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 세계
고혜원 지음 / 다이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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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보통 인생을 바둑에 빗대어 표현하곤 한다.

북송 시대의 문호인 소동파 역시

'인간사란 그저 한판의 바둑일 뿐'이라며

녹록지 않은 인생을 바둑판에,

그리고 삶에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선택들이 바둑판 위의 '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야기했다.


격자무늬로 빼곡하게 겹쳐진 선,

바둑알은 그 위에서 오직 선과 선이 만나는

점에서만 위치할 수 있다.

때로는 내가 마주하는 상대의 기세에

내 활로를 제대로 펼치지 못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다 끝났구나 싶은 순간에

불쑥 한 수로 인해 기사회생하기도 한다.


이처럼 바둑은 단순한 승부가 아니라

한 사람의 생존과 성장, 선택이 담긴

하나의 집약체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인생에서 어떤 고비나

문제를 마주할 때면 고민이 되곤 하는데

이때 바둑의 기술을 대입해 바라보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백의 세계》는

태어남과 동시에 버려진 공주 연화가

바둑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열어가는 이야기로

불리한 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해

바둑을 통해 세상의 규칙을 배워가고,

타인과 소통하고 겨루며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과정을 담았다.


신라시대, 상대등의 입김 아래

손쓸 틈 없이 무력한 열여덟의 왕.

사랑하는 왕비가 아이를 출산하다

죽음에 이르게 되자,

슬픔과 원망에 공주를 가까이 두지 않고

멀리 별궁에 그녀를 떠나보낸다.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의원의 말,

그리고 어떻게든 자신에게 불리하다면

그 싹을 잘라낼 상대등에게서

아이를 멀리 떼어놓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폐쇄적인 궁궐이라는 공간,

누구도 찾지 않는 별궁에서도

공주 연화는 기어이 생명을 이어간다.


이따금 달빛 아래에서 바둑을 두는

자신의 아버지, 왕의 뒷모습을 보며

언젠가 그와 마주 보고 싶다는 마음에

스승 정균에게 바둑을 배우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바둑을 통해

아버지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지만

점차 바둑이 주는 매력에 푹 빠지게 되고,

바둑에서도 삶에서도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법을 배워나가게 된다.


연화는 바둑이 그저

'이기는 기술'을 익히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을 읽고, 판세를 파악하며,

내가 처한 상황을 해석할 수 있는 눈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던 연화에게 벌어진 한 사건은

그저 바둑 자체를 즐기던 그녀에게

살아남기 위한 한 수를 놓게 만든다.


말없이 조용히 바둑판 위에

돌을 내려놓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존을 위한 전략이자

자신을 지키는 무기로

바둑을 갈고닦게 된 것이다.


"살아남으셔야죠. 바둑에서든, 궁궐 안에서든."

이라는 스승 정균의 말처럼,

바둑판 위에서 집을 만들듯

자신의 자리를 만들고 길을 찾으며

유약하고 힘없는 공주는 단단해진다.


홀로 바둑을 두는 젊은 왕,

바둑판 위에서도 정치에서도

그의 기세를 가볍게 누르는 상대등.

어디로도 나갈 수 없는 활로,

벗 하나 없는 왕의 바둑판은

마치 그의 인생을 보여주는 듯했다.


왕의 바둑판, 스승인 정균의 바둑판,

연화의 바둑판,

그리고 누가 봐도 죽을 수밖에 없는 곳에

과감히 바둑돌을 올리면서도

악조건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만의 활로를 찾아내는 라진의 바둑판까지


자신의 바둑에 각자의 인생이 그대로 담긴

등장인물들의 바둑판은

앞으로의 이야기를 짐작해 보게 하는

쏠쏠한 재미가 있기도 했다.


누구도 찾지 않는 별궁의 공주이지만

그녀를 지켜주는 벗이자 가족인

다호, 라진 등 조력자들을 통해

인생의 주권을 되찾는 연화의 성장은

주어진 조건이 불리할 때

나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아무도 내 편이 아닐 때에도

무엇을 믿고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를

질문하고 답을 찾는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외면하는 것으로,

상대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겨우 목숨만 붙어있는 상태이지만

그것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지키는 것'이라

믿는 왕의 바둑은 수없이 막히고

기세에 밀리는 모습이었고


스승에게 수없이 패하고 수가 읽히면서도

다시 도전하고 연습하며 결국에는

승리하는 연화의 바둑은

약한 몸, 여성이라는 조건에 갇히지 않고

훨훨 멀리까지 날아가는 새가 되었다.


바둑의 여러 기술과 원리가 오가는 문장 속

그들이 놓는 한 수 한 수는

인생의 선택과 맞닿아 겹쳐진다.

때로는 물러서기도, 때로는 버티기도 하며

바둑판 위에서의 지략은

생존하기 위한 삶의 전략으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피해자로 시작해

담쟁이덩굴처럼 그저 생명만 붙어있던 연화는

바둑을 통해 능동적으로 성장하고

벽을 뛰어넘어 자신의 인생을 찾았다.


바둑과 인생을 겹쳐,

운명을 개척하는 한 여성의 성장을 통해

삶은 한 번에 결정되는 것도

혹은 강자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의 내 선택, 그리고 인내로 만드는

복합적인 결과물임을 알 수 있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환대 받지 못한 연화.

어머니의 죽음과 별궁으로의 밀려남,

그리고 공주임에도 권력에서 배제된

그녀는 바람 앞의 촛불처럼 약하기만 했다.


하지만 연화가 바둑을 배우고,

바둑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세상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우리에게도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내가 어떤 곳으로 길을 내는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일깨워 줬다.


바둑을 통해 연화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권력을 되찾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읽는 법을 배우고

위험을 헤쳐 나와 자신의 자아를 발견한다.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도전으로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의 답을

스스로 찾는 책의 결말은

나만의 세계를 찾지 못한 채

환경이나 타인에게 휘둘리기만 하는 우리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찾는 삶을

적극적으로 꿈꿀 것을 강조한다.


내게 소중한 것을 지키는 것,

그리고 내가 설자리를 만드는 것.

결국 바둑 속 겨루기의 과정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지금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바둑을 좋아하고 즐기는 이에게도,

바둑은 남성들이 전유물이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책이 전하는 '바둑과 인생'의 메시지가

오랜 여운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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