수 형제처럼 방임의 그늘 속에서 아이들은 범죄의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소리없이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무려 100여 명의 초등학생이 각종 성폭력 사건에 얽혀 있는 것으로 드러난 대구 ㅈ초등학교 사건은 이런 현상을 보여주는 최악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학생들은 부모 없는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 집단적으로 음란 동영상을 접했으며, 어떤 땐 그 규모가 수십 명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에 대처하기 위해 꾸려진 시민사회공동대책위원회(대책위)의 한 위원은 “아이들 진술서를 보면, 또래 친구들과 모여 음란 동영상을 보다가 엄마에게 걸렸는데, 엄마가 ‘다시는 보지 말라’고 얘기만 하고 말았다는 내용도 있다”고 전했다. 주위 어른의 무관심과 방임이 아이들에겐 음란물을 접하게 만든 텃밭이었던 셈이다.
지난 4월29일 만난 ㅈ초등학교의 한 교사는 아이들의 방과후 현실을 이렇게 설명했다.
“일부는 이혼한 가정도 있지만, 70%가량은 맞벌이 부부의 자녀들이에요. 맞벌이 가정은 저녁 6~7시쯤은 돼야 엄마나 아빠가 퇴근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더 늦기도 하죠. 그런데 아이들은 점심 식사하고 학원 두 곳 다녀와도 시간이 비어요. 4시30분이나 5시쯤이면 학원은 끝나는데 집에는 아무도 없는 거죠. 그때부터 엄마나 아빠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는 비는 시간이고, 그동안 애들이 뭘 하고 지내는지 어른들은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특히 빈곤과 가족해체는 아동을 방임에 빠뜨리는 가장 주요한 환경 요인이다. ㅈ초등학교가 있는 지역은 대구에서도 가장 낙후된 곳으로 손꼽힌다. 학교 주변에선 제대로 된 학원이나 공부방도 찾아볼 수 없었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 등 극빈층이 집중된 곳은 아니지만, 어렵사리 생계를 유지하는 서민들이 주로 사는 동네다. 지난 4월30일 대책위는 기자회견을 연 뒤 기자들에게 “제발 학교나 동네 이름은 밝혀지지 않게 해달라. 보통 성범죄가 발생하면 피해자나 가해자가 이사를 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 동네 주민은 더 이상 이사갈 곳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 4월29일 오후에 찾은 ㅈ초등학교의 풍경은 서울 일반 학교들과 다른 점이 많이 눈에 띄었다. 점심시간을 앞뒤로 1~3학년이 수업을 마친 데 이어 3시께에는 6학년까지 모두 수업이 끝났지만, 4~5시가 넘도록 학교 안팎에는 아이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운동장에서 공놀이를 하거나 가방을 멘 채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교정을 돌아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끊이지 않았다. 집에는 아무도 없고 갈 데가 없는 것이다.

눈물의 경고장을 무시한 사회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동안 안전사고를 당하거나 성폭행·살인과 같은 끔찍한 범죄의 희생양이 돼왔다. 그럴 때마다 어른들은 각종 대책을 쏟아냈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대책이란 것도 범인 검거에 치중했을 뿐이다. 학교는 성교육과 같은 가치관 교육보다는 입시교육으로 아이들을 내몰았고, 방에 갇힌 아이들은 인터넷에 탐닉해갔다. 결국 아이들은 같은 학교 후배를 상대로 유사 성행위를 강요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상대를 성적으로 괴롭히는 게 얼마나 나쁜 짓인지는 판단하지 못했거나 무시했다. 아이들이 방임의 터널을 지나 결국 가해자의 탈을 쓰고 돌아온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의 책임자는 가해 초등학생이 아니라, 아이들이 그동안 수많은 사건을 통해 눈물과 죽음으로 보내온 수많은 경고장을 무시한 이 사회와 어른들이라고 본다. 특히 이번 사건과 관련해 부모와 교사들의 책임은 무시할 수 없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이번 사건에서 가해 학생도 결국 방임이라는 아동 학대의 피해자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우선 가해 아동이나 피해 아동 모두 집단 성폭력이라는 비정상적 상황을 겪게 되면 평소와 다른 반응을 보이게 마련인데, 학교와 가정이 이를 미리 감지하고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아이들이 관심과 보호를 받지 못한 셈이다. 이정화 한국아동심리코치센터 대표는 “성폭력 피해 아동은 갑자기 배나 머리가 아프다며 학교 가기를 거부하거나 불안·초조와 같은 심각한 반응을 보이게 마련이고, 가해 아동도 방문을 열지 못하게 한다든지 뭔가 숨기려 하고 교류가 원활치 않은 모습을 보이게 된다”며 “이들 모두가 방임에 의한 피해자라는 시각을 어른들이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된 초등학생 모두 만 14살 이하의 형사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법적인 측면에서도 그 책임은 국가로 대변되는 어른들이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성폭력 사건이 터진 대구 ㅈ 초등학교 인근 도로. 이 근방은 대구에서도 낙후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아이들에 대한 방임은 일종의 아동학대다. 현행 아동복지법은 이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10살 미만의 어린이를 1시간 이상 홀로 집에 방치하기만 해도 그 보호자를 처벌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방임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낮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4월30일 내놓은 ‘2007 전국 아동학대 현황보고서’를 보면, 방임에 의한 아동학대 판정 건수는 2107건으로, 2001년 이후 해마다 늘고 있다. 전체 아동학대 5581건 가운데 방임이 차지하는 비중도 37.7%로 정서학대(10.6%)나 신체학대(8.5%)보다 훨씬 높다. 나이대별로는 초등학생들이 가장 크게 방임에 노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만 7∼12살이 전체 방임의 75.6%를 차지했다. 이보다 어린 경우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고, 중학생 이상의 경우도 대개 학교와 학원에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아이를 함부로 방치한 어른이 사회적으로 처벌을 받는 일은 드물다. 지난해 아동 방임 혐의로 고소·고발된 34명 가운데 형사처분을 받은 이는 2명(5.9%)에 머무른다. 한국의 사법체계는 여전히 방임을 사회문제가 아닌, 가정 안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보고서는 “방임된 아동이 어릴수록 성장환경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한 데서 기인하는 비기질적 성장 실패 등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며 “이는 아동의 건강 및 안전 문제와 직결돼 있는 만큼, 방임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사회 인프라 턱없이 부족

해답은 어른들의 ‘개과천선’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방임을 저지르는 이의 열에 아홉은 그 부모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자립지원시설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재호(14·가명)의 경우도 그렇다. 재호네 집이 망가지기 시작한 건 4년 전 아버지의 사업 실패 뒤부터다. 가정 형편이 쪼들리자 부모는 갈라섰다. 일용직 노동자가 된 아버지는 날마다 술을 마셨고 재호는 그 옆에서 안주를 집어먹었다. 경기 ㅇ시의 변두리에 있던 허름한 집에는 온갖 쓰레기가 산더미로 쌓여갔다. 절반은 아버지가 남겨 놓은 술병이었다. 어찌나 많이 쌓였던지 나중에는 인근 고물상이 트럭 한 대 가득 술병을 실어갔다. 아버지의 무관심 속에 재호는 학교를 빠지는 날이 늘어갔다. 주변의 어른 가운데 어느 누구로부터도 재호는 보호를 받지 못했다. 보다 못한 이웃 주민의 신고로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출동했고, 재호와 아버지는 시설에 맡겨졌다.
경기 부천에서 10여 년째 활동하고 있는 강동주 삼산해오름공부방 교사는 “어떤 부모는 아이가 공부방에도 못 가게 막으면서 폭력을 행사하는 등 차라리 없는 게 아이에게 더 낫겠다 싶은 생각을 들게 한다”며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적절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해바라기아동센터의 최경숙 소장도 “부모가 아이들을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양육법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제하림 청소년회복센터 소장은 “아이들은 늘 어른들을 보고 따라가기 때문에 부모와 교사, 지역사회의 어른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언제까지 아이들의 구조 요청을 외면할 것인가. 변창율 대구광역시교육청 부교육감이 4월30일 대책위 회원들과 면담 중 고개 숙여 사과를 하고 있다.




하지만 아동 방임의 주요 원인이 빈곤의 문제라는 사실에 맞닥뜨리면, 보육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양극화가 심화하고 부모들은 돈벌이에 내몰리는 상황에서 아동 보호를 가정에만 맡길 수는 없게 된 상황이다. 그러나 학교를 마친 뒤 부모가 보살필 수 없는 아이들을 대신 돌봐줄 지역 아동센터나 방과후 학교 등 사회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여성부는 방과후 시간연장형 보육사업을 지원하고 있고, 교육부는 방과후 교실, 보건복지가족부는 지역아동센터와 청소년 공부방 등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비슷한 사업을 하는 기관들임에도 늘 제기되는 ‘원활한 네트워크 구축’은 여전히 멀었다는 게 현장의 지적이다. 조직이기주의 때문이다. 아동학대 보고서도 “지역마다 가용 자원의 편차가 심하고 지역사회 내 협력체계와의 관계도 일방적이거나 임시적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면서 그 이유를 제도·법적 장치가 부족하고 관련 매뉴얼이 없는 탓이라고 밝혔다.

“아이들이 표와 연결 안되서 그런가…”

따라서 날로 심각해지는 아동 문제를 전반적으로 관리할 ‘조직의 일원화’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을 보살피고 학업을 지원하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각종 아동센터와 공부방, 상담소들을 좀더 작은 지역 단위로 쪼개 확충하면서 인력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과감한 투자가 절실하다. 아이들이 방치되지 않고 어른들의 온전한 관심과 보호 속에 자라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일이야말로 무엇보다 시급한 국정 과제인 것이다.
그러나 강동주 교사는 이렇게 말한다.
“아동에 관한 문제는 정치권에서 관심을 안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노인복지와 비교를 해봐도, 노인 문제는 정책이 나오면 착착 진행이 잘되죠. 그런데 아동 문제는 흉악 범죄가 나오면 확 끓어올랐다 금방 식어버려요. 아무래도 (노인과 달리) 아이들이 표와 연결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아이들은 이번에 끔찍한 일을 저지름으로써 또 한 번 어른들에게 ‘SOS’를 쳤다. 또 쉽게 잊어버리고 만다면 아이들은 어떤 방식으로 다시 자신들의 처지를 사회에 알리게 될까. 무서운 상상이다.



 



미국의 어린이 보호 실태



아이 혼자 두고 술에 취하면 처벌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지난 3월25일 밤 10시52분께, 인기 록밴드 ‘본조비’의 기타리스트 리치 샘보라(48)는 미 서부 캘리포니아주 라구나 비치의 퍼시픽코스트 고속도로를 시원스레 달리고 있었다. 차량의 흔들림을 감지했는지 이내 순찰차가 따라붙었다. 차에서 내린 샘보라의 입에선 술냄새가 풍겼고, 그의 걸음새도 갈지자였다. 그는 음주운전 혐의로 인근 경찰서로 넘겨졌다.
벌금이나 내고 말 사안이었다. 한데, 예기치 않게 사태가 꼬이기 시작했다. 음주운전 당시 샘보라가 몰던 차 안에는 3명의 동승자가 있었다. 성인 여성 1명과 샘보라의 10살 난 딸 에바 등 2명의 어린이가 타고 있었던 게 화근이었다. 〈AP통신〉은 4월16일 “라구나 비치 경찰당국은 음주운전에 더해 샘보라를 ‘아동 위해 방지법’(Child Endangerment Act) 위반 혐의로 기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성인이 다음과 같은 행동으로 어린이의 복지를 위태롭게 할 경우 법에 따라 처벌 대상이 된다. (1) 건강상의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알고도, 16살 이하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일을 하도록 내버려뒀을 때 (2) 부모나 보호자, 또는 기타 자신이 보호해야 할 법적 책임을 진 어린이가 범죄를 저지르는 걸 방치했을 때….”
미 앨라배마주가 시행하고 있는 형사법령의 일부다. 법조문 제목은 ‘어린이의 복지를 위태하게 하는 범죄’. 미 50개 주 정부 모두 법조문에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이와 같은 어린이 보호 조항을 두고 있다. 직접적인 신체적 위해를 가하는 ‘학대’와 달리 ‘방임’은 “어린이를 위험하거나 부적절한 상황에 내버려두는 것”을 포괄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미국을 비롯한 상당수 국가에선 어린이 ‘방임’을 ‘학대’와 엇비슷한 수준에서 처벌하고 있다.
‘방임’의 심각성은 어린이 보호 책임을 진 어른 대부분이 그 ‘위법성’을 의식하지 못한 채 벌어진다는 데 있다. 이는 학대가 위법한 행위를 적극적으로 하는 데 반해, 방임은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법을 어기게 되는 특수성 때문이다. 미 콜로라도주 테니슨어린이센터(www.childabuse.org)가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자료를 보면, ‘방임죄’의 사례가 비교적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네 살 난 아들을 집에서 혼자 돌보던 아버지가 술을 취하도록 마시면, 아동 방임죄로 기소될 수 있다. 적절한 보호를 해줄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든 탓이다. 어린이에게 우발적으로 마약이나 총기류, 각종 포르노물을 노출시키거나, 기타 범법 행위와 가정폭력을 목격하도록 내버려두는 것도 처벌 대상이다. …어른들이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 장면을 보게 하는 것 자체가 범죄 구성요건이 된다. 당신이 속도위반으로 경찰에 단속됐는데, 동승한 자녀가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있었다면, 딱지를 떼는 대신 아동 방임죄로 기소될 수 있다.”
법이 엄격하다고 해 아동학대와 방임이 사라지는 건 물론 아니다. 미국에선 하루 평균 4명의 어린이가 학대 또는 방임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미 어린이학대방지협회(PCAA)는 지난해 9월 내놓은 자료에서 어린이 학대와 방임으로 미국 사회가 치러야 하는 직·간접 비용이 한 해 평균 1038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한 바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한겨레21에 연재되는 기획물인데

소외된 사람들의 인권을  다룬다. 주목해 보아야할 내용이다. 앞으로 이런 사람들의 기사를 모아보려고 한다.

 

연속기획 ‘인권 OTL-30개의 시선’ 첫 번째 이야기… 일터로 내몰린 이주·탈북 청소년들

▣ 글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인권 OTL-30개의 시선①]






“전 제 자신을 포기했어요. 다음 생애에 태어나면 달라지겠죠.”
슈허(18·가명)는 10살 때 몽골에서 한국에 왔다.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던 2002년부터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당시 슈허의 부모는 불법 체류 노동자로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중학교에 진학했지만 사정은 점점 나빠졌다. 엄마가 몽골로 돌아간 사이 아빠가 같은 공장 동료에게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중학교 1학년이 된 지 몇 달 만의 일이었다. 결국 엄마가 돌아와 장례를 치른 뒤 슈허는 아예 학교를 그만두고 돈벌이에 뛰어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얼마 뒤 엄마도 단속에 걸려 몽골로 강제 출국됐다. 이후 지금까지 혼자 살며 공장과 건축 현장을 전전하며 일을 하고 있다.

아빠 살해된 뒤 엄마까지 강제 출국

“이대로 일하다가 단속에 걸리면 제 신분을 보장해줄 사람이 하나도 없잖아요. 노력해도 바뀌는 건 없어요.” 아빠가 살해를 당했는데도 불법 체류(미등록) 신분이라 큰 소리 한 번 못 낸 기억은 아직도 가슴을 후빈다. 아이는 그렇게 일찍 포기하는 법을 배워갔다. 세상을 향한 불신도 커져갔다. 대화를 나눌 때도 사람과 눈을 맞추지 않고 말은 일부러 냉소적으로 내뱉는다.
어릴 때부터 키가 컸다는 슈허는 3년 전부터 수염을 기른다. 그러면 나이가 더 많아 보여 일하기가 편해서다. 일하는 곳에서는 늘 ‘26살’이다. 주점, 노래방 등 ‘밤업소’에서도 꽤 많이 일해봤다는 슈허는 그렇게 일해 번 돈 중 20만~40만원씩을 몽골에 있는 엄마에게 보낸다. 슈허는 불안정한 일용직 노동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빵 기술을 배우고 싶었다. 이주민 지원단체를 통해 직업교육센터를 알아보았지만 ‘불법 체류자’인 그에겐 직업교육의 문마저 닫혀 있었다.
“열심히 해도 되지 않는 것이 있던데요.”
인호(18·가명)도 이제 절망을 본다. 북한에서 6살 때 중국에 넘어가 6년, 다시 한국에 넘어와 6년을 살았다. 중국에서 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닐 때는 우등생이었던 그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는 열등생이 됐다. 한국 입국 과정에서 생긴 교육의 공백에 외국어, 외래어가 뒤섞인 교과과정이 겹치자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웠다. 게다가 왕따시키는 아이들과 무시하는 교사를 만나 상황이 나빠졌다. 욱하는 마음에 사고도 쳤고 싸움도 벌였다. 공부가 아니라도 운동으로 성공하자, 마음을 먹고 축구공을 찼다. 초등학교 6학년 축구교실도 다니고 새터민 친구와 어울려 하루에 6시간씩 연습했다. 하지만 유치원 때부터 축구를 배운 한국 아이들의 기술을 당하긴 어려웠다.
갈수록 집안은 어려워졌다. 국경을 넘다가 잡혀서 중국 감옥에 갇힌 누나에게 꼬박꼬박 가족이 돈을 부쳐야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버지 건강은 날로 나빠져 일을 계속하기 어려웠고, 동생은 몸까지 불편했다. 차라리 돈을 벌자고 마음을 먹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방과후 음식점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시급으로 4천원씩 받아서 한 달에 80만~90만원을 벌었다.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지만 부모도 끝까지 말리진 않았다. 중국집, 김밥집, 피자집, 야식집…. 각종 배달일을 전전하며 2년이 흘렀다.



△ 교육청이 펴낸 <내 이름은 마르갓>은 몽골 소녀 유나가 한국에 와서 경험한 차별과 고립을 그리고 있다. <내 이름은 마르갓>, 오세호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하루에 60~70개 배달을 감당하려면 가게 매장엔 아예 들어가지도 못하고 움직여야 했다. 그러다가 허리를 다쳤다. 한두 주 병원에서 쉬다가 또다시 일을 나갔다. ‘전쟁 같은’ 일을 끝내고 눕기만 하면 곯아떨어지는 날들이었다. 학교에 다닐 때 학원을 다니던 친구가 가장 부러웠다는 인호는 오늘도 오토바이를 타고 달린다.

오토바이 배달만 2년, 허리 다쳐도 일해

통계(상자기사 참조)로는 잘 잡히지 않아도 현실은 명확하다. 부모를 따라서 한국에 들어온 이주 1.5세대 혹은 2세대 청소년들,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남쪽으로 온 탈북 청소년들 가운데 학업 대신 노동으로 내몰리는 아이들이 많다.
새벽 5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아저씨들이 드디어 가게 문을 나선다. 재빠르게 흩어져 있는 소주병과 안주 그릇을 치운다. 누가 또 들어올까 간판 불도 꺼버린다. “저 들어갈게요.” 이렇게 마치르(16·가명)의 노동의 새벽은 끝난다. 토요일은 영락없이 이 시간이다. 거리에 나오자 어렴풋이 동이 트려고 한다. “다녀왔습니다.” 엄마는 벌써 출근 준비 중이다. 마치르는 눕자마자 잠에 빠져든다.
몽골 출신인 마치르가 한국에서 ‘노동자’로 살아온 지도 벌써 3년째다.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면서부터다. 친구와 싸움을 했는데 선생님이 “부모님을 모셔오라”고 해 고민하다 그날부터 학교에 안 갔다. 당시 아빠는 단속에 걸려 몽골로 강제 출국 됐고 엄마만 남아 불법 노동을 하고 있었다. 엄마는 마치르가 학교에 계속 다니길 바랐지만 곧 포기하고 일자리를 알아봐주었다. 그렇게 14살 때부터 전국의 공장과 우시장, 이삿짐센터 등 9곳의 일자리를 전전했다.
닥치는 대로 일을 잡았지만 힘든 일에 쉽게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힘들었다는 우시장에서는 한 달, 새벽별 보고 퇴근해야 했던 빵공장에선 세 달을 버텼다. “우시장에선 아침 6시30분부터 돼지머리 털 벗기는 일을 했는데 불법 취업 단속이 심했어요. 빵공장에선 기계에 들어간 재료가 바닥날 때까지 15시간 이상 일을 해야 했고요.” 그래도 또래의 몽골인 동료들이 많았던 대형 물류센터에서는 ‘6개월 근무’ 기록을 세웠다. 마치르가 몽골인 친구를 하나둘 일터로 불러 7명까지 늘었다. 아침 8시부터 쉬지 않고 짐을 날라 번 월급 100만원은 딱 하루 쉬는 일요일에 또래 동료들과 어울리다 보면 곧 동이 났다. 불안한 신분에 미래가 불투명하니 저축의 동기도 적다. 그는 친구 2~3명과 같이 공장을 떠돌다 최근엔 집 근처 술집에서 일하고 있다. 저녁 7시에 출근해 모든 손님이 나갈 때까지 서빙을 하고 낮에는 주로 잔다. “술집은 밤에 놀려고 다니는 거지요, 뭐.” 한국말 표현이 서툰 그가 말한 ‘술집에서 일하는 이유’다. 시급 2천원씩 받는 돈은 그나마도 가불을 많이 해 월급은 늘 ‘쥐꼬리’이다.

일하고 돈 못 받기도… “또래 동료가 위안”

일만 하고 돈을 못 받은 기억도 있다. “한국에는 미리 그만둔다고 말 안 하고 그만두면 돈 안 줘도 된다는 법이 있어요?” 마치르가 물었다. 1년 전, 한 공장에서 3개월 정도 일한 뒤 마지막달 월급을 못 받았다.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서울에 와서 친구를 만나 놀다가 ‘그냥’ 쭉 안 갔다. 그래도 마지막달 월급은 받고 싶어서 사장에게 전화를 했다. 사장은 “이럴 땐 한국 법으로는 돈을 안 줘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더 이상 마치르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별수 없었다.



△ 서울의 한 교회에서 몽골 아이들을 위한 방과후 학교를 진행하고 있다. 이곳에서 비로소 한국말을 배우는 아이들도 많다.




빌구릉(17·가명)은 그래도 학교에 다니고 싶어 발버둥을 쳤다. 가까스로 중학교를 마친 뒤 고등학교에 가고 싶어 직접 교육청을 찾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비자가 없어 안 된다는 답을 들었다. 그러다 친구 츠러(18·가명)가 일하는 식당에 소개를 받아 들어갔다. 아침 10시부터 12시간을 주방에서 일한다. 아버지와 함께 살려고 14살에 한국에 왔던 츠러는 오자마자 공장과 공사장에서 일을 했다. 이후 중학교에 들어갔으나 2년을 채 못 다녔다. 한국에서 몽골 여성과 재혼한 츠러의 아버지는 새엄마의 자녀가 입국한 뒤부터 츠러에게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학대를 못 이겨 가출을 하자 아버지는 “몽골에 돌아가 대학에 가도록 해주겠다”는 말로 아들을 불러들였다. 하지만 결국 다니던 학교만 그만두게 한 뒤 츠러를 내쫓았다. 옷가지도 챙겨나오지 못한 그는 가까스로 식당일을 구했고 지금 하고 있는 노동이 그에게 ‘전부’다. 쫓겨나면 갈 곳이 없으니까 몸이 아파도 쉰단 말 한 번 하지 못한다.
이렇게 학교는 멀고 일터는 가깝다. 이주 1.5세대 또는 2세대들은 이주 1세대인 부모들과 다른 정체성을 갖고 살아간다. 10대에 입국해 5년 이상 한국에 살다 보면 아이는 어느새 ‘한국인’이 된다. 부모는 40년의 인생 중 5년을 한국에 산 것에 불과하지만 아이는 15살의 인생에서 사실상 절반에 가까운, 더구나 민감한 성장의 시기를 이곳에서 보내게 되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아이는 한국말과 물정을 익히며 ‘유능한 한국인’이 되고 부모는 여전히 말이 서툴러 ‘무능한 외국인’에 머물게 된다. 결국 부모는 아이에게 의지하게 되고, 아이는 부모에게 불만을 품는 갈등으로 치닫기 십상이다. 아이들은 이렇게 ‘돌아갈 이주민’이 아니라 ‘살아갈 한국인’이 된다. 하지만 아직도 미성년인 그들을 부모는 보호해주지 못하고, 한국도 그들을 보호해주지 않는다.

탈북 뒤 처음 꾼 꿈 ‘의대 진학’ 포기

부모가 ‘불법’이어서 학교에 들어가기도 어렵지만 적응하기는 더욱 어렵다.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이은하 교육문화팀장은 “불안한 신분에 한국어로 자신의 상황을 표현도 못하는 아이들이 학교에 적응을 못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교육 접근성은 떨어지고 노동 접근성은 높은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 팀장은 “자기 스스로를 보호하는 교육이 안 된 아이들이 결국 사용자에게 다루기 쉬운 노동자로 전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에선 초기가 중요하다. 한국에 입국한 뒤 3~6개월만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면 수업에 적응을 하지만, 수준별 한국어 어학과정조차 공교육에 마련돼 있지 않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서바이벌 한국어’를 배워서 체류 2~3년이 지나면 한국말에 능숙해지지만 이미 학교 진도에서는 멀찌감치 떨어져버린 뒤다. 더구나 대부분의 아이들이 10대 초반에 입국하기 때문에 2~3년이 지나면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맞는다. 이렇게 노동 권하는 사회에서 학교는 멀고 노동은 가깝다.



△ 차별은 분노를 키운다. 2007년 프랑스 파리 교외의 이주민 밀집지구에서 이주 청소년들이 ‘봉기’를 일으켜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더 이상 남의 나라 얘기만은 아니다. (사진/연합/ AP PHOTO/ THIBAULT CAMUS)




탈북 청소년도 이주 청소년과 비슷하게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다. 은미(18·가명)는 9살 때 북한 국경을 넘어 5년 동안 중국을 떠돌았다. 중국 고아원에서도 있었고 교회를 통해 소개받은 가정집에 머물기도 했다. 북한에서는 소학교를 2년 정도 다닌 게 전부다. 중간에 북한에 잡혀갔다가 다시 탈출하기도 했다. 2004년, 드디어 입국해 먼저 들어와 있던 아빠를 만났다. 하지만 엄마는 탈북 중 행방불명된 상태였다. 얼마 뒤 아빠는 한국에서 만난 새터민 여성과 재혼해 아이를 낳았다. 은미는 1년 동안 혼자 공부해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학력 간극이 컸던 상황에서 정말 열심히 공부한 결과였다.
공부를 하다 보니 꿈이 생겼다. 의대에 진학해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도저히 수능시험에 맞춰 공부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 돈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결국 꿈을 포기했다. 대신 탈북 과정에서 습득한 중국어 실력을 살리기로 마음먹었다. 집을 떠나 독립했다. 친구와 살며 대학에 갈 때까지 돈을 벌기로 했다. 지금은 편의점 두 곳에서 하루 8시간씩 일한다. 일주일에 하루도 쉬지 않는다. 시급 3500원은 그에게 소중하다. 그 돈을 쪼개 아침에 중국어 학원에 다닌다. 편의점에서 일하면서도 책을 한시도 놓지 않는다. 계산대 옆에는 늘 중국어 교재가 펼쳐져 있다. 힘들다는 말도 뱉어본 적 없이 그저 묵묵히 현실을 헤쳐나간다. “돈을 벌면, 엄마를 찾고 싶습니다.” 그를 지탱하는 힘이다.

“인권 짓밟힌 아이들, 결집한다면 재앙”

이주·탈북 청소년들은 여기, 한국에 살고 있다. 교육보다 노동이 ‘현실’이란 이름으로 이들에게 가깝다. 자꾸만 노동으로 떠밀리며 사회를 향해 냉소를 던지는 아이들이 “위험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현장에서 아이들과 접촉해온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이은하 팀장은 “교육에서 소외된 채 노동하고 살아가야 한다면 인권이 짓밟힌 아이들이 결집하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라며 “아이들을 잘 길러낸다면 엄청난 인적 자원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재앙”이라고 말했다.
청소년. 아직은 고단한 노동의 새벽을 맞기보다 희망찬 미래의 꿈을 꿀 나이다. 슈허의 자포자기, 인호의 전쟁 같은 일, 마치르가 맞는 지친 새벽, 빌구릉의 좌절된 향학열, 의사가 되고픈 은미의 희미한 꿈.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이제, 선택은 우리 몫이다.





 



‘노동하는 이주아동’ 얼마나 될까


이주아동 8천여 명·새터민 51.8% 어디로?

▣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대부분 미등록(불법체류) 신분인 부모를 따라서 한국으로 온 이주 2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현재로선 뚜렷한 통계 자료가 없는 실정이다. 현재 학교에 다니지 않는 이주 아동 수를 묻자 교육과학기술부는 “행정자치부에 (이주 아동) 전수조사를 할 때 좀 파악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실제 조사에서는 빠졌다”는 답만 돌아왔다.
간접적인 파악은 가능하다. 법무부의 ‘출입국·외국인 정책 통계월보’를 보면, 2007년 12월 말 기준으로 20살 이하 국내 불법 체류 아동·청소년은 9014명이다. 법무부의 2005년 자료에는 불법 체류를 포함한 외국인 중 취학 연령대인 7~18살은 1만7287명으로 나온다. 이 중 외국인 학교 재학생 7800명을 제외하면 약 9500명이 남는다. 이들 중에서 국내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1574명에 불과하다.(‘다문화 가정의 자녀교육 실태조사’, 조영달, 2006) 즉, 8천여 명의 학령기 외국인 아동·청소년이 학교 밖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은 대부분 불법체류 신분으로 추정된다.
옛 교육인적자원부 내부 조사자료를 보면, 국내 학교에 재학 중인 불법 체류자 자녀는 2003년 205명에서 2005년엔 148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2003년 조사에서 재학생 205명의 국가별 분포는 몽골이 160명으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중국 14명, 파키스탄 8명, 방글라데시 7명 순이었다. 가족 단위로 움직이는 몽골인의 특성상 부모가 이주하면 아이도 한국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 조사는 지난해부터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이주해 ‘새터’를 잡은 아이들의 상황은 이주 아동들과 다르고도 같다. 최근 무지개청소년센터가 새터민 청소년 613명을 대상으로 한 현황조사 결과, 이들의 탈북 당시 평균 연령은 13.8살, 북한에서의 평균 학력은 4.99년으로, 중1 수료 수준에 해당한다. 탈북을 혼자 감행하는 비율도 전체의 31.8%에 이른다. 남한에 와서 가족을 만나는 경우가 많지만 19.2%는 혼자 삶을 꾸려간다. 제3국 체류 기간은 평균 29개월로, 13살의 나이에 다른 나라를 전전하며 고생을 하고 오는 셈이다.
힘들게 와서도 51.8%는 학교 밖으로 내몰렸다. 그 아이들의 39.1%가 자동차 정비, 미용실 등의 일터에서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었다. 이들도 한국에 ‘코리안드림’을 품고 오지만 학교 정착에 어려움을 겪다가 노동으로 내몰리는 현실에 직면한 것이다.





 





 



국제결혼 가정의 자녀들


“재혼한 엄마 따라 온 한국, 힘들어요”

▣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저는 한국 사람과 재혼한 어머니와 살기 위해 2003년 한국에 왔습니다. 처음엔 한국말을 몰라 1년 동안 집에만 있었습니다. 이후 중학교 3학년으로 학교에 들어갔지만 한국어를 하나도 몰라 수업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친구들에겐 왕따를 당했고, 선생님들은 저를 포기했습니다. 고등학교에 가니 저를 보고 외국인 노동자라며 놀리더군요. 정말 힘들었습니다. 결국 고등학교 1학년을 다니다가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몽골 출신 17살)
지난 1월16일에 있었던 ‘미등록 이주아동 합법 체류 촉구 연대’ 기자회견장에서 발표된 사례다. 국제결혼이 늘고 특히 재혼으로 한국에 들어오는 여성이 늘어나면서 어머니를 따라 한국에 들어온 이주아동들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국제결혼 가정의 경우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교육 문제 등에서 어려움을 겪지만 재혼가정에 엄마를 따라 들어온 아이들은 언어, 국적 등 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한다.
재혼한 이주여성을 따라온 자녀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통계는 없다. 2007년 2월 경기도가족여성개발원이 조사한 자료를 통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결혼이민여성은 1만8420명(2006년 기준)이다. 국제결혼 건수로 보면 전국의 23.1%(2005년 기준)를 차지한다. 경기 지역 이주여성 810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한 결과 이 가운데 21.3%가 재혼인 것으로 밝혀졌다. 재혼 가정 중 자녀를 한국에 데려올 의향이 있는 사람이 87.4%에 이른다. 이미 자녀를 데려온 경우도 6명 정도 확인됐다.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한국에 들어온 경우 국적, 언어, 한국 가정 적응 등 다양한 문제가 겹친다. 하지만 아직 실태 파악도 되지 않아 뾰족한 지원책은 없다. 한 국제결혼알선업체 관계자는 “한국 남자도 재혼이면 자신의 아이 양육을 위해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과 결혼하길 원하기 때문에 재혼인 상대를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이 경우 여자에게도 아이가 있다면 결혼 뒤 양육 문제로 남자 쪽 눈치를 보게 된다”고 전했다.
국제결혼 가정 자녀의 고단한 삶을 보여주는 자료도 있다. “국제결혼 가정 자녀는 10명 중 1명꼴로 초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거나 중퇴했으며, 중학교 미진학 및 중퇴자는 10명 중 2명 정도인 것으로 추측된다.” 2006년 12월에 나온 ‘다문화 가정 교육 지원을 위한 자료개발 연구’ 결과의 일부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한국염 대표는 “국제결혼 가정 자녀의 경우 학습 부진이나 부적응으로 문제가 생기면 이주여성들이 엄청난 자책에 빠진다”며 “사회적으로 뒷받침을 못해 일어나는 일을 엄마가 외국인이라 그렇다는 식으로 주홍글씨를 달아서는 안 된다. 재혼가정의 아이들은 국적, 언어 등 문제가 더 심각한 만큼 특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한겨례21에 안대회가 연재하는 글이다.

흥미로운 부분이라서 가져왔다. 협객과 사랑이 같이 논해지는 데에는 의리로서의 사랑이 있다.

의리있는 사랑, 예의있는 사랑, 합당한 사랑, 사랑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한양 유흥가의 질척대는 사랑



정인(情人)을 따라 자살한 기생 금성월…칭송 받는 그 정조 뒤에는 조선 도회지의 퇴폐적 성문화가

▣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18세기 조선의 한양 땅에서 재능도 출중하고 미모도 겨룰 상대가 없는 기생 금성월(錦城月)이 자살했다. 그 시대 최고의 기생으로 그를 첫손가락으로 꼽는 데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누구나 이 기생과 사랑을 나누고 싶어했다. 그러나 기생은 몹시 도도해 평범한 남자는 접근할 수조차 없었다. 그런 그를 어떤 명문가 출신의 젊은이가 독점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 번 만나기만 해도 소원이 없겠다던 기생을 독차지하게 된 그 젊은 양반은 이 여인을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여러 시문에서 비슷한 사건 언급

그런데 호사다마라 했던가. 이 남자가 중대한 범죄를 저질러 사형을 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갑작스런 변고를 앞에 두고 기생은 가야 할 길을 선택해야 했다. 그때 기생이 이렇게 말했다.
“낭군이 죽게 되었으니 나도 따라 죽어야지요. 아니 내가 먼저 죽어서 낭군에게 내 죽음을 알리겠습니다. 왜냐고요? 천하 그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만큼 낭군은 저를 사랑해주었지요. 그런 낭군의 사랑에 저도 천하 그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행동으로 보답하렵니다.”
그런 말을 남기고 금성월은 남자가 처형되기 전에 먼저 검으로 자신을 찔러 목숨을 끊고 말았다.
이것이 금성월이란 기생의 흔치 않은 자살 사건의 개요다. <추재기이>(秋齋紀異·조선 순조 때 문인인 추재 조수삼이 지은 글)는 이 특이한 자살 사건을 마지막 이야기로 배치했다. 사건의 개요만 놓고 보면, 돈 많은 남자와 미모의 기생이 벌인 비극적 종말의 사랑으로 넘겨버릴 이야기이다. 그런 사연만으로도 당시 사람들에게는 쉽게 접할 수 없는 흥미로운 사건이 될 법은 하다. 하지만 이 사건은 그렇게 간단히 이해하고 넘어갈 성질이 아니라고 나는 판단한다.
여러 가지 정황을 볼 때, 이 사건은 헛된 소문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가공(架空)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벌어진 사건에 바탕을 둔 실화이다. 비슷한 내용의 사건이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 초엽에 쓰인 시문에서 다뤄진 점에 비춰 대체로 영조나 정조 연간에 발생한 사건으로 추정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범곡기문>(凡谷記聞)이란 책에 실린 사건이다. 그 내용이 유재건의 <이향견문록>에 인용돼 있다.



우선 이 책에는 금성월이 면성월(綿城月)이란 이름으로 돼 있는데, 금(錦)자가 획이 유사한 면(綿)자로 잘못 쓰인 데 불과하다. 이 책에는 금성월이 전라도 무안 기생으로 밝혀져 있다. 그가 선상기(選上妓)로 뽑혀 서울에 올라와 내의원에 소속됐는데 명성이 자자했다고 하며, 뒤에는 기적(妓籍)에서 빠져나와 누군가에게 시집갔다고 기록해놓았다. 그 나머지 사연은 조수삼이 기록한 것과 대동소이하다.
지방의 기생이 이렇게 서울로 올라와 내의원 침선비(針線婢)로 이름을 걸고, 명성을 얻은 뒤에 돈 많고 지체가 높은 귀족의 소실로 들어앉는 것은 선상기에게는 흔한 코스였다. 물론 금성월도 그중 하나였다.
그처럼 주목받는 최고의 기생이 자살한 사건은 당시 충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져 널리 유포됐고, 사대부들 사이에 이 이야기를 기록한 이가 여럿이었다. 이야기가 서로 다른 것은 동일한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시각에서 기록한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 사건이 시선을 끌었을까?
화류계 여성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의리를 지켰다는 점이 무엇보다 아름다운 사연으로 받아들여졌음이 분명하다. 수많은 야담에서 거듭 이야기되듯이, 기생이 한 남자에게만 사랑을 바치는 순결함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미모의 기생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금전의 문제와 직결된다. 곧, 돈으로 사랑을 사는 것이었다. 금성월의 남자도 천금으로 이 여자의 환심을 산 것이다.

기생 세계에서 흔치 않은 일

조수삼이 시에서 읊은, 나뭇가지와 돌로 동해 바다를 메우려는 정위조(精衛鳥)처럼 그 남자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이 여자에게 정성을 기울였다. 이 바닥에서는 금전 관계가 끝나면 사랑도 식어가는 것이 욕먹을 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연스럽다. 기생이 인간적 의리를 지킨다는 것은 사치스럽기까지 하다. 적어도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금성월은 남들이 손가락질하지도 않을 텐데 남자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자살을 택했다. “나를 향한 낭군의 애정은 천하에 비교할 자가 없다. 그러니 낭군에 대한 이 몸의 보답도 마땅히 천하에 비교할 이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야!”라면서 죽음을 택했다. 더욱이 남자가 죽은 뒤에 죽지 않고 먼저 죽음으로써 자신의 보답하는 마음을 그 남자가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세상에는 사랑 때문에 죽고 사는 일이 시대를 막론하고 비일비재하지만 기생의 세계에서 그의 행동은 돌출적인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금성월을 사랑을 물질로 계산하지 않고 의리를 지키는 여인이라고 생각했고, 그 때문에 그의 행동을 예찬했다. <범곡기문>에는 기생으로 추정되는 서화방(書畵舫) 노씨(盧氏)라는 여인이 그를 애도하면서 예찬한 시를 실어놓았는데 이 시에서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기방에서 미모를 뽐내던 묘령의 여인을(曲院無雙擅妙齡)
부호가 재산을 기울여 차지하였네.(豪家傾産貯)
천금으로 즐기면서 머리가 희었거늘(千金行樂頭霜白)
한 칼에 은혜 갚아 목에서 검푸른 피를 쏟았네.(一劍酬恩頸血靑)
“이 첩은 몸으로 대의를 지키고자 했을 뿐(只顧妾身存大義)
남편이 형벌 받는 것과 무슨 상관이냐?”(何關夫婿被常刑)
꽃다운 명성이 가을 하늘에 달과 함께 걸려서(芳名竝掛秋天月)
부정하게 사랑하는 남녀를 비춰 꿈을 깨게 하려네.(留照桑間喚夢醒)

이 시에는 묘령의 기생이 머리가 허옇도록 애정을 나눈 것처럼 묘사됐다. 어쨌든 서화방 노씨는 금성월의 자살에서 남녀 사이의 사랑의 의리라는 덕목을 찾아냈고, 그 덕목을 높이 평가해 가볍게 사랑을 나누고 헤어지는 청춘남녀의 경망한 행동을 각성시키려고 했다. 조수삼이 “당시 사람들이 모두들 열녀(烈女)라고 칭찬했다”고 평가한 것도 노씨의 의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소주와 섹스로 자살하다

지금까지 말한 것이 금성월 사건의 내용과 그를 두고 내린 사람들의 평가였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금성월의 자살 사건은 다른 각도에서 살펴볼 여지가 충분히 있다. 그 증거로 이옥이 지은 <의협심이 있는 기생>(俠娼紀聞)이란 글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옥이 묘사한 사건은 금성월 사건과 동일하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이옥이 묘사한 사건은 1755년에 노론이 소론을 정권에서 몰아낸 을해옥사(乙亥獄事)를 정치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도도하기 짝이 없는 한양 최고의 기생이 있었다. 그는 존귀하고 부유할 뿐만 아니라 풍채가 좋고, 세상에 명성을 떨치며,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자만을 상대했다. 최고의 남자들만을 상대한 고급 기생이었다. 당연히 손님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1755년 을해옥사가 발생했을 때 기생의 손님 하나가 사건에 연루돼 집안이 풍비박산됐고, 그 자신은 좋은 벼슬 자리에서 쫓겨나 제주도 소속 노비로 전락해 서울을 떠나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기생은 가까운 벗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를 위해 속히 행장을 꾸려주세요. 그 사람과는 하룻밤을 같이 지낸 평범한 벗에 불과합니다. 제가 이러한 일을 한 지 마침 10년인데 그 사이에 친밀하게 지낸 자가 100명에 가깝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모두가 육식을 하고 비단옷을 입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한 번도 궁핍을 겪지 않았더군요. 지금 아무개는 곧 제주도에서 굶어죽게 되었답니다. 소첩의 남자가 굶어죽는다는 것은 제 수치입니다. 제가 그를 따라가겠어요.”
말로만 한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 그 기생은 가진 재물을 털어 바다를 건넜다. 제주도에 이르러 최상으로 화려하고 융숭하게 그를 대접했다. 기생은 그 남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리가 다시는 북쪽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은 정해진 이치예요. 굴욕적으로 사느니 차라리 즐기다 죽는 것이 낫지요. 그렇게 하지 않으렵니까?”
둘은 의기투합했다. 기생과 남자는 날마다 소주를 잔뜩 마셔 취하고, 취하면 곧 동침했다. 소주를 많이 마시고 섹스를 과다하게 하는 행위는 옛날에 자살하는 방법의 하나로 이용됐다. 이들은 밤이고 낮이고 쉬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는 병들어 죽었다. 기생은 남자를 후하게 장사를 지내고 자신도 술을 통음(痛飮)하고 한바탕 통곡한 뒤에 절명했다. 두 사람이 함께 죽은 해괴한 사연이 서울에 전해지자 기생의 옛 남자들이 금전을 갹출해 주검을 운구하여 장례를 치러주었다.
세부적인 사연은 다른 구석이 없지 않지만 이야기의 구조는 비슷하므로 동일한 사건이 전한 사람에 따라 바뀐 것으로 추정한다. 이옥이 전한 사건이 구체적이면서도 자세한 것으로 보아, 애초 사건은 17세기 중반에 발생했으나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얼개가 단순해지고 사건의 성격도 달라진 상태에서 조수삼이 이를 <추재기이>에 기록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옥이 전한 사연은 최고의 기생이 곤경에 처한 옛 고객과 생사를 같이한다는 이야기다. 이 기생의 행위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있기는 하지만, 금전적 가치로 우정을 계산하는 세인들의 가식적 행태에 경종을 울리는 의미를 이끌어내려고 했다. 타락한 세상에서 정말 기대하지 않았던 존재가 보여준 의리와 협객의 정신을 찾아내려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옥은 “오로지 금전과 재물만을 뒤좇는 세상의 기생들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으리오?”라며 개탄했고, “어떻게 하면 그가 남긴 분단장과 향기를 얻어다 시교(市交)를 일삼는 세상 사람들에게 그 맛을 선보게 할 수 있을까? 안타까운 노릇이다. 아!”라며 탄식했다. 그래서 이옥은 이 기생을 ‘협창’(俠娼)이라고 했다. 창기(娼妓)로서, 의협심을 지닌 협객(俠客)의 면모를 지녔다는 말이다.

전에 없는 기괴함과 파격성

주제 면에서는 이옥과 조수삼이 묘사한 기생에게는 비슷한 모습이 보인다. 반면에 이옥의 묘사에서는 색다른 시선이 보인다. 18세기 서울이란 대도회지의 기방에서 벌어지는 퇴폐적 성문화와 세기말적 풍조가 느껴진다. 미모를 무기로 기생이 가문의 명예와 부귀를 손아귀에 쥔 남자를 쥐락펴락하고, 의리라는 이름으로 “소첩의 남자가 굶어죽는다는 것은 제 수치”라며 술과 섹스로 인생을 파괴하는 행동이 그런 모습의 일면이다. 조수삼이 “임이 죗값을 치르기에 앞서 먼저 사랑에 보답하려/ 향기 피어나는 뜨거운 피를 원앙금침에 뿌리네”라며 묘사한 부분에서도 이옥이 묘사한 기생의 격정이 엿보인다. 이들의 사랑과 의리는 전에 보지 못하던 기괴함과 파격성을 보여준다.
18세기에는 조선을 비롯해 일본이나 중국의 기방에서 기생과 남자가 가로막힌 사랑의 돌파구로 동반자살을 택하는 일이 가끔씩 벌어진다. 때로는 그런 행동이 봉건적인 열녀(烈女)라는 관념으로 윤색되기도 하고, 협객이란 이름으로 부풀려지기도 하면서 말이다. 금성월의 사연은 그런 동반자살의 요소도 일부 지니고 있다. 소박하고 낭만적인 사랑과는 다른 도회지 시정인의 사랑의 한 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금성월의 사랑과 자살 사건은 흥미롭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