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시장원리 아닌 ‘공동체원리의 교육’이 희망이다

김상봉 선생님,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참으로 혼돈스럽고 힘든 안팎의 현실입니다. 개인문제로부터 사회문제, 나라의 안위문제에 이르기까지 안정적이고 예측가능한 것이 거의 없습니다. 게다가 전직 대통령의 놀랍고도 충격적인 서거까지….

한마디로 힘겨운 실존, 회색빛 전망이 오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상황입니다. 이제 저희 대담이, 선생님과 제가 몸담고 있는 교육문제에 다다랐습니다. 자기가 속한 영역의 문제를 다루려니 먼저 반성적 접근을 하게 됩니다.



부모의 소득이 많을수록 사교육비가 늘어나고 진학률이 높아지는 현상은 우리 사회의 교육이 시장화·사사화된 단적인 증거이다. 사진은 서울 대치동 학원가 버스 정류장에서 밤 늦게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귀가를 기다리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공교육, 사교육 보조로 ‘본말전도’ 부모 학력·소득이 자녀교육 결정

오늘의 한국 교육현실을 볼 때 저희 역시 교사로서 책임이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교육문제는 정부철학과 정책의 문제인 동시에 교육기관의 문제이며, 또한 공동체 구성원들의 문제이자 교사들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편지를 읽으며 같은 교사로서 교육은 인간성의 자기실현 과정, 곧 사람됨의 길이라는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사람됨이란 자기 삶을 스스로 형성할 수 있는 주체가 된다는 뜻이라는 말씀을 포함해서요. 교육과 자발성, 창의성, 상상력의 관계에 관한 말씀에서 인간과 교육의 본질에 대한 선생님의 깊은 고뇌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공화국(의 성격·발전)과 교육은 완전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아무리 공동체나 조직이 어려워도 교육만 살아있으면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믿는 교육주의자에 가깝습니다. 교육이야말로 개인적 사회적 희망의 요체인 동시에, 무엇보다 개인과 공동체를 연결시켜주는 첫 출발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교육을 통해서 비로소 공동체의 주체적 성원이자 시민이 되기 때문입니다.

건국 이래 우리 사회가 여기까지 온 데에는 교육의 힘이 결정적이었고, 또 오늘날 우리가 더 발전·성숙하지 못하는 연유도 상당 부분 교육으로부터 비롯됩니다. 건국 직후 한국교육은 ‘교육기적’ ‘교육혁명’이라고 불릴 정도로 폭발적 성장을 이루어 학교설립-취학-진학-문자해독률의 기록적 상승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은 탈식민 국민혁명과 국가발전의 한 거시적 바탕을 이루었지요. 배우지 못해 망국과 빈곤을 겪었다고 믿는 국가와 국민으로서 특유의 ‘교육열’-이 말은 서구학계에선 한국교육의 긍정과 부정을 모두 함축하는 고유어가 되었습니다-에 바탕해 국민만들기, 국민되기에 열과 성을 다 했기 때문이었지요. 헌법정신과 교육관련 법률의 기저를 이룬 ‘무상교육’ ‘균등교육’ ‘국민교육’에의 추구는 교육정책의 최우선과제였습니다. 건국의 교부들이 품었던 균등주의, 균등사회 건설 사상이 가장 잘 반영된 분야가, 헌법관련 편지에서 말씀드린 경제와 함께 바로 교육부문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냉전대결의 전방초소에서, ‘반공전쟁’ 종식 7년 만에 폭발한 4·19 ‘민주혁명’은 이승만 정부의 부정적 유산인 동시에 긍정적 산물이기도 하였습니다. 즉 교육혁명을 통한 학생급증에 더해, 근대화와 반공을 위해서라도 민주주의를 교육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민주주의를 파괴하자 학생저항으로 연결되었던 것이지요. 시민·노동계층이 허약한 상태에서 이승만-박정희-전두환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이 민주화 투쟁의 선두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이중상황으로부터 연유하였습니다. 국민교육의 시민적 효과, 반공교육의 민주적 효과라는 역설이었던 것이지요.

교육의 인간화·공공화 위해선 대학·언론·교사 발본적 변화를

선생님, 제 생각에 오늘날 한국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공공성과 시민성, 개별성과 일반성이 모두 실종된 것이라고 봅니다. 있다면 오직 시장성과 경쟁성만 남았습니다. 인간 행위에서 교육처럼 개별성과 보편성이 만나는 영역도 없습니다. 즉 한 영혼 한 영혼에 대한 개별적 교육은 곧 모든 사람에 대한 보편적 교육과 같은 원리를 갖습니다. 따라서 국가의 기본존재 이유인 개체적 인간교육과 공적 시민교육·시민양성 기능의 동시 실종, 이것이야말로 민주공화국 한국이 위기에 직면한 핵심입니다. 교육은 국가공동체가 시민에게 제공해야 하는 최소 공공재이지 재산의 크기에 따라 구매와 교환 여부가 결정되는 사유재가 아닙니다. 고대 이래 인간·시민·교육에 관한 주요 이론들이 반드시 교육과 국가·정치·공동체를 연결해서 접근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개체적 인간교육과 공동체적 시민교육은 결코 분리될 수 없고, 근대 민주공화국에선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국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요? 역할과 내용 모두에서 교육을 철저하게 ‘시장에의 예종’ ‘사사화의 길’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한국은 사교육 예산과 비중이 공교육에 버금가는 희귀한 사례입니다. 근대 교육체계의 등장 이래 일반교육 부문에서 사교육 비중이 이토록 큰 나라는 없었습니다. 2009년 OECD 통계를 볼 때 한국은 GDP 대비 민간부문 교육지출이 OECD 평균 3.5배를 넘습니다. 시장과 사적 이익집단에 교육을 장악당한 결과, 이제 우린 교육재벌·대체교육체계의 등장을 목도하면서 일반교육체계를 공교육체계와 사교육체계로 나누어 접근해야 할 상상불능의 상황을 목도합니다. 게다가 사교육은 경쟁교육·입시교육·물량교육을 본질로 하는 한국교육의 중심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만약 오늘의 한국 공교육이 최소한의 시민교육·윤리교육·인간교육을 담당하고 있다면 그것은 다만 보조역할에 그칠 뿐입니다. 공교육이 사교육에 부담이 되는, 완전한 본말역전입니다.

교육의 본질이 전도되니 시민되기는 고사하고 인간되기의 최초 단계부터 차별받고 왜곡됩니다. 역근대화이지요. 교육은 국가의 바른 역할에 의해, 신분·지위·재산을 넘는 평등한 기회보장이라는 공공성·공화성·근대성의 표상이어야 하나 우린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부모의 학력·소득과 자녀의 학력·소득의 상관성은 이제 명백합니다. 진학·경쟁교육을 좌우하는 사교육비를 보면 월평균 소득 700만원 이상 가구는 100만원 미만 가구보다 8.8배를 지출합니다. 게다가 정규직 대 비정규직의 비율은, 학력에 따라 중졸 이하는 15.7% 대 84.3%, 고졸은 38.9 대 61.1, 전문대졸은 60.7 대 39.3, 대졸 이상은 71.8 대 28.2로 정확히 학력과 비례합니다. 현재 비정규직은 전체 노동자의 52.3%를 차지하는 가운데 남성정규직과 여성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는 100 대 39.1로서 사상 최대이며, 법정 최저임금(시간당 4000원) 이하 노동자는 222만명 중 비정규직은 무려 93.6%를 차지합니다. 학력과 노동양태, 수입규모, 자녀교육 사이에 고도의 상관성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 교육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두려운 통계입니다.

수유하는 어머니 마음으로 한 영혼 한 영혼 키워내야

하여 교육의 공공성 상실과 사사화·물질화, 그리고 그로 인한 탈시민화·속물화·불평등화는 오늘날 한국교육의 본질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인간성(humanity), 비전, 상상력, 창의력, 비판정신, 자기책임성에 기초한 개별 인간과 공동체 시민을 길러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배려와 사랑이 배제된, 공동체내의 사회적 실존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시민성을 학습하지 않은 존재들이 만들어갈 미래 공동체의 모습은 두렵습니다.

이제 우리는 바른 공동체를 위한 시민교육을 위해 교육의 인간화와 공공화를 위한 발본적 선택을 취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무엇보다도 국가의 공적 책임과 역할의 회복이 가장 절실합니다. 그것은 민주공화국 자신을 위해서도 그러합니다. 동시에 국가는 반드시 시장원리 대신 공동체·공화의 원리 위에 교육에 접근해야 합니다. 이 원리는 결코 개별 학습능력 향상과 충돌하지 않습니다. 교육예산의 대폭증대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현재처럼 국가가 교육책임과 역할을 계속 방기할 경우 우리 공동체는 시민 대신 속물이 범람하는 속물사회가 되고 말 것이며, 그것은 공동체를 더욱 빠르게 해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대학의 변화입니다. 대학은 더 이상 직업교육 준비기관이 아니라, 인간교육 기관으로서의 기본역할을 회복해야 합니다. 근대 대학교육의 본질은 원래 교양교육, 즉 자유교육으로서의 인간교육·시민교육이자 일반교육·종합교육이었지요. 즉 누구에게나 필요한 시민적 덕성과 교양, 상상력, 문제대처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었지요. 따라서 대학이 본연의 인간교육 역할을 회복할 때 요즈음 말하는 통합교육·융합교육·전문교육 자체가 필요없는 것이지요. 그것은 이미 인간교육·일반교육에 내재하는 것이니까요. 따라서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대학의 시장화, 기업화, 물량화는 최소한 OECD 평균 수준으로의 정부의 공공성 회복 및 예산지원과 함께 이제 중단되어야 합니다. 교육은 어떤 경우에도 자율적 공공재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대학은 공동체를 향한 가치와 정신, 인재와 상상력을 창출하는 중심 기지가 되어야 합니다. 기업과 사회 역시 지식과 세계는 늘 바뀌기 때문에 즉각적이고 단기간 사용할 수 있는 직업교육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비전·양식·지식을 갖춘 사람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 이상 취업경쟁기관으로 대학을 내몰아서는 안됩니다. 창의성, 인간성, 사회성, 일반성=세계성을 갖춘 인재는 자신과 조직 모두의 발전을 위해 오랫동안 헌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대학 교사들은 이제 그런 시민을 길러 사회에 기여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탈시민·속물·불평등화의 제자들 그들이 만들 미래모습 두려워

셋째, 선생님과 꼭 나누고 싶은 교육관련 말씀은 사회와 언론의 변화입니다. 선생님은 ‘낙오자가 될 각오’로서의 시민윤리를 말씀하셨지만 저 역시 우리 세대 교육이 만들 다음 세대의 사회모습이 정말 두렵습니다. 경쟁담론을 넘어 ‘초등학교 때 1억 만들기’ ‘부자 되세요’와 같은 속물담론과 속물교육을 통해서는 자녀들이 1억원을 만든다고 해도 그들이 살아갈 공동체는 결코 인간의 얼굴을 한 공동체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린 지금 세금을 늘려서라도 먼저 인간교육과 시민교육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주지 않으면 안됩니다. 동시에 언론 역시 시민교육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언론은 기업논리와 특정이념의 대변자를 넘어 사회의 공동가치와 덕성을 교육하기 위한 원칙과 품위를 유지해야 합니다. 현재와 같은 편향과 수준, 공격적 언사로는 시민교육에 반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끝으로는 역시 교사의 중요성입니다. 동양과 서양의 ‘공부’와 ‘교육’이라는 말이 모두 사람 되기, 사람 만들기라는 뜻을 갖는 것은 깊은 의미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즉 사람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 인간을 교육동물(homo educandus)로 본 견해를 수용합니다. 교육은 원래 어머니의 수유(授乳)라는 말에서 나왔으니 본래 사랑과 돌봄의 뜻을 담고 있지요. 이 때문에 오늘의 교육현실을 볼 때 저희 교사들이 과연 어머니가 자기 젖을 내어주는 마음으로 한 영혼 한 영혼을 길렀는지 무겁게 돌아보게 됩니다.

선생님, 말씀하신 대로 좋은 교육 없이 좋은 시민없고, 좋은 시민없이 좋은 공동체는 불가능합니다. 결국 좋은 교육은 좋은 공동체의 출발입니다. 현재와 같은 교육체계와 내용이 지속되어서는 우린 좋은 시민과 공동체를 가질 수 없습니다. 교육의 중심이 공적 시민교육인 이유는 사회의 윤리적·도덕적 하부구조의 구축이 교육으로부터 시작되며, 거기에서 비로소 인간교육과 사회교육으로의 확장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즉 시민교육 없이 인간과 사회의 인간화-윤리화와 사회화-합리화라는 쌍방향 과제는 달성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무거운 자기과제를 새기며 오늘 편지를 맺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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