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에 연재중인 중국문화에 대한 글이다.  

  추락하는 '꽌시'에는 날개가 있다

 

한중 수교 초기, 우리는 중국인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그들의 '꽌시' 문화를 알아야 한다고 목청껏 외쳤다. 그리고 어느덧 17년의 세월이 흘렀고, 중국은 건국 60주년을 맞이했다. 그 와중에 중국은 WTO에 가입하여 세계 표준에 눈을 떴고, 두 차례에 걸친 세계 금융위기 이후 경제대국의 행보를 더욱 빨리 하고 있다. 중국 곳곳에서 '꽌시'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재중 한국 기업인들 역시 중국에선 더 이상 '꽌시'가 통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전해오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꽌시'의 의미와 현주소를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기 어려운 '꽌시'라는 초상화

중국 문화를 배우는 사람이면 누구나 '꽌시'(關係)라는 말을 접한다. 중국인은 고대로부터 이른바 '꽌시'(關係)에 의존해서 사회를 형성했다는 것이 그 주된 내용이다. 그러나 정작 '꽌시'에 관한 전문 자료를 찾아보려 하면 그리 쉽게 구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인 스스로도 이를 정확히 설명하지 못할 뿐더러 이를 공자의 사상처럼 대놓고 말하기에는 다소 껄끄럽기 때문이다. '꽌시'를 공개적으로 말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그 세속성에 있었다.

이로 인해 이 세속 윤리는 중국 사회를 가장 근저에서부터 설명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임에도 불구하고, 최근에까지 하나의 학문으로서 다루어지지 않았다. 학문으로의 착수는 중국인들보다 서양 학자들에 의해 먼저 이루어졌다. 서양 학자들의 눈에 가장 자주 포착된 소프트웨어는 '미엔쯔'(面子), 즉 중국식 '체면' 문화였다. 그들은 이 '체면'의 상호 작용이 가져온 인간관계의 구조와 변화에 주목하였고, 이를 통해 중국인의 세속윤리와 행위관습을 해부하고자 하였다.
 

 

 

 

 


중국 내의 '꽌시' 연구는 대만 학자와 서양 학자의 연구 성과를 등에 업고 시작되었다. 이들은 하나 같이 '꽌시'는 매우 사적인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또한 그 속에서 보편 법칙을 끌어내기는 매우 어렵다는 쪽으로 결론을 몰아갔다. 그것은 어떤 특정 인물이 또 다른 특정 인물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세속적인 정감 또는 관습으로 이해되었다. 소수자들의 특수 정황 중에 발생한 사적인 정감 체계 속에서 보편 법칙을 추출하는 것은 무리라는 견해가 우세했다.
 

사색조 같은 '꽌시'의 정체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서양 학자들은 꾸준히 '꽌시'에 내재한 보편 규칙을 해명하고자 노력했다. 그들은 점차 그 초점을 '꽌시'가 지닌 '인연'(人緣), '인륜'(人倫), '르언칭'(人情), '미엔쯔'(面子) 등의 네 요소로 압축해갔다. 그것은 각각 '꽌시'가 지닌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자원교환, 심리조절 등으로 상징되고, 나아가 연고주의, 윤리규범, 교환행위, 의식구조 등의 영역과 관련한다. 이 네 요소는 마치 한 마리 새가 네 가지 색깔로 변할 수 있는 사색조처럼 각자 다른 특징을 지니며 유기체처럼 결합되어 있다.

그 중 '인연'(人緣)은 흔히 말해지는 혈연, 지연, 학연, 직장연 등의 귀속의식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언급되는 연고주의와 유사한 관념으로서, 한번 맺어지면 결코 바꿀 수 없기 때문에 '꽌시'의 하드웨어를 구성한다. 한국에선 학연이 종종 지연이나 직장연을 압도하지만 중국에선 학연보다 지연이나 직장연이 더 우세할 때가 많다. 특히 우리에게 존재하는 동 대학 학부 출신이란 동문의식이 사회전반에 걸쳐 위계질서를 형성하는 분위기가 그리 보편적이지 않다. 반면 중국은 의사(擬似) 혈연 집단, 즉 '의형제' 집단의 분포가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보편적이고 빈번하다.

'인륜'(人倫)은 공자와 맹자가 말한 윤리 관계에 기초한다. 근대시기 중국철학자 량수밍(梁漱溟)은 중국인의 '꽌시'가 바로 이 '윤리적 꽌시'로 귀결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기반 위에서 자신과 가까운 자를 먼저 돌아보고, 여력이 있을 때 타인을 돌본다는 친소(親疏)의 원리를 기반으로 하였다. 따라서 이 '인륜'은 꽌시의 소프트웨어를 구성한다.

'르언칭'(人情)은 인간관계 속에서 형성된 부채(負債)적 자원(Resource)의 교환법칙이다. 쉽게 말하면, 내가 지닌 자원을 상대방에게 빌려주거나 또는 상대로부터 제공받을 때 발생하는 자원의 교환법칙과 부채(負債)의식이다. 이는 동양 사회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청탁과 보답의 교환행위로도 이해된다. 신세를 지면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채무의식은 동시에 채권자의 입장에선 그에 준하는 강력한 기대심리를 양산하면서, '르언칭'으로 인해 형성된 양자의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만든다.

'미엔쯔'(面子)는 인간관계 중에 발생하는 상호 확인심리이다. 중국인 사이에서 체면은 자기 자신을 세워주는 동시에 상대를 세워주는 배려로 작용한다. '미엔쯔' 속에는 자존심, 수치심, 도덕심, 허영심 등의 요소가 한데 뒤엉켜있다. 이로 인해 많은 서양 학자들은 이 '미엔쯔'야말로 중국인을 가장 잘 나타내는 심리요소로 간주했다. 미엔쯔를 대표하는 자존심이란 정감은 때론 모호한 수치심과 연관되고 때론 도덕적 손상과도 연관되며 때론 막연한 허영심과 연관되기도 한다. 얼굴이 땅에 떨어진다는 의미의 '미엔쯔 손상'은 때론 중국인들에게 목숨보다 더 소중한 문제로 인식된다.

'꽌시'의 축소와 부패와의 전쟁

이처럼 논문과 책 속에서 우리는 중국인의 '꽌시'를 1:1 또는 소수자들 간의 관계로 간주하고 그 속에 내재된 사적인 법칙을 발견하려고 하지만, 정작 여론 광장 속의 '꽌시'는 중국 사회의 변화와 그 맥을 같이 하며 주목받고 있다. 한국의 언론은 주로 중국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 전반의 법제화에 주목하였다. WTO에 가입한 후 중국의 경제 구조가 더 이상 몇몇 고위 간부를 통한 '꽌시'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사회 전체 시스템에 의해 운영된다는 것은 곧 '꽌시'의 대폭적인 축소를 의미하고, 특히 한중 경제교류에 있어서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반면 중국 언론은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로 성숙된 시민의식을 언급하면서 '꽌시'가 지닌 부정적 요소를 일소하고 사회 전반의 공공성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부응하는 조치는 몇 해 전부터 시행되어져왔다. 중국 정부는 2007년 9월 국가예방부패국을 만들었고 그 해 12월 부패공직자 고발싸이트를 만들어서,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부패의 문제를 일소하고자 노력했다. 부패의 고발과 공공성의 확대는 정비례하며, 시민의식의 성숙과 고발싸이트의 운영으로 사회 투명성이 이전보다 많이 개선된 것도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언론상의 언급과는 달리, 중국 내에서의 '꽌시'는 여전히 기세등등한 것처럼 보인다. 최근 충칭(重慶)시 공안당국은 사법국장, 공무원, 경찰이 연루된 조직폭력배 2000여명을 적발했다. 21세기 들어 조직폭력배 조직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는 중국의 의사 혈연집단인 '의형제 꽌시'의 부정적 변용의 산물이다. 그리고 뇌물수수로 인한 부패의 관행은 예상과 달리 그리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부패의 영역은 오히려 더 확대되어 최근에는 의약계나 대학가에서도 청탁성 뇌물이나 대가성 수뢰가 공공연하게 발생하고 있다. 올 10월에 발생한 우한대 부총장의 수뢰사건이 그 한 예이다.

추락하는 '꽌시'에는 날개가 있다

이처럼 사색조의 '꽌시'는 사회시스템의 변화와 연동되어 변신을 꾀하면서 여전히 활약 중이다. 이 위력이 수그러들지 않는 이유는 쉽게 찾을 수 있다. 그 첫째는 관료주의이다. 수천 년간 중국인의 발목을 잡은 관료주의는 사회주의 도입 이후에도 소멸되지 않고 단지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고질적인 관료주의의 득세는 필연적으로 청탁문화와 특혜문화를 양산할 것이고, 이 와중에 '꽌시'는 관료주의 문화와 연동되어 그 효력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둘째는 개선되지 않는 중국 사회의 부패 관행이다. 중국 사회의 부패는 앞서 언급한 관료주의와 더불어 투명하지 않은 국가 행정 관행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거대한 부패군을 양산하였다. 우리나라의 부패 문제도 매우 심각하지만 중국 사회의 부패는 개인 간의 은밀한 부패 수준을 넘어 군락의 개념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친소(親疏)의 관계는 윤리 관계가 아닌 담합의 원리로 변모하기 쉽다.

셋째는 정보의 독점과 소통의 부재에 기인한 일방적인 사회 풍기이다. 언론과 정보가 독점되고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꽌시'는 공개적 소통과 교류를 꾀하기보다는 여전히 사적인 교류나 은밀한 관계의 구축을 도모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시민단체 등과 같은 NGO 단체가 걸음마 단계인 중국에선 은밀함이 공개성을 앞서고 특수성이 합리성을 앞설 명분은 쉽게 주어진다.

이처럼 현 중국에선 '꽌시'의 영향력이 단기간에 축소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추락하는 '꽌시'의 위상을 멈추게 할 만한 요소가 사회 곳곳에 퍼져있고, 심지어는 날개를 달아줄 새로운 요소도 등장할 수 있다. 관료주의와 부패문제 그리고 소통부재는 '꽌시'의 부정적 변신에 일조할 동력으로 특히 주목받는다. 중국 사회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지혜를 모으는가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과 연구가 필요하다.

/강진석 오산대 교수 중국문화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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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 기획 기사이다.  

 영국 ‘신노동당’신자유주의 투항인가 진보사상 혁신인가






  

 

  

 

 

 

   

ⓒ시사IN김윤태

영국 노동당은 이념적으로 극단을 오간 바 있는 정당이다. 한때 영국 노동당은 사민주의 정당 가운데에서 ‘가장 좌익’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비대한 복지 시스템을 운영했다. 그러다 대처의 보수혁명으로 16년 동안 야당 생활을 했고, 1997년 집권한 이후에는 신자유주의 정당으로 낙인찍혔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심지어 공공 서비스에마저 민간 부문을 끌어들일 정도로 시장의 역동성을 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존 좌파의 교리와 반대로 각종 규제를 극도로 완화해서 런던을 지구 최대의 금융센터로 건설하기도 했다. 그래서 영국 노동당은 진보라기보다 신자유주의의 범주에서 많이 논의되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영국 노동당을 논의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먼저 이 정당이 ‘변절’할 수밖에 없었던 상당히 타당한 이유가 기존 ‘노동당 이데올로기’에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진보’ 중 집권 경험을 가진 세력 일부는 영국 노동당 모델의 혁신을 열심히 벤치마킹한 바 있다. 다른 한편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궁지에 몰린 영국 노동당이 현재의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 것인지도 많은 사람의 관심거리다. 영국 노동당과 관련된 기사를 두 차례 게재한다. 

 

 

 


세계 어느 나라든 ‘진보’로 분류되는 세력들은 ‘국가’와 ‘시장’, ‘노동자 계급’에 대한 정치적 신념을 공유해왔다. 적어도 1980년대 이전까지는 그랬다.
먼저 진보세력은 일반적으로 국가에 대해 매우 적극적이었다. 국가는 부유층에게 세금을 거둬 중저소득층에게 재분배하는 기구였다. 교육·의료·전기·교통·물 따위 기초생필품(공공 서비스)은, 반드시 국유기업(민간기업이 아니라)에 의해 시민에게 공급되어야 했다. 이런 국가의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진보의 목표였다.

그러나 ‘진보’는 시장에 대해서는 매우 소극적이었다. 진보세력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기껏 해봤자 시장의 횡포를 막는 것이었다. 경쟁·기업가정신·혁신 따위는 불온한 용어였다. ‘시장의 역할’을 ‘국가의 역할’로 대체하는 것이 진보세력의 야망이었다. 한편 진보에게 ‘노동자 계급’은 그 자체로 ‘선’하고 진보적인 존재였다.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노동자 계급의 요구 사안은 일단 정의로운 것으로 간주되었고, 이에 함부로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이런 진보적 ‘도그마’들은 1970년대 후반기 들어 영국에서 결정적 위기를 맞는다. 당시 정권을 장악한 우파 정치세력은 진보정치의 물질적 기반을 송두리째 파괴하며 장기 집권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영국 노동당의 재집권은 예전의 신념들을 발본적으로 뒤집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과정을 1990년대 초반부터 현지에서 지켜보고 연구해온 김윤태 고려대 교수를 만나 영국 노동당의 혁신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영국 노동당은 20세기 초반에 창당되고, 중반에 집권해서 복지국가를 건설했다. 이 복지국가의 원리는 ‘조세를 통한 부의 재분배’였다. 부유층에 누진적 소득세를 부과해 마련한 재정으로 모든 국민에게 복지혜택을 제공하는 ‘보편적 복지제도’를 만든 것이다. 무상 의료서비스, 국민교육, 실업수당 등이 이에 속한다.

당시 영국의 국가는 매우 강했던 모양이다.
영국 국가는 (재정지출·금리정책 등을 통해) 거시경제를 관리했다. 또한 코포라티즘(노·사·정 타협)의 기반 위에 완전고용을 추구하고 있었다. 더욱이 1970년대까지 전화·전기·수도·가스·우편·철도 등 공공서비스를 모두 국영기업이 운영했다.

정말 강력하다. 국민의 기본적 생존에 필요한 산업들이 모두 국가 소유였던 셈이다. 이는 기초 재화 및 서비스를 싼 가격에 안정적으로 제공하기 위해서였겠지만 폐해는 없었나.
이런 공공 서비스들은 1970년대쯤 되면 최악의 상태로 전락한다. 전화를 신청하면 몇 주, 몇 달씩 기다려야 했다. 국가보건서비스(NHS)가 실시되고 있었지만 병원에 한번 가면 기약도 없이 대기자 명단에 올리고 몇 달씩 기다려야 했다. 오죽했으면 노동당의 블레어 전 총리가 1997년 총선 때 병원 대기 시간을 줄이겠다는 공약을 냈겠나. 영국은 자본주의 국가 중 이런 국영기업들이 가장 많은 나라였다.
(당시 전화·전기·의료 등의 산업을 독점하고 있던 국가의 처지에서는, 굳이 더 나은 서비스를 더 싼 가격에 공급하려고 발버둥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공공 부문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고용조건이 안정되어 있고, 더 일하나 적게 일하나 임금은 일정한 상태였기 때문에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소비자인 시민 처지에서 더 나은 서비스를 선택할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국가가 해당 산업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민 소비자’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는 상황에서 노동자 등 진보세력에 대한 국민의 처지를 결정적으로 악화시키는 사태가 발생한다. 1978년 말의 이른바 ‘불만의 겨울’이다. 당시 공공 서비스 부문을 중심으로 노동자들이 임금인상과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총궐기했는데 그 결과가 너무 참담했다.)

겨울 내내 미화원들이 파업해서 거리엔 쓰레기가 넘쳤고, 심지어 장의사들의 파업으로 시신을 매장할 수도 없었다. 교사들의 파업으로 학교가 문을 닫았고, 병자들은 병원에 갈 수 없었다. 이런 사태가 진행되고 있는데, 집권 노동당은 해결 능력을 결여했다.
(마거릿 대처의 보수당엔 절호의 기회였다. 보수당은 노동자들을 격렬히 비난한 대가로 1979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다. 보수당은 노조를 무력화하는 한편 대대적인 기업구조 조정, 금융산업 등 서비스업 육성, 경제개방 등에 몰두했다.)

대처는 국영기업의 만성적자, 과다한 세금 등을 사민주의의 문제점으로 지적하며, 공기업 민영화·규제완화·감세 등을 단행했다. 처음엔 국민적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점차 복지의 질이 저하되고 실업자와 노숙자가 증가했다. 실업률이 12%까지 치솟았다. 범죄율도 크게 상승했다. 심지어 미혼모들이 노숙자로 전락해서 아이를 안고 거리로 내몰렸다. 이런 참상은 1997년 총선 당시 영국 노동당에 다시 기회를 제공했다.




노동당의 전통적 신념인 국가의 경제개입(국유화·거시경제 관리), 코포라티즘, 복지국가 등을 버렸다. ‘조세를 통한 부의 재분배’를 포기했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1997년 당시 블레어의 공약 중 하나가 ‘이후 3년간 세금 안 올린다’는 것이었다. 이는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 노선에서, 케인스주의에서, ‘시장 관리’라는 ‘국가의 역할’에서 이탈하는 것이었다. 좌파들이 ‘사회주의의 배신자’라고 비난하자 블레어는 ‘제3의 길’이라고 맞받았다.

좌파 처지에서 시장을 강조함으로써 정치의 ‘중도’를 노린 것인가.
“블레어 역시 시장의 역동성을 강하게 믿었다. 그래서 정부의 금리결정 기능을 ‘독립된 중앙은행’으로 넘겼다. 국가의 거시경제 관리기능을 포기한 거다. 더욱이 인플레이션을 차단하기 위해 국가채무를 국내총생산(GDP)의 40% 이내로 규정해 재정지출을 억제했다. 재정정책을 통해 수요를 이끌어내는 전통적 케인스주의를 폐기하는 조치였다.

전통적 사민주의에서는 국유기업을 통해 시민에게 공공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블레어는 1994년 이후 4년에 걸친 끈질긴 시도를 통해 노동당 당헌 4조인 국유화 항목을 삭제했다. 또한 노동당의 의사결정에서 노동조합의 의견이 무조건 3분의 1을 차지하도록 설계된 ‘블록 투표제’를 폐기했다.




인구학적으로, 그리고 산업구조 차원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영국의 전체 산업에서 제조업 비중이 크게 떨어져 육체 노동자의 규모 자체가 줄어든 데다 노조 가입률도 엄청나게 하락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당 처지에서도 중산층의 지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심지어 당의 깃발도 적기에서 붉은 장미로 바꿨다. 이런 과정 속에서 노동당은 계급정당에서 국민정당으로 이행한 것이다.

그것은 단지 영국 노동당 이데올로기의 문제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16년에 걸친 대처 집권기에 영국 산업구조에서 제조업이 거의 소멸되었다.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대로 떨어졌는데 노동자의 수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그 대신 성장한 것이 바로 방송·음반·광고·금융·보험 등의 서비스산업이었다. ‘노동’보다는 ‘지식’이 생산하는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들이다. 그래서 블레어 역시 예전의 노사 간 타협(코포라티즘)을 다시 살려내려고 시도하기보다 ‘지식’의 생산요소적 성격을 강조했던 것이다. 이른바 지식기반 경제다.
(지구화된 지식정보사회, 즉 지식기반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는 ‘지식’이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정책 이슈는 ‘교육’일 수밖에 없다. 교육을 통해 지식을 쌓은 시민만이 경제적 부를 누릴 수 있고, 급변하는 세계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식이 필요하지 않은 일자리는 계속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넘어가고 있다. 결국 진보 정당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빈곤층을 비롯한 시민에게 우량한 ‘교육 서비스’를 공평하게 제공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김윤태 교수는 영국 노동당이 “교육, 노동자들에 대한 훈련, 기술개발 등 인적자본 투자에 주력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교육 정책은 경제발전 인프라인 동시에 복지정책이기도 하다.)

블레어는 복지 개념을 혁신했다. 국가가 개인의 각종 위험(리스크)을 일일이 챙기는 과거의 복지 개념 대신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복지를 제안했다. 영국 노동당은 이를 ‘적극적 복지’라고 한다. 이 개념에 따르면, 국가의 역할은 개인이 자립해서 생활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국가의 ‘교육 투자’라고 할 수 있다. 미취학 아동에게 조기 교육을 실시하고 아동보육에 대규모 투자지원을 한다. 아동발달지원계좌(저소득층 아동이 개설한 계좌에 가정과 국가가 같은 금액을 장기 적립해서 이 아동이 성장한 뒤 학자금·창업자금 등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제도)도 있다.
적극적 복지는 결국 신자유주의에서 이야기하는 개인의 책임성(responsibility)을 강화하자는 이야기와 통하는 것 같다.

적극적 복지는 결국 신자유주의에서 이야기하는 개인의 책임성(responsibility)을 강화하자는 이야기와 통하는 것 같다.
실업자에게 실업수당만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취업할 수 있도록 교육과 재훈련을 받게 하는 것이다. 이런 재훈련 프로그램에 불응하는 실업급여 대상자는 급여를 받을 수 없다. 공기업 민영화로 떼돈을 번 기업으로부터 ‘횡재세’를 징수해 청년실업자 교육 프로그램에 투자한 사례도 있다. 다른 한편 장기 결석아동의 부모에 대해서는 자녀수당의 지급을 중단한다. 노동을 기피하며 복지혜택만 누리는 모럴 해저드를 차단하는 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영국 신노동당의 성과를 짧게 정리한다면.
지난 10년 동안 노동당 정부는 거시경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한편 공공부문에 대한 투자는 오히려 증가시켰다. 그래서 실제로 아동빈곤율과 청년실업률이 상당히 줄어들기도 했다. 그러나 세금 징수를 늘리지 않으면서 복지재원을 올리기는 매우 힘들었다. 너무 찔끔찔끔 올려서 충분한 개혁이 불가능했던 것 같다. 더욱이 누진세율이 낮은 데다 금융소득 관련 세율까지 낮게 유지하는 바람에 최상층 소득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빈부격차가 엄청나게 커졌다.

지구화로 국가 간 경계선이 대폭 낮아진 상황이다. 일국 내에서 시행되던 사민주의는 앞으로도 지속 가능한 것일까.
고민해봐야 한다. 사민주의 정책 때문에 세금을 올리면 자본이 다른 나라로 나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제조업이 강한 스웨덴·독일 등은 기업의 해외 이전이 어렵다. 물론 금융 등 서비스 산업까지 규제하기는 쉽지 않다.

김윤태 교수는 ‘제3의 길’이 한국의 진보세력에게 가능한 길인지 묻자, “신자유주의와 통화주의를 뛰어넘는 모델은 아닌 것 같다”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평등, 책임과 권리, 통화주의와 케인스주의 등 대립적 개념을 타협시키려 한 시도는 그 자체로 소중하다고 평가했다. ‘제3의 길’의 주창자 중 한 명인 앤서니 기든스의 다음과 같은 발언이 생각났다.
“우리는 국가와 시장을 인민의 종복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1989년 영국 보수당 집회에서 마가릿 대처 총리(앞)가 하늘을 찌르는 손짓을 하며 웃고 있다.

영국의 복지국가는 1970년대 말에 무너졌다고 한다. 그 복지국가는 어떤 것이었나.

   
대처의 보수혁명은 노동조합의 권력을 해체하기 위한 것이었다. 위는 파업 중인 광산 노동자를 끌고 나오는 영국 경찰.

노동당을 집권시킨 사상적 혁신은 어떤 것이었나.

   

ⓒBloomberg토니 블레어 영국 전 총리.

영국 노동당이 노동자 계급의 정당이기를 포기했다는 말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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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연재물이다.  

 

(18) 데이비드 하비 David Harvey


1935년 영국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대에서 지리학을 공부하고 1961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국 브리스톨대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해 1969년 미국 존스홉킨스대로 옮겼으며, 1987년 영국으로 돌아가 옥스퍼드대 지리학과의 석좌교수로 있다가 1993년 다시 존스홉킨스대로 복귀했다. 2001년 뉴욕시립대로 자리를 옮겨 지금까지 재직 중이다. 실증주의 지리학에서 출발했으나 곧 마르크스 지리학으로 전환해 <사회정의와 도시>(1973), <자본의 한계>(1982) 등을 썼고,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으로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1989)을 출간했으며, 자연환경문제에도 관심을 가져 <정의, 자연, 차이의 지리학>(1996), 자본주의 도시공간에 대한 비판과 대안의 모색으로 <자본의 공간>(2001)과 <희망의 공간>(2001)을 출간했고, 현실 문제에도 직접적인 관심을 가지고 <신제국주의>(2003), <신자유주의>(2005), 그리고 최근에는 <코스모폴리타니즘과 자유의 지리학>(2009)을 출간했다.

     

 

 

 

       

 

 

 

 
 

 하비는 최근 금융위기를 신자유주의적 양극화 과정 속에서 초래된 도시 부동산 시장의 위기로 보았다. 상층부의 잉여자본이 도시 확충에 대대적으로 투입됐지만 중하위 계층 저임금 실수요자들의 구매력 부족과 신용 붕괴로 금융위기가 촉발된 것이다.



 

» 데이비드 하비. flickr.com(ID:lsyrepublic)
 

현대 사회에서 공간은 인간 삶의 터전이 아니라 자본축적을 위한 물적 토대로 작동하고 있다. 특히 1970년대 서구 경제의 침체 이후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자유시장의 논리에 따른 공간의 재구성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최근 미국 금융위기의 세계화 과정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신자유주의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대안으로 판명되고 있다. 다른 한편,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로 새로운 사회공간에 대한 불신이 만연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정한 대안적 공간이 가능한가? 하비는 신자유주의의 타락한 유토피아주의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기보다, 진정한 유토피아적 꿈을 잃지 않고 새로운 희망의 공간을 만들어나가야 함을 역설한다.



공간 개념을 사회이론의 중심으로

공간은 흔히 텅 빈 공간 또는 사물을 담고 있는 그릇 정도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어디에도 텅 빈 공간은 없다. 공간은 사물을 비워버리면 남게 되는 그릇이 아니다. 공간은 항상 사물들과 함께하며, 사물들에 의해 사회적으로 (재)구성된다. 마찬가지로 사물들은 공간(그리고 시간)을 떠나 존재할 수 없으며, 오직 공간 속에서 (재)생성된다. 그동안 사회이론이나 철학에서 이러한 공간의 개념은 무시되거나 간과되어 왔다. 하비가 진보적 사회이론에 기여한 점들 가운데 하나는 공간의 개념을 사회이론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이다.

하비는 사회적 과정과 공간적 형태 간 관계를 변증법적 관점에서 이론화하고자 한다. 그에 의하면, 공간과 사회는 각각 주어진 실체가 아니라 상호 관련적 관계 속에서 그 특성을 부여받게 된다. 공간이나 장소는 단순히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실천을 통해 생산되고 재현된다. 자연환경 역시 그 자체로서 독립된 가치를 가지지 않으며, 항상 인간 생활과의 관계 속에서 생산되고 재생산된다. 이와 같이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공간환경을 (재)생산하면서 또한 인간의 본질과 사회 구조도 (재)구성하게 된다.

 

 

 


“금융위기 원인은 신자유주의적 공간 지배”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간은 그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원리, 곧 자본축적의 논리에 의해 (재)구성된다. 하비의 이론에 의하면, 자본은 일차적으로 상품 생산-소비 과정을 통해 순환하며, 이 과정에서 형성된 잉여가치를 축적해 사회적 부를 확대해 나간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달한 노동의 분업은 생산과 소비를 공간적으로 분리시키고, 자본의 축적 과정을 공간적으로 끊임없이 확장하는 한편, 이를 통해 형성된 사회적 부는 일정한 지역들로 집중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흔히 상품 생산의 과잉으로 과잉 축적의 위기를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자본은 이러한 위기를 회피하기 위하여 도로나 공단, 주택 등 도시 건조환경의 건설에 투자를 확대하게 된다.

도시공간에 대한 투자를 통해 자본은 현재보다 미래에 발생할 수익을 앞당겨 현가화(예로, 토지의 지대나 은행의 이자와 같이)하여 이윤을 얻고자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신용체계의 발달과 금융자본의 지나친 확대로 인해 부동산시장의 거품과 세계적 금융 공황을 포함한 새로운 위기 국면이 도래한다. 대규모 도시재생 사업 등과 같이 건조환경의 재편성과 이를 통한 축적 과정(하비는 이를 ‘확대재생산에 의한 축적’과 구분하여 ‘탈취에 의한 축적’이라고 한다)은 금융자본의 확대로 초래될 위기를 일시적으로 해소해 준다. 그러나 이러한 공간환경의 재편과 ‘탈취에 의한 축적’은 지역 불균등 발전을 세계적 차원으로 확대하면서, 결국 제국주의의 팽창과 제국들 간 전쟁을 초래할 수 있다.

현 단계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은 특히 1970년대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도입된 후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신자유주의를 전제로 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민영화와 탈규제와 같이 사적 소유의 확대와 자유시장의 확산을 통해 침체된 경제를 벗어나고자 한다. 그러나 실제 이 과정에서 세계경제의 성장은 회복되기보다 오히려 위축되었고, 개별 국가 내에서도 복지 지출의 축소로 양극화는 더욱 심화하고 있다. 하비에 의하면, 최근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위기와 이로 인한 전세계적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적 양극화 과정 속에서 초래된 도시 부동산시장의 위기로 이해된다. 곧 상층부의 잉여자본이 도시 건조환경의 확충에 대대적으로 투입되었지만, 실제 중하위 계층의 실수요자들은 저임금에 따른 구매력 부족과 이로 인한 신용의 붕괴로 금융위기가 촉발된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넘어 희망의 공간으로

이러한 자본주의적, 특히 신자유주의적 공간 속에서 우리는 어떤 전망을 가질 수 있는가?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은 흔히 모더니즘, 나아가 자본주의에 대한 대항운동으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하비에 의하면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역사 간에는 차별성보다는 연속성이 더 두드러지며, 사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정치경제적 현실과의 직면을 회피한다는 점에서 위험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이 재현하고자 하는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으로서 20세기 후반 자본주의의 정치경제적 전환 및 시공간적 변화, 자본축적을 가속화하기 위한 교통통신의 발달로 ‘시공간적 압축’ 과정 및 이의 재현이 이루어졌다. 하비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하에서 강조되고 있는 장소의 정체성과 ‘차이’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이들은 공간의 구성에 대한 거시적 분석과 결합할 때만 의의를 가진다.

하비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축적 공간을 극복할 수 있는 유토피아적 공간에 관한 철학적 의미와 역사적 발전 과정을 우선 다소 추상적으로 고찰한다. 그는 사회적 및 환경적 정의를 이론화하고자 하는 한편, 지리적 상상력 또는 ‘공간적 유희로서의 유토피아’를 사회적 관계, 도덕적 질서, 정치경제체제 등에 관하여 흥미로운 사고를 탐구하고 표현하기 위한 창의적 수단으로 강조한다. 다른 한편, 좀더 구체적으로 하비는 과거의 노동운동보다는 탈취에 의한 축적에 반대하는 다양한 사회운동을 강조하는 한편,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하여 다양한 자유와 권리의 개념들 가운데 어떤 것이 진정한 희망을 가져다 줄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논쟁에서 그가 강조하는 ‘도시에 대한 권리’ 운동은 도시 공간에서 사회적 잉여의 생산, 이용 및 분배에 대한 통제권의 쟁취를 목적으로 한다.

 

 

  


최병두/대구대 교수·지리학


 




 

» 최병두/대구대 교수·지리학
 

최병두 교수는 1953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지리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1987년 영국 리즈대에서 지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대구대 지리교육과에 재직하면서, 자본주의 도시공간과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의 공간과 환경>, <환경갈등과 불평등>, <근대적 공간의 한계>, <비판적 생태학과 환경정의> 등이 있으며, 데이비드 하비가 쓴 <사회정의와 도시>, <자본의 한계>, <신제국주의>, <신자유주의>, 마누엘 카스텔의 <정보도시>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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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의 진보의 재구성 기획이다.  정태인의 글이다.

 세계화의 조건은 자본시장 통제와 고정환율제 복귀  

정보 비대칭성’과 ‘가격의 경직성’이라는 현실 아래에서 시장은 과연 제대로 작동하는가. 신케인스학파를 대표하는 스티글리츠 교수의 시장론과 경제 대안을 살펴본다. 

 




   
중국 베이징의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한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는 미국 버클리 대학의 조지 애컬로프, 스탠퍼드 대학의 마이크 스펜스, 그리고 컬럼비아 대학의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였다. 스웨덴 왕립학술원은 이들의 수상 이유를 공식적으로 “정보 비대칭 상황에서의 시장 분석”이라고 밝혔다.  

 

 

 

 



시장은 잘 작동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보 비대칭’이란 무엇인가. 스티글리츠와 함께 노벨상을 수상한 애컬로프의 1970년 논문 <레몬들의 시장>을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애컬로프의 논문에서 ‘레몬’은 겉보기에는 그럴듯하지만 사실은 형편없는 물건을 의미한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비지떡’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물건이 레몬 혹은 비지떡이라는 정보가 모든 사람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에 있다. 중고차 시장을 예로 들어보면, 차를 팔려는 사람은 자신의 차량에 대한 정보(차의 성능, 결점 등)를 잘 알고 있지만, 사려는 사람은 그 정보를 잘 모른다. 이를 ‘정보 비대칭성’이라고 한다. 이런 정보 비대칭성 때문에, 불량한 차량을 가진 사람들은 중고차 시장에서 자신의 차를 팔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차량에 대한 ‘정보’를 매입자들이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불량한 성능의 차를 실제 가치보다 더 비싸게 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좋은 차를 가진 사람은 정보 비대칭성으로 제값을 받기 어렵기 때문에 중고차 시장에 차를 내놓지 않게 된다. 또한 중고차를 사려는 사람들은 ‘비지떡’에 불과한 중고차를 비싸게 사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래서 중고차 시장에는 겉만 번지르르하고 성능은 형편없는 ‘비지떡’들만 난무하고, 이를 구매자들은 외면하게 된다.

이런 정보 비대칭 상황과 관련해 스티글리츠는 이른바 스크리닝(scree ning) 이론을 개발했다. ‘스크리닝’은 정보를 가지지 못한 측이 거래 상대방의 정보를 캐내고 심사(screen)해서 정보 비대칭 상황을 완화하는 과정이다. 예컨대, 자동차에 대한 정보를 가지지 못한 차량 매입자는 매도자에게 “이 차를 450만원에 줄래요? 아니면 500만원 낼 테니 1년간 보증해줄래요?”라고 질문할 수 있다. 이 경우, 품질에 자신 있는 매도자는 보증을 선택하겠지만, 자신 없는 매도자는 보증을 기피할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매입자는 해당 차량의 정보에 접근해갈 수 있는 것이다.

스티글리츠는 현실에는 시장이 존재하지 않거나 시장이 있더라도 정보의 비대칭성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결코 효율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 안 보이는 이유


그는 <사회주의는 어디로 가는가?>(1994)에서 자신의 이론을 꽤 대중적으로 정리한다. 경제학자들은 세상의 거의 모든 문제를 시장이 해결해줄 수 있다고 믿지만 몇 가지는 ‘시장이 해결할 수 없는’ 예외로 인정한다는 것.

이런 예외 중 하나가 바로 ‘외부성’이다. 일반적으로 시장에서는 특정 경제 주체가 다른 사람에게 이득을 주면 그 대가를 받아야 하고, 피해를 주면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대가를 주고받지 않으면서 이득과 피해를 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외부성’이라고 한다. ‘시장 외부’의 사건인 것이다. 기업이 생산활동을 하면서 환경세 등 대가를 치르지 않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경우를 들 수 있다.

경제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외부성’이 ‘예외’적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스티글리츠는 세상이 이 같은 외부성으로 가득 차 있다고 주장한다. 세상은 당초 시장이 잘 작동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는 폴 크루그먼 교수.

라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이 세상의 모든 행위마다 전부 시장을 만들 수도 없다. 시장을 만드는 비용도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스티글리츠는 시장에 의존하면 모든 게 다 잘되리라는 경제학자들, 특히 시장만능론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는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풍자한다. 동화에서 임금님의 옷이 보이지 않는 것은 옷이 없기 때문인 것과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손을 볼 수 없는 것은 그 손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스티글리츠가 익숙해진 것은 그가 ‘IMF 위기’ 때 세계은행(IBRD) 부총재로 있으면서 한국에 유리한 얘기를 여러 번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고금리 정책이라든가 균형재정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이는 현재 ‘IMF 개혁론’의 핵심 논거이기도 하다). 우스운 것은 당시 우리나라 경제학자들이 오히려 IMF의 정책을 충실히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사실이다. ‘IMF 재협상’ 주장이 나왔을 때 난리를 쳤던 바로 그 사람들과 그 언론들, 훗날 참여정부 초기에 대통령 당선자가 스티글리츠를 해외 자문단장으로 임명하려 하자 “월스트리트가 싫어한다”라며 반대했던 청와대 내 인사들이다.

스티글리츠는 어떤 경제에 위기가 왔을 때 그것이 ‘국가의 개입 때문’이라 예단하고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이론,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독단에 강력하게 반대한다. 그는 오히려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 시장에 개입해서 제도를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에는 다수의 균형점이 존재하고, 이런 균형점 중에는 ‘나쁜 균형’도 ‘좋은 균형’도 있다. 그러므로 경제 상황을 전자에서 후자로 옮기는 제도를 설계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스티글리츠는 제도경제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동아시아 경제를 고저축-고부채-고성장이 결합된 모델로 봤다(<동아시아의 기적>, 1993). 반면 IMF가 추구하는 모델은 저저축-저부채-저성장 모델이며 지금 한국에 구현되어 있다. 스티글리츠는 IMF가 왜 더 나쁜 모델로 가도록 강요하는지 비판한다(<동아시아의 기적을 다시 생각한다>, 2001).
특히 동아시아의 성장이 생산성 향상 없이 단지 자본을 퍼부어 이룩된 것이라는 크루그먼의 비판과 그 기초인 ‘총요소생산성 이론’을 “근거 없다”라고 비판했다. 스티글리츠는, 크루그먼 등이 의존한 계량경제학적 방법이란 서울부터 부산까지의 거리를 서울에서 광주까지 거리와 부산에서 광주까지 거리의 차이로 계산하는 것과 같다고 조롱한다.


   
1997년 말, 임창렬 경제부총리(가운데)와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오른쪽)가 캉드쉬 IMF 총재(왼쪽)가 지켜보는 가운데 IMF 의향서에 서명하고 있다.

동아시아 경제가 ‘끼리끼리 자본주의(crony capitalism)’라는 크루그먼의 비난에 대해서는 “부패라는 면에서 미국이 한국보다 더 낫다는 근거가 있느냐”라고 되물었다. 결국 엔론 사태 때 크루그먼은 미국도 ‘끼리끼리 자본주의’라며 반성했다.

특히 스티글리츠는 한국의 위기를 무분별한 개방으로 인해 무책임한 국제 금융자본과 재벌이 합작한 결과로 설명한다. 그는 새로운 균형으로 가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바로 그것이 의사결정의 주체까지 바꾸는 ‘심도 있는 개혁(deep reform)’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30년간에 걸친 그의 이론적·실천적 역정을 가장 대중적으로 소개한 것이 <세계화, 그 불만의 뿌리>(2005)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스티글리츠의 대중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 문제든, 동아시아 문제든 IMF는 엉터리 이론에 기초한 만병통치약을 파는 돌팔이였다. 더구나 스티글리츠는 세계은행 부총재를 하면서 정책 방향을 놓고 IMF와 사사건건 부딪쳤다. 그가 보기에 IMF는 잘못된 이론, 미국과 금융자본의 일방적 편들기, 밀실에서의 정책 결정이라는 온갖 오류의 집합체이다.

IMF와 세계화 비판

그러나 그가 세계화 자체를 부정하거나 국제기구가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세계화는 필연적이고 또 이 흐름을 제대로 통제할 수 있다면 세계화가 전 인류의 복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세계화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IMF와 같은 국제기구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시장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또 세계경제 차원에서는 각국의 이익 추구가 전체의 실패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마치 시장의 실패를 국가가 교정할 수 있다는 케인스의 주장이 국제적 차원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스티글리츠는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그는 국제적 케인스주의자로 분류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국제기구가 성공하려면 최소한 자유로운 토론을 허용해야 한다고 그는 역설한다. 특히 IMF나 세계은행의 결정에 생사가 좌우되는 개발도상국 국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 요즘 논의되는 IMF 의결권의 조정이 그것이다.

케인스는 전후에 국제청산동맹안(케인스 플랜)을 내놓았다. 그가 새로운 초국적 준비통화로 제안한 방코르는 기축통화 발행국이 다른 나라에 대해 누리는 비대칭적 이익(시뇨리지)을 원천 봉쇄할 것이었다.
동시에 케인스는 ‘청산동맹은행’(결국 IMF로 귀결되었지만)을 통해 각국이 상호간에 경상수지의 잔액만 청산하면 되는 다자간 시스템을 채택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제안은 미국에 의해 거부됐고 기진맥진한 케인스는 1946년 4월 세상을 뜨고 말았다. 스티글리츠의 <국제통화개혁론>(2007)은 케인스의 핵심을 현대판으로 번안한 것이다.

현재 세계적 금융위기의 배후에는, 미국의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2007년 현재 미국 GDP의 6%)라는 글로벌 불균형이 도사리고 있다. 기축통화를 가진 미국은 막대한 특권(시뇨리지)을 누려왔다. 미국은 다른 나라의 소비재를 많이 구입함으로써 지속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해왔다. 그러나 경상수지 흑자국(미국에 소비재를 수출한)의 외환보유고는 미국 재무성 증권 구입에 쓰이고 결국 달러는 미국으로 돌아오기 마련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미국의 각 경제주체(국가·주정부·가계 등)는 산더미 같은 빚을 지게 되었다.

세계 금융위기와 국제통화 체제 개혁


이 같은 글로벌 불균형은 ‘금융 붕괴의 공포 때문에 유지되는 균형(balance on financial terror)’이기도 하다. 즉, 미국의 경제 시스템이 무너지면 세계적 금융공황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유지되는 기묘한 균형인 것이다. 세계 각국이 달러 가치 하락 때문에 재무성 증권을 팔기 시작한다면 순식간에 붕괴될(금융 테러를 감수하고서라도) 위태로운 균형이기도 하다.

스티글리츠는 <국제통화개혁론>에서 케인스와 마찬가지로 자본시장의 통제와 관리·고정환율제를 주장했다. 이는 월스트리트 등 세계적 금융 대자본의 이익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구상이 제도화되지 않는다면 금융위기가 불가피하다고 스티글리츠는 역설했다. 이 구상은 금융위기를 맞아 유엔이 스티글리츠에게 맡긴 ‘전문가위원회 제안’(2009)으로 다시 세상에 나왔지만 G20은 이를 채택하지 않았다.

스티글리츠는 미시경제학에서 거시경제학 그리고 환경문제까지 다루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경제학자이다. 그는 신케인스주의자라 분류되지만 그가 다루는 분야는 어느새 케인스를 넘어섰다. 그는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자본주의의 미래를 본다. 그는 한국이 미국식 자본주의를 추구하다 한·미 FTA까지 가버린 것을 한탄한 바 있는데, 이는 금융위기를 맞은 지금 다시 되돌아볼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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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1-08-25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시사인에서 연재하는 진보의 재구성을 퍼온다. 첫번째가 미국식 사회민주주의이다.  

탈산업화의 대안은 시장 역동성을 믿는 미국형 사민주의 

 

미국 민주당이 1990년대 초에 성취한 사상적 변혁은 한국의 진보 세력에도 강한 영향력을 미쳤다. 당시 미국 민주당이 한 일은 서구세계 진보적 대중정당들의 전통적 사상을 뒤엎은 것이었다. 복지와 시장, 국가에 대한 기존 관념을 전복함으로써 1992년 빌 클린턴을 대통령에 당선시켜 공화당의 12년 지배를 끝장냈다. 이런 사상적 변혁 이후의 미국 민주당을 ‘신민주당’이라 부르기도 한다. 금융과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이 미국의 주력산업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때였다.

신민주당이 변혁한 것은 자신과 미국만이 아니었다. 1990년대 하반기에는 미국과 다른 경제 시스템을 영위하는 동아시아 국가와 유럽 국가들을 금융자본주의 시스템에 포섭했다. 당시 한국에서 집권한 진보 세력은 신민주당의 사상을 적극 흡수하기도 했다. 그만큼 위력적인 사상이었다.

신민주당은 시장의 역동성이 진보적 과제와 결합될 수 있음을 굳게 믿었다. 이에 따라 시장을 규제해서

   
이찬근 인천대 교수.

소생산자와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왜곡하지 않는 수단(근로장려세제 등)으로 서민을 직접 지원하려 했다. 또한 기업과 경제성장을 노골적으로 중시했다. 민주당의 존 케리 상원의원 같은 사람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사람을 미워하면서 일자리를 사랑할 수는 없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런 시각은 자연스럽게 개인의 능력과 책임을 강조하는 정책으로 이어졌다. 행정과 공적 사업을 민간에 이양하는 권력이양(empowerment) 정책이 실시되었다. 서민에게 시혜를 베풀기보다 이들이 자기 사업을 통해 자활할 수 있도록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릴 수 있게 하는 제도가 설계되었다.

한국에서도 이 흐름은 김대중 시대의 생산적 복지, 노무현 시대의 사회적 투자국가론 등으로 이어졌다. 금융 및 서비스 산업의 성장동력화, 참여정부의 금융허브론, 이명박 정부의 금융중심지론도 신민주당의 영향을 일정하게 반영한다.

이러한 미국 신민주당 사상의 배경 및 전망과 관련해 최근 지구화라는 맥락 속에서 클린턴·오바마 정책을 연구 중인 인천대 이찬근 교수를 만났다.


미국 신민주당의 사상 역시 소외층 지원을 강조한다는 면에서 미국형 사회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유럽 사민주의 정당의 경우, 지구화 흐름에서 이탈하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구화에 상당히 비판적이다. 지구화에 따른 현상들을 일정 정도 정치와 사회의 힘으로 다스릴 수 있고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에 반해 미국 신민주당은 지구화를 ‘포스’(force), 즉 ‘거역할 수 없는 힘’으로 인식한다. 신민주당의 여러 정책에는, 이런 ‘포스’에 맞설 것이 아니라 올라타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또한 이 흐름을 주도한 빌 클린턴, 로버트 라이시(전 노동장관) 등은 지구화와 기술 혁신이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보았다.

지구화에 대한 견해 차이가 대안의 차이로 이어지는 것인가.

로버트 라이시, 진 스펄링 등 미국 신민주당 이론가들은 지구화의 불가피성을 일단 인정하고 이에 대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가운데), 아른 던컨 시카고 공립학교 교육감(맨 오른쪽) 등이 시카고의 한 공립학교에서 흑인 어린이들과 담소하고 있다.

대응을 고민한다. 탈산업화라는 현실에 기반해서 국가의 구실을 고민하고, 이 영역에서 보수와 진보가 대안으로 다투자는 거다. 유럽 사민주의가 ‘복지를 지키자’고 주장한다면, 미국형 사민주의는 복지의 개념을 ‘개인의 위험 관리’에서 ‘개인 능력의 향상’으로 바꾸자고 주장한다.

탈산업화는 어떤 시대인가.

로버트 라이시에 따르면, 미국 자본주의 혹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추세는 지구화다. 대다수 대기업은 국적이 불분명한 글로벌 기업이다. 이들은 원자재, 중간재(하청기업), 노동자 등을 국내가 아니라 세계적 차원에서 선택한다. 미국 기업이 잘나간다고 미국인의 일자리가 보장되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자본과 노동이 국민경제 내에서 공생하며 한 배를 타던 시대는 지나갔다. 또한 기술 발전으로 인해 제조업과 서비스업에서 숙련도가 낮은 반복적 노동이 사라지고 있다. 이 부문의 저숙련 노동자들은 기존 일자리를 잃고 소매 상점, 레스토랑, 호텔, 노인이나 어린이 돌보기 등 대인 서비스업(사람을 직접 대면해야 하는 서비스업)으로 밀려나고 있다. 이런 대인 서비스업은 자동화가 불가능하고 글로벌 경쟁에 직접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일자리 수가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급여 수준이 너무 낮아서 사회적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왼쪽)과 로버트 라이시 전 노동부 장관.

으로 일자리 불안과 양극화를 초래한다. 이처럼 탈산업화 시대에는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워지는 반면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양극화가 심화된다.

노동과 자본 간 사회적 대타협에 기반한 기존 사회민주주의가 불가능해졌다는 것인가.

그렇다. 기존 사민주의는 산업화 시대의 대안이었을 뿐이다. 산업화 시대는 기업들이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면서 거대한 공장을 운영했고, 그 공장 내에는 비슷한 작업을 수행하는 수많은 노동자가 근무했다. 노동자들은 단결하기 쉬웠고, 단결하면 자본에 대단히 위협적이었다. 또한 기업들의 생산거점도 국가 내에 있었다. 그래서 국가 단위에서 자본은 노동과 타협해야 했다. 그런데 이런 조건이 모두 사라졌다.

이런 현실에 대한 미국 신민주당의 대안은 무엇인가.
바로 교육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교육개혁을 강조하는 이유다. 오바마는 ‘미국은 교육에서 승리해야 다른 나라들을 앞설 수 있다’고 말한다.

‘국가 경쟁력 강화’가 아니라 ‘교육 강화’인가. 특유의 세계 인식이 깔려 있는 것 같다.
공산권 붕괴 이후 30억여 명 이상이 세계 노동시장에 들어왔다. 이에 더해 무역과 투자도 완전히 개방

   
진 스펄링 미국 재무부 고문.

되었다. 세계 자본의 처지에서는 글로벌 차원에서 노동자 40억명을 마음대로 활용하면서 생산을 조정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새로운 고부가가치 비즈니스도 금융과 서비스 산업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능력이다. 지구화로 인해, 어느 나라에 살든 글로벌 차원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노동을 제공할 능력이 있는 개인은 높은 보수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인식에 기반하면, 결국 대안은 고부가가치 노동력을 자국 내에 많이 육성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교육을 강조한다. 교육을 통해 고부가가치 인력을 많이 키워내자는 것이다.

교육의 강화로 진보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인가.
로버트 라이시는 일자리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최상위에는 고도의 지적 능력을 요구하는 지식형·문제해결형 일자리가 있다. 두 번째는 산업화 시대에 전형적인, 대규모 사업장에서 반복 노동을 하는 일자리다. 세 번째는 대인 서비스이다. 그런데 두 번째는 파괴되었고, 세 번째는 늘어나지만 임금 수준이 매우 낮다. 결국 첫 번째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국가의 구실이고 이를 담당하는 것이 교육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이에는 기득권 해체의 의미도 있다. 공교육을 강화해서 저소득층 자제들도 노력에 따라 고부가가치 인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하자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일부 사립학교와 부촌의 공립학교만 우수하다. 그런데 나머지 학교의 수준을 끌어올려 고부가가치 인력의 풀을 넓히자고 한다. 부모의 조건에 자식이 구애받지 않도록 하자는, 교육이 갖는 엄청나게 평등한 함의가 여기 있다.

그러나 클린턴 시대의 미국도 그리 평등한 나라는 아니었던 것 같다.
미국이 반성해야 하는 부분이다. 클린턴 때는 경제 환경이 괜찮았다. 그래서 양극화의 본질적 대책인 ‘교육에 대한 역사적 투자’를 게을리 했다. 탈산업화와 양극화에 월스트리트는 금융 버블을 통해 자산가격을 올리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미국 시민들의 실질소득 하락을 자산가격 상승으로 보완한 것이다.


   

ⓒREX미국 신민주당의 복지정책은 ‘개인’의 자활을 지원하는 것이다. 위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홈리스 천막촌.


그러나 오바마 정부 역시 이런 월스트리트 방식을 포기하지는 못할 것이다. 교육정책이 핵심이지만 그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당분간 소비를 살리는 차원에서 금융 버블을 통해 자산가치를 높이는 전략을 추구할 것이다. 다만 오바마 정부는 금융을 청정에너지 기술 같은 녹색산업에 대한 생산적 투자로 유도하면서 이에 교육개혁을 결합하려 할 것이다.

신민주당적 관점에서 한국 정부를 평가한다면.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시대로 한정해서 보면, 정치인이나 지식인 사회에서나 탈산업화 시대라는 자각이 없다. 양극화에 대한 인식만 있다. 그래서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 김대중 정부는 IMF나 미국의 압력으로 시장 개혁 및 전면 개방을 적극적으로 수행했으나 이러한 조처가 탈산업화로 가는 문을 연 것이라고 인식하지 못했다. 이때 탈산업화가 15년 당겨졌다. 노무현 정부는 양극화를 물려받아 많은 고민을 했다. 동반성장 전략을 세우기도 했으나 기득권자들과의 싸움에 너무 에너지를 소진했다. 사회적 대타협의 마지막 기회였으나 이를 성공시키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는 보수라고 하나 보수의 특징이 뚜렷하지 않다. 그냥 ‘경영자 정부’로 보인다. 경영자로서 거시적 환경 변화에 무조건 적응한다는 방침이지 ‘내가 노선을 깔겠다’는 것이 없다. 그래서 불분명하다. 예컨대 이명박 정부도 교육개혁을 제시하고 있으나 방향이 틀렸다. 교육개혁의 목표는 탈산업화에 대한 대응으로서 학생들의 지적 능력(skill)을 높이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게 교육개혁은 ‘사교육 비용 줄이기’의 일환일 뿐이다. 이는 포퓰리즘에 불과하다. 
 

 

 

 

 


※ 이 기사와 관련해 참조할 도서로는 로버트 라이시의 <부유한 노예>(김영사), <슈퍼자본주의>(김영사), <국가의 일>(까치글방)과 진 스펄링의 <성장 친화형 진보>(미들하우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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