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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타이거의 포효
이상철 지음 / 시공사 / 2026년 10월
평점 :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전쟁이 발생하면 생명에 대한 위협은 물론, 끝나고 난 이후에도 그 상처와 잔흔은 길게 이어진다. 한국전쟁이 지난지 벌써 한참이지만 전쟁으로 인한 고통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있다. 누군가는 전쟁으로 인해 가족과 뿔뿔이 흩어지기도 했고, 누군가는 가족을 잃기도 했다. 생존을 위협받는 이런 위험 속에서 내 가족만, 나만 생각하는 마음을 이기적이라 할 수 없고 어떤 면에서는 당연하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내 조국의 전쟁도 아닌 타국의 전쟁에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도움의 손길을 뻗은 사람들이 있었다.
한국전쟁에 파병한 나라들이 몇이나 되는지 제대로 아는 이가 있을까? 전투부대 16개국, 의료지원 6개국 등 총 22개국의 도움이 있었다고 한다. 미국이나 영국같이 엄청난 파병 규모나 기록이 남아있는 나라들은 익숙하지만, 태국이나 에티오피아, 남아프리카 공화국처럼 알려지지 않은 나라들도 있다. 도움의 규모에 관계없이 숭고한 희생은 다를 바 없거늘 우리는 이들의 참전과 희생에 대해 너무도 무지한 게 아닐까.
《리틀 타이거의 포효》는 한국전쟁에 자국의 군대를 파병한 태국군의 이야기를 담았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파병을 결정한 나라, 육·해·공군을 모두 파병한 나라, 쌀 4만 톤을 지원한 나라. 1952년 폭찹 고지 전투에서 중국군의 대규모 공격을 막아내며 ‘리틀 타이거’라는 별칭을 얻은 태국. 하지만 그들의 놀라온 기록과 전우애, 희생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는데, 책을 통해 그들의 희생을 제대로 마주하며 숨겨진 참전사를 배울 수 있었다.
태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표적인 휴양지라는 점이다. 나 역시 휴가로 태국을 여러 번 찾은 적이 있을 정도로 포근하고 따뜻한 날씨에서 여유로움을 만끽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여기에 아직도 왕권이 있고, 불교문화가 발달한 나라. 우리 K-POP 문화를 좋아하는 나라가 태국에 대해 내가 가진 이미지의 전부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우리가 전쟁으로 인해 힘겨워하던 시절, 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파병을 결정했다. 전쟁이 발발한 뒤 빠르게 파병 의사를 밝혔고, 군대를 보내기 이전에 쌀 4만 톤을 지원했다. 4만 톤이라는 숫자가 어느 정도인지 와닿지 않는데 무려 피란민 100만 명이 거의 석 달 가까이 먹을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단시간에 놀라운 경제 발전을 이끌어내며, 언제 전쟁의 상흔이 있었냐는 듯 과거를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래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던 타국의 온정의 손길은 금세 잊고, 그들에게 우리보다 못한 ‘후진국’이라며 무시하는 마음을 갖지는 않았나 모르겠다.
태국의 인도주의적인 도움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춥디추운 우리나라로 자국의 병사들을 보내며 우리를 지키고 도왔다. 만약, 지금 같은 시대에 전쟁이 난다고 했을 때 과연 우리나라는 타국에 자국의 군인들을 파병할 수 있을까? 그리고 엄청난 자원을 어떤 조건도 없이 베풀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글쎄,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조국도 아닌 타국의 보호와 안전을 위해 우리 군인의 생명을 담보로 잡을 수 있을 것인가 하면 망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분명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태국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피를 말리는 전투로 언급되는 ‘고지전’ 그중에서도 1952년에 있었던 폭찹 고지 전투에서 그들은 중국군의 대규모 공격을 막아내며 ‘리틀 타이거’라는 별칭을 얻어냈다. 그런 영광스러운 명예의 뒤에는 전쟁을 치르며 부상과 전사, 여전히 유해조차 찾지 못한 실종자들도 있다. 계속되는 공격에 맞선 방어전과 공방전에서도 죽음에 대한 극한의 두려움을 마주한 태국 군인, 청년들의 희생을 왜 우리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을까 안타깝기만 하다.
그들 역시 누군가의 가족이자 남편, 아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과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느껴지는 두려움을 넘어 자신을 희생하며 타인을 보호하고 지키고자 했던 마음에 먹먹함이 들었다. 매년 한국전쟁이 시작된 6월 25일이 되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애쓴 순국선열이나 전쟁의 피해로 고통받은 우리 국민들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회자되지만, 정작 우리를 위해 애쓴 타국의 희생은 조명 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나 큰 규모로 참전과 지원을 보낸 나라들은 교과서나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지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나라들의 희생은 그림자처럼 가려진 것이다.
책을 통해 태국군의 참전 경로와 전장 기록을 재구성하며, 전선을 움직인 숫자뿐 아니라 그 속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보낸 태국 청년들의 삶과 희생, 두려움, 전우애도 엿볼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꽤 오랜 시간 우리나라에 남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기도 했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삶을 마감했고, 누군가는 실종자로 처리되어 영원히 돌아가지 못했다. 이들의 희생은 지나간 과거의 일이 아니라 남아있는 가족에게는 마무리 지어지지 못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으로, 또 한으로 남는 것일 텐데 이 혜택과 도움을 받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과제가 남았다.
그동안은 한국전쟁 참전 용사의 유해 발굴이 되었다는 뉴스를 접해도 별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고향을 떠나 타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희생된 이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나니, 이제는 그 소식이 다르게 느껴질 것 같다. 부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실종자들이 늦게라도 세상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그리고 그들의 참전사를 이제라도 우리 모두가 제대로 이해하고 인식할 수 있기를 말이다.
지나간 과거의 일이라고 이제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라고 치부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내가 편안히 그리고 안전하게 살아가는 오늘의 자유 앞에는,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을 던진 누군가의 희생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겠다. 한국전쟁을 우리만의 역사라 생각해왔는데,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먼 곳에서 달려온 이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의 자유를 위해 함께 싸워준 그들에게 진 빚을 잊지 않고 그 과거를 발판 삼아 앞으로의 미래에 따뜻한 우호로 답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