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에 연재했던 최무영의 글인데

수학 공식이 많이 나와서 그동안 퍼오지 않았는데

양자역학을 설명하는 다음과 같은 부분은 흥미로운 점이라서 옮겨와보았다.

 

고전역학에서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인식과 관계없이 우주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알다시피 고전역학의 철학적 배경을 보면 데카르트(René Descartes)적인 사고가 담겨져 있습니다. 서양철학의 핵심은 결국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이고, 그 원류는 플라톤(Plato)에 있다고 하지요. "서양철학사는 플라톤의 각주(footnote)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양철학은 몇 천 년을 지나봤자 결국 플라톤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얘기지요.
  
  이 말을 한 사람이 화이트헤드(Alfred N. Whitehead)로 기억합니다. 이른바 과정철학(process philosophy)으로 널리 알려진 20세기의 중요한 철학자 중 한 사람입니다. 러셀(Bertrand A.W. Russell)이란 사람은 다 알죠? 화이트헤드와 러셀은 둘 다 철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수학자로 출발했고 실제로도 수학에 중요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러셀의 역설(Russell's paradox) 같은 것은 수학 기초론에 아주 중요한 공헌을 했고 특히 두 사람의 공저인 ≪수학의 원리(Principia Mathematica)≫는 수학의 공리체계를 새롭게 바꾸고 이로부터 수학의 명제를 얻어내는 작업을 한 명저로 꼽힙니다. 물리학에도 조예가 있어서 화이트헤드는 물리학적으로는 중요하게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아인슈타인과 조금 다른 상대성이론을 제시하기도 했고 러셀도 몇 가지 물리학에 대한 저서를 남겼습니다. 두 사람 모두 과학철학 분야에도 관심이 많았지요.
  
  화이트헤드의 저서 중에 ≪과정과 실재(Process and Reality)≫가 널리 알려져 있는데 난해하기로도 유명합니다. 관심 있으면 한 번 열심히 읽어보세요. 문장도 난해하지만 철학, 수학, 그리고 물리학에 대한 상당한 지식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실 철학을 전공하는 분들은 수학, 물리학을 모르고 물리학 전공인 나 같은 사람은 철학을 모르니 이해하기 어렵지요. 따라서 제대로 이해하고 번역하기가 매우 힘들 겁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말로 번역이 되어 있지만 오히려 더 어렵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러셀은 더욱 흥미로운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수학과 철학, 특히 인식론과 논리학, 분석철학, 과학철학, 언어철학, 그리고 교육, 종교, 정치 등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정열적으로 활동하였고 많은 업적과 저서를 남겼습니다. 노벨문학상을 받기도 했고 말년까지 반전, 반핵, 평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해서 투옥되기도 한 참으로 놀라운 사람입니다.
  
  아무튼 고전역학에서는 인간의 인식과 관계없이 물질이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이원론적 사고가 깔려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고가 사실 우리의 인식에도 영향을 많이 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 세대에서는 아니겠지만 예술에서 순수냐 참여냐 하는 논쟁이 상당히 활발하게 있었습니다. 고전역학에서는 우리가 대상의 운동 상태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으면서 위치나 속도를 측정할 수 있다는 생각이 전제돼 있습니다. 이는 다분히 순수주의 쪽의 바탕과 연결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간의 의식과 물질은 관계가 없고, 우리는 대상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고 인식할 수 있다는 관점이지요.
  
  그런데 양자역학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알다시피 측정을 하느냐 안 하느냐가 대상의 상태 자체를 바꿔 버립니다. 측정이 필연적으로 대상에 영향을 주며, 따라서 대상과 상관없이 우리의 인식이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사고의 변화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순수냐 참여냐 하는 말 자체가 별로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 에르윈 쉬뢰딩거


  양자역학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러 가지 있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해석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양자역학을 반대한 입장에 섰던 사람으로 아인슈타인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사실 양자역학의 형성에 커다란 공헌을 했지요. 빛전자효과라던가 빛알 이론은 양자역학의 토대가 된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인슈타인 자신은 양자역학을 받아들이기를 꺼렸습니다. 그의 말 중에 "하느님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God does not play dice)"가 유명하지요. 양자역학의 확률적인 해석을 못마땅해 한 것입니다. 측정하기 전에는 확률로서만 말할 수 있다니, 결국 하느님이 주사위를 던져서 자연 법칙을 결정한다는 뜻이냐고 말한 것입니다. 이는 실재성과 관련되어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더 이상한 점은 이런 것입니다. 측정이 대상에 필연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했는데, 어떤 대상을 측정했느냐 안 했느냐가 그 대상을 다르게 바꾼다는 얘기지요. 그러면 여러분이 밤하늘에 달을 볼 때랑 안 볼 때랑 달이 달라진다는 얘기입니다. 달을 본다는 것은 측정하는 것이지요. 달에서 나온 빛을 눈으로 측정하는 것이니, 여러분이 달을 쳐다보느냐 아니냐가 달에 영향을 준다는 말이 됩니다.
  
  이것이 믿어져요? 극단적으로 말해서 과연 쳐다보지 않으면 달이 없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현상이란 언제나 관측된 현상일 뿐이다(A phenomenon is always an observed phenomenon.)" 관측하지 않은 현상은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양자역학의 해석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생겨나는데 다음 강의에서 다루기로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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