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의 언어학 카페 말들의 모험] <2> 랑그의 언어학과 파롤의 언어학  

저번 차례에 우리는 언어학자 두 사람에 대해 아주 짧게 알아보았습니다. 기억나시죠? 페르디낭 드 소쉬르와 노엄 촘스키 말입니다. 오늘은 이 두 사람이 제가끔 다듬어낸 용어 몇 개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용어들의 원적지는 언어학이지만, 이내 인접과학으로 널리 퍼졌습니다. 퍼지는 과정에서 때론 은유의 옷을 입기도 하고 때론 뜻빛깔의 변화를 겪기도 했지만, 그 개념의 고갱이는 오롯이 남았습니다.

여기, "지난번 인사청문회에서 가장 돋보였던 사람은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야!"라는 소리뭉치가 있습니다. 한국어 화자 열 사람에게 이 문장을 소리내어 읽게 하고 그 소리 연쇄를 소노그래프로 분석하면, 그 소리연쇄 열 개가 매우 비슷하되 똑같진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똑같은 사람이 이 문장을 열 번 소리내어 읽더라도, 민감한 소노그래프라면 그 소리연쇄들이 똑같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줄 겁니다.
 

이것은 낱말이나 형태소(의미를 지닌 최소의 소리뭉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라는 형태소(우연히, 낱말이기도 하군요)를 열 사람이 제가끔 소리내어 읽을 때, 그것이 물리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소리들로 실현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같은 사람이 '사람'이라는 말을 열 번 되풀이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형태소의 소리값은 흔히 [sa:ram]으로 표기되지만, 언어생활 속에서 실현되는 수많은 [sa:ram]이 똑같은 경우는 거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더 세밀한 음성기호 체계를 지니고 있다면, '사람'이라는 형태소가 [sa:ram]과 비슷하되 똑같지는 않은 무수한 변이체들로 실현되는 것을 일일이 구별해 기록할 수 있을 겁니다.

제 말이 또렷하지 않은가요? 다시 말하면 이렇습니다. 경상도 방언 사용자가 소리내는 '사람'과 경기도 방언 사용자가 소리내는 '사람'은 물리적으로 똑같을 수 없다, 경기도 방언 화자들끼리도 '사람'이라는 말을 똑같이 소리내지는 않는다, 남자가 내는 '사람'이라는 소리와 여자가 내는 '사람'이라는 소리는 다르다, 어린이가 내는 '사람'이라는 소리와 어른이 내는 '사람'이라는 소리는 다르다, 다급할 때 내는 '사람'이라는 소리와 한가할 때 내는 '사람'이라는 소리는 다르다, 심지어 같은 사람이 같은 상황에서 '사람'을 두 번 되풀이할 때도 그 소리들은 완전히 포개지지 않는다, 이런 뜻입니다.

이렇게 '사람'이라는 말이 한국어 화자에 따라 조금씩 다른 소리들로 실현된다면, 또 같은 사람이라도 '사람'을 똑같이 되풀이할 수 없다면, 언어를 통해 의사를 주고받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어로써 의사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어 화자의 머리 속에는 [sa:ram]의 무수한 변이체들을 추상한 {sa:ram}이 그 개념과 함께 저장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경기도 방언 화자의 [사람]과 이와는 '물리적으로' 다른 경상도 방언 화자의 [사람]을 똑같이 '호모 사피엔스'라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앞에서 예로 든 "지난번 인사청문회에서 가장 돋보였던 사람은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어 화자들은 이 문장을 비슷하되 서로 다른 소리들로 실현합니다.

그러나 한국어 화자의 머리 속에는 서로 다른 [지난번] [인사청문회] [에서] [가장] [돋보였던] 따위가 추상된 {지난번} {인사청문회} {에서} {가장} {돋보였던} 따위가 그 개념과 함께 저장돼 있고, 그 개념들이 모이면 어떤 의미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사회적 규약이 갈무리돼 있습니다.

소쉬르는 물리적으로 서로 다르게 실현되는 구체적 [sa:ram](들)을 '파롤'(parole)이라고 부르고, 우리 머리 속에 갈무리돼 있는 추상적 {sa:ram}을 '랑그'(langue)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 둘을 아울러서 '랑가주'(langage)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랑그'는 언어공동체가 받아들이고 있는 기호체계를 가리키고, '파롤'은 의사를 주고받기 위해 랑그를 사용하는 개인적 행위를 가리킵니다. 랑그가 언어활동의 체계적이고 사회적인 부분이라면, 파롤은 언어활동의 우연적이고 개인적인 부분입니다.

화자의 머리 속에 '기억'의 형태로 갈무리돼 있는 '랑그'를 의지에 기대어 '파롤'로 실현시키는 것이 언어활동이라면, '랑그'가 수동적인 데 비해 '파롤'은 활동적이고 창조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소쉬르는 언어활동의 이 두 측면 가운데 '엄밀한 의미의 언어학'이 관심을 쏟아야 할 부분은 '랑그'라고 말했습니다. 소쉬르가 '파롤의 언어학'을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다만 '랑그의 언어학'이라는 길과 '파롤의 언어학'이라는 길을 동시에 걸을 수는 없으며, '랑그의 언어학'이 언어학자가 걸어야 할 간선도로라고 본 것입니다.

소쉬르의 '랑그'와 '파롤'은 촘스키가 구별한 '언어능력'(competence)과 '언어수행'(performance)에 제가끔 얼추 대응합니다. 촘스키의 변형생성문법은 사람들이 제 모국어를 자유롭게 조작할 수 있는 암묵지(暗黙知ㆍtacit knowledge)를 지녔다고 전제합니다.

이 불가사의하게 보이는 앎을 촘스키는 '언어능력'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능력은 추상적인 것입니다. 반면에 '언어수행'은 언어의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사용을 가리킵니다. 언어능력은 언어수행을 규제합니다. 변형생성문법의 일차적 관심은 언어능력을 해명하는 데 있습니다. 변형생성문법은 소리와 의미를 잇는 규칙 집합을 통해서 이 능력을 해명하려 합니다.

현대중국어학을 전공한 뒤 소위 체계구조이론(system-structure theory)과 사회기호학(social semiotics)의 주춧돌을 놓은 잉글랜드 출신의 오스트레일리아 언어학자 마이클 핼리데이(1925~)를 비롯해서 몇몇 영국계 언어학자들은 언어수행 연구가 언어의 본질을 캐는 길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주류 변형이론가들은 언어수행을 언어학의 부차적 공부거리로 여깁니다.

언어능력이 문법성(grammaticalness)의 바탕이라면 언어수행은 가용성(可容性ㆍacceptability)의 바탕입니다. 문법성이란 모국어 화자들이 적격(well-formed)이라고 인정하는 정도이고, 가용성이란 어떤 발화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정도입니다.

문법적 문장이라고 해서 모두 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문법성은 가용성을 결정하는 요인들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널 사랑해!"는 완전히 문법적인 문장이지만, 청자가 화자의 할머니라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 같진 않군요.

그런데 소쉬르의 랑그/파롤과 촘스키의 언어능력/언어수행은 고스란히 포개지는 걸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고스란히 포개진다면 촘스키가 소쉬르의 이분법을 그대로 가져다 썼겠지요. 랑그/파롤과 언어능력/언어수행이라는 두 이분법의 차이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언어활동의 창조성을 보는 관점일 겁니다.

소쉬르는 언어활동의 창조성이 (구체적인) '파롤'의 영역에 속한다고 보았지만, 촘스키는 그것이 (추상적인) '언어능력'의 영역에 속한다고 보았습니다. 촘스키는 소쉬르가 '파롤'을 언어학의 변두리로 몰아낸 것 이상으로 '언어수행'을 언어학의 가장자리로 밀어낸 것입니다.

소쉬르의 다른 용어를 잠깐 살핍시다. 언어학 개론을 읽지 않은 사람들도 '시니피앙' '시니피에'라는 말은 들어보았을 겁니다. 소쉬르는 언어기호(signe linguistique)의 두 측면을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라고 불렀습니다. 이 두 용어는 '의미하다'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단어(signifier)의 현재분사와 과거분사를 각각 명사화한 것입니다.

아주 쉽게 얘기하면 '시니피앙'은 언어기호의 소리 측면이고, '시니피에'는 뜻 측면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시니피에만이 아니라 시니피앙도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정신적 실체라는 점입니다.

소쉬르의 설명을 그대로 옮기면 '시니피앙'은 '소리연쇄'가 아니라 '청각영상'입니다. 즉 (마음속의) 소리이미지입니다. 그리고 '시니피에'는 '개념'입니다. '개념'과 '청각영상'이 결합해서, 말을 바꾸면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이 결합해서 언어기호를 이룹니다.

소쉬르는 언어기호의 특징으로 두 가지를 꼽았습니다. 첫째는 자의성(恣意性)이고 둘째는 선조성(線條性)입니다. 기호의 자의성이란 특정한 시니피앙과 특정한 시니피에의 결합에 아무런 내적 필연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牛'라는 시니피에가 한국어에서는 {s-o}(소)라는 시니피앙과 결합하지만, 독일어에서는 {o-k-s}(Ochs)라는 시니피앙과 결합합니다. 선조성은 기호 전체의 특성이 아니라 시니피앙의 특성입니다. 시니피앙은 그 청각적 본질 때문에 시간 속에서 전개되며 , 따라서 선(線)의 특성을 갖는다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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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에 관심 가는 주제를 연재하고 있다. 

[고종석의 언어학 카페, 말들의 모험] <1> 연재를 시작하며  

오늘부터 월요일 아침마다 독자를 찾을 '말들의 모험'은 말에 대한 수다입니다. 그 말은 한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같은, 인류가 의사를 소통하기 위해 쓰는 자연언어입니다.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로쿠엔스(말하는 인간)로 만든 언어, 사람을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만든 언어 말입니다.

에스페란토처럼 세계어를 지향해 특정한 개인이 만든 인공어나, 컴퓨터 언어처럼 의미를 정확히 연산하기 위해 수학자나 철학자들이 고안해낸 논리언어, 개미들의 화학적 언어나 벌들의 비행(飛行)언어처럼 인류 이외의 동물들이 의사를 주고받기 위해 쓰리라 짐작되는 유사언어는 우리 눈길을 받기 어려울 겁니다. 부제에 '언어학'이라는 말이 들어있으니, 일종의 언어학 에세이가 되겠지요.

그렇지만 신문 지면에서 어떤 학문적 담론을 펼치는 것은 부적절한 일일 겁니다. 곧은 자세로 앉아 낱말 하나하나의 뜻을 헤아리며 신문을 읽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말들의 모험'이 언어학 에세이라 하더라도, 이 에세이는 언어'학'의 변죽만 울리게 될 겁니다. 미리부터, 굳이 '공부하는 마음가짐'을 지닐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말들의 모험'이 지적 담론이 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전문 담론에 발을 들여놓는 일은 드물겠지만, 교양 담론을 슬며시 넘어서는 일은 잦을 겁니다 

 '말들의 모험'은 되도록 쉬운 말들로 짜이겠지만, 지적 담론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어려움까지 솜씨 좋게 피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변죽만 울린다 하더라도, '말들의 모험'은 언어학 담론에 바짝 붙어 있게 될 테니까요.

사람들이 언어에 지적 관심을 기울인 역사는 수천 년에 이르지만, 언어학이 분과학문으로 자립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들어서입니다. 그리고 이 학문은 20세기 들어 만개합니다.

특히 20세기 중엽에 구조주의라는 사조 또는 방법론이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휩쓸면서, 언어학은 얼마동안 학문의 제왕으로까지 군림하게 됩니다. 구조주의의 발원지가 언어학이었기 때문입니다. '구조주의'에서 '구조'(structure)는 '유기적 관계들의 더미'라는 뜻입니다.

언어가 '유기적 관계들의 더미'라는 생각이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은 <일반언어학강의>('Cours de linguistique generale', 줄여서 CLGㆍ1916)라는 책이 출간되고부터입니다. CLG의 저자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1857~1913)라는 스위스 언어학자입니다.

꼼꼼한 독자라면, CLG의 발간년이 소쉬르의 몰년(沒年)보다 뒤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CLG는 소쉬르가 죽은 뒤에 나왔습니다. 소쉬르가 <일반언어학강의>라는 제목의 유고를 남긴 것도 아닙니다.

그는 제네바대학에서 일반언어학을 가르쳤을 뿐입니다. 소쉬르는 이 대학에서 일반언어학 강의를 세 차례(세 학기)에 걸쳐 했습니다. 첫 번째 강의는 1907년 1월부터 그 해 7월까지, 두 번째 강의는 1908년 11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세 번째 강의는 1910년 10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진행됐습니다(일반언어학은 말 그대로 언어 일반에 대한 학문적 탐구를 가리킵니다.

이에 견주어 한국어학, 영어학, 일본어학처럼 특정 자연언어를 대상으로 삼는 학문은 개별언어학이라고 합니다. 소쉬르가 제네바대학에서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1891년 겨울학기부터고 정교수가 된 것은 1896년입니다. 그는 제네바대학 초기에 산스크리트어학이나 프랑스어학 같은 개별언어학을 가르쳤습니다).

CLG는 소쉬르의 이 세 차례 일반언어학 강의를 들은 학생들의 노트를 밑절미 삼아 샤를 발리와 알베르 세슈에라는 언어학자가 편집한 책입니다. 발리와 세슈에는 소쉬르의 제네바대학 제자입니다. 이 두 사람은 스승의 일반언어학 강의가 그의 죽음과 함께 묻히는 게 아까워 이를 책으로 되살리기로 한 것입니다.

이들의 노력은 소쉬르라는 이름에 불멸의 영예를 헌정한 것과 동시에 '진짜 소쉬르'를 찾기 위한 후대 언어학자들의 기나긴 여정의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근대 언어학의 역사를 두 세기 남짓으로 잡을 때, 19세기와 20세기를 각각 대표하는 언어학자로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요? 등수 매기기는 본디 비(非)학문적이고, 뛰어남은 계량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후대에 끼친 학문적 영향은 얼추 계량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가 가장 위대한 언어학자인지를 따지는 것은 비학문적이고 허망한 일이겠지만, 누가 후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나를 따지는 것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 영향력을 기준으로 삼을 때, 19세기를 대표하는 언어학자가 소쉬르고, 20세기를 대표하는 언어학자가 노엄 촘스키(1928~)라는 데에 많은 사람이 동의할 겁니다. 
 

 

 

 

 

  

물론 20세기 사람 촘스키만이 아니라 19세기 사람 소쉬르 역시, 그 영향력이 행사된 시기는 20세기입니다. 다작의 촘스키는 그 영향력을 그때그때, 곧바로 행사할 수 있었지만, 과작의 소쉬르는 죽은 뒤에야 <일반언어학강의>를 통해 후대에 영향을 끼칠 수 있었습니다.

언어학계 바깥 사람들에게,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의 언어학자 촘스키는 전투적 정치평론가로 기억됩니다. 실상 그의 언어학 책보다 정치평론서가 훨씬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고, 더 넓고 깊은 대중적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촘스키는 학자 이미지보다 지식인 이미지가 더 짙습니다. 그러나 지성의 역사에서 촘스키는 지식인으로서보다 학자로서 더 많은 페이지를 할당받을 게 분명합니다. 지식인 촘스키를 대치할 만한 사람은 몇몇 떠올릴 수 있지만, 언어학자 촘스키를 대치할 만한 사람은 도무지 떠올리기 힘들어서 하는 말입니다.

촘스키의 <통사구조론>('Syntactic Structures'ㆍ1957)에서 싹을 틔운 변형생성문법(transformational generative grammar, 줄여서 TG)은 20세기 언어이론에 말 그대로 혁명을 불러왔습니다. 이 혁명적 언어학을 촘스키는 같은 제목의 저서에서 '데카르트 언어학'(Cartesian linguistics)이라고 불렀습니다.

지식의 계보에서 촘스키가 과연 데카르트의 적통(嫡統)인지를 두고 지성사적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이 유대계 미국인이 합리주의와 심성주의(mentalism)의 실로 20세기 주류 언어학의 피륙을 짠 것은 확실합니다.

다시 소쉬르로 돌아가 봅시다. 소쉬르 언어학은 두 권의 책에 망라돼 있습니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CLG고, 다른 하나는 1922년 파리에서 간행된 <페르디낭 드 소쉬르 학술논문집>입니다.

이 논문집에는 21세의 소쉬르에게 학문적 명성을 안긴 '인도-유럽어 모음들의 원시체계에 관하여'(1878)를 포함해, 그 때까지 확인된 소쉬르의 글들이 모두 묶였습니다. 이 책은 소쉬르의 지적 조숙과 천재를 넉넉히 증명하지만, 그를 구조주의의 아버지로 만든 것은 제자들이 편집한 CLG입니다.

언어가 유기적 관계들의 더미라는 생각은 CLG에서 여러 차례 피력됩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구조'라는 말로 명시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대체로 '체계'(systeme)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다시 말해 CLG에서 반복되는 '체계'라는 말은 20세기 구조주의자들이 말하는 '구조'와 거의 같은 뜻입니다. 조르주 무냉이라는 프랑스 언어학자가 소쉬르를 '자신이 구조주의자인 줄 몰랐던 구조주의자'라고 일컬은 것은 이런 연유에서입니다.

CLG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습니다. "언어학의 유일하고 진정한 대상은, 그 자체로서 또 그 자체만을 위해 고찰되는 언어다." 언어학의 대상을 좁고 엄격하게 규정한 이 문장은 소쉬르 사상의 한 핵심으로 널리 인용돼 왔습니다.

그러나 CLG 독자들은 이 마지막 문장과 맞닥뜨리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CLG의 뒷부분은 지리언어학이나 언어인류학 같은, '그 자체로서 고찰되는 언어' 바깥에까지 눈길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뒷날 소쉬르 연구자들은 소쉬르 수강생들의 강의 노트에 이 구절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문장은 발리와 세슈에가 자의로 끼워 넣은 것입니다. 실상 이들은 소쉬르 만년에 이미 제네바대학 강사 노릇을 하고 있었던 터라, 스승의 일반언어학 강의 중 가장 혁신적이고 창의적이라 할 세 번째 강의를 거의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소쉬르의 생각은, 언어학이 언어와 관련된 모든 영역을 그 대상으로 삼을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로만 야콥슨(1896~1982)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소위 프라하학파를 이끈 이 러시아 출신 미국 언어학자는 1953년 인디애나대학에서 열린 언어학 심포지엄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언어학자다. 언어와 관련된 것 중 내게 무관한 것은 없다."(Linguista sum: linguistici nihil a me alienum puto.) '말들의 모험'도 야콥슨의 이 오지랖넓은 언어학과 친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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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는 쫓겨난다’ 지구화의 근원 공포에 메스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19) 지그문트 바우만 Zygmunt Bauman

바우만은 1925년 폴란드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1968년 공산당이 주도한 반유대 캠페인의 절정기에 바르샤바대 교수직을 잃고 조국을 떠났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에서 잠시 가르치다 영국 리즈대학으로 옮겨 활발한 학문 활동을 벌이고 있다. 왕성한 저술 작업은 고은 시인을 닮았고, 통찰의 심원함은 이성복 시인을 연상시킨다. 최근 10년간 <지구화>(2000), <액체 근대>(2000), <포위된 사회>(2002), <쓰레기가 되는 삶들>(2004), <노동, 소비주의, 신빈곤>(2004), <액체 공포>(2006), <소비하는 삶>(2007), <삶의 기예>(2008), <소비자세계에 윤리가 소용 있을까?>(2009) 등의 책을 썼다. 다작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으며, 그의 시선은 전 지구를 포괄할 정도로 넓고, 인간 심리의 저 어두운 밑바닥까지 꿰뚫고 있다. 국내에는 <액체 근대>(2009), <유동하는 공포>(2009), <쓰레기가 되는 삶들>(2008), <지구화, 야누스의 두 얼굴>(2003), <자유>(2002)가 번역돼 있다.

 

 

 

 


바우만이 말하는 신식 빅브러더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을 골라내, 거기서 쫓아낸다. 용산에서, 숱한 도시재개발 현장에서 벌어지는 추방을 상기하자. 우리는 남들에게 추방당하지 않기 위해 남들을 추방하려고 애쓰며 사는, ‘리얼리티 티브이’보다 더 리얼한 삶을 살고 있다.




 

» 지그문트 바우만
 
현재 언론과 사회과학계에서 가장 빈번하게 논의되는 주제는 지구화이다. 월드와이드웹(WWW), 텔레커뮤니케이션 등 새로운 소통 테크놀로지는 시공간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지그문트 바우만도 여기서 출발한다. 지구화는 인간 조건을 동질화하기보다 오히려 양극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지구화는 역설이다. 극소수에게는 상당한 혜택을 준 반면, 세계 인구의 대부분은 철저히 외면한다. 현대 사회에서 계층화를 결정짓는 것은 이동성의 정도이다. 바우만은 지구화가 낳은 유복한 소수를 관광객이라 부르고 가난한 다수를 떠돌이라 부른다. 관광객은 시간에 산다. 공간은 중요하지 않다. 거리는 쉽게 극복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떠돌이는 게토라는 제한구역에서 산다. 도망치기 어렵다. 부자들은 전자감시장비를 갖춘 담장으로 둘러싸인 문 안의 공동체에서 도둑이 없고 이방인으로부터 안전한 환경에서 산다. 반면 떠돌이는 피난민과 이주자로 붐비는 위험한 지역에서 겉돈다.

근대 사회는 구성원들을 생산자와 군인으로 호명했다. 탈근대 단계에서는 소비자로 호명한다. 소비주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신자유주의 정서가 확산된다. 소비사회에서 빈곤층은 더는 산업예비군이 아니다. 노동시장과 산업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했다. 이제 생산하는 데는 점점 더 적은 수의 노동자만 필요하다. 그것도 매우 숙련되고 규율 잡힌 노동자만. 빈곤층은 전혀 쓸모없다. 부적당한, 결점 있는 소비자일 뿐이다. 이들은 범죄자로 취급되며 우리 시대의 새로운 공포인 테러리즘과 연결된다.  

 

바우만은 탈근대성을 ‘근대성에서 환상을 뺀 것’으로 정의한 바 있다. 그렇지만 현대 사회를 묘사하기 위해 요즘은 ‘액체 근대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바우만은 “모든 견고한 것들이 녹아내리는” 마르크스의 부르주아 근대성 비판에 이의를 제기한다. 마르크스가 꿈꾼 혁명은 과거의 잔재가 영원히 사라질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롭고도 향상된 견고한 것들이 자리 잡을 수 있게 현장을 청소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부르주아 지배질서를 송두리째 녹여버리려는 충동 뒤에 도사린 가장 강력한 동기는 지속적인 견고함을 발견하거나 발명해내려는 바람이었다고 본다. 신뢰와 확신이 고체 근대의 구성요소였다면 리스크와 불확실성이 액체 근대의 징표이다. 마르크스의 시대와 지금 또는 고체 근대와 액체 근대를 구별 짓는 것은 안정된 제도의 부재이다. 불확실성이야말로 개인화를 촉진시키는 강력한 힘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던” 시대에서 바야흐로 “흩어져야 살 가망이 있고 뭉치면 반드시 죽고 마는” 개인화 사회로 접어든 것이다.

액체 근대에 시간과 공간의 관계는 바뀌었다. 근대 권력의 속성을 가장 잘 포착한 것은 미셸 푸코가 제러미 벤담한테서 차용한 파놉티콘이다. 그렇지만 파놉티콘이 아무리 적은 비용으로 지배를 보장해준다고 해도 지배자 또한 그곳에 묶여 있어야 했다. 파놉티콘 건설과 유지에는 아무튼 비용이 들었다. 현대 사회에서 권력은 전자신호의 속도로 이동할 수 있다. 권력은 더는 공간의 저항에 발이 묶이거나 늦춰지는 일이 없다. 권력은 진정 공간에서 해방되었다. 이러한 탈원형감옥 권력관계에서 인간의 상호연대는 종말을 고한다. 원형감옥 사회에서 지배자는 어쨌든 지척에 있었다. 이제 탈원형감옥 사회에서 지배자는 멀리 있거나 또는 어디에도 없다. 지금은 독재나 종속, 억압이나 노예화가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의 액체 공포는 선택하고 행동할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족쇄와 사슬이 모두 녹아버렸기 때문에 초래되었다는 것이 바우만의 진단이다. 조지 오웰이 묘사한 구식 빅브러더는 사람들을 학교, 군대, 공장에 포함시켜 정렬시키고 합하는 데 열중했다. 바우만이 말하는 신식 빅브러더의 관심은 어디 있는가? 사람들을 배제하는 데 있다. 그들이 있는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을 골라내, 거기서 쫓아낸다. 용산에서, 숱한 도시재개발 현장에서 벌어지는 추방을 상기하자. 우리는 남들에게 추방당하지 않기 위해 남들을 추방하려고 애쓰며 사는, ‘리얼리티 티브이’보다 더 리얼한 삶을 살고 있다.

복지국가가 정당성을 주장한 기초는 시민들이 ‘인간쓰레기’로 전락하지 않도록 보호해준다는 약속이었다. 이제 복지국가의 해체와 종말을 맞아 각 국가의 정부는 새로운 정당화 공식을 찾아내야 한다. 어떻게? 바우만에 따르면 자국 시민들이 지구적 경제발전의 ‘부수적 사상자’로 전락하는 것을 개별 국가는 더는 막아낼 수 없다. 대신 국가는 새로운, 그렇지만 다루기 편한, ‘적’을 발명해낸다. 국가 내외의 ‘테러리스트’가 그들이다. 재개발과 강제철거에 반대하는 평범한 주민은 ‘도시 테러리스트’라는 딱지가 붙는다. 국가는 이제 개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테러 음모자들’의 공포를 과장하고 이들에 대한 선제공격과 예방구금을 통해 안전을 보장하겠노라고 약속하면서 스스로의 역할에 만족한다. 국가는 공포로부터 보호의 초점을 사회보장 대신 개인안보로 이동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에 따르면 공포에 맞선 이 영구전쟁에서 누구도 결코 이길 수 없다. 비록 몇 차례 전투에서 이긴다 할지라도 전쟁 그 자체의 승패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

바우만은 1989년 <현대성과 홀로코스트>를 출간하면서 세계적인 석학으로 떠올랐다. 아우슈비츠나 소련의 굴라크가 주는 도덕적 교훈 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방심하면 철조망 안에 갇히거나 가스실에 들어갈 수 있다는 개연성이 아니다. ‘적당한 조건이라면’ 우리가 가스실 경비를 서고, 굴뚝에 독가스를 넣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악은 도처에 잠복한다. 악인은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고, 별도의 신분증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아무도 믿지 마라.” 이제 사회생활에 필수요소인 신뢰는 무너졌다. 개인은 시민적 무관심으로 무장하고 타인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인간관계는 단절된다. 사람들은 구체적인 상대와 전인격적인 인간관계 맺기를 두려워한다. 신뢰하면 배신당한다. 대신 사이버 네트워크에 목숨 건다. 질적 결핍을 양적으로 보충하고자 한다. 리스크를 분산시키고 양다리 걸치기. 좀처럼 진정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쉽지 않다. 공포는 수그러들 줄 모른다. 자유의 아이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살고 있다. 평생 친구와 영원한 적을 가르는 명확한 선은 이제 희미해졌다. 대신 드넓은 회색지대가 드러난다. 경계는 매번 변하고 구획은 달라진다. 이 불확실성, 불투명함이야말로 악이 숨어 있기에 가장 좋은 거처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까? 2000년판 후기에 바우만은 다음과 같이 썼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는 오웰의 말이 옳다면, 바로 그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지배하는 자들이 과거를 제멋대로 주무를 수 없게 해야 한다.” 그에 따르면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것이 운명과 종착지, 표류와 여행의 차이를 낳는다. 현대사회의 도덕 지체가 문제다.

정일준/고려대 교수·사회학


 

 

 


 




 

» 정일준/고려대 교수·사회학
 
정일준 교수는 서울대 대학원 사회학과에서 사회사상과 역사사회학, 문화사회학을 전공했다. 미국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연구원과 워싱턴대 방문교수 겸 강사를 지냈다. 아주대 국제학부 교수를 거쳐 현재 고려대 사회학과에서 가르치고 있다. <1960년대 한국의 근대화와 지식인>(공저, 2004), <아메리카나이제이션>(공저, 2008)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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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에 연재 중인 중국 탐구이다.  

 중국 교과서에까지 실린 金庸 소설의 매력 

 

 

 

 

 

해금 후 30년의 숙성을 끝내다

최근 베이징과 홍콩에 거주하는 중국 고등학생들은 새로 교과서에 수록된 무협소설을 배우고 있다. 흔히 무협소설이라 하면 통속소설의 대명사로 인식되기 쉬운데, 어떻게 그 까다로운 검정 절차를 거쳐 중국의 국어 교과서에 수록될 수 있었을까? 그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소설가 '진용'(金庸)의 소설이다. 우리에겐 이미 '김용'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 중국 소설가 진용(金庸) ⓒ연합뉴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초기 대륙에서 무협소설은 상업주의와 자본주의의 상징처럼 인식되었다. 자본주의 소설이라는 오명에다 통속소설은 천박하다는 오해로 인해 무협 소설은 대륙에서 황색소설(에로티시즘)과 유사한 수준으로 치부되곤 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사조가 등장하기 전까지 중국 대륙에서 진용의 작품은 '금서'로 분류되었다. 대만에서도 국민당 정부는 진용의 작품을 한 동안 금서로 분류하였다.

1980년대 초 대만과 중국 대륙에서 진용의 작품이 본격적으로 해금되면서, 양안은 '김학'(金學)으로 들썩이기 시작했다. 마치 땅속에서 발굴한 황금덩어리처럼 사람들은 갑자기 접하게 된 보고를 열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김학'은 파죽지세로 동아시아 문화계를 휩쓸어버렸다. 그 전에 그의 작품은 이미 홍콩과 동남아 사회에서 경외의 대상으로 등극되어 있었다.

<설산비호>가 <아Q정전>을 대신하다

2004년 11월 베이징에서는 인민교육출판사에서 최초로 진용의 대표작인 <천룡팔부>의 일부를 교과서에 수록했다. 3차에 걸친 엄격한 검정을 거쳐 검정위원들은 진용의 작품 두 편을 선정했다. 그 후 2007년에 <설산비호> 중 제5회의 내용 일부가 재차 베이징시의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다. 그리고 홍콩에서는 진용의 이름을 동아시아에 떨친 작품인 <사조영웅전> 중 제 30회의 일부가 교과서에 편입되었다.

따라서 <설산비호>가 수록되는 대신 <아Q정전>의 일부가 교과서에서 빠졌다. 그리고 위화의 <허삼관매혈기>는 <진환생진성>을 대체했다. 루쉰 소설의 일부가 교과서에서 삭제되자 루쉰과 진용의 지지자들은 두 파로 나뉘어 격렬한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루쉰파는 진용 소설이 통속 소설에 불과하다고 폄하했고, 진용파는 루쉰파를 혁명의 오랜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자들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두 파로 갈린 지지자들의 흥분 상태와는 달리, 검정위원들과 문단에서는 진용 작품의 교과서 수록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들은 3,40년대의 중국 소설이 현대 중국문화의 요구를 모두 충족시키기엔 한계에 이르렀다고 인식했다. 그들은 부족한 부분은 진용의 작품으로 보완할 수 있다는 인식에 동의했다. 진용 작품이 지닌 현대적 문체의 매력, 수준 높은 문학성, 모방할 수 없는 심리묘사와 경관묘사 등은 진용의 작품이 지닌 문학적 뛰어남이다. 이와 더불어 진용의 작품은 중국문화의 위대한 가치를 고양시켰다고 보았다. 중국의 협의(俠義) 정신, 민족 단결적 요소, 개성 해방의 추구, 도덕적 희생정신 등은 문학성과 더불어 교육적 가치가 충분하다는 결론이었다.

통속의 형식으로 철리를 빚어내다

진용은 젊었을 때부터 반골 기질로 명성이 자자했다. 일찍이 모친을 여의고 아버지마저 공산당에 의해 반동지주로 몰려 총살당하는 청년 시절을 보내면서도, 한편 국민당에 의해 장악된 학교 분위기에 맞서 홀로 저항을 거듭하다 퇴학을 처분받았다. 반골로만 보면 그는 투창과 비수로 무장한 루쉰과 그 기질이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문학은 훗날 서로 완전히 다른 세계를 열어 밝혔다.

그의 작품은 80년대부터 타이완의 <아호> 철학 잡지에서 주목을 받았다. 자존심 높기로 유명했던 현대신유학의 대표 잡지에서 그의 작품을 철학적 관점에서 수차례 심도있게 다루기 시작한 것이다. <천룡팔부>는 민족의 화해와 중원문화의 자긍심을 넘어 불교의 철리를 무협의 형식을 빌어 완벽하게 구현했다고 평가했고, <소오강호>는 독고구검의 검법을 빌어 도교 미학의 상징성을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고 평가했고, <사조영웅문>은 유가의 우직한 선비상을 곽정이란 캐릭터를 통해 훌륭하게 그려냈다고 평가했다.

그의 문체는 피동문을 난발했던 3,40년대 중국 문학가들과는 달리 매우 현대적이라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가 그리고자 했던 소설 무대의 공간은 중화문화의 고전적 요소를 잘 드러내고 있는데, 그가 그린 세계는 민족 간의 대립을 넘어선 화해의 지평이었고 , 파벌 간의 투쟁을 무력화하는 절대무공의 경지였다. 그의 작품 속의 주인공은 항상 거대한 계파 간의 투쟁에 상처입은 개체 민초의 소중한 불씨를 되살리는 데에서부터 눈부시게 데뷔한다. <천룡팔부>의 교봉, <신조협려>의 양곽, <사조영웅문>의 곽정, <의천도룡기>의 장무기가 모두 그렇게 무대 속에 등장하였다.


▲ 2003년 중국<CCTV>에 방송된 '천룡팔부'
    동아시아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홍콩, 대만, 대륙을 막론하고 <사조영웅전>이나 <의천도룡기>, <신조협려> 등은 중화권 국가에서 너무 자주 상영되어, TV 드라마로 몇 차례 리메이크되었는지 조사하기조차 힘들다. 그리고 중화권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에서도 그의 작품은 일상생활에서 문학의 화두로 수시로 인용되고 있다. 진용에 따르면 북한에서도 그에게 펜레터를 보내는 열광 신도가 있다고 한다.

고전은 끊임없이 리메이크되고 되새겨진다. 동아시아에서 진용만큼 광범위하고 각계각층의 독자를 소유한 문호가 또 있을까? 드넓은 역사의 무대 속에서 애타는 남녀 간의 애정 묘사를 이끌어 내고, 100명이 넘는 인물들이 등장해 무대를 촘촘히 채우고, 이를 다시 중국 특유의 미학 경지로 끌어올리고, 보편적인 철학적 상징으로 승화시킨 문학세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의 작품을 일개 통속소설로 치부하는 자들은 과연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 보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강진석 오산대 교수 중국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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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기사를 옮겨와본다. 

 

자퇴가 제일 쉬웠어요 난 가난하니까 ①


지난해 12월 서울 한 고등학교 교사들은 < 꿈을 잃어버린 학생들에 관한 연구 > 라는 아주 독특한 제목의 보고서를 펴낸 바 있다. 아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까 걱정돼 외부에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그 내용은 사뭇 충격적이었다. 전교생 1600여 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저소득층 학생의 절반 이상이 영어?수학 과목의 공부를 '포기'한 상태였고, 학습동기나 실행력, 자존감도 일반 학생에 비해 크게 뒤떨어졌다.

보고서는 이 중에서도 '자존감'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보고서는 "자존감은 건강한 삶을 살고 학업, 직업, 대인관계 등 온갖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다. 학교는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할 수 있는 학생들을 키워내야 한다"라며 의도했든 안 했든 교사가 가난한 아이들에게 부정적 자아를 심어주지는 않았는지 성찰해보자고 촉구했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김 아무개 교사는 "국가가 나서지 않는다고 방관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심각한 상황이다"라고 진단한다. "낮은 자존감과 문제 행동, 주변 사람들의 안 좋은 시선이 악순환을 이루면서 무기력하게 학교 생활을 하거나 떠나는 아이가 많다. 국가는 이들을 외면하지만 매일매일 만나고 교육해야 하는 교사는 그러기 힘들다. 혹 우리가 먼저 그 아이들을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교사가 학생을 포기하는 것은 '선생님'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꿈을 잃은 아이들에 관한 연구

공부를 포기하거나 학교를 그만두는(학업 중단 또는 자퇴) 아이가 급속히 늘고 있다고 한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민주노동당 권영길의원실이 최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8년 학업을 중단한 고교생 수는 3만769명(질병 제외)으로 2006년에 비해 9000여 명이 증가했고 중단율(자퇴생 수/총 학생 수)도 0.012에서 0.017로 상승했다.

특히 저소득층 비율이 높은 전문계(실업계) 고등학교는 상황이 더 심각해서 학업 중단율이 전체 평균의

2배에 이르고, 특목고에 비해서는 4.3배나 높았다. 소득과 전문계고 입학의 상관관계는 학부모의 직업분포를 보면 확인된다. 2009년 서울 시내 외고·일반고·전문계고 신입생 아버지가 상위직인 경우는 외고와 일반고는 각각 44.8%, 13.1%에 달하는 반면 전문계고는 3.7%에 불과했고, 아버지가 하위직인 경우는 각각 11.1%, 28.4%, 32.3%로 역순을 보였다. 또한 전문계고 학생 가운데 최소한 15% 이상이 편모 가정으로 추정되며, 나아가 그 어머니들의 70%가량은 최저임금 수준의 비정규직 노동자로 파악되고 있다.

학업 중단 이유에는 학습 또는 학교생활 부적응, 가정 형편이나 불화 등 여러 유형이 있지만 모두 경제적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2007년 ㅅ상고를 자퇴한 이 아무개양(19)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잠깐 학습지 공부를 한 것 외에는 사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나쁜 애도 많고 선생님도 너무 엄격해서 학교 가기가 싫었다"라고 자퇴 이유를 밝혔지만 근원을 따져보면 가난과 사교육 소외, 학업 의지 상실이 이미 일찍부터 이양을 괴롭혔다.

"공부 잘하는 애들이 부러웠어요. 그래서 좀 늦었지만 중2 때부터 밤도 새워가며 열심히 공부를 했죠. 하지만 기초가 없어서인지 잘 안되더라고요. 학원을 다니고 싶었지만 과일 장사를 하는 아버지가 버는 돈으로는…. 동생도 둘이나 있어서 차마 말을 못했어요. 결국 바닥을 헤매다가 성적에 맞춰서, 선생님이 가라는 데로 간 곳이 전문계고였어요. 그런데 분위기가 너무 안 좋은 학교더라고요. 잘사는 집 애들처럼 어릴 때부터 사교육을 받고 그랬다면 전문계고도 안 가고, 제 인생이 좀 달라질 수도 있었겠죠?""자퇴? 하고 싶은대로 해"

서울 용산구의 한 복지기관에서 월 100여만원을 받고 일하는 장 아무개씨(50)는 가정 형편과 불화 때문에 요즘 걱정이 태산이다. 아이가 넷인데, 고등학생인 첫째는 어릴 때 학원을 다녀서인지 어느 정도 공부를 따라가고 있지만 사교육을 받지 않은 둘째(중학생)는 성적이 나쁜 정도를 넘어 아예 공부 자체에 뜻이 없어 보인다. 게다가 요즘 아내와도 사이가 좋지 않아 집안 분위기가 말이 아니라고 한다.

"돈이 없으면 아무래도 가정이 화목하기 어렵죠. 아내와 자주 싸우는데, 아이들도 스트레스를 상당히 받는 것 같아요. 혹시 엇나가지 않을까 조마조마해요. 둘째한테 '왜 이리 성적이 안 나오냐'고 화를 내보곤 하지만, 솔직히 해주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부끄러울 뿐이에요."

물론 가정 형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지나친 학력주의?학벌주의 문화나 성적 중심의 공교육 시스템, 갈수록 좁아지는 취업문, 전문계고의 열악한 교육 환경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학업 중단' 현상은 지금 이 시각, 전국 곳곳에서 이미 우후죽순 터지고 있는 일이다. 한 해 3만명이면 하루에 80여 명꼴이다. 앞서 김 아무개 교사의 지적처럼 국가를 원망하며 방관만 할 수는 없으며, 다른 어느 곳보다도 '매일매일 아이들을 만나는' 학교와 교사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사안이다.

권영길 의원도 "고교 진학률이 99.7%이고, 대학 진학률이 84%인 나라에서 고교를 마치지 않고 안정적인 직장을 가질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학업 중단은 그 자체로 빈곤과 불안정 노동의 시작으로 봐야 한다. 학생들은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미성년자다. 제도적?재정적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하며, 최소한 교실에는 빈곤의 침투가 없도록 해야 한다. 방치된 아이들은 작은 관심에도 적극 반응한다. 꿈꿀 수 있는 미래를 제시하고, 대화하고, 교감할 대상이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현실은 별로 그렇지 못한 듯하다. 자퇴를 하거나 집안이 가난한 아이 대부분은 학교에서 받은 크고 작은 상처를 저마다 또렷이 기억했다. 르포 작가 김순천씨가 최근 펴낸 < 대한민국 10대를 인터뷰하 다 > 라는 책에는 중학교 때 자퇴를 했다가 ㅇ공고에 재입학한 정미진양(19)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하루는 졸업 후 진로가 걱정돼 학교 진로상담실을 찾아갔다고 한다. 그런데 미진이가 느낀 선생님의 태도는 이런 것이었다.

"상담을 받으면 뭔가 뾰족한 수가 나올 줄 알고 간 건데, 한 선생님이 그냥 '네가 있는 위치에서 열심히 해라' 그러고 마는 거예요. 그 뒤로는 거기 절대로 안 가요. 너무 형식적이에요. 틀에 박혀 있고. 선생님 딴에는 '편하게 말해라, 네 심정을 다 이해한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데 제가 보기엔 형식적인 것 같아요."

고동우 기자 / intereds@sisain.co.kr

자퇴가 제일 쉬웠어요 난 가난하니까 ②

아버지가 건설현장 인부로 일하는 ㄷ중학교 박 아무개양(16)은 "공부 잘하고 잘사는 아이만 챙기는 선생님에게 화가 난다"라고 말했다. "질문을 해도 꼭 그런 친구에게만 해요. '어머니한테 고맙다는 말씀 전해라' 같은 말도 가끔 하고요. 우리 엄마는 한번도 학교에 오신 적이 없는데…."
월 80여만원을 받고 요양치료사로 일하는 황 아무개씨(47)는 "전문계 고등학생인 딸아이가 두 달 동안 학교 급식을 안 먹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알고 보니 급식비를 교육청에서 지원받는다는 사실이 선생님의 부주의로 친구들에게 알려지면서 아이가 자존심이 상해서 그랬던 것이었다"라는 이야기를 눈물을 훔치며 전하기도 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학생이 학교를 그만두기까지 '과정'이다. 대다수는 그렇지 않겠지만, 아이들의 자퇴에 별 문제의식이 없는 학교와 교사도 적지 않은 듯하다. 2008년 ㅅ공고를 자퇴한 뒤 올해 서울 은평구의 한 전문계고에 재입학한 박 아무개양(18)은 1년 사이에 '천당'과 '지옥'을 한꺼번에 경험하고 있다.

"작년에 자퇴할 때는 선생님이 너무 고마웠어요. 가출해서 학교에 안 나가고 있었는데 집에까지 찾아오고, 심지어 쉼터(청소년 보호기관)에도 연락을 해 저를 설득하려고 했거든요. 결국 자퇴를 하긴 했지만

그런 선생님 처음 봤어요. 애정이 느껴졌죠. 하지만 지금 학교는 아니에요. 애들이 그만두든 말든 거의 신경을 안 써요. 가출한 지 한 3주가 된 애가 있었는데, 선생님은 설득은커녕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서 자퇴서 쓰라고 하더라니까요."

경기도의 한 전문계고를 자퇴한 김 아무개군(18)도 "자퇴가 너무 쉬웠다"라고 말한다. "워낙 평판이 안 좋은 학교여서인지 애들이 입학하자마자 자퇴를 많이 해요. 그런데 선생님들은 '자퇴하고 싶으면 하라'는 식이지 전혀 말리지를 않아요. 수업 시간에 떠들어도 별 소리를 안 하고요. 조금이라도 공부할 마음이 있는 애들은 도저히 다닐 수가 없는 학교죠."

물론 교사들 사정도 그리 넉넉하지는 않다. 이성주 서울공고 교사(전교조 실업교육위원회 정책국장)는 "가난한 아이일수록 더욱 집중해서 돌봐야 하지만 한 반에 30여 명이나 되는 현실에서 일일이 챙기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특히 전문계 쪽은 성적과 자존감이 떨어지는 아이가 많이 오다보니 면학 분위기 조성이 한결 힘들다"라며 자퇴를 막을 구체적인 대안으로 '휴학 제도의 활성화'를 제안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학교나 교사가 자퇴를 방치해선 안 될 것이다. 학교마저 손을 놓으면 아이들은 정말 갈 곳이 없다. 복지기관이나 상담소 같은 곳이 있지만 아무래도 낯설 수밖에 없고 이용률도 낮은 것으로 안다. 학교에 다시 복귀하기 쉽고 어려울 때 언제든 손을 뻗을 수 있도록 학교라는 '최후의 보루'는 유지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질병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만 적용되고 있는데, 고등학교도 대학처럼 휴학 제도 같은 것을 활성화하면 어떨까 싶다."

내가 다시 학교로 돌아온 이유

학교를 그만둔 아이는 거의가 홀로 검정고시를 준비하거나 아니면 아르바이트 등으로 돈을 벌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2006년 한국청소년개발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학업 중단 청소년의 70%가량이 아르바이트에 참여했다고 나타났다. 하지만 청소년이라는 신분과 아르바이트라는 노동 형태의 특성상 여건이 좋을 리가 없다. 한 교육단체의 조사에서는 아르바이트를 한 아이의 38.5%가 임금?노동시간 등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처럼 학교가 '버린' 아이들의 눈앞에 당장 펼쳐지는 세상은 두말할 나위 없이 '냉혹한 생존의 세계'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자퇴를 한 뒤 지금은 부천의 한 작은 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박 아무개씨(24)는 "예전에 아는 사람들이 놀고 있으면 '그 나이 먹어서 뭐했는지 모르겠다'고 한심해하곤 했는데 지금은 이력서를 쓸 때 설명할 게 없는 내 자신이 당황스럽다. 학력·자격증·경력란에 쓸 내용이 하나도 없고 더는 이력서를 쓰고 싶지도 않다"라고 토로한다.

"아버지의 사업이 갑작스럽게 망하면서 그 충격으로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어요. 그 후 패밀리 레스토랑, 사무실 경리, 마트 계산원, 백화점 판매직원, 노래방 도우미 등 안 해본 일이 없었죠. 한번은 친구 부모님 소개로 건축사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정규직 채용 제의를 받았는데 학력이 걸려서 무산된 적도 있었어요."

이런 현실이 빤히 보이는데도, 국가 또는 학교가 학생들의 '자퇴 러시'를 현재처럼 나 몰라라 방치하는 건 일종의 직무유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사 서두에서 인용한 < 꿈을 잃어버린 학생들에 관한 연구 > 보고서에는 눈길을 끄는 조사 결과가 또 하나 있다. 공부를 포기한 학생들도 일반 학생 못지않게 자신의 진로나 미래에 대한 꿈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보고서는 이에 "성적이 부진하다고 해서 학생들이 꿈조차 상실하고 무기력하게 살고 있다고 여기는 건 아닌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라며 입시 위주의 교육과정에서 소외받는 이들을 위한 '여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것이 교사에서 '스승'으로 거듭나기 위한 자그마한 몸짓이 될 것이라면서 말이다.

앞서 자퇴를 했다가 복학한 박 아무개양에게 다시 학교로 돌아온 이유를 묻자, 그는 좋은 선생님에 대한 기억, 친구들과의 즐거웠던 추억, 학교라는 공간의 친숙함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특히 자퇴 의사를 밝혔음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설득했던 한 선생님에 대해선 매우 각별한 인상이 남아 있는 듯했다. 가정 형편도 어렵고, 사교육도 제대로 못 받는 아이들에게 주변에 믿고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큼 큰 힘이 되는 게 또 있을까.

고동우 기자 / intered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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