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정치는 곧 ‘가치배분’… 시민과 연대해야 ‘가능의 예술’
김상봉 선생님. 안녕하셨는지요.
나라 안팎이 몹시 혼란스러운데 별고 없으신지요. 작금의 정치·사회 상황은 차분한 일상을 영위하고 싶은 우리네 희망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우리 삶은 사회적·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확인하는 오늘의 한국 현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해서 정치가 우리를 놓아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의 중심 문제들의 근원은 정치로부터 발생하고 있으며, 정치를 바로 세우지 않고는 바람직한 민주공화국의 건설은 불가능하다. 사진은 2000년 1월 서울역 광장에서 부패정치를 타파하자는 집회를 하고 있는 총선시민연대 회원들(왼쪽 사진)과 2003년 11월 국회 앞에서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민주노동당 당원들의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오늘 말씀 나눌 주제는 ‘정치의 가능성과 한계’인데, 정치학도로서 요즘처럼 곤혹스러운 경우도 많지 않았습니다. 최근 우리를 가장 큰 충격으로 몰아넣고 있는 일은 부패의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금번 부패추문을 보며 저는 우리 사회에서 도덕과 정의의 관념을 다시 구축하려면 앞으로 한 세대 이상의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개인 도덕과 윤리는 물론 사회 도덕과 정의를 가장 소리 높여 주창한 정부와 세대-그들을 민주정부, 또는 70·80세대, 386세대 무엇으로 부르든-에 의해 그것들이 붕괴된 데서 오는 충격은 집단 트라우마에 가깝습니다. 도덕과 정의는 궁극적으로 개인 내면에서 출발하여 다시 내면으로 귀결되지만, 그 사회적 완성은 오직 행위로서만 검증되기 때문입니다.
욕망과 재화의 충돌 불가피…합리적 배분이 정치의 요체
오늘의 한국 정치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저는 인식과 실천 모두에서 한 사회를 바르게 건설하려 할 때 요체는, 인간들의 집합행위로서의 ‘정치의 우위’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정치의 영역에서 결정되는 ‘공동(체)적’ 가치와 자원의 배치가 결국 개인적·집합적 삶의 방향과 수준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공공적’ 기능과 영향의 측면에서 사회·문화·군사·경제에 대한 정치의 우선성과 선차성을 말하는 것이지 목적이나 비중, 가치로서의 정치 우위를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 때문에 ‘정치가 문제’라고 할 때 이 말은 그 사회의 거의 모든 문제를 함축하는 본질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한 사회에서 정치는 공동의 목표·가치·이상을 결정하는 토론과 합의의 차원은 물론 그것을 추구하는 실천과 이행, 리더십과 대표의 역할 모두를 포괄하기 때문입니다. 정치를 떠나 우리가 이룰 수 있는 공공가치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때문에 더욱 더 저는 한국에서는 단연 정치가 문제라고 봅니다. 즉 지금 한국 사회의 중심 문제들의 근원은 바로 정치로부터 발생하고 있으며, 정치를 바로 세우지 않고는 바람직한 민주공화국의 건설은 전연 불가능합니다.
정치는 한마디로 ‘가치의 배분’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배분행위는 합리성·합법성·민주성에 기반한 공적 집합행위를 말합니다. 즉 공동체의 한정된 여러 재화와 물질, 자원들을 어떻게 합리적이고 적절하게 구성원들에게 배분하느냐가 정치의 요체이지요. 우리가 공화국을 포함한 공적 기구를 구성하는 이유는 가치의 공적·권위적·합리적 배분을 위해서입니다. 때문에 시민이 공적 기구의 대표 선출과 구성에 참여하는 행위는 곧 가치배분에 참여하는 의무이자 권한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갖습니다. “인간들의 무한한 욕망과 이기심” 및 “재화와 자원의 제한” 사이의 불가피한 충돌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정치라는 행위를 요구하는 근본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정치를 보는 두 대립적인 시각, 즉 ‘가능(성)의 예술’로 본 비스마르크와 ‘숙명’으로 본 나폴레옹의 시각 중 전자를 선호합니다. ‘가능의 예술’로서의 정치는, 결국 ‘불가능한 최선’과 ‘가능한 최악’을 배제하고 ‘가능한 최선’을 추구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때 ‘가능한 최선’은 ‘차선의 이상’을 의미합니다. ‘정치는 현실’이라는 과도한 정치현실주의나 특정 종교·이념·도덕을 정치화하려 시도했던 급진근본주의의 양 극단이 실패한 이유는 정치가 현실과 이상 사이의 존재라는 점을 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최선의 이상’을 향한 ‘현실적 가능성’이 중요한 이유는, 불가능한 것에 도전하지 않았다면 우린 가능한 것조차 이룰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점에서 저는 정치를 교육과 함께 헌신과 소명으로 본 막스 베버를 좋아합니다. 교육이 한 영혼(의 양육)을 향한 헌신과 소명이라면, 정치는 공동체의 발전을 향한 헌신과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정치 사사화·시장화가 문제…기업·시장이 중심행위자로 기능
선생님, 저는 한국 정치가 갖는 중심 문제를 네 가지로 봅니다. 그것은 첫째 정치의 시장화·사사화·기업화, 둘째 사법화·형사화, 셋째 탈시민화·탈주권화, 넷째 협소화와 과잉화의 모순입니다. 먼저 정치의 시장화·기업화·사사화는 정치영역에서조차 사적 시장논리가 가장 중요한 요소로 기능한다는 점과, 실제 정치에 기업의 힘이 압도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뜻합니다. 한국 정치는 필수 역할인 가치배분, 토론과 합의, 기회 균등, 법치를 외면한 채 효율성과 생산성 지상주의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마치 기업처럼 행동하도록 요구받으며 평가기준 역시 공공성·책임성·정당성이 아니라 생산성·효율성·경쟁성입니다. 둘째 실제 기업과 시장이 정치의 중심 행위자로 기능합니다. 정치에서의 기업 역할 증대는, 정치자금 제공과 이익의 교환 같은 거래행위 및 부패의 구조화·전면화 차원을 넘어 아예 정치의 공적 역할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광고주의 성격이 기사의 성격, 즉 언론의 본래 성격을 좌우하듯, 그리하여 기업논리가 언론논리를 좌우하듯 오늘날 정치의 기업화와 사사화는 이제 시장에서의 권력과 힘 관계가 정치영역에도 연장되어 정치 본래의 기능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이 두 문제가 중첩된 현재의 한국정치 대립의 본질은 보수/진보, 좌우, 급진/수구가 아니라 실제로는 공공 대 사사이며, 결국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한국 정치의 제일 과제라고 봅니다. 즉 한국 정치는 지금 정당경쟁, 제도, 이념대결에 은폐되어 있는 사사성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가장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특히 ‘정치’영역의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기업·언론·교육·종교·노동·금융·의료·정보통신 등 ‘시장’과 ‘사회’ 영역은 거꾸로 더욱 불평등화·과두화했음을 고려할 때, 정치마저 사사화할 때 그것은 시장과 사회의 불평등과 과두성을 정당화(正當化)하고 공화국 전체의 가치로 전도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고대 이래의 공화주의자들이 가장 깊이 우려한 점으로써 공공행위로서의 정치과정과 정치의 존재 이유 자체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둘째 문제는 정치의 사법화(司法化)와 형사화(刑事化)입니다. 이 문제는 다음 편지에서 상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요점을 말씀드리면 먼저, 민주화 이후 한국의 사회·정치·경제·안보·인권·헌법의 핵심 사안에 대한 최종 결정권한과 주체가 시민과 대표 영역을 넘어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사법 차원으로 이전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선거과정을 포함한 정치(인)의 행위들 역시 범법의 문제, 부패문제를 고리로 검찰의 인지 여하와 판단에 따라 정치 ‘기준’이 형사문제로서의 위법 여부가 되고 그 결정 주체 역시 검찰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핵심문제 최종결정권 상실…정치 사법화·탈시민화 심각
물론 참된 공화국을 건설하는 데 부패 제거는, 너무도 중요하여 모든 공화주의 이론과 실천의 핵심가치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사법화와 형사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앞서 4권분립을 말씀드렸을 때 핵심은 부패문제를 포함해 낡은 3권분립으로는 바른 민주공화국의 건설도, 민주정부에 대한 감독도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4권분립과 함께, 근대 공화국 이론의 개척자인 마키아벨리가 말했던 부패공직자에 대한 ‘(모두의) 뇌리에 박히는 처벌’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부패를 근절하지 않고는 정치의 사법화와 형사화는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법화와 형사화를 극복하는 문제는 한국 정치의 핵심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셋째는 정치의 탈시민화, 탈주권화입니다. 이 문제는 대의민주주의, 즉 대의정부 및 의회 정치의 한계와 직결됩니다. 한국 정치는 선거의 종료와 동시에 시민의 손을 떠나 즉각 대표기구, 즉 정부와 정당으로 전이됩니다. 동시에 많은 문제들은 정부 무능과 정당 대결로 인해 해결되지 않거나 더 악화됩니다. 결국 대안은, 정부 없는 공화국이나 정당 없는 민주주의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유능한 정부의 건설을 위한 제도적 대안 마련과, 정당의 성격과 역할의 변화로 귀결됩니다. 오늘은 후자만 말씀드리려 합니다.
우선 현행 국회의원 공천제도의 폐지가 가장 시급합니다. 위로부터의 공천제도는, 미리 후보를 결정하여 유권자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행위로 직접·평등·비밀·보통선거의 원리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반민주적 제도이자, 대표 선출 과정에 시민 참여를 봉쇄하는 사실상 위헌입니다. 시민들은 대표를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미리 결정된 후보를 상대로 단지 대대표(代代表)의 선출을 강요받을 뿐입니다. 따라서 공천과정은 즉각 시민들에게 돌려져야합니다. 저는 이를 꽤 오래 주장해왔는데 현실은 요지부동입니다.
둘째로 국회의원은 당론 뒤에 숨어 견해 표명과 역할을 방기해선 안됩니다. 한국 정치에는 정당은 있으나 국회의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점 역시 위로부터의 공천제도와 직결된 문제입니다. 국회의원의 역할과 책임의 증대를 위해서는 모든 당내·의회 결정과정을 공개하는, 즉 자기행위에 대해 직접 시민에게 책임을 지는 기속위임(羈束委任)의 원칙을 도입해야 합니다. 정책결정과 입법행위의 전면 공개로, 그동안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로 지적되어온 자유위임과 기속위임의 균형을 통해 시민과 대표 사이의 단절을 극복하자는 것이지요. 셋째는 의회의 증대와 강화입니다. 현재 한국의 의원 1인당 인구수는 선진 민주주의 국가 평균의 약 2배 수준(8만3000명 대 16만명)이므로 현재의 의회 성원을 대폭 늘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대표성과 민주성을 높이되 시민의 참여와 통제, 대표의 역할과 책임은 키우는 이중 개혁이 필요합니다. 특히 상당수 지역에서 “공천이 곧 당선”을 의미하는 현재의 지역정당체제를 혁파하기 위해서는 정당명부제를 포함한 비례대표를 획기적으로 늘려야 합니다.
半직접민주 = 半대의정치 위해…시민은 정치의 生費者 돼야
선생님, 그동안 한국에서 정치는 의회·정당 영역으로 이해되는 협소화와 동시에,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 정권교체·정치논리가 즉각 침투하는 과잉화가 모순되게 공존하였으나 이젠 근본적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저는 사사화·사법화·탈시민화를 통해 동시에 협소화·과잉화하고 있는 이 모순을 넘는 요체를 정치의 자기영역·자기역할 확보에서 찾습니다. 그 길은 의회정치와 시민정치, 참여와 대의,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의 연대와, 결합을 통한 정치의 독립성, 공공성, 시민성의 회복이라고 봅니다.
즉 기업·시장과 사법·검찰의 넘치는 영향을 넘는 동시에 사회 모든 영역으로의 정권 논리 침투를 방지하여 자율성을 보장하는, 그리하여 가능의 영역인 정치 본래의 역할을 회복하고 공공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정치의 존재 이유이자 태반인 시민과의 연대가 필수적입니다. 저는 이것을 반(半)직접민주주의=반(半)대의정치라고 표현합니다. 시민들은 이제 정치의 소비자이자 생산자, 즉 생비자(生費者, prosumer)가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정치의 존재 이유는 공공문제의 해결을 통한 사회의, 삶의 인간화에 있다고 할 때 저는 이 결합을 한국정치가 가야 할 바른 길로 이해합니다. 오늘의 혼란스러운 한국 정치 현실에서 누구보다 깊은 인문적 고뇌를 하고 계실 선생께 이 어려운 문제의 근원에 대한 가르침을 기다리며 이만 줄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