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간식은 뭐로 하지 - 달달해서 좋은 만남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반니 / 2024년 6월
평점 :
품절


'밥 배와 간식 배는 따로'라는 우스갯소리처럼,
간식이라는 단어가 주는 기분은 색다르다.
아직 밥때까지는 시간이 남았지만,
뭔가 뱃속이 허전하고 아쉬운 기분이 들 때
한 입 깨물어 먹는 간식은 그야말로 천국 그 자체.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혹은 조금 울적한 기분이 드는 날이면
생각만으로도 마음을 들뜨게 하고 즐겁게 하는
달콤한 간식을 찾기도 한다.

간식을 먹을 때는 혼자 먹을 때도 있지만
보통은 '우리 간식 먹을까?' 하고는
누군가와 함께 먹으며 대화를 나누곤 하는데
그렇게 달콤한 간식, 디저트와 함께 하는 시간은
즐거운 추억으로 때로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출출해서 살짝 쪼르륵 소리를 내던 배가 잠잠해지면
포만감과 함께 행복한 기분에 휩싸이고
사소하고 작은 만족의 순간이지만
'맛있는 것을 함께 먹는' 별것 아닌 이 순간이
어쩌면 큰 행복을 가져오는 것 아닐까 싶다.

사소한 일상의 빛나는 순간을 찾아내어
그 아름다움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내는
작가 마스다 미리가 발표한 이번 신작은
'간식'과 관련된 일상의 반짝반짝 빛나는
찰나의 행복과 추억을 담아,
평상시 간식이나 군것질을 애정 하는 나에게
더없이 반가운 책이 아닐 수 없었다.

그가 펼쳐놓는 다양한 간식과 관련된 에피소드,
주변인들과의 추억을 따라 움직이며
소소한 일상에 불과하지만 그의 글을 통해
오랜 기억 속에 잠들었던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며,
사실은 꽤나 행복했지만 그냥 흘려보냈던
나날들을 다시 한번 곱씹을 수 있었다.

나에게 기억에 남는 간식이 뭐가 있었지 하고
머릿속 필름을 뒤적이다 보니
언니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시절,
아빠와 함께 먹었던 포장마차 어묵이 떠올랐다.

아무리 아파트 단지라고는 하지만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10시가 훌쩍 넘어서야
도착하는 딸이 걱정되었던 마음인지
아빠는 항상 언니가 통학차량에서 내리는 자리로
언니를 마중 가곤 했었다.

아빠가 이따금 '같이 갈래?'라고 해도
귀찮기도 하고 밤에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길고양이가 무서워서 '나는 안 갈래' 하는 날이 많았다.

그러다 어느 날은 기분이 내켜 '같이 갈래.' 하고
아빠를 따라 길을 나섰는데,
언니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아빠는 우리를 데리고
단지 앞 붕어빵이나 떡볶이 등을 파는
포장마차로 데리고 가서는 익숙하다는 듯
어묵꼬치 하나를 물고는 우리에게도 건네주었다.

그날이 처음 방문이었을 수도 있는데,
'아빠가 사실은 매일 어묵을 먹는 거였어!' 하고
진작 매일같이 따라나설 걸 아쉬움이 가득했는데

언니를 기다리며 먹는 어묵 한두 개,
뜨끈하고 자극적인 국물의 맛에 제대로 반해
그 뒤로는 아빠가 '언니 마중 갈래?' 하면
바로 따라나서곤 했던 기억이다.

지금에야 큰 딸만 마중 나가고 기다리면
우리들이 서운할까 봐 뭐라도 챙겨주고 싶던 마음,
그리고 간식을 매일같이 챙겨 먹을 수 있는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으니 이렇게라도
사주고 싶던 마음이 아니었을까 짐작하지만

그때의 엄마에게는 비밀로 하는 '간식타임'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꽤나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는다.

이렇게 사소한 '간식' 하나에 담긴 추억이
왜 이제서야 그녀의 글을 보며 떠올랐을까.

글마다 일상을 함께한 존재들의 소중함,
함께한 시간의 즐거움과 행복을 잊지 않고
하나하나 기록해놓은 정성스러운 마음 아래
잊고 있던 행복감을 새삼 깨우친 게 아닐까 싶다.

'일정과 일정 사이의 시간도 역시 인생의 한 부분'
이라 생각하는 그녀의 말처럼
식사와 식사 사이 정식의 '끼니'는 아니지만
허기짐을 달래고 마음을 위로하며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고 공감하며 위로하던
'사람'과 '순간'도 인생의 일부이기에,
이 소중한 시간을 일깨워 주는 그녀의 간식 이야기는
마음속에 커다란 울림이 되었다.

예전의 어느 날을 간식으로 추억하듯,
우리 일상을 특별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의 마음가짐일지도 모르겠다.

수없이 지나간 식사와 간식 시간 중
여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되었는지에 따라 특별한 순간이 되기에
다정한 시선으로 일상의 매 순간을
행복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살아내고
또 그 순간을 충분히 만끽해야겠다는 마음이다.

대수롭지 않게 흘려보내는 매일의 시간 속,
나를 즐겁게 해주고 위로해 주는
간식 이야기를 통해 '인생'을 살아가는
삶의 자세와 시선을 배웠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간식은 뭐로 할지
즐거운 고민을 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멀어질수록 행복해진다 - 관계 지옥에서 해방되는 개인주의 연습
쓰루미 와타루 지음, 배조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늘 가장 어렵다고 생각한 부분은

바로 '인간관계'였다.


가정, 학교, 직장 등 내가 속한 여러 공동체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마냥 행복하고 즐겁지 않았고,

때로는 힘들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상대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에,

혹은 불편하고 언짢은 상황에서도

'매일 마주해야 하는 사람이니까' 하는 생각으로

내 마음은 외면하고

어쩔 수 없이 내 곁에 그들을 두며

'괜찮다고 하는 가짜 나'를 꺼내두기도 했다.


내가 아닌 타인이기에

서로가 서로의 마음이나 생각을 전부 다

오롯이 이해할 수는 없지만,

타인과 함께 있는 시간 속

누군가와의 비교, 집착, 간섭, 대립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열등감은 되려 그 관계로 인해

삶을 고독하고 힘들게 만들었던 것이다.


한 번씩 이런 관계들에 지칠 때면

'다 내려놓고 혼자서 있고 싶어' 하다가도,

일반적으로 보이지 않는 그 고립과 고독은

내가 문제 있는 사람처럼 비칠까 봐

생각으로만 그친 적이 많았다.


이 책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인간관계의 모든 문제는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에서 비롯된다며

이런 관계 지옥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조금 떨어져서 관계를 맺는

'개인주의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개인주의란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이라는 편견이 있다.

그렇기에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만을 내세우는 사람에 대해

"너는 참 개인주의가 강하구나."라며

'나'를 우선으로 두는 가치에 대해

옳지 않은 마음이라 치부하는 분위기이다.


그래서 작가가 이야기하는 '개인주의'가

과연 인간관계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 걸까

알쏭달쏭한 의문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는 유년 시절부터 형의 잦은 폭력에 시달리며

10대 때부터 사회불안장애로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을 만큼,

자신은 누구보다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진심이고 열심인 사람이라고 했다.


더 성실히 살고, 열심히 노력하면

그가 느끼는 고통이 해결될 거라 믿었지만

그럴수록 삶은 더 괴로워졌고,

프리랜서가 되면서 의도적으로

'느슨한 관계 맺기'를 실천하면서부터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개인주의 삶'을 살기 시작한 이래로

타인의 시선이 더는 그에게 구속이 되지 않았고,

자신이 무엇을 할 때 기쁘고

또 어떤 사람을 만나면 불행해지는지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게 되면서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었노라고 고백했다.


자신이 시달린 고통의 원인은

'사회가 강요하는 무책임한 인생 조언에

지나치게 귀를 기울인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그는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개개인을 숨 막히게 하는 공동체 속

희생이나 비교의 감정들을 꼬집으며,

이런 감정들로부터 멀어져

나의 존엄과 자존감을 지키며

불안을 야기하는 타인과 세상으로부터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보다 선명한 나를 찾는 길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나 역시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나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보편적'이라는 기준에

미치지 못해서 오는 고통과 열등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으려 애썼던 것 같다.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이나

공동체 안에 있을 때 느껴지는 불안감,

혹은 연애나 결혼, 취업 등의 문제는

정답처럼 시기나 모습이 정해진 것도,

또 내가 타인과 사회의 기준에'

일방적으로 맞춰야 하는 게 아닌데도

맞춰가면서 말이다.


그런 보편적인 성취나 타인의 기준이

정작 나에게 중요한 가치가 아닐 수도 있는데,

이를 당연한 듯 수용하고 맞추고자 고군분투하며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이르게 되니,


그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거리 두기'를 통해

인생을 살아가는 기준점을 다시 설정하면

그동안 삶을 살아오며 허비했던

관계에 소모했던 수많은 에너지를 줄이고,

나를 미워하거나 소모하지 않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들기도 했다.


내가 누구에게, 혹은 누군가가 나에게

열심히 주입하고 강요하는

사상이나 선입견에 내 삶을 빼앗겨왔다는 걸

이제야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내 삶이니까 '나'를 중심으로,

내가 중요하게 느끼는 가치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당연한 건데,

왜 사회의 통념이나 타인의 시선을

더 먼저 생각하고

그들의 기준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걸까

이제서야 안타까운 후회의 마음이 들었다.


늘 부족하게 느껴지던 열등감,

타인의 시선과 기준이라는 불필요한 것들에 묶여

가두고 있던 지난날의 나를 떠나보내고,

여태껏 타인의 삶을 수시로 들여다보며 비교했듯

이제는 내 마음의 소리와 내가 중요한 가치에

더 집중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단단한 다짐을 하게 된 독서였다.


불안과 집착, 타인의 시선에서 이만큼 떨어져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 질문을 하고 답을 찾으며

좀 더 '현명한 개인주의'로

이제부터라도 행복한 삶으로,

명료한 인간관계로 나아가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탕비실
이미예 지음 / 한끼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딱딱하고 건조한 사무실의 공기 속,

잠시 긴장을 풀고 '진짜 나'를

잠시 꺼내어 볼 수 있는 공간이

탕비실이라는 점에 공감할 것이다.


커피나 차 한 잔을 타러,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간식을 꺼내거나

사용한 컵을 잠시 닦기도 하며

조금은 풀어진 마음으로 있을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럿이 같이 사용하는 공간이다 보니

때로는 이곳에서 타인과 부딪치며

불쾌감을 느끼곤 한다.


공용 얼음 틀에 커피나 콜라를 얼리는 사람,

인기 있는 커피믹스를 몽땅 혼자 챙겨가는 사람,

전자레인지 코드를 뽑고 충전하는 사람도

싱크대에 안 씻은 개인 텀블러나 컵을

몇 개씩 늘어놓는 사람도 있다.


그뿐 만인가.

자기가 사용한 종이컵을 버리지 않고

물통 옆에 그냥 쌓아두고 가는 이도,

탕비실이 대나무 숲인 양 온종일 그곳에서

중얼중얼 떠드는 사람은 물론,

가뜩이나 좁은 냉장고에 케이크 박스를

몇 개씩 넣어두고 손도 대지 않거나

싱크대에서 가글 하는 사람까지

탕비실 빌런들은 '질량 보존의 법칙'처럼

어딜 가나 만나볼 수 있다.


이 책은 위에 나열된 각자의 이유로

같이 일하는 동료들로부터

'함께 탕비실을 쓰기 싫은 사람'으로 뽑힌

이들이 7일간의 합숙 리얼리티 쇼에

섭외되어 벌어지는 이야기로,


다른 사람들의 이유에 비하면

나를 '고작 그런 이유로 추천했단 말이지'하며

탕비실 빌런들 사이에 숨어있는

술래를 찾으면 상금을 얻는 게임에서

오직 내가 뽑힌 구체적인 이유를 알기 위해

촬영에 임하게 되는

'탕비실 얼음 빌런'의 관점에서 진행된다.


마치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할 법한 프로그램을

연상시키는 이 소설의 설정과 등장인물은

실제로 일상에서 만날법하기에

친숙하면서도 흥미롭게 느껴지는 시작이었다.


과연 이들 중 술래는 누구일까?

어떤 사람의 탕비실 행위가 더 불편하고

싫은가를 따지며 재미있게 쫓다 보니,


이상한 사람들만 모아둔 듯한 그들의 면면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각자의 입장에서는

'나는 정상'이지만 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이상한' 느낌으로 느껴지는 상황이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정상과 평균의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했던

나의 모습도 누군가에게는 이상하고 불쾌한

'빌런'의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마냥 웃을 수만은 없게 되기도 했다.


그런 감정을 깨닫게 되는 것은

책을 읽는 나만의 감정은 아니었다.

등장인물인 '얼음' 역시

자신이 친절이나 배려라고 생각했던 행동이

동료들은 더없이 불쾌하고 오싹한 소름으로

전달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며

이야기의 흐름은 그때부터 다른 방향으로 흘러

더 이상 '술래'를 쫓는 본래의 게임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나에 대해 타인이 잘못 알고 있거나

혹은 오해하는 것에 대해서는

'나의 진심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라며 서운한 감정을 쏟아내고는 있지만,


정작 나 역시 타인의 진심이나 의도를

이해하려고 제대로 애써본 적도 없이

그저 '보이는 그 순간의 모습'을

그 사람의 전부인 양 오해하며

타인을 쉽게 평가하고 있지는 않았나 하는

반성의 마음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런 깨달음의 뒤에서야

각각의 인물들을 다시금 제대로 되돌아보며

온통 이상한 사람투성이인 것 같았던

합숙 리얼리티쇼의 참가자들은

사실은 각자의 입장과 시선에서 바라보면

어느 하나 '이상할 것 없는' 사람들뿐이다.


우리가 미처 들여다보려 애쓰지 않았던

타인의 진짜 모습을 외면한 채

편집자의 시선처럼

'보고 싶었던 모습만 보고'

누군가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만 보는'

시선으로 바라보았기에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 중

'누가 가장 싫은가?'에만 초점을 맞춰

그 사람에 대해 더 알아보려 한 적이

없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그램이 종료되고 난 뒤

달리는 수많은 댓글 가운데,

그들 중 '술래'로 밝혀진 사람 역시

누군가에게는 '빌런'으로 비췄다는 결말은


과연 '정상'과 '빌런'이라는 기준이

객관적으로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가?

나는 타인에게 싫은 사람,

이상하고 불쾌한 사람이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망설이고 고민하게 만들었다.


한창 이슈가 되었던 프로그램인

'나는 SOLO'의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보며

어쩜 이런 사람들만 모아놓았나 싶을 만큼

'역대급 빌런'이라며 쉽게 웃음 짓거나

혹은 비난하던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렇게 쉽게 타인의 행동과

그를 비판하고 판단 내리는 그들의 모습도

타인의 시선 아래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 속 작은 공간인 탕비실에서

우리 모두의 현실을 보았고,

또 나의 비뚤어진 시선을 보았다.

정말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이야기를 담아낸

하이퍼리얼리즘의 진수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업자의 사전
구구.서해인 지음 / 유유히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회사에 소속되어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는

직장인으로 일할 때에는 내가 담당하는 일과

업무가 명확하게 존재했었다.


디자이너로 일한 시간도 있었고

프로모션 기획자나 온사이트 마케터로서

각 직무에 맡는 역할을 해내는

충실한 톱니바퀴 역할을 해내는 한 명이었다.


그러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언니와 함께

사업을 하기 시작하면서 누군가

"혹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난감할 때가 많았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사업이지만

기획도 디자인도 상품개발도 하고

마케팅이나 물류(택배 포장)까지

어느 하나 내 손이 닿지 않은 일이 없으니

과연 내 일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애매한 미소로 한 단어로 말하지 못한 채

구구절절하게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이던

지난날의 시간이 문득 떠올랐는데,


'당장 수익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작업을 하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 가능하며,

조직에 속해 있더라도 조직 바깥에서

자신의 일을 만들어가는 사람'을

작업자라 명명한 이 책의 서두를 보며


진작 이 책 《작업자의 사전》이 있었더라면

보다 내 일과 노동을 설명하는데

수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독서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구구와

대중문화 뉴스레터 발행자인 서해인이 써 내려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작업자'들의

노동에서 길어올린 100가지 단어에

덧붙이는 풀이를 담아내었다.


나 역시 직장 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관습처럼 사용하는 '단어'인데,

정확하게 의미하는 바를 몰라

혼자 쩔쩔매며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에게 물어보기에는 조금 난감하고,

검색창에 아무리 두드려봐도

사전적인 의미와는 뉘앙스가 다른

그 단어들의 뜻을 이해하고 비로소

사용하게 되기 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기억이 난다.


꼭 비단 조직 내에서만

이런 단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조직 밖에서 일하는 작업자인 그녀들도

우리에게 꼭 맞는 일의 언어가

필요했다고 책을 통해 이야기했다.


일하며 자주 마주치게 되는 단어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고,

각자의 일의 형태가 제각각인데도

그것을 설명하는 단어가 동일해서 오는

혼선과 오해가 자주 발생했기에

이런 문제들 앞에 느껴지는

막막함과 답답함을 해결하고자

의기투합해 이 책을 펴낸 것이다.


그녀들이 수집한 100개의 단어를 쫓아

작업자가 생각하는 의미와 풀이를 읽다 보니

단순히 단어의 의미뿐 만 아니라

자연스레 그들의 일상과 노동을

마주할 수 있었는데,


과중한 업무로 인해 잃어버린 생체리듬이나

수도 없이 맞춰놓은 모닝콜,

주말 밤낮없이 일에 매진할 수밖에 없는

1인 사업자의 고충이나

남들 눈에는 '백수'로 보이는 짠한 현실은 물론

비용이나 수정요청과 같이

'수익'과 연결되는 애환부터

나로부터 시작되지만 나에게서 끝나지 않는

평판처럼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콘텐츠가 되는 세상에서

작업자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누군가의 날 것의 노력과 시간이 보여

안타까움과 동시에

공감과 응원의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일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본인이 져야 하는 책임감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의 직업을 널리 알리고

지속 가능하게 삶을 꾸려가기 위해 애쓴

매일의 애환이 담긴 이 사전은


때로는 '마냥 놀기만 하는 백수'로

비치며 오해되기 쉬운

작업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를 가져다주는 씨앗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든다.


노동의 과정에서 마주하는

강박이나 예상치 못한 변수, 고충을 비롯해

책임감이나 의무감도 이야기하며,

'내 일의 고됨'뿐 만 아니라

다른 작업자에게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잔잔한 위로와 응원의 마음은

일의 종류는 다르지만 또 다른 작업자로서

살아가는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래 맞아, 하고 그들이 풀이해놓은 단어에

내 마음속에 담긴 뜻 한자락을

함께 보태가며 읽었다.


이렇게 나와 같은 마음으로 임하고 일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안도감,

각자의 자리에서 애쓰고 있다는 것을

서로 알아주고 그런 서로의 존재에 기대어

앞으로 또 내디뎌 보는 한 걸음은

혼자 외롭게 달려가는 느낌이 아니라

든든하기만 하다.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나를 사랑하기 위해,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정확하고 단호한

'일의 말'을 찾는 그녀들의 글은

내가 서있는 지점을 다시금 짚어보고

어떤 마음과 기준으로 일을 바라볼 것인가

앞으로의 나를 정의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고마운 독서였다.


마음속 사전에 담긴 빈칸의 단어들을 찾아

하나씩 제대로 나만의 풀이를 더하며

매일을 살아가는 '작업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림지옥 해방일지 - 집안일에 인생을 다 쓰기 전에 시작하는 미니멀라이프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박재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항상 마음속으로는 꼭 필요한 것만 곁에 두는

간소한 삶을 살아야지 하면서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 사게 되는

옷이나 가방 그리고 신발,

수시로 쓰니까 떨어질 틈이 없게

잔뜩 넉넉하게 쟁여둬야

마음이 편해지는 생필품이나 화장품,

'가격이 싸니까, 있으면 두고 먹으니까' 하고

냉장고를 꽉 채우게 되는 식재료까지

미니멀리즘과는 먼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4인 가족이 사는 40평의 집,

인당 10평이 확보되는 꽤 널찍한 공간임에도

새로 물건을 들일 때마다 넣을 곳이 없어서

퍼즐을 끼우거나 테트리스를 하듯

틈을 비집고 서랍을 눌러가며 물건을 채워 넣는다.


이렇게 사들인 식재료를 꺼내

매일 요리를 해서 끼니를 챙기고,

화장품으로 화장을 하고,

옷을 꺼내 입고 빨래를 하고 개키고,

청소를 하고 치우고,

다시 물건을 사들이는 과정을 반복하며

'집안일 정말 보통 일이 아니네'

라는 생각을 한다.


만약, 그 모든 것들을 간소화해서

기존에 10개 사던 식재료를 5개만 사거나

혹은 매일 그날 쓸 재료만 사고,

옷의 개수를 줄여 빨래와 짐을 줄이고,

때때마다 바로 청소하고 치우면

여전히 집안일은 힘든 일이 될까?


직장을 그만두게 된

경제적인 측면의 이유가 가장 컸지만

집의 크기부터 가지고 있는 살림살이를 줄여

'미니멀라이프'를 살게 된 작가가

스스로에게 던진 이 질문과 호기심은


실제로 자신의 삶을 간소화하는 실행을 통해

불필요한 물건을 정리하고 줄이면

살림지옥에서 벗어나

쾌적하고 즐거운 '집안일'을 만끽할 수

있게 된다는 답으로 이어지며


늘 '물건, 살림과의 전쟁'을 치르며

맥시멀 라이프를 사는 나에게

기분 좋은 자극과 동기부여가 되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그렇다.

이따금씩 여행을 갈 때면

먹을 식재료는 물론 입을 옷과 화장품 등

최대한 짐을 줄여 '최소한'으로 준비해 가지만

전혀 부족한 것이 없이 여행 기간 동안

충분한 하루를 보낸다.


매일을 그렇게 살 수 있고, 살면 되는데도

왜 '만약에' 혹은 '나중을 위해'라는 핑계로

무언가를 사들이고 쌓아두며

그로 인해 늘어나는 집안일을 떠안고,

그게 귀찮아 미루게 되는 걸까.


어떻게 보면 시작은 공간을 줄이는 것이다.

제일 먼저 공간을 줄이고 나면

나머지는 그야말로 자동으로 이어진다.

줄어든 공간에는 짐을 둘 곳이 없으니

가지고 있는 물건을 줄일 수밖에 없고,


그러니 가진 '조금'의 물건을 활용해

딱 지금 먹을 만큼의 요리를 하거나

그날 사용한 수건은 그 즉시 빨래하고,

청소 역시 그때그때 치울 수밖에 없으니

매일 해야 할 일이 자연스레 줄어들어

'집안일의 부담'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얻게 되는 쾌적한 삶은

어려울 것 없는 가장 간단하고

완벽한 해결 방법임에도,

손에 쥔 것은 하나도 놓지 않은 채

더 많은 것을 가지지 못해서

혹은 가진 모든 것을 먹고 쓰고 소모하지 못해

불행한 삶을 살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반성이 들기도 했다.


살림살이를 줄이기 시작한 뒤로

거짓말처럼 즐거워지기 시작한 집안일과

그런 집안일이야말로

'행복을 자급자족하기 위한 최고의 수단'이라는

그녀의 생각은 그동안 집안일을 귀찮아하고

몰아서 하는 게 당연했던 나의 일상을

다시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겨우 '본전'인 것 같은 집안일은

생산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잘 해낸다고 해서 칭찬이나 인정을 받는 것도

혹은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되지 않기에

그저 '마지못해 하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즐겁게 집안일을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면

시도해 보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물건을 줄이고,

그 물건을 관리하는 도구를 줄이는 간소화가

살림지옥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 된다는 것,


한 사람이 전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몫의 집안일은 스스로 하는 것,


간소한 살림은

자기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과

내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각을 주기 때문에,

노후에도 버틸 수 있게 해준다는 메시지는


당장의 깔끔한 집안이나 쾌적한 생활,

하기 싫은 집안일을 줄이기 위한 꼼수가 아니라

먼 미래까지 내다보는

행복한 삶의 방식이라는 점에서

꼭 실행해 봐야겠다는 다짐을 들게 했다.


살림이라는 삶의 필수 활동을 즐겁게 함으로써

인생이 즐거워진다는 메시지와 실천법은

책에서 말하는 '미니멀라이프'처럼

간단하고 명료한 제안이었다.


무언가의 아쉬움을 해결하기 위해

자꾸 사들이고 '채우려'하는 행위가

오히려 나의 생활과 삶을 힘들게 하고 있음을,

비울수록 '여유'가 생겨 더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이렇게 또 깨닫는다.


마음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다시 한번 비우기와 간소화하는 살림으로

물건은 비우고 행복은 채우는 삶으로

제대로 나아가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