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에서 남문희 기자의 글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그의 통찰력과 정보력은 정말 놀라울 지경이다.
그의 글 하나를 옮기는 이유는 외교적 모호성이라는 그의 생각 때문이다. 모호성 이거 한 번 생각해볼 문제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에서 겪은 ‘고초’는 분명히 인재(人災)에 해당한다. 충분히 예상됐고 대처할 수 있었는데도 그대로 강행하다 당했으니 인재라 할밖에.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대통령 방중 당일 한·미 동맹에 대해 시비하고, 신정승 신임 주중 대사에 대한 신임장 제정도 미루다 정상회담 직전에야 처리하고, 인민일보와 해방일보가 이명박 정부의 외교정책을 비꼬고…. 접빈객(接賓客)의 나라 중국이 사상 유례없는 외교 결례를 ‘자행’했다는 기사가 친정부 신문들에서조차 쏟아졌다.
3주 전 발행했던 <시사IN> 35호 ‘광우병 파동 다음엔 후진타오의 복수?’ 기사에서 소개한 중국의 냉랭한 기류가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정권 출범 초기, 중국·러시아·북한은 마치 지도상에 없는 양 한·미·일 동맹만 강조할 때, 외교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걱정했다. 그런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중했다면, 나라의 얼굴인 대통령이 남의 땅에 가서 저토록 수모를 당하는 일만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북한·중국 카드 없는 한국은 미국에 편한 상대
너무 늦어 피하기 힘들었다면, 차라리 연기하는 것도 방법이었다. 쓰촨 대지진으로 중국 지도부가 제정신이 아닐 터이니 명분도 충분했다. 필자가 접한 몇몇 중국 전문가도 “정치를 안다면 이번에는 오지 말아야 한다는 베이징 지인의 얘기를 많이 들었다”라고 이구동성으로 지적했다. 그러니 섶을 지고 불속으로 뛰어든 격이며, 그래서 인재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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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5월27일 공동 기자회견을 위해 인민대회당으로 향하는 한·중 정상. |
외교 당국자들은 이렇게 항변할지 모른다.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된 것은 성과가 아니냐고. 솔직히 필자는 잘 모르겠다. 후진타오 주석의 마음이 꽉 닫힌 상태에서 양국 관계 형식을 바꾸는 게 무슨 의미인지, 전략 관계에서는 상대방의 모든 것을 대화 의제로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중국이 사사건건 간섭할 수 있도록 문호만 열어준 건 아닌지. 한 달 전만 해도 한·미·일 3각 동맹 부활이 국시인 양 떠들다가 갑자기 중국 러시아와도 전략 관계를 추구하겠다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 건지.
필자의 상식으로, 외교는 모호성이 생명이다. 지난 10년 정부 정책을 다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모호성은 살아 있었다. 특히 미국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북한·중국·러시아와도 긴밀하게 접촉하고 있다는 것은 외교적으로 큰 자산이었다. 함부로 할 수 없었기에, 미국이 불편해할 수는 있었지만, 한·미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는 오히려 도움이 됐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한·미 관계 복원에만 몰입한 결과, 한국은 이제 미국에 아주 ‘편한’ 상대가 되었다. 그만큼 양국 관계는 위험해졌다. 쇠고기 문제는 바로 이런 편한 관계에서 발생했고, 양국 관계를 파탄으로 이끌 화약고이다. 대다수 국민, 심지어 어린 학생조차 이번 협상을 미국 내에서 처리하기 힘든 30개월 이상 늙은 소의 무차별 수입 개방으로 이해하고, 따라서 결코 저항을 멈추지 않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권이 미국에 재협상의 ‘재’자도 꺼내지 못하는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이미 이 정부에는 미국 정부를 설득하거나 압박할 외교적 자산이 남지 않았다. 외교적 자산은 고사하고 주변국 모두가 등을 돌리게 만들어놓아 오히려 미국에 매달려야 할 처지이다. 결국 국민에게 모든 부담을 전가할 수밖에 없고, 국민은 이에 무한 투쟁으로 맞설 것이다. 그것이 한·미 양국 모두에게 치명적 내상을 남길 것임에도 조정 능력은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 방중에서 드러난 뼈아픈 현실이다.
물론 모호성이란 나의 입장에서는 훌륭한 외교술인듯 하지만 타인이 모호성을 표했을 때는 골치덩어리이기도 하다.
[여적]모호성 여러 뜻이 뒤섞여 있어서 정확히 무엇을 나타내는지 알기 어려운 말의 성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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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성 원칙의 대표적 사례는 미국의 이른바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정책이다.
미국은 1954년 제정한 원자력법에 근거해 자신들의 핵우산국들에 핵무기가 있는지 없는지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NCND 정책을 폈다.
1990년대초까지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 따라 한국에서 핵무기를 철수할 때까지 이 정책을 폈으며,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지금도 이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모호성의 원칙으로 실제 능력 이상 재미를 본 나라는 북한이다.
북한은 1993년 핵문제가 본격화한 이후 줄곧 모호성 원칙을 견지해 세계 초강대국 미국과 맞서 왔다. 심지어 1998년 평북 금창리 땅굴 건설 때는 모호성만으로 미국으로부터 쌀 50만t을 챙기기도 했다.
모호성 원칙은 오늘날 핵문제뿐 아니라 정치, 외교, 경제 등 사실상 거의 모든 분야에서 통용된다.
대통령 선거에서 곤란한 문제가 나오면 후보들은 ‘전략적으로’ 모호성이라는 무기를 휘두른다는 게 미 하버드대 케네스 셉슬 교수(정치학)의 주장이다.
통화정책 당국자들도 금리 향방에 대해 모호성을 유지한다.
그러나 이렇게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모호성의 원칙도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다.
어느 순간 모호성이 드러날 수밖에 없으며 그 순간 생명은 사라지고 만다는 점이다.
북한이 대포동 2호 미사일을 발사했다가 실패하는 바람에 미 당국자들이 일단 한시름 놓은 것이 좋은 사례다.
북한의 미사일 능력이 모호성을 잃으면서 대미 카드로서 위력을 당분간 상실했다.
일본 차기 총리로 유력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이 아시아인들의 최대 관심사인 야스쿠니 신사 참배여부에 관해 직접적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고 한다.
현시점에서 모호성이 자신의 입장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했겠지만 그 생명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아베 장관이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베의 모호성은 우리에게도 숙제를 던지고 있다.
아베의 모호성을 방치할 것인지, 아니면 탈을 벗고 진정한 우방국의 수반이 되도록 압박을 가할 것인지 하는 임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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