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 세계
고혜원 지음 / 다이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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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보통 인생을 바둑에 빗대어 표현하곤 한다.

북송 시대의 문호인 소동파 역시

'인간사란 그저 한판의 바둑일 뿐'이라며

녹록지 않은 인생을 바둑판에,

그리고 삶에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선택들이 바둑판 위의 '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야기했다.


격자무늬로 빼곡하게 겹쳐진 선,

바둑알은 그 위에서 오직 선과 선이 만나는

점에서만 위치할 수 있다.

때로는 내가 마주하는 상대의 기세에

내 활로를 제대로 펼치지 못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다 끝났구나 싶은 순간에

불쑥 한 수로 인해 기사회생하기도 한다.


이처럼 바둑은 단순한 승부가 아니라

한 사람의 생존과 성장, 선택이 담긴

하나의 집약체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인생에서 어떤 고비나

문제를 마주할 때면 고민이 되곤 하는데

이때 바둑의 기술을 대입해 바라보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백의 세계》는

태어남과 동시에 버려진 공주 연화가

바둑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열어가는 이야기로

불리한 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해

바둑을 통해 세상의 규칙을 배워가고,

타인과 소통하고 겨루며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과정을 담았다.


신라시대, 상대등의 입김 아래

손쓸 틈 없이 무력한 열여덟의 왕.

사랑하는 왕비가 아이를 출산하다

죽음에 이르게 되자,

슬픔과 원망에 공주를 가까이 두지 않고

멀리 별궁에 그녀를 떠나보낸다.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의원의 말,

그리고 어떻게든 자신에게 불리하다면

그 싹을 잘라낼 상대등에게서

아이를 멀리 떼어놓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폐쇄적인 궁궐이라는 공간,

누구도 찾지 않는 별궁에서도

공주 연화는 기어이 생명을 이어간다.


이따금 달빛 아래에서 바둑을 두는

자신의 아버지, 왕의 뒷모습을 보며

언젠가 그와 마주 보고 싶다는 마음에

스승 정균에게 바둑을 배우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바둑을 통해

아버지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지만

점차 바둑이 주는 매력에 푹 빠지게 되고,

바둑에서도 삶에서도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법을 배워나가게 된다.


연화는 바둑이 그저

'이기는 기술'을 익히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을 읽고, 판세를 파악하며,

내가 처한 상황을 해석할 수 있는 눈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던 연화에게 벌어진 한 사건은

그저 바둑 자체를 즐기던 그녀에게

살아남기 위한 한 수를 놓게 만든다.


말없이 조용히 바둑판 위에

돌을 내려놓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존을 위한 전략이자

자신을 지키는 무기로

바둑을 갈고닦게 된 것이다.


"살아남으셔야죠. 바둑에서든, 궁궐 안에서든."

이라는 스승 정균의 말처럼,

바둑판 위에서 집을 만들듯

자신의 자리를 만들고 길을 찾으며

유약하고 힘없는 공주는 단단해진다.


홀로 바둑을 두는 젊은 왕,

바둑판 위에서도 정치에서도

그의 기세를 가볍게 누르는 상대등.

어디로도 나갈 수 없는 활로,

벗 하나 없는 왕의 바둑판은

마치 그의 인생을 보여주는 듯했다.


왕의 바둑판, 스승인 정균의 바둑판,

연화의 바둑판,

그리고 누가 봐도 죽을 수밖에 없는 곳에

과감히 바둑돌을 올리면서도

악조건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만의 활로를 찾아내는 라진의 바둑판까지


자신의 바둑에 각자의 인생이 그대로 담긴

등장인물들의 바둑판은

앞으로의 이야기를 짐작해 보게 하는

쏠쏠한 재미가 있기도 했다.


누구도 찾지 않는 별궁의 공주이지만

그녀를 지켜주는 벗이자 가족인

다호, 라진 등 조력자들을 통해

인생의 주권을 되찾는 연화의 성장은

주어진 조건이 불리할 때

나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아무도 내 편이 아닐 때에도

무엇을 믿고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를

질문하고 답을 찾는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외면하는 것으로,

상대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겨우 목숨만 붙어있는 상태이지만

그것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지키는 것'이라

믿는 왕의 바둑은 수없이 막히고

기세에 밀리는 모습이었고


스승에게 수없이 패하고 수가 읽히면서도

다시 도전하고 연습하며 결국에는

승리하는 연화의 바둑은

약한 몸, 여성이라는 조건에 갇히지 않고

훨훨 멀리까지 날아가는 새가 되었다.


바둑의 여러 기술과 원리가 오가는 문장 속

그들이 놓는 한 수 한 수는

인생의 선택과 맞닿아 겹쳐진다.

때로는 물러서기도, 때로는 버티기도 하며

바둑판 위에서의 지략은

생존하기 위한 삶의 전략으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피해자로 시작해

담쟁이덩굴처럼 그저 생명만 붙어있던 연화는

바둑을 통해 능동적으로 성장하고

벽을 뛰어넘어 자신의 인생을 찾았다.


바둑과 인생을 겹쳐,

운명을 개척하는 한 여성의 성장을 통해

삶은 한 번에 결정되는 것도

혹은 강자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의 내 선택, 그리고 인내로 만드는

복합적인 결과물임을 알 수 있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환대 받지 못한 연화.

어머니의 죽음과 별궁으로의 밀려남,

그리고 공주임에도 권력에서 배제된

그녀는 바람 앞의 촛불처럼 약하기만 했다.


하지만 연화가 바둑을 배우고,

바둑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세상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우리에게도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내가 어떤 곳으로 길을 내는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일깨워 줬다.


바둑을 통해 연화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권력을 되찾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읽는 법을 배우고

위험을 헤쳐 나와 자신의 자아를 발견한다.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도전으로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의 답을

스스로 찾는 책의 결말은

나만의 세계를 찾지 못한 채

환경이나 타인에게 휘둘리기만 하는 우리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찾는 삶을

적극적으로 꿈꿀 것을 강조한다.


내게 소중한 것을 지키는 것,

그리고 내가 설자리를 만드는 것.

결국 바둑 속 겨루기의 과정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지금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바둑을 좋아하고 즐기는 이에게도,

바둑은 남성들이 전유물이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책이 전하는 '바둑과 인생'의 메시지가

오랜 여운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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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 오해와 와전, 왜곡으로 얼룩진 말들의 이상한 생애
박강수 지음 / 북트리거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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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유명인이나 기업 총수,

가깝게는 학교나 단체 등의 발표에서

명언이나 격언을 활용할 때가 많다.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그냥 말할 때보다

명언에 빗대어 이야기할 때

듣는 이에게 더 설득력 있게 와닿기에

나 역시도 글을 쓸 때 명언을 자주 활용한다.


하지만 이런 명언을 들을 때 간혹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는지 어떻게 알지?'

싶은 마음에 아리송할 때가 있다.


기록이나 영상·문서 등으로 남아있는

현대를 살아가는 이의 명언이라면 모를까,

지동설을 주장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재판을 나서면서 했다는 말처럼

누군가 옆에서 보고 듣고 기록한 양

남아있는 명언을 접할 때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가 아닐까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역시

같은 의문에서 출발했다.

이 책을 쓴 박강수 기자는 인턴기자 시절

팩트체크 전문 매체에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명언이

정말 사실인지, 누가 말했는지,

그리고 어떤 맥락에서 쓰였는지를 따지는

과정 속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었다고 했다.


우리가 느끼기에 '멋지고 그럴듯한 말'인

수많은 명언들이 사실 그 내막을 살펴보면

항상 진실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

더 나아가 유명인이 말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말의 권위가 커지고, 의도적으로 변경되거나

혹은 무심하게 와전이 반복되면서

원래의 맥락이 지워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그는 대표적인 명언

20개를 해체하는 과정을 담았고,

우리가 왜 명언을 믿게 되었는지까지

돌아보는 특별한 시선을 담았다.


책의 서두는

나 역시 〈무한도전〉을 통해 접하게 되어

'진짜 맞는 말이야, 감동적이다.

이런 마음을 잊지 말아야지' 생각하게 한

신채호의 명언으로 시작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그의 어록은 우리나라의 과거 역사에 대해

지식이 전무한 연예인들을 대상으로

역사 강의를 하는 과정에서 등장했는데,

신채호의 말이라는 자막 한 줄 때문에

이 명언이 그의 발언처럼 굳어졌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갈릴레이, 괴벨스, 스피노자 등

당대의 유명한 철학자를 비롯해

스탈린, 단테, 앤디 워홀 등

유명인들의 어록이 뒤따르며

'이 명언도 진실이 아니라고?'하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했다.


책은 단순히 그들의 어록이 진짜냐 가짜냐를

가르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유명인들의 어떤 발언이 어떻게

오해되고 와전되며 왜곡되어 굳어졌는지

그 과정을 추적함으로써,

명언이 주는 위로와 확신 때문에

맥락을 지운 채 믿고 싶은 말만 들으며

사실처럼 받아들이는

우리의 안일한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


물론 모든 명언이 거짓이거나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때로 진리를 설명하기도 하지만,

어떤 명언들은 인물의 삶과 발언이

정치적인 목적이나 시대적인 욕망과 결합하며

그 사람의 전부처럼 둔갑되는 경우가 있기에

오해가 생긴 과정을 어떻게 헤아리느냐가

결국 '이해의 본질'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인물, 고전, 서사, 세계로 주제를 나누어

한 줄의 헤드라인으로 굳어진 명언,

과장이나 생략으로 덧칠되거나

풍문과 다른 고전의 실체 등을

주요 분석 대상으로 삼으면서

책은 오해가 만들어지는 방식을 조명한다.


기존에 많이 접했던 명언은 물론,

처음 접하지만 여러 곳에 영향을 미친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서

때로는 누군가를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때는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기 위해,

또 어떤 말은 듣고 싶은 이야기를

사실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

살아남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말과 기억이 어떻게 우리의 현실과 역사를

다시 쓰는지를 보여주며,

오해를 헤아리는 이해의 본질에

한걸음 다가가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오해되는 명언들을 접하다 보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일일이 찾아보며 써야 하나?'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는데,

작가는 완벽하게 깨끗한 진실을 찾거나

오해되는 명언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오해가 왜 생겼는지까지

읽어내는 태도라는 점을 강조하며,

명언을 곧바로 믿거나 부정하기 전에

그 말이 나온 자리와 사라지고 삼켜진 맥락까지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제안은

무분별하게 진정한 의미도 모른 채

유명한 사람의 명언이라는 이유로

여기저기 활용하는 습관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보통 유명한 사람이 한 말이라고 하면

쉽게 그 말을 사실로 믿거나

금세 감동하며 위로를 받기 마련이다.

그런 편리함 때문에 우리는 그들이 말한

문장 자체보다 이름을 먼저 기억한다.


하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 오해는 상식이 되고,

날조는 교양처럼 떠돌게 된다.

요즘처럼 말이 많은 세상에서

무엇을 믿어야 할지 헷갈릴 때,

중요한 기준은 문장의 멋짐이나

유명인의 이름이 아니라

출처와 맥락, 생략된 이야기와

그 말을 믿고 싶어 하는 마음에 있다는

메시지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오독된 어록들을 되짚다 보니

각기 다른 시대의 인물과 사례들이 얽힌다.

그저 '오해받은 명언들'라는 이름으로

간단하게 묶인 것 같지만

각각의 이야기들을 통해

오해가 생기는 과정을 헤아리는 태도와

더 나아가 듣고 싶은 말과 사실을

분리해서 보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내가 왜 이것을 믿고 싶어 했는가를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시간을,

그리고 나의 판단 습관을 되돌아보는

의미 있는 구심점이 되리라 생각한다.


원래의 뜻과 다르게 소비되는

수많은 문장과 명언들이

상식처럼 쉽게 굳어지는 요즘에

사실과 믿음의 경계를 구분하는 감각을

기르도록 도와주는 독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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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 - 삶의 벼랑 끝에서 침묵을 택한 어느 은둔자의 이야기
피코 아이어 지음, 최지숙 옮김 / 서사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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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라고들 한다.

하지만 때로 벼랑 끝에 내몰린 심정이 될 때면

내가 짊어진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고 싶어진다.


《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를 쓴

피코 아이어 역시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연이어 닥치며

막막함을 마주했다고 한다.

산불로 터전을 잃고, 아버지의 죽음과

딸의 암 진단이라는 상실 앞에서

오래된 수도원으로 발길을 향한다.


도망치듯 떠나간 수도원에서

그는 침묵이 현실 도피가 아니라

상실을 마주하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는 시간이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고,

세상의 소음에서 떨어져 자신의 내면을 바라본

특별한 경험을 이 책에 담았다.


보통 수도원이라 하면 수행을 전제로 하는

특정 종교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책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죽음·질병·이별·고독과 같은 고통 앞에,

외부의 소란에서 물러나

자신의 내면으로 깊숙이 들어가

스스로를 마주한 경험에 초점을 맞춘다.


삶의 가혹함을 받아들인 뒤

다시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작가,

그리고 수도원에서 만난 이들의 성장을 보며

멈추는 용기와 내면의 응시,

그리고 상처를 극복하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책의 출발점은 작가가 소란한 세상을 뒤로하고

침묵 속으로 숨어드는 과정을 다룬다.

여기서의 숨어듦은 도망치는 회피가 아니라,

너무 빨리 흘러가는 삶에서 잠시 멈추는

선택으로 해석할 수 있다.


보통 어떤 어려움을 마주할 때면

'빨리 벗어나고 회복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기 마련인데,

잠시 멈추는 시도가 회복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작가의 메시지는 꽤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어서는 고요 속에서 얻은 힘으로

매일을 살아내는 법을 다룬다.

침묵을 입을 닫는 행위로 규정짓지 않고,

나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의식적으로 고요를 선택함으로써

현실을 견딜 힘을 얻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힘들 때 멈추는 것에 그치지 않고,

멈춘 뒤에 내가 무엇을 잃었는지

혹은 무엇을 아직 붙잡고 있는지

어떤 두려움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는지

나를 살피고 들여다보는 탐구가 이어지는데


그렇기에 작가는 고요한 수도원 생활이지만

마음속에서는 그 어떤 장소보다

시끄럽고 혼란한 스스로를

마주하게 되었다고도 했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 자체가

평온함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그 고요의 시간 속에서 시끄러운 현실에서

미처 들을 생각을 하지 못했던

내 마음에 집중하는 시간이 된다는 점이

나에게도 꼭 필요한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 때마다 수도원을 찾았던

그의 인생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그곳에서의 시간들은

내면의 가장 깊은 곳을 향한 여정임을

깨닫게 되었다.


겉으로 드러난 사건보다 그 사건이 남긴

빈자리와 기억을 들여다보고,

상실을 외면하지 않고 삶이 남긴 가혹함을

온전히 마주하는 시도 끝에

비로소 회복의 가능성이 생긴다.


이 회복의 가능성은 희망을 불러일으키는데,

여기서 희망은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니라

상실을 통과한 뒤에도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태도로,

어떻게 상처를 마주하느냐가

내 멈춰진 삶을 다시 숨 쉴 수 있게 하는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 상실과 고통 앞에

우리는 비어진 그 현실을 부족함이나

결핍으로 생각해 다른 무언가로 계속

채우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마음의 빈자리를 인정할 때

비로소 주변의 경이로움과 감각이 되살아나며

상실을 안고도 우리는 다시 사랑하고, 기다리고

또 하루를 살아낼 수 있다는 메시지가

마음속에 오랜 울림으로 남을 것 같다.


나 역시 여러 가지 아픔과 상실로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시간이 빨리 흘렀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의미 없이 매일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다른 이를 탓하거나

아픔 속에서 계속 발버둥 치지 않고,

잠시 멈춰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며

침묵과 고요로 다스리는 시간을 가졌다면

조금 더 빨리 회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지만,

현실에서 멈춰 찾아간 수도원에서의 시간은

상실을 안고 살아갈 수 있는 태도를 알려주었다.


침묵이 지닌 아름다움과 거룩함.

꼭 이것이 수도원이라는 공간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삶 곳곳에서 가능하다는

작가의 다정한 위로가 마음에 남았다.


무거운 현실에서 그저 벗어나는

은둔으로 끝나지 않고,

침묵 속에서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는 법을

스스로 깨친 그의 문장들이

같은 아픔을 겪은 이들에게

상실을 극복하는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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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행복은 나의 기쁨이야
정한경 지음 / 북로망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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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바쁘게 살아가는 매일 속에서

행복이라는 것은 마냥 멀게만 느껴진다.


들뜨게 하는 여행지에서,

혹은 기다리던 시험의 합격 소식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특별한 기념일 등에서

종종 행복을 느끼곤 하지만

그런 순간을 제외한 일상 속 대부분의 순간은

버티는 듯한 느낌으로 무료하게 흘려보낸다.


가정이나 사회생활, 인간관계에서도

충만한 기쁨이나 행복을 느끼는 순간보다

서운함과 슬픔, 불안과 무기력,

외로움 같은 아픈 감정을 느낄 때가 많다.


이런 감정을 지고 매일을 보내다 보면

행복은 무엇인가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되는데,

정한경 작가의 신작 에세이

《너의 행복은 나의 기쁨이야》를 통해

행복과 사랑의 본질을 다시 조명하며

일상의 작은 기쁨을 소중히 여기고,

가까운 사람에게 다정한 안부를 건넬 줄 아는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


우리는 보통 사랑이란 상대에게

'마음을 주는 것'이라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책에서는

상대가 무엇으로 행복해지는지 알아가고

그 행복을 함께 바라보는

긴 배움의 과정이 사랑이라 말한다.


"때로는 사랑한다는 고백보다,

당신이 무엇으로 행복한지 알고 싶다는

질문이 더 다정하게 느껴진다"라고 말하며

관계의 중심을 내 욕심에서

상대의 마음으로 옮기는 과정을 풀어낸다.


작가는 타인과의 관계를 맺을 때

상대의 마음이 내 마음의 풍경이 되도록

오랫동안 행복을 들여다봤다고 했다.


SNS 등 다양한 채널을 활용해

멀리 떨어진 사람과도 언제 어디서든

시간과 장소를 구애받지 않고

빠르게 연결되는 요즘이다.

반면 그만큼 짧은 감정 소비로

금방 관계가 끝나거나 손절하기도 하며

되려 깊이 있는 관계는 멀어졌다.


그렇기에 타인을 이해하기보다는

나의 감정을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주는

'감정의 표현'이 사랑이라고 믿곤 하는데,

책은 느리고 다정하게 상대를 향해 걸어가는

사랑의 방식을 이야기하며

이해의 감정으로 사랑을 바라보는

진정한 관계의 본질을 깨우친다.


사랑하는 이의 슬픔이 내 마음을 흔들며,

그의 편안이 나의 편안이 되었던 경험은

분명 누구에게나 존재할 것이다.


책은 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통해

자기 자신밖에 될 수 없었던 우리가

경계를 넘어서게 된다고 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여전히 나로 존재하지만

누군가의 행복이 내 행복과 연결되며,

'사랑은 결국 행복을 향한 동행'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내게 얹어진 삶의 무게나 퍽퍽한 현실에도

누군가와 함께 꽃을 보고 밥을 먹으며,

때로 서운하거나 불편한 감정을 마주하더라도

이를 견디며 함께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깨우쳐주는 책을 통해

내가 믿고 있던 행복을

재정의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바쁘게 사느라 관계의 의미를 잃어버린 요즘에

곁에 있는 사람의 '행복'을 묻는 책의 시선은

관계와 일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특별한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타인의 마음을 묻고 행복을 응원하는 것이

나 자신을 돌보는 길이 된다는 것,

삶에서 예상하지 못한 흔들림과 상실이

때로 패배감을 느끼게 할 때도 있지만

흔들린다는 것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뜻이라 말하는 책 속 문장들은

지친 마음에 조용하고 단단한 위로로 다가왔다.


그동안은 삶을 지탱하는 힘, 그리고 행복은

화려한 결과나 성취에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눈 뜨고 마주하는

사소하고 담담한 일상 속에서,

그리고 차곡차곡 더해가는 작은 발걸음과 반복이

삶을 한걸음 나아가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은 행복들로 쌓아 올린 일상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단단한 기둥이 된다는 책 속의 응원은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 날에도

기꺼이 사랑하는 쪽을 선택하자는

용기를 내게 도와주었다.


타인의 세계를 끌어안고,

세상 가장 다정한 시선으로

삶의 모든 순간을 감싸주는 문장들은

진정한 사랑과 행복이란 무엇인지

그 정의를 다시 내리게 했다.


꽤나 지치고 힘들었던 요즘의 마음이

책을 읽고 나니 한바탕 편안해졌다.

여러 가지 감정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거나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라면

다정히 마음의 안부를 묻고

나의 행복을 바라는 문장들을 통해

편안함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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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시티피케이션 - 똥이 되어버린 플랫폼의 해부학
코리 닥터로 지음, 박희원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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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나라를 들썩이게 할 정도로 시끄러웠던

'카카오톡 업데이트'를 기억하는가?


서로 친구 추가를 한 이용자 간에

그 어떤 제약 없이 무료로 채팅과

음성·영상통화를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대국민 앱'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 카카오톡.


개개인 간의 소통의 창구를 넘어

업무와 비즈니스에도 폭넓게 활용되며

서버에 문제가 생겨 카톡이 먹통 되는 날이면

대한민국이 마비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카카오톡이 업데이트를 진행하며

기존의 목록형으로 보이던 친구 리스트를

인스타그램이나 SNS처럼 피드형으로

노출 방식을 바꾸는 큰 변화를 시도했다.


프로필 사진이 SNS 피드처럼 크게 보이고,

원하지 않는 카카오톡 친구의

소식 업데이트를 봐야 하는 피로함,

사용에 직관적이지 않은 레이아웃 때문에

이용자들은 불편을 호소했다.


당초 '광고할 생각이 없습니다'라는

카카오톡의 당찬 초기 공지사항을 뒤집듯

친구 리스트와 피드 사이사이에

추가한 적 없는 기업과 브랜드의

광고 배너까지 집어넣으며

결국은 사용성 개선을 핑계로

'돈 벌려는 업데이트를 한다'는 비난이 이어졌다.


이렇게 플랫폼의 파워가 커지면서

사용자에게 편리하기만 했던 서비스가

점점 시간이 지나갈수록

안 좋은 쪽으로 변해가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널리스트이자 디지털 권리 활동가인

코리 닥터로는 《엔시티피케이션》을 통해

디지털 플랫폼이 수익을 추구하며

사용자에게 점점 나쁘게 변하는,

일명 똥이 되어버린 플랫폼에 대해 분석한다.


구글, 아마존, 메타 등

누구나 알만한 거대 플랫폼을 비판하는 한편

왜 이런 현상이 반복되는지,

어떤 제도적인 배경이 이를 가능하게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를 다룬다.


그동안 나는 플랫폼의 엔시트화에 대해

'어차피 무료로 사용하는 거니까,

돈 내는 것도 아닌데 불만을 가지면 안 되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왔다.


똥이 되어버린 플랫폼을 사용하면서도

그것에 내가 그리고 우리가 잠식되며,

누군가가 거기에서 이득을 얻고

점점 디지털 사회를 무력화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유행을 따라 열광하다

결국 플랫폼 속에 갇혀버린 것이다.


책은 우리가 편리하다고 생각했던,

우리를 열광하게 한 플랫폼을 훑으며

그것이 어떻게 엔시트화 되는지

그 과정과 패턴을 해석한다.


모든 엔시티피케이션은 동일한 패턴을 갖는다.

가장 먼저, 플랫폼은 사용자에게

최대한 좋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장 싼 물건, 파격적인 무료배송,

플랫폼이 손해를 감수하거나

고객에게 정확한 검색 결과를 제공하는 등

이용자들의 열광할 만한 서비스를 통해

고객 스스로 플랫폼에 맹목적이게 만든다.


그렇게 되면 다음 단계로 진행된다.

플랫폼이 광고주와 판매자, 콘텐츠 제작자 등

비즈니스 고객에게 다가간다는 것.

처음에는 이들에게 정가 매입, 비용 보조 등

깨끗한 운영방식으로 유혹하지만,

이로 인해 재미를 본 비즈니스 고객들을

플랫폼의 인질로 만든다.


그렇게 인질이 된 비즈니스 고객에게

수수료를 올리거나 비용을 떠안기는 등

처음과 다른 대우로 박대하고,

이는 비즈니스 고객뿐 아니라

서비스를 사용하는 일반 고객들에게도

희생이 따르게 되지만

그 누구도 파리지옥에 갇힌 듯 벗어나지 못한다.


마지막 단계는 사용자와 비즈니스 고객

모두가 플랫폼을 떠날 수 없게 갇히는 순간,

플랫폼이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다.


광고비를 우선으로 검색 순위를 조작하거나

광고의 가격을 올리고 정확도를 낮추는 등.

이로 인해 사용자는 찾으려는 정보를

광고에 밀려 제대로 찾지 못하거나

맞춤광고를 위해 개인정보를 약탈당하고,

검색 품질이 나빠지며 플랫폼 자체가

거대한 '똥 덩어리'가 되어버린다.


여기에서 이익을 얻는 자는

플랫폼 기업의 경영진과 주주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이 똥 덩어리의 밑바닥에는

우리만 남게 되는 것이다.


엔시티피케이션의 단계를 분석하며

머릿속에 물음표가 생겼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까지 된 걸까?

책은 이 원인에 대해 경쟁과 규제,

상호 운용성, 테크 노동자의 권력이라는

그동안의 엔시트화를 억제하던 제약들이

허물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기업이 덩치를 키우며 경쟁사를 잡아먹고,

작은 기업들을 흡수 합병하며

몇몇의 대기업이 좌지우지하는 반독점화.


몸집을 키운 플랫폼이 천문학적인

로비자금을 쏟아부으며 유발한 규제 무력화.


초기 인터넷은 서로 다른 기술이나

서비스가 연동되는 상호 운용성이 있었으나

권력을 잡은 플랫폼 공룡들이

후발 주자들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지식 재산권 법과 기술적 자물쇠로

잠가버렸다는 것.


여기에 플랫폼이 똥 덩어리가 되려 할 때

내부에서 이를 막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인 테크 노동자들 마저

23년과 24년 대량 해고를 통해 무력화하며

와르르 무너져버린 지금에 이른 것이다.


이렇게 똥이 되어버린 플랫폼과

디지털 현실을 하나씩 해부해 나가다 보면

과연 디지털 미래에 밝은 내일이 있을까

실망하고 막막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저 서비스를 이용했을 뿐이라 생각했는데

플랫폼이 만든 판 위에서 놀아나는

장기 말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지금의 이 현실이 마냥 씁쓸한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현실에 대해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여전히 '좋은 인터넷'은 가능하다며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인터넷의 엔시티피케이션에 제동을 걸고,

좋은 과거로 회귀하려는 후진 기어를 넣으려면

테크 기업들의 기강을 잡는 네 가지 힘인

앞서 말한 경쟁, 규제, 상호 운용성,

테크 노동자의 권력을 되살리면 된다고 말이다.


이미 유럽을 중심으로 테크 기업에 대한

반독점 정책이 시동을 걸었다는 시작,

사용자와 구매자의 권리를 제약하는

아이폰의 보안 문제를 뚫어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간 암호화된

메시지 전송 가능성을 확인해 준 기술이

나타나기도 했고 말이다.


물론 좀 더 확실한 구원을 위해서는

법적인 강제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과제가 남기는 했지만,

우리 손안의 혁신에서 쓰레기로 전락한

플랫폼과 인터넷을 제대로 조명한 책의 시선이

시대를 읽고 선명한 문제의식을 일깨우는

특별한 계기가 되었다.


책의 신랄한 분석과 따끔한 질책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막연하게 체감하고 있던 불편한 경험의

원인이 무엇인지 제대로 일깨워 줄 것이다.


더 나아가 모두의 디지털 공유지를

원래의 좋은 방향으로 되돌리기 위해

플랫폼을 우리 삶에서 '덜 중요하게' 만드는

힘 빼기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하며


플랫폼에 갇힌 우리 스스로가

자유롭게 인터넷을 누릴 권리를

되찾고자 노력을 기울일 때,

이미 낡아빠지고 과열화된 플랫폼이

스스로를 채찍질할 수 있게 된다는

긍정적인 방향성을 만날 수 있었다.


인터넷의 희망은 사라진 게 아니라

단지 붙잡혀 있을 뿐이라는 것을,

소수 빅테크가 장악하는 지금에서 벗어나

인터넷이 편리하고 실용적이며 재미있던

과거의 열린 공유지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 되었다.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기도 했지만

플랫폼의 씁쓸한 현실을 제대로 마주하며

오히려 인터넷과 플랫폼이 제공해온

'연결'의 진정한 의미를 되짚을 수 있는

기회가 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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