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 자본주의의 천민이여 단결하라

(20) 마누엘 카스텔 Manuel Castells

마누엘 카스텔(Manual Castells)은 1942년에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태어났다. 대학 시절 프랑코 독재 반대운동에 연루돼 프랑스 파리로 망명한 뒤 1967년 파리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9년까지 파리대 교수를 거쳐 1979~2003년 캘리포니아대 사회학과 교수를 지냈다. 지금은 카탈루냐개방대 교수로 있으면서 여러 대학의 방문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도시문제-마르크스주의적 접근>(1972), <도시, 계급 그리고 권력>(1978), <도시와 민중>(1983), <정보도시>(1989), <정보시대-경제, 사회, 문화>3부작,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1996), <밀레니엄의 종언>(1998), <커뮤니케이션 파워>(2009) 등이 있다.

 

 

 

 


카스텔은 종교적 근본주의, 여성운동, 환경운동, 반세계화운동 등 ‘저항적 정체성’을 가진 공동체를 주목한다. 그러나 이들은 상호 소통을 결여하고 있다. 따라서 ‘네트’와 ‘자아’를 아울러 ‘문화정치’에 기반한 상호 소통의 형태를 띠는 새로운 종류의 정체성 기획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두 번째 천년의 끝자락에 일어난 정보기술혁명이 세계를 바꾸고 있다. 반도체와 컴퓨터, 유비쿼터스, 이동통신, 유전공학, 전자적으로 통합된 지구적 금융시장…. 이것이 곧 우리의 세계이며 ‘정보시대’의 세계다. 마누엘 카스텔의 관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점에서 그의 연구 주제는 우리에게 친숙하다. 정보시대의 정보적 환경은 지금, 여기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적 삶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 마누엘 카스텔
 
카스텔은 창조성과 소통의 무한 지평을 연 정보기술혁명이 우리의 자아와 경험들을 관통하는 구조적인 사회 변화의 중심에 있다고 파악한다. 따라서 그는 새로운 정보기술의 등장과 발전에 따른 광범위한 역사적 전환의 맥락에서 경제 재구조화에 관한 분석에서부터 정보시대의 사회운동과 정치, 문화변동, 자아정체성의 형성에 이르기까지 총체적 분석을 시도한다. 특징적인 것은 세계 도처에서 수집한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정교한 분석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그는 총체론자이면서 경험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많은 포스트모던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카스텔 역시 초기의 사상적 지반은 마르크스주의였다. 초기 저작인 <도시문제>(1973)를 펴낼 당시 그는 알튀세르의 구조주의 마르크스주의와 풀란차스의 국가론을 바탕으로 도시문제를 분석했다. 그러나 <도시와 민중>(1983)에 와서는 마르크스주의적 사고에 균열을 보이기 시작한다. 여기서 그는 사회운동을 계급적 관점이 아닌 정체성·젠더·자기 확신 등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는데, 아마도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인식하고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방법론과 주제 모두에서 큰 변화를 보이는 <정보도시> <정보시대> 3부작에 이르러서는 포스트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이 한층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저작에서 카스텔은 <도시와 민중>에서 보여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한층 정교화한다. 그러나 그가 창안해낸 개념들에서, 그리고 총체적인 연구방법을 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그의 사고에는 마르크스주의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보사회’ 또는 ‘지식사회’를 ‘네트워크 사회’로

카스텔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정보사회’ 또는 ‘지식사회’라는 용어를 ‘네트워크 사회’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식과 정보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생산성과 권력의 필수적인 근원이라는 점에서 그것들의 중요성이 우리 시대만의 특별한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네트워크에 대한 접속이 필수가 되고 있는 사회에서 네트워킹 능력은 조직과 기관, 사회적 행위자의 생산성·경쟁력·창조성과 연결되고, 궁극적으로는 권력과 권력의 공유를 가능케 하는 핵심 조건이 된다. 따라서 ‘정보시대’는 생산·경험·권력, 그리고 문화적 과정이 네트워킹 논리에 따라 작동되고 조정이 일어나는 네트워크 사회라는 게 카스텔의 주장이다.

그런데 네트워크 사회를 추동하는 힘은 무엇보다 새로운 정보기술의 능력이다. 특히 인터넷의 창조는 전자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모든 활동 영역과 맥락, 장소에 네트워킹 논리가 적용될 수 있게 했고, 무한한 소통의 지평을 열어젖힘으로써 기업뿐 아니라 조직·제도·노동 과정 등 사회 전반이 거대한 변동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했다.

이런 네트워크 개념을 카스텔은 “상호 연결된 노드들(nodes)의 집합”으로 정의하는데, 이는 서로 다른 지점에 있는 노드들이 상호소통을 통해 새로운 노드들을 통합해 무한히 뻗어나갈 수 있는 역동적이고 개방적인 구조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네트워크는 개방성·유연성·종합성·복잡성·네트워킹의 특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상호소통성과 다중노드 원리를 특징으로 한다. 이런 네트워크 발달에 핵심적 동력을 제공한 정보기술은 위기에 처한 산업 자본주의를 재구조화하는 데 강력한 도구로 활용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 곧 정보화 자본주의의 출현을 야기했다.


새로운 자본주의의 블랙홀, ‘제4세계’의 출현

자본주의의 재구조화와 정보기술 패러다임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 신경제는 산업주의에 기반한 자본주의와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경제체제라는 것이 카스텔의 입장이다. 지구적 정보화 경제에 기반을 둔 정보화 자본주의는 그 어느 시기보다 한층 자본주의적인 체제다. 그러나 지금의 자본주의는 과거 자본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데, 작동 범위가 전 지구적이란 점이 한 가지 이유라면, 자본의 축적과 가치의 창출이 정보네트워크에 의해 운영되는 지구적 금융시장을 무대로 이뤄진다는 점이 둘째 이유다.

결국 정보화 자본주의는 네트워킹 능력에 기반하면서 유연하고 적응력 있는 노동력에 의존하는데, 이때 정보를 특정한 지식으로 가공할 수 있는 자율적인 능력은 가치 창출의 핵심 요건이다. 문제는 그런 능력을 갖추지 못한 대다수의 일반 노동자들은 역할이 그만큼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대다수 노동자들은 기업의 필요에 부응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거나, 기계 또는 대체 노동력에 의해 해고를 당해야 할 처지에 놓이기 십상이다.

대다수 노동자들은 가치 창출의 주된 역할을 담당하는 소수의 ‘정보 노동자’들의 주변을 전전하면서 근근히 생존하는 하층계급, 새로운 배제계급이 되는데, 이들은 생계를 위해 유랑하는 ‘잡 노마드’(job nomad)로 전락하거나 때로는 범죄경제의 사슬에 연루되기도 한다. 카스텔은 이를 ‘제4의 세계’인 새로운 세계의 출현으로 개념화하고, 지구적 정보화 자본주의의 블랙홀이라 일컫는다.


‘정보정치’의 새 공유지, 미디어 공간 디자인하기

카스텔에 따르면 정보화 자본주의의 형성은 단순한 기술 변화의 결과가 아니다. 다양한 문화적 조건들과의 상호 작용의 결과이며, 그것의 ‘정치적’ 결과다. 카스텔은 이런 관점에서 새롭게 등장한 사회운동을 검토하는데, 그가 주목하는 것은 종교적 근본주의, 여성운동, 환경운동, 반세계화운동 등과 같은 공동체의 출현이다. 이들은 자율적인 정체성 구축의 형태를 취하는 ‘저항적 정체성’을 가진 공동체들인데, 카스텔이 볼 때 이 ‘저항적 정체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공동체들은 저항만 할 뿐, 상호 소통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명확하다. 따라서 새로운 종류의 정체성 기획으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한데, 이때의 정체성 기획은 ‘네트’와 ‘자아’를 아우르면서 ‘문화정치’에 기반한 상호 소통의 형태를 띠어야 한다고 카스텔은 역설한다.

전자적 미디어 공간은 현대 사회의 공유지가 되었다. 미디어 공간이 ‘정보화 정치’의 장소가 된 것이다. 카스텔은 정보를 제공받고, 의도적이고 단호한 사회적 행동을 한다면 무엇이든 변화시킬 수 있다고 단언한다. 전세계 어느 곳이든 능동적으로 의사소통하는 것,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 언론이 메시지가 아닌 메신저가 되는 것, 정치가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회복하는 것, 인류가 지구상의 인간과 연대감을 갖는 것,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 것, 세대 간에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것, 자아를 탐구하는 것. 카스텔은 이런 실천들이야말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프로젝트들이라고 단언한다.

김남옥/한국성서대 강사


 




 

» 김남옥/한국성서대 강사
 
김남옥 교수는 고려대에서 사회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정보기술패러다임과 몸(body)’을 주제로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경기대와 배재대에서 강의했고, 지금은 한국성서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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