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비오톱
나기라 유 지음, 부윤아 옮김 / 문예춘추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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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가끔은 분명 꿈임을 알고 있지만

너무도 현실 같은 느낌과 그 세계가 너무 좋아서

깨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꿈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을 펼친

영화 〈인셉션〉의 등장인물 '맬'만 하더라도

남편과 자신이 만들어낸 꿈속의 세계에 푹 빠져

되려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꿈속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것처럼

깨고 싶지 않은 꿈이나 지키고 싶은 행복은

그 가능성이나 형태, 규칙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간절한 바람이 된다.


결혼한 지 불과 2년 만에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우루하.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주변인들의 도움을 받아 장례식을 치른 뒤

텅 빈 집안에 혼자 남아 슬픔이 차오른 그 순간,

거실 툇마루에서 익숙한 뒷모습을 마주한다.

"아, 우루하."하고 그녀를 부르며

뒤돌아보는 사람은 세상을 떠난

그녀의 남편 가노군이다.


혼란스러워진 우루하는 거실에 둔 제단을 본다.

거기에는 흰 천으로 감싼 유골함이 있고

정리할 기력이 없었던 탓에

한쪽에 아무렇게나 걸려있는 상복까지

남편이 세상을 떠난 '현실'은 변함이 없는데

거실에는 그녀가 사랑하는 남편이 존재한다.


어느 쪽이 현실인지 믿기 어려운 우루하는

혼란스러운 마음이 한가득하지만,

"왜 그래?" 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남편을 보곤

당신이 여기에 있는 건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말로 다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을 수 있다며

자신의 마음에 그어놓은 선을 훌쩍 넘어

유령인 남편과 함께 지내게 된다.


그렇게 유령 남편의 존재를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하면서

우루하는 그와 함께하는 평온한 매일이라는

'자신의 꿈'을 지키려 애쓴다.


시간이 훌쩍 흘러 2년이 넘어가고

그의 후배, 새로이 지도를 시작한 학생,

그림 교실과 학교의 아이들을 만나며

겉으로는 '제법 단단하게 일상을 되찾은

미망인'의 모습을 보인다.


언젠가 남편 유령이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과 두려움,

그러면서도 실존하지 않는 남편의

형태와 존재에 대한 답답함도 있지만

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느끼는

행복을 깨고 싶지 않다는 바람으로

매일을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자신과 비슷한 듯 다른,

각자 자신만의 '비오톱'을 가진

타인들의 사연을 소개하며

사회적 통념이나 도덕적 기준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조명한다.


일반적인 사랑의 형태와 다르지만

각각의 등장인물에게는

가장 진실된 감정을 다루며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랑도

누군가에게는 삶의 전부일 수 있다는 것,

생태학적 서식지를 의미하는 '비오톱'처럼

사회적 기준과 구분되는 독립적인

감정의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내면을 엿볼 수 있었다.


정형화된 사랑의 틀을 깨고

사람마다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고

또 살아가는 현실을 인정하자는

잔잔한 메시지가

조금 낯선 사랑의 모양으로 전해졌다.


이게 사랑이라고? 하는 의아함,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기도 하지만

작가는 죄책감, 집착, 성숙과 미성숙,

타인의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 등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안정함 속에서도

자신만의 무심한 행복을 찾아가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누구도 규정하고 판단 내릴 수 없는

나만의 '행복' 본연의 자세를 묻는다.


죽은 남편의 유령과 살아가는

우루하의 모습은 참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그녀 자신에게는 그 무엇보다

그것이 가장 진실된 사랑으로,

그렇게 남편을 향한 우루하의 사랑

그리고 이 세계를 깨지 않으려는 노력을 통해

사랑의 형태는 하나로 정의할 수 없으며

각자의 방식대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얼핏 그저 평범한 이웃이나 주변인으로 보이던

이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에게도

숨겨져 있는 비밀과 사연이 드러나며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다른 내면을 가진

인간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비밀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비밀을 감추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이 아니라

때로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일 수 있기에

겉모습 만으로 타인을 평가하지 말고

공감과 포용으로 타인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삶의 복잡성,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과연 각각의 등장인물이 행복했을까,

그 세계에서 깨어나오지 않고

자신만의 사랑을 지켜갔을지 그건 알 수 없다.

우루하와 유령 남편의 삶 역시도

어느 순간 우루하의 깨달음과 함께

한순간에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무리 다져봐도 부서지기 쉽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쪽이 현실이자

나의 행복이라는 믿음으로

'다들 자신이 보고 싶은 꿈을 꾸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라며

자신만의 사랑을 추구하는 우루하를 통해


특정한 식물과 동물이

하나의 생활공동체, 즉 군집을 이루어

지표상에서 다른 곳과 명확히 구분되는

하나의 서식지인 '비오톱'처럼

나만의 비오톱(세계)을 만들고 사랑을 지켜가는

용기 어린 마음, 따스한 사랑,

나만의 행복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비정상적이고 현실적이지 않음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에

형태나 규칙을 뛰어넘는 그 애틋함이

오래도록 마음에 잔상처럼 남아

따뜻하고도 특별한 사랑을 꿈꾸게 해줄 것이다.


과연 나에게는 나만의 비오톱이 있는지,

그 안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나 감정은 무엇인지

되돌아볼 수 있는 독서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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