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
이슬아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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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항상

9시에 시작하는 정규 업무시간 보다

최소 한 시간은 일찍 사무실에 출근했었다.


직장과 집의 거리가 멀었기에

교통체증을 피해 여유롭기 위함도 있었지만

아무도 없는 조용한 사무실에 앉아

그날 해야 할 일을 정리하고

밤새 쌓인 메일을 읽으며 답장을 쓰는 데만 해도

꼬박 한 시간의 시간은 걸려서

아침에 이메일 답장만 써놔도 퇴근이 빨라진다는 걸

몸소 실감하고는 매일 루틴처럼 반복했었다.


하루 종일 일과 사람 사람에 치이다 보니

그렇게까지 심각하거나 예민하게

받아들일 것이 아님에도

오후 즈음에는 날선 답장을 쓰게 될 때가 많았다.


왜 제대로 일을 처리해 주지 않느냐는 원성,

때로는 마냥 죄송하다는 말로 가득한 문장을

일하는 중간중간 써 내려가다 보면

이메일만 안 써도 업무능률이 늘겠네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습관처럼 수신인과 참조로 들어간 메일,

어떤 것은 내가 꼭 확인하고 처리해야 하며

이따금 중요한 업무지시나 클레임이 있었기에

메일 도착 알림이 울릴 때마다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깟 편지 한 통, 문장 몇 줄이 뭐라고

메일을 읽고 쓰는데 시간을 쏟아붓고

스트레스를 받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이기에

대충 아무렇게나 쓸 수 없었던 당시의 고민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여전하다.


여기 '이메일 쓰기'에 도를 튼 사람이 있다.

등단을 하지 않고도 작가가 된 사람,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한 달 구독료 만 원을 받고

매일 한편의 글을 메일로 전송하며

문학계에 센세이션 한 이슈몰이를 한

이슬아 작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누구보다 수많은 메일을 써왔을 그녀가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라는 제목으로 쓴 이 책은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깨달은 섭외와 조율,

설득의 비법을 녹여낸 글쓰기 팁이자

작가가 되기까지 자신의 일과 삶을 담아낸

에세이이기도 하다.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글쓰기 지침을 넘어,

타인과 관계를 다정히 맺는 법은 물론

자신이 직접 겪은 이메일을 통한

섭외와 설득, 거절과 사과, 연애와 협업의 경험을

바탕으로 깨닫게 된

총 18가지의 이메일 비기를 소개하면서

'삶을 바꾸는 기술'로서 이메일 쓰기를 전수한다.


책에서는 이메일을 업무 도구로서가 아닌

관계의 시작점으로 조명한다.

이메일은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하지 않기에

상대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는 배려의 매체라는 것.


그렇기에 이메일을 잘 쓴다는 것은

문장력의 뛰어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세심하게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상대를 존중하는 글쓰기의 본질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장기하에게 보낸 인터뷰 섭외 메일,

노희경 작가에게 보냈던 10대 시절의 편지,

수많은 요청에 응하고 거절하며 협상한

경험으로 쌓아온 노하우는 제목 한 줄, 문장 하나에도

상대의 마음을 흔드는 힘이 있다는 것을

증명시켜주었다.


대화를 나누듯 친밀하고 깊이 있는 표현력으로

모든 커뮤니케이션에서 다정함을 유지하는

그녀의 이메일을 통해

지난날 내가 썼던 수많은 문장을 반성했다.


조금이라도 손해 보고 싶지 않아서,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을 담아낸 문장들이

상대방의 마음을 울리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타고난 것이 아니라 그녀 역시

애써 매일 갈고닦아야 하는 기술이라 말했지만

다정함으로 엮어낸 글로

상대와 싸우지 않고 개선하는 법,

예술처럼 사과하는 법을 이끌어내는

그녀의 노하우를 이제서야 늦게나마 배운다.


이슬아는 이메일만으로

자신의 작가 인생을 스스로 개척한 사람이다.

출판사 없이 독자에게 직접 글을 보내는

〈일간 이슬아〉 시리즈를 통해

문장 하나로 생계를 꾸리고 판도를 바꾼

그 자체가 이메일이 단순한 업무 도구가 아닌

삶을 바꾸는 '전략적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자신만의 철학이자 경험이 녹아든 문장은

이메일이라는 익숙한 매체를 통해

삶을 더 다정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법은 물론,

글쓰기의 본질과 관계의 기술까지 일깨워 줬다.


한창 이메일 쓰기로 스트레스를 받던

직장인 시절에 이 책을 만났으면 어땠을까 싶다.

보다 타인을 헤아릴 줄 아는 소통으로

이기고 지는 혹은 섭외와 협상을 떠나

사람 대 사람으로서 공감했다면

더 행복하고 즐거운 업무를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미 지나간 시간은 차치하더라도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이메일 쓰기'에 있어

그녀가 제안한 기술을 오래 곱씹게 될 것 같다.


✔ 상대의 이름을 정확히 부르고 다정하게 말을 건넬 것

✔ 형식보다 중요한 것은 진심

✔ 거절과 사과도 관계를 지키는 기술이 된다는 것

✔ 유머와 다정함은 강력한 설득 도구라는 것

✔ 디지털 시대에도 속도보다 깊이를 중시하는

느린 글쓰기가 필요하다는 것

✔ 글쓰기는 자신을 지키고 세상과 당당히 연결되는

자존감의 도구라는 것


그녀와 같은 프리랜서나 창작자는 물론

사회 초년생, 직장인과 조직 생활자에게도

글쓰기를 배우고 싶은 사람,

관계에 서툰 사람 모두에게

각기 다른 의미로 좋은 자극과 배움이 될 것이다.


이메일 쓰기 하나로 인생을 바꿀 수 있다니,

일단 이 책을 한번 펼쳐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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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하고 천박하게 둘이서 1
김사월.이훤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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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한창 입시 준비로 예민해지고

때로는 무력감으로 어떤 때에는 막막함으로

마음이 뾰족해졌던 그때,

나를 위로하고 견디게 해주었던 것은

함께 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친구의

애정 어린 편지 한 장이었다.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힘듦을 헤아려주는 친구의 진심,

할 수 있을 거라는 응원이나

나도 같은 마음이야 하는 동조의 문장에서

때로는 울고 때로는 웃으며 힘을 얻었다.


편지란 게 그런 것 같다.

말로 하기에는 조금 민망하고

때로 너무 무거운 것 같아 망설이는 이야기도

마음을 거르고 걸러 침전시킨 문장에 담아

오직 한 사람만의 독자를 위해 탄생한

가장 특별한 책이랄까.


여기 이렇게 편지로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감정을 깊이 이해하고 우정을 나누는 두 사람이 있다.

싱어송라이터이자 글을 쓰는 김사월,

그리고 시인이자 사진작가인 이훤이 그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일 년여의 시간 동안

편지와 일기, 인터뷰와 짧은 단상 등

다양한 형태의 글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세계를 서로에게 공유한다.


또 창작자라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가지고 있는 예술적인 고민은 토로하고

이에 진심 어린 응답을 이어가며

사랑, 외로움, 우정, 자아에 대한 탐구 등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길어올렸다.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진 이들은

살아온 환경도 일하는 모습도 각자 다르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상대가 만들어낸 작업물을 받아들이고

이를 진심 어린 마음으로 이해하려는 탄탄하고 깊은 소통이

시간을 더해갈수록 깊고 진실한 우정으로 나아가게 했다.


편지를 통해 느리지만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

각자의 작업을 바라보며 교류하는 방식은

즉각적인 말, 대화로 하는 전화나 SNS처럼

가벼운 소통을 이어온 현대의 우리들에게

깊이 있는 울림은 물론

진정한 소통과 우정의 의미를 일깨우게 했다.


책의 초반만 해도 곡을 만들고 노래하는 사람,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서로의 예술에 대해

많은 물음표를 던진다.


너는 어때라는 물음으로 호기심을 전하면서도

자신을 표현하고 생각을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고,

서로가 만들어낸 음악, 시와 사진에

시간을 들인 감상과 이해를 건네는 정성스러움은

상대를 넘어 나를 이해하는 발걸음으로 이어진다.


때로는 예술가로서 예술의 순간성과 진심에 대한

고민을 나누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각자가 가진 우울과 상처를 드러내며

이들은 이를 이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서로를 끌어안아 주는 다정함을 발휘한다.


있는 그대로 감정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도 서로에 대한 존중과 존경을

잊지 않는 배려까지 엿보며

편지는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자,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이 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도 했다.


카톡이나 문자메시지, DM처럼 쉽게 쓰고 휘발되며

얼마든지 수정하고 삭제할 수 있는 요즘에

편지를 쓰고 답장을 기다리는 행위는

마냥 느리고 촌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비유,

편지를 통해 타인과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반복되는 두 사람의 글을 통해

느림과 기다림, 빈틈을 인정하는 태도를 담은

편지의 매력을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다정한 시선을 그들의 문장을 보니,

나 역시 누군가에게 따스한 마음이 담긴 편지를

쓰고 싶기도 받고 싶기도 하다.


편지를 쓰는 것은 받는 사람을 위한 글 같지만

사실은 내 감정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나를 위한 글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술가들이 주고받는 문장들이라 때로 어렵고

난해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온 마음을 다해 서로와 자신을 이해하려 애쓴

그들의 시간이 담긴 이 책을 통해

나의 감정과 관계를 되돌아보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힘이 가득한 책이었다.


손 편지에 얽힌 추억이 있는 아날로그 감성의 사람에게,

친구 사이의 우정과 관계에 고민이 많은 사람에게,

창작과 예술을 업으로 삼은 사람에게

이 책이 많은 울림을 주리라 생각한다.


마음이 복잡한 날,

누군가의 다정한 말과 헤아림이 필요하다면

이 둘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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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요리합니다, 정식집 자츠
하라다 히카 지음, 권남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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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건강한 식단과 요리법으로

최선을 다해왔다고 생각했으나

어느 날 갑자기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으로

혼란스러운 마음이 된 사야카.


퇴근 후 편의점에서 술 한 캔을 사서

한잔하는 남편의 습관은

어느덧 거리의 정식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식사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밥을 먹으며 술을 마시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야카는 '그 정도는 집에서 하면 되잖아'라고 말하지만

남편은 그게 문제라면서 이제는 소용없다고

단호한 입장을 보인다.


남편이 이혼을 하자고 하는 데에는

매일같이 찾는 거리의 정식집 자츠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 사야카는

용기를 내어 그곳에 들러 식사를 하게 되는데,

그곳의 메뉴는 너무 진하고 달고 자극적일 뿐이다.

심지어 가게 주인도 무뚝뚝하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가게는

그녀에게 원하는 답을 주지 못한다.


남편은 이혼 통보를 한 뒤 집을 나가버리고,

수입이 줄어들어 월세를 감당하기 난감해진 사야카는

문제의 정식집 자츠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안내문을 보게 되고,

남편이 이혼하고 싶어 하는

진짜 이유를 알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무뚝뚝한 중년의 노처녀 조우와 함께

정식집을 운영하게 되는데……


음식에 대한 맛깔스러운 표현과 특유의 감성으로

일본 힐링 소설의 대표 작가로 손꼽히는

하라다 히카의 작품은

등장인물이 성장하는 감정선을 읽는 재미,

책을 읽고 있음에도 식사를 하는 듯

입안에 감칠맛이 느껴지고 군침이 도는 표현으로

신작이 나올 때마다 기대하며 찾게 된다.


이번에는 거리의 백반집을 주 배경으로

이곳을 찾는 다양한 손님들과의 관계,

자라온 환경도 살아가는 모습도 다른 두 여성이

함께 일하게 되며 만들어내는 뚝딱거리는 케미로

금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남편이 이혼하고 싶어 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 찾은

정식집 자츠의 음식을 먹으면서도

'도대체 왜 이런 곳을 찾는 걸까' 하며

자신이 만든 것만 못한 맛에 물음표를 던지던 그녀가


직접 자츠의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고

주인인 조우가 이곳 '자츠'만의 신념으로

정성껏 음식을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며


자신이 가진 편견을 지우고

찾는 손님들과의 소통, 조우와의 함께하는 노동을 통해

점차 마음을 여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남편이 이곳을 찾는 이유와

밥과 술을 함께 먹지 않는 등

예전의 자신이 가졌던 강박을 내려놓는 성장의 과정이

책에서 소개된 메뉴와 어우러지면서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이런 성장이 사야카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정식집 주인인 무뚝뚝한 미사에에게도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도 참 좋았다.


서로 너무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식당을 운영하며

사야카는 사야카대로,

기존에 얻게 된 상처로 마음의 문을 닫았던 미사에도

치유받고 변화를 가지게 되는

서로의 장점을 살린 시너지가 의미 있게 와닿았다.


시간이 더해가며 각자의 마음에 담긴 진심을 오픈하고,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어려움을 극복하는

사야카와 미사에의 모습을 통해


언젠가 '시간이 조미료야'라고 했던 조우의 말처럼

함께하는 시간 아래 맛으로 뭉친 그들의 연대가

각자 짊어진 상처와 허기진 삶으로 위축된 우리에게

잔잔한 위로로, 뜨거운 응원이 되지 않을까 싶다.


끝내 이혼을 막지도

선대가 이어온 형태로 가게를 지키지 못하고

새로운 길에 들어서게 된 두 사람이지만,

진하고 달콤한 맛에 길들여진 조우가

사야카가 만든 소스나 맛을 도입해 변화를 가지게 되고

사야카도 스스로 이혼을 결정하며

자신의 의견과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처럼


쉴 새 없이 변해가는 세상,

인생에 서툰 것은 모두가 마찬가지이지만

우리가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준다면

조금은 견딜만한 삶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선대 마스터에 이어 두 번째 조우가 된 미사에,

그리고 앞으로 세 번째 조우가 될 사야카의

시간을 이어 연결되는 성장의 연대가

끝났지만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든다.


인생이라는 요리를 맛있게 변화시켜 가는 그들의 성장,

세상은 서로가 서로를 기대는 곳이라는 메시지는

맛깔나는 음식의 향연이 이어지는

이 문장들 깊이 박혀있는 진짜 '맛'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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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자 시호도 문구점
우에다 겐지 지음, 최주연 옮김 / 크래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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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물건을 파는 가게이지만

유독 마음이 가는 곳이 있다.

어차피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 일 텐데

찾는 손님들에게 온 정성과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영업하는 곳이라는 게 느껴지면

일부러 시간을 들이더라도 자주 찾게 된다.


긴자에 있는 시호도 문구점 역시 그런 곳이다.

버드나무가 늘어선 골목,

새빨간 우체통 앞 고풍스러운 외관의

3층 건물에 위치한 이곳은

1834년 문을 연 이래 줄곧 자리를 지켜 온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서 깊은 문구점이다.


오래된 활판 인쇄기가 잠든 지하공간,

이런 물건은 어떻게 찾았을까 싶을 만큼

감탄이 터지는 다채로운 상품이 가득한 1층을 지나면

종이 공예나 캘리그래피 등의 워크숍이 열리기도 하며

단골손님이 애용하는 2층 공간이 펼쳐진다.


분명 찾는 게 있어 들렀음에도

뭘 사야 할까 고민하고 머뭇거리던 순간

정중한 목소리가 나타난다.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가요? 찾아드릴게요." 하는

문구점 주인 다카라다 겐이다.


마치 실존하는 듯 다양한 문구용품을 묘사하는

이 소설 속의 문장은 문구 덕후나

필기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꽤나 매력적인 글이 될 것 같다.


평상시에 문구점에 가면 다양한 필기구와

아기자기한 디자인의 편지지 속에서

즐겁고 행복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내게

시호도 문구점은 가상의 공간이지만

'실제로 이런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하는

마음이 들게끔 만들어 주었는데


이런 공간에 대한 로망을 넘어서

문구점을 찾는 각 손님들의 사연을 따라

사장 겐이 찾는 물건을 건네고,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차분히 편지를 쓸 수 있도록 공간을 빌려주며

적절한 조언이나 방향을 일러주는 섬세함이

'내가 받고 싶었던 친절'을 느끼게 해주어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이었다.


만년필과 잉크에 대한 설명,

편지지의 다양한 소재와 고르는 요령,

상황에 맞게 쓰는 방법을 일러주는

묘사도 재미있고 좋았지만


첫 월급으로 할머니께 드릴 선물에

동봉할 편지를 쓰고자 들른 사회 초년생,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3년 동안 고백하지 못한

여고생의 손때묻은 노트,

오랫동안 신세를 진 사장님에게

퇴사하겠다는 말을 꺼내야 하는 직원이 찾는 퇴사원,

세상을 떠난 전처의 장례식장에서 읽을

조문의 말을 쓰기 위해 들른 사업가까지


각각의 애틋한 사연을 가진 등장인물들을 따라

고민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은

뻔한 전개인 듯 보이지만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난처한 고민에

전전긍긍하는 손님들을 향해

기꺼이 손 내밀어 주는 섬세한 도움의 손길은,

타인에게는 관심을 두려 하지도

어려움을 보고도 애써 손 뻗으려 하지 않고

나만을 생각하는 요즘의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목소리가 될 것 같다.


학생이나 사회 초년생처럼

아직 어리고 미숙한 사람이 아니어도

충분히 경험이 많은 어른도, 성공한 사업가도

때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기에

결국엔 누구도 타인의 지지와 도움 없이

혼자 살아갈 수는 없으며,

그렇기에 누구나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면 좋겠다는 책 속의 메시지를 되새긴다면

조금은 더 따스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아날로그 방식으로 손 편지를 쓰고,

직접 노트에 필기를 하는 것도

모든 것이 간편해지고 디지털화되는 요즘 시대엔

과거의 낡은 것이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해 편지지를 고르고

고심해 펜을 들고 반듯하게 글씨를 쓰던

지난날의 설레던 시간,

각양각색의 펜과 예쁜 문구를 살 때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던 학창 시절의 추억은 물론

초등학생 시절 아빠에게 선물 받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필통을 떠올리면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특별한 기억이다.


책을 통해 오랜만의 과거의 시간을 여행하며

떠올린 추억으로 행복함을 물씬 느낄 수 있었다.

나처럼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기억을 되짚으며 소중함을 떠올리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문구점에는 특별한 판타지가 담겨 있지 않다.

손님에게 적절한 조언을 건네고

때로는 혼자 생각할 여백의 시간을 만들어주는

주인 겐의 배려 안에서

각각의 등장인물은 스스로 고민을 해결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된다.

오히려 그런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진행이

편안하게 이야기에 몰입하게 해주었고

되려 많은 여운을 남겼다.


또 어떤 손님이 찾아올까,

그 사람에겐 어떤 고민이 있을까,

또 어떤 문구가 새로 등장할까 하는 기대감과

그들의 고민을 내려놓게 하는 문구점 특유의 포근함을

더 맛보고 싶다는 갈증이 남는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고

오래 아껴 쓴 문구, 그에 담긴 특별한 추억으로

마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에게 용기를 내도록 도와주는

긴자 시호도 문구점.

벌써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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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 어둠
조승리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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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라는

파격적인 책 제목만큼이나 뜨거운 울림을 주었던

시각장애인 작가 조승리의 작품을 기억한다.


시각장애라는 암담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뜨겁고 치열하게 세상과 부딪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매일을 살아가는 그녀의 이야기는

동정과 연민으로만 바라보던

장애인의 삶과 그들의 현실에 대해

그동안 갖고 있던 편견과 고정관념을

녹일 수 있는 의미 있는 기회였다.


장애 당사자가 써 내려간 장애인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굉장히 사실적이고 가감 없이 현실을 드러내어

필력이나 문학적인 가치를 떠나 좋았는데,

이번 작품 《나의 어린 어둠》에서는

작가로서 조승리의 필력을 느끼고 만끽할 수 있어

전작 못지않게 많은 감동을 받았다.


이번 책은 그녀의 이야기를 담아낸

에세이나 산문집이 아닌 '소설'이지만

분명 가상으로 만들어낸 창작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녀의 삶인 양 느껴진다.


실명을 앞둔 청소년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각 작품의 화자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실을 끌어안고 한걸음 나아가는 모습은

각기 그 모양은 달랐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조승리'들의 삶을 그대로 녹여내었기에

때로는 숨이 턱 막히는 막막함으로,

때로는 애틋함에 울컥 눈물이 차오름을 느끼며

단숨에 멈추지 않고 읽게 만들었다.


실명을 앞둔 중학생이 겪은 첫사랑,

갑자기 장애를 떠안게 된 자식을

아직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모와의 충돌,

특수학교에서의 기숙사 생활,

장애에 냉혹한 사회 앞에서의 좌절 등

일부러 극적으로 지어내려 애쓰지 않아도

극적인 그들의 삶과 그 안에서의 성장은

픽션을 넘어 르포르타주에 가깝게 느껴져

더 감정을 이입하게 되었다.


시각을 잃어가는 각 작품의 화자들이

상실을 어떻게 예감하고 마주하며 성장하는지,

또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세계를

재건축해나가는지 그 발걸음을 함께하며

독자 스스로가 각자의 삶에 얹어진 상실을 가늠하고

나는 어떻게 내 현실을 마주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시간을 갖게 했다.


첫 번째 이야기 〈네가 없는 시작〉은

실명 판정을 앞둔 중학생 '나'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한 학년 선배인 '너'와 사랑에 빠지지만

시각장애라는 현실 앞에

결국 이를 떠안을 용기가 없는 '너'의 회피로

관계가 단절되어 버리고 만다.


시각장애를 가진 자신을 망가진 존재로 인식하며

네가 더 망가지면 당당히 그 옆에 설 수 있을 거라는

'나'의 비틀린 감정과 절망은

이 시간을 직접 통과한 조승리가 아니었다면

표현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놓칠까 봐 두려운 마음,

애틋한 사랑의 감정도 장애라는 현실 앞에

당연한 듯 단절되고 상실하게 되는 모습에서

그저 시력만을 잃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삶의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시각장애인들의 상처를 헤아릴 수 있었다.


두 번째 작품인 〈내 안의 검은 새〉는

장애를 가진 자식을 부정하는 아버지,

진로에 자립도 부정당하는 장애인을 보는 시선,

낯선 곳에서 혼자 설 수 없는 현실을

복합적으로 그려냈다.


갑자기 장애를 가지게 된 자식을 외면하고 싶고,

눈엣가시처럼 여기며 차별하는 부모의 마음이

속상함에서 비롯되었다 할지라도

상처로 와닿는 장애 당사자의 서러움은 물론


졸업도 진학도, 취업과 진로에서도

자신의 의지대로 하기보다 보호자의 의견 아래

그 어떤 목소리도 낼 수 없게 부정당하는 현실은

가정이나 사회에서는 물론 어디에서든

이방인처럼 취급 당하며 쫓겨난 것처럼

처참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지금의 사회에서

우리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가를

스스로 고민해 보게 만들었다.


실명이 감각의 상실일 뿐 아니라

관계의 파열이나 불확실한 미래까지 받아들이게 하는

총체적인 체험임을,

이를 거부하거나 부정할 수 없이

그저 수긍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막막함을

이렇게 문장으로나마 짐작해 본다.


세 번째 〈브라자는 왜 해야 해?〉에서는

앞선 두 작품에서의 그려진 상실의 과정을 지나

성장으로 나아간 장애인을 담았다.


특수학교에서 부장님이라 불리며

다른 이들을 책임감 있게 통솔하는 화자는

과도기를 거쳐 장애라는 현실에 적응한

성숙한 모습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 역시 장애가 있지만

정도가 더 심한 부희언니를 향해 느끼는

양가적 감정이 존재함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하지만 특수학교 아이들과 지역 초등학생들이

트램펄린을 두고 벌어진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 속,

장애를 가진 몸도 가난도 표가 나지 않는

다 똑같은 그림자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


마지막 이야기는 책의 제목과 동명의 작품인

〈나의 어린 어둠〉이다.


시골길을 넘어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다니고,

엄마의 농사일을 도우며 평범한 나날을 사는 성희.

이따금 눈앞이 까만 도화지를 펼쳐둔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꽉 감았다가 다시 뜨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앞이 보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고장 난 자전거 바퀴를 수리해두지 않아

걸어서 학교에 가야 했던 어느 날,

우산을 챙겨가라는 엄마의 말을 뒤로하고

빈손으로 학교에 갔다가

예고 없이 내리는 소나기에

온몸이 젖어들며 겨우 집에 돌아온다.


시력이 떨어진 거겠지 싶었던 눈에

소나기처럼 예고 없이 실명이 들이닥치고

주인공 성희는 빗속에서 자전거를 타듯

앞으로의 인생이 그러할 것이라는걸,

겪어본 적 없는 새로운 장마가

자신에게 시작되었음을 실감한다.


각 작품의 화자가 시각장애를 마주하며 겪는

가족, 사회와의 단절이나 절망감은

각기 다른 모습이지만

상실이 끝으로 두지 않고 다시 일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려는' 의지가 녹아있다.


이는 비단 글을 쓴 조승리 작가

한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가 장애인 학교에서 만난 동료들에게서

배운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자신과 그들의 인생을 되짚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그에게 녹아들었고,

그렇기에 이 작품이 작가 본인의 이야기가 아님에도

왜 자전적 소설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하게 만들었다.


고요하지만 뜨거운 빛을 품고 있는 어둠,

눈으로는 빛을 바라보지 못해도

손끝과 냄새와 기억으로 세상을 열심히 들여다본

한 사람의 뜨거운 몸부림을 통해

끝내 상실을 받아안을 수 있는

그 녹진한 마음을 오롯이 마주할 수 있었다.


이야기의 어떤 부분이 픽션이고,

어떤 부분이 사실일까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진정성 있게 자신의 삶과 상실, 성장을 담아낸

그의 문장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여러 과정을 거쳐 힘겹게 찍어내 완성한 이 책을 넘어

그가 앞으로 써 내려갈 많은 문장들에도

뜨거운 진심과 글을 향한 갈망이 담기리라 기대된다.


그가 써내려갈 문장을 통해

수많은 비장애인들이 장애를 바라보는

비뚤어지고 편협한 시각과 고정관념을

깨뜨릴 수 있었으면 좋겠고

장애당사자들 역시 절망을 이겨내고

앞을 기약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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