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상황

들뢰즈는 독특하게 철학을 연구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나도 이런 말을 중시한다. 그 철학자의 개념 이전에 감정적 뉘앙스를 중시하라. 어떤 사람은 위대한 철학자를 연구할 때 항시 그 철학자의 성적인 경향성이 어떠했을까를 상상한다고 했다. 그럴 듯하지 않은가. 소크라테스의 성적인 취향과 경향성은 어떠했을까? 사디스트? 공자는? 마조키스트? 들뢰즈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철학자는 새로운 개념을 야기하고 그것을 제시하지만, 그들은 그러한 개념이 어떠한 문제에 응답하는 것인지, 그 문제 자체를 말하지 않는다. ...... 철학사는 어떤 특정 철학자가 기술한 것을 또 한번 기술하는 것이 아니며, 철학자에게는 반드시 언외(言外)로 암시하는 것이 있지만 그것은 무엇인지, 철학자 본인은 기술하고 있지 않으나 그가 말하는 것 속에 나타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말해야 한다.

중요한 지적이다. 책을 읽을 때 항시 언외지의(言外之意)를 읽어야 한다는 것은 시 뿐만 아니라 고전을 읽는 핵심이기도 했다. 철학자 자신이 스스로 무엇을 사고하고 있는지 그 스스로도 그 전부를 완전히 알고 있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들뢰즈는 문제(problem)과 질문(question)을 구별한다. 질문에도 진짜 질문과 가짜 질문이 있다. 
질문 이전에 항시 문제 상황이라는 것이 있다. 문제 상황이 명확하지 않은 질문은 가짜 질문이다. 고쿠분 고이치로는 <들뢰즈 제대로 읽기>라는 책에서 “철학자에게 사유를 강제하는 어떠한 질문, 그 철학자 본인에게조차 명석하게 의식되고 있지 않은 그 질문을 그려 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들뢰즈는 그것을 ‘사유의 이미지’라고 불렀다고 한다.

 

 

 

 

 

사유는 사유해야만 한다고 의지해서 실행되는 것이 아니다. 문제 상황에 빠져 사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 부득이함 때문에 사유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는 사유는 어쩌면 위선이다. 문제 상황에서 일어나지 않는 질문은 가짜 질문인지도 모른다. 과시와 유희일 뿐인 질문들. 따지고 보면 문제 상황의 미세한 결들과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유는 사치일 수 있다. 처절한 문제 상황이 아닐 수도 있다. 
인문학의 유행이란 어찌 보면 사치스러운 질문들에 대한 매끄럽고 맛깔스런 답변들에 대한 기대가 아닐까. 자신의 문제 상황에서 나오지 않은 언어들은 그래서 부박하고 달콤하다. 물론 사람들은 그것을 또 기가 막히게 간파하기도 한다. 
질문 이전에 그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 문제 상황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은 철학자의 사고가 그 철학자의 의식을 넘어서는 보다 넓은 범위를 묻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철학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지 않은가.

사람들은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듯하지만 자신의 관심과 이익과 관련된 것만을 들으려 하고 자신의 문제와 질문을 투사하여 타인의 설명들을 이해하려고 한다. 들뢰즈의 이러한 태도는 단지 철학자를 이해하는 방법일 뿐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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