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도덕인가' 토론회] 김용철 변호사, 다시 '삼성을 생각한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있어야 하겠지만…. (부끄러우면) 인생 한 방인데 나와야죠!"

7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한국 사회, 왜 도덕인가' 토론회에서 김용철 변호사에게 가장 많이 쏟아진 질문은 역시 '삼성'이었다. 2007년 양심 선언을 하고 나서, 최근에는 삼성 불매 운동에도 힘을 실어줬던 김 변호사는 사회자(김민웅 성공회대학교 교수), 청중의 질문에 평소 고민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이건희 일가와 삼성 임직원의 '부당 거래'?

김용철 변호사가 가장 난감해한 질문은 청중에게서 나왔다.

청중 : 삼성이 문제가 아니라 이건희 일가가 잘못 아닌가? 삼성과 삼성 임직원 전체를 싸잡아서 비판하는 게 과연 맞는가?

김용철 : 삼성 비자금 특검 수사 때 2500명의 임직원이 소환을 당했다. 나 말고도 한두 명은 진실을 말할줄 알았다. 그런데 한 명도 없었다. 물론 나중에 술 마시고 전화해서 '미안하다' 하는 사람은 있었지만…. 이렇게 삼성을 다니는 임직원이 이건희 일가의 불법, 탈법을 알면서도 침묵한다면 그것 역시 문제 아닌가?

한 번은 '뇌물로 누구를 매수해라' 이런 임무가 떨어졌다.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상대가 그 돈을 받지 않게 만들었다. '형님, 이거 이건희가 갖다 주라는데 받을 거요?' 이렇게 물으면 (검사) 대부분은 차마 돈을 못 받는다. 그래도 기어이 받는 사람이 있었다. 내 마음이 오죽했겠나. 그런 비리를 수사하던 사람이 (뇌물 청탁을) 해야 하니 당연히 마음의 병이 났다.

물론 생계 중요하다. 나 역시 아들을 비롯한 가족에게 수차례 이런 얘기를 들었다. "가족을 위해서 (삼성에 다니면서) 그냥 사시면 안 되느냐." 그렇게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면 계속 부끄러워하면서 삼성을 다녀야겠지. 하지만 (그렇게 부끄럽다면) 인생 한 방인데 나와야지!


▲ 김용철 변호사. ⓒ프레시안(최형락)


김용철 변호사는 이렇게 자신의 과거를 회고하며 "이 자리에 나오는 게 불편했다"라고 말했다. 대형 범죄만 잘 처리해도 도덕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범죄 행위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도덕을 이야기한다는 게 영 불편했던 것이다.

"지난 특검 때 (밝혔듯이) 삼성 비자금만 10조 원 정도 된다. 10조 원이면 대한민국 등록금 전액이다. 아까 우석훈 박사가 유럽 대학 등록금은 몇 십만 원에 그치는 수준이라 부럽다고 했는데, 그 돈이면 우석훈 박사가 말한 유럽식 대학 등록금, 우리도 할 수 있다.

나는 우리 사회가 굳이 도덕까지 이야기할 것도 없다고 본다. 이런 범죄만 제대로 다뤄도 훨씬 괜찮은 사회가 될 것이다."

한국 사회, 문제는 무엇인가

김용철 변호사가 보기에 한국 사회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사회를 맡은 성공회대학교 김민웅 교수는 무상 급식복지 국가를 화두로 꺼내면서 한국 사회에 대한 진단을 요구했다.

김민웅 : 보수 세력은 무상 급식과 같은 복지 정책이 열심히 일할 동기를 약화시킨다고 이야기한다. 경쟁과 성취가 중요한 사회에서 복지가 보편화하면 이른바 '복지병'이 생긴다는 것이다.

김용철 : 양심 선언 때 친해진 신부들에게 이런 얘기를 들었다. 요즘에는 신학대학교강남 학생만 들어와서 걱정이라고. 사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강북의 가난한 학생은 신부가 되기도 어려운 것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이웃을 살펴야 할 신부마저도 강남 학생 몫이 되는 사회가 과연 정상인가?

그래서 나는 로스쿨 제도도 반대다. 졸업까지 생활비까지 염두에 두면 몇 억 원이 들어야 변호사 자격을 가질 수 있다면, 그런 사회야말로 계급 사회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무상 급식과 같은 복지 정책이야말로 이런 계급 사회로 가는 길을 가로막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정책이다.

김민웅 : 오세훈 서울시장은 무상 급식과 같은 복지 정책을 '망국적 파퓰리즘'이라고 몰아붙이는데….

김용철 : 세종로에 흉칙한 세종대왕상을 세우고, '한강 르네상스' 운운하는 쓸데없는 사업을 하는 돈으로 충분히 아이들 밥은 먹일 수 있지 않은가? 오세훈 시장이 저러는 걸 보면 자꾸 누구를 닮으려고 하는 것 같은데. 최소한 한국이 밥은 학교에서 공짜로 먹일 수 있는 나라로 성장한 것 아닌가?

미국 헌법이나 우리나라 헌법 어디에도 자본주의라는 말은 안 나온다. 우리 헌법에는 오히려 재산권을 공공 이익에 맞게 행사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나는 복지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지금 한국 사회가 문제가 많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정치인에도 보수 언론에도 속지 말고 시민이 나서야"

김용철 변호사는 '좀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 정치인에게도, 보수 언론에도 속지 말고 시민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정치인 이상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삼성에 들어가면 전부 취업을 잘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국민들 의식 속에 암암리에 '돈이 최고'라는 인식이 싹트고 있어서 재벌과 언론, 정치인이 '부당 거래'를 해 권력을 유지하는 것을 묵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부당한 거래를 깨기 위해서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나는 삼성을 다니면서 내 눈을 쳐다보지 못했다. 돈으로 갖고 싶은 걸 다 갖게 되는 순간 눈빛이 탁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나 자신도 (이건희 등과) 비슷한 사람이 돼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권력과 부를 확대할 고민만 하는 것은 불행한 영혼이 되는 것이다. 내가 삼성을 나온 이유다."


ⓒ프레시안(최형락)


김용철 변호사는 한때의 잘못을 회개하려는 듯 여건이 된다면 최대한 선한 일을 하면서 살려고 노력한다. 그게 비록 '위선'으로 보일일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장애인을 가르치는 야학 교사도 하고 생각의 깊이를 넓히고자 전남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공부한다.

이렇게 밖에서 본 세상은 그가 삼성 안에서 보던 세상보다 훨씬 더 문제가 많았다.

"어느 날 학생들이 수업을 계속 빠졌다. 알고 보니 시위를 나가는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중증 장애인에 대한 예산이 대폭 깎여서 항의 시위를 한단다. 연평도 포격 때 자기들 월급은 슬그머니 올리는 국회의원들이 중증 장애인 예산이 깎아는 데는 누구 하나 말하는 이가 없었다. 이런 정치인을 믿는 것보다는 시민이 나서야 한다."

김용철 변호사는 마지막으로 세상의 진실을 가리는 보수 언론을 놓고도 쓴소리를 했다.

"양심 선언을 하는 과정에서 한국 사회 만악의 근원 중 하나가 바로 조·중·동으로 상징되는 보수 언론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다. 조·중·동은 절대로 보지 말자. 아니, 조·중·동 보는 집과는 통혼도 하지 말아야 한다." 
 

 

['왜 도덕인가' 토론회③] 김규항, "'내 새끼'만 챙기지 말자"

 

"자녀가 초등학생일 때는 체벌에 펄펄 뛰다가도 중학생이 되면 '성적에 도움이 되는 한 어느 정도의 체벌은 괜찮다'는 심리를 갖는 학부모들이 있다. 이런 심리 하에 성적 향상이라는 이익과 체벌이 부당하게 거래되는 것이다."

칼럼니스트이자 <B급 좌파>의 저자인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의 말 속에는 언제나 '내 새끼'만 챙기는 한국 학부모에 대한 날카로운 날이 서려 있다. 그는 지난 7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위기의 한국 사회, 왜 도덕인가' 토론회에서도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부당 거래'의 예로 학부모의 이기심을 거론했다.

토론회 사회를 맡은 김민웅 성공회대학교 교수가 최철원 M&M 전 대표의 '맷값 사건'을 화두로 삼으며 "폭력과 욕망, 자본이 굴러가는 밑바닥엔 부당 거래의 그물이 있다"고 지적하자 김규항 발행인은 "굳이 최철원처럼 '이상한' 사람을 표본 삼지 않아도 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폭력은) 거친 성격을 가진 특정한 사람에게서만 비롯되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남의 것을 빼앗고 싶을 때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남의 '등수'를 빼앗는 형태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입시 경쟁 하의 자녀 교육도 부당 거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는 경쟁 사회를 비판하는 '진보적' 부모들도 마찬가지다. 김규항 발행인은 "보수적 부모의 꿈이 그냥 1류 대학을 다니는 아이라면 진보적 부모의 꿈은 1류 대학을 다니는 진보적인 아이 아닌가"라는 말로 한국 사회의 욕망을 정확히 짚어 낸다.

"보이지 않는 폭력에 눈을 떠라"

"최철원 같은 사람도 문제지만 포악함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의 폭력도 문제다. 정몽구 회장이 직접 몽둥이를 든 건 아니지만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농성장 단수·단전에 고통 받았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백혈병을 얻은 노동자들에게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과연 이런 건 폭력이 아닐까?"


▲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프레시안(최형락)

'맷값 사건'에 대한 논평에서도 김규항 발행인은 또 한 번 청중들에게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댄다. 눈에 보이는 폭력에는 분노하지만 삼성 반도체 공장 문제 등 보이지 않는 폭력엔 무관심한 언론·시민사회를 정면으로 질타한 것이다.

"우리는 자본의 이익에 기반을 둔 체제에 살고 있으며, 공권력은 자본 편에 서게 돼 있다. 공권력의 폭력 행사는 겉으로는 과거처럼 노골적으로 행해지는 것 같지 않지만, 힘없는 노동자들에게는 다르다. 쌍용차현대차 농성 현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자행된 폭력은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한 수준의 시민들이 경험했던 촛불 집회에서의 폭력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는 시민들의 무관심이 공권력의 은폐된 폭력을 내버려둘 때 야만적인 풍경은 언제든 다시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파업 등 노동 문제에 대한 폭 넓은 이해를 호소했다.

"노동자 문제가 남 얘기가 아닌데도, 시민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선 덜 민감한 경향이 있다. 프랑스에서는 대중교통 종사자들이 파업을 하면 시민들이 내 문제라는 생각을 갖고 불편을 감수한다고 하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 촛불 집회 등에서 한국 시민이 보여줬던 성숙된 시민의식과 걸 맞지 않는 부분이다."

"삼성을 '먹고 살기 위해' 다닌다고?"

이와 같은 지적을 이어가며 김규항 발행인은 "불편한 얘기라 죄송하다"는 말을 덧붙였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노골적으로 "불편해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 중 일부가 바로 "삼성에 다니는 분들"이다.

"삼성에 다니는 모든 분들에게 도덕적 책임을 묻고 싶지는 않다. 다만 자사의 반도체 공장에서 백혈병으로 사망하는 노동자가 나와도 산재로 인정되지 않는 야만적 상황을 조금은 불편해하길 바란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 아닐까."

한 청중이 "먹고 살기 위해 삼성에 다니는 노동자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이어서 "삼성은 그냥 먹고 살기 위해 다니는 게 아니라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다니는 회사"라며 경제적 안위를 누리는 삶과 양심적으로 떳떳한 삶은 '선택'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강연을 다니다 보면 2,30대 대기업 직원들이 '생활과 신념에 괴리를 느낀다'며 고충을 토로하는데, 나는 그들이 좀 더 정직해졌으면 좋겠다. 누가 그 사람을 강제로 그 회사에 입사시킨 것이 아니지 않나. 양심적 불편함을 무릅쓰더라도 경제적 안위를 누리겠다고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불편한 선택을 했으면서 품위나 양심까지 건사하겠다는 건 욕심이다."

김규항 발행인의 '선택'은 삼성 직원들의 그것과는 반대였다. 그는 "삶의 공간이나 직장을 선택할 때 윤리적 하한선이라는 게 있어야 한다"며 "삼성은 그걸 벗어나는 부분이 많으니 되도록 안 다니는 게 낫다"고 직언했다.

"복지 사회, 아이들이 맘껏 놀아야 온다"

김규항 발행인은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기업 회사원 노릇이나 대도시에서의 삶은 피하라"라며 '품위 있는 삶'을 권유한다고 한다. 그가 어린이·청소년용 잡지 <고래가 그랬어>를 발행하는 이유도 더 많은 아이들의 선택을 돕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전하는 교실 풍경은 그의 바람 같지만은 않다.

"얼마 전 아는 고등학교 교사 한 분이 반 아이들한테 사회 비판적인 의식을 심어주고 싶어서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 펴냄)를 읽힌 모양이다. 그런데 몇몇 아이들이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건희 폼 난다. 부럽다. 이렇게 살고 싶다'고. 어른들이 이건희를 욕하면서도 부러워하는 이중성을 보인다면, 아이들은 아예 어릴 때부터 그런 식의 인생을 멋지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그는 요즘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성적 경쟁에 내몰리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경쟁 사회를 내면화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이 다른 사람과 힘을 합해 뭔가를 하면 자기 혼자 욕심을 부렸을 때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며 "그래서 (경쟁하기보다) 맘껏 놀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래야만 복지 사회가 가까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복지 사회는 내 것만 욕심낸다고 오로지 나한테 다 돌아오지 않는다는 합의가 있는 사회"라면서 "그래서 (아이들이) 경쟁에서 벗어나서 배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자의 선행, 세상 못 바꾼다!"

복지와 관련된 현안 가운데 최근 가장 '뜨거운 감자'인 무상 급식 논쟁을 놓고 그는 "무상 급식은 애들 눈칫밥 주지 말고 밥 주자는 것"이라며 "복지를 떠나 아이들 인권 문제, 염치와 윤리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서울시 무상 급식 조례안에 반발한 오세훈 시장에 대해 "서울시 1년 홍보비에 약 800억 원이 들어간다고 하는데, 서울 시내 초등학교 1년 무상 급식 예산이 700~750억 밖에 안 된다"고 비판했다. 또한 무상 급식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직 우리 사회에 복지란 개념이 덜 확산된 것 같다. 그래서 부잣집 아이들까지 무상으로 밥을 줘야하냐는 생떼에 현혹되는 사람들도 있는 거다. 무상 급식의 보편화는 복지에 대한 시민의식이 정립되는 계기도 마련할 것이다."

한편, 무상 급식을 비롯한 복지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 심각한 화두라며 "우리가 지금 미국식 자본주의로 갈 것인지, 유럽식 자본주의로 갈 것인지 기로에 서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식 빈곤 해결 방법을 단순하게 말하면 '아름다운' 부자가 '불쌍한' 빈민을 만나 '기념사진'을 찍는 것이다. 부자의 기부·선행, 동정심에 의존하면서 빈곤 문제의 근본적 해결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반면 복지를 제도로 안착시킨 유럽 사회에서는 빈민이 지원을 받으면서 '불쌍한 표정'을 지을 필요가 전혀 없다. 어떤 사람이든 사회생활을 하다가 위기에 처했다면 당연한 권리로서 국가에 도움을 요구할 수 있는 사회다. 부자들도 기부가 아니라 세금을 통해 번 돈을 환원한다.

한국은 1980년대에 있었던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바꿔보자'는 급진적인 생각에 대한 반동인지 몰라도, 1990년대 들어서는 미국식 빈곤 해결 방법이 강조됐다. 그러나 소수의 내면에 의존하는 방식은 일시적이고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빈곤은 사회 시스템에 의해 해결되어야 한다."


▲ '위기의 한국 사회, 왜 도덕인가' 토론회. ⓒ프레시안(최형락)


은근히 자행되는 폭력들, 학부모들의 '부당 거래', 선행에 숨은 위험성 등 김규항 발행인은 내내 지나치기 쉽거나 일부러 외면하고 싶어 하는 문제들만을 지적했다. 그는 청중들에게 "불편한 얘기만 늘어놔서 죄송하다"면서도 "많은 시민들이 좀 더 긴장하며 살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사람들을 무조건 때려잡는 방식이 아닌, 은밀한 곳에서 이뤄지는 자본의 폭력과 지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야만적 폭력은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 시민들이 얼마나 긴장하느냐, 저항하느냐에 따라 세상은 달라진다. 그런 부분들이 강화된 시민 의식을 기대한다.

무엇보다 '내 새끼'만 생각하지 말자. 전부 내 새끼만 생각하니 '우리 새끼'들이 모두 살기 힘든 세상이 되고 있지 않은가."  

 


['왜 도덕인가' 토론회④] 우석훈 "한국 복지, 이제 걸음마 수준"

 

 
"오세훈 서울시장이 정 그렇게 '무상' 급식에 반대한다면, 우리도 무상으로 밥 먹겠다고 하지 말고 돈을 내고 먹자. 한 달에 500원만 내는 '500원 급식'을 하면 어떨까?"

<88만 원 세대>(박권일·우석훈 지음, 레디앙 펴냄)의 저자 우석훈 2.1연구소 소장은 무상 급식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판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그는 "멕시코에서는 국립대학교의 경우 공짜로 학교를 보내주되, 세금을 내는 국민에게 미안함을 가지라고 상징적으로 등록금을 2~4페소, 우리나라 돈으로 약 200~400원 정도 물렸다"고 말했다. 유럽은 물론이고 멕시코 같은 나라도 일찌감치 무상 교육을 하는 마당에, 고작 무상 급식에 훼방을 놓는 오세훈 시장을 비롯한 보수 세력을 꼬집은 것이다.

7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한국 사회, 왜 도덕인가' 토론회에서 우석훈 소장은 젊은 시절 유럽에서 경험했던 다양한 복지 관련 일화를 풀어냈다. 그에게 한국 사회는 한마디로 '갈 길이 먼 사회'였다. 그만큼 한국과 유럽의 간극이 컸기 때문이다.


▲ 지난 7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한국 사회, 왜 도덕인가' 토론회. 왼쪽부터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김민웅 성공회대학교 교수, 김용철 변호사, 우석훈 2.1연구소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학비 공짜인 유럽은 '망국적 포퓰리즘' 국가?

'한국 사회, 왜 도덕인가' 토론회에서 사회를 맡은 김민웅 성공회대학교수가 오세훈 서울시장의 무상 급식 반대 논리에 대한 견해를 묻자, 우석훈 소장은 "유럽의 무상 교육에 비하면 무상 급식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운을 뗐다.

김민웅 : 무상 급식 논란을 두고 여론이 뜨겁다. 오세훈 시장은 "무상 급식은 망국적 포퓰리즘"이라고 말했다.

우석훈 : 오세훈 시장 논리대로라면 대학교 학비가 공짜인 유럽은 벌써 망하고도 남았다. 유럽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스위스에는 세계적인 초국적기업 네슬레 회장 아들도 등록금을 50만 원만 내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나라가 망하던가? 무상 급식은 무상 교육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유럽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나서, 국민소득이 8000~1만 달러일 때부터 대학생에게 등록금을 지원했다. 한국은 지금 국민소득이 2만 달러인데도 등록금만 1000만 원 가까이 낸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공부를 잘 하던가? 공부를 못하면 밥이라도 맛있게 먹여야 하지 않겠나?

"반려동물 의료보험이 우습다고?"

서울 시장이 무상 급식을 '망국적 포퓰리즘'이라는 과격한 언사로 공격할 정도로 한국 사회에서 무상 급식을 포함한 복지 정책은 여전히 생소하다. 복지를 시민의 보편적인 권리로 인식하는 이들도 드물다. 복지를 원하는 시민이 있는 반면 복지에 고개를 갸웃하는 시민도 많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김민웅 교수는 "무상 교육이 진보의 정치적 구호였는데 시민들이 이를 외면했다가 최근에 무상 급식은 받아들였다"라고 현재 한국 사회가 가진 복지에 대한 인식 수준을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복지가 윤리적으로 정당하다는 논리를 어떻게 세울 수 있느냐"고 우석훈 소장에게 물었다.

"유럽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복지가 왜 필요 하느냐는 질문 자체가 생소하다. 복지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석훈 소장은 이렇게 대답하며 "우리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덧붙였다. 복지가 왜 필요한가를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복지를 확대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라는 뜻으로 들린다. 우 소장은 한국과 유럽의 복지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큰지를 설명하고자 반려동물의 예를 들었다.


▲ 우석훈 2.1연구소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영국에서 개,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에게 의료보험을 적용하는 문제로 격론이 붙었다. 찬성하는 사람의 논리가 그럴 듯하다. 가난한 사람도 반려동물을 많이 키운다. 노숙인도 추우니 개를 끼고 잔다.

그런데 영국은 사람의 병원비는 무상인데 반해서 개,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의 병원비가 오히려 비싸다. 이런 사정 탓에, 반려동물 몇 마리까지 의료보험을 지원할 것인지를 놓고 논쟁이 붙었다. 결국 한 사람당 강아지 2~3마리까지 적용해주기로 했다.

이런 기사를 보면서 추운 날 밥도 못 먹는 사람이 많을 텐데 반려동물에게까지 의료보험을 적용해줘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복지에 대한 그들의 인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사람을 넘어서 사람이 아닌 대상까지 복지의 대상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이렇게 개,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까지 복지의 대상으로 보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윤리의 대상도 넓어진다. 사람이 지켜야 하는 가치를 사람이 아닌 대상으로까지 확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개, 고양이도 사람처럼 여기게 된 것이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같은 사람인 이웃에 대한 공감의 폭도 넓어질 수 있을 테고."

"사람을 때리느니 차라리 전화기를 던져라!"

유럽에서는 도덕의 대상에 사람이 아닌 동물까지 포함되고 있다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인간에 대한 도덕성마저 등한시되는 사례가 많다. 최근에 한국 사회의 도덕성을 가늠하는 상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재벌 2세인 최철원 씨가 이른바 '맷값'을 주고 운수업자를 폭행한 사건을 두고 여론이 들끓었다.

우석훈 소장은 "재벌들에게만 시간이 정지되는 것 같다"며 최철원 폭행 사건을 "소아병적인 현상"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국 사회에서 사람을 때려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생긴 지 오래인데, 아직도 재벌들의 시계는 20년 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그는 1990년대 중반에 대기업에서 일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좋은 회사 사장실에는 전화기도 좋은 게 있을 줄 알았는데 1만 원짜리 전화기가 있더라. 왜 그런가 했더니 직원이 잘못하면 던지라고 있는 거였다. 그 전화기는 선이 있어서 던져도 앞에 떨어지지 맞지는 않았다. 1990년대 중반에 우리 재벌을 변화시켰던 민주화의 가장 큰 성과(?)였다. 차라리 전화를 부수고 말지 사람을 때리면 안 된다는 합의를 이룬 것이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흔히 상사부하를 때렸다. 회사뿐 아니라 재벌, 운동권, 대학 동문회도 마찬가지였다. 밖에서는 민주화를 말하면서 집에 돌아가면 자기 부인을 때리는 게 부당하다는 것을 좌·우파의 상당수가 이해를 못하던 시기였다. 유독 재벌만 아직도 20~30년 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폭력을 휘두르는 대가로 돈을 지불하는 것은 부당한 거래다. 그렇다면 언제 부당 거래가 생길까? 우 소장은 "뭔가 잘못됐는데 '얘기하면 너만 다쳐'라고 말하며 눈감을 때"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부당 거래가 생기고 용납되는 이유는 이를 고발하지 못하는 "우리 모두의 겁 혹은 먹고사니즘"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필연 몰락 바라는 시민들에 희망을 건다"

우석훈 소장이 경험한 두 가지 풍경, '민주화를 말하면서 집에 돌아가면 자기 부인을 때리는 운동권'과 '애완동물도 의료보험을 적용받는 유럽'의 간극은 너무나 크다.

그러나 우 소장은 한국 사회에도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시민이 부정의에 공감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는 "실은 오늘(7일)이 SBS 드라마 <자이언트>가 끝나는 날"이라며 "이 토론회를 9시에 끝내면 들어가서 볼 수 있는데…"라고 운을 떼 청중의 폭소를 이끌어냈다.

"드라마에서 악역을 맡은 '조필연'(정보석)이 총리 후보가 돼서 청문회를 한다. 과거에 돈 받고 사람 죽인 것을 다 감춰놔서 서류상으로 완벽한 사람이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으면 한국 최고의 총리 후보가 될 수 있었지만, 진실은….

<자이언트>를 보면서 한국이 안 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다 조필연을 싫어하더라. 드라마에서 악인이 멸망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좋아하면 현실에서도 그럴 거라고 본다. 도덕은 대중의 공감, 느낌, 감정의 흐름을 따라 간다. 한국은 아직 조필연이 안 죽고 총리됐다고 사람들이 기립 박수 치는 사회는 아닌 것 같다."

드라마에서 희망을 본다니 조금은 엉뚱한 답변 아닌가?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시민의 '공감 능력'을 선거로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대선이 경제 대선이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조필연 같은 사람을 뽑아도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오는 대선은 다를 것 같다. 조필연 같은 사람이 나쁘다는 것을 공감하는 능력을 갖춘 국민이 절반이니까. 우리가 꿈꾸는 도덕 사회는 바로 그때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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