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 가는 어른
성정은 지음 / 노란돼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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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유치원 선생님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은 그림책이에요. 

아이들이 가질 만한 생각들과 선생님의 마음이 담긴 너무 책 그림의 꽃잎들이 사르르 날라오는 듯한 따듯하고 잔잔하고 아기자기 볼거리가 많은 소장하고픈 책이랍니다. 

유치원에 갔던 , 이제 어른이 되버린 제가 읽기에도 그리고 유치원에 가기 무서워하고 엄마 말고 다른 어른을 만나는 조카나 아이들에게도 너무 좋은 추천 도서에요~ 책 안에 선생님과 친구들이 이미 다 등장하니까요.  책을 통해 친구들을 만나러 가고 싶고, 선생님을 만나러 가고 싶은 마음이 샘솟을 듯합니다. 그리고 가면 선생님을 마구마구 상상하며  신기해 할 듯하네요.. 


그림이 너무너무 정말 완전 추억돋고 예쁘고 사랑스럽습니다. 내용도 굿! 


어른들에게, 어버이날, 스승의 날 ~~그리고 어린이날 선물로 완전 강추 합니다. 



모든 선생님들 응원하며 ~ 좋은책 많이 판매 하세요. 감사합니다.

오늘은 무얼 하며 놀까? - P7

빨리 가서 선생님 보여드리자~ - P9

우리는 함께 웃음을 나누지 ! - P12

선생님 웃음을 되찾아 주는 것도 우리거든~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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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믿음의 여인을 묵상하다 - 예수님의 어머니를 바라보는 10가지 시선
베른하르트 벨테 지음, 조규홍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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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맞이해 따듯해진 봄입니다. 백합처럼 하얀 성모님에 대해 묵상한 종교 철학자 베른하르트 벨테 의 책, 4월의 신앙서적

' -예수님의 어머니를 바라보는 10가지 시선- 철학자, 믿음의 여인을 묵상하다'

입니다.

​5월 성모님의 달을 기다리며 참 좋은 선택을 이끌어 주신 하느님께 감사해 봅니다.

가톨릭신자로 살면서 정말 많이 듣는 질문 하나는 '성모마리아님' 에 대한 것일겁니다. 개신교와 가톨릭의 차이는 뭐야? 성모마리아님도 신이야? 가톨릭은 그럼 성모님을 믿는 종교인거야? 등 교리를 배우지 못하고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 받을 길이 없는 분들은 많이 궁금해 하고 잘못된 정보로 알고 계신 분들이 대부분이지요.

또한 신앙인 안에서도 성모님에 대해 '원죄 없이 잉태되신 분' '동정녀 마리아' '은총이 가득하신 분' 등에 대해 궁금해 하고 어려워하시는 분들이 많죠. 저 역시 조금은 알고 있지만 타인에게 설명해 주기엔 참 어렵게 느껴지고 교리적 논리가 턱없이 모자란 상태입니다.

이 책은 위에 질문들에 알려줍니다. 또한 왜 성모님을 교회라고 하는지, 왜 우리가 성모님을 공경하며 왜 성모님께 묵주 기도로 우리의 기도를 간구 하는지 정말 많은 부분에 있어 중요한 위치에 계신 마리아님에 대해 대충이 아니라 제대로 머리와 마음에 차곡차곡 넣을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책 속의 최초의 그리스도인 이며 교회의 모범이신 마리아를 통해 우리의 신앙을 더 고취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은 '깊이 묵상하는 일' 과 '성모님에 대해 바로 세우는 일' 이라고 합니다. '승천'이라고 하는 다소 모호하게 들리는 용어를 지은이는 이렇게 풀이한다.

"우리는 성모님의 죽음이 어머니로서 또 신앙인으로서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마침내 완수하셨음을 뜻한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

p16 - 조규홍 옮긴이

출처 입력

"고통받는 중에도 그리고 행복한 상태에도 이기주의적인 행동으로 삶을 그르치지 마라 , 그대의 입장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고통을 직시하는 것을 잊지 마라. 이 드넓은 세상에서 괴로움으로 지쳐가는 인유의 고통을 잊지 마라. 언제든 지치지 않고 따듯하게 도움을 베풀려는 연민의 정을 품어라. 만일 그대가 몸소 고통을 받게 되거든, 그렇게 고통 받는 다른 이를 또한 기억하라. 그대만이 겪는 고통이 그대를 이웃과 단절시키지 않도록 주의하라. 차라리 그 고통이 그대의 마음을 열어 사랑스럽게 연민의 정을 베푸는 사람으로 성장시키도록 이끌어라...진심으로 경청하고 제때에 따듯하게 말을 걸며 사랑의 유대를 맺는 방식으로 진정한 도움을 베풀기 위해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다가가도록 하고, 이같은 도움이 가능한 곳에선 지체 없이 사랑으로 도움을 주어라!"

1장 본문 중 - 지금까지 단 몇 분이라도 완전히 침묵한 채로 아주 조용히 그러나 그 어떤 분심도 없이 하느님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을 만큼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2장 본문 중 -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의 살과 피로써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가면서 그 역량을 십분 발휘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도 성모님처럼 시기적절하게 뒤로 물러나는 법을 알고 실천할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를 신뢰하는 이들에게 자유롭게 길을 터 주면서도 그들과 사심 없는 결속을 다지며 그들과 계속 가까이 머무를 수 있을까?

3장 본문 중 -이처럼 당장 납득하기 어려운 어떤 것이 바로 하느님의 표징일수 있다는 믿음의 결단을 요구 받을 수 있다.

4장 본문 중 -성모님이 새겨진 조각상 앞에서 인간이 겪는 고통을 묵상해 보자. ~~~p69 예수 그리스도를 추종하며, 그분 가까이 머무르고자 하는 사람은 고통 중에도 그분을 뒤따라야 한다.~~~p72

5장 본문 중 -영광스러운 삶을 선사받으신 성모님 또한 적지 않은 부분에 개입하시어 자신의 입장을 치하셨고 또 인간적인 노력을 다하시며 인간적인 심정으로 함께 하셨다.

6장 본문 중 -모든 인간 , 특히 예수님을 뒤따르며 큰 뱀을 짓밝고 서 계신 그분의 어머니를 모범 삼아 살아가는 모든 이는 저 짐승과 능히 대적할 수 있을 뿐더러 그 와의 싸움을 잘 견뎌 낼 수 있다. ~~훨씬 더 순수한 세상을 위해 용기를 내어라!~~p 106-107

7장 본문 중 - 은총은 하느님에게서 창조된 우리 인간이 하느님께 마음을 여는 순간 우리에게 주어지는 변화를 말한다.

은총은 그렇게 종종 인간과 인간이 서로 통할 수 없을 정도로 꽉 막혔던 길을 터 준다. 그것은 그래서 다시금 은총의 시간이다.

그렇게 성모님을 통해 드러난 예수님의 전모가 곧 예수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분의 부활이 곧 은총이다. 따라서 성모님의 모습을 우리가 항상 기억하면서 성모님이 몸소 취하시는 행동을 통해 우리에게 건네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8장 본문 중 -한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거쳐 가면서 예 비극이 반복되듯이 계속 되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뭔가 바뀌지 않았는가?! 예컨대 겉보기에 절망스러운 이 모든 비극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희망하는 것은 자유가 아닌가? 새로운 인간상에 대해 희망하는 것, 곧 마리아와 같은 모범을 따르려는것...p138

그러나 여인의 신분으로서만이 아니라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 이라는 신분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가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희망으로 깨어 있으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웃에게 자신을 선물하듯 다가간다면 보다 더 바람직할 것이다.

9장 본문 중 -과연 우리는 어떻게 교회 다울 수 있을 지 고민한 것이 있는가? 다시 말해 신앙으로 모인 공동체로서 어찌하면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숙고하고 있는가? ,,,, 요란하지 않고 조용히 그러나 생기 넘치는 삶을 사신 예수님의 어머니를 닮은 교회가 되어야 한다 .

10장 본문 중 -하지만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 나아가 그분의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저 죽음의 어둠이 영원한 빛 하느님의 빛을 그 속에 감추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믿어도 좋을 것이다. 그 빛은 모든 것을 샅샅이 비춘다는 점에서 심판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심판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왜냐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희생하심으로서 우리는 이미 하느님과 화해하였고 그분께 용서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모님이 승천하신 저 하늘을 오로지 하느님의 영광만이 가득 찬 나라이다. 성모마리아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 역시 온전히 육신마저 받아들이길 것이요 그 때문에 하느님의 나라에서 우리 또한 동료 인간 및 신앙인들과의 유대를 계속 이어 갈 것이라고 믿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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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타사르, 죽음의 신비를 묵상하다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지음, 윤주현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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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한다고 멀어지고 , 젊어지기 바래 노력한다고  노화되지 않거나 없어지지 않는 '죽음' 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이 중요한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인식하고 살아가고 있을까요?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사는것이 행복할까? 이런 질문은 많이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죽을까? 어떻게 죽는 것이 행복한 것일까?' 같은 이런 질문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해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신앙 활동을 하며 모순적인 죽음과 영원함을 생각하며 더욱더 예수그리스도 죽음의 의미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많은 분들 또한 그러하시겠죠?! 우리를 대신해서 죽는 다는  그 의미는 무엇이고 그 뒤에 인간에게 주어진 삶과 죽음에 대한 것은 어떻게 이어져 있을까요..부활의 의미는 어떤 것이며 영원히 사는것 등 발타사르의 책을 통해 그동안 궁금했던 '죽음'을 만나봅니다.

인간 삶 안에 중요한 것들은 참 많겠죠. 그런데 그 중에 가장 중요하며 정확한 사실은  '죽음' 일 것입니다.

인생 동안 알 수 없는 시점에 '죽음'을 마주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겪는 사실 입니다. 그 하나만 받아드린다고 해도

일상을 대하고 사는 모습이 달라지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죽음을 피하고 받아드리지 못하며 멀리하고자 합니다.

그러면서 영원을 꿈꿉니다. 단지 불로장생의 영원을 꿈꾼다면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오늘 이 책을 통해  죽음이 마지막이 아닌 영원을 향한 죽음으로 변하게 해 주신 하느님을 기억해봅니다.

* 죽음에 대한 신비, 그것은 부활을 통해 이루어진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선사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과 결합하는 모습 사람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신비 안에서 새로=롭게 변화 된 죽음의 신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p. 11*

 

제 1장에서는 죽음을 향한 생명

  • 모순속에 있는 현존재

  • 적극적인 선택인 포기

  • 그리스도의 사명

제 2장 에서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 하느님의 권능

  • 흘러나온 실체

  • 사명 가운데 죽음

제 3장은 죽음을 통해 하나가 되다 입니다.

 

작가는 책을 통해 현존재로서의 모든 인간은 자신이 간직한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할 수 없고.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교에서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는지 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책 안의 문장들을 통해 작가가 말해주려고 하는 죽음에 대해 만나 봅니다.

 

1장에서는 보통 인간이 생각하는 시간과  죽음이 있기에 영원히 기록될 것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는 것, 그러나 그것을 통해삶의 끝 쯤 우리의 무지를 더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시간 앞에 다가갈 수록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 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또한 열망하는 무언가를 위해  남은 자신을 포기한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 p.39 ~

예수 그리스도는 죽기 위해서 태어난 분입니다. 예수님의 삶의 행동과 수난은 궁극적으로 죽음 안에서 하나가 되어 드러납니다.

만일 우리가 죽음에 직면해서 두려워 떤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지닌

가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에 앞서 죽음의 의미를

바꾸기 위해 친히 죽음으 끌어안으신 주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p.55

 

2장에서는 자신을 비우는 헌신에 이어 성자께서 성부의 보이지 않는 손에 자신을 내어 드림, 성부께서 당신을 취할 수 있도록 자유롭게 당신 자신을 포기하심에 대해 하느님의 권능을 말하며 설명하고 있습니다.

죽음은 하느님께서 최고의 자유로운 방식으로 지나간 삶의 공로나 허물을 없애지 않은 채 죽은 이에게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순간이다.p.71

예수님에게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실현과 성취는 그분께서 성령의 힘을 바탕으로 성부께 드리는 믿음의 순명을 통해 가능하다.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는 보편적인 가치를 갖는 죽음을 향한다.

그분께서 선사하시는 영원한 생명은

이 죽음에서 출발하여 성체를 통해 드러난다.

p.91

 

3 장

예수님의 부활과 이어진 신비, 지금까지 언급된 모든 것들은 '성인들의 통공' 신비로 수렴됩니다.

  "그들은 어린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는 이들" 이다. 그들은 죽음에서 생명에 이르기까지 어린양을 따라가듯이 생명에서 죽음까지도 그분을 뒤따라가는 이들이다. 이 통동에 속하는 모든 것은 다만 내어주기 위해 소유하며 마찬가지로 오로지 내어 주는 가운데 받는다.

그리스도교는 오직 주기 위해 갖는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풍요로워진다. p112

이처럼 빛은 어둠속에서 빛나는 가운데 "바위를 부수는 망치"예레 23,29 가 되기 위해 자신을 잊어버려야 한다.

 

 

이 책을 통해 죽음을 긍정적인 실재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님과 깊이 일치해 있어야 함을 알게 됩니다.

그럴때  신앙인에게 죽음은 자신을 결정적으로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과 결합시키는 기쁨과 희망의 사건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결국 맞이해야 하는 죽음을 기억하며 사람으로 오셔서 죽음과 부활을 하신 예수님의 삶을 통해 그 삶을 따르는 것은 어떤 것이며 또한 세례받은 신앙인으로 그 안에서 참 죽음에 대한 의미를 발견하고 또 죽음의 긍정적인 의미를 새롭게 할 수 있을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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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최후 기도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 지음, 문재상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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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가이며 신비가인 작가가 가상칠언 안에서 바라본 교회안의 칠성사를 묵상한 거룩한 영적 깨달음을 아름답게 전달하고 있는 아드리엔펀 슈파이어의 책입니다.

지난번 가상칠언에 대한 묵상글과 더불어 오늘은 칠성사와 이어가며 책에 대해 이야기 해 봅니다.

​'세례성사'는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례성사로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어 하느님의 백성이 되며,

모든 죄를 용서받고 악의 권세에서 벗어나 물과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나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갈 은총을 받습니다.

'견진성사'는 세례 때 받은 은총을 굳건히 하고 성령 특은의 인호를 통해 더욱 완전히 주님을 닮고

신앙의 도우심으로 신앙을 선포할 힘과 은총을 베풀어 줍니다.

'성체성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써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여

거룩한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마련하신 영적인 양식입니다.

이 세례, 견진, 성체성사는 교회의 시작부터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기 위하여 받는

하나의 연속적인 예식을 통해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 세가지 성사를 교회의 입문 성사라 부릅니다.

일곱 가지 성사 중 신앙의 삶 속에서 우리의 아픔을 어루만지시고 새롭게 해주시는

'치유의 성사'들이 있습니다.

'고해성사'는 우리의 나약함으로 인하여 지은 죄로 멀어진 하느님과 이웃과의

상처 입은 관계를 회복시키고 '병자성사'는 병고로 시달리는 육신과 영혼을 치유하시고 새로운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십니다.

공동체를 위해 특별한 사명을 맡기시고 이에 필요한 은총을 베푸는

친교와 봉사를 위한 성사들이 있습니다.

'혼인성사'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과 친교를 부부의 사랑과 성가정을 통해 드러낼 수 있도록

은총을 부어줍니다. '성품성사'는 그리스도를 대리하여 하느님과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는 은총입니다.

'성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그리스도를 제정하신 은총 자체입니다.

우리가 이 소중한 성사를 기억한다면, 성사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출처 입력

이 7가지 성사들은 지금 우리에게 이어져 교회 안에서 이뤄지는 하느님의 은총들이지요, 이제 이 성사들이

가상칠언과 어떻게 이어져 나가는지 책에 대해 기록해 봅니다.

얇은 한권으로 만나는 가상칠언 과 칠성사의 만남ㅡ 십자가에 매달리신 채 남기신 예수님 마지막 말씀이 어떻게 전승되어 지금 교회안 우리에게

현재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작가는 가상칠언에 대해 언급하며 성사에 대해 알려주고 있지요.

이 책을 통해 /주님의 죽음은 더이상 나와 관계 없는 '타인의 죽음'으로 머무르지 않으며 , 그 십자가 죽음이 고 나의 일부가 되고, 내가 속한 교회의 일부임을 / 느끼게 됩니다.

글의 서장에서는 돌아가시며 남기신 말씀이 얼마만큼 지금 우리 교회안에 중요한 의미를 주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죽어가는 이의 극도의 노력으로 내뱉은 유언은 다가올 교회의 방향성이며 이 말씀이 왜 성사와 연관성 유사성을 띠는지에 대해 나옵니다.

그리고 1장 부터 7장까지 가상칠언과 더불어 이어지는 성사의 의미에 대해 영성작가 답게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답니다.

주요 내용과 기억에 남기고 싶은 문장들을 기록해 봅니다.

1장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 고해성사

저는 개인적으로 1장, 4장 장이 참 맘에 많이 다가왔습니다.

특히 고해성사와 연결된 이 죄에 대한 부분의 작가의 글을 읽으며 인간의 무모함과 무지, 나약함에 대해 돌아 봤습니다.

하느님께서 존재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관대함 없이는 멸망할 존재가 하느님을 잊고 사는 것... 그들이 잊지 않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라는 작가의 글에서 큰 공감과 함께 울림이 있었답니다.

성자께서는 그들이 모든 책임을 짊어 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씨기에 결론을 내리신다. 당신 스스로 그 책임을 짊어지시기로 말이다. 인간이 용서받기를 바라며 성장꼐서 십자가에서 드리는 첫번째 기도는 성부께로 향한다. p.25 성부 앞에서 그 죄를 짊어지심으로써 인류를 무죄하게 만드신 성자의 고백에 참여하는 성사.

2장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 병자성사

만일 인간이 무죄한 순결함 속에 머물렀더라면 세례성사가 차지했을 바로 그 자리를 병자성사가 받아 들인다. 이 성사는 순결함과 은총을 그리고 하늘에서 성부와 성령을 새롭게 만나시기위해 이제 저 끝없는 순결함 속에서 죽어 가시는 주님의 세사을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그 분의 세상을 영원히 선사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이 말은 이 죽음의 날은 사실 생명의 날인 것이다.

3장 - "여인이시어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 " 혼인성사

이 말씀을 통해 마리아와 요한 사도 두 사람의 관계는 전혀 새로운 (성사적)차원으로 넘어가게 된다. 혼인관계역시 그분의 약속 안에서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3장이 난해 앴답니다. 이 가상칠언의 3번째 말씀은 관계에 대해 예수님과 성모마리아님, 그리고 돌아가시며 어머니를 부탁 하시며 한 말씀 안의 요한과 어머니이신 교회..이런 관계들, 성사 안에 남녀의 관계성에 대해 말씀해 주고 계신데 살짝 .. 제 아둔함이 안탑깝습니다. >

4장 - "저의하느님 저의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성품성사

성자께서는 사명을 성부께 받았으며 모든 삶의 주도권을 건네드림으로써 이 사명을 넘겨받게 되셨씁니다.

p.60 그분께서는 성부께 대한 순명안에서 삶을 사셨고 무엇이 아버지의 것인지 세상에 알리며 사셨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법칙에 몸을 굽히고 그 법에 순응하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사셨다.

5장 - "목마르다." - 성체성사

빵과 포도주 의형상 안에서 누군가에게 먹힐 수 없는 모습을 지닌채 버려져 계시는 그분은 우리를 그 목마름의 잔치로 초대하고 계신다 .

고독은 하느님으로 만드는 요소에서 그분을 끄집어내어 팽개쳬쳐 버린다. 그래서 이제 목마름을 느끼신다. 육체적인 갈증,영적갈증, 현존을 향한 목마름을 느끼신다. 그분께서 최후의 만찬 때 하셨던 말씀이 여기에서 훨씬 더 중대한 의미를 갖게 된다. 그분께서는 먹으라고 주어진 빵이며 잔에 부어주신 포도주시다.

p.77 '목마르다'이 말씀은 그 상황에 주어진 그 당시의 철저한 소여성을 즉 당신께서 그 자리에 설저히 내던져지셨음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6장 -" 이제 다 이루었다." - 세례성사

주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으로 사명을 끝까지 완수하셨고 사명을 통해 얻어낸 모든 것을 교회에 주셨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그분꼐 모든 것이 닫혀 버린 그 순간 교회의 모든 것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세례성사. 죄를 대신한 예수님을 통해 모든 것이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성자꼐서 구체적으로 살아가셨던 지상의 삶을 통해 특징지어진 그런 세계다. 주님께서 걸어가셨던 그 길을 주님을 따는 그 길을 세례가 열어 준다 .

7장 -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 견진 성사

세례를 통해 들어온 우리는 마침내 견진 성사를 통해 더 하느님게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우리 모든것은 진심 의탁하고 믿는 것... 오늘 이 마지막 말씀을 통해 생각해 봅니다.십자가 주위가 어두워지기에 성령께서는 성부의 빛을 향해 돌아가신다. 타오르는 불길 안에서 영원한 생명의 불꽃을 지닌채 세상의 어둠으로 다시 돌아오기위해서 말이다. p103

이렇게 7가지 가상칠언과 연결된 성사들을 살펴 봅니다.

간략하게 좋았던 문장을 남기며 다시 보아도 또 배우고 묵상 할 것이 많아 집니다 .

성사를 받았지만 제대로 묵상하지 않았던 칠성사 그리고 항상 만나게 되는 예수님 말씀들중, 유언같은 가상칠언에 대해 이번 책을 기회로

찬찬히 공부하고 깨달아 봅니다.

제대로 된 성사의 의미도 모른체 성사를 받고 신앙생활하고 있는 제가 부끄러워지는 소중한 책이었답니다.

유명한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의 얇은 책을 통해 잊었던 부분들을 다시 마음에 품고 사순시기 보내게 되네요.

가톨릭 종교가 궁금하신 분들, 이제 세례를 받고 궁금한 것이 많은 분들, 그리고 신앙인들 안에서도

도무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거와 나랑 무슨 상환이지 ? 이러며 잘 와닿지 않는 분들,

등등에게 적극 추천하네요.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은 우리 신앙인안에 늘 기억되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이 책의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을 통해 우리의 신앙이 성사 안에 더 견고해 지며 다가갈수 있음을 또한 그리하여 예수니께서 우리 안에 지금 살아 계심을 느끼게 될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총은 교회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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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단 하나, 사랑 발타사르 신학 시리즈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지음, 김혁태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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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겨진 단 하나 , 사랑 -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 오직 사랑만이 믿을 수 있다 - Glaubhaft ist nur liebe )

어제 도착한 올해 첫번째 가톨릭 출판사 에서 보내주신 감사한

'남겨진 단 하나, 사랑' -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예수회 신부님의 책을

읽어 봅니다. 어제 오자마자 카페에 가서 조용히 읽기 시작, 어려울 줄 예상은 했기에 모르는 부분은 찾아가며 차분히 다 읽어 봅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게 몰입되어 읽어진 책, 사랑이 온몸에 흘러 내리는 듯한 코끗 시린 따듯함을 느끼며 책에 감전당하는 시간.

눈오늘 날 찬란한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 그 은총에 대한 총체적인 글을 통해 거룩해 지는 시간이었어요. 그러나

당연히 한번 읽는다고 이해 되는 그런 책이 아니어서 이제 시작인 마음으로 찬찬 읽으려 합니다.

'성경이나 그 일부를 이해하였다고 생각하면서도 , 자기 지성안에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이중 사랑을 세우지 못하는 이는 누구나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 아우구스티누스 -

'조금이라도 사랑으로 나아가지 않는모든 것은 비유다. 사랑이 성경의 유일한 주제다.'- 블레즈 파스칼 -

책 을 펼치자 마자 나오는 이 문장들을 통해 이 책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알듯하죠?! 사랑을 만나리라는 그 기쁨으로 읽기 시작합니다.

전체적인 개인적 소감은 일반적인 교우분들 (저를 포함한) 에게는 어려운 책일듯합니다.

보통 철학을 전공하거나 신학, 미학 이런 분야에 대해 관심이 전혀 없으시다면 1장부터 난관에 부딪치게 됩니다.

1장 2장 에서는 주로 지금까지 철학사와 신학사 안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 존재에 대해 설명해주려고 했는지에 대해 나오기 때문에 철학의 흐름 또 여기 거론되는 많은 철학자들의 이론에 대해 알지 못하면 참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가득하죠.

그러나 ! 1,2 장을 차분히 읽고 '아 철학자들은, 그리고 신학자들, 옛 사람들은 하느님을 이렇게 알려 했구나, 시대에 따라 계몽과 인본주의가 도래하며 어떻게 관점이 변화 하고 교회의 부패 시기를 통해 또 어떤 국면을 맞았는지, 아 그랬군' 그러며 읽고 지나가시면

3장부터는 아주 흥미롭게 결국 이 위대한 예수회의 발타사르 신부님께서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어떻게 전하고 있는지 서서히 이해되고 전달 받아지는 듯 합니다.

인간을 위해 하느님께서 자신을 해석해 주고 계신 책.

어려움에도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미학적으로 표현되어져 결국엔 아무도 정의내릴 수 없는 것에 대해

그나마의 형태, 형상을 우리에게 만들어 주는 책인듯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거의 모든 이들이 '사랑이 무엇일까' 정의내리려고 하며, 또한 우리 스스로도 '사랑'이 궁금하고 , 많은 사람들이 삶안에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 말하는 그 이유를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 이 책은 그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형이상학적으로 말하는 듯 하지만 마침내 납득이 가고 이해가 되는 지경으로 사랑에 대해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 본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의 사랑에 대한 형상의 크기가 달라지고, 사랑에 대한 의미의 범위, 타인을 바라보는, 사람의 거룩함을 인식하는 부분이 달라지지 않을까 합니다. 신앙적 감수성을 확장하고 싶은 분들께 너무 좋은 책일 듯합니다.

각 장의 남기고 싶은 문장 요약 입니다.

1장. 우주론적 환원

하느님의 대한 설명이 우주론적 방법으로 가능했던 이유,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의 관점이 나옵니다.

p31. 신성으로 가득한 고대의 세계상은 모두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유래하든 스토아주의나 플로티노스와 프로글래로스에게서 유래하든, 신과 관련된 일정한 관념을 품고 있다. 그리고 이에 따르면 세계가 신성하다. 형식상으로는 여기에 그저 중심이 빠져 있을 뿐이다. 이 중심이 스스로 들어와 자리를 잡자 , 우주의 사랑의 힘들이 하느님의 사랑(아가페) 안에서 넘치도록 충만해진 것으로 드러났다.

p33. 말하자면 계속 그런식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합의는 다만 하느님의 존재는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과 그분은 늘 더 크신 분이라는 것이 공통의 토대로 인정되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반면에 그분 자신은 그 자체로 발설될 수 없는 부느 명명하거나 진술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초월하는 엄위하는 분이시다. *로고스* 에 대해 이해하면 좋을 1장

2장. 인간학적 환원

이 인간학적 환원은 특히 근대와 계몽주의 이래로 "인간에게 다가오는 계시를 이성의 척도로 측정하는 것'을 전면으로 내세운다. 이 길은 칸트에서 정점에... <....>

p. 53 인간은 하느님의 파트너이며, 둘 사이의 대화는 하느님께서 몸소 사람이 되시는 데서 정점에 이른다. .... 인간 본성을 측정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스도교 였다. p.55 존로크에 따르면 인간에게 다가오는 계시를 이성의 척도로 측정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의무다.

2장에서는 p.56-57 칸트에게서 인간학적 환원이 정점에 도달한다~~이해 되는 많은 하느님의 정의들. 사랑에 대한 .

'하느님께서 '영'으로 오실때 그분은 오로지 당신의 타자성을 그러니까 위와밖, 타자로부터 오는 당신 말씀을 확증하고 빛나게 하고 친밀하게 하기 위해 오신다.'

하느님께서 구약 안에 드러내신 사랑을 지나, 우리 인간의 모습으로 스스로 다가오심 신약으로 이어진 사랑의 절정에 대해 설명해 주는 부분들도 참 흥미롭습니다.

3장. 사랑의 제 3의길

이 로고스의 근본 언어가 사랑이라는 점에서 이 로고스는 다른 모든 종교와 철학이 말하는 지혜나 이성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사랑의 신빙성은 인간이 이미 늘 사랑이라고 알고 있던 것으로의 그 어떤 비슷한 환원을 통해서도 밝혀 질 수 없다.

p.91 에서 발타사르는 하느님의 사랑의 모습과 그것에 대한 인간의 응답에 대해 말합니다.

4장. 사랑의 실패

부정신학으로서의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언급들. 하느님의 계약이 죄인인 인간과 하느님이 함께하는 사랑싸움이기 때문이어서 인간에 의해 이 사랑싸움이 이해되고 측량 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정말로 진지 하다면 하느님을 세계 존재와는 전혀 다른 분으로서만 '생각만'할 수 있다 .

*부정신학*에 대해 검색해 보고 이해하고 읽으면 좋을 4장.

5장.감지될 수 있는 사랑

당신이 사랑을 계시하고자 하신다면 , 세상역시 그 사랑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p. 125 장 얼굴에서 존재의 심연이 우리에게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가만히 웃는다. 우리는 하느님의 피조물이고 이 점에서 사랑의 씨앗이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다. 그러나 아이가 사랑받지 않으면 사랑을 향해 깨어날 수 없듯이 하느님의 은총이 자유로이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는 한 그 어떤 인간의 마음도 하느님 이해에 눈을 뜰 수 없다. 물론 하느님의 은총은 그 아드님의 모상안에서 빛을 발한다.

p. 참으로 하느님의 행동에는 피조물편에서 이를 발생하게 하는 근원적 응답 (피앗, fiat)이 상응해야 한다.

6장, 계시로서의 사랑

이 약함과 어리석음이야 말로 절대적 사랑의 기능이나, 바로 그렇게 하느님의 약함과 어리석음이" 사랑보다 더 지혜롭고" "사람보다 더 강하다.

그분의 가르침에 담긴 로고스와 논리학은 이 헌신의 죽음으로부터 생겨난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죽음에서 자유롭게 되었다. 사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 안에 가드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기 위함이다. (로마 11, 32 참조)

7장. 의화이자믿음으로서의 사랑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바치신 성자의 사랑에 대한 응답니다. 물론 이 믿음에 하느님의 사랑이 늘 앞선다.

하느님을 위해 자신 안에 공간을 내주는 이 일은 자기 전결이 아니라 이미 그 자체로 순종이요 '더 위대하신 아버지'를 향한 복종이다.

p.170 이로부터 밝히 드러나는 것은 일차적으로 믿음은 우리를 넘어서는 가운데 우리보다 앞서 오는 하느님의 사랑의 불가해성을 마주해 있다는 사실이다.

8장. 행동으로서의 사랑

이는 무엇보다 절대적 사랑에 응답하기 위해 전적으로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관상의 태도다. 그러므로 '사랑에 마땅이 드려야 하는 행의 곧 경배와 현양의 행위'인 기도가 모든 것에 앞선다.

개인적으로 p.182 이 부분이 참 와닿았답니다.

이러한 기본 시각을 바탕으로 발타사르는 인가늬 사랑실천이 지닌 궁극적 의미를 밝힌다. 곧 인간의 사랑은 절대적 하느님 사랑안에서 이루어지는 타자인 동료와의 만남이고 그러므로 나는 늘 그를 이미 용서하신 하느님의 눈길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p.188 사랑 은 동료 인간과의 그러한 모든 만남이고 이 만남은 절대적 사랑안에서의 만남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대로의 하느님 사랑 안에서의 만남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p, 203그러나 한결같이 자기 자신이 중심이 아니라 오로지 사랑을 가리키는 존재들이 되려 한다.

9장. 형상으로서의 사랑

하느님의 사랑은 아름다움으로 찬란하게 드러나며 스스로 자신을 해석한다. 이 해석이 바로 발타사르의 신학적 주요 개념인 '형태'이다...

이 절대적 사랑은 응답하는 사랑에 존재와 삶의 본질적 모습을 부여한다. 말하자면 사랑이 '형상' 인 것이다. <.....>

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세례를 동해 그러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그리스도의 삶의 형상'을 입는다. 이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이 결정적 완성의 형상을 목표로 모든 것을 이끌어 간다. 사랑은 자신을 잃음으로서 모든 것을 다시 새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p.216 신앙은 자기 자신의 이성이 더 잘 안다는 모든 불만을 거슬러, 선험적으로 무한히 하느님께 모든 권리를 돌릴때만 참된 신앙의 형상을 갖는다. 계속 더듬거리를 것이야 말로 사랑의 시도다.

"사랑이 그 가장 깊은 곳에 인간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나에게보다 더 깊이 ) 사랑이 인간을 자기 몸으로 만든다."

사랑 이라는 단어에 하느님을 넣어 봅니다.. 나를 만드실때 이미 만났던 그분이 제 안에 계시고 나의 아버지시며 제 안에 사랑으로 저를 옹기장이 빚고 계심을... ^^

10장. 세상의 빛으로서의 사랑 <뜨겁게 와닿는 부분들이 참 많은 마지막 장>

하느님의 사랑은 세상의 삶의 의지와는 반대로 죽음을 향해 나간다. 그 사랑은 죽음 안에서 자신이 죽음보다 더 강함을 증명한다. 그리하여 이 사랑에는 필연적으로 십자가가 따른다. p.238-239

"자신이 원하지 않음에도 본질적으로 그래야만 하는 그곳으로 하느님 말씀이 자신을 데려간다는 것을 발견한다."

스물스물 가슴에 내려앉는 문장들과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아둔한 저에게 미약한 이해가 마지막장에 와 절정을 이루는 듯합니다.

신앙인으로 하느님의 사랑이 궁금하신분들, 하느님과 사랑하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사랑받고 사랑하고싶은 모두에게 꼭 권해주고 싶네요.

하느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지 잘 모르겠다면 지금 이 책을.

전 여러번 읽으며 주옥같은 깊이 있는 문장안에 이해 못하는 부분들에 머물러 묵상하고 천천히 또 내것으로 만들어 사랑둥이가 되보려 합니다.

뒷부분에 주석도 읽고 중간 중간 이해 안돼는 단어나 궁금한 철학, 이론들 찾아보며, 그리고 여러 교회 단어에 대해 찾아보며 읽었답니다.

훨씬 잘 읽히는 듯합니다.

어려워도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읽고자 하는 우리에게 읽고 알수 있게 해주심을 믿고 의탁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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