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도 가까이도 느긋한 여행
마스다 미리 지음, 이소담 옮김 / 북포레스트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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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게 되면 마음 한편에

어쩐지 작은 의무감이 생긴다.

이왕에 시간을 내고 비용을 들여 온 김에

이 여행지의 이름난 것들을

모두 만끽하고 누려야 할 것만 같은 기분.


그래서 여행을 준비할 때면

잔뜩 계획을 세워 놓기도 하고,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동그랗게 눈을 크게 뜨곤

유명한 풍경이며 관광 스폿을 부지런히 돈다.


그 계획들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면

망쳤다는 기분이 들어

오롯이 여행을 만끽하지 못하기도 하고,

계획대로 다 실행한 여행에서는

'비로소 제대로 된 여행을 했다'는

만족감이 샘솟기도 한다.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마음이 이끄는 대로 돌아보지 않고

'어느 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에

바삐 종종거린 기억으로 인해

'그때 내 기분이 어땠더라' 되짚어보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고 백지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마다 천천히 느긋하게 돌아봤더라면

이 여행이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반짝거리는

작은 순간들을 발견할 줄 아는

따스한 시선을 가진 작가 마스다 미리,

자신만의 속도로 즐긴 여행기를 담은 이 책

《멀리도 가까이도 느긋한 여행》을 통해

강박에서 벗어나 느긋하고 자유롭게 떠나는

여행의 즐거움을 담담하고 따뜻하게 풀어내었다.


마스다 미리 특유의 섬세한 시선과

유머가 녹아든 여행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이렇게 여행하고 싶다'는 동경의 마음,

그리고 잔잔한 위로와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가까운 여행지라면 몰라도

기껏 마음을 먹은 해외여행에서도

본전을 생각하면 느긋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나가노, 시즈오카, 아오모리, 도쿄, 오사카 등

국내의 다양한 여행지는 물론

폴란드, 스위스 등 평생에 한번 가볼까 싶은

여행지에서도 자신만의 속도로

여유롭게 걷고 먹고 쉬면서도

그곳의 정취와 풍경을 만끽하는 그녀의 모습은

'속도 중심의 여행이 정답은 아니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여행을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일상의 연장선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시간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때로는 익숙한 장소를 다시 찾고,

또 새로운 곳에서 소소한 발견을 하는 등

여행을 대하는 '태도'에서

신선한 자극을 받을 수 있었다.


여행을 하며 만난 다양한 음식, 그곳의 풍경,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짧은 교류가

따뜻하게 묘사된 문장과 그림들은

여행의 감동이 거창한 것에서 오는 게 아니라

작은 순간들 속에 있다는 단단한 메시지를 전한다.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

찍은 사진들을 더한 이 책의 문장들은

딱 '마스다 미리 답다'는 감성이 담긴 기록으로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천천히 같은 곳을

여행해 보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빠르게 많은 것을 소비하는 것이

'여행의 질'을 결정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여행을 '쉼과 회복의 시간이자

나를 돌보는 방식'으로서 마주한

작가의 여행기는

앞으로의 여행에 있어 '나만의 속도'를

최우선으로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했다.


익숙한 곳에서 느끼는 편안함,

낯선 새로운 곳에서 느끼는 설렘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여행의 즐거움은

어떤 여행도 시시한 여행은 없으며,

분명히 무언가로 가득 채워진다는 문장을 통해

여행에 대한 부담감,

숙제처럼 '모든 것을 만끽해야 한다'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소소하게는 호텔 뷔페에서 만난

초콜릿을 야금야금 먹으며

'녹아서 사라지는 건 0칼로리'라며

작고 사적인 행복을 만끽하거나


어린 시절 동경했던 하이디의 나라에

큰맘 먹고 방문하지만,

꼭대기까지 오르지 않고도

조금만 오르는 하이킹에서도

'적당한 코스라서 좋다'는 작가의 모습은


단순한 여행 기록을 넘어

자신을 돌보고 삶을 음미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문장이기도 했고,

여행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책 속의 문장을 따라 세계 곳곳,

일본의 작은 소도시를 여행하다 보니

인생뿐 만 아니라 여행 역시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는 생각이 든다.


빠르게 많은 것을 보는 여행도 물론 좋겠지만

나만의 속도로 느긋하게 걷고 쉬는 여행,

무리하지 않고 나를 존중하는 여행 방식

더 깊은 만족을 준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기분 전환에는 여행이 최고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내면의 회복을 의미하고 있기에

조급하지 않고 내 마음의 즐거움을 최우선으로

나를 더 잘 이해하는 여행을 해야겠다는 다짐이다.


그녀의 여행기를 통해

앞으로 어떤 여행을 할 것인가의 결심이 달라지니

훌쩍 더 어디론가 떠나보고 싶은 마음이다.

느긋하게 나만의 속도로 걷는 여행에서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을 길어올리게 될지

기대감이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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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수록 나의 세계는 커져간다 - 어떤 순애의 기록
김지원(편안한제이드)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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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부모를 사랑하면 효자,

조카를 아끼면 조카 바보라 불리며

따뜻한 시선을 받는다.

하지만 최애를 향한 덕질은 왜 손가락질을 받는 걸까?


누군가를 향한 순수하고도 깊은 사랑이지만

때로 쯧쯧하는 손가락질로 이어지며

사랑을 하는 당사자조차도

그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숨기는 경우도 있다.

바로 최애를 향한 덕후의 사랑, 덕질이 그것이다.


오빠, 오빠 하면서

애정하는 상대에 마냥 맹목적이라는 이유로

'빠순이'라고 불리거나

날씬하고 예쁘고 아름다운 아이돌을 보며

음흉한 상상을 하거나 애니메이션에 과몰입해

캐리커처가 잔뜩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오타쿠'처럼 부정적인 시선이 많기 때문이다.


《사랑할수록 나의 세계는 커져간다》는

축복받지 못하는 마음인 '덕질'에 대해

목소리를 내어 자신의 사랑을 이야기한 책이다.


이 책은 작가가 애정한 최애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로,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개인의 세계를 확장시키고

자아를 성장시키는지를 탐구하는

철학적 기록이기도 하다.


아이돌이나 연예인을 좋아해 본 경험이 있거나

영화나 드라마 등

어딘가에 푹 빠진 적 있는 덕질러들에게는

덕질명언이 가득한 수많은 공감 포인트로,

덕후들이 이해되지 않거나

그 감정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덕후의 사랑'이 가진 본질을 헤아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장 덕후로 사는 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아서〉에서는

공공기관에서 일하며 퇴근 후에는 덕질에 몰입하는

작가의 덕질 생활을 소개한다.


몰래 굿즈를 사고, 팬카페를 눈팅하며

바깥으로는 감정을 숨기는 흥미진진한 일상은 물론

최애의 공백기를 견디거나 포토카드에 감동이 요동친 경험,

기쁨이 대부분이지만 때로 감정 소모와 외로움을 동반하는

덕질의 고통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덕질은 감정의 진폭이 큰 일상이지만

그럼에도 그 몰입이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는 것,

좋아하는 마음은 기술과 자아를 성장시키는

버팀목이 된다는 것을 실감하며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 쉬운 덕질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2장 나의 덕질 연대기, 아이돌부터 프로게이머까지〉에서는

아이돌, 배우, 드라마, 일본 연예인,

구체관절인형, 프로게이머, 인터넷방송 등

작가의 다양한 대상에 대한 덕질 연대기를 담았다.


처음에는 단순한 팬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덕질이 삶의 일부가 되고,

감정의 방향도 호기심에서 점차 자라나

응원과 연대로 바뀌어가는 덕질의 진화를 실감하며

대상은 계속 바뀌지만 농도는 점점 깊어지는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3장 덕질 비하인드 스토리〉에서는

덕질이 삶이 되는 과정을 소개한다.


자막 없이 영상을 보기 위해 일본어를 배우거나,

비행기 수납고 방문 경험이

면접에 도움을 주었던 사례 등

몰입이 기술이 되는 순간은 물론


좋아하는 마음이 번아웃을 이겨내는 회복의 근력이 되고

삶의 방향성을 제시해 줌으로써,

단순한 취미에 멈춰있지 않고

자아를 확장시키는 전략이자 성장의 도구로 작용한

덕질의 발전을 볼 수 있었다.


마지막 〈4장 지나가는 덕후의 개똥철학〉에서는

덕질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담아내었다.


현실이 버거울 때 삶을 견디게 하는 에너지가 된,

덕질이 주는 '몰입의 힘'과

일방적인 소비가 아니라 서로의 일상을 응원하는

팬과 아티스트의 연대는 마음을 따뜻하게 했고


덕질을 통해 '좋아해도 되는 나'를 받아들이고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나가는 과정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삶을 견디게 하고,

자아를 성장시키며, 세계를 넓혀주는지를

보여주는 철학적인 접근이라 할 수 있겠다.


마냥 부정적이고 철없는 행동처럼 보이는 덕질을 통해

'나도 뭔가를 좋아해도 괜찮다'는 위로,

덕후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는 문장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 덕질을 하고 있기에

누구보다 작가의 '좋아하는 마음'에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밤을 새우도록 좋아하는 마음을 읊을 수 있는

그 어마어마한 사랑은 해보지 않으면 모를 터.


누군가에게는 꽤 유난스러운 취미로 보이겠지만

덕질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지친 일상에 숨을 불어넣는 감정의 에너지이자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나침반이 될 수 있음을,

때로 좋아하는 대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존재의 이유가 생긴다는 메시지가

'내 사랑은 부끄러운 게 아니야' 생각하게 만들었고


덕질을 통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는 작가의 담담한 고백을 통해

타인의 시선보다 내 감정을 존중하는 법,

'좋아해도 되는 나'를 받아들임으로써

자기수용과 자기애로 이어지는

긍정적인 효과를 깨달을 수도 있었다.


덕질을 통해 포토샵을 독학으로 익히고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던 나처럼,

좋아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몰입이

기술 습득이나 언어 학습, 창작 활동으로 이어지며

나를 성장시킨다는 것은 나 역시 실감한 일이기에

많은 공감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감정은,

그게 이성애적인 사랑이 아니더라도

그 사람의 세계를 이해하고

그 세계를 통해 나의 시야도 넓어지게 한다.

그렇기에 덕질 역시도 타인을 향한 깊은 공감과

연대의 감정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냥 수줍은 덕후로 내 감정을 드러내는 게 부끄럽고,

'덕질은 인생의 낭비'라는 인식이 여전히 많지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그것을 삶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덕질은

어쩌면 무엇보다 건강한 마음이라는 생각이다.


문장들을 따라 나의 덕질을 되짚어보니

덕분에 이만큼 세계가 커지고

성장하는 발걸음을 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 '덕질'은 그만해야 하나 싶었는데

이렇게 누군가를 애정하는 마음을 발판 삼아

또 한걸음 나아갈 수 있다 생각하니

앞으로 내 사랑에 더 용기를 내야겠다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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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여름 - 내가 그리워한 건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나였다 아무튼 시리즈 30
김신회 지음 / 제철소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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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입추와 말복이 이미 지났음에도,

제아무리 기승을 부리는 더위라도

‘처서 매직’은 다가온다고 했는데

8월 말이 다가와도 기세등등한 여름은

견딜 수 없이 힘든 계절이다.


겨울 태생이라 그런가 유독 여름이 힘들다.

겨울의 찬 공기는 반짝 정신을 차리게 하지만,

찜통 안의 만두처럼 축 늘어지는 몸과

뜨거운 열기 앞에 희미해지는 정신은

여름을 도무지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릴 적 누군가 좋아하는 계절을 물었을 때

나는 여름과 겨울을 함께 손꼽았다.

째질 듯 뜨거운 햇빛도 좋았고,

물놀이며 여름휴가, 방학 같은

도파민이 터지는 다채로운 매일이

비로소 살아 있다는 생동감을 느끼게 했기에

고민할 것도 없는 즐거움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갈수록

흐르는 땀에 지워지는 화장,

꿉꿉한 옷과 신경 쓰이는 체취는

여름을 어떻게 바라보아도

사랑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름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계절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신기하기도 하고 내심 궁금한 마음에

여름을 사랑하고 늘 그리워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서 이 책을 펼쳤다.


이 책은 김신회 작가가

여름이라는 계절에 품은 애정을

유쾌하고 따뜻하게 풀어낸 에세이다.

휴가, 수영, 낮술, 머슬 셔츠, 전 애인 등

여름을 상징하는 다양한 소재에 담긴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여름의 감각과 기억이 자연스레 되살아난다.


단순한 계절을 넘어 삶의 한 조각으로

여름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여름에 대한 애호의 이유를 글로 풀어내며

잊고 있던 여름의 감성을 되찾게 했다.

흑역사와 설렘이 뒤섞인 각각의 순간들은

결국 여름을 아끼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작가가 여름에 보내는 러브레터처럼 느껴졌다.


책은 발리에서의 짧은 연애를 시작으로

전 애인과의 기억 같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되짚으며

독자들을 추억의 여름으로 초대한다.

초당옥수수의 단맛, 편의점 맥주 한 캔,

샤인머스캣의 사치스러운 달콤함처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여름의 순간들을 이어가며

계절이 주는 감각과 감정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머슬 셔츠를 입는 자유, 수영에 대한 갈망과 좌절,

호캉스의 평화까지 작가의 여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일상의 틈에서 반짝이는

여름의 매력을 길어올릴 수 있었다.

괌과 치앙마이에서의 여행, 낮술의 해방감처럼

특별한 사건 없이도 여름을 사랑할 수 있다는

작가의 고백은 계절을 향한 애정이

결국 삶을 향한 애정임을 말해주며 책은 마무리된다.


여름을 썩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책의 문장들을 읽다 보니

여름이라는 계절이 단순히 덥고 지치는 시간이 아니라

나에게도 기억과 감정이 녹아 있는

풍부한 감각의 공간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작가가 길어올린 여름 속 반짝이는 순간들이

나의 기억 한편에도 자리하고 있음을,

또 나에게도 와닿는 즐거움임을 인식하며

그 의미를 흘려보내며 놓치고 있었지만

여름을 애정하는 작가의 시선을 통해

삶의 작은 순간들을 사랑하는 방법을

깨우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여름을 사랑하지만 여전히 수영은 하지 못하고,

때로는 지우고 싶은 흑역사인

열병 같은 사랑을 앓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여름을 좋아하는 마음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작가의 태도에서

‘여름은 별로’라고 생각했던 내 취향에도

사실은 애정의 포인트가 있었음을,

또 일상의 모든 순간들 속에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작가는 계절을 사랑하는 일은

곧 나를 사랑하는 일이라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계절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이 계절 속에서

온전히 행복을 찾고, 때로 기쁘고 슬퍼하며

매일의 의미를 충분히 느끼는 가운데

‘나를 사랑하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듯


나 역시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 마음과 취향을 들여다보면서

좋아하는 것을 통해 나를 이해하고

어떻게 돌볼지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든다.


책을 읽는 동안에도,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여전히 불볕 같은 더위는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여름을 이만큼 사랑하고

그 안에 담긴 즐거움을 오롯이 만끽할 줄 아는

작가의 여름 예찬가를 듣고 나니

밉기만 했던,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했던 여름을

조금은 다른 마음으로 보낼 수 있을 듯하다.


여름이 늘 버겁게 느껴졌던 사람,

한때는 좋아했지만 지금은 그 감정을 잊고 지내는 사람,

혹은 계절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 속 여름의 반짝이는 순간들이

조금은 다르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여름을 사랑하는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를 향한 따뜻한 시선에 닿아 있는

자신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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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형의 삶 (양장) - 김민철 파리 산문집
김민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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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에

번아웃을 느끼고 퇴사를 결정한 뒤,

약간은 충동적인 계획으로 해외여행을 떠났었다.


한바탕 열병을 앓고 난 이후처럼

몸도 마음도 둥 떠난 시기의 여행이라

유독 좋게 느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여행지로 찾았던 그 나라와 도시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따스하고 좋았던 추억으로 남아

언제 찾아도 여전히 나를 위로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했다.


광고대행사의 카피라이터이자

이 책 《무정형의 삶》을 쓴 작가 김민철에게

프랑스 파리가 그런 도시라고 한다.


갓 스무 살이 되어 찾았던

퐁피두 센터 도서관에서 파리에 대한 사랑이 싹텄고,

그렇게 첫눈에 반한 이후에는

좋은 날, 좋은 나의 모습으로

이곳에 다시 돌아올 거라는 다짐으로

사랑의 열병을 내내 앓았다고 했다.


그 꿈을 이루기까지 걸린 시간은 20년.

회사를 퇴사하고 나서야 다시 찾게 된

그녀의 파리 생활기는

같은 경험이 있었던 나였기에

더 설레는 마음으로 오랜 추억을 되짚으며

책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이 여행의 시작은 작가의 퇴사에서 비롯된다.

안정적인 직장을 떠나

오랜 꿈이었던 파리에서의 삶을 실현하는 데

마냥 즐거움과 설렘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는 게 맞나,

지금 시기에 이 여행이 맞나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삶의 형태를 미리 살아보는

실험이자 도전으로서 용기 있는 결정을 내린

그녀의 마음에 어느새 응원의 마음이 가득해졌다.


쫓기듯 조급한 마음으로 여행하던 과거와 달리

그녀는 좋아하는 미술관을 찾아 오래 머물고,

동네에서 치즈와 와인을 사고,

작은 빵집에서 오늘 먹을 빵을 사는 등

쫓기지 않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처음에는 혼자서,

그리고 오랜 친구, 회사 동기와 함께하는 여행은

그녀를 각기 다른 세계로 이끌어주었다.


삶의 작은 순간들이 주는 즐거움과 소중함은 물론

내가 좋아하는 것 앞에서 당당해질 용기를,

그리고 좋아하는 것들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실감할 수 있었다.


계획을 세우는 여행이 아니라

정해진 틀 없이 감정과 우연에 따라 살아보는 것.

늘 계획을 세워둬야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 그녀가

그런 부담을 내려놓고 자유롭고 유연하게

일상으로서 파리를 경험하는 과정은

정형화된 삶에서 벗어난 '무정형의 삶'이 주는

새로운 행복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했다.


관광지가 아닌 '우리 동네'에서의 삶을 통해

파리의 맨얼굴과 마주하며

기존에 사랑하던 도시의 새로운 면면을 깨닫고

이 안에서 자신만의 취향과 낭만을 되찾는 여유는

약간의 불안감을 갖고 시작한 여행이지만

그 안에서도 자신을 위한 선택으로

인생을 풍성하게 만드는

'삶의 선을 넘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먼 미래를 위해 지금을 희생하지 않고

오늘을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갈 때

그런 매일이 쌓여

결국 원하는 인생이 된다는 믿음으로

오늘의 반짝임을 붙잡는 삶은,

마냥 '나중에'로 행복을 미루던 지금의 마음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 역시 일상에서도 여행에서도 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움직여야 비로소 만족하는 사람이었다.

계획 없이 움직이는 것은 때로 게으르며,

방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작가의 '무정형'으로 채워진 두 달의 시간을 보며

즉흥적이고 감각적인 일상이 가져오는 해방감이

얼마나 쾌감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또 이 시간들이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삶의 방향을 재정립하도록 도와준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익숙한 환경을 떠난 낯선 도시에서의 삶은

당연히 불안감을 가져오기도 하고,

이따금 느껴지는 외로움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그런 고독의 시간 속에서

작가는 자기 자신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갔고,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는 통찰 아래

스스로를 더 성장시켰다.


그녀의 여행을 따라가다 보니

틀에 얽매이지 않는 삶도 충분히 괜찮다고,

사회가 규정한 혹은 타인의 삶에 발맞춘 정답 대신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보자는 용기가 생긴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그녀의 삶은

이전과 확연하게 달라졌다.

그동안은 언제나 꿈꾸던 도시인 파리에

다시 가고 싶다는 것이 전부였다면,

이제는 파리가 아니어도

어디서든 자신이 원하는 형태대로

'무정형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고 말이다.


여행을 떠나야 비로소 자유를 찾고,

그 안에서 잠시 행복을 누리다가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녀의 파리 생활기를 통해

내가 꿈꾸는 나만의 '좋음'은 무엇인지,

그리고 여행이 아닌 일상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중심에 두고 살아간다면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고,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삶의 형태를

빚어낼 수 있다는 기대감은

앞으로의 매일을 조금 더 긍정하게 만들어 주었다.


반복되는 매일에 지친 사람에게,

어디론가 도피하듯 떠나고 싶은 사람에게,

삶의 방향을 재정비하거나

나만의 리듬을 찾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은 큰 울림을 줄 것이다.


삶을 새로이 감각하고

회복해가는 과정을 담은 이 기록은,

나답게 살고 싶은 누구에게나

삶의 실마리를 찾게 하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퇴사나 여행이 아니더라도,

일상 속에서 ‘나답게 사는 법’을

고민하고 싶다면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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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 - 낯선 경험으로 힘차게 향하는 지금 이 순간
조승리 지음 / 세미콜론 / 2025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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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해외여행을 갔던 때가 생각난다.

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코 끝에 느껴지던

이색적인 향신료 냄새,

피부에 와닿는 공기의 색다른 습도는

마치 다른 세계로 뚝 떨어진 듯 생경하기만 했다.


평생을 나고 자라오는 동안 보지 못했던

독특한 생김새의 나무와 풀,

그리고 다른 피부색과 외모를 가진 사람들 속에

나만 이방인처럼 겉도는 느낌은

두렵고 낯설면서도

모든 게 궁금하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마음이 한 뼘쯤 자란 것만 같았다.

그동안 내가 살아오며 바라보던 풍경이

이 세상의 전부이자 기본값처럼 느껴졌는데,

꽤 살아봤으니까 웬만큼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지구가 새로운 지각변동을 일으킨 것 같달까.


이토록 낯선 경험 속에 부러 나를 떨어뜨려

익숙한 일상과 분리되는 '여행'이라는 경험은

사람을 꽤나 성장시키고 무언가를 깨닫게 한다.


이질적인 것을 보고, 듣고, 맛보고, 만지며

앞으로 더 다양한 세상 속으로

나를 데리고 가고 싶다는 생각에

'여행'이 주는 큰 가르침이었다.


하지만 만약, 내가 앞을 볼 수 없다면

이런 여행에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싶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좋은 여행지도

즐거움이 느껴지지 않을 것 같은데

보이지 않는다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낯선 경험 속으로 용기 있게 뛰어들어가

삶을 최대치로 느끼는 경험을 선택한

한 시각장애인이 있다.


파격적인 제목의 전작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의 작가

조승리가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10대에 시력을 잃고 전맹이 된 후,

안마사로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고

어느 정도 이 생활에 안정을 누리게 되었지만

어느 날 문득 그 생활에서 공허함과

알 수 없는 허기, 허탈함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우뚝 비행기를 타고

먼 세상을 향해 떠나게 되었다.


베트남 나트랑과 하노이,

말레이시아 페낭, 일본 도쿄,

홍콩 마카오와 필리핀 클라크, 백두산 천지 등

전 세계의 다양한 여행지에서의 경험,

그리고 예술과 직업 일상 속에서

다양한 시도를 통해 본인의 감각을 탐색한

그 열정의 발걸음을 담아낸

이 작품 《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이다.


눈이 보이지는 않지만

보이지 않는 이들 나름의 방식으로 풍광을 감상하고,

자신이 듣고 맡고, 맛보고 만진 모든 것을

상상하고 머릿속에서 다시 그려내며

그녀가 써낸 문장들을 통해

보이지 않는 눈으로 바라본 세상의

새로운 면을 만날 수 있었다.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세상이 너무도 보고 싶어서〉에서는

시각장애를 겪는 작가가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백두산 등

다양한 장소로의 여행기를 통해

세상을 감각적으로 경험하고자 하는

그녀의 열망을 엿볼 수 있었다.


물론 여행이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익숙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시각 대신 청각, 촉각, 후각, 미각 등

자신만의 감각으로 낯선 것을 받아들이고

그 감각을 언어로 풀어내고자 하는

그녀의 용기 어린 시도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시각장애가 있음에도

여행을 통해 세상을 느끼려는 작가의 열망은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더 큰 힘임을,

그리고 경험은 감각을 통해

완성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2장 덥지도 않은데 열이 난 순간들〉에서는

플라멩고 수업, 바리스타 자격시험,

성형외과 상담, 배리어 프리 전시 관람 등

일상 속에서 낯선 활동에 도전하는

그녀의 경험을 담아냈다.


장애를 이유로 포기하지 않고,

춤을 추고 커피를 만들며 외모에 대한 고민으로

성형외과를 찾기도 하며

작가는 몸으로 삶을 배우고 표현한다.


장애가 있어도 예술과 직업,

자기표현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은

살아 있기에 느낄 수 있는 감각에 최선을 다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주체성과 노력을 보여준다.


〈3장 우리는 어떻게든 살고, 살아갈 것이다〉는

장애인 콜택시, 가족과의 갈등, 사회적 편견 등

작가가 마주한 현실적인 문제,

사람들과의 관계나 내면의 갈등과 성장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콜택시 대기가

90명이 넘어갔던 날의 기록이나

마사지숍을 찾은 손님들과의 대화,

가족과의 갈등 등 일상 속에서 느낀

불편함과 감정의 진폭을 생생하게 담아냈는데


유머와 냉소, 따뜻함이 공존하는 문체는

무거운 현실을 유쾌하게 풀어내며

장애 유무를 떠나 누구에게나

불완전한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

그리고 그 안에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 용기를 가르쳐 줬다.


마지막 에필로그를 통해서는

책의 제목이기도 한 검은 불꽃,

그리고 빨간 폭스바겐에 대한 에피소드가 담겼다.


시력을 잃게 된 후 소리만 들릴 뿐

그 형형색색의 불꽃을 볼 수 없어 색을 잃은 불꽃과

먹고사는 생존 앞에 어머니의 배알을 꼴리게 했던

빨간 폭스바겐 자동차는

감각의 상실, 기억의 힘을 상징한다.


시각이 사라져도

감정과 기억은 여전히 선명히 남아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무엇으로 세상을 느끼는가 하는

깊이 있는 질문을 마음속에 던지게 한다.


'과연 보이지 않는 여행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조차 그런 생각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의 여행기,

다양한 일상에서의 경험들로

세상을 새롭게 감각하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장애는 감각의 끝이 아니라

다른 감각의 시작임을,


삶은 누구에게나 불편하고 복잡하지만

그 안에서도 똑같이 울고 웃으며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는

어떻게 더 깊이 느끼고 살아갈 것인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뜨거운 메시지가 남았다.


감각을 통해 삶을 최대치로 느끼려는

작가의 여정은 장애인의 이야기를 넘어

감각과 감정으로 삶을 껴안는 방식을 보여주며

보이지 않는 세계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을 낯설고

또 아름답게 다시 보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엇비슷하게 반복되는 하루에

일상이 무뎌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삶의 감각을 되찾아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싶은 사람에게

장애가 있어도 하고 싶은 건 한다는

조승리의 태도가 큰 용기를 주리라 생각한다.


삶을 더 깊이 느끼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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