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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요리합니다, 정식집 자츠
하라다 히카 지음, 권남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5년 7월
평점 :

매일 건강한 식단과 요리법으로
최선을 다해왔다고 생각했으나
어느 날 갑자기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으로
혼란스러운 마음이 된 사야카.
퇴근 후 편의점에서 술 한 캔을 사서
한잔하는 남편의 습관은
어느덧 거리의 정식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식사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밥을 먹으며 술을 마시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야카는 '그 정도는 집에서 하면 되잖아'라고 말하지만
남편은 그게 문제라면서 이제는 소용없다고
단호한 입장을 보인다.
남편이 이혼을 하자고 하는 데에는
매일같이 찾는 거리의 정식집 자츠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 사야카는
용기를 내어 그곳에 들러 식사를 하게 되는데,
그곳의 메뉴는 너무 진하고 달고 자극적일 뿐이다.
심지어 가게 주인도 무뚝뚝하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가게는
그녀에게 원하는 답을 주지 못한다.
남편은 이혼 통보를 한 뒤 집을 나가버리고,
수입이 줄어들어 월세를 감당하기 난감해진 사야카는
문제의 정식집 자츠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안내문을 보게 되고,
남편이 이혼하고 싶어 하는
진짜 이유를 알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무뚝뚝한 중년의 노처녀 조우와 함께
정식집을 운영하게 되는데……
음식에 대한 맛깔스러운 표현과 특유의 감성으로
일본 힐링 소설의 대표 작가로 손꼽히는
하라다 히카의 작품은
등장인물이 성장하는 감정선을 읽는 재미,
책을 읽고 있음에도 식사를 하는 듯
입안에 감칠맛이 느껴지고 군침이 도는 표현으로
신작이 나올 때마다 기대하며 찾게 된다.
이번에는 거리의 백반집을 주 배경으로
이곳을 찾는 다양한 손님들과의 관계,
자라온 환경도 살아가는 모습도 다른 두 여성이
함께 일하게 되며 만들어내는 뚝딱거리는 케미로
금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남편이 이혼하고 싶어 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 찾은
정식집 자츠의 음식을 먹으면서도
'도대체 왜 이런 곳을 찾는 걸까' 하며
자신이 만든 것만 못한 맛에 물음표를 던지던 그녀가
직접 자츠의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고
주인인 조우가 이곳 '자츠'만의 신념으로
정성껏 음식을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며
자신이 가진 편견을 지우고
찾는 손님들과의 소통, 조우와의 함께하는 노동을 통해
점차 마음을 여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남편이 이곳을 찾는 이유와
밥과 술을 함께 먹지 않는 등
예전의 자신이 가졌던 강박을 내려놓는 성장의 과정이
책에서 소개된 메뉴와 어우러지면서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이런 성장이 사야카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정식집 주인인 무뚝뚝한 미사에에게도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도 참 좋았다.
서로 너무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식당을 운영하며
사야카는 사야카대로,
기존에 얻게 된 상처로 마음의 문을 닫았던 미사에도
치유받고 변화를 가지게 되는
서로의 장점을 살린 시너지가 의미 있게 와닿았다.
시간이 더해가며 각자의 마음에 담긴 진심을 오픈하고,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어려움을 극복하는
사야카와 미사에의 모습을 통해
언젠가 '시간이 조미료야'라고 했던 조우의 말처럼
함께하는 시간 아래 맛으로 뭉친 그들의 연대가
각자 짊어진 상처와 허기진 삶으로 위축된 우리에게
잔잔한 위로로, 뜨거운 응원이 되지 않을까 싶다.
끝내 이혼을 막지도
선대가 이어온 형태로 가게를 지키지 못하고
새로운 길에 들어서게 된 두 사람이지만,
진하고 달콤한 맛에 길들여진 조우가
사야카가 만든 소스나 맛을 도입해 변화를 가지게 되고
사야카도 스스로 이혼을 결정하며
자신의 의견과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처럼
쉴 새 없이 변해가는 세상,
인생에 서툰 것은 모두가 마찬가지이지만
우리가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준다면
조금은 견딜만한 삶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선대 마스터에 이어 두 번째 조우가 된 미사에,
그리고 앞으로 세 번째 조우가 될 사야카의
시간을 이어 연결되는 성장의 연대가
끝났지만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든다.
인생이라는 요리를 맛있게 변화시켜 가는 그들의 성장,
세상은 서로가 서로를 기대는 곳이라는 메시지는
맛깔나는 음식의 향연이 이어지는
이 문장들 깊이 박혀있는 진짜 '맛'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