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최후 기도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 지음, 문재상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성가이며 신비가인 작가가 가상칠언 안에서 바라본 교회안의 칠성사를 묵상한 거룩한 영적 깨달음을 아름답게 전달하고 있는 아드리엔펀 슈파이어의 책입니다.

지난번 가상칠언에 대한 묵상글과 더불어 오늘은 칠성사와 이어가며 책에 대해 이야기 해 봅니다.

​'세례성사'는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례성사로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어 하느님의 백성이 되며,

모든 죄를 용서받고 악의 권세에서 벗어나 물과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나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갈 은총을 받습니다.

'견진성사'는 세례 때 받은 은총을 굳건히 하고 성령 특은의 인호를 통해 더욱 완전히 주님을 닮고

신앙의 도우심으로 신앙을 선포할 힘과 은총을 베풀어 줍니다.

'성체성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써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여

거룩한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마련하신 영적인 양식입니다.

이 세례, 견진, 성체성사는 교회의 시작부터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기 위하여 받는

하나의 연속적인 예식을 통해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 세가지 성사를 교회의 입문 성사라 부릅니다.

일곱 가지 성사 중 신앙의 삶 속에서 우리의 아픔을 어루만지시고 새롭게 해주시는

'치유의 성사'들이 있습니다.

'고해성사'는 우리의 나약함으로 인하여 지은 죄로 멀어진 하느님과 이웃과의

상처 입은 관계를 회복시키고 '병자성사'는 병고로 시달리는 육신과 영혼을 치유하시고 새로운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십니다.

공동체를 위해 특별한 사명을 맡기시고 이에 필요한 은총을 베푸는

친교와 봉사를 위한 성사들이 있습니다.

'혼인성사'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과 친교를 부부의 사랑과 성가정을 통해 드러낼 수 있도록

은총을 부어줍니다. '성품성사'는 그리스도를 대리하여 하느님과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는 은총입니다.

'성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그리스도를 제정하신 은총 자체입니다.

우리가 이 소중한 성사를 기억한다면, 성사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출처 입력

이 7가지 성사들은 지금 우리에게 이어져 교회 안에서 이뤄지는 하느님의 은총들이지요, 이제 이 성사들이

가상칠언과 어떻게 이어져 나가는지 책에 대해 기록해 봅니다.

얇은 한권으로 만나는 가상칠언 과 칠성사의 만남ㅡ 십자가에 매달리신 채 남기신 예수님 마지막 말씀이 어떻게 전승되어 지금 교회안 우리에게

현재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작가는 가상칠언에 대해 언급하며 성사에 대해 알려주고 있지요.

이 책을 통해 /주님의 죽음은 더이상 나와 관계 없는 '타인의 죽음'으로 머무르지 않으며 , 그 십자가 죽음이 고 나의 일부가 되고, 내가 속한 교회의 일부임을 / 느끼게 됩니다.

글의 서장에서는 돌아가시며 남기신 말씀이 얼마만큼 지금 우리 교회안에 중요한 의미를 주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죽어가는 이의 극도의 노력으로 내뱉은 유언은 다가올 교회의 방향성이며 이 말씀이 왜 성사와 연관성 유사성을 띠는지에 대해 나옵니다.

그리고 1장 부터 7장까지 가상칠언과 더불어 이어지는 성사의 의미에 대해 영성작가 답게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답니다.

주요 내용과 기억에 남기고 싶은 문장들을 기록해 봅니다.

1장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 고해성사

저는 개인적으로 1장, 4장 장이 참 맘에 많이 다가왔습니다.

특히 고해성사와 연결된 이 죄에 대한 부분의 작가의 글을 읽으며 인간의 무모함과 무지, 나약함에 대해 돌아 봤습니다.

하느님께서 존재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관대함 없이는 멸망할 존재가 하느님을 잊고 사는 것... 그들이 잊지 않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라는 작가의 글에서 큰 공감과 함께 울림이 있었답니다.

성자께서는 그들이 모든 책임을 짊어 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씨기에 결론을 내리신다. 당신 스스로 그 책임을 짊어지시기로 말이다. 인간이 용서받기를 바라며 성장꼐서 십자가에서 드리는 첫번째 기도는 성부께로 향한다. p.25 성부 앞에서 그 죄를 짊어지심으로써 인류를 무죄하게 만드신 성자의 고백에 참여하는 성사.

2장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 병자성사

만일 인간이 무죄한 순결함 속에 머물렀더라면 세례성사가 차지했을 바로 그 자리를 병자성사가 받아 들인다. 이 성사는 순결함과 은총을 그리고 하늘에서 성부와 성령을 새롭게 만나시기위해 이제 저 끝없는 순결함 속에서 죽어 가시는 주님의 세사을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그 분의 세상을 영원히 선사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이 말은 이 죽음의 날은 사실 생명의 날인 것이다.

3장 - "여인이시어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 " 혼인성사

이 말씀을 통해 마리아와 요한 사도 두 사람의 관계는 전혀 새로운 (성사적)차원으로 넘어가게 된다. 혼인관계역시 그분의 약속 안에서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3장이 난해 앴답니다. 이 가상칠언의 3번째 말씀은 관계에 대해 예수님과 성모마리아님, 그리고 돌아가시며 어머니를 부탁 하시며 한 말씀 안의 요한과 어머니이신 교회..이런 관계들, 성사 안에 남녀의 관계성에 대해 말씀해 주고 계신데 살짝 .. 제 아둔함이 안탑깝습니다. >

4장 - "저의하느님 저의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성품성사

성자께서는 사명을 성부께 받았으며 모든 삶의 주도권을 건네드림으로써 이 사명을 넘겨받게 되셨씁니다.

p.60 그분께서는 성부께 대한 순명안에서 삶을 사셨고 무엇이 아버지의 것인지 세상에 알리며 사셨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법칙에 몸을 굽히고 그 법에 순응하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사셨다.

5장 - "목마르다." - 성체성사

빵과 포도주 의형상 안에서 누군가에게 먹힐 수 없는 모습을 지닌채 버려져 계시는 그분은 우리를 그 목마름의 잔치로 초대하고 계신다 .

고독은 하느님으로 만드는 요소에서 그분을 끄집어내어 팽개쳬쳐 버린다. 그래서 이제 목마름을 느끼신다. 육체적인 갈증,영적갈증, 현존을 향한 목마름을 느끼신다. 그분께서 최후의 만찬 때 하셨던 말씀이 여기에서 훨씬 더 중대한 의미를 갖게 된다. 그분께서는 먹으라고 주어진 빵이며 잔에 부어주신 포도주시다.

p.77 '목마르다'이 말씀은 그 상황에 주어진 그 당시의 철저한 소여성을 즉 당신께서 그 자리에 설저히 내던져지셨음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6장 -" 이제 다 이루었다." - 세례성사

주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으로 사명을 끝까지 완수하셨고 사명을 통해 얻어낸 모든 것을 교회에 주셨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그분꼐 모든 것이 닫혀 버린 그 순간 교회의 모든 것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세례성사. 죄를 대신한 예수님을 통해 모든 것이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성자꼐서 구체적으로 살아가셨던 지상의 삶을 통해 특징지어진 그런 세계다. 주님께서 걸어가셨던 그 길을 주님을 따는 그 길을 세례가 열어 준다 .

7장 -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 견진 성사

세례를 통해 들어온 우리는 마침내 견진 성사를 통해 더 하느님게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우리 모든것은 진심 의탁하고 믿는 것... 오늘 이 마지막 말씀을 통해 생각해 봅니다.십자가 주위가 어두워지기에 성령께서는 성부의 빛을 향해 돌아가신다. 타오르는 불길 안에서 영원한 생명의 불꽃을 지닌채 세상의 어둠으로 다시 돌아오기위해서 말이다. p103

이렇게 7가지 가상칠언과 연결된 성사들을 살펴 봅니다.

간략하게 좋았던 문장을 남기며 다시 보아도 또 배우고 묵상 할 것이 많아 집니다 .

성사를 받았지만 제대로 묵상하지 않았던 칠성사 그리고 항상 만나게 되는 예수님 말씀들중, 유언같은 가상칠언에 대해 이번 책을 기회로

찬찬히 공부하고 깨달아 봅니다.

제대로 된 성사의 의미도 모른체 성사를 받고 신앙생활하고 있는 제가 부끄러워지는 소중한 책이었답니다.

유명한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의 얇은 책을 통해 잊었던 부분들을 다시 마음에 품고 사순시기 보내게 되네요.

가톨릭 종교가 궁금하신 분들, 이제 세례를 받고 궁금한 것이 많은 분들, 그리고 신앙인들 안에서도

도무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거와 나랑 무슨 상환이지 ? 이러며 잘 와닿지 않는 분들,

등등에게 적극 추천하네요.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은 우리 신앙인안에 늘 기억되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이 책의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을 통해 우리의 신앙이 성사 안에 더 견고해 지며 다가갈수 있음을 또한 그리하여 예수니께서 우리 안에 지금 살아 계심을 느끼게 될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총은 교회로 흐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겨진 단 하나, 사랑 발타사르 신학 시리즈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지음, 김혁태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남겨진 단 하나 , 사랑 -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 오직 사랑만이 믿을 수 있다 - Glaubhaft ist nur liebe )

어제 도착한 올해 첫번째 가톨릭 출판사 에서 보내주신 감사한

'남겨진 단 하나, 사랑' -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예수회 신부님의 책을

읽어 봅니다. 어제 오자마자 카페에 가서 조용히 읽기 시작, 어려울 줄 예상은 했기에 모르는 부분은 찾아가며 차분히 다 읽어 봅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게 몰입되어 읽어진 책, 사랑이 온몸에 흘러 내리는 듯한 코끗 시린 따듯함을 느끼며 책에 감전당하는 시간.

눈오늘 날 찬란한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 그 은총에 대한 총체적인 글을 통해 거룩해 지는 시간이었어요. 그러나

당연히 한번 읽는다고 이해 되는 그런 책이 아니어서 이제 시작인 마음으로 찬찬 읽으려 합니다.

'성경이나 그 일부를 이해하였다고 생각하면서도 , 자기 지성안에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이중 사랑을 세우지 못하는 이는 누구나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 아우구스티누스 -

'조금이라도 사랑으로 나아가지 않는모든 것은 비유다. 사랑이 성경의 유일한 주제다.'- 블레즈 파스칼 -

책 을 펼치자 마자 나오는 이 문장들을 통해 이 책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알듯하죠?! 사랑을 만나리라는 그 기쁨으로 읽기 시작합니다.

전체적인 개인적 소감은 일반적인 교우분들 (저를 포함한) 에게는 어려운 책일듯합니다.

보통 철학을 전공하거나 신학, 미학 이런 분야에 대해 관심이 전혀 없으시다면 1장부터 난관에 부딪치게 됩니다.

1장 2장 에서는 주로 지금까지 철학사와 신학사 안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 존재에 대해 설명해주려고 했는지에 대해 나오기 때문에 철학의 흐름 또 여기 거론되는 많은 철학자들의 이론에 대해 알지 못하면 참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가득하죠.

그러나 ! 1,2 장을 차분히 읽고 '아 철학자들은, 그리고 신학자들, 옛 사람들은 하느님을 이렇게 알려 했구나, 시대에 따라 계몽과 인본주의가 도래하며 어떻게 관점이 변화 하고 교회의 부패 시기를 통해 또 어떤 국면을 맞았는지, 아 그랬군' 그러며 읽고 지나가시면

3장부터는 아주 흥미롭게 결국 이 위대한 예수회의 발타사르 신부님께서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어떻게 전하고 있는지 서서히 이해되고 전달 받아지는 듯 합니다.

인간을 위해 하느님께서 자신을 해석해 주고 계신 책.

어려움에도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미학적으로 표현되어져 결국엔 아무도 정의내릴 수 없는 것에 대해

그나마의 형태, 형상을 우리에게 만들어 주는 책인듯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거의 모든 이들이 '사랑이 무엇일까' 정의내리려고 하며, 또한 우리 스스로도 '사랑'이 궁금하고 , 많은 사람들이 삶안에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 말하는 그 이유를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 이 책은 그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형이상학적으로 말하는 듯 하지만 마침내 납득이 가고 이해가 되는 지경으로 사랑에 대해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 본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의 사랑에 대한 형상의 크기가 달라지고, 사랑에 대한 의미의 범위, 타인을 바라보는, 사람의 거룩함을 인식하는 부분이 달라지지 않을까 합니다. 신앙적 감수성을 확장하고 싶은 분들께 너무 좋은 책일 듯합니다.

각 장의 남기고 싶은 문장 요약 입니다.

1장. 우주론적 환원

하느님의 대한 설명이 우주론적 방법으로 가능했던 이유,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의 관점이 나옵니다.

p31. 신성으로 가득한 고대의 세계상은 모두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유래하든 스토아주의나 플로티노스와 프로글래로스에게서 유래하든, 신과 관련된 일정한 관념을 품고 있다. 그리고 이에 따르면 세계가 신성하다. 형식상으로는 여기에 그저 중심이 빠져 있을 뿐이다. 이 중심이 스스로 들어와 자리를 잡자 , 우주의 사랑의 힘들이 하느님의 사랑(아가페) 안에서 넘치도록 충만해진 것으로 드러났다.

p33. 말하자면 계속 그런식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합의는 다만 하느님의 존재는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과 그분은 늘 더 크신 분이라는 것이 공통의 토대로 인정되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반면에 그분 자신은 그 자체로 발설될 수 없는 부느 명명하거나 진술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초월하는 엄위하는 분이시다. *로고스* 에 대해 이해하면 좋을 1장

2장. 인간학적 환원

이 인간학적 환원은 특히 근대와 계몽주의 이래로 "인간에게 다가오는 계시를 이성의 척도로 측정하는 것'을 전면으로 내세운다. 이 길은 칸트에서 정점에... <....>

p. 53 인간은 하느님의 파트너이며, 둘 사이의 대화는 하느님께서 몸소 사람이 되시는 데서 정점에 이른다. .... 인간 본성을 측정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스도교 였다. p.55 존로크에 따르면 인간에게 다가오는 계시를 이성의 척도로 측정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의무다.

2장에서는 p.56-57 칸트에게서 인간학적 환원이 정점에 도달한다~~이해 되는 많은 하느님의 정의들. 사랑에 대한 .

'하느님께서 '영'으로 오실때 그분은 오로지 당신의 타자성을 그러니까 위와밖, 타자로부터 오는 당신 말씀을 확증하고 빛나게 하고 친밀하게 하기 위해 오신다.'

하느님께서 구약 안에 드러내신 사랑을 지나, 우리 인간의 모습으로 스스로 다가오심 신약으로 이어진 사랑의 절정에 대해 설명해 주는 부분들도 참 흥미롭습니다.

3장. 사랑의 제 3의길

이 로고스의 근본 언어가 사랑이라는 점에서 이 로고스는 다른 모든 종교와 철학이 말하는 지혜나 이성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사랑의 신빙성은 인간이 이미 늘 사랑이라고 알고 있던 것으로의 그 어떤 비슷한 환원을 통해서도 밝혀 질 수 없다.

p.91 에서 발타사르는 하느님의 사랑의 모습과 그것에 대한 인간의 응답에 대해 말합니다.

4장. 사랑의 실패

부정신학으로서의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언급들. 하느님의 계약이 죄인인 인간과 하느님이 함께하는 사랑싸움이기 때문이어서 인간에 의해 이 사랑싸움이 이해되고 측량 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정말로 진지 하다면 하느님을 세계 존재와는 전혀 다른 분으로서만 '생각만'할 수 있다 .

*부정신학*에 대해 검색해 보고 이해하고 읽으면 좋을 4장.

5장.감지될 수 있는 사랑

당신이 사랑을 계시하고자 하신다면 , 세상역시 그 사랑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p. 125 장 얼굴에서 존재의 심연이 우리에게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가만히 웃는다. 우리는 하느님의 피조물이고 이 점에서 사랑의 씨앗이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다. 그러나 아이가 사랑받지 않으면 사랑을 향해 깨어날 수 없듯이 하느님의 은총이 자유로이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는 한 그 어떤 인간의 마음도 하느님 이해에 눈을 뜰 수 없다. 물론 하느님의 은총은 그 아드님의 모상안에서 빛을 발한다.

p. 참으로 하느님의 행동에는 피조물편에서 이를 발생하게 하는 근원적 응답 (피앗, fiat)이 상응해야 한다.

6장, 계시로서의 사랑

이 약함과 어리석음이야 말로 절대적 사랑의 기능이나, 바로 그렇게 하느님의 약함과 어리석음이" 사랑보다 더 지혜롭고" "사람보다 더 강하다.

그분의 가르침에 담긴 로고스와 논리학은 이 헌신의 죽음으로부터 생겨난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죽음에서 자유롭게 되었다. 사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 안에 가드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기 위함이다. (로마 11, 32 참조)

7장. 의화이자믿음으로서의 사랑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바치신 성자의 사랑에 대한 응답니다. 물론 이 믿음에 하느님의 사랑이 늘 앞선다.

하느님을 위해 자신 안에 공간을 내주는 이 일은 자기 전결이 아니라 이미 그 자체로 순종이요 '더 위대하신 아버지'를 향한 복종이다.

p.170 이로부터 밝히 드러나는 것은 일차적으로 믿음은 우리를 넘어서는 가운데 우리보다 앞서 오는 하느님의 사랑의 불가해성을 마주해 있다는 사실이다.

8장. 행동으로서의 사랑

이는 무엇보다 절대적 사랑에 응답하기 위해 전적으로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관상의 태도다. 그러므로 '사랑에 마땅이 드려야 하는 행의 곧 경배와 현양의 행위'인 기도가 모든 것에 앞선다.

개인적으로 p.182 이 부분이 참 와닿았답니다.

이러한 기본 시각을 바탕으로 발타사르는 인가늬 사랑실천이 지닌 궁극적 의미를 밝힌다. 곧 인간의 사랑은 절대적 하느님 사랑안에서 이루어지는 타자인 동료와의 만남이고 그러므로 나는 늘 그를 이미 용서하신 하느님의 눈길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p.188 사랑 은 동료 인간과의 그러한 모든 만남이고 이 만남은 절대적 사랑안에서의 만남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대로의 하느님 사랑 안에서의 만남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p, 203그러나 한결같이 자기 자신이 중심이 아니라 오로지 사랑을 가리키는 존재들이 되려 한다.

9장. 형상으로서의 사랑

하느님의 사랑은 아름다움으로 찬란하게 드러나며 스스로 자신을 해석한다. 이 해석이 바로 발타사르의 신학적 주요 개념인 '형태'이다...

이 절대적 사랑은 응답하는 사랑에 존재와 삶의 본질적 모습을 부여한다. 말하자면 사랑이 '형상' 인 것이다. <.....>

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세례를 동해 그러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그리스도의 삶의 형상'을 입는다. 이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이 결정적 완성의 형상을 목표로 모든 것을 이끌어 간다. 사랑은 자신을 잃음으로서 모든 것을 다시 새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p.216 신앙은 자기 자신의 이성이 더 잘 안다는 모든 불만을 거슬러, 선험적으로 무한히 하느님께 모든 권리를 돌릴때만 참된 신앙의 형상을 갖는다. 계속 더듬거리를 것이야 말로 사랑의 시도다.

"사랑이 그 가장 깊은 곳에 인간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나에게보다 더 깊이 ) 사랑이 인간을 자기 몸으로 만든다."

사랑 이라는 단어에 하느님을 넣어 봅니다.. 나를 만드실때 이미 만났던 그분이 제 안에 계시고 나의 아버지시며 제 안에 사랑으로 저를 옹기장이 빚고 계심을... ^^

10장. 세상의 빛으로서의 사랑 <뜨겁게 와닿는 부분들이 참 많은 마지막 장>

하느님의 사랑은 세상의 삶의 의지와는 반대로 죽음을 향해 나간다. 그 사랑은 죽음 안에서 자신이 죽음보다 더 강함을 증명한다. 그리하여 이 사랑에는 필연적으로 십자가가 따른다. p.238-239

"자신이 원하지 않음에도 본질적으로 그래야만 하는 그곳으로 하느님 말씀이 자신을 데려간다는 것을 발견한다."

스물스물 가슴에 내려앉는 문장들과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아둔한 저에게 미약한 이해가 마지막장에 와 절정을 이루는 듯합니다.

신앙인으로 하느님의 사랑이 궁금하신분들, 하느님과 사랑하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사랑받고 사랑하고싶은 모두에게 꼭 권해주고 싶네요.

하느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지 잘 모르겠다면 지금 이 책을.

전 여러번 읽으며 주옥같은 깊이 있는 문장안에 이해 못하는 부분들에 머물러 묵상하고 천천히 또 내것으로 만들어 사랑둥이가 되보려 합니다.

뒷부분에 주석도 읽고 중간 중간 이해 안돼는 단어나 궁금한 철학, 이론들 찾아보며, 그리고 여러 교회 단어에 대해 찾아보며 읽었답니다.

훨씬 잘 읽히는 듯합니다.

어려워도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읽고자 하는 우리에게 읽고 알수 있게 해주심을 믿고 의탁하며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님·밤 - 최민순 신부 시집
최민순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믿음을 받은 신자로서, 신앙인으로서 사는 삶을 돌아 본다. 같은 사람이라고 다 같은 인생을 살 수 없고 그 살아지는 무게감과 깊이를 느끼는 것이 다르듯

신앙인이라고 해도 우리는 다 다른 체험과 신앙의 깊이를 갖고 살 수 밖에 없다.

무엇이 더 좋고 나쁘고 그런 것을 논할 수 없다. 다 다른 삶이기에.

그러나 이런 책을 통해 구체적으로 볼 수 없는 무형의 신앙 이라는 것의 형체를 느껴 볼 수 있고 그 깊이를 더해가고 믿음은 무엇이고 어디까지 어떻게 믿음을 키워 나갈 수 있는지 그 길라잡이가 되어 주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우리가 느끼는 하느님, 내가 믿고 있는 내가 사랑하는 나의 하느님,,,어디까지 당신을 느끼고 사랑할 수 있을까... 더 ,,더욱더. 끝없이 말이다. 신부님의 글을 읽고 있자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시 한 소절에.. 단어와 표현에 내가 믿는 분이 ,아 이런 분이지..우리는 이 분을 이렇게 사랑하는 거지..

아 삶이란, 생이란...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 나의 주님... 이 안의 신부님의 생의 역사를 담은 상황과 그 안에 모시는 하느님과의 관계.

주옥같은 표현들이 아름답다. 또한 사실 신부님 이라는 직분과 상관없이 이 시는 그저 한 신앙인의 사랑 고백 , 삶의 시 로 와닿는다.

옛 단어들이 종종 흐름을 막아 읽기 어려웠지만 읽다 보면 점점 그런 것이 익숙해 지고 나아진다.

그리고 감사하게 된다.

마음이 어두워진 어느 날 아무 곳을 펴 읽으면 정화가 될 듯하고

마음이 기쁜 어느 날 표시한 어느 곳을 읽으면 차분해 질 듯하다.

하느님이 누구인지 헤매 일 때 책을 펴면 그 안에서 하느님과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책은 염수정 추기경님과 정순택 대 주교님 추천사와 함께 시작되고 마지막에는 이해인 수녀님 편지와 예전 김수환 추기경님 말씀으로 마무리 되어 있다.

마지막 부분의 최민순 신부님 연보 를 읽고 시를 보는 것을 추천해 본다. 살았던 시대와 사람의 생의 과정을 조금이나마 알고 시를 따라가는 것이 도움이 된다.

목차 는 '님 과 밤' 으로 나눠 있으며

님 안에 밤, 제물, 참회로 나눠 있고 밤 안에는 창작시편, 번역시편, 십자가의 성요한, 아시시의 성프란치스코 로 나눠져 있다.

개인적으로 밤 부분이 더 잘 읽히고 와닿고 좋았다.

젯세마니의 밤

한겹을 닫습니다. 또 한겹을 닫습니다. 다 열고 기두려야 오시지 않는님, 세겹 네 겹 다섭겹 마저 문을 닫아 버립니다.

돌아 앉아서 혼자 돌아앉아서 묵묵히 있노라면 겨울처럼 벗은 영혼이 어두움 속에 흐느껴집니다.

속으로 속으로 그윽한 속으로 밤이 이슥 깊어갈수록 가난한 나의 하늘에 별하나 없고

죽도록 보고싶은 님이 그리워 외로운 한 덩어리 미치듯 몸부림칩니다.

님은 오시지 않습니다. 오실리 없습니다. 태양이 숨질 때라야 오신다던 님

한오시는 님이 보이실 수 있으리까 안오시는 님을 만져 볼 수 있으리까

옷자락만 살짝 스쳐 주셔도 그 향내에 까무러칠 목숨이건만 님의 얼굴 한번 뵈옵는 그 순산 당장 눈이 멀으리람을 모르지 않건만

아으 진정 못 살겠사옵니다. 허구한날 지루한밤 카맘한 어둠 속에 진정 안달이 나서 못 살겠사옵니다.

그러나 어찌 하오리까 님은 말씀하시었습니다 . "보지 않고 믿는 자 복된자 " 라고

"하늘과땅은 변할지라도 내 말은 변치 않으리라"고 님의 말씀이러하시니 내 어찌하리오

보지 않고 믿음이 복됨이라면 허전한 가슴 안고 이냥 살으려노니 그리움도 내일을 몸가지는 한낱 기쁨

고독이 쥐어짜는 방울방울 핏방울에 어두움이 물들고 까마득히 새벽은 멀리 있어도 나는 밤을 새우렵니다.

님하나 믿으며 믿으며 제세마니의 밤을 새우렵니다.

사노라 라는 p293 의 시가 개인적으로 가장 여운이 남는다.

한해가 지나가는 시간 님, 밤 책과 함께 대림시기 보내며 성탄을 준비하면 좋을 듯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 준비하는 고해성사
교황청 내사원 지음, 고준석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년에 꼭 해야 하는 몇번의 고해 성사, 그리고 그것을 기본으로 우리가 또 일상을 보내며 짓게 되는 여러가지 소죄와 대죄들을 하느님께 용서 받기 청하는 고해성사.... 이론보다 실제가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 처럼 우리는 삶은 계속해서 길을 찾아 떠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사를 통해 계속 앞으로 나갈 , 우리가 처음부처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신앙인으로서 어쩌면 고해성사는 가장 큰 선물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가장 크고 깊게 느낄 수 있으며 하느님의 자비를 통해 우리가 삶을 바르게 살아갈 길을 계속 만들어 주시는 가장 중요하고 큰 성사 입니다.

매일 매 순간 죄를 짓고 십겨명 뿐이 아닌, 우리의 말과 행동과 생각으로도 그리고 생각조차도 하지 못함으로 우리는 매일 죄를 짓고 있습니다.

때로 한순간에 밀려오는 많은 고백해야 하는 일들에 당혹스럽고 부끄러워지며 무서워지며

또는 죄인줄 알면서 또 반복하고 있는 스스로를 보며 한없이 나약한 나란 인간에 끊임없이 실망하고 반복된 죄의 무게에 하느님께서 도망치고 싶으며

또한 신앙을 포기하고 싶어질 때도 있씁니다. 어차피 잘못 된것들..돌이킬 수 없어... 어디까지 날 용서해 주실까... 용서를 받고 나면 나는 잘 살수 있는가...

그러고 또 난 다 잊고 또 죄를 지을 텐데... 하느님이 무서우나.. 나는 또 ...

사탄의 유혹처럼 그냥 하지 말까..어차피 또 반복되는데 그냥 다음에 ..좀 무서우니 다음에 할까....또는 아직 말할 준비가 안됐어..난 아직 마음에 준비가 ..

내 죄가 너무 커서..도무지 할 수 가 없어..그냥 좀더 시간이 지나면..

사제에게 고백하는것 너무 부끄러운데...자신이 없는데.뭐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는데... 그러나 그런 갈등의 시간, 부끄러움을 느끼며 스스로 속죄하고 통회하는 시간들이 부끄러움 또한 은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화해의 성사인 고해성사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시선을 잘 드러냅니다. 그리고 죄를 뉘우치는 이들의 삶안에서 하느님의 그 따스한 시선을 보여줍니다. p 7

하느님은 이미 모든걸 알고 계신분, 결국 우리가 갈등하고 그러는 순간부터 이미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그리고 부끄러움의 은총을 주시어 죄를 알게 하시고 고해소까지 인도해 주시려 하심,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음 안다면 조금더 고해소로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지지 않을까요.

이 책 앞부분에는 인간적으로 우리가 겪는 마음들과 그런마음 조차도 알고 계시며 그 어떤 죄도 용서해 주신다는 부분에 대해 알려주고 있답니다.

은총은 언제나 우리보다 앞서며 우리의 화해와 용서를 가져오는 자비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은총은 죄보다 더 강합니다. p 18

우리가 죄를 고백하도록 하는 마음의 변화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p 19

늘 똑같이 죄를 지르는 것을 고백하는 겸손한 이들이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삶의 여정이 오랫동안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상처가 났다고 마냥 주저앉아 있어서는 안됩니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 자비의 주님꼐서는 우리를 용서하시고 다시 일어나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p 23

그럼 어떻게 고해를 해야 할까요.

이 부분에서도 솔직함 , 어린아이처럼, 겸손하게 내 죄를 인식하며...등의 중요한 부분들이 나와 있지만 그중 또 기억해야 하는 부분은

죄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는 것 그러기에 사과가 아닌 용서를 청해야 하며, 내가 용서받기 위해 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p 33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부분이었답니다.

용서 받을 생각을 하고 내가 가벼워질 생각을 하다...나는 누군가를 용서 하고 있는지... 누군가가 나에게 잘 못을 하고 용서를 청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먼저 용서를 해줘야 하는 구나...나 역시 이렇게 큰 죄를 짓고 멀쩡히 살다 하느님께 용서 받고 싶어 하면서..나는 누군가를 용서 했는가....

고해 성사의 의미에 대해 오랫동안 묵상하게 되는 부분이었답니다.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 내가 싫어하고 나에게 죄를 짓게 하고? 나에게 피해를 주고 상처를 준 사람을 나는 일흔 일곱번 까지...즉 항상 용서하라고 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나는 실천하고 있는지. 회개, 고백 그리고 용서 라는 부분에 대해 . 고해성사는 무엇인가 .. 한없이 깊어지는 시간입니다.

고해성사는 우리가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을 하느님의 자비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음을 알려주며 또 그전과 같은 내가 아닌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나 역시 용서하고 사랑을 품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다시 사는 것이 아닐까...

죄의 비참이 사랑의 자비를 입게 되었습니다. p47

하느님께서는 단죄가 아닌 구원을 바라십니다. 하느님의 용서는 한계가 없으며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p51

올바른 죄의 고백을 위한 조건 - 통회의 결심, 죄의고백, 보상<저질러진 죄악을 기워 갚은것> = 보속 , 보속 p 62

우리가 단지 용기를 내서 고백한 다고 모든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 마음으로 고해를 하는 사람은 이 책을 통해 진정한 고해란 무엇이며 어떻게 그 마무리를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고해성사를 처음 배우는 것은 세례 성사 받을때 잠깐 이라 나역시, 그 깊이를 다 알 수 없어 보통의 사람들은 고해소 가서 신부님께 고백하고 주신 보속 하면 끝이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거의 많다. 그러나 진정 고해는 어떤것이며 또한 죄용서를 받고 잘못된 부분을 어떻게 바로 잡아야 하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며 또한 보속을 하고 죄는 용서 받지만 남은 벌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도 우리는 생각하고 인지 하고 있어야 한다.

용서는 죄를 없애 주지만 죄의

결과로 생긴 모든 폐해를 고쳐 주지는 못한다. 죄에서 벗어난 사람은 완전한 영적 건강을 회복해야 한다. p 62

부록 은 .고해 사제들에게 건네는 말씀입니다.

그 안에는 어떻게 고해를 해야 하는 지 사제들에게 하는 말씀이 자세히 적혀 있는데 그 부분까지 다 읽고 나면 조금더 고해소에 가는 우리의 발걸음이 무겁지 않을 수 있을 듯 합니다.

어떻게 하면 자비로운 사제가 될 수 있을까요? 기도하는 사제, 눈물을 흘리는 사제 그리고 고해자보다 자신이 더 죄인임을 깊이 깨닫는 사제여야 합니다.

신자들을 함부로 대하지 말고 온화하고 친절하며 자비롭게 대하십시오. 그들이 용서를 청하러 온 것을 기억하십시오. 얘기하고 인내를 갖고 들고 하느님이 그들을 사랑하고 있다 말해 주세요.

관대와 자비는 다른 것입니다. 괜찮아요 그냥 가세요 괜찮아요 ...라고 말하거나 엄하게 꾸짖시 마십시오.

이 책 한권으로 다가올 성탄, 대림시기의 우리의 고해가 지금과는 또 다른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우리의 영혼이 사랑으로 충만해지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진정한 고해가 되리라 믿으며 소중히 품어 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 준비하는 고해성사
교황청 내사원 지음, 고준석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림 성탄 전 중요한 고해성사 .매번 하지만 늘 부족하고 모자란 느낌이었는데 고해성사 책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다시 알게 됩니다. 이 성사가 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의 성사 인지, 또한 진정한 고해의 시작과 마무리는 어떤것인지 ... 고해를 주시는 사제들에 대한 말씀 까지. 최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