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이후의 중국 - 2) 경제

개혁개방 30년 잔치는 끝났다.  

개혁개방 30년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세계인의 축제인 만큼이나 중국인들에게 큰 잔치이다. 2008년은 1978년 중국이 개혁개방을 선언한 지 30년이 되는 해다. 베이징 하늘을 수놓은 화려한 불꽃놀이는 30년 개혁개방의 '성공'을 자축하는 축포이기도 했다.
  
  개혁개방이란 결국 시장화(개혁), 세계화(개방)이다. 중국은 2001년에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고 2006년 말 가입 당시 약속한 모든 개혁(시장화) 과제를 완료했다. 2008년을 기점으로 중국이 1949년 이후 다양한 형태의 계획경제를 실험했던 기간보다 1978년 이후 시장경제를 지향했던 시간이 더 길어진다. 이제 중국의 '시장'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가끔 그 시장의 공정성을 문제 삼을 뿐이다.
  
  세계화에서도 마찬가지다. 2008년이면, 늦어도 2009년이면 중국은 세계 제1의 수출국이 된다. 장기 전망기관인 글로벌 인사이트에 따르면 2013년이면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1의 수입시장이 될 거라는 전망이다.
  
  그 무역의 60% 가까이가 중국에 들어와 있는 외자기업에 의해 이루어진다. 2008년 상반기에만 500억 달러가 넘는 외자가 새로 중국에 들어왔다.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6월 말 1조 8088억 달러로 세계 1위이다. 세계화된 중국 경제의 현주소이다.
  
  (☞ 올림픽 이후의 중국 ① 정치·사회 : "중국 애국주의는 폭발하지 않았다")
  
  올림픽 이후의 중국경제?
  

▲ 상하이 증권가 객장에서 폭락한 주식 시세표를 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 중국인 ⓒ로이터=뉴시스

  올림픽 이후 중국 경제가 어려움과 곡절을 겪을 것이라는 관측이 유행하고 있다. 사실 최근의 중국 경제도 그러한 관측과 유사하게 흘러갔다.
  
  우선 2008년에 중국의 경제성장은 2007년 11.4%에 비해서는 둔화될 전망이다. 상반기 성장률이 10.4%를 기록했다. 10년 동안 안정되었던 물가도 2007년 하반기부터 가파른 오름세를 보였다. 주가도 폭락했다. 상하이 A지수는 2007년 10월 6,200대를 기록한 이후 급전직하해 올림픽 기간 중에는 2200대까지 폭락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을 올림픽과 연결시키기는 어렵다. 인플레이션의 중요한 이유는 국제적인 자원 가격 급등과 일시적 식료품 가격 상승이다. 경기둔화는 무엇보다 '미국발' 세계경기 둔화의 영향이다. 그나마 경제성장률이 11% 대에서 10% 대로 떨어지는 수준의 이야기다.
   
  주가폭락과 올림픽을 연결시킬 경제적 인과관계도 찾기 어렵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진데다, 묶여있던 비유통주의 유통 확대라는 중국의 특수한 수급 불안이 더해지면서 일어난 폭락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나아가 주가폭락이 실물경제에 큰 충격을 줄 것이라는 예상도 현실화되지 않았다. 원래부터 경제적 측면에서만 보면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의 올림픽이 아니라, 중국 GDP의 3.7%를 차지하는 한 도시(베이징)의 올림픽이었을 뿐이다. 중국이 치른 잔치는 따로 있다.
  
  개혁개방 30년, 잔치는 끝났다.
  
  베이징 올림픽과 함께 30년 동안의 '개혁개방'으로 대표되었던 중국의 한 시대도 축복 속에 막을 내렸다. 2007년 말부터 중국 경제는 중요한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개혁개방'에서 '과학적 발전'으로의 전환이다. 이른바 '올림픽 이후'의 중국을 그려보는 것도 결국 그 전환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과학적 발전관(科學發展觀)'이라는 개념은 2007년 10월 17차 공산당 대회에서 중국의 새로운 지도이념으로 공산당 당장(黨章)에 삽입되었다. 그 만큼 중요한 개념이란 얘기다. 보통 "인간중심(以人爲本)을 견지하면서, 전면, 협조(協調),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정의된다.
  
  좋은 말만 다 모아놓은 공허한 구호로 보이기도 한다. 이를 후진타오 주석의 권력기반이 공고화되었음을 표시하는 징후 정도로 해석하기도 한다. 성장 위주의 정책을 균형과 분배를 강조하는 정책으로 전환하겠다는 신호라고도 한다.
  
  그렇지만 과학적 발전관의 진짜 의미는 중국이 해결할 경제적 과제가 변화했다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권력의 공고화나 경제정책의 방향 전환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중요한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
  
  중국이 달려온 개혁개방 30년은 시장화, 세계화의 과정이었다. 많은 곡절을 겪었지만 시장화와 세계화가 그 과정을 일관했다. 그건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정답과 표준이 이미 주어진 문제였다. 최소한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표방한 1992년 이후에는 중국이 고민했던 것은 그 목표에 이르는 경로와 속도였지 목표 자체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 시장화와 세계화는 완료되었다. 이제 '개혁개방'이라는 구호가 더 이상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 개혁개방이 어떤 한계에 봉착한 것이 아니라, 개혁개방에 성공했고 그 과제를 사실상 완료했기 때문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은 새로운 '역사적' 단계에 직면했다. 그 단계는 단순히 시장 경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시장 경제 시스템'를 만들 것인가를 선택하는 전혀 다른 자리이다.
  
  주지하다시피 시장경제는 하나가 아니다. 미국, 서유럽, 북유럽, 일본에는 서로 다른 메커니즘을 갖고 있는 나름의 시장경제가 형성되어 있다. 각국은 기업의 구조, 금융의 역할, 성장과 분배의 균형점, 복지의 수준, 노사관계의 형태, 환경 의제의 수용 정도, 인적자원의 재생산 형태에 있어 모두 조금씩 다르다.
  
  작다면 작은 차이들이다. 하지만 그 차이는 짧게는 백년 길게는 수백년의 역사를 통해서 형성된 결과이다. 나아가 여기에는 정답도 없고, 표준도 없고, 지도도 없다.
  
  서른 해 동안, 중국은 다른 고민 없이 개혁개방의 길로 일로매진(一路邁進)해왔다. 때로 곡절이 있었고 힘도 들었겠지만 답이 분명한 시대였다. 그러나 올림픽이라는 잔치와 함께 그 시대도 끝났다.
  
▲ 중국은 이제 답이 나오지 않을 길을 가야 한다. 중국 공산당의 숙명이다. ⓒ로이터=뉴시스


  과학적 발전관 : 역사를 대체
  
  이제 중국 앞에는 훨씬 더 복잡한 과제가 놓여있다. 개혁개방을 통해 시장경제 일반(一般)이 형성되었다. 그렇지만 중국의 특수(特殊)한 체제를 구성하는 것은 이제 겨우 첫걸음이다. 두 과제는 성격과 해법이 아주 다르다. 일로매진은 더 이상 해법이 아니다. 오히려 좌고우면(左顧右眄)이 필요하다.
  
  지금 세계를 이끄는 주요국들이 갖고 있는 독특한 경제 시스템들은 각기 나름의 '역사'를 통해 형성된 것이다. 그 속에서 각국은 혁명도 겪고 선거도 치르고 때로는 전쟁을 벌였다. 이를 통해 끊임없이 여러 이익집단 사이의 균형을 형성하고 그것을 경제적으로 제도화해왔다. 또한 그것은 일종의 진화적인 과정이었다. 지금 선진국이 누리고 있는 제도적 효율성은 백지에 경제학 교과서를 들고 구축한 것이 아니다. 오랜 진화의 결과이다.
  
  그런데 중국 공산당이 원하는 것은 지난한 역사의 반복이 아니다. 다이나믹하고도 위험천만한 역사의 드라마에 공산당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 지루한 진화의 과정을 되짚을 생각도 없다. 권력도 시간도 잃지 않고 공산당의 온전한 통제 아래서 중국의 발전 모델을 만들고 싶다.
  
  그렇지만 2008년 중국은 공산당이 독재하고 있는 나라다. 다양한 정치세력 사이의 대안 경쟁도 없고, 유의미한 선거도 없고, 발전한 시민운동도 없다. 중국에게 적절한 성장과 분배의 균형점이 어디인지, 노사관계를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지, 어느 수준까지 환경을 보호할 것인지 등 수많은 이슈에 대해 진정한 시그널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
  
  중국 공산당은 중국의 과제가 변했다는 것도, 자신이 가진 정치적 한계도 잘 인식하고 있다.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첫 번째 노력이 바로 '과학적 발전관'이다. 과학적 발전관이 그 모호함 속에서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는 것은 균형과 종합이다.
  
  즉 공산당의 과제는 더 이상 '종합'적일 수 없는 역사의 과정을 대신해, 새로운 경제 시스템이 구현할 '균형'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걸 공산당 혼자서 해야 한다. 그게 균형과 종합의 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적 발전'은 특정한 목표나 구체적인 내용을 지시하지 않는다. 다만 중국 경제가 직면할 새로운 과제를 공산당이 인식하고, 그 답을 모색하고, 제도로서 수용하는 틀, 그 전체가 과학적 발전관인 것이다.
  
  개입정부, 시장과의 충돌, 정치의 등장
  
  과학적 발전관은 이미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정책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고도성장 필요성에 대한 재확인, 분배 및 사회보장에 대한 강조, 에너지/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 등이 주된 방향이다. 그런데 과학적 발전관이 정책으로 구체화될수록 그것이 가진 한계도 함께 드러난다.
  
  우선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정부의 성격이 개혁정부에서 개입정부로 변하게 될 전망이다. 정부의 목표가 더 복잡하고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계획과 통제를 없애고 시장을 도입했던 것이 과거의 개혁정부였다면, 이제 다시 규제와 개입을 통해 그 시장에 색깔을 입히는 것이 미래의 중국 정부이다. 그렇지만 효율적인 개입이란 언제나 매우 어렵다.
  
  다른 한편 '과학적 발전'은 끊임없이 시장과 충돌하게 된다. 분배, 노동, 환경 등 시장에 맡겨서는 해결되지 않는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는 불가피하다. 충돌도 늘어난다.
  
  수년간의 진통 끝에 2008년 도입된 새로운 노동계약법과 노동쟁의조정법은 노동자의 권리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기업계의 반발이 노골적이다. 시장에서 노사간의 역관계와 공산당이 의도하는 균형 사이에는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공산당 혼자서 각 분야의 균형을 찾아내느라 좌고우면 하겠지만 결과는 좌충우돌에 가까울 것이다.
  
  나아가 과학적 발전관은 경제적 불균형을 정치적 리스크로 전환시킨다. 지금까지 중국인들은 날로 확대되는 경제적 불균형을 시장경제의 불가피한 결과로 인식했다. 그래서 개혁개방이 초래하는 불균형보다는 그것이 가져다주는 새로운 경제적 기회에 주목했다.
  
  그러나 과학적 발전관은 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정부의 임무로서 자임하고 있다. 이제 불균형을 효과적으로 해소하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정치적 불만은 점점 커지고 공산당의 권위는 도전받게 된다.
  
  다시, 잔치는 끝났다.
  
  올림픽과 함께 중국의 잔치도 끝났다. 덩샤오핑이 문화혁명의 혼란과 비효율을 끝내고 개혁개방이라는 이름으로 시장화와 세계화를 추진하는 동안은 모두가 행복했다. 자본가가 환영하는 공산당이라는 참으로 희귀한 역사적 경험도 거기 있었다.
  
  초고속 성장으로 더 많은 기회를 갖게 된 대중도 빈부격차 확대에 아랑곳없이 공산당을 지지했다. 중국을 30년 만에 경제 대국으로 이끌어낸 리더십은 모든 중국인에게 새로운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마침 올림픽에서도 미국을 제쳤다. 지난 30년이 통틀어 하나의 큰 잔치였다.
  
  그 잔치가 끝나고 중국은 새로운 과제에 직면했다. 불행하게도 그것은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잔치가 아니다. 바로 그 개혁개방을 통해 형성된 새로운 이해관계과 이익집단이 각자 자기의 지갑을 챙기고 신발을 찾아 신는 자리다. 그 자리를 혼자 다 감당해야 하는 것이 중국 공산당이 자초한 숙명이다.
  
  올림픽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지만수/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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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에 연재 중인 기사를 옮겨 온다. 중국 연구 대상이다.

올림픽 이후의 중국 ① 정치·사회

중국 애국주의는 폭발하지 않았다.

 

베이징 올림픽의 폐막이 어느덧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중국은 이번 올림픽에서 마침내 종합순위 1위를 차지하며 스포츠 최강국으로서의 지위를 얻게 됐다.
  
  그러나 올림픽 기간에도 발생한 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의 테러는 중국의 국가 통합이 여전히 요원함을 보여주었다. 한 쪽에서는 중화 민족주의(혹은 애국주의)의 광풍을 우려하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분리주의 운동이 벌어지는 곳이 오늘의 중국이다.
  
  올림픽이 끝나면 중국 경제가 어려움과 곡절을 겪을 것이라는 관측도 유행한다. 또한 러시아-그루지야 전쟁을 계기로 동서 신냉전이 본격화한 상황에서 올림픽으로 자신감을 얻은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목소리를 높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한미 전략동맹'에 대한 불만을 올림픽 때문에 꾹꾹 눌러 왔지만, 이제는 구체적인 정책으로 그 감정을 표출할 것이라는 말도 있다.
  
  <프레시안>은 이처럼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는 '올림픽 후의 중국'을 전망하는 전문가 3인의 글을 시리즈로 마련했다. 이 연재에서는 올림픽에서 나타난 중국의 문제와 향후 변화의 방향을 중국 내부의 정치와 사회, 경제, 중국과 세계라는 세 가지 주제로 나눠 짚어 볼 예정이다. <편집자>
  
  
  
  (☞ 올림픽 이후의 중국 ② 경제 : "개혁개방 30년, 잔치는 끝났다")
  
  올림픽을 즐기겠다고 하면 이웃나라에서 올림픽이 치러지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시차가 거의 없어 올림픽 경기를 보느라 밤잠을 설칠 필요가 없다. 게다가 한국 선수들도 컨디션 관리가 편한 탓인지 다른 올림픽보다 좋은 경기력을 보이며 스트레스 해소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고 있다. 2주일 남짓한 올림픽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도 그리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징 올림픽을 순수한 스포츠 행사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개막 이전부터 인권을 둘러싼 시비에 끊임없이 휘말렸고, 개막식은 중화주의 부활을 선언하는 것으로 해석되었고, 중국 관중들의 과도한 응원은 맹목적 애국주의의 표출로 간주되고 있다. 냉전해체 이후 상업화로 시비로 얼룩져온 올림픽에 정치가 이념대결이 아니라 국가주의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복귀하고 있는 형국이다.
  
  중국과 인접하고 있는 나라로서 우리가 이러한 정치적 관심의 자장에서 완전히 벗어나 올림픽만을 즐기기는 힘들 것이며 따라서 이와 관련한 많은 논의가 진행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이러한 논의들은 중국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키는 계기로서 긍정적 의미가 있지만 종종 올림픽에 지나치게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인상을 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 오성홍기로 페이스페인팅을 한 중국 어린이 ⓒ연합뉴스

  애국주의? 국가통합?
  
  예를 들면 베이징 올림픽이 중국 애국주의 폭발의 전환점으로 보는 견해들이 있다. 실제로 애국주의는 중국에서 그 영향력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 사조이고 베이징 올림픽도 그 영향을 적지 않게 받고 있다. 중국 지도부도 이를 통치정당성 강화에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3월 티베트에서의 유혈사태와 올림픽 개막을 전후로 중국의 서남, 서북, 남부 지역에서 연이어 발생한 대규모 집단시위, 테러 사태는 애국주의로 묶어낸 상징적 통합의 이면에 깊고 심각한 사회적 균열이 존재한다는 점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또한 베이징 올림픽이 중국의 정치가 더 개방적이고 인권을 존중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렇지만 올림픽에 그러한 정치적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점도 확인되고 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중의 하나가 올림픽이 치러지는 기간 중 베이징 시내에서 허가된 시위기 진행될 수 있도록 지정한 '시위지역'의 경우이다. 이는 개방적 태도를 과시하기 위한 정책이었는데, 중국 정부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중국인들이 총 74건의 시위를 신청했지만 모두 법에 따른 조정절차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실제로 시위가 한 건도 진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베이징 올림픽은 정치적 측면에서 특별한 돌파구를 만들지는 못했고, 베이징올림픽을 통한 중국 정부의 국민통합의 시도도 명확한 한계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중국의 정치사회적 변화가 여전히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다시 보여준 것이다. 화려한 축제가 끝나면 중국인들은 다시 이러한 교착상태와 씨름해야 하는 현실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교착상태의 특징을 '거시적 안정, 미시적 불안'으로 정의한 바 있다.(☞관련 기사 : 베이징 올림픽, '안전 올림픽' 되나) 거시적 안정은 정치 안정을 위협하던 권력갈등, 이념갈등, 중국공산당 통치에 대한 도전 등은 약화되면서 획득한 정치적 안정을 지칭한다. 미시적 불안은 민중들의 생활과 직접 관련이 있는 문제들(빈부격차, 재산권 등 경제적 권익 등)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분쟁 등의 지속적 증가를 지칭한다.
  
  지도부로서는 정치적 안정을 구가하고 있지만 자신들이 주장하는 조화사회 건설의 길은 아직 먼 상황이며, 민중들의 불만은 누적되고 있지만 이를 거시적 변화를 이끌어낸 동력으로 만들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 상황, 민간 역량, 네티즌이 변수
  
  문제는 올림픽 이후 중국이 이러한 교착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질 것인가에 있다. 물론 지금까지 소위 전문가들의 예측을 항상 비웃었던 중국의 변화를 전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만 이를 전망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몇 가지 포인트를 제기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단기적으로 가장 커다란 문제는 경제적 상황이다. 경제예측은 이 글에서 다룰 일은 아니지만 최근 4~5년보다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작년부터 뚜렷해진 물가상승은 이미 중국인들의 가장 커다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으며, 경제성장이 둔화될 경우 나타날 실업률의 증가도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물가상승과 실업률 증가는 현재 만연된 미시적 불안을 거시적 불안으로 전화시킬 수 있는 가장 큰 변수라는 측면에서 중국의 국내정세 변화를 예측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이다. 1989년 천안문 사태를 포함한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정치적 불안은 대부분 경제문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 성화 점화를 위해 하늘을 날고 있는 중국의 체조 영웅 리닝 ⓒ베이징 올림픽 공식 홈페이지

  민간 부분의 역량이 어떻게 발전될 것인가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이후 중국에서도 다양한 NGO들이 발전하고 있으며, 정치적 도전세력은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새로운 가치와 규범을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매개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정부는 NGO를 사회적 불안요인으로 보고 이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하기도 했다. 그런데 올림픽이 끝난 이후 중국정부가 NGO 등 민간 부분의 발전을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할지 아니면 억제적 정책을 계속 견지할 것인가가 이후 중국 정치사회체제의 변화에 커다란 영향을 줄 것이다.
  
  중국 사회의 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 또 따른 요인은 네티즌의 영향력 증가이다. 이미 네티즌들이 국지적 사건을 전국적 관심사로 만들고, 나아가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가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공산당 총서기 후진타오가 네티즌과의 대화에 나설 정도이다.
  
  물론 네티즌들의 영향력은 경우에 따라서는 보통사람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기도 하고 또 애국주의적 경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등 현재로서는 중국 사회의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현재의 교착상태에 충격을 줄 수 있는 무형인 동시에 가장 집단적인 세력으로 등장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러한 요인들이 올림픽 폐막 후 올림픽이 변화시키지 못한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와 힘을 만들어낼 것이다. 다만 이러한 변화에는 우리에게 부담이 될 것도 있고(경제불안 및 사회적 혼란, 맹목적 애국주의 등), 동시에 중국과 우리 사이의 공감대를 넓힐 수 있는 기회(중국 내 NGO나 시민적 역량의 성장)도 존재한다.
  
  우리로서는 중국은 균열이 없는 하나의 통일체가 아니라 그 내에 존재하는 다양성과 균열을 고려하며 중국을 상대해나갈 때 중국의 변화를 새로운 기회로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남주/성공회대 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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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서재에서 퍼온 글이다. 지젝의 인터뷰. 지젝은 항상 흥미가 가는 인물인데 공부할 겨를이 없다. 왜냐구 .... 뻔하지 않나 시간이 없다. ㅠㅠ

 

Slavoj Zizek, 59, was born in Ljubljana, Slovenia.

He is a professor at the European Graduate School, international director of the  Birkbeck Institute for Humanities in London and a senior researcher at the University of Ljubljana's institute of sociology. He has written more than 30 books on subjects as diverse as Hitchcock, Lenin and 9/11, and also presented the TV series The Pervert's Guide To Cinema.  

가장 했복했던 때는?
어떤 행복한 순간을 기대했던 혹은 기억했던 몇 번 - 그것이 발생하고 있었던 때는 결코 아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 이후에 깨어나는 것 - 그래서 나는 곧바로 화장되기를 원한다.

가장 어릴 적의 기억은?
어머니가 벌거벗고 있던 기억. 역겨웠다.


가장 존경하는 생존 인물은, 그리고 이유는?
장-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아이티의 두 번 파직된 대통령. 그는 절망적인 상황에서조차 인민을 위해 무엇이 행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모델이다.

당신 자신에게서 당신이 가장 개탄하는 특성은?
타인들의 곤경에 대한 무관심.

타인들에게서 당신이 가장 개탄하는 특성은?
내가 필요로 하거나 원하지 않을 때 나에게 기꺼이 도움을 주겠다고 하는 그들의 얄팍한 심성.

가장 당혹스러웠던 순간은?
사랑을 나누기 전에 한 여자 앞에 벌거벗은 채 서 있었을 때.

자산을 별도로 하고, 당신이 구입했던 가장 값비싼 것은?
새로운 헤겔 선집 독일어판.

가장 소중한 소유물은?
앞의 답을 볼 것. 

당신을 침울하게 만드는 것은?
우둔한 사람들이 행복해 하는 것을 보는 일.

당신의 외모에서 가장 싫은 것은?
나를 나의 실제 모습으로 보이게 한다는 점.

가장 매력 없는 습관은?
말하는 동안 내 손의 우스꽝스럽게 과도한 틱.

가장무도회의 의상을 고른다면?
내 얼굴에 나 자신의 마스크를 써서, 사람들이 나를 나 자신이 아니라 나인 척하려는 누군가로 생각하게 하고 싶다. 



가장 죄책감이 드는 쾌락은?
<사운드 오브 뮤직> 같은 당혹스럽도록 애처로운 영화를 보는 것.

부모에게 빚진 것은?
아무것도 없기를. 나는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데 일 분도 소비하지 않았다.

미안하다고 가장 말하고 싶은 사람은, 그리고 이유는?
나의 아들들. 충분히 좋은 아버지가 되지 못해서.

사랑의 느낌은?
거대한 불운, 기괴한 기생물, 일체의 소소한 쾌락들을 망쳐놓는 항구적인 비상상태.

일생의 사랑은 무엇 혹은 누구인가?
철학. 비밀이지만, 나는 현실이 존재하는 것은 우리가 그것에 대해 사색할 수 있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냄새는?
썩은 나무 같이, 부패된 자연.

그런 뜻이 아니면서 "널 사랑해"라고 말해본 적이 있는가?
언제나. 정말로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나는 단지 공격적이고도 고약한 언급들을 함으로써 그 사랑을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가장 경멸하는 생존 인물은, 그리고 이유는?
고문을 돕는 의사들.

당신의 최악의 직업은?
가르치기. 나는 학생들을 증오한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대개 우둔하고 따분하다.

가장 큰 실망은?
알랭 바디우가 20세기의 "모호한 재앙"이라고 부르는 것. 즉 공산주의의 파국적 실패.

당신의 과거를 편집할 수 있다면 무엇을 바꾸겠는가?
나의 탄생. 나는 소포클레스에게 동의한다. 즉 가장 큰 행운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농담에도 있듯이, 이에 성공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면, 어디로 가겠는가?
19세기 초 독일로, 헤겔의 대학 강의를 들으러.

어떻게 쉬는가?
바그너를 반복해서 들으면서.

얼마나 자주 섹스를 하는가?
섹스의 의미에 달려있다. 살아 있는 파트너와의 통상적 자위라면, 나는 전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죽음에 가장 가까이 갔던 때는?
가벼운 심장 발작이 있었던 때. 나는 나의 신체를 증오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에게 맹목적으로 봉사할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를 거부했다.

당신의 삶의 질을 향상해줄 단 하나가 있다면?
노인성 치매를 피하는 것.

당신의 최대 업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헤겔에 대한 좋은 해석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전개하는 챕터들.

삶이 당신에게 가르쳐준 가장 중요한 교훈은?
삶은 당신에게 가르쳐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어리석고 무의미한 것이라는 것.

우리에게 비밀을 하나 말해달라.
공산주의는 승리할 것이다.



아래는 인터뷰 원문이다.

When were you happiest?
A few times when I looked forward to a happy moment or remembered it - never when it was happening.

What is your greatest fear?
To awaken after death - that's why I want to be burned immediately.

What is your earliest memory?
My mother naked. Disgusting.

Which living person do you most admire, and why?
Jean-Bertrand Aristide, the twice-deposed president of Haiti. He is a model of what can be done for the people even in a desperate situation.

What is the trait you most deplore in yourself?
Indifference to the plights of others.

What is the trait you most deplore in others?
Their sleazy readiness to offer me help when I don't need or want it.

What was your most embarrassing moment?
Standing naked in front of a woman before making love.

Aside from a property, what's the most expensive thing you've bought?
The new German edition of the collected works of Hegel.

What is your most treasured possession?
See the previous answer.

What makes you depressed?
Seeing stupid people happy.

What do you most dislike about your appearance?
That it makes me appear the way I really am.

What is your most unappealing habit?
The ridiculously excessive tics of my hands while I talk.

What would be your fancy dress costume of choice?
A mask of myself on my face, so people would think I am not myself but someone pretending to be me.

What is your guiltiest pleasure?
Watching embarrassingly pathetic movies such as The Sound Of Music.

What do you owe your parents?
Nothing, I hope. I didn't spend a minute bemoaning their death.

To whom would you most like to say sorry, and why?
To my sons, for not being a good enough father.

What does love feel like?
Like a great misfortune, a monstrous parasite, a permanent state of emergency that ruins all small pleasures.

What or who is the love of your life?
Philosophy. I secretly think reality exists so we can speculate about it.

What is your favourite smell?
Nature in decay, like rotten trees.

Have you ever said 'I love you' and not meant it?
All the time. When I really love someone, I can only show it by making aggressive and bad-taste remarks.

Which living person do you most despise, and why?
Medical doctors who assist torturers.

What is the worst job you've done?
Teaching. I hate students, they are (as all people) mostly stupid and boring.

What has been your biggest disappointment?
What Alain Badiou calls the 'obscure disaster' of the 20th century: the catastrophic failure of communism.

If you could edit your past, what would you change?
My birth. I agree with Sophocles: the greatest luck is not to have been born - but, as the joke goes on, very few people succeed in it.

If you could go back in time, where would you go?
To Germany in the early 19th century, to follow a university course by Hegel.

How do you relax?
Listening again and again to Wagner.

How often do you have sex?
It depends what one means by sex. If it's the usual masturbation with a living partner, I try not to have it at all.

What is the closest you've come to death?
When I had a mild heart attack. I started to hate my body: it refused to do its duty to serve me blindly.

What single thing would improve the quality of your life?
To avoid senility.

What do you consider your greatest achievement?
The chapters where I develop what I think is a good interpretation of Hegel.

What is the most important lesson life has taught you?
That life is a stupid, meaningless thing that has nothing to teach you.

Tell us a secret.
Communism will w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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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에 연재중인 최무영의 글을 오래간만에 옮긴다. 과학의 무능성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어서이다. 사실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어느 영역에서나 이 무능성이라는 말은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싶다. 그건 철학도 예외가 아니다. 철학의 만능성 혹은 철학의 유용성 혹은 필요성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무능성 혹은 무용성 혹은 유해성도 주장해야하지 않을까.

과학의 위험성
  
  현대기술은 과학을 응용한 것으로서 물질문명을 낳았습니다. 과학은 기술과 영향을 주고받았고 현대기술을 낳았지만, 본질적으로는 정신문화라고 강조했지요. 대체로 우리는 정신문화를 과학보다는 문학, 예술, 철학, 종교 같은 것들로 생각합니다. 과학은 기술과 함께 묶어서 물질문명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요. 여러분은 그동안 많이 공부했으니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정신문화의 범주에는 과학과 함께 흔히 생각하는 문화, 예술, 철학, 종교 등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문학과 예술은 별로 그렇지 않지만 철학이나 종교는 역사적으로 과학과 가끔 충돌한 경우가 있습니다. 대체로 과학의 합리주의와 종교의 초월주의 사이의 갈등인데, 철학도 근대와 달리 중세의 철학은 초월주의 경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앞에서 소개한 러셀의 저서 중에 ≪종교와 과학(Religion and Science)≫이라는 짧은 논고가 있습니다. 부제목은 '독단과 이성의 투쟁사'이지요. 러셀은 철학과 수학에 중요한 업적이 있고, 물리학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었다고 지적했지요. 정치가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하고 교육자로서 상당한 교육철학의 저서도 남겼습니다. 작가로서 노벨 문학상도 받았지요. 무엇보다도 행동가여서 감옥에 가기도 했습니다. 베트남 침략전쟁을 반대하는 운동으로 널리 알려졌고, 나이가 많이 들어서 무려 80세일 때에도 시위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이른바 빨갱이로 낙인찍혔는데, 놀랍고 흥미로운 사람이지요. [러셀은 30여 년 전에 타계했는데 현재 이와 비슷한 느낌을 주며 활동하고 있는 사람으로 촘스키(Noam Chomsky)를 들 수 있겠습니다. 원래 언어학자로서 20세기 언어학에서 최고의 업적으로 꼽히는 변형생성문법(transformational generative grammar)으로 유명하지요. 언어철학과 심리학에도 업적이 있는데 요새는 활발한 정치 비평, 특히 미국의 대외 정책의 위선과 야만성을 폭로하는 행동가로 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저서가 한글로도 번역이 되어있지요. 그의 강연회에서 만나서 인사를 나누었던 기억이 납니다. 최고의 지성으로 꼽히고 있는데 아무래도 '미국적'이라는 어쩔 수 없는 한계는 - 내가 '한국적'인 한계를 지녔듯이 - 지니고 있다고 느꼈어요.]
  

 

 

 

 

 


  과학에 대해 그릇된 인식은 이른바 과학만능주의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학만능주의는 희한하게도 종종 종교와 만나곤 합니다. 러셀의 저서를 독단과 이성의 투쟁사라고 했는데 물론 독단이란 종교를 가리키고 이성은 과학을 나타냅니다. 여기 종교를 믿는 학생들이 물론 있겠는데 여기서 독단이란 종교의 독선주의, 배타주의를 말합니다. 잘못된 의미의 종교지요.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러셀의 의미에서 독단과 이성이 만나서 투쟁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도리어 과학과 종교가 사이좋게 잘 만나는 듯합니다. 그런데 이는 그릇된 인식에 바탕을 둔 과학과 기술인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과학만능주의는 이성이 아니라 독단으로서 문제가 심각하다 하겠습니다. 과학과 종교의 사이좋은 만남이란 것이 사실은 독단과 독단의 만남인 셈이니 어떻게 되겠어요? 당연히 끔찍한 일이 벌어지지요. 전형적인 예가 바로 미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로 일어난 대표적 현상이 이라크 침략이겠지요. 과학만능주의가 종교의 배타주의, 초월주의와 만나서 미국의 세계 지배 전략이라는 것을 뒷받침해서 얻어진 끔찍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가장 걱정되는 과학의 미래입니다.
  
  그런데 과학에서 잠재적으로 더욱 큰 위험성은 무능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예로 든 과학만능주의의 문제점은 기술과 관련되어 비교적 명백하게 나타나므로 쉽게 인식이라도 할 수 있지만, 독단이 아닌 정상적인 과학의 무능함은 인식하기 어렵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정상과학은 워낙 세세하게 나뉘어 있고 전문화되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무능해졌어요. 제대로 된 과학자라고 해도 사실은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 매우 좁은 전문분야의 지식밖에 알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물리학에도 여러 분야, 곧 입자물리, 원자핵물리, 원자분자물리, 응집물질물리, 그리고 통계물리 따위가 있습니다. 그런데 응집물질물리학자라고 해도 응집물질에 대해 다 아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응집물질 중에도 초전도체, 반도체, 금속, 자성체, 강상관계, 흐름체, 무른 물질 따위 여러 주제가 있는데, 보통 그 가운데에서 한 가지만 알지요. 그 한 가지에서도 대부분은 극히 일부만 압니다. 너무 세분화되고 전문화되어 있기 때문에 깊으면서도 넓게 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요. 따라서 좁은 주제에 대해 극히 일부분만 알게 되고 멀리 넓게 전체를 내다보는 조감을 지닌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전체를 보고 판단할 수 없으면 무능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의 진행이 위험한지 판단한다고 합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위험성이라는 것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정말로 위험한지 아닌지는 대부분 모릅니다. 특히 전체를 고려하지 않고 좁게 대상 자체만 보면 제대로 판단할 수 없지요. 여기서 위험한지 아닌지 잘 모르는 경우에는 당연히 판단을 유보하고 그것을 예의주시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혹시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니 판단을 유보해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위험성 없음'으로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험성 없음으로 판명된 것이 아닌데도 위험하다는 증거가 없으면 대체로 위험성이 없다고 받아들이지요. 위험하지 않다는 증거 또한 없는데도 그렇습니다.
  
  대표적으로 이미 논의한 핵발전과 핵폐기장, 그리고 우리 일상생활에 특히 중요한 유전자변형유기체를 들 수 있습니다. 우리 일상에서 이른바 유전자 조작 식품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여러분이 점심에 먹은 음식도 십중팔구 유전자를 조작하여 변형한 생물체로 만들었을 겁니다. 햄버거로 상징되는 간편하게 먹는 쓰레기음식(junk food)은 직간접적으로 상당 부분 유전자변형유기체를 사용합니다. 이것이 해로운가 아닌가는 완전히 확정된 결과가 없습니다. 강조하지만 위험하지 않다고도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안전하다는 증거가 필요한 것인데 일상에서는 위험이 입증되지 않았으니 문제가 없다며 마구 팔고 있습니다. 이에 반대하면 위험하다는 증거를 대라고 강변하지요. 그런데 사실은 동물 실험에서 위험하다는 실험적 증거가 있는데 이를 감추고 왜곡해서 선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네이처≫ 잡지던가요? 심사가 통과되어 게재하기로 했던 실험 결과가 편집자에 의해 취소되고 어이없게 정반대 결과의 논문이 실린 예도 있지요. 이러한 직접적인 위험성뿐 아니라 제어하지 못하는 교차수분의 위험성, 유전자 오염과 생물 다양성 훼손 등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습니다. 파국이 올 수도 있지요.
  
  현재 세계에서 유통되는 유전자변형유기체의 다수가 미국에서 만들어진 것인데 특히 몬산토(Monsanto)회사가 악명이 높지요. 이 초국적 기업은 베트남 침략 전쟁 당시 고엽제로 이름을 떨쳤고 - 이 때문에 아직도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지요 - 유전자를 조작해서 번식을 하지 못하는 콩과 허위 선전으로 독성 제초제를 팔고, 판매한 돼지가 낳은 새끼들에까지 특허권 소송을 걸고 독극물을 방류하는가 하면 어린이를 포함한 노동력 착취 등 화려한 활약을 자랑합니다. 이 대부분이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 주로 개발도상국에서 이루어지는 반면 미국에서는 디즈니랜드(Disneyland)와 손을 잡고 있으며 - 양의 탈이 생각나지요 - 막대한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엄청난 로비를 통해 정치권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실 그 실상을 알면 너무나 놀랍다고 할 수밖에 없어요. 이 외에도 여러 미국의 기업들이 악명을 떨치고 있습니다. (사실 디즈니랜드의 진실을 보면 그 자체가 전형적인 양의 탈이지요.)
  
  환경오염과 관련해서 대기에 미세먼지가 얼마고, 일산화탄소나 질소산화물이 얼마 있는데, 이는 기준값보다 낮으니까 안전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엄밀하게는 기준값보다 낮다고 해서 좋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기준을 가지고 기준값을 정했는지도 문제가 있지만 그 의미를 잘못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준값보다 높으면 크게 해롭다는 뜻이고, 기준값보다 낮아도 일반적으로 해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리 크지는 않다는 것이 정확한 의미입니다. 그러니 기준값보다 낮다고 무조건 안전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가공식품에 많이 쓰는 첨가물도 마찬가지지요.
  
  그런 예가 매우 많습니다. 위험성 관계가 불확실하다고 해서 위험하지 않다고 간주하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는 예가 앞 강의에서 언급한 광우병입니다. 광우병은 소에게 고기, 곧 동물의 사체를 먹여서 발병했지요. 풀을 먹고 살아야하는 소에게 고기를 먹인 것은 인간의 탐욕 때문입니다. 소를 빨리 키우고 무게를 늘려서 비싸게 팔고 젖소에게 최대한 많은 젖을 짜내어 이익을 늘리려고 양을 비롯한 동물의 사체를 갈아서 사료에 섞여 먹였지요. 그런데 양에게는 두뇌의 신경그물얼개 조직이 스펀지 모양으로 구멍이 숭숭 뚫리는 스크래피(scrapie)라는 해면상뇌증이 있었는데 그 양을 갈아 먹인 소에 옮겨서 광우병이 생겼다고 여겨집니다. 심지어 소의 사체도 갈아 먹였으니 소끼리 옮겨졌는데 이는 사람에게 사람을 먹인 셈입니다. (사람의 사체를 먹어서 걸리는 쿠루(Kuru) 병과 흡사한 조건이 되었네요.) 광우병 인자를 가진 소가 발병할 때까지 시간이 상당히 걸리는데 그 사이에 인간이 그 소를 먹으면 옮아서 변종 크로이츠펠드-야콥병, 이른바 인간광우병에 걸리게 되지요. 감염된 후 10∼20년, 때로는 30년이 지나서 발병할 수 있으니 여러분도 쇠고기를 먹고 나서 30년은 지나봐야 그 쇠고기가 문제가 없는지 안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양을 먹인 것이 그런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상상할 수조차 없었지요. 이미 말했지만 광우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같은 미생물이 아니라 프리온 흰자질입니다. 생명체는 물론 아닌데 우리 몸속에 들어가서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번식해서 뇌를 파괴합니다. 병에 걸린 소의 뇌나 척수를 비롯한 신경조직에 많지만 피나 살코기에도 소량 있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워낙 극소량으로 발병할 수 있어서 먹지 않아도 수혈이나 혈액제제, 심지어 젤라틴을 포함한 화장품과 수술실 등 가공품으로도 감염될 수 있다고 하지요. 일단 걸리면 고칠 수 없고, 늦추는 방법도 없습니다. 끔찍한 고통과 죽음밖에 길이 없지요. 영국에서 처음 환자가 생겼는데 세계적으로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걸리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수만 또는 수십만 명이 걸리게 될 거라는 비관적인 예측도 있고, 일반 (산발성) 크로이츠펠드-야콥병(sporadic Creuzfeld-Jacob disease; sCJD)은 물론 알츠하이머병(Alzheimer's disease), 흔히 치매라고 알려진 사망자의 상당수가 사실은 인간광우병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몇 해 사이에 미국에서 알츠하이머 환자가 수십 배로 급증했는데, 일반적으로 진단방법이 발전했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그러나 환자의 병력이 길지 않은 경우 사망 후 부검하지 않으면 알츠하이머병인지 인간광우병 따위 해면상뇌증과 관련이 있는지 확진하기 어렵습니다.
  
  아무튼 그런 결과를 낳을 거라고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흰자질이 스스로 증식해서 치명적인 병을 가져오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더욱이 일반적으로 서로 다른 종 사이에 장벽이 있다고 믿었으므로 그 장벽을 뛰어넘어 발병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위험성과의 연관관계를 몰랐다가 나중에야 치명적인 위험이 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안전한지 확실하지 않은데 위험성이 없다고 간주해버린 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보여 주지요. 이러한 교훈을 볼 때 유전자조작은 매우 염려가 됩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얻어질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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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에서 남문희 기자의 글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그의 통찰력과 정보력은 정말 놀라울 지경이다.

그의 글 하나를 옮기는 이유는 외교적 모호성이라는 그의 생각 때문이다. 모호성 이거 한 번 생각해볼 문제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에서 겪은 ‘고초’는 분명히 인재(人災)에 해당한다. 충분히 예상됐고 대처할 수 있었는데도 그대로 강행하다 당했으니 인재라 할밖에.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대통령 방중 당일 한·미 동맹에 대해 시비하고, 신정승 신임 주중 대사에 대한 신임장 제정도 미루다 정상회담 직전에야 처리하고, 인민일보와 해방일보가 이명박 정부의 외교정책을 비꼬고…. 접빈객(接賓客)의 나라 중국이 사상 유례없는 외교 결례를 ‘자행’했다는 기사가 친정부 신문들에서조차 쏟아졌다.

3주 전 발행했던 <시사IN> 35호 ‘광우병 파동 다음엔 후진타오의 복수?’ 기사에서 소개한 중국의 냉랭한 기류가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정권 출범 초기, 중국·러시아·북한은 마치 지도상에 없는 양 한·미·일 동맹만 강조할 때, 외교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걱정했다. 그런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중했다면, 나라의 얼굴인 대통령이 남의 땅에 가서 저토록 수모를 당하는 일만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북한·중국 카드 없는 한국은 미국에 편한 상대

너무 늦어 피하기 힘들었다면, 차라리 연기하는 것도 방법이었다. 쓰촨 대지진으로 중국 지도부가 제정신이 아닐 터이니 명분도 충분했다.  필자가 접한 몇몇 중국 전문가도 “정치를 안다면 이번에는 오지 말아야 한다는 베이징 지인의 얘기를 많이 들었다”라고 이구동성으로 지적했다. 그러니 섶을 지고 불속으로 뛰어든 격이며, 그래서 인재라 한 것이다.


   

ⓒ연합뉴스5월27일 공동 기자회견을 위해 인민대회당으로 향하는 한·중 정상.

외교 당국자들은 이렇게 항변할지 모른다.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된 것은 성과가 아니냐고. 솔직히 필자는 잘 모르겠다. 후진타오 주석의 마음이 꽉 닫힌 상태에서 양국 관계 형식을 바꾸는 게 무슨 의미인지, 전략 관계에서는 상대방의 모든 것을 대화 의제로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중국이 사사건건 간섭할 수 있도록 문호만 열어준 건 아닌지. 한 달 전만 해도 한·미·일 3각 동맹 부활이 국시인 양 떠들다가 갑자기 중국 러시아와도 전략 관계를 추구하겠다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 건지.

필자의 상식으로, 외교는 모호성이 생명이다. 지난 10년 정부 정책을 다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모호성은 살아 있었다. 특히 미국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북한·중국·러시아와도 긴밀하게 접촉하고 있다는 것은 외교적으로 큰 자산이었다. 함부로 할 수 없었기에, 미국이 불편해할 수는 있었지만, 한·미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는 오히려 도움이 됐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한·미 관계 복원에만 몰입한 결과, 한국은 이제 미국에 아주 ‘편한’ 상대가 되었다. 그만큼 양국 관계는 위험해졌다. 쇠고기 문제는 바로 이런 편한 관계에서 발생했고, 양국 관계를 파탄으로 이끌 화약고이다. 대다수 국민, 심지어 어린 학생조차 이번 협상을 미국 내에서 처리하기 힘든 30개월 이상 늙은 소의 무차별 수입 개방으로 이해하고, 따라서 결코 저항을 멈추지 않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권이 미국에 재협상의 ‘재’자도 꺼내지 못하는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이미 이 정부에는 미국 정부를 설득하거나 압박할 외교적 자산이 남지 않았다. 외교적 자산은 고사하고 주변국 모두가 등을 돌리게 만들어놓아 오히려 미국에 매달려야 할 처지이다. 결국 국민에게 모든 부담을 전가할 수밖에 없고, 국민은 이에 무한 투쟁으로 맞설 것이다. 그것이 한·미 양국 모두에게 치명적 내상을 남길 것임에도 조정 능력은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 방중에서 드러난 뼈아픈 현실이다.

 

물론 모호성이란 나의 입장에서는 훌륭한 외교술인듯 하지만 타인이 모호성을 표했을 때는 골치덩어리이기도 하다.



[여적]모호성 여러 뜻이 뒤섞여 있어서 정확히 무엇을 나타내는지 알기 어려운 말의 성질.

 

모호성 원칙의 대표적 사례는 미국의 이른바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정책이다.
미국은 1954년 제정한 원자력법에 근거해 자신들의 핵우산국들에 핵무기가 있는지 없는지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NCND 정책을 폈다.

1990년대초까지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 따라 한국에서 핵무기를 철수할 때까지 이 정책을 폈으며,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지금도 이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모호성의 원칙으로 실제 능력 이상 재미를 본 나라는 북한이다.
북한은 1993년 핵문제가 본격화한 이후 줄곧 모호성 원칙을 견지해 세계 초강대국 미국과 맞서 왔다. 심지어 1998년 평북 금창리 땅굴 건설 때는 모호성만으로 미국으로부터 쌀 50만t을 챙기기도 했다.

 모호성 원칙은 오늘날 핵문제뿐 아니라 정치, 외교, 경제 등 사실상 거의 모든 분야에서 통용된다.
대통령 선거에서 곤란한 문제가 나오면 후보들은 ‘전략적으로’ 모호성이라는 무기를 휘두른다는 게 미 하버드대 케네스 셉슬 교수(정치학)의 주장이다.

통화정책 당국자들도 금리 향방에 대해 모호성을 유지한다.

 그러나 이렇게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모호성의 원칙도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다.
어느 순간 모호성이 드러날 수밖에 없으며 그 순간 생명은 사라지고 만다는 점이다.
북한이 대포동 2호 미사일을 발사했다가 실패하는 바람에 미 당국자들이 일단 한시름 놓은 것이 좋은 사례다.
북한의 미사일 능력이 모호성을 잃으면서 대미 카드로서 위력을 당분간 상실했다.

일본 차기 총리로 유력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이 아시아인들의 최대 관심사인 야스쿠니 신사 참배여부에 관해 직접적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고 한다.
현시점에서 모호성이 자신의 입장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했겠지만 그 생명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아베 장관이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베의 모호성은 우리에게도 숙제를 던지고 있다.
아베의 모호성을 방치할 것인지, 아니면 탈을 벗고 진정한 우방국의 수반이 되도록 압박을 가할 것인지 하는 임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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