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자 시호도 문구점
우에다 겐지 지음, 최주연 옮김 / 크래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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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물건을 파는 가게이지만

유독 마음이 가는 곳이 있다.

어차피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 일 텐데

찾는 손님들에게 온 정성과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영업하는 곳이라는 게 느껴지면

일부러 시간을 들이더라도 자주 찾게 된다.


긴자에 있는 시호도 문구점 역시 그런 곳이다.

버드나무가 늘어선 골목,

새빨간 우체통 앞 고풍스러운 외관의

3층 건물에 위치한 이곳은

1834년 문을 연 이래 줄곧 자리를 지켜 온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서 깊은 문구점이다.


오래된 활판 인쇄기가 잠든 지하공간,

이런 물건은 어떻게 찾았을까 싶을 만큼

감탄이 터지는 다채로운 상품이 가득한 1층을 지나면

종이 공예나 캘리그래피 등의 워크숍이 열리기도 하며

단골손님이 애용하는 2층 공간이 펼쳐진다.


분명 찾는 게 있어 들렀음에도

뭘 사야 할까 고민하고 머뭇거리던 순간

정중한 목소리가 나타난다.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가요? 찾아드릴게요." 하는

문구점 주인 다카라다 겐이다.


마치 실존하는 듯 다양한 문구용품을 묘사하는

이 소설 속의 문장은 문구 덕후나

필기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꽤나 매력적인 글이 될 것 같다.


평상시에 문구점에 가면 다양한 필기구와

아기자기한 디자인의 편지지 속에서

즐겁고 행복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내게

시호도 문구점은 가상의 공간이지만

'실제로 이런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하는

마음이 들게끔 만들어 주었는데


이런 공간에 대한 로망을 넘어서

문구점을 찾는 각 손님들의 사연을 따라

사장 겐이 찾는 물건을 건네고,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차분히 편지를 쓸 수 있도록 공간을 빌려주며

적절한 조언이나 방향을 일러주는 섬세함이

'내가 받고 싶었던 친절'을 느끼게 해주어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이었다.


만년필과 잉크에 대한 설명,

편지지의 다양한 소재와 고르는 요령,

상황에 맞게 쓰는 방법을 일러주는

묘사도 재미있고 좋았지만


첫 월급으로 할머니께 드릴 선물에

동봉할 편지를 쓰고자 들른 사회 초년생,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3년 동안 고백하지 못한

여고생의 손때묻은 노트,

오랫동안 신세를 진 사장님에게

퇴사하겠다는 말을 꺼내야 하는 직원이 찾는 퇴사원,

세상을 떠난 전처의 장례식장에서 읽을

조문의 말을 쓰기 위해 들른 사업가까지


각각의 애틋한 사연을 가진 등장인물들을 따라

고민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은

뻔한 전개인 듯 보이지만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난처한 고민에

전전긍긍하는 손님들을 향해

기꺼이 손 내밀어 주는 섬세한 도움의 손길은,

타인에게는 관심을 두려 하지도

어려움을 보고도 애써 손 뻗으려 하지 않고

나만을 생각하는 요즘의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목소리가 될 것 같다.


학생이나 사회 초년생처럼

아직 어리고 미숙한 사람이 아니어도

충분히 경험이 많은 어른도, 성공한 사업가도

때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기에

결국엔 누구도 타인의 지지와 도움 없이

혼자 살아갈 수는 없으며,

그렇기에 누구나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면 좋겠다는 책 속의 메시지를 되새긴다면

조금은 더 따스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아날로그 방식으로 손 편지를 쓰고,

직접 노트에 필기를 하는 것도

모든 것이 간편해지고 디지털화되는 요즘 시대엔

과거의 낡은 것이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해 편지지를 고르고

고심해 펜을 들고 반듯하게 글씨를 쓰던

지난날의 설레던 시간,

각양각색의 펜과 예쁜 문구를 살 때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던 학창 시절의 추억은 물론

초등학생 시절 아빠에게 선물 받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필통을 떠올리면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특별한 기억이다.


책을 통해 오랜만의 과거의 시간을 여행하며

떠올린 추억으로 행복함을 물씬 느낄 수 있었다.

나처럼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기억을 되짚으며 소중함을 떠올리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문구점에는 특별한 판타지가 담겨 있지 않다.

손님에게 적절한 조언을 건네고

때로는 혼자 생각할 여백의 시간을 만들어주는

주인 겐의 배려 안에서

각각의 등장인물은 스스로 고민을 해결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된다.

오히려 그런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진행이

편안하게 이야기에 몰입하게 해주었고

되려 많은 여운을 남겼다.


또 어떤 손님이 찾아올까,

그 사람에겐 어떤 고민이 있을까,

또 어떤 문구가 새로 등장할까 하는 기대감과

그들의 고민을 내려놓게 하는 문구점 특유의 포근함을

더 맛보고 싶다는 갈증이 남는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고

오래 아껴 쓴 문구, 그에 담긴 특별한 추억으로

마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에게 용기를 내도록 도와주는

긴자 시호도 문구점.

벌써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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