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다시 부활하고 있다. 이를 어떤 맥락에서 읽어야 하는가.  

유학, 지금 중국에서의 담론 지형 - 1  

                                                  조경란(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  

 

지난 두 번의 칼럼을 통해 나는 한국에서 ‘중국충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그리고  ‘문명중국’의 부활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썼다. 중국의 충격과 문명중국의 부활, 그 근간에는 유학이 있다.

중국 경제가 부상하면서 함께 부흥한 것이 바로 유학이다. 따라서 동아시아에서 지금의 이러한 현상을 직시하고 잘 독해하기 위해서는 유학에 대한 개인적 호불호를 떠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객관적으로 관찰,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번 칼럼은 그래서 중국에서 유학과 관련하여 어떤 움직임이 일고 있는지,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두 차례에 걸쳐 이야기하려 한다.

중국의 전 역사를 통해 공자와 유학은 죽었다 살았다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만큼 통치자의 입장에서 보면 공자와 유학은 정면이든 반면이든 활용가치가 크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는 100년 동안의 유학의 극심한 부침(浮沈) 현상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일단 지금의 후진타오 정부에서 공자와 유학은 공식 시민권을 얻었다. 하지만 잘 알다시피 마오쩌둥 정권에서는 비림비공(批林批孔)이 상징하듯이 공자와 유학은 정치적으로 봉건의 상징이 되어 철저하게 비판당했다. 그런데 이때 목표는 유학 자체보다는 전통사회에서 신권(紳權)을 가지고 있던 지식인을 근절하는 데 있었다. 지식인을 무력화하여 권력자가 대중을 직접 지배하려는 것이었다.    


   
  ▲ 차이위엔페이(蔡元培)가 북경대 총장에 부임해 학술자유를 표방하자 보수파 류스페이(劉師培)와 구훙밍(辜鴻銘) 등과 진보파 리다자오(李大釗) 후스(胡適) 루쉰(魯迅) 등이 모여 자유롭게 토론하고 있다. '중국현대사상사론'에서 리쩌허우는 이런 민주적 분위기가 5.4신문화운동을 여는 밑거름이었다고 말한다. ⓒ 연합뉴스  


그런데 유학이 중국현대사에서 체계적이면서 전면적으로 비판된 것은 신문화운동에서였다. 1911년 신해혁명 이후 얼마 안 돼 중국 사상계의 분위기는 복고풍이 매우 강하게 일고 있었다. 명목만 공화정이었지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는 왕조 아래의 그것과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작동불능의 공화국에 대한 환멸은 루쉰 같은 지식인들로 하여금 절필과 함께 칩거하면서 탁본으로 소일하게 만들었다. 이에 당시 해외 유학경험이 있는 젊은 지식인들이 중심이 되어 이런 복고 분위기에 반기를 들고 나온 것이 바로 신문화운동이다.

신문화운동의 배경에는 대내외적으로 자본주의 근대화의 전세계적 전개와 그에 따른 중국내의 제도의 변화와 일상의 변화가 있었다. 1차대전 이후 동아시아로 육박해들어오는 근대화의 파고를 어느 나라도 피해갈 수 없었고, 중국에서는 과거제가 폐지된 이후 신학문의 세례를 받은 1세대 지식인들의 집단적 출현이라는 근대사회의 제도적 변화가 있었다. 5.4운동이 개시되었을 때 신식교육의 영향을 받아 전통적 역할에서 이탈한 신지식인 수는 이미 천만 명에 달했다는 연구가 있다(金觀濤 ․ 劉靑峰, 「新文化運動與常識理性的變遷」, '二十一世紀' 1999年 4月號).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지나쳐서는 안 되는 것은 신문화운동을 제국주의 열강의 깊숙한 침입을 받으면서 중국의 근대가 형성되었다는 사실과 관련해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서양 제국주의와 유착한 봉건세력에 대응하여 중국사회를 근본적으로 개조해야 하는 객관적 상황에 직면하여 민주와 과학을 모토로 한 신문화운동은 신지식인들만의 리그로 끝난 것이 아니라 사회개혁 운동과도 자연스럽게 결합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럼으로써 서구 근대성을 자기네 방식으로 받아들이면서 중국 인민대중의 이해(利害)와도 만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신문화운동을 단순히 유학에 반대한 운동으로만 기억하기보다는 그것이 왜 일어났고, 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구조적 원인을 대내외적으로 넓게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100년 전 전면적으로 비판받아 거의 반신불수가 되었다시피 했던 유학이 지금 왜 다시 부흥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도 철학사조 자체의 내재적 접근만이 아니라 한 세기를 가로질러 나타나는 시공간의 장기변동과 함께 문명사적 전환이라는 큰 차원의 시야를 가지고 볼 필요가 있다. 그랬을 때만이 중국 지식인들의 고민에 접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중국내적으로 보면 유학이 중국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이다. 중국정부는 개혁개방이 시작되면서 동아시아 4대용으로 대변되는 동아시아 근대화 모델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유학의 잠재력에 주목하게 된다. 1990년대 들어 자본주의적 개방이 본격화되자 유학은 더욱더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2000년대에는 드디어 중국정부에 의해 유학이 공식적인 시민권을 갖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 베이스에는 자본이 자리하고 있다. 중국공산당 아래 있는 국가는 인민의 편이라기보다는 이미 자본의 편에 서 있다. 자본의 에이전트 구실을 하고 있다는 지적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지금의 유학도 그 어떤 것보다도 발전논리와 강력하게 결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유학을 보수주의자보다 오히려 자본이 더 선호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중국고전을 중심으로 짜여진 중국 중앙방송의 백가강단(百家講壇)은 국가와 자본의 비호 아래 공전의 히트를 친 프로그램이다. 거기에서 가장 유명 스타가 된 이는 단연 『論語心得』의 저자 위단(于丹)이다. 한국에도 번역 소개된 이 책은 해적판 포함 1000만부 이상이 팔렸다. 언론에서는 문혁시기 홍바오수(紅寶書, 마오쩌둥의 빨간색 선집) 이래 처음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한 국학 붐에 대해서는 졸문, 국학열풍…21세기 ‘중국의 존엄’ 보여줄까, 『경향신문』, 2008년 8월 21일자 참조) 따라서 1990년대 이후 중국에서 유학을 중심으로 한 고전열풍과 관련하여 그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것이 어떻게 생산되고 유통되고 소비되는가를 자본, 국가, 문화의 측면에서 다각도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중국에는 21세기의 ‘시대적 소임’을 자임하고 있는 '原道'라는 잡지가 있다. 1994년 창간되어 비정기적으로 간행되고 있는데 여기에 내로라하는 중국의 사상가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중국의 운명과 유학의 운명을 동일화하여 유학부흥운동을 중국 굴기로 연결시키려는 것이 이 잡지의 목적 중 하나이다. 그리고 또 일부에서는 논단형식으로 유학대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는데 최근에 그 결과가 『孔子與當代中國』(陳來, 甘陳 주편, 2008)라는 제목으로 묶여 나왔다. 유학관련 토론을 중심으로 한 중국 지식인들의 최근 움직임에 내가 특히 주목하는 이유는 한국에서와 달리 중국에서는 학계의 주류 비주류를 통틀어 우리의 주목을 받을 만한 주요 지식인들이 이 주제에 대해 매우 적극적이라는 점 때문이다. 여기서 이름을 거명하면 다 알만한 그런 사람들, 예컨대 간양(甘陽), 천라이(陳來), 왕샤오꽝(王紹光), 왕샤오밍(王曉明), 왕푸런(王富仁) 등등 좌파적이거나 비판적 지식인들조차 이 문제의 토론에 결코 소극적이지 않다. 

왜 그럴까? 여기서 다시 신문화운동 시기로 우리의 눈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 그때의 신문화운동을 뒤집어 다른 시각에서 보면 서구에서 들어온 근대 지식에 압도되어 민간학 또는 국학이 위축되었고 이후 100년 내내 한번도 그것을 여유 있게 성찰해보지 못했던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때 신유학자들이 고민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단순히 서구에 대한 즉자적 반발의 차원이었는지 등등. 지금 다시 그들이 새삼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것은 단순히 근대성에 대한 문제제기의 차원을 넘어 그 안에 무엇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데서 비롯되는 것 같다.

이 글에서 그 일단만을 소개하면 신유학자들이 유학을 서양철학의 수용을 통해 현대화한 것도 있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사유방법이 다른 동서 철학 체계상에서 서양의 철학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중국의 사유를 다 설명해낼 수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중국의 유명 학자 정지아동(鄭家棟) 같은 사람은 2004년 일본에서 개최된 학술회의석상에서 20세기에 형성된 언어체계와 논술방식으로서의 ‘중국철학’으로 중국의 전통사상의 역사적 문맥과 정신적 토양에 진정으로 접합가능한가를 물은 적이 있다. 즉 ‘중국철학’은 진정 중국의 혼백을 가지고 오늘 인류가 맞닥뜨리고 있는 환경과 그 문제에 대해 무엇인가 오리지널한 회답을 제시해줄 수 있는가. 단순히 서양철학의 위조품이나 추수자로서가 아니라.

중국에서의 이러한 쟁점들과 논의의 맥락은 지금 이 시점에서 중국에만 한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운 동아시아를 구상해야 하는 우리의 입장에서도 이러한 문제제기는 귀담아 들어야 하는 대목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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