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상하고 천박하게 ㅣ 둘이서 1
김사월.이훤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2월
평점 :














학창 시절 한창 입시 준비로 예민해지고
때로는 무력감으로 어떤 때에는 막막함으로
마음이 뾰족해졌던 그때,
나를 위로하고 견디게 해주었던 것은
함께 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친구의
애정 어린 편지 한 장이었다.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힘듦을 헤아려주는 친구의 진심,
할 수 있을 거라는 응원이나
나도 같은 마음이야 하는 동조의 문장에서
때로는 울고 때로는 웃으며 힘을 얻었다.
편지란 게 그런 것 같다.
말로 하기에는 조금 민망하고
때로 너무 무거운 것 같아 망설이는 이야기도
마음을 거르고 걸러 침전시킨 문장에 담아
오직 한 사람만의 독자를 위해 탄생한
가장 특별한 책이랄까.
여기 이렇게 편지로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감정을 깊이 이해하고 우정을 나누는 두 사람이 있다.
싱어송라이터이자 글을 쓰는 김사월,
그리고 시인이자 사진작가인 이훤이 그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일 년여의 시간 동안
편지와 일기, 인터뷰와 짧은 단상 등
다양한 형태의 글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세계를 서로에게 공유한다.
또 창작자라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가지고 있는 예술적인 고민은 토로하고
이에 진심 어린 응답을 이어가며
사랑, 외로움, 우정, 자아에 대한 탐구 등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길어올렸다.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진 이들은
살아온 환경도 일하는 모습도 각자 다르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상대가 만들어낸 작업물을 받아들이고
이를 진심 어린 마음으로 이해하려는 탄탄하고 깊은 소통이
시간을 더해갈수록 깊고 진실한 우정으로 나아가게 했다.
편지를 통해 느리지만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
각자의 작업을 바라보며 교류하는 방식은
즉각적인 말, 대화로 하는 전화나 SNS처럼
가벼운 소통을 이어온 현대의 우리들에게
깊이 있는 울림은 물론
진정한 소통과 우정의 의미를 일깨우게 했다.
책의 초반만 해도 곡을 만들고 노래하는 사람,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서로의 예술에 대해
많은 물음표를 던진다.
너는 어때라는 물음으로 호기심을 전하면서도
자신을 표현하고 생각을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고,
서로가 만들어낸 음악, 시와 사진에
시간을 들인 감상과 이해를 건네는 정성스러움은
상대를 넘어 나를 이해하는 발걸음으로 이어진다.
때로는 예술가로서 예술의 순간성과 진심에 대한
고민을 나누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각자가 가진 우울과 상처를 드러내며
이들은 이를 이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서로를 끌어안아 주는 다정함을 발휘한다.
있는 그대로 감정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도 서로에 대한 존중과 존경을
잊지 않는 배려까지 엿보며
편지는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자,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이 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도 했다.
카톡이나 문자메시지, DM처럼 쉽게 쓰고 휘발되며
얼마든지 수정하고 삭제할 수 있는 요즘에
편지를 쓰고 답장을 기다리는 행위는
마냥 느리고 촌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비유,
편지를 통해 타인과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반복되는 두 사람의 글을 통해
느림과 기다림, 빈틈을 인정하는 태도를 담은
편지의 매력을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다정한 시선을 그들의 문장을 보니,
나 역시 누군가에게 따스한 마음이 담긴 편지를
쓰고 싶기도 받고 싶기도 하다.
편지를 쓰는 것은 받는 사람을 위한 글 같지만
사실은 내 감정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나를 위한 글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술가들이 주고받는 문장들이라 때로 어렵고
난해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온 마음을 다해 서로와 자신을 이해하려 애쓴
그들의 시간이 담긴 이 책을 통해
나의 감정과 관계를 되돌아보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힘이 가득한 책이었다.
손 편지에 얽힌 추억이 있는 아날로그 감성의 사람에게,
친구 사이의 우정과 관계에 고민이 많은 사람에게,
창작과 예술을 업으로 삼은 사람에게
이 책이 많은 울림을 주리라 생각한다.
마음이 복잡한 날,
누군가의 다정한 말과 헤아림이 필요하다면
이 둘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