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단 하나, 사랑 발타사르 신학 시리즈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지음, 김혁태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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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겨진 단 하나 , 사랑 -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 오직 사랑만이 믿을 수 있다 - Glaubhaft ist nur liebe )

어제 도착한 올해 첫번째 가톨릭 출판사 에서 보내주신 감사한

'남겨진 단 하나, 사랑' -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예수회 신부님의 책을

읽어 봅니다. 어제 오자마자 카페에 가서 조용히 읽기 시작, 어려울 줄 예상은 했기에 모르는 부분은 찾아가며 차분히 다 읽어 봅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게 몰입되어 읽어진 책, 사랑이 온몸에 흘러 내리는 듯한 코끗 시린 따듯함을 느끼며 책에 감전당하는 시간.

눈오늘 날 찬란한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 그 은총에 대한 총체적인 글을 통해 거룩해 지는 시간이었어요. 그러나

당연히 한번 읽는다고 이해 되는 그런 책이 아니어서 이제 시작인 마음으로 찬찬 읽으려 합니다.

'성경이나 그 일부를 이해하였다고 생각하면서도 , 자기 지성안에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이중 사랑을 세우지 못하는 이는 누구나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 아우구스티누스 -

'조금이라도 사랑으로 나아가지 않는모든 것은 비유다. 사랑이 성경의 유일한 주제다.'- 블레즈 파스칼 -

책 을 펼치자 마자 나오는 이 문장들을 통해 이 책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알듯하죠?! 사랑을 만나리라는 그 기쁨으로 읽기 시작합니다.

전체적인 개인적 소감은 일반적인 교우분들 (저를 포함한) 에게는 어려운 책일듯합니다.

보통 철학을 전공하거나 신학, 미학 이런 분야에 대해 관심이 전혀 없으시다면 1장부터 난관에 부딪치게 됩니다.

1장 2장 에서는 주로 지금까지 철학사와 신학사 안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 존재에 대해 설명해주려고 했는지에 대해 나오기 때문에 철학의 흐름 또 여기 거론되는 많은 철학자들의 이론에 대해 알지 못하면 참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가득하죠.

그러나 ! 1,2 장을 차분히 읽고 '아 철학자들은, 그리고 신학자들, 옛 사람들은 하느님을 이렇게 알려 했구나, 시대에 따라 계몽과 인본주의가 도래하며 어떻게 관점이 변화 하고 교회의 부패 시기를 통해 또 어떤 국면을 맞았는지, 아 그랬군' 그러며 읽고 지나가시면

3장부터는 아주 흥미롭게 결국 이 위대한 예수회의 발타사르 신부님께서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어떻게 전하고 있는지 서서히 이해되고 전달 받아지는 듯 합니다.

인간을 위해 하느님께서 자신을 해석해 주고 계신 책.

어려움에도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미학적으로 표현되어져 결국엔 아무도 정의내릴 수 없는 것에 대해

그나마의 형태, 형상을 우리에게 만들어 주는 책인듯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거의 모든 이들이 '사랑이 무엇일까' 정의내리려고 하며, 또한 우리 스스로도 '사랑'이 궁금하고 , 많은 사람들이 삶안에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 말하는 그 이유를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 이 책은 그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형이상학적으로 말하는 듯 하지만 마침내 납득이 가고 이해가 되는 지경으로 사랑에 대해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 본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의 사랑에 대한 형상의 크기가 달라지고, 사랑에 대한 의미의 범위, 타인을 바라보는, 사람의 거룩함을 인식하는 부분이 달라지지 않을까 합니다. 신앙적 감수성을 확장하고 싶은 분들께 너무 좋은 책일 듯합니다.

각 장의 남기고 싶은 문장 요약 입니다.

1장. 우주론적 환원

하느님의 대한 설명이 우주론적 방법으로 가능했던 이유,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의 관점이 나옵니다.

p31. 신성으로 가득한 고대의 세계상은 모두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유래하든 스토아주의나 플로티노스와 프로글래로스에게서 유래하든, 신과 관련된 일정한 관념을 품고 있다. 그리고 이에 따르면 세계가 신성하다. 형식상으로는 여기에 그저 중심이 빠져 있을 뿐이다. 이 중심이 스스로 들어와 자리를 잡자 , 우주의 사랑의 힘들이 하느님의 사랑(아가페) 안에서 넘치도록 충만해진 것으로 드러났다.

p33. 말하자면 계속 그런식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합의는 다만 하느님의 존재는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과 그분은 늘 더 크신 분이라는 것이 공통의 토대로 인정되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반면에 그분 자신은 그 자체로 발설될 수 없는 부느 명명하거나 진술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초월하는 엄위하는 분이시다. *로고스* 에 대해 이해하면 좋을 1장

2장. 인간학적 환원

이 인간학적 환원은 특히 근대와 계몽주의 이래로 "인간에게 다가오는 계시를 이성의 척도로 측정하는 것'을 전면으로 내세운다. 이 길은 칸트에서 정점에... <....>

p. 53 인간은 하느님의 파트너이며, 둘 사이의 대화는 하느님께서 몸소 사람이 되시는 데서 정점에 이른다. .... 인간 본성을 측정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스도교 였다. p.55 존로크에 따르면 인간에게 다가오는 계시를 이성의 척도로 측정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의무다.

2장에서는 p.56-57 칸트에게서 인간학적 환원이 정점에 도달한다~~이해 되는 많은 하느님의 정의들. 사랑에 대한 .

'하느님께서 '영'으로 오실때 그분은 오로지 당신의 타자성을 그러니까 위와밖, 타자로부터 오는 당신 말씀을 확증하고 빛나게 하고 친밀하게 하기 위해 오신다.'

하느님께서 구약 안에 드러내신 사랑을 지나, 우리 인간의 모습으로 스스로 다가오심 신약으로 이어진 사랑의 절정에 대해 설명해 주는 부분들도 참 흥미롭습니다.

3장. 사랑의 제 3의길

이 로고스의 근본 언어가 사랑이라는 점에서 이 로고스는 다른 모든 종교와 철학이 말하는 지혜나 이성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사랑의 신빙성은 인간이 이미 늘 사랑이라고 알고 있던 것으로의 그 어떤 비슷한 환원을 통해서도 밝혀 질 수 없다.

p.91 에서 발타사르는 하느님의 사랑의 모습과 그것에 대한 인간의 응답에 대해 말합니다.

4장. 사랑의 실패

부정신학으로서의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언급들. 하느님의 계약이 죄인인 인간과 하느님이 함께하는 사랑싸움이기 때문이어서 인간에 의해 이 사랑싸움이 이해되고 측량 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정말로 진지 하다면 하느님을 세계 존재와는 전혀 다른 분으로서만 '생각만'할 수 있다 .

*부정신학*에 대해 검색해 보고 이해하고 읽으면 좋을 4장.

5장.감지될 수 있는 사랑

당신이 사랑을 계시하고자 하신다면 , 세상역시 그 사랑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p. 125 장 얼굴에서 존재의 심연이 우리에게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가만히 웃는다. 우리는 하느님의 피조물이고 이 점에서 사랑의 씨앗이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다. 그러나 아이가 사랑받지 않으면 사랑을 향해 깨어날 수 없듯이 하느님의 은총이 자유로이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는 한 그 어떤 인간의 마음도 하느님 이해에 눈을 뜰 수 없다. 물론 하느님의 은총은 그 아드님의 모상안에서 빛을 발한다.

p. 참으로 하느님의 행동에는 피조물편에서 이를 발생하게 하는 근원적 응답 (피앗, fiat)이 상응해야 한다.

6장, 계시로서의 사랑

이 약함과 어리석음이야 말로 절대적 사랑의 기능이나, 바로 그렇게 하느님의 약함과 어리석음이" 사랑보다 더 지혜롭고" "사람보다 더 강하다.

그분의 가르침에 담긴 로고스와 논리학은 이 헌신의 죽음으로부터 생겨난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죽음에서 자유롭게 되었다. 사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 안에 가드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기 위함이다. (로마 11, 32 참조)

7장. 의화이자믿음으로서의 사랑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바치신 성자의 사랑에 대한 응답니다. 물론 이 믿음에 하느님의 사랑이 늘 앞선다.

하느님을 위해 자신 안에 공간을 내주는 이 일은 자기 전결이 아니라 이미 그 자체로 순종이요 '더 위대하신 아버지'를 향한 복종이다.

p.170 이로부터 밝히 드러나는 것은 일차적으로 믿음은 우리를 넘어서는 가운데 우리보다 앞서 오는 하느님의 사랑의 불가해성을 마주해 있다는 사실이다.

8장. 행동으로서의 사랑

이는 무엇보다 절대적 사랑에 응답하기 위해 전적으로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관상의 태도다. 그러므로 '사랑에 마땅이 드려야 하는 행의 곧 경배와 현양의 행위'인 기도가 모든 것에 앞선다.

개인적으로 p.182 이 부분이 참 와닿았답니다.

이러한 기본 시각을 바탕으로 발타사르는 인가늬 사랑실천이 지닌 궁극적 의미를 밝힌다. 곧 인간의 사랑은 절대적 하느님 사랑안에서 이루어지는 타자인 동료와의 만남이고 그러므로 나는 늘 그를 이미 용서하신 하느님의 눈길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p.188 사랑 은 동료 인간과의 그러한 모든 만남이고 이 만남은 절대적 사랑안에서의 만남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대로의 하느님 사랑 안에서의 만남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p, 203그러나 한결같이 자기 자신이 중심이 아니라 오로지 사랑을 가리키는 존재들이 되려 한다.

9장. 형상으로서의 사랑

하느님의 사랑은 아름다움으로 찬란하게 드러나며 스스로 자신을 해석한다. 이 해석이 바로 발타사르의 신학적 주요 개념인 '형태'이다...

이 절대적 사랑은 응답하는 사랑에 존재와 삶의 본질적 모습을 부여한다. 말하자면 사랑이 '형상' 인 것이다. <.....>

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세례를 동해 그러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그리스도의 삶의 형상'을 입는다. 이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이 결정적 완성의 형상을 목표로 모든 것을 이끌어 간다. 사랑은 자신을 잃음으로서 모든 것을 다시 새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p.216 신앙은 자기 자신의 이성이 더 잘 안다는 모든 불만을 거슬러, 선험적으로 무한히 하느님께 모든 권리를 돌릴때만 참된 신앙의 형상을 갖는다. 계속 더듬거리를 것이야 말로 사랑의 시도다.

"사랑이 그 가장 깊은 곳에 인간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나에게보다 더 깊이 ) 사랑이 인간을 자기 몸으로 만든다."

사랑 이라는 단어에 하느님을 넣어 봅니다.. 나를 만드실때 이미 만났던 그분이 제 안에 계시고 나의 아버지시며 제 안에 사랑으로 저를 옹기장이 빚고 계심을... ^^

10장. 세상의 빛으로서의 사랑 <뜨겁게 와닿는 부분들이 참 많은 마지막 장>

하느님의 사랑은 세상의 삶의 의지와는 반대로 죽음을 향해 나간다. 그 사랑은 죽음 안에서 자신이 죽음보다 더 강함을 증명한다. 그리하여 이 사랑에는 필연적으로 십자가가 따른다. p.238-239

"자신이 원하지 않음에도 본질적으로 그래야만 하는 그곳으로 하느님 말씀이 자신을 데려간다는 것을 발견한다."

스물스물 가슴에 내려앉는 문장들과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아둔한 저에게 미약한 이해가 마지막장에 와 절정을 이루는 듯합니다.

신앙인으로 하느님의 사랑이 궁금하신분들, 하느님과 사랑하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사랑받고 사랑하고싶은 모두에게 꼭 권해주고 싶네요.

하느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지 잘 모르겠다면 지금 이 책을.

전 여러번 읽으며 주옥같은 깊이 있는 문장안에 이해 못하는 부분들에 머물러 묵상하고 천천히 또 내것으로 만들어 사랑둥이가 되보려 합니다.

뒷부분에 주석도 읽고 중간 중간 이해 안돼는 단어나 궁금한 철학, 이론들 찾아보며, 그리고 여러 교회 단어에 대해 찾아보며 읽었답니다.

훨씬 잘 읽히는 듯합니다.

어려워도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읽고자 하는 우리에게 읽고 알수 있게 해주심을 믿고 의탁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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