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기사를 옮겨와본다.
자퇴가 제일 쉬웠어요 난 가난하니까 ①
지난해 12월 서울 한 고등학교 교사들은 < 꿈을 잃어버린 학생들에 관한 연구 > 라는 아주 독특한 제목의 보고서를 펴낸 바 있다. 아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까 걱정돼 외부에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그 내용은 사뭇 충격적이었다. 전교생 1600여 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저소득층 학생의 절반 이상이 영어?수학 과목의 공부를 '포기'한 상태였고, 학습동기나 실행력, 자존감도 일반 학생에 비해 크게 뒤떨어졌다.
보고서는 이 중에서도 '자존감'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보고서는 "자존감은 건강한 삶을 살고 학업, 직업, 대인관계 등 온갖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다. 학교는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할 수 있는 학생들을 키워내야 한다"라며 의도했든 안 했든 교사가 가난한 아이들에게 부정적 자아를 심어주지는 않았는지 성찰해보자고 촉구했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김 아무개 교사는 "국가가 나서지 않는다고 방관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심각한 상황이다"라고 진단한다. "낮은 자존감과 문제 행동, 주변 사람들의 안 좋은 시선이 악순환을 이루면서 무기력하게 학교 생활을 하거나 떠나는 아이가 많다. 국가는 이들을 외면하지만 매일매일 만나고 교육해야 하는 교사는 그러기 힘들다. 혹 우리가 먼저 그 아이들을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교사가 학생을 포기하는 것은 '선생님'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꿈을 잃은 아이들에 관한 연구
공부를 포기하거나 학교를 그만두는(학업 중단 또는 자퇴) 아이가 급속히 늘고 있다고 한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민주노동당 권영길의원실이 최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8년 학업을 중단한 고교생 수는 3만769명(질병 제외)으로 2006년에 비해 9000여 명이 증가했고 중단율(자퇴생 수/총 학생 수)도 0.012에서 0.017로 상승했다.
특히 저소득층 비율이 높은 전문계(실업계) 고등학교는 상황이 더 심각해서 학업 중단율이 전체 평균의
2배에 이르고, 특목고에 비해서는 4.3배나 높았다. 소득과 전문계고 입학의 상관관계는 학부모의 직업분포를 보면 확인된다. 2009년 서울 시내 외고·일반고·전문계고 신입생 아버지가 상위직인 경우는 외고와 일반고는 각각 44.8%, 13.1%에 달하는 반면 전문계고는 3.7%에 불과했고, 아버지가 하위직인 경우는 각각 11.1%, 28.4%, 32.3%로 역순을 보였다. 또한 전문계고 학생 가운데 최소한 15% 이상이 편모 가정으로 추정되며, 나아가 그 어머니들의 70%가량은 최저임금 수준의 비정규직 노동자로 파악되고 있다.
학업 중단 이유에는 학습 또는 학교생활 부적응, 가정 형편이나 불화 등 여러 유형이 있지만 모두 경제적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2007년 ㅅ상고를 자퇴한 이 아무개양(19)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잠깐 학습지 공부를 한 것 외에는 사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나쁜 애도 많고 선생님도 너무 엄격해서 학교 가기가 싫었다"라고 자퇴 이유를 밝혔지만 근원을 따져보면 가난과 사교육 소외, 학업 의지 상실이 이미 일찍부터 이양을 괴롭혔다.
"공부 잘하는 애들이 부러웠어요. 그래서 좀 늦었지만 중2 때부터 밤도 새워가며 열심히 공부를 했죠. 하지만 기초가 없어서인지 잘 안되더라고요. 학원을 다니고 싶었지만 과일 장사를 하는 아버지가 버는 돈으로는…. 동생도 둘이나 있어서 차마 말을 못했어요. 결국 바닥을 헤매다가 성적에 맞춰서, 선생님이 가라는 데로 간 곳이 전문계고였어요. 그런데 분위기가 너무 안 좋은 학교더라고요. 잘사는 집 애들처럼 어릴 때부터 사교육을 받고 그랬다면 전문계고도 안 가고, 제 인생이 좀 달라질 수도 있었겠죠?""자퇴? 하고 싶은대로 해"
서울 용산구의 한 복지기관에서 월 100여만원을 받고 일하는 장 아무개씨(50)는 가정 형편과 불화 때문에 요즘 걱정이 태산이다. 아이가 넷인데, 고등학생인 첫째는 어릴 때 학원을 다녀서인지 어느 정도 공부를 따라가고 있지만 사교육을 받지 않은 둘째(중학생)는 성적이 나쁜 정도를 넘어 아예 공부 자체에 뜻이 없어 보인다. 게다가 요즘 아내와도 사이가 좋지 않아 집안 분위기가 말이 아니라고 한다.
"돈이 없으면 아무래도 가정이 화목하기 어렵죠. 아내와 자주 싸우는데, 아이들도 스트레스를 상당히 받는 것 같아요. 혹시 엇나가지 않을까 조마조마해요. 둘째한테 '왜 이리 성적이 안 나오냐'고 화를 내보곤 하지만, 솔직히 해주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부끄러울 뿐이에요."
물론 가정 형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지나친 학력주의?학벌주의 문화나 성적 중심의 공교육 시스템, 갈수록 좁아지는 취업문, 전문계고의 열악한 교육 환경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학업 중단' 현상은 지금 이 시각, 전국 곳곳에서 이미 우후죽순 터지고 있는 일이다. 한 해 3만명이면 하루에 80여 명꼴이다. 앞서 김 아무개 교사의 지적처럼 국가를 원망하며 방관만 할 수는 없으며, 다른 어느 곳보다도 '매일매일 아이들을 만나는' 학교와 교사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사안이다.
권영길 의원도 "고교 진학률이 99.7%이고, 대학 진학률이 84%인 나라에서 고교를 마치지 않고 안정적인 직장을 가질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학업 중단은 그 자체로 빈곤과 불안정 노동의 시작으로 봐야 한다. 학생들은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미성년자다. 제도적?재정적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하며, 최소한 교실에는 빈곤의 침투가 없도록 해야 한다. 방치된 아이들은 작은 관심에도 적극 반응한다. 꿈꿀 수 있는 미래를 제시하고, 대화하고, 교감할 대상이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현실은 별로 그렇지 못한 듯하다. 자퇴를 하거나 집안이 가난한 아이 대부분은 학교에서 받은 크고 작은 상처를 저마다 또렷이 기억했다. 르포 작가 김순천씨가 최근 펴낸 < 대한민국 10대를 인터뷰하 다 > 라는 책에는 중학교 때 자퇴를 했다가 ㅇ공고에 재입학한 정미진양(19)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하루는 졸업 후 진로가 걱정돼 학교 진로상담실을 찾아갔다고 한다. 그런데 미진이가 느낀 선생님의 태도는 이런 것이었다.
"상담을 받으면 뭔가 뾰족한 수가 나올 줄 알고 간 건데, 한 선생님이 그냥 '네가 있는 위치에서 열심히 해라' 그러고 마는 거예요. 그 뒤로는 거기 절대로 안 가요. 너무 형식적이에요. 틀에 박혀 있고. 선생님 딴에는 '편하게 말해라, 네 심정을 다 이해한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데 제가 보기엔 형식적인 것 같아요."
고동우 기자 / intereds@sisain.co.kr
자퇴가 제일 쉬웠어요 난 가난하니까 ②
아버지가 건설현장 인부로 일하는 ㄷ중학교 박 아무개양(16)은 "공부 잘하고 잘사는 아이만 챙기는 선생님에게 화가 난다"라고 말했다. "질문을 해도 꼭 그런 친구에게만 해요. '어머니한테 고맙다는 말씀 전해라' 같은 말도 가끔 하고요. 우리 엄마는 한번도 학교에 오신 적이 없는데…."
월 80여만원을 받고 요양치료사로 일하는 황 아무개씨(47)는 "전문계 고등학생인 딸아이가 두 달 동안 학교 급식을 안 먹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알고 보니 급식비를 교육청에서 지원받는다는 사실이 선생님의 부주의로 친구들에게 알려지면서 아이가 자존심이 상해서 그랬던 것이었다"라는 이야기를 눈물을 훔치며 전하기도 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학생이 학교를 그만두기까지 '과정'이다. 대다수는 그렇지 않겠지만, 아이들의 자퇴에 별 문제의식이 없는 학교와 교사도 적지 않은 듯하다. 2008년 ㅅ공고를 자퇴한 뒤 올해 서울 은평구의 한 전문계고에 재입학한 박 아무개양(18)은 1년 사이에 '천당'과 '지옥'을 한꺼번에 경험하고 있다.
"작년에 자퇴할 때는 선생님이 너무 고마웠어요. 가출해서 학교에 안 나가고 있었는데 집에까지 찾아오고, 심지어 쉼터(청소년 보호기관)에도 연락을 해 저를 설득하려고 했거든요. 결국 자퇴를 하긴 했지만
그런 선생님 처음 봤어요. 애정이 느껴졌죠. 하지만 지금 학교는 아니에요. 애들이 그만두든 말든 거의 신경을 안 써요. 가출한 지 한 3주가 된 애가 있었는데, 선생님은 설득은커녕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서 자퇴서 쓰라고 하더라니까요."
경기도의 한 전문계고를 자퇴한 김 아무개군(18)도 "자퇴가 너무 쉬웠다"라고 말한다. "워낙 평판이 안 좋은 학교여서인지 애들이 입학하자마자 자퇴를 많이 해요. 그런데 선생님들은 '자퇴하고 싶으면 하라'는 식이지 전혀 말리지를 않아요. 수업 시간에 떠들어도 별 소리를 안 하고요. 조금이라도 공부할 마음이 있는 애들은 도저히 다닐 수가 없는 학교죠."
물론 교사들 사정도 그리 넉넉하지는 않다. 이성주 서울공고 교사(전교조 실업교육위원회 정책국장)는 "가난한 아이일수록 더욱 집중해서 돌봐야 하지만 한 반에 30여 명이나 되는 현실에서 일일이 챙기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특히 전문계 쪽은 성적과 자존감이 떨어지는 아이가 많이 오다보니 면학 분위기 조성이 한결 힘들다"라며 자퇴를 막을 구체적인 대안으로 '휴학 제도의 활성화'를 제안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학교나 교사가 자퇴를 방치해선 안 될 것이다. 학교마저 손을 놓으면 아이들은 정말 갈 곳이 없다. 복지기관이나 상담소 같은 곳이 있지만 아무래도 낯설 수밖에 없고 이용률도 낮은 것으로 안다. 학교에 다시 복귀하기 쉽고 어려울 때 언제든 손을 뻗을 수 있도록 학교라는 '최후의 보루'는 유지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질병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만 적용되고 있는데, 고등학교도 대학처럼 휴학 제도 같은 것을 활성화하면 어떨까 싶다."
내가 다시 학교로 돌아온 이유
학교를 그만둔 아이는 거의가 홀로 검정고시를 준비하거나 아니면 아르바이트 등으로 돈을 벌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2006년 한국청소년개발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학업 중단 청소년의 70%가량이 아르바이트에 참여했다고 나타났다. 하지만 청소년이라는 신분과 아르바이트라는 노동 형태의 특성상 여건이 좋을 리가 없다. 한 교육단체의 조사에서는 아르바이트를 한 아이의 38.5%가 임금?노동시간 등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처럼 학교가 '버린' 아이들의 눈앞에 당장 펼쳐지는 세상은 두말할 나위 없이 '냉혹한 생존의 세계'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자퇴를 한 뒤 지금은 부천의 한 작은 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박 아무개씨(24)는 "예전에 아는 사람들이 놀고 있으면 '그 나이 먹어서 뭐했는지 모르겠다'고 한심해하곤 했는데 지금은 이력서를 쓸 때 설명할 게 없는 내 자신이 당황스럽다. 학력·자격증·경력란에 쓸 내용이 하나도 없고 더는 이력서를 쓰고 싶지도 않다"라고 토로한다.
"아버지의 사업이 갑작스럽게 망하면서 그 충격으로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어요. 그 후 패밀리 레스토랑, 사무실 경리, 마트 계산원, 백화점 판매직원, 노래방 도우미 등 안 해본 일이 없었죠. 한번은 친구 부모님 소개로 건축사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정규직 채용 제의를 받았는데 학력이 걸려서 무산된 적도 있었어요."
이런 현실이 빤히 보이는데도, 국가 또는 학교가 학생들의 '자퇴 러시'를 현재처럼 나 몰라라 방치하는 건 일종의 직무유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사 서두에서 인용한 < 꿈을 잃어버린 학생들에 관한 연구 > 보고서에는 눈길을 끄는 조사 결과가 또 하나 있다. 공부를 포기한 학생들도 일반 학생 못지않게 자신의 진로나 미래에 대한 꿈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보고서는 이에 "성적이 부진하다고 해서 학생들이 꿈조차 상실하고 무기력하게 살고 있다고 여기는 건 아닌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라며 입시 위주의 교육과정에서 소외받는 이들을 위한 '여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것이 교사에서 '스승'으로 거듭나기 위한 자그마한 몸짓이 될 것이라면서 말이다.
앞서 자퇴를 했다가 복학한 박 아무개양에게 다시 학교로 돌아온 이유를 묻자, 그는 좋은 선생님에 대한 기억, 친구들과의 즐거웠던 추억, 학교라는 공간의 친숙함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특히 자퇴 의사를 밝혔음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설득했던 한 선생님에 대해선 매우 각별한 인상이 남아 있는 듯했다. 가정 형편도 어렵고, 사교육도 제대로 못 받는 아이들에게 주변에 믿고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큼 큰 힘이 되는 게 또 있을까.
고동우 기자 / intereds@sis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