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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여름 - 내가 그리워한 건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나였다 ㅣ 아무튼 시리즈 30
김신회 지음 / 제철소 / 2025년 7월
평점 :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입추와 말복이 이미 지났음에도,
제아무리 기승을 부리는 더위라도
‘처서 매직’은 다가온다고 했는데
8월 말이 다가와도 기세등등한 여름은
견딜 수 없이 힘든 계절이다.
겨울 태생이라 그런가 유독 여름이 힘들다.
겨울의 찬 공기는 반짝 정신을 차리게 하지만,
찜통 안의 만두처럼 축 늘어지는 몸과
뜨거운 열기 앞에 희미해지는 정신은
여름을 도무지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릴 적 누군가 좋아하는 계절을 물었을 때
나는 여름과 겨울을 함께 손꼽았다.
째질 듯 뜨거운 햇빛도 좋았고,
물놀이며 여름휴가, 방학 같은
도파민이 터지는 다채로운 매일이
비로소 살아 있다는 생동감을 느끼게 했기에
고민할 것도 없는 즐거움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갈수록
흐르는 땀에 지워지는 화장,
꿉꿉한 옷과 신경 쓰이는 체취는
여름을 어떻게 바라보아도
사랑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름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계절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신기하기도 하고 내심 궁금한 마음에
여름을 사랑하고 늘 그리워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서 이 책을 펼쳤다.
이 책은 김신회 작가가
여름이라는 계절에 품은 애정을
유쾌하고 따뜻하게 풀어낸 에세이다.
휴가, 수영, 낮술, 머슬 셔츠, 전 애인 등
여름을 상징하는 다양한 소재에 담긴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여름의 감각과 기억이 자연스레 되살아난다.
단순한 계절을 넘어 삶의 한 조각으로
여름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여름에 대한 애호의 이유를 글로 풀어내며
잊고 있던 여름의 감성을 되찾게 했다.
흑역사와 설렘이 뒤섞인 각각의 순간들은
결국 여름을 아끼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작가가 여름에 보내는 러브레터처럼 느껴졌다.
책은 발리에서의 짧은 연애를 시작으로
전 애인과의 기억 같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되짚으며
독자들을 추억의 여름으로 초대한다.
초당옥수수의 단맛, 편의점 맥주 한 캔,
샤인머스캣의 사치스러운 달콤함처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여름의 순간들을 이어가며
계절이 주는 감각과 감정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머슬 셔츠를 입는 자유, 수영에 대한 갈망과 좌절,
호캉스의 평화까지 작가의 여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일상의 틈에서 반짝이는
여름의 매력을 길어올릴 수 있었다.
괌과 치앙마이에서의 여행, 낮술의 해방감처럼
특별한 사건 없이도 여름을 사랑할 수 있다는
작가의 고백은 계절을 향한 애정이
결국 삶을 향한 애정임을 말해주며 책은 마무리된다.
여름을 썩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책의 문장들을 읽다 보니
여름이라는 계절이 단순히 덥고 지치는 시간이 아니라
나에게도 기억과 감정이 녹아 있는
풍부한 감각의 공간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작가가 길어올린 여름 속 반짝이는 순간들이
나의 기억 한편에도 자리하고 있음을,
또 나에게도 와닿는 즐거움임을 인식하며
그 의미를 흘려보내며 놓치고 있었지만
여름을 애정하는 작가의 시선을 통해
삶의 작은 순간들을 사랑하는 방법을
깨우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여름을 사랑하지만 여전히 수영은 하지 못하고,
때로는 지우고 싶은 흑역사인
열병 같은 사랑을 앓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여름을 좋아하는 마음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작가의 태도에서
‘여름은 별로’라고 생각했던 내 취향에도
사실은 애정의 포인트가 있었음을,
또 일상의 모든 순간들 속에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작가는 계절을 사랑하는 일은
곧 나를 사랑하는 일이라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계절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이 계절 속에서
온전히 행복을 찾고, 때로 기쁘고 슬퍼하며
매일의 의미를 충분히 느끼는 가운데
‘나를 사랑하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듯
나 역시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 마음과 취향을 들여다보면서
좋아하는 것을 통해 나를 이해하고
어떻게 돌볼지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든다.
책을 읽는 동안에도,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여전히 불볕 같은 더위는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여름을 이만큼 사랑하고
그 안에 담긴 즐거움을 오롯이 만끽할 줄 아는
작가의 여름 예찬가를 듣고 나니
밉기만 했던,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했던 여름을
조금은 다른 마음으로 보낼 수 있을 듯하다.
여름이 늘 버겁게 느껴졌던 사람,
한때는 좋아했지만 지금은 그 감정을 잊고 지내는 사람,
혹은 계절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 속 여름의 반짝이는 순간들이
조금은 다르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여름을 사랑하는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를 향한 따뜻한 시선에 닿아 있는
자신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