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느슨한 기록 일지 - 꾸준함을 만드는 가벼운 끄적임의 힘
이다인(다이너리) 지음 / 청림Life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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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몇 해 째인지 모르겠지만

늘 새해가 되면

'아날로그 기록'에 대한 열망으로

야심 차게 다이어리를 펼쳤다가

작심삼일처럼 실패하곤 했다.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큰 나이기에

스스로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하루라도 빼먹으면 그게 싫어서

혹은 조금 잘못 기록한 게 꼴 보기가 싫어져

비장했던 다짐과는 달리

'완벽하지 못할 거라면 그만두는 게 좋겠어'

하곤 금세 다이어리를 던져두었다.


그렇게 쌓인 다이어리와 노트가 몇 권,

펜이나 스티커 등이 제법 쌓이다 보니

마음 한편이 불편해졌다.

차라리 사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후회하는 마음도 들고 말이다.


대단한 기록을 하고자 함도 아니고

그저 일정이나 기억해야 할 것들을

조금씩 써두고 싶을 뿐인데,

뭐가 그리 어렵게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내년에 다시 시작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

문득 '언제 또 그만둘지 모르니

지금 일단 연습 삼아 기록해 볼까?'

하는 마음이 갑자기 불타올라서

9월의 마지막 주 어느 날 노트 한 권을 펼쳤다.


뭐든 확실한 것을 좋아해서

분기나 월의 시작 혹은 새해가

시작의 적기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연습이니까 망쳐도 괜찮아'

생각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 것이다.


대단한 기록은 아니었다.

무언가 소비를 한 날은

날짜와 물건, 구매금액을 적었고

꼭 기억해야 할 일정을 투 두 리스트로 적어

완료한 것엔 체크, 하지 못한 것에 X를 그으며

내 마음대로의 수첩으로 활용했다.


무언가 기분을 남기고 싶은 날에는

오늘의 감정이라는 제목과 글을 썼고

틀리면 수정테이프로 지우거나

쭉 줄을 긋기도 하고,

꾸미는 건 귀찮으니까 3색 볼펜으로 쓰니

부담감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기록이 신기하게도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명절 연휴나 피곤한 날은 과감히 패스하고

(어차피 이건 연습이니까,

지나간 기록을 굳이 적을 필요는 없어서)

쓸 수 있는 날에만 쓰다 보니

점점 기록의 재미가 붙었다.


그래서 어떤 날에는 빼곡하게

오늘의 소비, 오늘의 할 일, 오늘의 감정,

정말 쓸 소재가 없는 날에는

오늘의 감사한 일을 적으면서 이어갔다.


이렇게 한 달 넘게 채워진 노트를 보니

뿌듯한 마음과 함께

'내년에도 기록을 이어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붙게 되었고,

좀 더 제대로 기록하는 방법이 있을까 싶던 찰나에

이 책 《나의 느슨한 기록 일지》를 펼쳤다.


이 책은 기록 크리에이터로 입소문난

다이너리 이다인이 쓴 책으로,

나와 비슷한 경험을 반복해온 저자가

마침내 기록을 자신의 습관으로 정착시키기까지

시도했던 여러 가지 방법 중,

핵심만을 모아 집필한 '기록 가이드북'이다.


늘 다이어리 쓰기를 중도에 포기했던 사람들에게

기록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알려주는

그녀의 기록 여정은

'열두 달 기록 샘플러'라는 형식으로 통해

매달 하나씩 새로운 기록법을 소개한다.


그녀가 제안하는 방법을 따라

기록을 시도해 봐도 좋고

기록이 가지는 내면과 삶의 변화,

혹은 내게 맞는 기록을 찾아갈 수 있기에

많은 이들에게 좋은 자극과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 역시 처음에는 숱한 실패로

다이어리 쓰기를 포기했다고 했다.

하지만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며

오늘 뭐 먹었지? 같은 가벼운 질문이나

체크리스트, 감정을 기록하는 무드 트래커,

글이 아닌 사진으로 기록하며

쓰기의 부담과 귀찮음을 줄여주는

포토 먼슬리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달라진 모습을 소개한다.


이 과정을 통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일상을 정리하고 감정을 마주하며,

내가 좋아하는 취향을 탐구해

선명하게 자기 자신을 알게 되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열두 달의 기록 연습을 거치고 나면,

기록은 단조로운 습관이 아니라

나를 뚜렷하게 만드는 작업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에 더욱 의미 있는 시도이자

기록을 망설이는 이에게도

새로운 동기부여로 작용할 거라 생각한다.


단순히 일상을 기록하는 데 멈추지 않고

이를 통해 타인과 함께 즐기는 삶으로까지

발전시켜 나간 그녀의 기록 생활을 통해

'나는 무엇을 기록하고 싶은가'

'내가 기록을 통해 달라지고 싶은 게 무엇인가'의

질문을 스스로 고민할 수 있었고,


그저 일정을 쓰는 기록만 떠올렸던 내게

다양한 종류의 기록이 존재하며,

그것이 나의 삶을 얼마나 다채롭게 만드는지

그리고 나도 모르던 나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앞으로의 기록에 무엇을 추가해 볼까

즐거운 상상에 빠지게 만들었다.


기록 크리에이터들을 보면

예쁜 다이어리에 정갈한 글씨체,

알록달록한 스티커와 다꾸 템이 등장해

'나는 저렇게까지는 못하는데' 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록이 아니라는

착각을 했던 것도 같다.


다이어리나 수첩, 노트 등

형식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기록은 타인의 시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내가 좋은 기록이 되어야 하는데

너무 남의 눈을 의식하느라

지레 겁 먹었던 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됐다.


예쁘게 쓰지 않아도 되고,

매일 빠짐없이 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며

완벽하지 않더라도 서투르고 느슨한 기록이라도

묵묵히 나만의 기록을 이어가다 보면

결국엔 모두가 '기록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따스한 조언을 듣고 나니

나의 '연습 삼아 시작한 기록'에도

더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는 것 같다.


원래는 새해가 되면 새로운 다이어리로,

더 예쁘게 '제대로' 해봐야지 생각했는데

지금의 기록에 살을 덧붙이는 방식으로도

충분하겠다는 안도감이 든다.


정답이 정해져 있는 시험문제가 아니라

나만의 방식으로 만들어가는 작품인

기록을 앞으로도 용기 내어 꾸준히 이어가야겠다.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는 힘,

그것이 주는 가치를 책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나처럼 다이어리 기록에 부담을 갖고

수없이 실패하며 망설였던 경험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부담을 내려놓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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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할머니 약국
히루마 에이코 지음, 이정미 옮김 / 윌마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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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병원이 있는 건물이면

백이면 백 약국이 함께 자리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발걸음을 하게 되는 곳이 있다.


우리 엄마만 해도 동네 병원에 다녀올 때마다

특정 약국만 찾곤 하는데,

그 이유가 약사님의 친절하고 다정한 태도

때문이라 말한다.


엄마가 들를 때면 얼굴을 기억했다가

종종 들르신 적 있었던

외할머니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약에 비해 포장 부피가 큰 약을 줄 때면

여분의 통을 하나 주시며

한 번에 다 담아두라 말해주거나

복용법도 정성스럽게 적어주신다는 것.


누군가는 약국은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받는 곳에 불과하고,

때로는 처방전 없이 증상에 따라

필요한 약만 사면 되는데

그런 친절이 약국을 찾는 이유가 되겠냐 싶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 역시도

그냥 '일'로서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서

증세에 따라 나의 컨디션을 헤아리고 염려하며

따뜻하게 마음을 건네주는 곳에

자연스레 발걸음이 향한다.


일본 도쿄에는 무려 70년이 넘게

한자리에서 일하며

환자들을 살피는 할머니 약사가 있다.

단순히 약을 조제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마음을 돌보는 데 집중한 그녀는

오랜 시간 여전히 현역으로 일하는 꾸준함은 물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에

초점을 맞추었기에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녀가 운영하는 작은 약국을 찾는

손님들과 나누었던 대화,

그들의 삶에 귀 기울이는 태도,

할머니 약사의 다정한 말 한마디로

사람을 '치유'하는 과정을 담아낸 이 이야기는


'함께, 그리고 다정하게'라는 삶의 자세로

약보다 마음을 먼저 살피는 따뜻함,

그리고 사람을 낫게 하는 건 사람이라는

공감과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우리의 삶에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스스로 되묻는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약국,

처방전에 따라 약을 받고 비용을 내면

그걸로 끝나는 일이기에

편하게 생각하면 굳이

애써 마음을 쓸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한 발짝 먼저 인생을 살아간 어른으로서,

혹은 함께 늙어가는 또래로서,

그리고 같이 살아가는 이웃으로서

약국을 찾는 사람들을 향해

따스한 마음을 애써 건네는

그의 수고스러움 덕분에

긴 시간 한자리를 지켜갈 수 있었음을,

그리고 그 진심 덕분에 손님들 역시

마음으로 소통하게 되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100세 가까운 나이에도 현역으로 일하며

삶의 열정을 잃지 않는

저자의 적극적인 행동과 그 의지는

노년의 삶도 충분히 아름답고 가치 있으며,

현생에 치여 열정보다는

안일하고 익숙하게 매일을 흘려보내기 쉬운

현대의 우리에게 좋은 롤 모델이자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다.


약을 조제하고 담아내어 손님에게 전하는 것은

어쩌면 반복되는 일상이기에

여기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거나

시간을 더해갈수록 의욕이 떨어질 수 있는데,

변해가는 시대의 모습에 따라

다른 이에게 맡기거나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배우려는 노력과

사람을 향한 진심 가득한 태도는

비단 같은 분야의 일이 아니더라도

'나는 내 일에 진심을 다하고 있는가?' 하며

그동안의 삶을 되짚게 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진심 어린 관심은

제아무리 마음의 문을 닫았던 사람이라도

무장해제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런 다정함이 최고의 약이라는 믿음으로,

몸의 병뿐만 아니라 마음의 병을 먼저 살피는

지혜를 가진 할머니 약사를 통해

진정한 건강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늘 '빨리빨리'

그리고 효율성만 따지기 쉬운 요즘에,

잠시 멈춰 서서

사람답게 사는 법을 되새기게 하는

할머니 약사의 진득한 매일이

마음 깊이 울림을 준다.


결국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 어우러져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고

서로를 배려하고 헤아리며

풍요로운 삶으로 나아가야겠다는 가르침이다.


처음에는 많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현역으로 일하는 약사의 인생 노하우,

약국에서 만난 손님들과의 에피소드를 담아낸

가벼운 책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책을 읽어갈수록

삶의 방향성과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지난날의 삶을 되짚고 반성하며

좀 더 온기 있고 소통하는 내일을

꿈꿀 수 있는 변화를 마주할 수 있었다.


타인에게 애써 다정함을 베풀며

여전히 같은 자리에 존재하는 약국을

오며 가며 매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힘,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매번 '그 약국에 가면 말이야,'하면서

약사님이 좋다고 했던 엄마의 말이

비로소 이해가 가면서,

나도 그 약국에 한번 가볼까 하는 마음이 든다.


책에 등장하는, 그리고

엄마가 즐겨 찾던 약국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면

누군가에게나 열린 마음과 따뜻한 시선으로

다정함을 베푸는 곳은 많을 것이다.


그런 따스함으로 우리의 순간, 하루가

행복해지고 치유가 되듯,

나도 스스로를 넘어 타인에게도

친절하고 다정함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어야겠다는 마음이 든 독서였다.


개인주의를 넘어 이기주의가 만연한 요즘,

타인과의 관계에 마음이 지친 사람이나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물론

나이, 직업, 상황을 초월해

사람답게 사는 법을 되새기고 싶은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다.


무겁지 않은 인생의 안내서, 이 책을 통해

100세 할머니가 기다리는 약국에서

나만의 치유를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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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엔딩 소설Q
김유나 지음 / 창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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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병에 효자 없다는 옛말이 있다.
처음에는 '당연히 내가 해야지' 생각한 간병도
끝이 보이지 않는 희생과
반복되는 고된 일상이 이어지며
결국 원망과 갈등, 혹은 이를 버거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이 뒤엉킨다.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서로가 서로를 좀먹는 삶이다.

《내일의 엔딩》의 주인공 자경의 이야기도
바로 이런 지점에서 시작된다.

자신을 낳다가 돌아가신 엄마,
그래도 아빠와 단둘이 살아온 자경은
갑작스레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빠를 간병하며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들어가는 병원비로
새삼 체감하게 된 경제적 부담은 물론,
자신을 위해서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무미건조한 매일을 견디며 살아간다.

처음에는 아빠가 금방 툭 털고 일어날 거란
희망을 가지기도 했지만
시간은 어느덧 6년을 넘겼고,
희망도 통장 잔고도 말라붙었다.

퓨즈가 나가 어두워진 아빠만큼이나
자경도 점점 잿빛이 되어간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무너져 내리고,
자신이 사라지는 듯한 감각만 남는다.

그렇게나 애쓴 간병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자경만 홀로 남긴 채 세상을 떠나고,
가뜩이나 지난하고 고독한 삶 속에서
외로웠던 자경은
고향 집을 정리하며 진짜 혼자가 되었음을,
그리고 그 사실이 무엇보다 두려웠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단 한 명뿐인 상주, 찾을 사람도 없는 장례식.
그 속에서 자경은 늘 '혼자'라 믿었던 자신이
사실은 혼자 있지 않았음을 조금씩 알게 된다.
오래전 연락이 끊겼던 회사 선배의 발걸음
그리고 그녀의 따끔하지만 따뜻한 조언,
올 거라 기대하지 않았던 친구의 방문,
아빠의 제자라는 이유로 마음을 내어준 사람들.

그들이 건넨 무뚝뚝하지만 따뜻한 손길은
자경이 외면했던 감정을 끌어올리고
그녀를 다시 삶의 자리로 이끈다.
그것은 거창한 위로나 도움이라기보다는
삶의 무게를 견디는 사람들끼리의
조용한 연대와 같달까.

그 연대는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방식으로
자경의 마음을 조금씩 덜 외롭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제야 깨닫게 된다.
자신이 버티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곁에서 조용히 지켜주고 있었음을.

고향 집에서 아버지의 짐을 정리하던 자경은
한때 꿈 많던 시절 자신이 만들었던 영화와
영화를 본 아빠가 쓴 일기 속 감상을 발견한다.

망했을지라도 끝까지 완성하고 싶었던 영화,
그리고 그 영화를 본 뒤 아빠가 남긴 기록 속에서
자경은 과거의 감정과 관계,
무뎌졌던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그 기록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자경이 잃어버렸던 자신을 되찾는 열쇠가 된다.

'인간을 기어이 살아가게 하는 삶의 소중한 빛은
언제나 멀고 희미한 곳에 있다'는
아빠의 일기장 속 문장처럼
자경은 그 희미한 빛을 따라
새로운 내일의 엔딩을 향해 나아간다.

그녀와 크게 다를 것 없이,
퍽퍽한 현실을 살아가며
자경과 진전 없는 관계를 이어가던
연인 응현은 '참 바보 같은 선택'이라 말했지만,
자경은 그 선택에 기꺼이 뛰어든다.

그건 어쩌면 더 사랑하는 쪽으로,
그리고 덜 혼자가 되는 쪽을 향한
본능적인 걸음일지도 모르겠다.
그 선택은 불확실하고,
어쩌면 또다시 상처를 남길지도 모르지만
자경은 이제 그 상처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

팀원들 중 어느 하나 찾아주지 않았지만
연락도, 왕래도 없던 그녀를 헤아려준
진짜 어른 같은 선배가 있었고,
결국 포기해버린 꿈이지만
그 안에서 누구보다 자신을 믿고 함께해 준
친구 표다르가 있었기에
자경의 지난했던 삶과 그 나날들이
그래도 마냥 씁쓸하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아버지를 향한 돌봄과 간병,
때로는 그녀에게 버거운 책임감으로 다가왔지만
자신을 같은 마음으로 품고 지켜왔을
지난날의 아빠를 떠올리며,
기꺼이 그리고 끝까지 마음으로 보듬은
자경의 아빠를 향한 사랑 역시도
참 따습고 아름답게 빛났다.

많은 것을 이미 잃었음에도
여전히 한결같은 희미한 반짝임으로,
곁에 그저 함께하는 누군가가 있음에
힘을 얻고 자경은 다시 살아가기로 한다.
그것은 꼭 자경만의 엔딩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인생이겠지 싶다.

자경의 현실은 가슴이 먹먹했고,
미래는 마냥 막막하게만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경의 곁에서
빛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그리고 지금도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 다행스러웠다.

비록 기울어진 마음이라도
서로에게 기대고 토닥이며,
조금은 더 포근한 내일을 향해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나아가는 삶.
그런 삶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내일의 엔딩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엔딩이, 자경에게 그랬듯
누군가의 시작이 되어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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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잘되길 바랍니다 - 사람을 보고 길을 찾은 리더의 철학
권영수 지음 / 쌤앤파커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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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부모님 세대만 하더라도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 회사에 취직하고 나면

정년까지 다니는 것이 당연해 보였다.


요즘은 연봉이나 복지, 조건이나 비전 등에 따라

철새처럼 쉬이 회사를 옮기는 사람이 많다.

'내 회사'라는 마음보다는

그저 밥벌이로 직장을 바라보는 경우도 왕왕 있다.


직원을 회사의 부속품 정도로 생각해

쉽게 교체하거나 버리고,

노력이나 수고스러움을 치하하기보다는

능력을 발휘하는 건 월급을 주니

당연한 것이라 여기는 냉혹한 시대다.


회사의 발전에 이바지하거나

혹은 승진을 통해 커리어에서의 발전,

목표를 이루는 성장이나 애사심은

뒷전이 되어버린 요즘,

평사원으로 시작해 CEO까지 올라

한 조직을 일으킨 리더십의 대가가

사람 그리고 진심으로 승부를 걸어온

이 기록은 색다르게 다가온다.


시대가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원칙,

자신만의 '사람'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45년이라는 시간 동안

위기에 물러서지 않고 변화 속에서 길을 찾아온

LG그룹 권영수 전 부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대기업의 대물림식 경영으로

"아무리 애써봤자 올라갈 수 있는 곳엔

한계가 있는 법이지" 라며

노력하기보다는 버티거나,

혹은 나태하게 그저 매일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포기하지 않는 자가 결국 이긴다는 믿음을

몸소 실천하고 보여주는 그의 시간은

매일이 승부처 그 자체인 현대에

따뜻한 응원이자 따끔한 동기부여로 다가온다.


책은 사원 시절부터 CEO가 되기까지

그의 커리어 시계를 따라

자신이 임한 사업에서 무엇을 배우고

성장했는지 그 행보를 보여준다.


교련 과목을 이수하지 못해

군 문제 해결을 위해 시작한 회사 생활이

정년을 맞이해 퇴사하기까지

무려 45년의 시간 동안

그가 만나온 리더들의 가르침,

빛나는 성장과 때로는 모험 같았던 도전,

그리고 뼈아프게 시린 실패까지.

좋은 학교를 나와 탄탄대로를 걸었을 거란

예상을 뒤엎듯 기복이 있던 매일을 담았다.


사회 초년생 시절,

무게감을 잡지 않고 가깝고 열린 마음으로

아직 미숙했던 그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맘껏 펼칠 수 있게 지원하고 도와주었던

조직의 감사함으로 성장한 경험.


국내외 현장에서 자신만의 원칙과 직관,

때로는 과감한 결정으로 많은 성과를 이뤄내며

쌓아 올린 실행력과 책임.


IMF와 M&A의 위기에서도

숫자나 전략보다 사람을 믿고,

실패와 고비 속에서도 인내심과

이해로 이겨낸 위기.


CEO가 된 뒤 과감하고 무모해 보이지만

공감과 소통의 리더십으로 이뤄낸

다양한 성과의 과정을 소개하며,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었고

더 나아가 나의 직장 생활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얼핏 단순한 성공담이나 자랑,

운이 좋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직장 생활은 늘 성과와 수익이 중요하며

인간적인 면모나 소통은 뒷전으로

생각하기 쉬운 요즘에


진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어떤 관계와 경영이 우리를 성공으로 이끌며

위기에서 벗어나게 도와주는지를

일깨워 주는 새로운 시각은

CEO나 상사를 '꼰대'쯤으로 취급하며

귀담아듣지 않던 비틀어진 마음을

환기시켜 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기업의 일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각자가 하나하나의 역할을 하고,

나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힘을 합쳐 해낸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실적을 내는 것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이를 해내는 각각의 사람,

함께 일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고

그들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그의 리더십과 접근법은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통하는 진심,

부속품이 아닌 동료로 바라보는 그 마음이

되려 열심히 하고 싶은 동기부여로

작용하리라 생각한다.


비단 기업의 운영이나 직장 생활을 넘어

우리가 속한 다양한 사회,

타인과의 인간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는

따뜻한 시선이 담긴 문장들은

오래 마음속에 남는 인생 조언이 될 것 같다.


인생을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어려움이 닥칠 수 있고,

그 어려움은 누구도 피해 가지 않고 찾아온다.

그럴 때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며

행동하는지에 따라,

또 그 과정에서 무엇을 얻었는지에 따라

같은 어려움이라 할지라도 다른 역할을 하고

다른 결과를 가져오리라 생각한다.


마냥 바르고 정석대로 하는

뻔한 해결책이 아니라

때로는 무모하고 도박 같은 결단력으로,

어떤 때에는 신중하고 확실하게 데이터로,

그리고 그 기반에는 공통적으로

'사람'을 이해하고 우선시하며

진심으로 임하는 자세,

자리가 올라가더라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자신만의 주관과 원칙을 이어간

그의 인생을 바라보면서


내가 부족하고 놓치고 있었던 것이

그저 기회나 실력, 운이 아니라

일을 바라보고 임하는 자세,

진정성에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자신의 커리어를 통해

오랜시간 쌓아 가슴에 새겼던 마음과 문장들을

인생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그의 진심은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좋은 나침반이자 힘,

세상을 바라보는 단단한 롤모델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달콤한 성공, 쓰디쓴 실패,

때로는 억울한 오해와 시기 같은 어려움이

우리의 인생에도 다가오겠지만

먼저 인생을 살아내며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장한 그의 발걸음으로

덜 헤매고 더 도약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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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비오톱
나기라 유 지음, 부윤아 옮김 / 문예춘추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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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가끔은 분명 꿈임을 알고 있지만

너무도 현실 같은 느낌과 그 세계가 너무 좋아서

깨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꿈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을 펼친

영화 〈인셉션〉의 등장인물 '맬'만 하더라도

남편과 자신이 만들어낸 꿈속의 세계에 푹 빠져

되려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꿈속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것처럼

깨고 싶지 않은 꿈이나 지키고 싶은 행복은

그 가능성이나 형태, 규칙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간절한 바람이 된다.


결혼한 지 불과 2년 만에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우루하.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주변인들의 도움을 받아 장례식을 치른 뒤

텅 빈 집안에 혼자 남아 슬픔이 차오른 그 순간,

거실 툇마루에서 익숙한 뒷모습을 마주한다.

"아, 우루하."하고 그녀를 부르며

뒤돌아보는 사람은 세상을 떠난

그녀의 남편 가노군이다.


혼란스러워진 우루하는 거실에 둔 제단을 본다.

거기에는 흰 천으로 감싼 유골함이 있고

정리할 기력이 없었던 탓에

한쪽에 아무렇게나 걸려있는 상복까지

남편이 세상을 떠난 '현실'은 변함이 없는데

거실에는 그녀가 사랑하는 남편이 존재한다.


어느 쪽이 현실인지 믿기 어려운 우루하는

혼란스러운 마음이 한가득하지만,

"왜 그래?" 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남편을 보곤

당신이 여기에 있는 건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말로 다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을 수 있다며

자신의 마음에 그어놓은 선을 훌쩍 넘어

유령인 남편과 함께 지내게 된다.


그렇게 유령 남편의 존재를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하면서

우루하는 그와 함께하는 평온한 매일이라는

'자신의 꿈'을 지키려 애쓴다.


시간이 훌쩍 흘러 2년이 넘어가고

그의 후배, 새로이 지도를 시작한 학생,

그림 교실과 학교의 아이들을 만나며

겉으로는 '제법 단단하게 일상을 되찾은

미망인'의 모습을 보인다.


언젠가 남편 유령이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과 두려움,

그러면서도 실존하지 않는 남편의

형태와 존재에 대한 답답함도 있지만

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느끼는

행복을 깨고 싶지 않다는 바람으로

매일을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자신과 비슷한 듯 다른,

각자 자신만의 '비오톱'을 가진

타인들의 사연을 소개하며

사회적 통념이나 도덕적 기준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조명한다.


일반적인 사랑의 형태와 다르지만

각각의 등장인물에게는

가장 진실된 감정을 다루며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랑도

누군가에게는 삶의 전부일 수 있다는 것,

생태학적 서식지를 의미하는 '비오톱'처럼

사회적 기준과 구분되는 독립적인

감정의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내면을 엿볼 수 있었다.


정형화된 사랑의 틀을 깨고

사람마다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고

또 살아가는 현실을 인정하자는

잔잔한 메시지가

조금 낯선 사랑의 모양으로 전해졌다.


이게 사랑이라고? 하는 의아함,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기도 하지만

작가는 죄책감, 집착, 성숙과 미성숙,

타인의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 등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안정함 속에서도

자신만의 무심한 행복을 찾아가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누구도 규정하고 판단 내릴 수 없는

나만의 '행복' 본연의 자세를 묻는다.


죽은 남편의 유령과 살아가는

우루하의 모습은 참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그녀 자신에게는 그 무엇보다

그것이 가장 진실된 사랑으로,

그렇게 남편을 향한 우루하의 사랑

그리고 이 세계를 깨지 않으려는 노력을 통해

사랑의 형태는 하나로 정의할 수 없으며

각자의 방식대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얼핏 그저 평범한 이웃이나 주변인으로 보이던

이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에게도

숨겨져 있는 비밀과 사연이 드러나며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다른 내면을 가진

인간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비밀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비밀을 감추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이 아니라

때로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일 수 있기에

겉모습 만으로 타인을 평가하지 말고

공감과 포용으로 타인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삶의 복잡성,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과연 각각의 등장인물이 행복했을까,

그 세계에서 깨어나오지 않고

자신만의 사랑을 지켜갔을지 그건 알 수 없다.

우루하와 유령 남편의 삶 역시도

어느 순간 우루하의 깨달음과 함께

한순간에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무리 다져봐도 부서지기 쉽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쪽이 현실이자

나의 행복이라는 믿음으로

'다들 자신이 보고 싶은 꿈을 꾸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라며

자신만의 사랑을 추구하는 우루하를 통해


특정한 식물과 동물이

하나의 생활공동체, 즉 군집을 이루어

지표상에서 다른 곳과 명확히 구분되는

하나의 서식지인 '비오톱'처럼

나만의 비오톱(세계)을 만들고 사랑을 지켜가는

용기 어린 마음, 따스한 사랑,

나만의 행복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비정상적이고 현실적이지 않음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에

형태나 규칙을 뛰어넘는 그 애틋함이

오래도록 마음에 잔상처럼 남아

따뜻하고도 특별한 사랑을 꿈꾸게 해줄 것이다.


과연 나에게는 나만의 비오톱이 있는지,

그 안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나 감정은 무엇인지

되돌아볼 수 있는 독서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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