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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 2015 제39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평점 :
1. 연애를 할 때 상대에게 폭력을 가하고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최악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나를 ‘숭배’하듯 대하는 사람과의 관계도 썩 좋은 연애인 것은 아니다. ‘나’를 숭배하는 그에게 맞추기 위해 ‘나’는 항상 내 본모습을 숨긴 채 연기해야만 하고 그가 혹시 내게 실망하지나 않을까 맘 속 깊은 곳에서 걱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생각한 모습과 다른 모습이 드러날라 치면 “너 원래 이런 애 아니었잖아”(아니 나를 얼마나 알았다고?)라 하며 책망하다 떠나가기도 한다. 결국 ‘나’라는 존재가 그의 상상 속 판타지를 충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아마도) 헤어진 후의 일이다.
2. 너무 당연한 말이라서 권위자까지 끌어오는 게 우습기는 하지만.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신학자인 에릭 버터워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벨 훅스가 그랬다).
“진정한 사랑은 독특한 통찰력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되면 이 통찰력을 통해 상대를 총체적으로 꿰뚫어보게 된다. 그것은 상대에 대해 어떤 환상도 가지지 않을 채, 상대의 현재 모습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동시에 잠재적인 모습까지 인지하게 된다는 뜻이다. 즉 진정한 사랑은 상대의 현재 모습을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한편, 상대가 자신의 잠재력을 온전히 펼쳐서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기꺼이 돕겠다는 확고한 의지이기도 하다.” 벨 훅스, 『All about Love』, 233-234 pp.
3. 그렇기 때문일까. 사회가 비주류를 주류에 끼어들지 못하게 배제하는 원리도 이렇게 두 가지로 나뉜다. 1) 직·간접적인 폭력과 억압, 2) 이상화시키기.
1)의 사례야 너무 흔해서 말할 필요조차 없겠고. 2)의 대표적인 사례는 과거 초현실주의자들이 여성을 ‘뮤즈’로서 사용했던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세계에서 여성은 철저히 뮤즈로 대상화 될 뿐 화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열 받은 여성 초현실주의 화가 레메디오스 바로는 지긋지긋하다는 듯 “여성은 뮤즈가 아니라 창조자다”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4. 이렇게 길게 서론을 길게 깔아놓은 이유는…… 작가 구병모가 서민, 노동자, 소외된 계층들을 다루는 방식이 이 점에서 이 두 가지 차별의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종종 접하는, 책을 비롯한 많은 예술 장르에서 노동자를 과하게 ‘칭송’하거나 엄청나게 성스러운 존재로 묘사하는 경우를 봐 왔다. 그때마다 오그라드는 내 손……
‘우리는 우리를 찬양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정당한 대우를 원할 뿐이다!’
5. 자신의 이익 앞에 자존심을 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실수도 하며 지긋지긋한 삶 앞에 인간적 도리나 애정이라고는 털끝만치도 남아있지 않은, 그러나 적당히 도덕적이고 적당히 인간적인 이들의 모습은 담담한 서술 속에서 오히려 생명력을 가진다. 오히려 이 점이 누군가에게는 읽는 데 불편함을 줄 수도 있겠다.
‘아니, 내 인생도 더럽게 짜증나는데 이런 걸 책으로까지 읽어야 하나?’
구병모야말로 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통찰력을 갖게 된 것일지 모른다.
6. 다만 여성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만큼은 작가의 서술이 종종 편견 그 자체인지, 아니면 그런 편견을 가진 사회를 비판하는 것인지에 대해 조금 의문이 들기는 한다. 예컨대 <덩굴손증후군의 내력>에서 가장 합리적인 퇴출 대상인 성질 더러운 선배가 알고 보니 부서장과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는 묘사라거나, <이물(異物)>에서 나타나는 ‘비서’라는 특정 직업에 대한 편견을 고착화 시키는 묘사 등등. 정말 문제가 되는 근본적인 구조를 비추기보다 어떤 표면적 모습에 돋보기를 갖다 대는 이러한 묘사는 읽는 이로 하여금 엉뚱한 곳에 분노가 흐르게끔 만들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묘사는 항상 조심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왜, ‘포의 법칙(Poe's Law)'이라는 용어가 생긴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
7. 뭐 이런 불편함을 다소 참아낸다면 이 책은 ‘긴 문장도 이렇게나 매력적일 수 있구나’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매력적인 단편집이다. 한참 중요한 순간에 딱 끝나버리는 전개가 미완성의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되레 ‘쿨하게’ 느껴지는 소설. 일부 묘사의 불편함 때문에 별 하나를 깎지만 별 네 개만큼은 좋은 소설이다. 작가의 다른 소설이 궁금하고, 또, 기대된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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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통>의 메인 아이템이라 할 수 있는 루초 폰타나의 작품을 표지 아이디어로 삼을거였다면, 소설 속에 등장한 작품처럼 빨간 바탕의 작품을 가져오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눈에도 확 띄고 굉장히 매력적이었을텐데......
바로 이런 작품들
그나저나 루초 폰타나의 <부키> 연작은 굉장히 별거 아닌 것 같으면서도 매력적인 작품들이다.
4차원으로의 편입, 초월적인 선험적 공간으로 통하는 입구를 의미하는 그의 작품이 <관통> 앞부분에 인용된 보들레르의 시와 <관통>이라는 작품 그 자체와도 정말 잘 맞아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