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 없이 당분간 짧아도 괜찮아 1
김금희 외 지음 / 걷는사람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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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얼마나 짧아질 수 있을까? 장편소설, 중편소설, 단편소설에 이어 손바닥 장() 자를 쓴 장편(掌篇)소설이 등장했다. 우리말로는 손바닥 소설로도 알려진 아주 짧은 소설들. 일찍이 보르헤스의 아주 짧은 소설들을 읽으며, 아 이렇게 소설을 쓸 수도 있구나 생각했다. 이제는 그렇게 짧은 소설들을 우리 문단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손바닥 소설은 시대적 징후인가? 메리언 울프가 쓴 다시, 책으로-순간접속의 시대에 책을 읽는다는 것에 소개된 가장 짧은 소설은 헤밍웨이의 것이다. 불과 6개의 단어로 이루어진. “For sale : Baby shoes never worn.” 굳이 번역하면, “팝니다. 한 번도 신겨보지 못한 아이의 신발을.” 이렇게 짧은 문장도 소설이라 할 수 있으려나? 임홍택은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에서 90년대 생의 특징으로 간단재미를 들었다. 90년대에 태어난 청년들은 앱 네이티브 세대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들은 비선형적 사고와 촌철살인의 드립을 선호한다고 말한다. 그러한 경향의 문학적 방식이 초간편소설의 등장이라고. 일면 설득력이 있는 해석이다. 긴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학생들을 접할 때마다 그런 생각이 안 드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손바닥 소설의 등장을 그렇게만 해석한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독서능력과 인내력을 바닥으로 치달릴 것이고, 그것은 소설의 몰락을 예고하는 표지 아닐까? 나는 손바닥 소설의 등장을 그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싶다. 대중적 글쓰기의 예비단계라고. 글쓰기가 글쓰기 전문가의 몫으로 권위를 유지했던 시대가 지나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제는 누구나 글쓰기가 가능해졌다. 글의 수준의 문제도 일방적인 잣대로만 설정할 수는 없는 시대가 온 것 아닌가 한다. 자신의 상상력을 마음껏 글로 쓸 수 있는 장은 점점 넓어지고 있고, 그러한 배경에서 새로운 작가의 등장은 어재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히려 요즘은 기성 작가들이 이러한 경향에 맞추어 다시금 자신의 글쓰기를 실험하고 있는 듯한데, 이 시도 중 하나가 오늘 읽은 이해 없이 당분간(걷는사람, 2017)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22명의 기성작가들의 손바닥 소설을 모은 책이다. ‘짧아도 괜찮아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데, 이미 이 시리즈로 5권이나 나온 것을 보면 앞으로도 이러한 실험은 계속될 것이다. 시대적 상황에 대한 소설적 접근, 새로운 상상력, 일상의 이면 등을 짧게 소설로 썼는데, 글자가 작다는 단점 외에는 이모로 저모로 다양한 읽기를 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책에 나오는 소설을 소개하는데 출판사가 소개하고 글을 인용하는 게 나을 듯싶다.

 

빛의 온도에서 조해진 소설가는 집회를 나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또 각각의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놀랄 만큼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다. 또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듣고 싶은 것만을 듣는 마님(백민석, 눈과 귀), 섬마을 아이 동식이와의 대화를 통해 세태를 꼬집는 블랙리스트 작가(한창훈, 동식이), 각자의 이유로 따로 또 함께 울고 있는 버스기사와 승객(임현, 이해 없이 당분간), 그리고 투표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투표권을 사고팔 수 있는투표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김덕희, 배를 팔아먹는 나라), 취업을 미끼로 청년들에게 사기를 치는 국가 권력의 모습(백가흠, 취업을 시켜드립니다), 지금 이곳에서 한 치도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일상의 모습(김금희, 그의 에그머핀 2분의 1), 헤어진 애인을 추억하며 현대인들이 가진 무관심과 신성함이 사라진 세계의 모습(손보미,계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자의 방황과 상실감(조수경, 외선순환선) 등을 통해 작가들이 이 시대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또 어떤 언어로 그려내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

 

개인적으로는 백민석, 한창훈, 김덕희, 백가흠의 손바닥 소설이 재밌었는데, 특히 김덕희의 소설은 투표율이 점점 낮아지자, 이럴 바에는 투표권을 판매할 수 있도록 법을 고치자고 제안하며 국민투표에 붙이는데 80%가 투표했다는 상황설정이 씁쓸하면서도 기발했다.

 

 

<추신>

나는 이러한 기성작가보다는 장주원의 《ㅋㅋㅋ》(문학세계사, 2014)나 김동식의 회색인간(요다, 2017)에서 손바닥소설의 미래를 본다. 둘 다 전문작가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둘의 작품은 새로운 베스트셀러의 영역에 돌입했다. 기이한(?) 현상이다. 영어로는 미니 픽션(Mini-Fiction), 마이크로 픽션(Micro-Fiction)로 표현되거나 영미권에서 통용되는 플래시 스토리(Flash Story)라는 용어를 가지고 있는 손바닥 소설은 A4용지 한 장 분량에 해당하는 것도 있다. 이 흐름은 이미 보르헤스로 대변되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널리 쓰이는 소설 쓰기 방식이다. 간결성, 다양성, 파편성, 신속성, 가상성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이 소설쓰기 방식은 SNS의 대중화와 함께 21세기적 글쓰기의 커다란 흐름으로 전개될 것 같은 예감이다.


세상의 어떤 일에는 단 하나의 진실이 아니라 여러 개의 진실이 있음을 안다고 말하는 사람도 정말로 그렇게 믿기보다는 그저 그렇게 믿는 척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할 뿐인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내가 그렇게 때문에 안다. 하나뿐인 진실은 얼마나 쾌적하며 거기에 이끌리는 나를 막아내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지. 바로 그럴 때 여러 작가들의 짧은 소설을 한꺼번에 읽어보는 일은 도움이 된다. 이 책이 단 하나의 진실에 힘차게 복무하는 엔솔로지였다면 불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안에는 현실의 이슈에 밀착해 이루어진 고발과 풍자가 있고, 미래로 먼저가 현실을 돌아보며 시도된 비판적 성찰이 있으며, 언론 속 큰 현실 옆을 흘러가는 개인의 고요한 고통과의 통행과 공감도 있다.
- 신형철의 표 4의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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