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엔딩 소설Q
김유나 지음 / 창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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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병에 효자 없다는 옛말이 있다.
처음에는 '당연히 내가 해야지' 생각한 간병도
끝이 보이지 않는 희생과
반복되는 고된 일상이 이어지며
결국 원망과 갈등, 혹은 이를 버거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이 뒤엉킨다.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서로가 서로를 좀먹는 삶이다.

《내일의 엔딩》의 주인공 자경의 이야기도
바로 이런 지점에서 시작된다.

자신을 낳다가 돌아가신 엄마,
그래도 아빠와 단둘이 살아온 자경은
갑작스레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빠를 간병하며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들어가는 병원비로
새삼 체감하게 된 경제적 부담은 물론,
자신을 위해서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무미건조한 매일을 견디며 살아간다.

처음에는 아빠가 금방 툭 털고 일어날 거란
희망을 가지기도 했지만
시간은 어느덧 6년을 넘겼고,
희망도 통장 잔고도 말라붙었다.

퓨즈가 나가 어두워진 아빠만큼이나
자경도 점점 잿빛이 되어간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무너져 내리고,
자신이 사라지는 듯한 감각만 남는다.

그렇게나 애쓴 간병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자경만 홀로 남긴 채 세상을 떠나고,
가뜩이나 지난하고 고독한 삶 속에서
외로웠던 자경은
고향 집을 정리하며 진짜 혼자가 되었음을,
그리고 그 사실이 무엇보다 두려웠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단 한 명뿐인 상주, 찾을 사람도 없는 장례식.
그 속에서 자경은 늘 '혼자'라 믿었던 자신이
사실은 혼자 있지 않았음을 조금씩 알게 된다.
오래전 연락이 끊겼던 회사 선배의 발걸음
그리고 그녀의 따끔하지만 따뜻한 조언,
올 거라 기대하지 않았던 친구의 방문,
아빠의 제자라는 이유로 마음을 내어준 사람들.

그들이 건넨 무뚝뚝하지만 따뜻한 손길은
자경이 외면했던 감정을 끌어올리고
그녀를 다시 삶의 자리로 이끈다.
그것은 거창한 위로나 도움이라기보다는
삶의 무게를 견디는 사람들끼리의
조용한 연대와 같달까.

그 연대는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방식으로
자경의 마음을 조금씩 덜 외롭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제야 깨닫게 된다.
자신이 버티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곁에서 조용히 지켜주고 있었음을.

고향 집에서 아버지의 짐을 정리하던 자경은
한때 꿈 많던 시절 자신이 만들었던 영화와
영화를 본 아빠가 쓴 일기 속 감상을 발견한다.

망했을지라도 끝까지 완성하고 싶었던 영화,
그리고 그 영화를 본 뒤 아빠가 남긴 기록 속에서
자경은 과거의 감정과 관계,
무뎌졌던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그 기록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자경이 잃어버렸던 자신을 되찾는 열쇠가 된다.

'인간을 기어이 살아가게 하는 삶의 소중한 빛은
언제나 멀고 희미한 곳에 있다'는
아빠의 일기장 속 문장처럼
자경은 그 희미한 빛을 따라
새로운 내일의 엔딩을 향해 나아간다.

그녀와 크게 다를 것 없이,
퍽퍽한 현실을 살아가며
자경과 진전 없는 관계를 이어가던
연인 응현은 '참 바보 같은 선택'이라 말했지만,
자경은 그 선택에 기꺼이 뛰어든다.

그건 어쩌면 더 사랑하는 쪽으로,
그리고 덜 혼자가 되는 쪽을 향한
본능적인 걸음일지도 모르겠다.
그 선택은 불확실하고,
어쩌면 또다시 상처를 남길지도 모르지만
자경은 이제 그 상처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

팀원들 중 어느 하나 찾아주지 않았지만
연락도, 왕래도 없던 그녀를 헤아려준
진짜 어른 같은 선배가 있었고,
결국 포기해버린 꿈이지만
그 안에서 누구보다 자신을 믿고 함께해 준
친구 표다르가 있었기에
자경의 지난했던 삶과 그 나날들이
그래도 마냥 씁쓸하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아버지를 향한 돌봄과 간병,
때로는 그녀에게 버거운 책임감으로 다가왔지만
자신을 같은 마음으로 품고 지켜왔을
지난날의 아빠를 떠올리며,
기꺼이 그리고 끝까지 마음으로 보듬은
자경의 아빠를 향한 사랑 역시도
참 따습고 아름답게 빛났다.

많은 것을 이미 잃었음에도
여전히 한결같은 희미한 반짝임으로,
곁에 그저 함께하는 누군가가 있음에
힘을 얻고 자경은 다시 살아가기로 한다.
그것은 꼭 자경만의 엔딩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인생이겠지 싶다.

자경의 현실은 가슴이 먹먹했고,
미래는 마냥 막막하게만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경의 곁에서
빛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그리고 지금도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 다행스러웠다.

비록 기울어진 마음이라도
서로에게 기대고 토닥이며,
조금은 더 포근한 내일을 향해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나아가는 삶.
그런 삶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내일의 엔딩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엔딩이, 자경에게 그랬듯
누군가의 시작이 되어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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