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무섭다 ①] 서민층과 부유층 아이들의 방학 나기 '극과 극'

상류층 자녀는 여름방학이 지나고 9월에 돌아오면 읽기 성적이 15점이나 뛰어오른다. 반면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빈곤층 자녀의 읽기 성적은 거의 4점이나 떨어진다. 빈곤층 아이들은 학기 중에는 앞서 가지만 여름방학 동안 상류층 아이들에게 뒤처지고 마는 것이다."(말콤 글래드웰, <아웃라이어> 295쪽)
 

 

 

 

 


과거 '여름방학'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시골 외갓집', '보이스카웃 캠프' 등 뛰어 노는 것이었다. 특히 보충수업, 학원수강에 시달리는 중고등학생과 달리 초등학생들의 여름방학은 그야말로 '자유'였다. 하지만 최근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초등학생들의 여름방학마저 소득 수준별로 질적 차이가 벌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특히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저소득층의 경우 '방학 중 돌봄'이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한다.

말콤 글래드웰의 저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에서는 방학 중 학습의 기회 정도가 아이들의 성적 차이로 나타난다는 보고도 있다. 우리에게도 먼 나라만의 일이 아닌 듯 하다. <프레시안>은 2회에 걸쳐 초등학생들의 방학 나기를 살펴본다. <편집자>

#1. 저소득층 아동 지수 학생의 여름방학

초등학교 5학년 김지수(가명) 학생은 아침 8시면 눈을 뜬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밥솥에 밥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 엄마가 아침 일찍 일을 나가는지라 아침밥을 먹기는 요원하다. 시리얼로 때우기 일쑤다.

세수를 하고 오전 10시에는 지역에서 운영하는 공부방에 간다. 그렇지 않으면 집에 혼자 있어야 한다. 학교 친구들은 학원이다 캠프다 바빠서 같이 놀 수 없기 때문이다. 혼자 있는 집은 무섭기 때문에 애써 공부방에 간다.

지수는 방학 중에 할 일을 여러 가지 세웠다. 일기 쓰기부터, 영어 단어 하루에 10개씩 외우기, 한자단어 외우기, 국어 문제집 하루에 10장씩 풀기 등. 하지만 방학이 절반 정도 지난 지금 이것은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있었다.

공부방에서 아이들과 놀다가 시간이 다 가버리거나, 아이들과 PC방에서 노느라 대분의 시간을 보냈다. 매일 '내일은 이러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을 하지만 똑같은 일상이 반복된다.

부모님은 워낙 바빠서 저녁 늦게야 집에 돌아온다. 공부방 선생님은 많은 아이들을 관리하고 돌보느라 지수에게만 전념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보니 공부방에서 점심만 먹고 아이들과 PC방 등을 돌아다니기 일쑤가 된다.

캠프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구청 등에서 지원을 하는 저렴한 캠프라 하더라도 10만원이 넘는게 많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감당하기 어렵다. 지수와 같은 저소득아동들이 무료로 참가할 수 있는 캠프도 있으나 일하느라 바쁜 부모님은 거기까지 신경 쓰기가 어렵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모자란 것도 있지만, 방학 전에 충분히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바쁜 일상 때문에 일일이 신경쓰기 쉽지 않다. 지수 부모님도 미처 알지 못하고 지나쳤다. 결국 방학 내내 지수는 PC방 등을 전전했다.


▲ 공부방에서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 ⓒ프레시안(허환주)


#2. 고소득층 박슬기 학생의 여름방학

초등학교 6학년인 박슬기(가명) 학생은 요즘 정신이 없다. 지난 14일 여름방학을 맞은 그였다. 방학을 마치자마자 가족과 함께 주말에 호주로 2박3일 여행을 다녀왔다. 아빠가 이번 여름에는 부득이하게 휴가를 내지 못해 주말로 가족여행을 잡았다. 슬기네 가족은 슬기 방학에 맞춰 1년에 2번 정도 해외에 나갔다온다.

슬기는 공부 때문에 학기 중에도 바쁘지만 방학 때는 더욱 심하다. 26일부터는 글로벌 인성리더십 캠프에 참여했다. 4박5일 과정으로 브레인스토밍 및 토론·경청훈련, 오바마 스피치 훈련, 배려 스킬 등에 관해 배우프로그램이다. 8월 중에는 7박8일 일정으로 또래들과 일본 여행을 다녀올 예정이다.

작년 여름방학의 경우, 미국NASA(미국항공우주국) 캠프에 참여했었다. 당시 슬기는 화성 환경관과 항공우주 전시관을 돌아보고 우주비행도 체험했다. 또한 미 동부 아이비리그 대학과 유니버설 스튜디오도 견학했다.

당시 슬기는 전문 강사와 동행, 관련 분야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들었다. 현지에서는 매일 현장 보고서를 쓰고, 돌아온 뒤에는 NASA와 관련한 포트폴리오를 작성했다. 당시 10박 11일 코스항공료와 숙박비, 프로그램 참가비 등으로 약 360만 원이 들었다.

슬기는 "방학동안 뭘 할지에 대해 부모님과 상의해 다양한 캠프 등을 계획했다"며 "일정이 빡빡하긴 하지만 그래도 새로운 것을 경험한다는 것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슬기 어머니인 정미숙(39) 씨는 "아직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잘 모르는 딸에게 다양한 경험을 체험하게 해주고 싶어 방학 때는 여러 캠프 등을 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극과 극을 이루고 있는 초등학생의 여름방학 보내기

고소득층 가정 초등학생과 저소득층 가정 초등학생들의 여름방학 생활이 극과 극을 이루고 있다. 고소득층 가정 아동들 중 일부는 방학 2주 전부터 학교수업을 빠지고 영어마을에 들어가거나 해외 영어 연수를 떠나는 이들이 상당하다. 여름방학에 외가댁에 가서 수박을 쪼개 먹고 냇가에서 물장구를 치던 시절은 까마득한 먼 이야기가 된지 오래다.

실제 강남에 위치한 초등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있는 기간제 교사 박인숙(25) 씨는 "합창단 아이들이 이번 방학에는 중국에서 열리는 합창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떠난다"고 말했다. 박인숙 씨는 "아이들 대부분이 부유층 자제라 100만 원이 넘게 드는 경비에도 사비를 들여 다녀온다"며 "매 방학 때마다 이렇게 대회를 참여하기 위해 해외로 나가는 게 비일비재하다"고 설명했다.

강남에 위치한 또 다른 초등학교의 경우 방학 기간 중 영국, 호주, 캐나다 등 3개 나라 중 한 곳을 선택, 3주간 영어연수를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아이들에게 독려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아이들 10명 중 8~9명이 참여할 정도로 반응이 좋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8년 초등학생들의 해외연수어학연수 참여율은 1%로 중학교 0.8%, 고등학생 0.2%에 비해 가장 높았다. 소득수준별로는 월 700만 원 이상 고소득자의 참여율이 3%로 가장 높았다.


▲ 여름방학을 맞아 해외로 연수를 떠나는 초등학생들. ⓒ연합뉴스


영어학원, 논술학원, 피아노 수업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해

해외 연수캠핑을 하지 않는 초등학생들도 마냥 놀고만 있는 건 아니다. 목동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 5학년 인혜는 방학이 학기 중보다 더 바쁘다. 아침엔 7시에 일어난다. 8시부터 인터넷 강의를 듣고 9시부터는 동네에 있는 독서 스쿨에 간다.

오후에는 영어학원, 피아노 수업, 논술학원 등을 다닌다.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저녁 8시. 밥은 대부분 학원 틈틈이 사먹는다. 초등학교 4학년인 진수는 그나마 낫다. 학원은 수학만 등록했다. 다만 이번 여름방학 때는 책 100권 읽기를 목표로 세웠다. 영어는 아버지에게 매일 1시간씩 배우기로 했다. 진수는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대신, 부모님이 그가 방학동안 할 일들을 관리해준다.

특목중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는 초등학교 6학년 민영이의 경우 영어와 수학만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원에 등록했다. 하루 5시간씩 일주일에 3일씩 수업이 진행된다. 그는 이미 중학교 과정은 다 배운 상태라 이미 배운 내용을 복습하는 수준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09년 사교육비조사결과를 보면 초등학생들 사교육비 비용은 10조 3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초등학생 1인당 1년에 34만5000원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다. 주목할 부분은 가구별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및 사교육 참여율이 높았다는 점이다.

특히 맞벌이 가구보다 아버지만 소득이 있는 가구의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와 사교육 참여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이 눈에 띈다. 맞벌이를 해야 하는 가정이 상대적으로 소득이 넉넉치 않기 때문이다.

캠프는 꿈도 못 꾸고, PC방만 돌아다니는 아이들

반면 저소득층 아동들은 방학 중에 PC방 등을 전전하며 시간 때우기에 급급하다. 아동 돌봄 시스템의 부족으로 인해 저소득층 아동들이 방학 중엔 방치되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고소득층 아동들이 방학을 맞아 다양한 경험을 쌓고, 부족한 공부를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실제 구로에 위치한 A 게임방에서 만난 초등학교 5학년생은 "부모님들이 모두 일을 나가서 집에 있기 무섭다"며 "공부방을 가도 되지만 거긴 사람도 너무 많고 재미도 없어 가기 싫다"고 PC방에 오는 이유를 말했다. 이 초등학생은 일명 '메뚜기 뛰기'로, 친구들과 번갈아가며 게임을 하고 있었다. 1시간에 1000원 하는 게임비가 없어 친구들끼리 돈을 모아 PC방을 이용하고 있었다.

그러한 돈도 없는 초등학생들은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게임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PC방 주인은 "게임을 하다 돈이 없어 도망치는 초등학생들이 상당수 있다"며 "돈을 받기 위해 보호자에게 연락을 취하면 대부분이 맞벌이 부부였다"고 설명했다.

고소득층 부모들은 방학 두 달 전부터 캠프 정보를 수집해 미리 계획을 세워놓는다. 입학사정관제에서 창의적 체험활동을 반영하게 됨에 따라 아이들의 잠재력을 일깨워주는 각종 캠프와 외국어 연수는 기본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남들이 다 하니깐 덩달아 자신의 자식이 뒤쳐질까 우후죽순 식으로 아이들을 해외 등으로 경험을 쌓기 위해 내보내기도 한다. 강남 모 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있는 한 학부형은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몇몇 친한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데 그 중 다수가 여름방학 때 해외를 다녀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결국 우리 자식이 그들에게 뒤쳐질 거 같아 어렵게 이번 방학 때 아이를 해외에 보낸다"고 말했다.

그나마 없는 살림이라 하더라도 어렵게 돈을 마련해 해외를 보낸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돈이 나올 구멍이 없는 저소득층 가정 부모의 경우, 아이를 해외로 보내는 건 엄두도 내지 못한다. 여름방학이 방치되는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하고, 두렵게 만들고 있다.

 



/허환주 기자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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