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도 가까이도 느긋한 여행
마스다 미리 지음, 이소담 옮김 / 북포레스트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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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게 되면 마음 한편에

어쩐지 작은 의무감이 생긴다.

이왕에 시간을 내고 비용을 들여 온 김에

이 여행지의 이름난 것들을

모두 만끽하고 누려야 할 것만 같은 기분.


그래서 여행을 준비할 때면

잔뜩 계획을 세워 놓기도 하고,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동그랗게 눈을 크게 뜨곤

유명한 풍경이며 관광 스폿을 부지런히 돈다.


그 계획들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면

망쳤다는 기분이 들어

오롯이 여행을 만끽하지 못하기도 하고,

계획대로 다 실행한 여행에서는

'비로소 제대로 된 여행을 했다'는

만족감이 샘솟기도 한다.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마음이 이끄는 대로 돌아보지 않고

'어느 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에

바삐 종종거린 기억으로 인해

'그때 내 기분이 어땠더라' 되짚어보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고 백지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마다 천천히 느긋하게 돌아봤더라면

이 여행이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반짝거리는

작은 순간들을 발견할 줄 아는

따스한 시선을 가진 작가 마스다 미리,

자신만의 속도로 즐긴 여행기를 담은 이 책

《멀리도 가까이도 느긋한 여행》을 통해

강박에서 벗어나 느긋하고 자유롭게 떠나는

여행의 즐거움을 담담하고 따뜻하게 풀어내었다.


마스다 미리 특유의 섬세한 시선과

유머가 녹아든 여행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이렇게 여행하고 싶다'는 동경의 마음,

그리고 잔잔한 위로와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가까운 여행지라면 몰라도

기껏 마음을 먹은 해외여행에서도

본전을 생각하면 느긋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나가노, 시즈오카, 아오모리, 도쿄, 오사카 등

국내의 다양한 여행지는 물론

폴란드, 스위스 등 평생에 한번 가볼까 싶은

여행지에서도 자신만의 속도로

여유롭게 걷고 먹고 쉬면서도

그곳의 정취와 풍경을 만끽하는 그녀의 모습은

'속도 중심의 여행이 정답은 아니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여행을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일상의 연장선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시간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때로는 익숙한 장소를 다시 찾고,

또 새로운 곳에서 소소한 발견을 하는 등

여행을 대하는 '태도'에서

신선한 자극을 받을 수 있었다.


여행을 하며 만난 다양한 음식, 그곳의 풍경,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짧은 교류가

따뜻하게 묘사된 문장과 그림들은

여행의 감동이 거창한 것에서 오는 게 아니라

작은 순간들 속에 있다는 단단한 메시지를 전한다.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

찍은 사진들을 더한 이 책의 문장들은

딱 '마스다 미리 답다'는 감성이 담긴 기록으로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천천히 같은 곳을

여행해 보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빠르게 많은 것을 소비하는 것이

'여행의 질'을 결정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여행을 '쉼과 회복의 시간이자

나를 돌보는 방식'으로서 마주한

작가의 여행기는

앞으로의 여행에 있어 '나만의 속도'를

최우선으로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했다.


익숙한 곳에서 느끼는 편안함,

낯선 새로운 곳에서 느끼는 설렘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여행의 즐거움은

어떤 여행도 시시한 여행은 없으며,

분명히 무언가로 가득 채워진다는 문장을 통해

여행에 대한 부담감,

숙제처럼 '모든 것을 만끽해야 한다'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소소하게는 호텔 뷔페에서 만난

초콜릿을 야금야금 먹으며

'녹아서 사라지는 건 0칼로리'라며

작고 사적인 행복을 만끽하거나


어린 시절 동경했던 하이디의 나라에

큰맘 먹고 방문하지만,

꼭대기까지 오르지 않고도

조금만 오르는 하이킹에서도

'적당한 코스라서 좋다'는 작가의 모습은


단순한 여행 기록을 넘어

자신을 돌보고 삶을 음미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문장이기도 했고,

여행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책 속의 문장을 따라 세계 곳곳,

일본의 작은 소도시를 여행하다 보니

인생뿐 만 아니라 여행 역시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는 생각이 든다.


빠르게 많은 것을 보는 여행도 물론 좋겠지만

나만의 속도로 느긋하게 걷고 쉬는 여행,

무리하지 않고 나를 존중하는 여행 방식

더 깊은 만족을 준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기분 전환에는 여행이 최고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내면의 회복을 의미하고 있기에

조급하지 않고 내 마음의 즐거움을 최우선으로

나를 더 잘 이해하는 여행을 해야겠다는 다짐이다.


그녀의 여행기를 통해

앞으로 어떤 여행을 할 것인가의 결심이 달라지니

훌쩍 더 어디론가 떠나보고 싶은 마음이다.

느긋하게 나만의 속도로 걷는 여행에서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을 길어올리게 될지

기대감이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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