⑮ 잔니 바티모 Gianni Vattimo

잔니 바티모는 1936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면서 해석학과 미학의 관점에서 종교와 사상의 문제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주로 니체와 하이데거의 철학을 탈근대적 사고로 연역하면서 해석학의 기초 위에 이른바 ‘약한 사고’의 이론을 주창했고, 이를 통해 대중문화와 인터넷이 범람하는 현대 사회에서 좌파 정치의 새로운 역할을 제시하고 있다. 1964년부터 2008년까지 토리노대에서 철학과 미학을 가르쳤으며,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유럽의회 의원으로 활동했다. <진실에 대한 예술의 주장>, <기독교 이후>, <허무주의와 해방>, <해석학적 공산주의> 같은 책들을 썼고, 국내에 <투명한 사회>와 <근대성의 종말>이 번역돼 있다.

 

 

 




바티모는 ‘약한 사고’의 개념을 빌려 형이상학적 진실과 이별하는 우리 시대에서 해석이 지니는 실천적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것은 모든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진실들의 허위성을 드러내고, 자유로운 해석의 실천을 통해 아래로부터의 변혁을 추동하는 것을 가리킨다.



 

» 잔니 바티모
 

이탈리아의 철학자 잔니 바티모는 탈근대성이라는 이론적 토대 위에서 ‘약한 사고’라는 사유와 실천 형식을 마련하는 것으로 우리 시대의 철학의 역할을 재정립하고자 한다. 바티모가 말하는 탈근대성은 근대성을 폐기하거나 이어받는다기보다, 심화하고 비틀고 치유하면서 그것을 넘어서려는 한층 복잡한 사고를 가리킨다. 바티모는 ‘약한 사고’의 개념을 빌려 형이상학적 진실과 이별하는 우리 시대에 해석이 지니는 실천적 중요성을 강조한다. 대중문화와 매스컴, 인터넷이 날로 번창하는 현대 세계는 무수한 입장들이 가로지르는 네트워크로 짜인다. 그런 상황은 새로운 좌파의 철학과 정치를 요구하는데, 그것은 모든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진실들의 허위성을 드러내고, 자유로운 해석의 실천을 통해 아래로부터의 변혁을 추동하는 것을 가리킨다.

바티모는 탈근대성을 다원주의로 파악한다. 다원주의는 절대적인 진리를 부정할 때 발생한다. 반면 절대적인 진리는 민주주의를 저지한다. 절대 진리가 있고 그것을 잘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절대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것을 반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리와 이별하는 시대는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한껏 높이는 시대다. 바티모에 의하면, 진리가 단단하고 영속적인 객관성을 지닌 것으로 보이는 존재론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진리를 재해석과 재맥락화, 재서술에 의해 새로 구성되는 어떤 것으로 선별하고 채택해야 하는 해석학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철학은 세계를 묘사하기보다 해석해야 한다. 탈근대적 해체가 통일된 역사서술에 종말을 고한다면, 그를 위한 철학은 ‘차이의 모험’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그것은 존재를 사건으로 인식함으로써 진실의 개념에 해석적 성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니체의 말을 빌리면, 진실은 없고 해석만이 있으며, 따라서 진실의 가치는 해석들의 차이들에 따라 결정된다. 바로 여기서 해석하는 주체의 자리가 중요하게 떠오른다. 진실이나 존재는 주체의 해석 행위에 따라 가변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바티칸과 같은 종교 기관이 의도적인 설교를 하고, 미국과 같은 정치적 제국이 자본주의를 선전하며, <엔비시>(NBC)나 <시엔엔>(CNN) 같은 텔레비전 네트워크가 선택된 뉴스를 통해 ‘객관적 사실’을 정의한다면, 철학은 진실이란 단지 해석들의 게임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 시대에 철학은 논증적인 담론보다는 일종의 교화하는 담론이며, 지식의 발전과 진보보다는 인류의 교화를 향한 담론이다. 철학자의 임무는 영원을 이해하도록 인류를 이끄는 플라톤 식의 어젠다와 상응하지 않는다. 그보다 인류가 역사를 향해, 역사와 함께 나아가도록 만든다. ‘약한 사고’는 결코 사고의 약함 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사고는 더는 논증적이지 않고 교화적이기 때문에 약해지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약한 사고’에 근거한 철학은 주장이 아니라 호소이며 선언이다. 주장은 응답을 기대하지 않거나 거기에 대처하려 하는 반면, 호소와 선언은 응답을 기대하며 그 응답과 함께 커나간다.

바티모는 오늘날 정치와 철학이 이해하고 구성해야 할 진실의 유일한 지평은 사회적·문화적 대화의 인식론적 조건들을 재검토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진실이라는 주제를 사회적 분배와 참여의 문제로 연결시키고 일반 대중이 가장 잘 이해되는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진실과의 이별과 그에 따른 ‘약한 사고’는 민주주의의 시작이며 토대다.

이런 식의 ‘약한 사고’를 펼치는 바티모는 ‘좌파에 대한 좌파의 철학자’라고 불릴 만하다. 그것은 여전히 절대적 토대를 전제로 하는 좌파에 비해 바티모는 ‘좌파 철학’을 토대의 붕괴와 재구성을 통해 추구하기 때문이다. 좌파의 정치는 무조건적인 도덕적 의무, 보편타당성의 주장, 초월적인 합리적 전제들을 회의하고 비틀고 재구성함으로써 가능하다. 따라서 철학은 좌파 정치에서 부수적이지 않다. 바티모와 같은 좌파에게 철학은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사회정치적 주도권을 지닌다. 그런 면에서 그는 ‘약해진 마르크스’를 주창하면서 ‘약한 사고’를 정치적 차원으로 발전시키고자 한다.

돌이켜보면, 바티모는 68혁명에 참가한 학생들보다 훨씬 더 급진적이었다. 수감된 그의 학생들이 보낸 편지에서 바티모는 형이상학적 주체를 주장하는 폭력적 논리를 발견하고, 절대 원칙을 생산하는 철학은 없다는 자신의 신념을 확인했다. 그의 급진성은 원칙을 세우기보다는 회의하고 비판하며 끊임없는 재사고의 대상으로 올리면서 이루어졌다. 그런 입장에서 바티모는 1970년대 이래 좌파 정치에 관여했고, 바티모를 위시한 철학자들이 급진적이지 못하다는 붉은 여단의 압력을 폭력으로 간주했다. 특히 1990년대에 들어 이탈리아 정치에서 혁명과 같았던 ‘탄젠토폴리’(뇌물도시) 사건에서 정치적 열의를 보였다. 그 뒤 많은 지식인들이 관심을 접은 상황에서 바티모는 언론 기고를 통해 논쟁을 지속시켰고, 그와 함께 베를루스코니 체제를 비판했다.

바티모는 1999년부터 5년 동안 유럽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주로 인권과 문화, 교육, 매체와 같은 분야에서 활동했다. 바티모의 유럽의회 활동은 다원주의의 확립으로 두드러진다. 유럽연합 헌법에 ‘기독교적 가치’라는 용어를 삽입하는 문제를 두고 논쟁이 일어났을 때, 바티모는 유럽은 다원주의적이어야 하며, 단일 종교를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유럽의 기독교적 전통과 가치를 부정하고 망각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기독교적 가치는 세속주의와 대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속주의는 자신을 포기하는 방식의 사랑이라는 가장 기독교적인 개념에 토대를 둔다. 그런 면에서 세속주의는 다양한 종교들이 제한 없이 스스로의 신앙을 추구할 수 있는 다원주의와 통한다. 따라서 기독교의 ‘종교적’ 힘은 세속주의의 차원에서 민주주의의 토대를 제공해준다. 유럽연합 헌법에 기독교 개념을 넣으려는 바티칸의 압력은 바티모의 눈에 유럽의 다원성을 좀먹는 교조적 형이상학의 발현과 다르지 않다. 종교는 세속주의로 나아갈 때 비로소 진정한 종교성의 옷을 입게 되는 것이다.

바티모가 유럽에서 본 것은 코즈모폴리터니즘(세계시민주의)의 꿈이다. 유럽연합은 초국가적 국가가 점령이나 침공, 전쟁이 아닌, 자유로운 의사 결정에 의해 구성된 최초의 경우다. 바티모는 유럽연합을 진지한 정치적 진보의 표상으로 본다.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자연스러운 기반이 아니라 다양성들의 자발적인 기초이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단 하나의 언어와 종교, 인종이 아니라 다양한 언어와 종교, 인종에 의해 구성되었기에, 무한하게 뻗어나가고 적용될 수 있을 공동체라고 바티모는 굳게 믿는다.

바티모의 좌파적 사고와 정치 실천은 사회주의가 인류의 운명이라는 생각에서 나온다. 사회주의는 모든 사회적 가치와 권력의 민주화가 펼쳐지는 우리의 집단적 삶을 국가적으로 조절하는 체제를 말한다. 이는 ‘투명한’ 민주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투명한 민주 사회란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고 싶어하지 않는, 공통의 결속된 원칙들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열린 공간을 남기는 사회다. ‘불투명한’ 사회에서 폭력은 형이상학적 구조와 그것이 빚어내는 궁극적 진실에 의해 정당화된다. 반면, 진정한 인간 존엄성은 기존의 자연스러운 형이상학적인 본질이 아니라 그것을 비틀고 재고하는 개인들의 자유에서 나온다.

이제 보편적 전통이 와해되고 절대적 진실이 붕괴하는 세속화의 근대 역사 끝자락에 서 있는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들은 이러하다. 우리에게 형이상학적 구조와 궁극적 진리는 무엇인가. 그들에 맞서 다양한 해석과 의미의 소통을 이루는 공간은 어떻게 건설할 수 있는가. 우리는 그에 대한 답과 함께 새로운 체제의 구성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나름대로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다. ‘약한 사고’는 그를 위한 강력하고 근본적인 사유와 실천의 형식이다. 박상진/부산외대 교수




 




 

» 박상진/부산외대 교수
 
박상진은 한국외대에서 이탈리아 문학을 전공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문학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부산외국어대 이탈리아어과와 비교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열림의 이론과 실제>, <에코 기호학 비판> 등의 저서와 <근대성의 종말>, <대중문학론>, <굿바이 미스터 사회주의>, <신곡> 등의 역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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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연재이다.  

 [새로운 공화국을 꿈꾸며](13)세계시민성과 주체성 (下)  

ㆍ경쟁주의 벗고 전인류와 ‘공통·기쁨의 연대’를

박명림 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어느덧 마지막 편지를 드릴 때가 되었습니다. 처음 대담을 시작할 때는 한 나라의 테두리 내에서 공화국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의 관심사였으나, 이제 어떻게 하면 국가의 울타리를 넘어 세계시민적 공동체를 같이 만들어 나갈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대담을 마무리짓는 주제가 되었습니다. 우리 시대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세계화의 시대로서 더 이상 개별 국가가 다른 국가들로부터 떨어져 자족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세계가 온전하지 않고서는 한 국가가 온전할 수 없고, 전 인류가 건강하지 않고서는 우리들 각자가 평안할 수 없게 된 것이 우리 시대인 까닭에, 나라와 개인의 운명을 진지하게 염려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전체 세계와 인류의 운명을 더불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시민적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에 기반한 경쟁주의에서 벗어나 인류 공동의 번영과 평화를 위한 공동선을 창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른 나라와 담합해 각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허상에 사로잡힌 자유무역협정(FTA)이 아니라 국가 사이의 경제, 문화적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한 전 지구적 조세제도(global tax system)가 필요하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코스모폴리턴, 곧 ‘세계의 시민’(kosmou polites)이라는 말은 벌써 기원전 그리스 철학자들이 특정한 국가의 시민과 반대되는 뜻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던 개념입니다. 기원전 7세기께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서 새로운 폴리스를 건설하고 살기 시작하면서 고대 그리스인들 사이에서는 조국이나 고향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든 잘 살 수 있는 곳이 고향이요, 조국이라는 관념이 처음 싹텄고, 헬레니즘 시대를 거쳐 로마 시대에 이르면 철학자들은 참된 국가란 여러 국가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모든 지혜로운 사람들이 전 세계에 걸쳐 서로 만날 수 있는 보편적 공동체라고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나중에 기독교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오늘날까지 인간의 초국가적이고 전지구적인 공공적 존재방식을 뜻하는 말로 굳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고민하는 세계시민성이 수 천년 전부터 당연하고 자명한 이상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 시민들이 아무리 세계시민의 이상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아직 세계라는 것을 이름으로만 알고 있었을 뿐 실제로는 알지 못했습니다. 참된 세계는 전체이지만, 그들이 알고 있는 세계는 아직 제한된 부분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세계시민적 이상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인류는 세계시민이 아니라 특정한 국가에 얽매인 시민의 삶을 살아왔던 것입니다.

세계시민성이라는 것이 단순히 이상과 관념이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로서 주어진 것은 우리 시대입니다. 지금 우리 모두는 길어야 이틀이면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갈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한반도를 떠나 전 지구 위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국인의 숫자가 약 600만명이라 하는데, 이 숫자는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10분의 1에 육박하는 숫자입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에 상응하는 숫자의 외국인들이 한국으로 이주해 사는 것을 우리 또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 나라 속에 다른 나라가 존재하고 외부 속에 내부가 있어서, 자기와 타자가 더 이상 배타적으로 구별될 수 없게 된 것이 우리 시대인 것입니다.

인간의 참된 주체성은 지배 아닌 남과 더불어 아파하는 데서 시작

대담 내내 강조했듯이 개인의 자유와 주체성이 오직 전체와 합일하는 것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라면 우리 시대에 개별 국가의 주체성이나 개인의 주체성 역시 오직 전체 세계와 인류 공동체 속에서 자기를 주체로서 정립함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내가 전체의 주체가 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주 내가 전체의 지배자가 되는 것으로 오해되지만, 나의 정신이 내 몸 전체의 주체가 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런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내 몸 전체의 주체가 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내가 내 몸에 속한 모든 부분의 아픔을 자기 아픔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듯이 내가 한 나라의 시민으로서 주체가 되는 것은 내가 모든 동료 시민들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며, 마찬가지로 내가 세계시민으로서 세계의 주체가 된다는 것 역시 전체 세계와 인류의 아픔을 나 자신의 아픔으로 느낄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참된 주체성이란 남을 대상적으로 지배하려는 의지가 아니라 남과 더불어 아파하는 고통의 연대에서 시작됩니다. 전체 세계, 인류의 고통이 내 고통이 되고, 모두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되는 까닭에 각자가 모두에게 좋은 것을 자기의 좋은 것으로 욕구하면서, 만남의 공동체를 확장해 나가려는 능동적인 노력을 경주할 때 바로 그런 활동 속에서 세계시민적 주체성도 생성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시대에 와서 이런 세계시민적 주체성이 인류의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절박한 현실적 과제로서 주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실현하는 것이 어려운 까닭은 다른 무엇보다 여전히 우리가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껍질 속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이 국가에 의해 지양되어도 가족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므로 가족이기주의가 공화국의 형성을 방해하는 것처럼, 전체 세계와 인류 공동체가 현실적으로 개방된 우리 시대에도 국가가 없어진 것은 아니므로 사람들은 여전히 국가의 이익을 위해 전체 세계와 인류의 공공선을 외면하는 일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국가주의·민족주의에 갇혀 세계시민의 공동체적 역할 외면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 조화로운 인류공동체를 형성해 나가기 위해 가장 먼저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것이 바로 경쟁주의입니다. 함석헌에 따르면 모든 국가주의나 민족주의는 본질적으로 경쟁주의이고 폭력주의입니다. 모든 국가와 민족은 다른 국가와 민족을 자기 밖에 전제합니다. 그리고 다른 국가 및 민족과 경쟁하여 이기는 것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인류는 국가의 틀 속에서 사는 동안, 남과 경쟁하여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하나의 자명한 윤리적 태도로 받아들여 왔습니다. 국가 내부의 시민들 사이에서는 경쟁에도 규칙이 있어서 나름의 평화가 유지될 수 있었지만 국가들 사이의 경쟁에는 그런 규칙이 없었고 그런 까닭에 거기서는 힘이 곧 선이고 정의였던 것입니다. 이런 윤리는 아직 인류가 전체 세계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개별 국가를 부강하게 만드는 기능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국가 모든 인류가 하나의 유기체와도 같은 세계의 일원이 된 지금 오로지 싸워 이기는 것만이 선이라 생각하고 경쟁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좋은 의미의 경쟁이 아니라 모두를 멸망으로 이끄는 내분이 될 뿐이라는 것이 함석헌의 진단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 몸의 개별 장기들이 자기만 혼자 양분을 독차지하겠다고 사투를 벌이는 것과 똑같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경쟁원리는 인류라는 유기체를 죽음으로 이끄는 암인 것이지요.

‘힘이 곧 선’이라는 경쟁원리 깨고‘전지구적 조세체계’ 도입해야

근대에 들어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래 인류는 이 뻔한 이치를 온갖 궤변으로 호도하면서 자기 이익을 탐욕스럽게 추구해왔습니다. 그 가장 대표적인 궤변이 자본주의의 전도사들이 외치는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일 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모든 개인이 오로지 자기 이익을 좇아 경쟁하면 전체 사회가 저절로 최선의 상태에 있도록 시장이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돌보아 준다는 것입니다. 그런 시장주의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가 보기 좋게 암초에 부딪힌 지금도, 우리는 시장이 인간의 악을 선으로 만들어주지 않으며 개인의 탐욕이 인류 전체의 번영과 평화를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자국중심주의나 자민족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혼자서는 이 어려운 세계 경제 환경을 헤쳐 나갈 수 없으니 고작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것을 통해 다른 나라와 담합하여 각자의 이익을 극대화시킴으로써 경쟁에서 이겨볼까 궁리할 뿐입니다. 하지만 몇 나라가 담합을 하든, 각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모두의 번영과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오직 각자가 모두에게 좋은 것을 실현하기 위해 더불어 노력하는 만큼 전체가 좋아질 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로 전체 인류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를 염려한다면, 경쟁이 우리를 낙원으로 이끄는 길이라는 망상에서 벗어나 모두를 이롭게 하는 것이 자기에게도 좋은 일이라는 것을 명확히 깨우치고 그런 윤리적 원칙 위에서 개인의 삶과 사회제도 그리고 국가를 쇄신해 나가야 합니다. 먼저 개인의 삶에서 우리는 인류 전체의 공동선을 개인의 선악의 판단기준으로 삼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런 기준에 따르면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 나쁜 일이듯이, 한 개인이 남보다 까닭 없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 역시 심각한 악입니다. 마찬가지로 기업 역시 자본이익의 극대화가 아니라 기업구성원들의 자기실현을 위한 공동체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그렇게만 되어도 우리 시대에 다국적화되어가는 기업은 전 지구적 착취기구가 아니라 전 인류의 공동선을 위해 기능하는 기구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개별 국가 역시 전체 인류 공동체의 선을 위해 자기의 주권을 스스로 제한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은 궤변…시장주의는 인류 번영 못 이뤄

이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초국가적 상상력은 상호이익의 극대화라는 망상에 기초한 자유무역협정 같은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전 지구적 조세 체계(global tax system)입니다. 함석헌이 말했듯이 모든 국가가 ‘기업국가’가 되어버린 오늘날 국가 스스로 자기 이익 추구를 당장 자제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남에게 얻은 이익의 일부를 남을 위해 내놓는 것을 제도화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한 국가 내에서 조세제도와 사회보장제도가 시민과 지역 사이의 불균형을 시정하듯이, 전 지구적 조세제도가 국가 사이의 경제, 문화적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생각하면 국가주의는 고사하고 가족주의조차 극복하지 못한 한국사회에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몽상에 지나지 않음을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수 천년 전 우리 조상들의 건국 이상이 홍익인간, 곧 널리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일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는 언제나 불가능한 것을 꿈꾸는 데서 시작되며, 횔덜린이 노래했듯이 위험이 큰 곳에 구원도 따라 자라는 법이니, 시대의 어둠이 깊은 만큼 또한 다가올 빛도 밝으리란 것을 저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가르침에 깊이 감사드리고 더불어 성원해주신 독자 분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면서 저의 어리석은 말은 이만 줄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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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언어로부터 잘못된 개념이 나온다  

[소준섭의 正名論]<2> 

 

사랑하는 사람은 과연 누구여야 하는가? - 愛人

우리가 너무나 많이 사용하고 싶어 하는 '애인(愛人)'이라는 말은 중국에서는 정작 자신의 부인(婦人)이나 남편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애용하고 있는 이 '애인(愛人)'이라는 말은 사실 대단히 문제 있는 용어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당연히 남편이나 부인이어야 할 노릇이지 그렇지 않고 다른 사람이라면 곤란하지 않는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애인'이라는 의미는 '정인(情人)'이라는 용어로 대체되어야 정확하고 타당하다. '

이러한 '애인'과 같은 용어는 이러한 용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대중들의 사랑과 애정관 그리고 가족관의 문제에 있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가족 외의 다른 사람이다"라는 그릇된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심어주게 된다. 특히 애정 문제에 예민한 청소년들에게 '애인(愛人)이라는 이 한 단어의 향방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수밖에 없다.

횡단보도와 횡령

'횡단보도(橫斷步道)'라는 말은 우리가 너무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횡단(橫斷)'이라는 단어는 "옆으로 끊는다."는 뜻으로서 아무리 좋게 해석해보려 해도 실로 어색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일본에서 만들어진 일본식 한자어이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횡단보도'라는 말이 갖는 의미는 당연히 '걸어서 옆으로 통과하는 길'로서 여기에 '옆으로 끊는 길'이라는 뜻을 지닌 '횡단(橫斷)'이라는 한자어를 사용하는 것은 억지 조어이다. 중국에서는 '통과하다'는 뜻을 지닌 '천(穿)'을 붙여 '횡천(橫穿)'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거나 '옆으로 가는 길'이라는 의미의 '횡행도(橫行道)' 혹은 '횡행도로(橫行道路)'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중국에 '횡단(橫斷)산맥'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데, 중국 사천성(四川省)과 운남성(雲南省)에 위치한 이 산맥이 동서 간의 교통을 '횡으로 끊어 놓고' 있기 때문에 '횡단(橫斷)' 산맥이라고 불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열차를 '횡단열차'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더욱 모순적이다. 그 열차는 분명 유럽과 아시아를 '횡으로 끊어 놓는' 열차가 아니라 '횡으로 이어주는' 열차가 아닌가? "교수노조, 국토종단 행진에 나서"나 '국토종단 마라톤' 등에서 보이는 '종단(縱斷)'이라는 용어 역시 '종으로 끊는' 것이 아니라 '종으로 이어주는' 것이다. 명백하게 논리에 위반되는 '비논리적' 조어(造語)에 해당된다. 이러한 비논리적 용어들의 범람은 이 용어들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논리적 사고를 가로막게 되고, 결국 국가의 발전에 심각한 장애 요인으로 작용한다. '보도(步道)'라는 말도 '걸어서 가는 길'이라는 의미를 지닌 용어이므로 '보(步)'를 단독으로 사용하는 것보다 '보행(步行)'을 사용하여 '보행도(步行道)'라고 쓰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한편 '횡령(橫領)'이라는 말도 많이 쓰이는데, 이 말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일본의 전통에서 비롯된 용어이다. 일본 고대시기에 병사를 통솔하고 감독하는 의미를 지닌 '압령(押領)'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헤이안(平安) 시대부터 이 '압령'이라는 말은 "다른 사람의 영지를 힘으로 빼앗다."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하여 "타인의 물건을 빼앗다."는 의미로 전용되었다. '횡령(橫領)'이라는 용어는 메이지(明治) 초기까지 아직 출현하지 않았는데, 빼앗는 대상이 토지만이 아니라 금품까지도 포함됨에 따라 '횡취(橫取)'라는 말로부터 유추되어 '횡(橫)'이라는 글자가 부가되면서 '횡령(橫領)'의 용어가 나타났다고 설명된다. 일본에서조차 그 유래가 분명치 않은 용어를 정확함을 생명으로 해야 하는 우리 형법상의 법률용어로 사용하는 것은 상당한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이는 마치 '함흥차사'라는 말을 일본인들이 사용하는 것과 동일하다. '함흥'이 무슨 말인지, '차사'가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이 말이 어떤 유래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하면서 사용하는 것과 완전히 동일한 상황이다.

참고로 우리가 "횡재했다!"고 좋아하는 '횡재(橫財)'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운 좋게 얻은 것'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원래 이 말은 "불법적으로 얻은 의외의 소득'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寸志와 料金 그리고 名品

"교사에게 학부모가 (불법적으로) 주는 돈"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는 '촌지(寸志)'도 일본식 조어로서 뜻이 통하지 않는 용어이다. 더구나 이 '촌지'라는 말은 대단히 '위험한' 용어이다. 학부모가 교사에게 '촌지'를 주는 행위는 명백히 불법적인 행위인데도 오히려 '촌지(寸志)'라는 용어는 "마음의 조그만 성의"라는 대단히 좋은 의미로 포장되어 이 말을 사용하면서 전혀 자신의 행위가 잘못이 아니라는 '확신'을 제공하는 측면을 지니게 된다. '촌지'라는 용어의 사용은 결국 '위법'과 '편법'을 합리화하고 미화시킴으로써 사회구성원들에게 법의식과 가치관의 혼란 및 왜곡을 조장하게 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란 이렇듯 우리의 행위와 사고방식에 일거수일투족 심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그것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 정부에서 '기능직'이라는 용어를 바꾸겠다는 정책을 발표하였다. 당연히 크게 환영받아야 마땅할 일이다. 사실 당사자들은 '기능직'이라는 용어로 인하여 그 동안 자기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면서도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불명예를 겪어야 했다. 지금은 '교도관'으로 바뀐 '간수'라는 용어도 마찬가지이다. 앞에서 언급한 '촌지'와 정 반대로 일종의 '사회적 약자' 층에게는 일부러 분명한 '불명예' 딱지를 붙이는 이러한 용어들은 '모욕적 언사'의 범주에 속한다.

또한 기껏해야 '재료 혹은 원료 값'에 지나지 않을 '요금(料金)'이라는 단어로써 '값' 혹은 '비용'을 의미하게 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우나, '손을 몇 번 움직였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서비스 비용'에 그 기원을 두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 '수수료(手數料)' 역시 일본식 조어로서, 모두 진실을 정확히 표현하지 않고 은폐하면서 적당히 둘러대는 용어라는 점에서 상기한 '촌지'와 함께 '정직하지 못하고 비겁한' 용어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른바 '명품(名品)'이란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 또는 그런 작품"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단어로서 역시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명품'이란 사람들에게 '압도적으로 뛰어난 물건'이라는 확실한 가치관과 판단의 기준을 제공하는 용어이다. 하지만 현재 사용되는 '명품'이란 사실 '유명상표' 혹은 '고가품'의 내용을 지니고 있다. 만일 '유명상표'나 '고가품'이라는 용어의 사용으로써 정확하게 표현해진다면,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합리적' 판단 기준에 의하여 그 상품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된다. 하지만 '명품'이라는 용어는 용어 자체에서 이미 사람들의 합리적 판단 기준을 압도하여 공정한 경쟁의 토대를 와해시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결국 '명품'과 같은 용어는 합리적 판단 기준을 파괴하고 나아가 공정 경쟁을 붕괴시켜 '건전한' 시장경제 시스템을 왜곡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年下와 小康

"소강 상태를 보이다"의 '소강(小康)'이란 원래『시경』에서 비롯된 말로서 백성들이 부유하고 안락하게 삶을 영위하는 상태를 가리키며, 일찍이 덩샤오핑은 중국의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20세기 말까지 이 '소강(小康)의 수준'을 이루겠다는 1차적 목표를 설정한 바 있었다. 그런데 일본에서 이 말을 "상황이 진정된 상태"라는 뜻으로 사용하였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용례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한편 요즘 유행하는 '연하(年下)의 남자'라고 할 때 '연하(年下)'는 한자어로서 중국에서는 음력으로 '연초(年初)'나 '새해'라는 뜻이다. 이 말을 '나이가 자신보다 어린'이라는 뜻으로 이상하게 바꿔서 사용한 것은 바로 일본이다.

출세, 돌발, 죄송

'출세(出世)'를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을 거두다."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것은 대표적으로 잘못된 사용례가 아닐 수 없다.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을 거두다."라는 의미라면 오히려 '출명(出名)'이라는 말이 정확하게 부합한다. 아니나 다를까 이 '출세(出世)'라는 단어는 중국에서 정확히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다. 출생하다"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배달(配達)'이라는 말도 한자어로만 봐서는 그 뜻을 도저히 알 수 없는 말이고, 흔히 쓰이는 '행사(行事)'나 '역할(役割)' 역시 한자로 해석하기 어려운 일본식 조어이다.

'돌발(突發)'은 일본어로서 '돌(突)'과 '발(發)'을 인공적으로 합쳐 만든 억지 조어이며, "죄송합니다."라는 말의 '죄송(罪悚)' 역시 '죄(罪)'와 '송(悚)'이라는 글자를 붙여 억지로 만들어냈다. 그리고 '거소(居所)'는 '거처(居處)'라고 바꿔야 할 일본식 조어이다.

발명과 방송, 이익, 진보

'발명(發明)'이라는 단어는 원래 "죄인이 스스로의 결백 등을 밝히다, 변명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사용되던 한자어였다. 그런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다"의 뜻을 가진 일본어로서의 '발명'이라는 용어가 수입되면서 원래의 용례를 완전히 몰아내게 되었다.

그리고 '방송(放送)'이라는 말은 본래 "죄인 등을 놓아 주다"라는 뜻이었는데, "전파에 의한 매스커뮤니케이션"이라는 뜻을 지닌 일본어 '방송(放送)'이라는 용어가 우리나라에 진입함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변모하였다.

또한 '식상하다'의 '식상(食傷)'은 원래 "상한 음식에 의하여 비위가 상한 병증, 즉 식중독"이라는 뜻으로서『조선왕조실록』에도 이러한 용례가 있으나, 오늘날과 같은 의미의 '식상하다'는 일본어가 들어온 뒤 원래 지니고 있던 의미는 사라지고 말았다.

한편 '이익(利益)'이라는 단어는 우리의『삼국유사』에서 '이롭다'의 의미로 사용되는 등 고유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으나, 'interest'의 일본 번역어로서 이 땅에 들어와 경제적 의미로서 정착되게 되었다.

'공원(公園)'은 이를테면『조선정조실록』등에서 '관유(官有)의 정원(庭園)'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었으나 'park'의 번역어로서 일본에 의하여 대체되었다. '진보(進步)'라는 단어도 원래 우리나라에서 "발을 옮겨 앞으로 나아가다"로 쓰이고 있었으나, 일본에 의하여 'advancement'와 'progress'의 번역어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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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에 연재되는 기사다. 공자의 정명론에 빗대어 우리나라의 잘못된 개념들을 논한다. 재미있는 주제다.

개념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소준섭의 正名論]<1> 정명(正名)이란 무엇인가? 

천황에 귀의하다"는 뜻의 '귀화(歸化)'

우리나라에서 '귀화(歸化)'라는 용어는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귀화(歸化)'라는, 우리가 너무나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는 이 용어의 의미는 원래 "군주의 공덕(功德)에 감화를 받아 그 신민(臣民)으로 되다"는 의미로서 '귀순(歸順)' 혹은 '귀부(歸附)'와 그 뜻이 통하는 말이다. 일본에서 이 '귀화(歸化)'라는 용어는 오랫동안 "천황에 귀의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어 왔고, 일본 법무성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 용어를 정식 용어로서 사용하고 있다.

우리 한국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에 있어 '귀화'라는 이러한 의미를 지닌 용어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현실은 민족 감정에 비추어 언어 사용에 있어 대표적인 오용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최소한 '귀화'라는 이 용어는 중립적인 용어가 아니라 '감정의 동화 혹은 귀순'을 내포하고 있는 감정적, 주관적 범주의 용어로서 국적 관련 용어로서는 부적절하다.

이러한 용어를 아무런 생각 없이 사용하고 있는 오늘의 현상은 실로 우리가 일상생활 그 자체에서 우리 민족의 정신과 혼을 잃은 상태와 다름이 없다.

참고로 현재 중국에서는 이 '귀화'라는 용어는 사용되지 않고 '입국적(入國籍)'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천황의 공덕에 감읍하여 그의 신민이 되겠다."는 의미를 지닌 귀화(歸化)라는 용어를 아무런 의식도 없이 사용하고 있는 현실은 우리가 아직 일제 식민지를 정신적으로 완전히 극복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귀화'라는 이러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우리 사회가 기본과 체계가 정확하게 정립되지 않은 채 지표를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표류하고 있는 오늘의 슬픈 징표이다.

'무리를 지어 자신의 이익만을 취하는' '정당(政黨)'

현재 'party'라는 영어 단어는 모두 '정당'으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당(黨)'이라는 한자어는 예로부터 좋지 않은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실제로『논어』에도 "君子, 群而不黨"이라 하였다. 즉, "군자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만, 무리를 이뤄 사적인 이익을 취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주자(朱子)는『사서집주(四書集注)』에서 '당(黨)'에 대하여 "相助匿非曰黨", 즉, "서로 잘못을 감추는 것을 黨이라 한다."라 해석하고 있다.

이렇듯 '당(黨)'이라는 글자는 "공동의 이익을 위하여 함께 거짓말로 사람을 속이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몇 년 전 대학교수들이 '올해의 성어'로 추천했던 '당동벌이(黨同伐異)' 역시 "자기와 같은 무리는 편들고, 자기편이 아니면 공격하다"는 좋지 못한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불편부당(不偏不黨)'해야 한다."는 하나의 명제에서 이미 '당(黨)'이라는 단어는 '악(惡)'의 범주를 뛰어넘지 못하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당쟁(黨爭)'과 '붕당(朋黨)' 그리고 '작당(作黨)하다'의 '작당' 역시 마찬가지이다. 당(黨)을 아무리 잘 만들고 그 활동을 잘 해본들 모두 '작당', 혹은 '당리당략'이라는 좋지 않은 부정적 이미지의 틀을 결코 넘어설 수 없게 된다.

어느 의미에서 보면, 우리의 '정당'이 이렇듯 좋지 못한 의미를 담고 있는 '당(黨)'이라는 용어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음으로 하여 '당(黨)'의 본래 의미를 너무도 충실하게 '실천'하기 위하여 '모두 모여서 잘못을 감추고', '거짓말로 사람을 속이고', '싸우고' 있는 셈이다.
이를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면, '정당(政黨)'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 인하여 그 '당원'이나 그 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부지부식 간에 '당(黨)'의 좋지 않은 이미지가 내포되어 '패거리를 짓고', '상대방은 공격하면서', '함께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 즉, '당(黨)'의 의미와 부합하는 행위가 '정당'의 본연의 성격이라고 스스로 합리화 · 정당화시킬 여지를 만들어 놓게 된 측면이 일정하게 존재한다. 만약 '정당'의 '당' 자 대신 '사(社)'나 '회(會)'를 사용하여 '정사(政社)' 혹은 '정회(政會)'라는 용어라는 번역어를 채택했다고 가정할 경우, '사(社)'와 '회(會)'에는 '당(黨)'에 내포된 바의 '패거리', '편법' 등의 의미 내지 이미지가 없고 대신 '일정한 규율성을 띤'의 이미지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에 소속하여 활동하는 자세 혹은 태도 역시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 비(非)핵화'가 아니라 '한반도 무(無)핵화'라고 해야

흔히 말해지는 '한반도 비핵화(非核化)'라는 말도 실은 잘못 사용되고 있는 용어에 속한다.

'비핵(非核)'이라는 말을 직역하면 "핵이 아니다"라는 뜻으로서 결국 '한반도 비핵화'는 "한반도는 핵이 아니다"라는 의미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우리가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그것이 의미하고자 하는 뜻은 "한반도를 핵이 없는 상태로 만들기"의 내용이다. 따라서 '한반도 비핵화'는 '한반도 무핵화(無核化)'라고 바꿔 사용해야 정확하다.


오역에서 비롯된 '주의(主義, -ism)라는 일본 번역어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라는 용어에서의 '주의(主義)'라는 단어 역시 일본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잘못된 오역으로부터 비롯되었다.

'ism'이라는 영어의 번역어로서 일본이 만들어낸 이 '주의'라는 용어의 출전은『사기(史記) · 태사공자서』「원앙조착열전(袁盎晁錯列傳)」중에 나오는 "敢氾顔色以達主義"라는 문장이다. 일본에서 출판된『대한화사전(大漢和詞典)』은『태사공자서』중의 상기한 문장을 '주의(主義)'라는 용어의 한문(漢文) 출전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는 착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상기한 문장에 대한 정확한 해석은 "감히 올바른 말로 직간하여 군주의 얼굴색이 변하는 것도 개의치 아니함으로써 군주의 언행이 도의(道義)에 부합되게 하였으며"이다. 다시 말해『사기(史記) · 태사공자서』에 나오는 '주(主)'는 주상(主上)을 가리키며, 따라서 여기에서의 '달주의(達主義)'는 "자신의 신념을 실현시킨다."의 뜻이 아니라 "주상(主上)으로 하여금 도의에 부합되게 하다"는 의미인 것이다. 더구나 여기에서 사용되고 있는 '주의(主義)'는 처음부터 하나의 독립된 언어의 구성성분으로 볼 수조차 없는 것이다.

정명(正名)이란 무엇인가?

名不正則言不順 言不順則事不成.

『논어』에 나오는 유명한 말로서 "이름(名)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않고,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하는 일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명(名)'은 이제까지 주자(朱子)의 해석에 따라 '명분'으로 설명되어 왔다. 그리하여 '정명(正名)'이란 '올바른 명분'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하지만 한(漢)나라의 정현(鄭玄)은 "正名, 謂正書字也. 古者曰名, 今世曰字(정명이란, 올바르게 문자를 쓰는 것이다. 옛날 명이라 하였고, 지금은 문자라 한다)."라고 하여 이를 '자(字)', 즉 '문자'로 해석하였고, 또『주례(周禮)』"외사(外史)"에는 "古曰名,今曰字(옛날 명이라 하였고, 지금은 문자라 한다)."이라고 하여 '명(名)이 글자(字)임을 말하고 있다. 이밖에도『儀禮』"釋文"에 "名, 謂文字也", 즉 "名이란 文字를 말한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곽말약(郭沫若) 역시 "'정명(正名)'이란 후세 사람들이 말하는 대의명분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모든 사물의 이름, 특히 사회관계상의 용어이다"라고 규정하였다.
 

  

 

 

 


즉, '명(名)'이란 '문자(文字)' 혹은 '글자'의 의미인 것이다.

『주역』은 '털끝만큼 작게 틀렸어도 그 결과는 천리나 되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失之毫厘, 差以千里).'라고 말하였다.

공자는『춘추』를 저술할 때 한 글자 한 글자 기술하면서 어느 용어를 선택할 것인가에 심혈을 기울였다. 오나라와 초나라의 군주는 스스로 왕을 칭했으나 공자는『춘추』에서 당초 주나라 왕이 책봉했던 등급에 의거하여 그들을 '자'작(子爵)으로 낮춰서 기록하였다. 또 '천토(踐土)의 회맹(會盟)' 중국 춘추전국 시대 진(晋)나라 문공이 초나라를 물리친 후 여러 제후국의 제후들과 천토에서 회합한 것을 가리킨다. 여기에서 진 문공은 천하의 패자로 인정받았다.은 실제 진나라 문공이 천자를 부른 것이었으나 그것을 좋지 않게 평가하여 다만 '주나라 천자가 하양(河陽)까지 순수(巡狩)하다.'라고 기록하였다. 이러한 '춘추필법'에 의해 당시 사람들의 행위가 예법에 위배되는가의 기준을 삼고자 하였다. 공자는 관직에 있을 때 모든 일을 다른 사람과 상의하였으며 결코 독단적으로 혼자서 행한 일이 없었다. 그러나『춘추』는 끝까지 혼자 집필하고 손수 교정을 보았다. 학식이 많은 제자인 자하에게조차 한 글자의 도움조차도 구하지 않았다. 공자는 세계를 '해석'함으로써 세계를 '변화'시키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어떤 용어를 선택하여 사용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된다.
예전에 '자본주의 맹아(萌芽) 논쟁'이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가 강제로 조선에 자본주의를 이식했지만, 당시 조선 사회에 자본주의의 맹아가 존재했느냐의 여부에 관한 논쟁이었다. 이 논쟁은 이 '자본주의'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의 의견 차이를 둘러싸고 발생하였으며, 결국 "과연 '자본주의'란 무엇인가?"라는 논쟁으로 귀결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자본'이라는 용어와 '주의'라는 용어 모두 일본인이 새로 만든 말이었고, 또 '자본주의'라는 용어로써 서양의 'capitalism'을 번역한 것 역시 일본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근대화 시기 중국의 저명한 학자 옌푸(嚴復)는 'capital'을 '자본'이라고 번역한 일본 방식을 반대하면서 대신 '모재(母財)'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만약 이러한 방식으로 'capitalism'이 '자본주의'라는 용어로 번역되지 않고 다른 용어로써 번역되고 이해되었다면, 이 '자본주의 맹아' 논쟁이 다른 내용으로 전개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

"개념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언어는 인간을 인간 되게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서 인간의 사고를 구체화하는 가장 효율적인 표현 수단이다. 그것은 인간 생활 전반에 깊숙이 관련되면서 인간의 본질 및 인간생활과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 언어는 개념을 담는 그릇으로서 언어생활은 인가의 사고방식을 구체적으로 규정한다. 어떠한 용어를 사용하는가에 따라 서로 상이한 개념과 이미지가 그 용어라는 그릇에 담겨져 사용되고 그것은 확대 · 심화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개념이란 특정 언어로 표현되어 특정한 내용을 내포하게 되는 것으로서 따라서 언어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공자 사상이 수천 년 동안 동양 사회에서 흔들림 없이 견고하게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공자가 '개념'을 완전히 배타적으로 지배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일본은 근대 이후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개념, 즉 언어를 지배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곧 동아시아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일본이 만들어낸 개념에 의하여, 일본인들의 언어에 우리가 지배당하는 한 우리는 계속 일본의 총체적인 지배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 필자 소개


▲ 소준섭

1959년 전북 진안 출생으로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1978년에 입학해 1997년 졸업했다. 70년대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에 몸담았으며 고 제정구 씨등과 함께 상계동, 사당동 등에서 도시빈민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1998년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2004년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냉전 이후 한반도 정세변화와 주한미군의 지위).

현재 국회도서관 중국담당 해외자료 조사관으로 일하고 있다.

<도시빈민연구>(1985년), <史記, 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먹는다>(1992년), <서양보다 앞선 동양문화 91가지>(1997년) , <가장 나쁜 정치는 백성과 다투는 것이다, 史記>(2008년) 등 10여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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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빈민을 죽게 두라"… 자유주의의 탄생

[홍기빈과 함께 읽는 칼 폴라니②] '자기조정시장' 개념의 탄생 

 일단 가벼운 얘기로 시작해보자. 지금 우리의 모임을 시장주의적으로 볼 수 있을까? 논리가 성립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여러분들은 일정액의 돈을 내고 강의에 참석했다. 저도 강연료를 받는다. 소비자와 판매자가 모이는 장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실질적'으로 의미가 있느냐다.

형식(form)과 내용(substance)이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 생기는 갖가지 일에 어떤 형식을 씌우느냐가 중요하다.

제 생각에 여러분은 무언가를 소비하기 위해서 이곳이 오시지 않았다. 저도 강의료가 주목적이 아니다. 그런데 시장이라는 형식을 씌우는 순간 무서운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형식에 의해 내용이 재편되는 일이 생긴다.

다른 예를 또 들어보자. 대한민국에 우리가 왜 모여 있는가? 재작년 참여연대에서 실시한 '대한민국을 다시 묻는다' 시리즈에서 이 질문이 나왔는데 대답들이 시원치 않았다.

87년 6월에는 '민주주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잠깐이나마 사람들이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통하지 않는다. 최근 등장한 새로운 정체성은 바로 '주식회사 코리아' 정도가 될 것 같다. 우리가 이 나라에 돈 벌려고 산다는 얘기다. 나라가 주식회사이니 대통령은 CEO가 되는 게 당연하다.

이제껏 든 예들에서 볼 수 있듯, 형식에 따라 내용이 변한다. 화폐경제의 발달로 '시장'이라는 형식이 내용을 바꿔왔다. 폴라니는 이를 영혼의 파괴라고 얘기한다.

오늘 말씀드릴 얘기는 책 6장부터 10장까지와 3장의 내용이다. 이야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자기조정시장 개념과 허구적 상품 개념을 먼저 말씀드리겠다. 강의를 듣다 보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아이디어로 어떻게 경제를 운용하겠다는 생각을 했을까'란 생각이 드실 것이다.

다른 하나는 스핀햄랜드 제도(speenhamland system)다. 이 제도가 자기조정시장 개념을 탄생시켰다. 실업률 증가에 사람들이 얼마나 황당한 대응을 했는지, 그리고 그 황당한 대응에 대한 더 황당한 대응을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너무나 황당했던 인류의 대응이 바로 오늘날 신화처럼 받들어지는 고전파 경제학과 자유주의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1. 자기조정 시장

우리 고등학교 다닐 때 상품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배웠다. 수요-공급 곡선. 그런데 이 그래프가 왜 움직이는지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 자기 스스로가 합리적인 가격을 찾아간다(자기조정시장)고만 들었을 분이다.

유럽인들은 16세기에 아주 중요한 경제학적 발전을 거친다. '한 상품 가격은 다른 시장의 상품 가격과 관련이 있다'라는 것이다. 이후 17세기 말 또 굉장한 발견이 나온다. '시장의 모든 가격은 알아서 결정된다'는 것. 너무 당연한 얘기로 들리지만 당시 시대상과 시장의 특성을 보면 새로운 발견이라 부를 수 있다.

중세시대 유럽의 경제 규모가 100이었다고 가정하자. 시장은 주변부에 10도 안 되는 크기로 머물렀다. 삶에 굉장히 중요한 곡물, 고기 등은 교환될 뿐이었고 비본질적인 것들, 예를 들어 예수님 십자가나 아라비아에서 온 사랑의 묘약이니 하는, 삶에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 상품만 시장에서 거래됐다. 당시만 해도 상품가격은 장사꾼의 수완, 나쁘게 말하면 사기술에 의해 결정됐다. 상품 간 가격변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물건의 종류가 많아지면서 점차 삶에 중요한 것들도 거래되게 된다. 발트해에서 들여온 곡식이 지중해에서 거래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발트해의 곡식 가격이 지중해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차액거래도 생겨났다. 이런 현상이 점차 심화된 17세기 말이 바로 정치경제학의 본격 시작 지점이다.

쉽게 밀가루와 자장면으로 생각해보자. 밀가루 가격이 오르면 자장면 가격도 오른다. 따라서 시장 가격이 얼마에 결정되는지, 그리고 이 가격 이동이 얼마나 신속해질지가 굉장히 중요해진다. 물론 상품마다 가격변동이 사회에 미치는 충격은 다르다.

그렇다면 당시는 물론, 지금도 변동에 가장 큰 충격을 미치는 상품은 무엇일까. 18세기 후반이 되면 △토지 △임금 △이자(자본가격) 등 세 가지로 정리된다. 이 세 가지 요소가 개입되지 않고 만들어지는 물건은 없기 때문이다. 이들 요소의 가격결정 공간을 각각 △토지시장 △노동시장 △화폐시장이라고 한다. 이들을 생산하는 집단은 △지주(토지) △노동자(임금) △자본가(자본)로 나뉜다. 영국의 경제학자들이 이처럼 과감한 분류를 하면서 '모든 인간은 이들 삼대 요소 중 하나'라는 논리가 퍼진다.

이제 자기조정시장의 개념을 정리해보자. 앞서 본 3대 요소 시장에서 각각 소득이 발생한다. 지주는 지대를, 노동자는 임금을, 자본가는 이윤을 가져가게 된다. 자연스럽게 3대 요소시장과 더불어 사회를 지탱하는 3대 계급이 형성된다. 이들 요소들이 경제 변동을 '스스로' 결정하는 소득범주라는 믿음이 아담 스미스의 책에 이론화된다. 데이비드 리카르도, 칼 마르크스 등도 이 영향력에 무관하지 않다. 자기조정시장 개념의 탄생이다. 시장 참가자들이 '스스로' 가격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자기조정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는데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3요소 이외의 누군가가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동네 불량배가 나타나서 자장면 가게 아주머니의 가격 결정 과정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부당한 개입에 따라 자기조정규제 매커니즘이 침해당하면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이 생기기 때문이다.

2. 허구적 상품

그런데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들 3대 요소시장은 3자의 개입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이들을 두고 '허구적 상품'이라고 한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토지는 자연에 귀속돼 있다. 원래 판매되기 위해 존재했던 요소가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원래 임금을 받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화폐 역시 그렇다. 신용네트워크에서 사용되는 증서일 뿐이었지, 상품은 아니다. 폴라니는 화폐의 이런 본질적 특성을 두고 '화폐는 사회과학에 묻혀 있었다'라고 했다.

따라서 자연과 사람, 상인 간 신용관계의 다른 이름을 몽땅 상품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들(3대 요소)을 가격결정 변수로 이해하고 소득 발생의 원천으로 이해하는 것은 허구가 될 수밖에 없다. 상품이 아닌데 상품인 척 한다는 얘기다. 폴라니는 말이 되지 않는 소리라고 한다.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3대 요소가 다 상품이라고 배워왔고, 이를 더욱 강조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다시 각각의 예를 들어보자.

전라도 남원에서 생산되는 쌀이 15만 원, 캘리포니아 쌀은 3만 원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남원의 농토는 유지될 이유가 없다. 남원땅은 수익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자기조정시장을 믿는 정부는 '남원은 부동산일 뿐이다. 가치가 떨어지면 사라지는 게 마땅하다'고 얘기할 것이다. 이런 일이 실제 영국에서도 일어났다. 곡물의 수출입을 규제한 곡물법이 리처드 코브던의 주도로 1846년 폐지된다. 당시 코브던이 반발하던 지주들에게 한 말이 이렇다. "농촌이라고 별 것 있나. 수익성을 좇는 비즈니스일 뿐이야."

최근 벌어지는 탄소배출권 거래제, 물 상품화도 같은 차원에서 볼 수 있다. 탄소배출권 거래제의 논리는 이렇다. 나라마다 쓸 수 있는 탄소배출량을 배정한 후, 배출 권리인 쿠폰을 발행한다. 그리고 이 쿠폰, 곧 탄소배출권을 매매할 수 있도록 한다. 그렇다면 시장의 자기조정기능에 의해 쿠폰 가격은 점차 비싸지고, 따라서 일정 수준 이상의 가격이 되면 나라들은 탄소배출을 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나라들은 녹색산업에 투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그들은 말한다. 쉽게 말해 쿠폰을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면 지구온난화 문제가 해결된다는 뜻이다. 실제 유럽인들의 대응은 어떤가? 탄소배출량을 줄이지는 않고 쿠폰만 잔뜩 사놓았다.

노동시장도 살펴보자. 5년 동안 잘 다니던 회사에서 어느날 갑자기 출근하지 말라는 문자가 온다. 이게 말이 되나? 된다. 우리의 몸은 상품에 불과하니까. 주류 경제학 교과서대로 설명하자면 '노동의 탄력성'이라고 한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신봉하는 논리다. 밀턴 프리드먼(신자유주의 정책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시카고학파의 거두)은 "모든 사람이 보트를 타고 평생 배를 젓는 곳"이라고까지 했다. 이들에게 노동조합은 따라서 최대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숙명인 평생 항해(노동유연성)를 방해하는 자들이니까.

조금 고약하긴 한데, 만일 앞으로 특정 대학에서 "우리 학교는 교수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테뉴어(영년 교수제)를 없애겠다"는 정책을 내놨다고 가정해보자. 아마 '위대한 시장의 자기조정'을 찬양하던 경제학 교수들은 틀림없이 노조 만들고 "사랑도 명예도…"하며 노래 부를 것이다. 그들을 폄하하자는 게 아니다. 사람을 상품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화폐 시장도 보자. 우리는 돈이 상품이 될 수 없다는 말을 입증할 살아있는 예를 이미 보았다. 미국이 지난해 경제위기로 휘청하자 자기조정시장 논리로는 미국의 은행 절반이 파산해야 맞았다. 그런데 그렇게 했나? 미국 정부가 한 일은 은행들보고 자산가치를 자율적으로 평가하라, 곧 분식회계하라고 한 것이다. 은행이 파산하면 안 되니까. 미국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화폐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고.

자, 이처럼 본질적으로 상품화될 수 없는 것들까지도 모두 상품화하려는 노력이 사회를 무너뜨린다. 따라서 이를 막으려는 반발, 곧 사회의 자기보호가 생겨나게 된다. 시장이 혹독할수록 반발도 강해진다. 결국 어떤 사회도 존재하기 어렵게 된다. 이를 '시장경제의 유토피아성'이라고 한다. 시장경제는 현실에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다. 폴라니는 따라서 한 발은 자기조정시장에, 한 발은 사회의 자기 보호에 두면 사회가 버텨낼 수 없으니 자기조정시장을 버리자고 했다.

폴라니의 설명을 그대로 읽어보자.

"우리가 주장하는 명제는 다음과 같다. 자기조정시장은 완전히 유토피아이다. 그런 제도는 잠시도 존재할 수 없으며, 실행될 경우 인간과 자연은 파괴당하고 삶의 환경은 황무지가 될 것이다. 따라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사회는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떤 조치든, 사회 일상을 망가뜨리면서 사회는 또 혼란스러워졌다. 그래서 결국 사회는 자신을 기초로 삼는 사회조직마저 무너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프레시안


3. 노동법의 기원

이제 두 번째 얘기를 할 차례다. '이 어처구니없는 자기조정시장 개념은 도대체 어떻게 나온 것일까'가 얘기의 내용이다.

흔히들 아담 스미스가 이 이론을 정립했다고 이해하는데 틀렸다. 19세기 초 영국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먼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스핀햄랜드 제도를 이해해야 한다. 스핀햄랜드 제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클로저 운동부터 살펴봐야 한다. 책에서는 7, 8, 9장에 설명된다.

16세기 영국에서 인클로저(enclosure) 운동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토지를 수익을 낳는 자산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땅이 상품화되는 첫 단계로 이행하면서 발생했다.

원래 영국은 지주가 가진 땅의 비는 곳인 공동경작지 '오픈 필드(open field)'에 아무나 와서 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16세기 들면서 네덜란드에서 모직물 산업이 성행하기 시작하자 지주들이 돈냄새를 맡았다. 오픈 필드를 내버려둘 게 아니라 사람들이 못 들어오게 하고 그곳에 양을 키우면 거대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자기 토지에 울타리를 쳐버린다. 이게 인클로저다.

인클로저가 너무 심해지다보니 영국의 농촌이 쑥대밭이 돼 버렸다. 농민들이 갈 곳이 없어지고 떼거지가 됐다. 떼거지가 더 모이면 떼강도로 변한다.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마을은 초토화됐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영국 왕까지 나서서 지주들을 말리기에 이른다. 이게 법령화되고 점차 체계화되면서 오늘날 영국 노동법이 된다.

영국 노동법은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된다. 구빈법과 정주법, 그리고 직인법이다.

첫째 규약은 이것이다. 부랑하지 말라. 부랑자를 적발하면 귀를 잘랐다. 다시 적발하면 죽였다. 이게 구빈법(빈민 구제법)이다. 살벌한 것 같지만 내용이 그리 단순한 게 아니다. 부랑을 금지하는 대신, 어떻게든 직업을 찾아서 일하라고 강제했다. 그리고 일을 못 하는 병자나 노약자는 나라에서 먹여줬다. 이를 위한 시설이 구빈소이다.

그렇다면 부랑은 어떻게 막느냐, 이것이 바로 정주법이다. 영국의 지방행정 기초단위는 페리시(perish)라 불리는 교회의 교구 단위다. 우리로 치면 면 정도 된다. 이 교구를 벗어나 살 수 없도록 강제한 게 정주법이다. 교구를 잠시 살펴보면, 크게 목사와 시골 지주(squire)가 교구의 중심인물이다. 이들은 지역 행정과 치안을 돌봄은 물론, 부랑자들에게 일할 곳을 찾아주는 역할도 했다.

마지막으로 직인법은 살 곳이 정해지고 노동 의무를 받은 사람들에게 노동 연한과 규율 등을 정한 것이다. 매년 중앙정부에서 나와 임금사정도 했다.

결국 영국 노동법의 목적을 요약하면 △떼거지를 막고 △모든 영국인에게 노동을 강제하고 △일을 못하는 사람은 지방에서 먹여 살린다는 것이다.

4. 공장의 탄생과 스핀햄랜드 제도

그런데 18세기 말이 되자 무시무시한 일이 생겼다. 공장도시가 탄생했다. 영국의 전통적인 지역 구분은 크게 교구(주거지, 농업지)와 타운(상업중심지)이었다. 공장도시는 이들 구분을 완전히 망가뜨렸다. 당시 영국의 대외 교역량은 추세적으로는 상승 가도를 달리고 있었으나 진폭이 컸다. 교역량이 늘어날 때는 농촌 인구가 공장도시로 다 빨려들어갔고 공장에 일감이 떨어지면 실업자가 급증했다. 이들은 인근 교구로 흘러들어와 구빈소를 가득 메웠다. 공장도시의 등장으로 인구 이동이 엄청나게 증가한 것이다.

시골지주들은 그 부작용을 두려워했다. 사람들이 공장으로 흡수되면 그만큼 지주의 권력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 때 이들이 내놓은 대책이 바로 스핀햄랜드 제도이다. 스핀햄은 지명이다.

제도는 간단하다. 앞으로 지주들이 노동자에게 무조건 빵 1갤런 값에 맞먹는 돈을 매주 지급한다는 것이다. 가족이 많으면 더 많이 줬다. 막말로 '지주가 무조건 먹여살려줄테니 도시로 가지 말라'는 얘기다. 다른 교구 역시 이 제도를 본받아 순식간에 영국 전역으로 확산된다. 전대미문의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크게 세 가지 문제가 곧바로 불거졌다.

첫째로 더 많은 소득 하위계층이 점차 빈곤의 늪에 빠지게 됐다. 사람들에게 지급해야 할 돈은 지주들의 재산과 지역민의 세금으로 충당했다. 국가법령이 아니니 정부에서는 지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구호를 받는 자(pauper)들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의 세금부담은 더 커졌다. 점차 생활이 악화되니 세금을 내는 사람들이 결국 구호대상자가 됐다. 구원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이 한없이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노동규율 문제도 심각하게 흔들렸다. 이제 구빈소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지역에서 다 먹여 살려주니 사람들은 굳이 일을 열심히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 때문에 노동규율이 땅에 떨어졌다. 노동생산성이 심각하게 타격을 입었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이 제도 철폐를 강력히 요구했다.

마지막으로 인간 자체가 망가지기 시작했다. 책 8장을 읽으면 상세히 묘사돼 있다. '현세에 아가리를 벌린 지옥의 철학이 나왔다' '이곳은 실로 을씨년스러운 비참의 구렁텅이였고, 이곳으로 이동한 농민은 … 점잖은 삶을 누리던 사람들도 일단 이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면 순식간에 진창 속의 짐승으로 변했다'고 책은 말한다. 예비군들을 생각하면 되겠다. 폴라니는 포퍼들을 노예 상선에 갇혀 숨을 헐떡이는 흑인에 비유한다.

5. 자유주의, 자기조정시장을 움직이는 법칙

우리가 살펴봤듯이, 스핀햄랜드 제도로 인해 빈민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렇다면 당시 사람들은 빈민 증가 원인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그들은 '인구 자체가 늘어났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죽이거나 살리거나 둘 중 하나였다. 살리기(스핀햄랜드)가 실패했으니 이제 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다 굶겨 죽이자는 방법밖에 없었다.

일단 당시 '다 죽게 내버려두자'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된 과정을 살펴보자. 1795년 조셉 타운센드라는 목사가 재미있는 글을 배포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서양을 오가던 영국 상인들이 바다 한가운데 무인도에 고기를 얻기 위해 염소를 풀어놓았다. 이를 질투한 스페인 사람들은 염소들을 다 잡아먹으라고 개를 풀어놓는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염소들이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섬 내의 개와 염소 사이에 일정한 개체 균형이 맞춰졌다.

타운센드는 이 내용에서 문명사적 전환을 이끌어냈다. 죽게 내버려두는 것이 바로 신께서 일하는 방식이라는 얘기. 떼거지들을 죽게 내버려두면 인류가 알아서 균형을 찾아간다는 뜻으로 이어진다.


▲토머스 맬서스. 고전경제학파의 거두 중 하나로 <인구론>의 저자. ⓒ프레시안

이런 주장에 크게 감화된 사람이 오늘날 경제학계에서도 자주 거론되는 토머스 맬서스이다. 그는 빈민구제를 위한 방법으로 "인간 세계에는 항상 식량으로 먹여 살릴 수 있는 수보다 더 많은 사람이 존재한다(수확 체감의 법칙). 따라서 잉여 인간들은 죽여야 한다. 전쟁을 조장하거나 전염병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1편의 내용이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이후 낸 책에서는 어조를 조금 완화했고, 3편에서는 산아제한 등의 방법을 제시한다. 목사였던 그는 실제로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애를 낳지 말라고 충고했다.

맬서스와 리카르도와 같은 이들은 바로 이처럼 비관적인 시각으로 자기조정시장을 움직이는 기초 법칙을 찾아냈다. 맬서스가 말한 임금 결정원리를 정리해보자.

만일 적정 임금수요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이 주어지면 노동자들은 그만큼 영양상태가 더 좋아진다. 그런데 인간은 태생적으로 성욕을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태아가 더 많이 생긴다. 이로 인해 노동공급이 늘어나면 그만큼 임금은 떨어진다. 그러면 반대로 노동자들의 영양 상태가 나빠져 노동공급이 줄어들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이 지나면 노동자들은 줄어든다. 이 과정을 통해 적정 임금수준이 결정된다.

인간이 모여사는 사회는 자연 상태와 마찬가지다. 따라서 무조건 내버려두기만 하면 바로 희망의 계기가 싹튼다. 자기조정시장이 자율적으로 모든 균형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복음이 생겨난다. 바로 자본축적이다. 어찌됐든 자본은 계속 축적된다. 인간은 항상 균형 수준을 맞추지만 생산물은 늘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을 죽게 내버려두는 게 사회 전체의 증대를 이끌 수 있다. 이것이야 말로 한없는 진보의 힘이고, 언젠가는 도달할 풍요의 낙원으로 가는 유일한 희망이다. 따라서 자기조정시장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어떤 누구도, 싸구려 동정심으로 빈민 구제에 나서서는 안 된다. 자기조정시장이 작동해 부가 늘어날 기회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는 인류의 적이다.

맬서스나 리카르도가 냉혈한이라 이와 같은 주장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들을 포함한 당대의 경제학자들은 이 자기조정시장 법칙이 바로 뉴턴의 만유인력과 같은 과학이라고 믿었다. 절대진리로 취급했다. 다른 도리가 없기 때문에 인간이 죽도록 내버려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폴라니는 이를 실현시켜야 한다는 신념이 광신이 돼 버렸다고 지적한다. 비참한 지옥에서 헤매는 인류가 구원받을 유일한 길은 전 지구를 자기조정시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광신 말이다. 오늘날 우리가 경제학의 절대진리처럼 여기는 자유주의의 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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