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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할머니 약국
히루마 에이코 지음, 이정미 옮김 / 윌마 / 2025년 7월
평점 :
















요즘은 병원이 있는 건물이면
백이면 백 약국이 함께 자리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발걸음을 하게 되는 곳이 있다.
우리 엄마만 해도 동네 병원에 다녀올 때마다
특정 약국만 찾곤 하는데,
그 이유가 약사님의 친절하고 다정한 태도
때문이라 말한다.
엄마가 들를 때면 얼굴을 기억했다가
종종 들르신 적 있었던
외할머니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약에 비해 포장 부피가 큰 약을 줄 때면
여분의 통을 하나 주시며
한 번에 다 담아두라 말해주거나
복용법도 정성스럽게 적어주신다는 것.
누군가는 약국은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받는 곳에 불과하고,
때로는 처방전 없이 증상에 따라
필요한 약만 사면 되는데
그런 친절이 약국을 찾는 이유가 되겠냐 싶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 역시도
그냥 '일'로서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서
증세에 따라 나의 컨디션을 헤아리고 염려하며
따뜻하게 마음을 건네주는 곳에
자연스레 발걸음이 향한다.
일본 도쿄에는 무려 70년이 넘게
한자리에서 일하며
환자들을 살피는 할머니 약사가 있다.
단순히 약을 조제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마음을 돌보는 데 집중한 그녀는
오랜 시간 여전히 현역으로 일하는 꾸준함은 물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에
초점을 맞추었기에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녀가 운영하는 작은 약국을 찾는
손님들과 나누었던 대화,
그들의 삶에 귀 기울이는 태도,
할머니 약사의 다정한 말 한마디로
사람을 '치유'하는 과정을 담아낸 이 이야기는
'함께, 그리고 다정하게'라는 삶의 자세로
약보다 마음을 먼저 살피는 따뜻함,
그리고 사람을 낫게 하는 건 사람이라는
공감과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우리의 삶에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스스로 되묻는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약국,
처방전에 따라 약을 받고 비용을 내면
그걸로 끝나는 일이기에
편하게 생각하면 굳이
애써 마음을 쓸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한 발짝 먼저 인생을 살아간 어른으로서,
혹은 함께 늙어가는 또래로서,
그리고 같이 살아가는 이웃으로서
약국을 찾는 사람들을 향해
따스한 마음을 애써 건네는
그의 수고스러움 덕분에
긴 시간 한자리를 지켜갈 수 있었음을,
그리고 그 진심 덕분에 손님들 역시
마음으로 소통하게 되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100세 가까운 나이에도 현역으로 일하며
삶의 열정을 잃지 않는
저자의 적극적인 행동과 그 의지는
노년의 삶도 충분히 아름답고 가치 있으며,
현생에 치여 열정보다는
안일하고 익숙하게 매일을 흘려보내기 쉬운
현대의 우리에게 좋은 롤 모델이자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다.
약을 조제하고 담아내어 손님에게 전하는 것은
어쩌면 반복되는 일상이기에
여기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거나
시간을 더해갈수록 의욕이 떨어질 수 있는데,
변해가는 시대의 모습에 따라
다른 이에게 맡기거나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배우려는 노력과
사람을 향한 진심 가득한 태도는
비단 같은 분야의 일이 아니더라도
'나는 내 일에 진심을 다하고 있는가?' 하며
그동안의 삶을 되짚게 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진심 어린 관심은
제아무리 마음의 문을 닫았던 사람이라도
무장해제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런 다정함이 최고의 약이라는 믿음으로,
몸의 병뿐만 아니라 마음의 병을 먼저 살피는
지혜를 가진 할머니 약사를 통해
진정한 건강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늘 '빨리빨리'
그리고 효율성만 따지기 쉬운 요즘에,
잠시 멈춰 서서
사람답게 사는 법을 되새기게 하는
할머니 약사의 진득한 매일이
마음 깊이 울림을 준다.
결국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 어우러져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고
서로를 배려하고 헤아리며
풍요로운 삶으로 나아가야겠다는 가르침이다.
처음에는 많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현역으로 일하는 약사의 인생 노하우,
약국에서 만난 손님들과의 에피소드를 담아낸
가벼운 책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책을 읽어갈수록
삶의 방향성과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지난날의 삶을 되짚고 반성하며
좀 더 온기 있고 소통하는 내일을
꿈꿀 수 있는 변화를 마주할 수 있었다.
타인에게 애써 다정함을 베풀며
여전히 같은 자리에 존재하는 약국을
오며 가며 매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힘,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매번 '그 약국에 가면 말이야,'하면서
약사님이 좋다고 했던 엄마의 말이
비로소 이해가 가면서,
나도 그 약국에 한번 가볼까 하는 마음이 든다.
책에 등장하는, 그리고
엄마가 즐겨 찾던 약국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면
누군가에게나 열린 마음과 따뜻한 시선으로
다정함을 베푸는 곳은 많을 것이다.
그런 따스함으로 우리의 순간, 하루가
행복해지고 치유가 되듯,
나도 스스로를 넘어 타인에게도
친절하고 다정함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어야겠다는 마음이 든 독서였다.
개인주의를 넘어 이기주의가 만연한 요즘,
타인과의 관계에 마음이 지친 사람이나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물론
나이, 직업, 상황을 초월해
사람답게 사는 법을 되새기고 싶은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다.
무겁지 않은 인생의 안내서, 이 책을 통해
100세 할머니가 기다리는 약국에서
나만의 치유를 만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