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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지옥 해방일지 - 집안일에 인생을 다 쓰기 전에 시작하는 미니멀라이프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박재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24년 3월
평점 :



항상 마음속으로는 꼭 필요한 것만 곁에 두는
간소한 삶을 살아야지 하면서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 사게 되는
옷이나 가방 그리고 신발,
수시로 쓰니까 떨어질 틈이 없게
잔뜩 넉넉하게 쟁여둬야
마음이 편해지는 생필품이나 화장품,
'가격이 싸니까, 있으면 두고 먹으니까' 하고
냉장고를 꽉 채우게 되는 식재료까지
미니멀리즘과는 먼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4인 가족이 사는 40평의 집,
인당 10평이 확보되는 꽤 널찍한 공간임에도
새로 물건을 들일 때마다 넣을 곳이 없어서
퍼즐을 끼우거나 테트리스를 하듯
틈을 비집고 서랍을 눌러가며 물건을 채워 넣는다.
이렇게 사들인 식재료를 꺼내
매일 요리를 해서 끼니를 챙기고,
화장품으로 화장을 하고,
옷을 꺼내 입고 빨래를 하고 개키고,
청소를 하고 치우고,
다시 물건을 사들이는 과정을 반복하며
'집안일 정말 보통 일이 아니네'
라는 생각을 한다.
만약, 그 모든 것들을 간소화해서
기존에 10개 사던 식재료를 5개만 사거나
혹은 매일 그날 쓸 재료만 사고,
옷의 개수를 줄여 빨래와 짐을 줄이고,
때때마다 바로 청소하고 치우면
여전히 집안일은 힘든 일이 될까?
직장을 그만두게 된
경제적인 측면의 이유가 가장 컸지만
집의 크기부터 가지고 있는 살림살이를 줄여
'미니멀라이프'를 살게 된 작가가
스스로에게 던진 이 질문과 호기심은
실제로 자신의 삶을 간소화하는 실행을 통해
불필요한 물건을 정리하고 줄이면
살림지옥에서 벗어나
쾌적하고 즐거운 '집안일'을 만끽할 수
있게 된다는 답으로 이어지며
늘 '물건, 살림과의 전쟁'을 치르며
맥시멀 라이프를 사는 나에게
기분 좋은 자극과 동기부여가 되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그렇다.
이따금씩 여행을 갈 때면
먹을 식재료는 물론 입을 옷과 화장품 등
최대한 짐을 줄여 '최소한'으로 준비해 가지만
전혀 부족한 것이 없이 여행 기간 동안
충분한 하루를 보낸다.
매일을 그렇게 살 수 있고, 살면 되는데도
왜 '만약에' 혹은 '나중을 위해'라는 핑계로
무언가를 사들이고 쌓아두며
그로 인해 늘어나는 집안일을 떠안고,
그게 귀찮아 미루게 되는 걸까.
어떻게 보면 시작은 공간을 줄이는 것이다.
제일 먼저 공간을 줄이고 나면
나머지는 그야말로 자동으로 이어진다.
줄어든 공간에는 짐을 둘 곳이 없으니
가지고 있는 물건을 줄일 수밖에 없고,
그러니 가진 '조금'의 물건을 활용해
딱 지금 먹을 만큼의 요리를 하거나
그날 사용한 수건은 그 즉시 빨래하고,
청소 역시 그때그때 치울 수밖에 없으니
매일 해야 할 일이 자연스레 줄어들어
'집안일의 부담'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얻게 되는 쾌적한 삶은
어려울 것 없는 가장 간단하고
완벽한 해결 방법임에도,
손에 쥔 것은 하나도 놓지 않은 채
더 많은 것을 가지지 못해서
혹은 가진 모든 것을 먹고 쓰고 소모하지 못해
불행한 삶을 살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반성이 들기도 했다.
살림살이를 줄이기 시작한 뒤로
거짓말처럼 즐거워지기 시작한 집안일과
그런 집안일이야말로
'행복을 자급자족하기 위한 최고의 수단'이라는
그녀의 생각은 그동안 집안일을 귀찮아하고
몰아서 하는 게 당연했던 나의 일상을
다시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겨우 '본전'인 것 같은 집안일은
생산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잘 해낸다고 해서 칭찬이나 인정을 받는 것도
혹은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되지 않기에
그저 '마지못해 하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즐겁게 집안일을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면
시도해 보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물건을 줄이고,
그 물건을 관리하는 도구를 줄이는 간소화가
살림지옥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 된다는 것,
한 사람이 전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몫의 집안일은 스스로 하는 것,
간소한 살림은
자기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과
내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각을 주기 때문에,
노후에도 버틸 수 있게 해준다는 메시지는
당장의 깔끔한 집안이나 쾌적한 생활,
하기 싫은 집안일을 줄이기 위한 꼼수가 아니라
먼 미래까지 내다보는
행복한 삶의 방식이라는 점에서
꼭 실행해 봐야겠다는 다짐을 들게 했다.
살림이라는 삶의 필수 활동을 즐겁게 함으로써
인생이 즐거워진다는 메시지와 실천법은
책에서 말하는 '미니멀라이프'처럼
간단하고 명료한 제안이었다.
무언가의 아쉬움을 해결하기 위해
자꾸 사들이고 '채우려'하는 행위가
오히려 나의 생활과 삶을 힘들게 하고 있음을,
비울수록 '여유'가 생겨 더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이렇게 또 깨닫는다.
마음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다시 한번 비우기와 간소화하는 살림으로
물건은 비우고 행복은 채우는 삶으로
제대로 나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